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은 어떻게 해야 이 분노를 누를 수 있을지 고민했다.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뇌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한 번만 물을게요. 제 아버지, 어디로 빼돌렸어요.”나태범은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안지영을 보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안지영을 쏘아보며 물었다.“네가 감히 이 할애비를 협박하는 거냐?”“할애비인 건 아시네요? 이제 늙어서 노망이 난 거예요?”“...”이윽고 장선명과 집사가 뒤따라 들어왔다.안지영이 나태범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두 사람 모두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나태범은 그대로 멍해졌다.“이 썩은 년이...”늙어서 노망이 났다고?웃어른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나태범은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왜요? 제 아버지를 그렇게 데려가 놓고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요? 좋은 말이 듣고 싶으세요? 꿈도 크셔라.”“...”“...”“...”안지영의 반응은 나태범이 생각한 반응이랑 확실히 달랐다.나태범의 주름 가득한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있었다.이성을 잃은 안지영은 폭주 기관차처럼 말을 뱉어냈다.안지영은 나태범을 마주하고 화를 참을 수 없었다.지금 당장 안진섭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나태범이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나태범은 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보면서 화가 폭발했다.“네 아버지가 내 손에 있는 걸 알면서도 이런 태도로 나온다는 거야?”나태웅은 아까 나태범에게 안지영의 태도가 예상과 다르다고 얘기해 주었다.하지만 나태범은 그때까지만 해도 안진섭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지영이 세게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범은 그제야 그 생각이 틀린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정 교육이 덜된 년...’안진섭이 나태범의 손에 있다는 말을 들은 안지영은 수그러들지 않고 더욱 화가 났다.“그게 뭐 어때서요? 그런 짓을 벌이고도 내가 좋은 태도로 나오길 바라는 거예요?”안지영의 흉포한 태도에 나태범과 집사 모두 놀랐다.나태범은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과 안지영의 결
집사는 나태범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듣고 이마를 짚었다.나태웅은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하지만 지금 이 시각, 나태웅은 나태범이 본인의 낯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안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나태범의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도 헷갈렸다.나태범이 안진섭을 데려간 이유가 무엇인지는 대강 짐작했으나 그 말을 직접 들으니 화가 솟구쳐서 피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안지영은 차갑게 나태범을 보면서 물었다.“본인 아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으라고요?”“그래. 오늘부터 데이트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라는 거다.”나태범은 안지영 약혼자인 장선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얘기했다.장선명은 차갑게 나태범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은 가볍게 비웃으면서 말했다.“나태웅이랑 서로 알아가게 하려고 이런 수단을 써서 날 협박한 거예요?”“내가 무슨 수단을 쓰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결과지.”안지영의 말에 나태범은 그제야 수치심이라는 걸 안 사람처럼 대답했다.나태범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안지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태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안지영이 코웃음 쳤다.“이렇게보면 당신 아들인 나태웅은 정말 머저리가 틀림없어요.”“뭐라고?”안지영이 나태웅을 머저리라고 칭하자 나태범은 화가 나서 테이블을 엎을 뻔했다.나태웅이 머저리라니.그저 연애가 서툰 것일 뿐이지, 안지영이 말하는 것처럼 멍청한 머저리는 아니었다.“여자 하나 꼬시지 못해서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이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협박까지 하면서 말이에요. 연애 관련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안지영이 비웃으면서 얘기했다.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까치와 까마귀도 아니고, 자기 아들과 만나달라고 등 떠미는 격이니.나태웅은 정말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머저리가 틀림없다.하지만 나태범도 마찬가지다.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시시비비를 가릴 줄 모르다니. “쓸데없는 말을 걷어치워! 오늘 점심부
아까까지만 해도 안지영을 협박하던 나태범과 집사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장선명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아주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옆에서 안지영이 거들었다.“안 될 건 없죠. 세상에는 죽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은걸요.”안지영이 또박또박 얘기했다.아까까지만 해도 나태범이 안지영을 협박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장선명의 힘을 입은 안지영이 나태범을 협박하는 것이었다.나태범은 놀라서 집사를 보면서 물었다.“저, 저년이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네, 그런 것 같습니다.”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집사의 말을 들은 나태범은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히고 호흡도 가빠졌다.“안진섭이 내 손에 있는데, 지금 날 협박한 거야?”“네, 그렇습니다...”집사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나태범은 화가 나서 머리에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나태범이 안진섭을 데리고 있는 상황에 안지영이 이렇게 세게 나오다니.“나태웅이 머저리라고 했지?”“...”그 말을 들은 집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원래는 안지영을 협박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협박을 당한 나태범은 화가 나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안지영은 항상 나태범의 예상대로 행동해 주지 않는다.“이 자식, 도대체 왜 이런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나태범이 화를 냈다.안지영은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다.그야말로 미친 여자다!나태웅이 이런 여자를 좋아하게 되다니.그 말을 들은 집사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윽고 머리를 짜서 대답했다.“이런 험난한 연애를 좋아하는 거일 수도 있죠...”나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저런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장선명도 마찬가지야. 다들 이상하네.”“전에 둘째 도련님께서 안지영 씨를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요?”“그 자식, 거짓말이야. 아직도 안지영을 포기 못 하고 있잖아.”나태범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집사를 쳐다
안지영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나씨 가문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장선명의 방화로 사르르 녹았다.심지어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끌어안았다.“화가 좀 풀렸어?”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약간 굳어버린 채 장선명을 보면서 물었다.“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 맞아요?”“더 심한 것도 할 수 있는데.””더 심한 게 있어요?”안지영이 놀라서 장선명을 쳐다보았다.나씨 가문 저택의 대문에 방화를 한 것도 심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선명은 더 한 짓도 생각하고 있었다니...장선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지영의 코를 가볍게 튕겼다.“당연하지. 하지만 그건 네가 직접 해야 해.”“어떤 일인데요?”안지영은 약간 놀라긴 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도대체 어떤 일이야말로 심한 짓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보면서 가볍게 얘기했다.“나씨 가문의 사당을 태우는 거야.”안지영은 눈을 깜빡였다.“사, 사당을요?”“왜? 못 하겠어?”’“...”사당은 조상들을 모시는 곳이다.하지만 그동안 당한 억울함을 잘 생각해 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나태범이 먼저 안지영의 가족을 건드렸으니까 말이다.안진섭은 식물인간이 되었으니 모든 방면에 취약하다.그런데 나태범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안진섭을 데려갔다.안지영이 사당에 불을 지르는 건 나씨 가문 조상들이 나태범, 나태웅 같은 후손을 낳게 된 벌인 것이다.“그렇다면 나태범 씨는 화가 나서 정말 죽을 것 같아요.”안지영은 그 화면을 상상하면서 장선명에게 대답했다.“그 사람을 걱정하는 거야?”“그건 당연히 아니죠!”나씨 가문을 위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그 일이 불러올 파장이 걱정될 뿐이었다.하지만 나씨 가문도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데 안지영이 봐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장선명이 물었다.“할래? 안 할래?”안지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해야죠!”원래도 화가 잔뜩 나 있었는데 못 할 것도 없었다.대답을 마친 안지영이 머뭇거리면서
장선명의 말한 대로 나태웅과 결혼해야만 나씨 가문에서 그만둘 것이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이 안진섭에게 한 짓과 하주원과의 사건을 떠올리면 안지영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하지만 오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선명이 갑자기 말했다.“뭘요?”“오늘 네가 나태범을 욕한 일 말이야.”“...”그 말을 들으니 안지영은 순간 머리가 차가워졌다.아까는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막 뱉은 것이지만 지금에야 여태껏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정신이 들었다.아까의 안지영은 완전히 미친 여자였다.안지영은 걱정스레 장선명을 보면서 말했다.“아까 모습들... 정떨어졌죠? 그냥 잊어줘요...”그 말을 들은 장선명은 약간 놀란 듯했다. 하지만 이윽고 대답했다.“미안하지만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왜요?”“절대 안 잊을 건데?.”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절망한 듯 장선명을 보고 얘기했다.“그때는 화가 나서 그랬어요. 평소에는 그러지 않아요.”아까는 그저 나태범 때문에 화가 너무 나서 말을 내뱉은 것이다.하지만 장선명이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정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안지영은 약간 속상하고 후회되기도 했다.장선명은 고개를 푹 숙인 안지영의 모습을 보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제 와서 무슨 그런 걱정을 해.”“...”안지영은 이제 완전히 포기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안지영이 아무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선명이 웃음을 터뜨렸다.“너무 귀여워서 못 잊을 것 같아.”“네? 귀엽다고요? 거, 거짓말이죠?”안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누가 이런 미친 여자를 귀여워하겠는가.설마 장선명이 정말 본인을 좋아해서...?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좋아할 정도라서?‘콩깍지가 씐 건가...’“거짓말 아니야.”“...”“그래도 욕한 덕분에 나태범도 너를 싫어하게 됐을 거야.”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태범이 안지영을 싫어하게 된다면, 그
“...”혼자 가야 한다니.하지만 나태범은 나중에 안지영이 화가 나서 사당에서 난리를 피웠다더라는 말을 듣게 되어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다른 방법은 없어요?”“다른 방법은 이토록 위협적이지 못한데... 게다가 이런 일을 해야 나태범이 너를 더 싫어할 게 아니야?”위협적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그래, 지금은 뻔뻔해야 해.’자식의 연애에 끼어드는 아버지라니. 게다가 선을 넘는 짓까지 하다니.이렇게 꼴사나운 건 처음이다.“정말 나를 더 싫어할까요?”“이런 일을 하는데 좋아할 리가 없잖아.”“...”맞는 말이었다.그것 또한 안지영의 목표였다....나씨 가문.대문의 불은 껐지만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집사는 소방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돈을 넣어주고 사람들을 떠나보냈다.나태범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대문을 바라보았다.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늬로 대문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다 타버렸으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나태범은 화가 나서 연신 소리쳤다.“나태웅, 이 자식! 도대체 왜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나태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가 벌인 짓이 이런 후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대문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이 소문이 퍼진다면 나씨 가문의 체면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나태웅이 안지영을 좋아해서 장선명이 나씨 가문 대문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 소문으로 퍼진다면...집사는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보면서 얼른 사람을 시켜 수습하게 했다.이윽고 나태범 앞에 와서 얘기했다.“어르신, 일단은 화를 삭이십쇼. 몸 생각도 하셔야죠.”“내가 어떻게 화를 삭여야 하는데! 너 같으면 화가 안 나게 생겼냐?!”나태범은 눈앞의 이 모든 것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정말 피를 토해낼 것 같은 심정이었다.“얼른 두 자식들한테 연락해!”두 자식이라는 말에 집사는 약간 멍해서 나태범을 바라보며 물었다.“큰 도련님께도 연락을 해야하나요?”“해! 당장 돌아오라고 해. 내가 그놈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줄
나태웅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얼마나 심각한데?”“대문이 불에 탔어. 금방 불은 끈 것 같더라고.”나태현이 진중하게 얘기했다.그리고 나태웅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그딴 여자를 왜 좋아하게 되었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불을 질렀다고? 어떻게 됐는데?”“네가 직접 가보면 되잖아.”나태현은 화를 겨우 꾹 눌렀다.안지영은 정말 독한 여자였다.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판단을 내렸다.안지영은 곰의 탈을 쓴 여우라고 말이다.나태웅은 나태범이 안진섭을 데려간 일로 안지영이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안지영은 나태범이 생각하는 그런 연약한 여자가 아니니 나태범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결국에 무릎 꿇게 되어 있어도 모든 발악은 다 하고 죽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같이 나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차에서 내리자 멀리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대문이 보였다.검게 변한 대문을 보니 나씨 가문 저택이 마치 폐허가 된 것만 같았다.나씨 가문 저택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원래 대문을 보고 그 웅장함에 놀라곤 했다.하지만 그 대문은 현재 타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나태웅은 두 눈이 충혈되어서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그 이름을 곱씹는 나태웅은 당장이라도 안지영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나태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집사는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안지영이 나씨 가문에 와서 나태범을 욕했다는 것을 들은 나태현과 나태웅은 놀라서 움찔했다.“이런 여자는 가문에 들이면 안 돼.”나태범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나태범은 안지영 같은 여자를 집안에 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나태웅과 나태현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나태범은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타버린 대문을 보고 있었다.곱씹을수록 안지영을 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이런 성격도 안 좋고 품위도 없는 여자를 가문에 들이면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결국
집사는 그제야 나태웅과 나태현에게 문에 불을 지른 건 안지영이 아니라 장선명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집사가 말하려고 하자 나태범이 눈빛으로 집사를 말렸다.나태범을 오랫동안 모신 집사는 그 눈빛을 바로 접수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넌 안지영이랑 어울리지 않아. 반대다.”나태범이 얘기했다.그 짧은 시간에 나태범은 큰 충격을 받아 몸이 쇠약해졌다.그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집사가 바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안녕하십니까. 나씨 가문 저택입니다.”“...”“뭐요? 누가요?”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사가 놀라서 발칵 뒤집혔다.낯빛도 파리해졌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태범을 쳐다보았다.그들 사이에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왔다.나태현은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나태웅도 안지영이 사고를 쳤으리라 짐작했다.설마 천락 그룹을 공격한 건가?하지만 그렇다면 천락 그룹 대표인 두 사람한테 먼저 소식이 들어올텐데, 지금은 저택으로 연락이 왔으니...불안한 기운 속에서 집사가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진중한 표정으로 나태범을 보더니 또 나태현과 나태웅을 번갈아 보았다.나태범이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무슨 일이야.”집사의 표정을 보니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집사는 화가 나서 거의 쓰러질 것 같은 나태범을 보면서 입을 열지 못했다.“어르신, 그게...”“말해! 그년이 또 뭘 한 거야!”나태범이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분명 안지영이 이상한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나태웅은 주먹을 꽉 쥐고 당장이라도 안지영을 분질러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집사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안지영 씨가 용무산에 갔다고 합니다.”용무산이라는 단어를 들은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거기서 뭘...”나태웅이 말을 채 잇지 못했다.나태범과 나태현이 집사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집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대답했다.“CCTV에 찍힌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