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들이 대부분 세대 가문 자녀이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 이름을 들은 적이 한두 번씩은 있었다. “우리 아빠한테서 이단호 씨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아주 높게 평가했어요.”신주리의 신분이 이미 들통났기에 숨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자 육경서도 이내 입을 말했다.“맞아요. 우리 아빠도 얘기한 적이 있어요.”그러자 신주리는 고개를 돌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자식이 지금 자기 아빠가 더 잘났다고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누구 아빠 인맥이 더 넓어 이 사람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는지 겨뤄보겠다는 거야?’“네 아빠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얘기해 봐.”신주리는 그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는 표정으로 흘겨보자 육경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 머뭇거리더니 이내 예쁜 반달눈으로 노려봤다.‘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에 왜 죽자고 덤벼들어?’이단호는 연예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기 전에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방식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육경서는 그저 신주리를 곁들어 말했을 뿐이란 걸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단호는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있었고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4대 재벌 중의 우두머리인 육씨 가문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럽게 웃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곤경에 빠진 육경서를 구원해 줬다.“두 분 너무 과찬이세요. 이제부터 한동안 함께 지내야 할 테니 서로 천천히 알아가죠.”이단호는 비굴하지도 과장되지도 않게 말했고 두 사람의 말이 인사치레라는 것을 안다는 뜻을 내비쳤고 육씨 가문과 신씨 가문 같은 재벌가에서 자기를 거론할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고 생각했다.신주리는 뭐라고 말하려다 끝내는 입을 다물었고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노려봤다. 자기는 분명히 진실을 말한 것인데 육경서가 끼어드는 바람에 이단호가 인사치레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이게 바로 이 자식의 목적인가?’육경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미영은 고개를 돌려 서진태를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서 선생님은 이번에 그곳에 가면 뭐 하실 건가요? 즉 우리의 미션은 무엇인가요?”그는 이 프로가 여행 프로이기에 게스트들은 여행하고 자기는 자기 할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말해 줄 마음이 없었다. “우리가 팀 단위로 활동하기에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셔야죠. 필경 저희가 서 선생님을 친구 해서 놀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강미영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말투는 더없이 강경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했기에 제작진의 룰에 따라 그를 협조할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지만 전제조건은 반드시 안전이 보장되고 룰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아무것도 모른 채 멋모르고 따라나섰다가 사고라도 생기는 날이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었다.특히 전번 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로부터 더욱 신중해야 했다.하지만 서진태는 여전히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제 개인 미션은 제가 알아서 완수할 테니 나머지 분들은 캠핑이든 등산이든 하면서 사진 찍으면서 즐기면 돼요.”“저는 등산 같은 거에 전혀 흥미가 없어요. 미션이 없다면 저희는 산기슭에서 서 선생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 경서야. 산기슭에 민박이 있나 알아보고 있으면 예약해. 아니면 부근에 캠핑장이 있으면 거기서 묵어도 돼.”강미영의 싸늘한 말투에 육경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갑자기 왜 충돌이 생겼지?’’육경서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소지석이 자발적으로 나서며 말했다.“이건 내가 할게. 내가 이런 걸 잘해.’육경서: ‘똑같이 매니저 덕분에 살아가는 폐인으로서 형이 잘할 수 있다고요?’소지석 본인은 당연히 이런 것에 익숙지 않지만 매니저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기에 당장에서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강미영 씨 왜 저래요? 이번 스케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서 선생님께 화풀이하는 거예요?”“전 처음부터 강미영 씨가 별로였어요. 말투는 부드러운데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해요.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2부가 1부보다 훨씬 힘들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팀이 와해될 수도 있었다. 조피디의 얼굴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파디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지 않을까요? 피디님이 그러셨잖아요. 모순이 있어야만 프로그램 볼거리가 있다고요?”그러자 피디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1부 때와 지금이 달라. 그리고 원칙적인 모순과 주관적인 모순이 같아?”1부 때는 비록 게스트들이 불만이 있긴 했어도 협조를 잘해줬다. 하지만 1부 때 연달은 제작진의 실수때문에 안 그래도 할 말이 없는데 어떻게 감히 게스트끼리 모순이 생기게 한단 말인가?그것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모순을 심어준다면 이건 게스트에게 강제 하차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피디는 조연출과 말도 섞기 싫어 게스트들에게 직접 설명하기로했다.이 상황에서 서진태가 고집부리는 것을 피디가 방관하고만 있다면 강미영이 가버릴 수도 있다...피디는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그는 분위기 파악을 잘하고 모순을 잘 처리하는 인재가 게스트로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이단호가 오늘날의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그의 성격과 지혜와 갈라놓을 수 없기에 그는 두 사람의 모순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바로 발견하고 말했다.“미영 누님, 잠깐만요. 무슨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강미영이 의자에 심드렁하니 앉아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지석은 계속해 매니저와 통화를 이어갔고 서진태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듯 고집을 피웠다.“서 선생님, 서 선생님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목적이 산골에 들어가 약초를 채집하고 시청자에게 간단한 야외생존지식을 보급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죠?”“맞아요. 때문에 이 일은 제 개인적인 일이기에 여러분과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요?”“그렇다면 여러분은 이곳에 뭐하러 왔을 것 같아요?”“...”그러자 서진태는 흠칫하면서 1부 때 골동품 시장에 갔을 때 상황이 기억났다.비록 그의 목적과 무관하지만 주상현이 그
제작팀에서 그에게 미션을 전달할 때 그는 자기 혼자만의 미션인 줄로 알았다.왜냐하면 게스트들이 재벌 집 자녀들이라 등산도 힘들 텐데 약초 채집은 더욱 말할 나위 없을 것이고 자기는 꼭 해야할 연구가 있기에 그걸 하는 한편 제작팀이 준 미션을 완수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게스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비록 서진태가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내 문제점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이번 여행지의 조건이 아주 열악해요. 저는 여러분이 걱정되고 여러분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어요. 어쨌든 제가 사과할게요.”“괜찮아요. 저희도 관심이 있어 참여한 것이니 부담 같은 건 없어요.”서진태의 설명을 듣고 이단호가 조용히 말했다. 이단호가 이 정도로 밑밥을 깔아줬지만 서진태는 전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있더니 이내 작은 소리로 말했다.“사실 이분들은 관심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에요.”그때 당시 다들 속아 온 것을 눈치채고 촬영을 거부하자 강미영이 게스트를 달래기 위해 이 방법을 제안했다.하지만 서진태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강미영과 모든 사람을 포기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서진태는 자기가 참 몹쓸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낮아 이단호는 못 들었는지 되물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그러자 서진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다들 관심이 있다고 하니 한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큰 영광이네요. 제가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설명할게요.”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시간이었고 높고 푸른 하늘과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 그리고 울창한 원시 산림이 한눈에 들어오자 도시 생활에 갑갑했던 마음이 순간 뻥 뚫리는 듯 상쾌했다. 제작팀은 반 시간 전에 도착해 산기슭에 공지를 찾아 미리 텐트를 쳐놓고 각종 캠핑 도구와 식재료를 질서정연하게 배열해놓았다. 다들 그걸 보는 순간 진짜로 가을 소풍이라도 온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댓글 창에서 와하는
산 중턱에 무성한 야생초 집거지가 있었고 그중 한 가지 약초가 바로 서진태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인공양식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서진태가 오늘 이곳으로 온 목적은 각종 데이터를 다시 확인해 양식이 안 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이고 시청자에게 기본적인 약초 지식과 야외에서 다쳤을 때 응급처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겸사겸사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런 일은 연구진에게 맡겨야지 혼자서 뭘 할 수 있어?”“방금 피디가 연구진이 몇 번을 시도했지만 성공 못 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여전히 연구 중이다잖아요.”“그런데 혼자서 뭘 할 수 있냐고요?”“자기만의 소견으로 판단하지 말아요. 서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알기나 해요?”“서씨 가문은 역사가 깊은 한의 세가이고 조상이 유명한 어의래요. 하여 서씨 가문은 한의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제작팀이 미션을 말해주고 나서야 이번 미션이 서진태 한 사람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게스트들의 미션은 겸사겸사 진행하면 그만이었다.피디는 게스트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덧붙여 설명했다.제작팀이 미션을 공개한 것은 시청자에게 약초 양식이 아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고 만일 약초에 대해 요해가 깊은 관계자가 있으면 서씨 가문에 연락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필경 고수는 민간에 숨어있기 마련이니까.약초 양식 전문가가 비록 프로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고 힘을 합쳐 난제를 해결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서진태는 제작팀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라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프로라면 다들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민간인이 해결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게스트들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려 했던 것이 미안했을 뿐이었다. “이 약초가 독초에요?”강미영이 자료 문서를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고 서진태는 그런
“관계자가 아니라서 한의학을 잘 알지 못해 오해하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서진태가 낮은 소리로 담담하게 말했지만 반격하는 뜻이 다분했다. 아무것도 모르면 소리를 내지 말라는 예의 바른 표현이었다.소지석은 그 말에 화내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저야 당연히 한의학에 대해 잘 모르죠. 하지만 독의라고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이런 약초에 독성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는 게 훨씬 쉬울 거예요.”그러자 서진태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독의요?”소지석이 물었다.“도씨 가문이라고 혹시 알아요?”소지석의 말에 서진태가 흠칫 놀라더니 머릿속으로 세상으로 숨어버린 도씨 가문을 떠올렸다. 사실 두 가문은 같은 맥락에서 파생한 한의 가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날로 장대해짐에 따라 오해가 생겨 서로 거래하지 않게 된 것이다...비록 서씨 가문이 한의대가로 유명하지만 도씨 가문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서진태는 아직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지 못했지만 소지석이 도씨 가문을 거론하자 이내 경외심을 보였다. “도씨 가문이 세상으로 숨어버린 뒤 거의 외부와 연락을 안 하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접촉하기 어려워요.”그는 비록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전에 서울에서 강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결혼식을 올릴 때 도씨 가문도 참석했는데 모르고 계셨나 봐요?”소지석이 계속해 말하자 서진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뭐라고요? 정말인가요?”서씨 가문같이 유서가 깊은 가문은 뼛속에 오만함이 각인되었고 항상 받들려 살기만 했기에 절대 자발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육씨 가문, 강씨 가문과 별로 거래가 없었기에 결혼식에 아무도 파견하지 않았고 심지어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결혼식이 열릴 당시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작은 일로 세간을 들썩이게 한다고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소지석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진태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놀란
고기 굽는 사람이라면 이단호와 한지원을 가리키는 것인가?두 사람이 동시에 육경서를 바라보고 다시 서로 마주 보더니 옆으로 두발짝 옮겨 섰다.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댓글 창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두 사람이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이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안 돼요. 한지원은 주 선생님 짝이에요.”“육경서가 예의 없다고 느낀 건 저뿐인가요?”“네. 님 혼자만 그렇게 느꼈어요. 기회가 생긴 틈을 타 고백하는 거잖아요. 당사자들도 이해하는데 님이 왜 태클을 걸어요?”“...”한참 동안 떠들어대는 사이에 바비큐가 익긴 했지만 형태가 그야말로 기괴하기에 그지없었다.듬성듬성 탄 것도 있고 전부 타버린 것도 있었으며 양념이 고루 발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유독 익지 않은 것은 없었다. 적어도 먹고 배탈 날 일은 없을 것이다...육경서는 그중에서 겉모습이 제일 괜찮은 걸로 한 꼬챙이 집어서는 신주리 앞에 헌정하듯 받치며 말했다.“주리야. 이거 먹어. 이게 너의 이미지와 어울려.”이단호는 눈가를 씰룩이더니 한 무더기 바비큐 중에서 한 꼬챙이를 뽑아 한지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자. 우리도 이미지 관리해 보죠.”그러자 한지원은 깔깔 웃으며 대범하게 받았다. 점심을 먹은 뒤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나서 간편한 등산복과 배낭 하나만 메고 등산하기 시작했다그때에야 그들은 준비 해온 물품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처음에는 웃고 떠들면서 씩씩하게 톺아 오르더니 점차 체력이 고갈되면서 누구도 말이 없었다. 등산 부대가 차츰 세 개 조로 나뉘어졌다.한창 젊은 나이인 육경서는 이 정도로 거뜬했기에 자연히 맨 앞자리를 차지했고 신주리가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면서 두 사람이 마치 겨루기라도 하는 듯싶었다. 당연히 그건 신주리 혼자만의 생각이고 육경서는 단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옆에서 맴돌며 자기 존재를 뽐내는 것이었다...“물 한 모금 마셔.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 좀 쉬어서 가.”육경서는 뚜껑을
강미영이 몇 번이고 서진태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미션을 수행하라고 말했지만 그때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분이 안 지나서 또 물었다. 그렇게 몇 번 물으니 강미영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설명하기도 귀찮았다.“아직요. 노느라고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나 봐요.”서진태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핸드폰 한 번 봐봐요. 확인 못 했을지도 모르잖아요.”그러자 소지석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산속이라 신호가 안 잡힐지도 몰라요. 목적지에 가서 확인해 보죠.”서진태는 소지석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했다.“그럼 빨리 가요.”소지석과 강미영은 아무 말 없이 굳어있었다.댓글 창에서 아우성이 터졌다.“서 선생님의 아우라가 다 사라졌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안 되나요?”“서 선생님이 오만하다는 말 철회할게요. 아무리 못해도 회사 대표인데 품위를 지키죠?”“혹시 말을 걸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저러는 거 아닐까요?”“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서 선생님 눈에 기대가 가득 차 있어요.”“1부 때 워커홀릭은 주 선생님이었는데 그 계보를 서 선생님이 이었네요.”“...”세 사람이 굳어있을 때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 살려요. 제발 좀 천천히 가요. 이러다 제가 낙오될 것 같아요. 저 이대로 미션 포기하면 안 돼요?”맨 끝에 있던 사람은 한지원과 이단호였다.정확히 말하면 한지원뿐이었지만 이단호가 여자 혼자 두기에 미안해 신사답게 그녀를 동반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단호는 속아서 왔다는 사람들이 전혀 이성을 도울 생각이 없고 미션 생각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공인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속아온 것도 아니었다. 한지원은 이단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낙오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사실 한지원은 직업상 대부분 집에 박혀서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고 앉을 수 있는 한 서 있지 않았고 누울 수 있는 한 앉지 않았기에 등산은 그녀로 놓고 말하면 치명적이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