상대방이 말이 없자 이신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연우진 알아요?”신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거두며 말한다. “제 친군데요.”손을 내밀어 이신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신유리에요.”이신은 그녀와 악수를 하고 맞은켠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우진한테서 들었는데 그쪽이 아트 디렉 일을 하고 싶다고요?”“네, 관심 있어요.” 신유리는 대담하게 말했다.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이신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어 매우 수려했다. 웨이터한테 손가락을 튕겨 펜과 종이를 달라고 했다. 종이 위에 숫자를 끄적대고 신유리에게 줬다. “요즘 괜찮은 전시회가 있는데 가봐요.”이신의 글은 생긴것 처럼 날카롭지만 더없이 깔끔했다.신유리는 종이에 쓰인 숫자를 보고 물었다. “당신 전화번호에요?”“평소 카톡을 잘 보지 않아서요.” 말을 마친 이신은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담담하게 물었다. “시한에는 며칠 있어요?”“저도 잘 몰라요.”“그럼 전시회 보고 연락 줘요.” 이신은 다음 일정이 있어 일어났고 신유리도 덩달아 일어났다.일어날 때 테이블 모서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지려는데 그가 팔을 잡아 부축해 줬다. 그의 몸에서 깨끗하고 상쾌한 페인트 섞인 냄새가 났다. 신유리는 덕분에 똑바로 설수 있었다.멋쩍음을 감추려 태연하게 바라보지만 말투에서는 어색함이 묻어났다. “고마워요.”“이곳 가구들이 민족 특색이 있어서 발에 걸려 넘어지기 쉬워요.” 이신은 무표정으로 신유리 어깨에서 손을 뗐다.신유리가 말하려는 순간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서준혁이 걸어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 서준혁은 자료를 챙겨서 고객 미팅 하러 간다고 말했다.자기 말만 하고 끊어 신유리는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이신이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아 미안하게 말을 건넸다. “다음번엔 제가 사죠. 번거로운 걸음 해 줘서 고마워요.”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오늘 신유리를 보러 온 것도 까다로운 고객을 피하려고 온 것이다.이신이 나가자 신유리도 뒤따라 나갔다.서준혁과
이신은 전시회를 보는 사람이 신유리일 거라고 예상 못 했다. “아트 디렉에 이렇게 관심 있는 줄 몰랐네요.”신유리는 웃으며 말한다. “우연히 와 봤어요.”“마침 내가 책임진 전시회에 오다니.” 이신은 신유리 등귀에 걸려있는 작품을 가리키며 말한다. “오늘 오픈 1일차인데 첫 번째 관객이시네요. 이 그림 위치를 바꾸려고 폐관해요.”신유리는 이신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지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서 뭘 더 바꾸죠?”“빛이요, 다양한 빛이 작품에 주는 감정들이 다 다르거든요.”“사물에도 감정이 있어요?” 신유리는 이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이신의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작업을 방해하기 싫어 나가려는데 그가 불러 세웠다.“계속 보고 있어도 돼요. 난 여기만 바꾸면 되니까.”신유리는 전시회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이신이 위치를 바꾼 작품을 보고 아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미묘했다.전시회에서 나갈 때즘 이미 7시가 넘었다. 시간이 늦어 날이 어둑어둑해졌다.핸드폰을 봤지만 서준혁은 연락이 없었다. 아마 어디 갔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속눈썹을 부르르 떨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면서 감정을 추슬렀다.“어디서 지내요? 데려다줄게요.” 딴 생각을 할 때 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신유리는 이신에게 폐가 될까 봐 택시 타고 가면 된다고 말했다.“이곳은 택시 잡기 힘들어요.”이신은 기어코 신유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신유리는 밥 한번 먹자고 했지만 이신이 다음 일정이 있어 나중으로 미뤘다.차에서 내리자 주현이 다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물론 서준혁이 주현의 뒤를 따랐다.주현은 여기서 신유리를 마주칠지 몰랐다. “신 비서님 간도 크시지, 대표님 앞에서 땡땡이도 치고.”서준혁이 신유리의 곁을 지날 때 차갑게 스쳐보고 그대로 지나갔다.신유리는 차 옆에서 오래도록 서있었다. 이신이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미안하다고 했다.이신은 운전대를 잡고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
입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통증과 더불어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겼다. 신유리는 자신의 입가가 찢어진 것을 느꼈다.서준혁이 손에서 힘을 빼자 신유리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고개를 돌릴 때 몸에 걸친 잠옷이 헐렁해져 쇄골과 하얀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서준혁은 고개를 숙여 신유리를 바라보다 비아냥거리듯 입꼬리를 올리고 아까와 같은 느긋한 말투로 물었다. “왜, 너한테 제대로 된 신분을 주지 않아서 그래?”신유리의 대답을 듣기 전에 서준혁은 손에 힘을 풀었다. 소파에 앉아 무표정으로 물어본다. “내가 언제 네가 내 여자친구라고 했어? 신유리 넌 자신을 너무 높게 보는 거 같아.”서준혁의 말은 신유리가 느낀 모든 일들이 자신만의 망상이고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업자득이라고 느껴진다.기계적인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서준혁은 핸드폰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신유리는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송지음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서준혁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대답했다. 신유리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서준혁이 송지음에게 말하는 말투는 아까 냉기가 가득했던 말투와 전혀 달랐다.신유리는 그제야 알았다. 송지음이든 주현이든 서준혁은 모두 따뜻하고 젠틀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신유리만 예외였다.그녀는 멍하니 서있다가 서준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그를 보았다.마침 서준혁도 이쪽을 보면서 말한다. “걔 없어, 몰라.”신유리는 서준혁이 송지음과 통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방에서 통화하는 서준혁을 방해할 수 없어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갔다.시한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저녁의 쌀쌀함을 느낄수 있었다.갑자기 요양원 원장님의 전화가 왔다. 신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신유리 씨, 혹시 시간 되면 내일 요양원으로 와 줬으면 좋겠네요.”신유리는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외할아버지한테 무슨 일 있어요?”“이선생님이 요즘 이상해요. 담당 간호사가 이선생님이 요즘 은행에 자주 가시
십분이 지나도 서준혁은 답장이 없었다.신유리는 데스크에 인사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가기 전에 멀리서 왕부장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는데 신유리를 보고 멈칫했다. “신 비서,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왕부장은 못 챙긴 물건이 있어 다시 물건 가지러 돌아온 것이다. 신유리는 떠나기 애매했다. “대표님은 어디 계세요?”“화양에 있어요.” 왕부장은 신유리가 서준혁의 업무지시로 남아있는 줄 알았다. “다시 가봐야 해서 신 비서도 같이 갈래요?”왕부장과 마주쳤는데도 가지 않으면 보기 좋지 않아 왕부장과 함께 화양으로 떠났다.화양은 거리가 멀지 않아 20분 만에 도착했다. 왕부장은 가는 길 내내 신유리와 지사에 관련된 일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유리한테서 서준혁의 의도를 알아채려는 모양이다.“대표님이 시한에 계시니 지사의 일은 잘 처리될 거예요. 부장님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본디 차가웠지만 무표정일 때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왕부장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목적지에 도착하자 책임자가 마중 나와 공손하게 왕 부장과 말했다. “문 대표님이 도착하셔서 서 대표님께서 안에서 모시고 계십니다.”문대표는 문선경이었다.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될 줄 몰랐다.왕부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신유리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려는 듯 말한다. “사실 문 대표님과 내가 오랜 벗이에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게실 문이 열렸다. 주현은 문선경의 손을 잡고 안에서 나왔고 서준혁은 그 뒤를 따랐다.왕부장은 마른 손을 비비며 다가가 문선경에게 인사를 했다. 문선경은 한번 쓱 보고 예의상 인사를 받아줬다.신유리는 왕부장 뒤에 있어 문선경이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문선경은 시선을 거두고 주현을 보면서 당부한다. “내가 요 며칠 목포로 내려가는데 서 대표 번거롭게 하면 안 돼.”그리고 서준혁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한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며칠 더 신세 질게요. 재계약 건은 와서 빨리 답장하죠.”서준혁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낮게 대답한다. “저
서준혁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곁에 오래 있은 신유리는 서준혁의 기분이 나쁘다고 느꼈다. 기분 나쁜 이유를 몰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서준혁은 이런 반응을 원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냉랭하게 물었다. “신 비서, 출근시간에 플러팅 하는 게 맞는 일이야?”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뚫어지게 봤다. 그가 감추지 못한 혐오를 똑똑히 보았다.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해명했다. “마침 친구를 만난 것뿐이야.”“친구도 참 많아, 벌써 몇 명째야?”서준혁이 말한 친구와 신유리의 친구는 다른 의미였다. 신유리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자신만 욕 보이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이신까지 끌어들여 욕 보이는 건 참을 수 없었다.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신유리가 서준혁한테 싸늘하게 말한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해? 난 친구도 있으면 안 되는 거야?”서준혁은 얼굴을 굳히면서 싸늘하게 서유리를 바라본다.평소에도 위압감을 풍겼는데 얼굴이 어두워지자 그 기세가 더 강렬했다.신유리는 그의 시선 때문에 손이 떨리고 뭐라도 말하고 싶었으나 주현이 문서를 들고 오는 것을 발견해 가만히 있었다.“대표님, 지사에서 미팅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아직 여기 계세요?”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보지만 그는 시선을 거두고 걸어갔다.주현은 문서를 챙기고 뒤따라 간다. 두 걸음 걸은 후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대표님 따르기 싫으면 그만 따라요.”신유리는 주현의 말속에 뼈가 있다고 느꼈지만 주현은 할 말만 하고 떠났다.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순간 피곤이 몰려왔다.방금 서준혁은 신유리와 같이 미팅하러 간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서준혁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그 사람이 당신 상사에요?” 이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이신도 아무 이유 없이 서준혁에게 비웃음을 당한 일이 떠올랐다.“미안해요, 나 때문에 그쪽도 욕보이게 됐네요.”서준혁의 말이 지나쳐 이신이 화를 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이신은 신유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내가
잘 닫히지 않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신유리의 몸에 걸쳐진 얇은 가운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멈칫하던 그녀는 그제야 서준혁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시무룩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서준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출근 시간에 이렇게 온 걸 보면 몰라?”이건 점심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차가워 보이는 서준혁이지만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읽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서준혁은 점심에 그녀를 버리고 주현과 함께 손님을 만나러 갔다.입술을 깨물던 신유리가 입을 열었다.“당신한테 주현 씨면 되는 줄 알았는데?”그녀의 말에 서준혁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주현은 정화의 직원이 아니야.”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신유리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그녀는 지금 너의 비서잖아?”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신유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신경 쓰여?”그의 차가운 말투는 불어오는 바람과 어우러져 신유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닫았다.일자리도 뺏겼는데 그녀더러 뭘 하란 말인가?신경 쓰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창문을 닫으니 바람이 사라졌다. 신유리는 몸을 미처 돌리지 않았는데 뒤에서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신경 쓰인다고 해도 신유리, 너는 나한테 이럴 자격 없어.”창문 고리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보았다.“늦은 저녁에 직원의 방에 나타난 대표님은 이럴 자격 있고?”그녀는 서준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그녀의 긴 속눈썹은 유난히 냉담해 보였다.신유리는 선 채로 앉아 있는 서준혁을 내려다보았다.서준혁은 신유리의 이런 위압적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를 움직였고 신유리를 단번에 창가로 밀어붙였다.그리고 몸을 약
신유리는 서류를 챙겼다.주현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신 비서님, 회의 전에 가급적이면 메이크업 좀 하는 게 어때요? 화인을 대표하는 얼굴이 그 모양이면 되겠어요?”차에서 쪽잠을 잔 신유리라 머리가 훨씬 맑아진 상태였다.“별걱정 다하시네요.”서준혁은 어제 그녀가 화인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었기에 그녀는 화인의 이미지를 걱정할 자격도 없었다.주현은 요즘 서준혁과 함께 다니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신유리에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신유리가 지금 그녀에 맞서려 하고 있다.“뭐라도 된 것처럼 건방지네요? 어제는 무단결근에 오늘은 졸기까지 하다니요. 아주 훌륭한 비서네요.”주현은 훌륭하다는 단어에 힘주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심기가 불편했던 신유리가 뭐라 말하려는데 서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주현 씨.”경고를 의미하는 서준혁의 말투에 주현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서자, 그에게서 평소와 다른 낯섦이 더욱 짙어졌다.메인 자리에 앉은 그는 왕대리를 보며 말했다.“오늘 준비 잘했길 바라요.”왕대리가 서류를 건넸다.“전 계획안과 대표님이 요구했던 것들입니다.”서준혁과 멀리 떨어져 앉은 왕대리는 하는 수 없이 먼저 신유리에게 건넸고 그녀가 다시 서준혁에게 전달했다.앞으로 뻗어 마중 나온 서준혁의 손에 차가운 신유리의 손이 맞닿았다.따뜻한 서준혁의 온기에 신유리는 급히 손을 거두었다.회의 내용은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상대의 악의적인 경쟁에 대안을 마련하는 내용이었다.신유리는 옆에서 노트하며 한편으로는 서준혁을 위해 각종 필요한 예시와 수치들을 보여주었다.일에 관해서 유난히 확실한 것을 지향하는 서준혁이다.신유리도 그런 그를 알고 있었다.오늘은 그날과는 달리 순리롭게 진행되었다.회의가 막바지로 향하던 그때, 왕대리가 갑자기 물었다.“대표님, 오 주임의 자리가 비었는데 새로 채용할까요? 아니면 본부에서 사람을 보내주시나요?”오 주임이 숨어있던 간첩이었고 화사의 일부 자료를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던 신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알 것 같아.”그녀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입술에 혈색이 없었고 서준혁을 바라보는 눈빛도 전차 평온해졌다.신유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 내가 오바했어.”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서준혁은 아무 말도 없었다.잠시 후, 그는 다시 고개를 들며 물었다.“내가 데려다줘?”다른 스케줄이 있었지만 신유리가 다쳤으니, 호텔로 돌아가 쉴 수밖에 없었다.반면 신유리는 서준혁이 진심으로 그녀를 데려다주려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거라 여겼다.그래서 신유리는 다친 손을 움직이며 느릿하게 말했다.“아니, 차를 부르면 돼.”서준혁이 뭐라 말하려는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고 시선을 내려 확인하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자리를 떠났다.몸이 불편했던 그녀는 걸음이 느렸다. 모퉁이를 돌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녀는 거기에서 걸음을 멈췄다.여기는 비지니스 파크였고 오가는 차들은 모두 자가용이었다.급할 것이 없었던 신유리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오가는 차량을 지켜보았다.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탓에 서준혁이 예전처럼 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결국 사람은 변한다.호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5시가 되었고 막 쉬려는데 이연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요즘 이연지는 너무 빈번하게 그녀를 찾았다. 신유리는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그녀도 마침 이연지에게 사실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하지만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이연지의 목소리가 아닌 거칠고 심술 궂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이연지의 딸이야?”남자는 예의가 없었다.신유리의 얼굴도 일그러졌다.“당신은 누구죠?”“난 이연지의 남자야. 네 엄마가 나한테 2,000만 원을 빚졌어. 네가 대신 갚아!”휴대폰을 잡은 그녀의 손이 분노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바꿔요.”남자는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돈만 축내는 걸 데리고 병원에 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