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 제18화 육체만 개입된 사이

공유

제18화 육체만 개입된 사이

작가: 라오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임신한 연유 때문일까, 요즘 들어 송재이는 쉽게 지치고 피곤해진다.

비행시간이 고작 3시간인데 그녀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몸에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녀는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뜨고 활짝 웃는 서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송재이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 곧게 앉았다.

담요는 아무래도 서유리가 덮어준 듯싶다. 그녀는 고마운 뜻으로 서유리에게 웃어 보였다.

“방금 꿈꿨어요. 잠꼬대도 했고요.”

서유리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송재이는 흠칫 놀라서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랬는데요?”

“너 미워, 망할 놈... 이랬어요.”

서유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

송재이는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

서유리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니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할 더한 말도 한 듯싶다.

“재이 씨 연애하죠?”

서유리가 가까이 다가오며 오지랖 넓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늘 온화하고 진중한 타입이라 누군가의 사생활에 이토록 관심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 적어도 송재이는 서유리를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요.”

송재이는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치만 사랑하지도 않는데 미워한다는 게 말이 돼요? 재이 씨 꿈속의 그 남자 대체 누구예요?”

지금은 설영준과 헤어져서 그렇다고 쳐도 한때 함께했을 때도 그녀는 절대 설영준의 이름을 내뱉을 리가 없다.

둘은 떳떳한 사이가 아니니까. 송재이는 이 룰을 잘 지켜야 한다. 그녀는 오직 설영준이 한때 침대에서 욕구를 푸는 여자에 불과했다.

둘은 서로의 육체에 개입할 순 있어도 삶에 개입할 순 없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송재이의 마음이 복잡해질 따름이었다.

후회되지는 않아도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서유리는 그녀를 놀리려던 생각이었는데 이토록 우울하고 쓸쓸해 하는 모습을 보자 문득 얼마 전에 어떤 남자의 차에서 키스했던 사진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게 떠올랐다.

사진 속 송재이는 키스를 당할 때 설레하면서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유리는 아직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지만 똑같이 이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송재이의 사생활이니 서유리도 눈치껏 더 캐묻지 않았다.

...

3일 후 송재이가 부성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는 너무 지친 나머지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깼을 때 창밖에 어느덧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송재이는 휴대폰을 켜고 입금된 공연비를 확인했는데 적지만은 않은 비용이었다.

은행카드에 찍힌 잔액은 그녀가 한 땀 한 땀 모아서 쌓아 올린 안정감이다.

다음날 오전 송재이는 아침을 먹고 병원에 다녀왔다.

딴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느라 그녀는 일부러 사립 산부인과를 택했고 보안 시스템이 꽤 잘되어 있었다.

임산부 서류도 작성했고 인생 첫 산전검사를 받아봤다.

송재이는 예전에 생활패턴이 매우 불규칙적이고 음식도 엄청 가려서 생리 날짜도 정확하지 않았다. 이번 검사로 문제가 수두룩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의사가 말하길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다.

현재 임신 2개월 차고 상태가 매우 안정적이라 엽산을 보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는 송재이에게 하늘에서 내려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로또에 당첨된 듯한 심정으로 의약품 명세서를 챙겨서 사무실을 나섰다.

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는데 발신자 번호 표시를 본 순간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오서희 사모님.]

‘아니 대체 왜? 사모님이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지?’

송재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참이 지나도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다.

그녀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송 선생님, 잘 계셨어요?”

관련 챕터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19화 흥 돋게 한 곡 연주해

    오서희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청량하고 우아한 목소리에서 이 나이대 여성들 특유의 진중함이 묻어났다.송재이는 3년간 설도영을 가르치면서 매주 설씨 일가로 찾아가 진실된 오서희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듣기 좋게 얘기해서 오서희는 보이는 것처럼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송재이는 살짝 긴장한 듯 입을 열었다.“네, 사모님. 무슨 일이세요?”오서희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재벌가 사모님들은 다들 사교 능력이 뛰어난 법이다. 일단 송재이에게 근황을 물으며 다정한 척을 했고 이에 송재이는 황송한 마음으로 일일이 회답했다.오서희는 돌연 화제를 바꾸고 본론에 들어갔다.“송 선생님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랑 우리 그이 결혼 30주년이거든요...”오서희가 초대를 보내오다니.마지막으로 오서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사직 의사를 밝혔다.오서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담담하게 머리를 끄덕일 뿐 딱히 그녀를 만류하진 않았다.송재이가 떠나려 할 때 그녀가 불쑥 등 뒤에서 이 한마디를 내던졌다.“그래도 제 분수는 아네요. 제 것이 아닌 물건은 노리지 말아요!”송재이는 몇 초간 넋 놓고 있다가 머리를 홱 돌렸다.오서희는 이미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방금 그런 말을 한 사람이라곤 전혀 상상이 안 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표정 변화에 송재이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송 선생님? 시간 되시죠?”오서희가 직접 전화까지 한 이상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건 제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무례한 행위이다.송재이는 귀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입술을 꼭 깨물었다.“네, 꼭 갈게요.”...시간이 빨리 흘러 어느새 토요일이 되었다.송재이는 설씨 일가로 가기 전에 우선 백화점에 들렀다.지난번에는 설영준을 도와 선물을 고르러 갔지만 이번에는 그녀 자신을 위해서였다.누군가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가는 자리인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송재이는 문득 설영준이 선물 사러 갈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50대 여자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0화 거들떠보지 않아

    1층 거실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설씨 일가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거의 다 재벌 가문이었다.송재이는 오서희에게 끌려 이곳에 오니 좀처럼 어울리지 못했다.선물을 주고 목걸이도 설영준에게 돌려준 후 핑계를 둘러대고 떠나려던 참인데 이때 마침 설도영이 가까운 곳에서 달려오더니 그녀를 보며 활짝 웃었다.“오셨어요, 재이 쌤!”아이는 자연스럽게 송재이를 잡아당기며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쌤, 그날 내가 다툰 일 엄마한테 안 일렀죠?”송재이가 힐긋 째려보자 설도영은 가슴 찔리듯 겸연쩍게 웃었다.“쌤은 의리가 넘쳐서 절대 안...”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위층에서 주현아가 우아한 기품을 뽐내며 걸어 내려왔다.50대로 보이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내려왔는데 아마 그녀의 아빠일 듯싶었다.주현아는 송재이를 마주 보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송 선생님.”주현아가 거실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했다.“방금 2층에서 들었는데 영준 씨 어머님, 아버님께 직접 한 곡 연주해주시겠다고요? 제가 뭘 놓친 건 아니죠?”오서희가 눈썹을 들썩거렸다.“아니야, 마침 잘 왔어. 송 선생님은 평소에 흔히 연주하지 않아.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니까 한 곡 연주하는 거야. 선생님, 꼭 해주실 거죠?”오서희는 홀가분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정작 송재이를 거절하지 못하게 궁지로 몰아넣었다. 만약 여기서 거절하면 그녀만 오서희의 체면을 짓밟는 셈이 된다.송재이는 줄곧 한쪽 옆에 서 있었다.아까 문밖에서 누군가가 운을 뗄 때부터 기분이 불쾌했고 오서희가 그녀 대신 이 상황을 무마할 줄 알았는데 아예 잘못짚었다. 그녀의 생각을 완전히 빗나간 격이다!오서희와 주현아가 서로 맞장구를 치는 걸 보니 진작 이러려고 계획한 듯싶었다!송재이는 옆을 힐긋 바라봤다.설영준은 손에 찻잔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옆 사람들과 담소를 나눴다. 마치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또 어쩌면 그는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 있다.송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1화 둘이서 함께한 연주

    송재이는 주위 사람들을 쭉 훑어보다가 결국 주현아에게 시선이 멈췄다.그녀는 입가에 번진 미소를 미처 수습하지 못했다.어쩌면 오늘은 주현아가 오서희에게 뭐라고 꼬드겨서 오서희가 친히 송재이를 초대한 듯싶다. 뭇사람들 앞에서 따끔하게 혼낼 예정이지!송재이가 연주를 거절하면 오서희도 절대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다.문예슬과 설도영이 송재이를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자마자 오서희의 싸늘한 눈빛에 식겁하여 뒤로 물러섰다.문예슬은 난감한 표정으로 송재이를 쳐다봤고 설도영도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못 도와주겠다며 말하고 있었다.송재이는 시선을 거두고 오서희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분위기가 살얼음판에 도달했고 송재이는 더는 설영준이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지도 않았다.하지만 기대가 없음에도 상처받은 심장은 너덜너덜해져서 한없이 가라앉았다.“송 선생님만 연주하면 뭐가 재밌겠어요?”이때 문득 감미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인파들 속에서 박윤찬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그는 송재이의 옆에 서서 큰 키로 그녀의 시선을 거의 다 가렸다. 송재이는 앞이 안 보여 어떤 남자가 지금 미간을 구기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박윤찬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인 후 오서희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저랑 재이 씨가 함께 연주해도 될까요?”흥을 돋우려면 한 사람보단 당연히 둘이 더 떠들썩한 법이다.오서희는 입을 벌렸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박윤찬이 이미 몸을 돌려 송재이를 향해 눈썹을 들썩거리며 눈빛으로 그녀의 뜻을 물었다.그가 지금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송재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오늘 만약 오서희의 체면을 짓밟았다면 송재이는 앞으로 더는 경주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나름 좋은 방법이다.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뭇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박윤찬과 나란히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피아노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2화 그녀를 창녀 취급하다니?

    송재이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기회를 봐가며 그에게 목걸이를 돌려준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이때 설영준이 전화를 받았는데 업무상의 내용인 듯싶었다.그는 차분하게 통화를 마치고 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맞은편에 있는 설동훈에게 말했다.“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말을 마친 후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송재이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따라갔다.잠시 후 설영준이 손을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송재이는 복도에 서서 머리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그녀도 인기척 소리에 고개 들어 설영준을 쳐다봤다.설영준의 눈빛은 한없이 차분했다. 둘은 눈을 마주쳤지만 그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곧게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송재이가 황급히 쫓아갔다.“영준 씨, 나 줄 거 있어.”설영준은 지금 새 여친이 생겨서 송재이에게 시큰둥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그녀는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설영준이 단번에 허락했다.“발코니로 따라와.”“뭐?”송재이가 넋 놓고 있자 설영준이 고개 돌려 거만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줄 거 있다면서!”말을 마친 후 복도 끝의 발코니로 걸어갔다.송재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얼른 그를 따라갔다.밤바람이 조금은 차갑게 몸에 스며들었다.가을이 되니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했다.송재이는 얇게 입었던지라 무심코 제 몸을 감싸 안았다.설영준은 난간 앞에 서서 몸을 돌리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왠지 모르게 그의 눈빛에는 항상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어떠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한편 송재이는 이런 걸 고민할 여지 없이 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돌려줬다.“전에 택배로 보내준 거 돌려줄게.”“왜? 마음에 안 들어?”설영준은 힐긋 쳐다볼 뿐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돌려받을 기미가 없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무 비싸.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어...”“왜 없어?”그의 물음에 송재이는 가슴이 움찔거렸다. 곧이어 설영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랑 3년이나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3화 이번 생은 헛된 망상 안 품어

    “송 선생님이 선물을 대신 전해주라고 해서요.”설영준이 불쑥 말을 꺼내며 방금 송재이가 건넨 보석함을 오서희에게 전했다.“자, 받으세요.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대요 송 선생님이.”오서희와 송재이 모두 흠칫 놀랐다.오서희는 방금 다른 손님들과 얘기를 나눌 때 일부러 흘리듯 투덜댔었다.송재이처럼 하찮은 집안의 여자들은 역시 룰을 잘 모른다고, 빈손으로 초대에 응하는 게 무슨 경우냐고 잔뜩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경우지?진짜 가난해서 아무것도 살 능력이 안 돼 공짜로 한 끼 얻어먹으려고 온 줄 알았더니 인제 와서 선물을 덥석 건넬 줄이야!설영준이 산 목걸이로 지금 송재이에게 체면을 한껏 살려주고 있다.그녀는 괴롭고 난처할 따름이었다.설영준이 대체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 그녀는 이 남자를 힐긋 쳐다봤다.방금 사모님이 그토록 난감하게 굴 땐 선뜻 나서지도 않더니 지금 왜 도와주고 있지?변덕스러운 이 남자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송재이는 별수 없이 일단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었다.재벌가 사모님들은 발코니 입구에 서서 오서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석함을 여는 걸 지켜보았다.눈썰미가 좋은 누군가는 이 목걸이가 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리고 또 더 눈치 빠른 누군가가 거침없이 쏘아붙였다.“어머? 이상하네. 이 목걸이는 오늘 영준이가 선물한 것과 똑같잖아요. 그 세트랑 정말 똑같아요!”송재이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방금 말을 꺼낸 사람은 평소에 오서희와 친하게 지내는 서보경 사모님이다.다들 함께 어울려서 화투도 종종 치곤 한다.겉보기엔 친한 것 같아도 실은 암묵적으로 서로 헐뜯으며 복잡한 질투의 심리가 얽혀 있다.서보경은 금세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가까이 다가오더니 더 오버하며 외쳤다.“어머나, 세상에. 내가 뭐랬어요! 이거 완전 똑같은 거잖아요!”그녀는 웃으며 송재이와 설영준을 번갈아 보았다.“우리 영준이랑 도영의 피아노 선생님 안목이 이렇게나 똑같을 줄이야. 무슨 목걸이도 똑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4화 담배가 늘었어

    설영준이 음침한 눈빛으로 얼굴을 들었다.송재이는 이미 인파를 가르고 자리를 떠났다.설씨 일가의 대문을 나선 후에야 눈물을 쓱 닦았다.방금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그런 말을 내뱉었다.조금 충동적이긴 하지만 단언컨대 그녀의 진심이다.너무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그제야 외투를 놓고 나온 게 생각났다.다만 지금 이 상황에 다시 돌아가서 외투를 챙길 수도 없었다.그녀는 저 자신을 꼭 감싸 안으며 시린 마음을 추슬렀다.이때 갑자기 어깨에 외투가 하나 걸쳐졌는데 고개 들어 보니 박윤찬이 옆에 와 있었다.“재이 씨, 택시 잡아드릴까요?”오늘 밤에 박윤찬은 그녀를 두 번이나 도와줬다.송재이는 너무 감격스러웠다.방금 대문 앞에 서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바람에 아직도 얼굴에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이를 본 박윤찬이 옷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넸다.“고마워요.”송재이가 티슈를 받고 이제 막 머리를 돌렸는데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그는 바로 지민건이었다!대문 앞의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치자 그 남자의 초췌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덥수룩한 수염과 초라한 몰골, 바람에 흩날리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왠지 더 안쓰러워 보였다.“지민건?”송재이가 물었고 박윤찬은 그녀의 시선 따라 머리를 돌렸다.“지민건 씨가 대표님을 일주일이나 찾아다녔는데 종일 안 만나주셨거든요.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지민건이 왜요?”설영준이 전에 그의 프로적트를 하나 취소한 건 송재이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고작 프로젝트 하나 손해 봤다고 이 지경으로 몰락한다는 말인가?“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는데 상대측에서 지민건 씨를 고소했대요. 원래 계약하기로 한 건축회사도 설한 그룹 계열사였다고 하네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민건 씨는 지금 두 번이나 피해를 보았는데 두 번 다 대표님과 연관이 있지 뭐에요.”현재 그 건축회사에서 지민건에게 법원 소환장을 보낸 상태이다. 상대가 고소를 취하하지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5화 내가 창녀? 그럼 넌 뭔데?

    설영준은 지민건과 통화를 마친 후 유유자적하게 몸을 돌렸다.이때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주현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송재이도 울었었다.그가 ‘술집 아가씨’라고 욕할 때 눈물을 훔쳤었다.그런 말은 어떤 여자든 굴욕으로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심지어 송재이는 창녀가 아닌데...서러움과 괴로운 감정이 점점 더 북받쳤겠지.설영준은 뒤에 있는 난간을 잡고 차가운 시선으로 주현아를 쳐다봤다.“무슨 일이야?”주현아는 마치 서러움을 당한 초등학생처럼 한 마디 관심해주니 감정이 격해졌다.꾹 참았던 눈물이 한순간 울컥 쏟아지고 슬픔에 빠져버렸다.그녀는 설영준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영준 씨, 나 약혼반지 잃어버렸어.”설영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3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어쩌다가?”“그게 그러니까... 화장실 갈 때 반지 빼서 세면대 옆에 놓아두고 안에서 볼일 보고 다시 나왔더니 반지가 사라졌어...”주현아는 진심으로 속상했다. 그 반지는 설영준이 선물한 반지였으니까.이제 곧 약혼식도 치러야 하고 약혼식 때 그 반지를 껴야 하는데 지금 잃어버리면 어떡하라는 거지?주현아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왠지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설영준은 아무 말이 없었고 주현아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살짝 격앙된 듯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영준 씨가 찾아봐 줘. 손님들 아직 다 안 갔으니 CCTV 돌려봐 봐. 분명 누군가 훔쳐 갔을 거야! 흑흑...”설영준은 결국 그녀의 뜻대로 집사를 불러와 반지를 보았는지 물었다.집안에서 물건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자 집사들은 전부 자신이 의심을 당할까 봐 그에게 반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해명하기 바빴다.집안의 모든 CCTV도 점검했는데 거실이며 복도 전부 정상 작동이었다.유독 1층 복도의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달린 CCTV가 공교롭게도 고장이 나버렸다!주현아는 카메라를 돌려보면 누가 반지를 가져갔는지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26화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다

    그날 지민건과의 짧은 만남이 마지막일 거라고 송재이는 생각했다.하지만 며칠 뒤의 한 오후.지민건은 사람들로 가득한 연습실에 나타났다.송재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음정을 고르고 있었다.그때 서유리가 송재이의 귓가에 속삭였다.“재이 씨, 어떤 남자가 재이 씨 찾는데.”송재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민건이 보였다.그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었다.이를 본 오케스트라 단장도 화들짝 놀라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재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송재이도 영문을 몰랐다.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당황해하며 지민건을 일으켜 세웠다.“뭐 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 일어나서 얘기해.”“재이야, 내가 인터넷에 네 사진 올리고 그런 음란한 유언비어를 퍼트린 건 네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일부러 복수하려고 그런 거야. 네가 유부남한테 꼬리치지 않은 것도 알고, 그날 차에서 찍은 그 애정행각 사진은 다 내가 포토샵 한 거야. 이 일로 인한 명예 훼손은 내가 다 배상할게. 내가 잘못했어. 나 바라는 거 없어. 그냥 너에게 용서를 빌 뿐이야.”지민건은 하루 만에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정말 중간이라는 게 없이 여전히 극단적이었다.그는 송재이가 휘말렸던 유언비어를 전부 씻어주고 그 구정물을 자기가 다 뒤집어쓰고 있었다.지민건은 생김새로 보면 점잖고 얌전한 스타일이었다.만약 지민건이 뒤에 그런 비열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송재이도 그를 인간쓰레기와 전혀 연관 짓지 못했을 것이다.남자가 돼서 자존심도 없이 이렇게 그녀 앞에 꿇어 있다. 통곡하며 애원하는 지민건을 보며 송재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울며 애원하자 뒤에서 송재이를 왈가왈부했던 사람들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하여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지민건이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걸로 봐서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설마 정말 송재이를 오해한 걸까?연지수는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이 난리판을 구경하고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이 일

최신 챕터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60화 포기하면 안 돼

    통화가 종료된 후 설영준은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는 다시 한번 송재이 병실로 가 침대 끝에 앉았다. 그리곤 창백한 얼굴로 고요히 잠든 송재이의 얼굴을 보았다.설영준은 마치 송재이에게 자신이 한 말이 들리는 것처럼 나직하게 말했다.“재이야, 내 말 들려? 나 여기 있어. 네 옆에 있어.”그는 조심스럽게 송재이의 손을 잡으며 미약해진 체온을 느꼈다.“어쩌면 지금 내 말이 안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야.”설영준은 이내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우리 아직 함께 해보진 못한 일들이 많아. 혹시 기억해? 우리 그때 그랬었잖아. 함께 세계 곳곳에 있는 나라로 여행 가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체험해 보고 그곳의 음식을 먹어보자고. 네가 지금 눈만 떠준다면 난 지금 당장 너랑 함께 그 떠날 거야.”이때 누군가 노크하더니 도정원이 들어왔다. 그는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영준 씨, 경찰들이 지금 출동했다고 하네요. 곧 도진욱의 거처로 들이닥칠 거예요.”설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한 눈길로 송재이를 보았다.“정원 씨,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도와드릴게요.”“저 대신 재이 좀 잘 챙겨주세요. 전 누구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사람이 아마 이 사건에 아주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걱정하지 말고 가봐요. 여긴 제가 꼭 붙어 있을 테니까 아무도 재이를 건들지 못할 거예요.”설영준은 고마운 눈빛으로 도정원을 힐끗 보곤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떠나기 전 설영준은 나직하게 송재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재이야, 나 얼른 돌아올게. 그러니까 나 꼭 기다려줘야 해.”송재이의 병실에선 도정원만이 묵묵히 곁을 지키며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설영준은 이미 진상을 찾으러 떠났다.그는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그 친구는 의학 부문에서 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9화 새로운 증거

    그러자 보안 요원이 말했다.“여긴 병원 CCTV를 관리하는 곳입니다. 외부인에게 함부로 영상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설영준은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전 송재이 씨 약혼자입니다. 전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보안 요원은 다소 망설이더니 결국 그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영상 속에서 설영준은 세세한 부분까지 발견했다. 송재이가 쓰러지기 전 도진욱은 물잔을 송재이에게 건넸다. 그 순간 설영준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같은 시각 도정원은 병실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쪽지엔 갈겨 쓴 글씨가 있었다. 약물의 이름과 사용량이 적힌 쪽지였다. 그는 발견하자마자 바로 설영준에게도 알렸다.두 사람은 각자 발견한 것을 공유하곤 분석하기 시작했다. 설영준은 도진욱이 송재이에게 건넨 물잔과 쪽지 위에 쓴 약물의 명칭을 보았다. 그는 순간 무언가 깨닫게 되었다.송재이가 검사실로 들어간 뒤 설영준과 도정원은 각자 단서를 찾으러 움직였기에 설영준은 다시 돌아와 송재이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도정원은 쪽지에 적힌 약물 이름을 보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설영준은 초조한 얼굴로 검사실 밖에서 송재이를 기다렸다.“재이야, 꼭 버텨야 해.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시간이 1분 1초 흘러갔다. 설영준은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머릿속에 송재이의 미소와 웃음소리, 그리고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기도했다. 송재이가 무사히 나오길 바라며 말이다.설영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재이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네가 그때 엄청 찬란한 미소를 지었었어. 네 찬란한 웃음이 온통 어둠뿐이던 내 세상을 환하게 빛내주었지. 그때 널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바로 이때 문이 스르륵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설영준은 바로 다가가 물었다.“선생님, 재이는 어때요?”“저희가 최선을 다해 독이 퍼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희귀한 독에 중독된 거라 독 분석하고 해독제를 만드는 데 시간이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8화 단서

    송재이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도정원과 도진욱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수사관이 빠르게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그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 얼른 입을 열었다.“저희가 바로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도정원은 빠르게 긴급 호출 벨을 누르면서 송재이를 부축한 채 옆에 있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의자에 앉히자마자 도정원은 초조한 마음으로 송재이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재이야, 조금만 버텨줘. 의사가 금방 도착할 거야.”도진욱은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긴 얼굴로 송재이를 보았다. 속으로 뭔가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독에 중독됐다고? 그럴 리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예리한 수사관은 그런 도진욱의 상태를 눈치채고 바로 심문했다.“도진욱 씨, 이 상황에 관해 설명하세요. 송재이 씨가 왜 갑자기 중독된 거죠?”도진욱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 전 정말로 모릅니다. 제가 왜 제 조카를 죽이겠습니까?”바로 이때,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며 송재이를 살펴보았다.의사가 엄숙하게 말했다.“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송재이는 급하게 검사받으러 갔다. 도정원과 도진욱이 그 뒤를 따라갔다. 수사관은 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머릿속에 이미 사건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도정원이 밖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송재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진욱은 홀로 구석으로 간 뒤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안에 있는 핸드폰만 불안한 마음으로 만지작거렸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했다.“나야. 일이 복잡하게 됐어. 송재이가 갑자기 독에 중독되어서 경찰이 개입하게 되었어. 나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하지만 우린 지금 반드시 움직여야 해.”전화기 너머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군요. 일단 절대 증거를 찾게 해서는 안 돼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끝장나게 되니까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7화 중독

    화가 난 도정원은 이를 빠득 갈았다.“그게 무슨 의미죠? 설마 아버지 병이 당신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요?”정체 모를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곧 알게 될 거야. 참, 도진욱. 가문의 이익을 위해 네 동생 행복을 희생했었지? 이젠 네가 희생할 차례야.”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송재이와 도정원은 고개를 돌려 도진욱을 보며 설명을 바랐다.그러자 도진욱이 말했다.“난... 난 정말 몰랐어. 그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인정해. 하지만 전부 가문을 위해서였어. 난 너희들을 해칠 생각한 적 없다고.”송재이는 무력감이 들었다.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한 이 가족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절망에 빠진 송재이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거예요?”도정원도 다소 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셨다고요. 우리 도씨 가문이 언제부터 이익에만 눈멀어 가족을 버리는 가문이 된 거죠?”도진욱의 얼굴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는 힘이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원아, 그땐 내 잘못이 맞아. 나도 인정해. 난 내 선택으로 우리 가문이 더 힘이 있는 가문이 될 줄 알았고 가족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난... 난 정말 미안하구나.”옆에서 듣고 있던 송재이는 막막하면서도 불안했다.“두 사람은 전부 제 가족이에요. 전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송재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그 순간 문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서 이 숨 막히는 침묵을 깨버렸다.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엄숙한 얼굴로 들어왔다.“안녕하세요. 저희는 경찰서 수사과에서 나왔습니다. 몇 가지 당신들이 조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도정원과 도진욱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진상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조사라는 것을“네, 협조하겠습니다.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6화 충격적인 사실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도진욱이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다. 너희들한테... 해줄 얘기가 있단다. 네 아버지의 과거와 어머니에 관한 얘기란다.”도정원과 송재이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의아하면서도 초조했다.“큰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뭔가 알고 계신 거예요?”도진욱은 미간을 찌푸렸다.“곧 도착하니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자꾸나. 이 일은 내가 너희들 얼굴을 보면서 직접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전화를 끊은 후 도정원과 송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도진욱이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몰랐고 도진욱이 그들에게 해줄 얘기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욱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엔 초조함과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그는 송재이와 도정원의 얼굴을 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고 있단다. 하지만 더는 너희에게 숨길 수 없을 것 같구나. 너희들이 모르는 사실은 더 많단다.”송재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가 어질거렸다.“큰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아직도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건가요?”“그래, 그때 당시 나와 네 엄마는 확실히 그런 사이였었지. 하지만 그건 다 지나간 일이란다. 나중에 난 그 삼각관계에 빠지기로 했고 네 엄마랑 네 아빠를 이어주기로 했었지. 그때의 난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지금까지도 말이야.”송재이와 도정원은 충격받은 얼굴로 도진욱을 보았다. 그가 꺼낸 얘기는 도경욱이 꺼낸 얘기보다 더 충격적이었다.“큰아버지, 정말로... 정말로 그러셨어요?”“나도 알고 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과거의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난 아직 살아 있을 때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구나.”바로 이때 병실 안에서는 긴급 호출 벨이 울렸다.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하게 병실로 달려왔고 송재이와 도정원도 얼른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그들을 보더니 고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5화 마지막 오늘

    송재이는 얼른 도경욱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그녀의 눈 앞을 가렸다.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도정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병실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저 일정한 의료 기기 소리만 들려오며 시간이 흘렀다.도경욱은 송재이를 빤히 보았다. 그의 두 눈엔 아쉬움과 죄책감만 남아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기 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미약한 목소리지만 그는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재이야, 내 딸. 너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단다. 네 출생의 비밀과 네 엄마에 관한 얘기야.”송재이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 그렁그렁 맺힌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엄마가 왜요?”도경욱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마치 온몸의 힘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이 숨겨둔 진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그때 네 엄마, 그러니까 서지원의 약혼 상대는 내 형이었단다. 네 큰아버지지. 하지만 운명이 장난을 쳤지. 서지원이... 네 엄마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나였단다.”송재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출생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거죠?”도정원도 놀란 표정인 것을 보아 처음 알게 된 사실인 것 같았다.도경욱은 다소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전부 사실이란다. 난 지원이를 단 한 번도 강요한 적 없었어. 우리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어. 하지만 그때는 이런 추문을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었지.”송재이는 마음이 복잡했다.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운 감정은 처음이었다.그녀는 이렇게나 갑작스러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아빠, 그럼 대체 왜 일찍 말씀해 주지 않으신 거예요? 왜 그동안 숨기고 계셨던 거예요?”도경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송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4화 마지막 만남

    박정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소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박윤찬을 보았다.“그때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어. 아주 똑똑하고 예쁘고 착한 사람이었지. 나한테 아주 특별한 사람이기도 했어. 하지만 어머니가... 어머니가 우리 사이를 반대하셨어.”박윤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어머니가 왜 반대하셨는데? 어머니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실 분이 아니잖아.”박정후가 대답했다.“처음엔 나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때의 난 분명 어머니가 그 여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 또 어쩌면 내가 사랑놀이에 푹 빠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시는 건 줄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어.”박윤찬은 초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어머니가 아무 이유도 없이 반대하실 분은 아니야.”박정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선 슬픔이 느껴졌다.“그 여자는 성이 임 씨였어. 임씨 가문은 우리 성씨 가문과 오래전부터 원한이 있었지. 이 원한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거라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어. 두 가문의 후대에도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어.”박윤찬은 놀란 모습이었다.“난 임씨 가문에 대해 들어본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어머니도 나한테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었다고.”박정후가 말했다.“어머니는 이 원한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길 바라셨던 거야. 하지만 사실상 잊히지 않았지. 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지난 세대에서도 심각한 충돌이 있었어. 두 가문은 사업 경쟁을 벌이다가 더 틀어지게 되었지.”박윤찬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업 경쟁이라니?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그래, 하지만 지난번 경쟁에서 임씨 가문은 파산당하게 되었지. 그 가문 어르신도 결국 그때 세상을 뜨게 되신 거야. 임씨 가문에서는 우리 성씨 가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벌여 그런 비극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박윤찬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러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3화 떠난 이유

    박정후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더니 생각에 잠겨 버렸다.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제가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 건 저와 윤찬이 사이에... 오해가 있기 때문이에요. 저랑 윤찬이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전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윤찬이 곁을 떠났죠. 하지만 혈연관계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거잖아요.”묵묵히 박정후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송재이는 박정후의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고스란히 느꼈다.송재이가 말했다.“가족 사이에 확실히 갈등이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서로 항상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죠.”설영준은 진지한 얼굴로 박정후를 보았다.“정후 씨는 정의를 위해, 동생을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했으니 윤찬 씨도 이해해줄 거예요.”장주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정후 씨가 한 모든 것을 박윤찬 씨가 알게 된다면 분명 아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박정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확고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돌아온 것도 윤찬이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윤찬이와 화해할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네요.”그들을 도와준 정체 모를 인물은 바로 박정후였다.그는 마음이 너무도 복잡했다.이번 일로 동생과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다.박정후가 말했다.“관계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전 기다릴 수 있어요. 윤찬이가 저한테 기회만 준다면 형으로서 책임을 다할 거예요.”그는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윤찬과의 거리감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꼭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전 반드시 윤찬이한테 찾아가야 해요.”박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윤찬이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하든 말든 상관없이 알려주고 싶어요. 전 단 한순간도 윤찬이를 포기한 적 없다고 말이에요.”송재이는 박정후의 손을 잡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2화 그의 정체

    설영준과 송재이는 서도재의 비웃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본 뒤 도망칠 길이나 반격할 기회가 없는지 파악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조용히 숨어서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다.설영준은 차갑게 피식 웃었다.“서도재, 이러면 네가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저지른 범죄는 이미 전부 드러났어. 밖엔 경찰들이 깔려 있다고.”서도재의 웃음이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졌지만 빠르게 다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경찰이 깔려 있다고? 넌 내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거로 보이나 봐? 이 아지트는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거든. 너희들은 도망칠 수 없어.”송재이는 설영준이 방 한구석에 있는 창문에 힐끗 본 것을 발견하곤 바로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그녀는 일부러 서도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그럼 우린 여기서 그쪽과 시간을 끌 수밖에 없겠네요. 그쪽 아지트가 먼저 무너질지 아니면 밖에 경찰들이 먼저 쓰러지게 될지 한 번 지켜보자고요.”서도재는 손을 들어 올리며 부하들에게 준비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 방 안의 불빛이 꺼지더니 어둠이 내려앉았다.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확성기로 말했다.“꼼짝 마!”설영준과 송재이는 어둠 속에서 빠르게 창문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설영준은 있는 힘껏 발로 창문을 깨버렸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바깥엔 이미 에어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서도재는 갑자기 어두워진 주위에 당황스러워하면서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불빛이 다시 켜졌을 땐 설영준과 송재이는 이미 사라졌다.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쫓아가! 반드시 두 사람 내 앞에 잡아 와!”그러나 서도재의 부하들이 아지트에서 나가자마자 이미 밖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알고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미리 익명으로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경찰은 확성기로 말했다.“안에 있는 사람 모두 들으세요. 당신들은 포위되었습니다. 당장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세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