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영이 몇 번이고 서진태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미션을 수행하라고 말했지만 그때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분이 안 지나서 또 물었다. 그렇게 몇 번 물으니 강미영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설명하기도 귀찮았다.“아직요. 노느라고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나 봐요.”서진태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핸드폰 한 번 봐봐요. 확인 못 했을지도 모르잖아요.”그러자 소지석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산속이라 신호가 안 잡힐지도 몰라요. 목적지에 가서 확인해 보죠.”서진태는 소지석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했다.“그럼 빨리 가요.”소지석과 강미영은 아무 말 없이 굳어있었다.댓글 창에서 아우성이 터졌다.“서 선생님의 아우라가 다 사라졌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안 되나요?”“서 선생님이 오만하다는 말 철회할게요. 아무리 못해도 회사 대표인데 품위를 지키죠?”“혹시 말을 걸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저러는 거 아닐까요?”“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서 선생님 눈에 기대가 가득 차 있어요.”“1부 때 워커홀릭은 주 선생님이었는데 그 계보를 서 선생님이 이었네요.”“...”세 사람이 굳어있을 때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 살려요. 제발 좀 천천히 가요. 이러다 제가 낙오될 것 같아요. 저 이대로 미션 포기하면 안 돼요?”맨 끝에 있던 사람은 한지원과 이단호였다.정확히 말하면 한지원뿐이었지만 이단호가 여자 혼자 두기에 미안해 신사답게 그녀를 동반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단호는 속아서 왔다는 사람들이 전혀 이성을 도울 생각이 없고 미션 생각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공인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속아온 것도 아니었다. 한지원은 이단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낙오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사실 한지원은 직업상 대부분 집에 박혀서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고 앉을 수 있는 한 서 있지 않았고 누울 수 있는 한 앉지 않았기에 등산은 그녀로 놓고 말하면 치명적이
‘아군한테 총구를 겨눴어.’한지원은 확실히 특별한 인격 매력이 있었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며 저도 모르게 다가가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전의 주상현도 그렇고 지금의 이단호도 그러했다. 아무리 격식 차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지원과 함께 있으면 어느새 긴장이 풀렸고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나이와 걸맞지 않은 유쾌함과 활력이 있어 20대 아가씨처럼 흡인력이 있었다...잠깐 대화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많이 친숙해졌다.“봐요. 이게 바로 정확한 연애 방식이에요.”“유일하게 연애하기 위해 출연한 두 사람이에요.”“제가 일방적으로 선포하는데 이 두 사람 맺어질 것 같아요.”“주 선생님이 골동품 보수 작업을 하다 이걸 보고 울 것 같아요. 하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리를 빼앗겨버렸어요.”“...”30분 뒤 그들은 연이어 정상에 도착했고 제작팀은 이번에 인간성을 여실히 발양했다.정상에 도착하니 이미 텐트가 쳐져 있었고 각종 램프가 장식되어 있어 원시 산림에서 갑자기 여행지로 공간 이동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나는 그래도 도시 생활이 좋아. 피톤치드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실컷 마시라고 해. 오늘 원 없이 마셨으니 3년 내에는 절대 다시 안 올 거야.”신주리가 모닥불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육경서는 가방을 내려놓고 신주리 곁으로 느릿느릿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제일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 내가 같이 가줄게.”제작팀이 각자에게 목적지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눕고 싶어.”신주리는 기진맥진해 의자에 드러누우며 말하자 육경서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내가 돈 벌어줄 테니까 넌 집에서 놀고먹기만 하면 돼.”그 말에 신주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너의 그 소꿉친구가 내 일거리를 많이 빼앗아 갔어. 그건 네가 배상해.”그러자 댓글 창에서 또 한 번 난리가 일
역시 이 화제가 나오자 육경서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불쾌한 듯 말했다.“다 지나간 일을 왜 또 꺼내? 그리고 유미나가 한 일을 왜 내가 배상해야 해?”“유미나가 네 이름을 빌었잖아. 다들 유미나가 네 친구인 줄 알았단 말이야.”신주리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육경서는 망연자실한 듯 말했다.“그런데 난 유미나 친구가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나도 모르는 일이고...”“네가 해명하지 않았잖아.”신주리가 계속해 말하자 육경서는 시무룩해 앉아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그 당시 육경서는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뒤로 바로 신주리와 함께 예능에 참가하다 보니 유미나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하지만 이건 신주리한테 말할 수 없는 비밀이기에 육경서는 그저 억울한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한참 뒤 울적한 목소리로 호소했다.“이건 책임 전가야.”그러자 신주리는 당당하게 말했다.“그래. 맞아.”육경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계약금을 배상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빼앗겼다는 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단 뜻이야. 하지만 이 일 때문에 내가 트라우마가 생겼으니까 돈으로 배상해 줘. 날 몇 달 동안만 먹여 살려. 하반기에는 일 안 할래.”신주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 육경서가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거절했다.“안 돼. 이건 내가 배상할 바가 아니야.”신주리가 눈이 휘둥그레 그를 바라보자 육경서가 계속해 말했다.“하지만 넌 나의 여자 친구니까 내가 먹여 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반기만이 아니라 나머지 인생까지, 다음 생까지 내가 책임질 수 있어.”신주리는 흠칫 놀라면서 갑자기 심박수가 빨라졌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신주리는 이제야 육경서의 진정한 여자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이제부터 닥치는 대로 일할게. 남자 조연 2, 3, 4, 5, 6이라도 할 수 있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수 있어. 정 안 되면 채널을 개설해서 라이브 방송을 할 수도 있어. 이 얼굴로 라이브 커머스해도 잘할 것 같아.”연예계 탑인 육경서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신주리와 반대로 육경서는 서운해하는 것이 확연했다.라이브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못내 아쉬워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하필 이때 도착할 건 뭐야. 시간을 참 잘 선택했어.”“아아아아, 짜증 나서 미칠 것 같아. 주리가 아직 대답을 안 했어.”“맞아요.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두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경서 오빠가 방금 주리한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혹시 유미나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고 헤어진 거 아닐까요?”“퉤퉤퉤. 유미나 그 불여시가 우리 주리와 경서 오빠를 갈라놓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순이 있었던 건 확실해요.”“그러면 키스신 때문일까요? 주리가 키스신을 찍었다고 경서 오빠가 불쾌한 것 아닐까요?”“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배우가 이런 사소한 일로 헤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죠.”“ㅜㅜ, 경서 오빠의 진심이 날 감동시켰어. 그런데 신주리는 전혀 미동이 없던데 혹시 강심장일까요?”“...”육경서 말로 판단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게 분명했기에 팬들이 오늘 밤 잠을 이루기는 글렀다. ‘왠지 1부 때와 느낌이 달랐어.’‘이래서 주리의 태도가 뜨뜻미지근했고 거리를 둔 거였어.’ ‘이래서 경서 오빠가 깐죽대지 않고 갑자기 진지해졌어...’그들은 현장에 없었기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몰랐지만 강미영은 신주리의 표정을 보더니 바로 분위기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오래 기다렸어?”“아니요. 방금 도착했어요.”강미영이 묻자 신주리가 이내 답했다. 그러자 울적해 있던 육경서가 신주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곁들어 말했다.“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지원 누나는요?”“금방 도착할 거야. 1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육경서는 시큰둥하게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강미영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마주하자 아무 말 잔치를 벌였다.“지원 누나의 스피드로
소지석의 굳어졌던 얼굴이 다소 밝아졌고 서진태도 환한 얼굴로 신주리를 바라봤다. 서진태가 이토록 조급해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이 일 때문에 이곳을 몇 번이고 다녀갔고 연구소의 데이터와 결합해 관찰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예능프로에 출연하면 동업자라도 만날 줄 알았는데 연애 예능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일을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 또 이런 반전을 겪게 되니 흥분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어이가 없네. 내가 찜한 커플은 전부 깨졌어. 내가 봤을 때는 남자들이 문제야. 저것 봐. 신주리만 바라보고 있잖아.”“워커홀릭이라 그래요. 주상현과 같은 스타일이잖아요.”“하하하하하, 소지석 씨 입이 귀에 걸렸어. 자제 좀 해요.”“소지석 씨가 제일 즐거워 보여.”“난 전혀 기쁘지가 않아요. 커플한테 접근 금지에요. 그들이 속심말하는 걸 듣고 싶어요.”“저도요. 방금 전의 화제를 이어 나가요. 미안하지만 소지석 씨는 잠깐 비켜주세요.”“...”댓글 창의 희로애락과 상관없이 새로운 커플이 생성된 건 사실이었다. 한지원과 이단호가 아직도 뒤에서 목숨 걸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소지석과 강미영은 귀찮게 구는 사람이 없어 가슴이 다 후련했고 육경서와 신주리는 서진태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할 수 없이 묵묵히 핸드폰을 꺼냈다...신호가 한참이나 갔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목소리를 들으니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주리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시계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자고 있었어? 지금 몇 시야?”도희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말도 마.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어. ‘레드뷰티’두 번째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할아버지한테 불려 왔어. 이 기회에 잠이나 실컷 자야겠어.”“본가로 들어갔어?”신주리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어. 이제부터 나는 날개가 없는 새가 되어버렸어...”“잠깐만. 새 얘기는 그만하고 이모가 너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왜 확
“들었어요. 강유리 액세사리 회사 직원인가 봐요.”“...”서진태는 통화 내용 중에 아무런 소득이 없자 미간을 찌푸렸지만 상대가 누군지 궁금한지 신주리에게 물었다.“방금 통화한 여자분은 누구야? 목소리를 들어서는 젊은 아가씨인 것 같던데 믿을 수 있어?”그 말에 신주리는 눈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도씨 가문 아가씨이자 미래 도씨 가문 상속자예요. 제가 충고하는데 누굴 의심해도 얘를 의심해서는 안 돼요. 밴댕이 소갈딱지라 그때 가서...”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 벨소리가 다시 울렸고 신주리는 액정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신주리, 너 감히 나를 험담해? 누가 밴댕이 소갈딱지야? 다시 한번 헛소리하면 널 독사시킬 수도 있어.”이래도 밴댕이 소갈딱지가 아니란 말인가?이젠 도씨 가문 아가씨가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아버렸다. “스피커 폰으로 하지 마. 아니면 제의 안 해줄 거야.”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포효가 낮아지더니 이를 갈며 위협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주리는 조금 더 장난치고 싶어 머뭇거렸지만 서진태가 갑자기 큰 손을 뻗어 그녀 핸드폰의 스피커를 꺼버렸다.신주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서진태의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서진태도 자기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구로부터 협박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라이브를 보고 있던 도희도 깜짝 놀라면서 저 아저씨의 성격이 1부 때와 판이하다고 생각했다.‘혹시 채널 잘못 선택한 거 아니야?하지만 어떻든 간에 이미지 관리에 성공했다. 서진태의 간절한 표정에 도희는 더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모가 보내온 걸 방금 봤어. 우리 약방에 이 약초가 수두룩한 것으로 봐서는 양식하는 전문업체가 있는 것 같아.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물어볼게.”“알았어. 내가 그대로 전달할게.”신주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리고 방송에서 나한테 전화할 때 미리 말해주길 바라. 나도 이미지란 게 있단 말이야. 게다가 스피커 폰으로 하면 어
통화를 마치고 나서 신주리는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했다.“좋은 소식은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한가 봐요. 그런데 확실치 않아서 확인해 봐야 한대요.”서진태는 지나치게 엄숙한 표정으로 좋은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했다.“나쁜 소식은 확인되어도 도씨 가문에서 알려주기 싫다는 거지?”그러자 신주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왜 도씨 가문을 그렇게 생각해요? 방법이 있는데 왜 안 알려준다고 생각해요?”그 말에 서진태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댓글 창에서 대신 대답했다.“한의학 전공자로서 방송보면서 부끄럽네요. 한의사는 독의를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어요. 학교에서 수업받을 때도 교수님이 말끝마다 독의를 비난하곤 했어요. 서로 대립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니 자연히 그가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죠.”“주리 말뜻을 들어서는 친구가 안 도와주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서 선생님이 이상한 것 같아요.”“솔직히 말하면 저도 아는 한의사가 있는데 재능이 있긴 한데 엄청나게 오만해요.”“한의계 거장인 서씨 가문은 그럼 더욱 오만하겠네요.”“맞아요. 하필 이럴 때 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난처하긴 하겠네요.”“서로 원한이 있는 사이이니 서 선생님이 의심하는 것도 이해는 가요.”“서로 원한이 있는 게 서 선생님 탓은 아니잖아요.”“...”두 사람의 대화에 댓글 창이 길 가던 사람과 서진태의 최근 생성된 팬들로 양극화를 이뤘다. 한쪽은 객관 사실을 서술했고 다른 한쪽은 서진태를 지켜주기에 바빴다.바로 이때 서진태가 입을 열었다.“독의와 한의는 같은 맥락에서 파생된 것이 사실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에 차이가 생겼고 그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만일 도씨 가문에서 진짜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면 내가 한의학계를 대표해 그들을 받아줄 수 있어.”완곡한 말투이긴 하지만 양측이 대립 상태이기에 상대가 도와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서씨 가문은 확실히 한의업계와 한의 협회에서 중요한 역
“서 선생님이 사과했는데 이렇게 빈정댈 것까진 없잖아요?”“맞아요. 서 선생님이 뭘 잘못했어요? 얕잡아본다고 뭐라 하고 받아준다고 해도 뭐라 하고.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위층의 한의학 학생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주면 안 돼요?”“이게 사과인가요?”“어디서 나오는 우월감인지 모르겠지만 미영 언니가 한 방 잘 날렸어. 주리와 육경서는 잘 배워둬.”“맞아요. 진심만이 영원한 필살기예요. 진심으로 빈정대는 것 또한 필살기라고 할 수 있죠.”서진태는 입을 벌리고 설명하려 했다.“제가...”“그래서 네가 말한 나쁜 소식은 뭐야? 그만 뜸 들이고 서 선생님이 안심할 수 있도록 빨리 말해 줘. 아니면 서 선생님이 줄곧 마음속으로 원치 않은 양보를 하고 있잖아.”소지석이 좋은 마음으로 주리에게 충고하면서 서진태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얼핏 들어서는 호의 같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신주리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면서 역시 이모가 육경서보다 훨씬 직설적이라고 생각했다.너무 통쾌했다.이모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 앞에서는 융통성 있고 원활하게 인간관계를 처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강미영의 말을 빌린다면 모든 사람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녀가 여태까지 권력 중심에 서려고 노력한 이유가 바로 솔직하게 살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이다.소지석 말에 신주리가 바로 이실직고했다.“나쁜 소식은 도씨 가문 아가씨가 할아버지한테 물어보고 내일 저녁 늦게야 답장 줄 수 있대요. 단지 제가 미션을 쉽게 완수하지 못하게 하려고 복수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이러고 보니 이 계집애가 밴댕이 소갈딱지가 맞긴 하네. 어린애가 무슨 복수심이 그렇게 강해. 돌아가면 제대로 교육해야겠어.”소지석이 지나가는 말로 말했지만 신주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 되물었다.“지석 오빠도 도희를 알아요?”그녀는 소지석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그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