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천옥은 그 냉랭함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다.“앞으로 날 찾아오지 마요.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 관계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요.”“...”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수년간 찾아 헤맨 아이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량천옥은 그동안 자기 딸을 찾은 순간을 떠올렸다.그 세월을 어떻게 되돌려줄지, 어떻게 사랑을 줄지 말이다.하지만 그 딸이 본인 곁에 있을 줄은, 게다가 본인이 이미 그 딸을 상처입혔을 줄은 전혀 몰랐다.량천옥은 자기 딸을 죽일 뻔했고, 자기 손녀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다.“날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 때문에 너를 상처입히지 마.”“당신 때문에 나를 상처 입힌다고요? 당신 때문에?”고은지의 말투가 차가워졌다.량천옥을 비웃는 듯한 말투가 섞였다.그 말에 량천옥은 죄책감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정말 너무 아팠다.“명심해요. 앞으로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고은지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량천옥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량천옥은 떠나려는 고은지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고은지가 량천옥의 곁을 지나갈 때, 량천옥은 고은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내가 미안해. 그렇게 할게. 그러면 나태현과의 거래를 그만둬.”“...”“나 때문이 아니라면 그만둬!”량천옥은 이 거래가 고은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고 있었다.량천옥과 나씨 가문의 원한은 결국 나태현이 알아냈다.나태현은 량천옥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은지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고은지는 나태현의 아이를 낳은 사람이니까 말이다.나씨 가문 사람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 량천옥은 잘 알았다.량천옥의 요구에 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량천옥의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난 그럴 자격이 없지만 아이를 위해 생각해 봐. 나태현은 희주가 네 딸인 걸 알면서도 이 거래를 진행했어. 얼마나 무서운 놈이야!”량천옥은 무서운 것도 없었고 두려워하
량천옥은 원래 고은지가 나태현을 떠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고은지가 무슨 대가를 원하든지 다 내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그럴 수가 없었다.나태현은 지신혜와 약혼했다. 그리고 량천옥에게 복수한 후 고은지를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그것이 나씨 가문의 복수 방식이다.고은지가 나태현의 지옥 같은 복수에 동참하게 된 것이 아이 때문이라면...량천옥은 두 눈을 감고 차갑게 얘기했다.“그 아이를 찾아내.”“네!”정록담이 대답했다.무조건 찾아야 한다.원래는 나태현의 딸이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아이는 고은지의 약점과도 같았다.“그리고 지씨 가문 사람들도 지켜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지씨 가문을 언급하는 량천옥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장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강성에서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그리고 앞뒤가 다르기로 유명한 가문은 바로 지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었다. 그런데 나씨 가문이 지씨 가문과 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지씨 가문에서 고은지와 나태현의 관계를 안다면 고은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정록담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를 전면적으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것도 고희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한 시간 후.량천옥은 천락 그룹에 도착했다.원래 어제 나태현을 만나기로 했지만 고은지를 먼저 만나고 싶어서 나태현을 만나지 않았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원인이 궁금했다.하지만 고은지는 량천옥이 모든 대가를 내놓아도 나태현과의 거래를 취소하지 않으려 한다.나태현을 찾으러 가는 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의 량천옥과 사뭇 달랐다.량천옥의 삶은 이미 피폐하지만 량천옥에게서는 차갑고 올곧은 힘이 느껴졌다.나태현 앞에 걸어온 량천옥이 차갑게 물었다.“아이, 어디에 보낸 거야.”물론 정록담을 시켜 알아보게 했지만 나태현에게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나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량천
자격?자격이라면 나태현과 량천옥 다 비슷했다.량천옥은 나태현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이번에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태현의 신경을 긁었다. 나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그 아이를 상처입힌 걸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비슷해.”고희주가 왜 아파트에서 자살하려고 했는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그런 힘든 환경이, 고희주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나태현은 질식할 듯한 시선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약간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복수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고은지는 건드리지 마. 아이와 은지를 만나게 해줘.”그 말투는 부탁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결연함이 있었다.마치 이게 마지막 양보이자 마지막 기회인 듯 말이다.나태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량천옥이 말을 이었다.“무슨 대가를 원하는지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량천옥은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 고은지가 남은 생을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태현도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지 않는가.만약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강성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량천옥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이건 량천옥의 결정에 걸린 일이다.나태현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량천옥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이다.그러니 량천옥은 그 기회를 나태현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런 기회 앞에서 나태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대가를 치러서 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나태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나태현이 일어나서 량천옥을 바라보면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이제야 얼마나 두려운가 봐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당신이 그녀를 괴롭혔을 때, 그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어?”나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 뿐이었다.
나태현 사무실에서 나온 후, 량천옥은 서류를 들고 오는 고은지와 마주하게 되었다.차갑던 기운은 고은지를 보자마자 누그러졌다.고은지는 량천옥을 보고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것도 잠시, 고은지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그 모습은 마치 두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았다.량천옥은 숨이 막힐 듯이 가슴이 아팠다.하지만 지금은 무너질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나태현이 고은지를 죽도록 괴롭히겠다고 했지만 량천옥이 마음먹고 막는다면 나태현도 방법이 없다.천락 그룹에서 나와 차에 탄 량천옥은 앞에 있는 정록담에게 얘기했다.“지씨 가문에 똑바로 전해. 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모두 지씨 가문의 탓으로 돌리겠다고.”지씨 가문에서는 이미 고은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을 위해 고은지를 처리하려 들지도 모른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량천옥이 이어서 얘기했다.“아이의 일도 어서 빨리 알아봐.”량천옥은 고은지가 계속해서 나태현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무리 량천옥이 타일러도 나태현을 떠나지 않는 건, 아마도 고희주 때문일 것이다.량천옥은 고은지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래서 무조건 아이를 찾아서 고은지에게 평온한 일상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은지가 상류층의 더러운 싸움에 엮이지 않았으면 했다.정록담은 량천옥의 뜻을 잘 알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사람을 풀었습니다. 빠르게 알 수 있을 겁니다.”거기까지 들은 량천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빠르게 변하는 창밖의 모습을 보면서 량천옥이 눈을 감았다.“나씨 가문에 가봐야 할 것 같아.”“거, 거기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가겠다는 말을 들은 정록담은 약간 놀았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서 겪은 일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량천옥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런 어머니를 만난 것은 량천옥의 최대 불행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량천옥이 상류층에서 힘들게 움직일 때도 그곳으
량천옥이 예리하게 얘기했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량천옥이 다시 나씨 가문에 돌아오게 된 원인이 본인의 딸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도 몰랐다....그 시각.나태현은 고은지를 사무실로 부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담배를 필 뿐이었다.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얼마 지나 고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무 일 없으면 먼저 나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나태현은 차갑게 고은지를 보면서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어디서 살지?”고은지가 문고리를 잡은 순간 나태현이 물었다.“이게 우리의 거래에 속하는 내용인가요?”“...”나태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 사이에 고은지는 이미 사무실을 나가고 없었다.고은지는 고은영의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란완 리조트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고희주를 란완 리조트에서 빼앗긴 후, 고은지는 돌아가지 않았다.고은영이 전화를 걸 때마다 고은지는 집을 구했다고 했다.하지만 어디에 구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지훈이 들어왔다.“어디서 사는지 알아봐.”“네? 누구요?”이지훈은 약간 멍해 있었다. 나태현이 알아보라는 게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나태현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알아보겠습니다.”역시 고은지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게 확실하다.하지만 이지훈은 나태현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나태현의 속은 읽을 수가 없었다.고희주는 나태현의 딸이고, 고은지는 고희주의 엄마다.그런데 지금은 지신혜와 약혼을 준비하고 있다.“약혼식, 고은지가 책임지게 해.”“네?”이지훈은 나태현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식을 고은지가 준비하게 하라고? 아무리 나태현을 오랜 시간 모신 이지훈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고은영이 말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애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만큼 고요했다. 고은영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속은 어지러웠다.배준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힐끗 훑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의 대답 내가 싫어하는 거 알 텐데?”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가장 싫어하는 배준우였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제 제가 대표님을 방까지 모신 뒤로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그녀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고은영에게는 1분이 1년과 같은 고역의 시간이었다.하지만 이걸 이겨내야 했다.만약 배준우에게 거짓말을 들킨다면 그녀만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안지영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겨우 강성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은영의 등 뒤가 축축해질 때쯤 배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어.”고은영은 스르륵 눈을 감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가서 해상그룹 입찰 방안 계획안 좀 가져와 봐.”배준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한달 간 긴 출장이 이어지는 동안 고은영은 최대한 배준우와 단독으로 접촉하는 상황을 피했다.한달 뒤, 긴 출장을 끝낸 그들은 강성으로 돌아왔다.관례대로 고은영에게는 이틀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날, 배준우는 긴급회의가 있어 회사로 향했다.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태웅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나태웅을 본 배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고 비서는?”“한달 간 출장을 다녀왔으니 당연히 휴가를 줬죠. 고 비서도 연애해야죠.”배준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나태웅은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동영그룹 직원 기숙사.
량천옥이 예리하게 얘기했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량천옥이 다시 나씨 가문에 돌아오게 된 원인이 본인의 딸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도 몰랐다....그 시각.나태현은 고은지를 사무실로 부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담배를 필 뿐이었다.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얼마 지나 고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무 일 없으면 먼저 나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나태현은 차갑게 고은지를 보면서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어디서 살지?”고은지가 문고리를 잡은 순간 나태현이 물었다.“이게 우리의 거래에 속하는 내용인가요?”“...”나태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 사이에 고은지는 이미 사무실을 나가고 없었다.고은지는 고은영의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란완 리조트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고희주를 란완 리조트에서 빼앗긴 후, 고은지는 돌아가지 않았다.고은영이 전화를 걸 때마다 고은지는 집을 구했다고 했다.하지만 어디에 구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지훈이 들어왔다.“어디서 사는지 알아봐.”“네? 누구요?”이지훈은 약간 멍해 있었다. 나태현이 알아보라는 게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나태현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알아보겠습니다.”역시 고은지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게 확실하다.하지만 이지훈은 나태현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나태현의 속은 읽을 수가 없었다.고희주는 나태현의 딸이고, 고은지는 고희주의 엄마다.그런데 지금은 지신혜와 약혼을 준비하고 있다.“약혼식, 고은지가 책임지게 해.”“네?”이지훈은 나태현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식을 고은지가 준비하게 하라고? 아무리 나태현을 오랜 시간 모신 이지훈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
나태현 사무실에서 나온 후, 량천옥은 서류를 들고 오는 고은지와 마주하게 되었다.차갑던 기운은 고은지를 보자마자 누그러졌다.고은지는 량천옥을 보고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것도 잠시, 고은지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그 모습은 마치 두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았다.량천옥은 숨이 막힐 듯이 가슴이 아팠다.하지만 지금은 무너질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나태현이 고은지를 죽도록 괴롭히겠다고 했지만 량천옥이 마음먹고 막는다면 나태현도 방법이 없다.천락 그룹에서 나와 차에 탄 량천옥은 앞에 있는 정록담에게 얘기했다.“지씨 가문에 똑바로 전해. 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모두 지씨 가문의 탓으로 돌리겠다고.”지씨 가문에서는 이미 고은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을 위해 고은지를 처리하려 들지도 모른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량천옥이 이어서 얘기했다.“아이의 일도 어서 빨리 알아봐.”량천옥은 고은지가 계속해서 나태현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무리 량천옥이 타일러도 나태현을 떠나지 않는 건, 아마도 고희주 때문일 것이다.량천옥은 고은지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래서 무조건 아이를 찾아서 고은지에게 평온한 일상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은지가 상류층의 더러운 싸움에 엮이지 않았으면 했다.정록담은 량천옥의 뜻을 잘 알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사람을 풀었습니다. 빠르게 알 수 있을 겁니다.”거기까지 들은 량천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빠르게 변하는 창밖의 모습을 보면서 량천옥이 눈을 감았다.“나씨 가문에 가봐야 할 것 같아.”“거, 거기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가겠다는 말을 들은 정록담은 약간 놀았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서 겪은 일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량천옥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런 어머니를 만난 것은 량천옥의 최대 불행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량천옥이 상류층에서 힘들게 움직일 때도 그곳으
자격?자격이라면 나태현과 량천옥 다 비슷했다.량천옥은 나태현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이번에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태현의 신경을 긁었다. 나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그 아이를 상처입힌 걸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비슷해.”고희주가 왜 아파트에서 자살하려고 했는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그런 힘든 환경이, 고희주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나태현은 질식할 듯한 시선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약간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복수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고은지는 건드리지 마. 아이와 은지를 만나게 해줘.”그 말투는 부탁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결연함이 있었다.마치 이게 마지막 양보이자 마지막 기회인 듯 말이다.나태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량천옥이 말을 이었다.“무슨 대가를 원하는지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량천옥은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 고은지가 남은 생을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태현도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지 않는가.만약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강성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량천옥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이건 량천옥의 결정에 걸린 일이다.나태현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량천옥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이다.그러니 량천옥은 그 기회를 나태현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런 기회 앞에서 나태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대가를 치러서 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나태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나태현이 일어나서 량천옥을 바라보면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이제야 얼마나 두려운가 봐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당신이 그녀를 괴롭혔을 때, 그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어?”나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 뿐이었다.
량천옥은 원래 고은지가 나태현을 떠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고은지가 무슨 대가를 원하든지 다 내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그럴 수가 없었다.나태현은 지신혜와 약혼했다. 그리고 량천옥에게 복수한 후 고은지를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그것이 나씨 가문의 복수 방식이다.고은지가 나태현의 지옥 같은 복수에 동참하게 된 것이 아이 때문이라면...량천옥은 두 눈을 감고 차갑게 얘기했다.“그 아이를 찾아내.”“네!”정록담이 대답했다.무조건 찾아야 한다.원래는 나태현의 딸이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아이는 고은지의 약점과도 같았다.“그리고 지씨 가문 사람들도 지켜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지씨 가문을 언급하는 량천옥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장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강성에서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그리고 앞뒤가 다르기로 유명한 가문은 바로 지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었다. 그런데 나씨 가문이 지씨 가문과 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지씨 가문에서 고은지와 나태현의 관계를 안다면 고은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정록담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를 전면적으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것도 고희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한 시간 후.량천옥은 천락 그룹에 도착했다.원래 어제 나태현을 만나기로 했지만 고은지를 먼저 만나고 싶어서 나태현을 만나지 않았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원인이 궁금했다.하지만 고은지는 량천옥이 모든 대가를 내놓아도 나태현과의 거래를 취소하지 않으려 한다.나태현을 찾으러 가는 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의 량천옥과 사뭇 달랐다.량천옥의 삶은 이미 피폐하지만 량천옥에게서는 차갑고 올곧은 힘이 느껴졌다.나태현 앞에 걸어온 량천옥이 차갑게 물었다.“아이, 어디에 보낸 거야.”물론 정록담을 시켜 알아보게 했지만 나태현에게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나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량천
량천옥은 그 냉랭함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다.“앞으로 날 찾아오지 마요.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 관계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요.”“...”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수년간 찾아 헤맨 아이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량천옥은 그동안 자기 딸을 찾은 순간을 떠올렸다.그 세월을 어떻게 되돌려줄지, 어떻게 사랑을 줄지 말이다.하지만 그 딸이 본인 곁에 있을 줄은, 게다가 본인이 이미 그 딸을 상처입혔을 줄은 전혀 몰랐다.량천옥은 자기 딸을 죽일 뻔했고, 자기 손녀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다.“날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 때문에 너를 상처입히지 마.”“당신 때문에 나를 상처 입힌다고요? 당신 때문에?”고은지의 말투가 차가워졌다.량천옥을 비웃는 듯한 말투가 섞였다.그 말에 량천옥은 죄책감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정말 너무 아팠다.“명심해요. 앞으로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고은지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량천옥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량천옥은 떠나려는 고은지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고은지가 량천옥의 곁을 지나갈 때, 량천옥은 고은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내가 미안해. 그렇게 할게. 그러면 나태현과의 거래를 그만둬.”“...”“나 때문이 아니라면 그만둬!”량천옥은 이 거래가 고은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고 있었다.량천옥과 나씨 가문의 원한은 결국 나태현이 알아냈다.나태현은 량천옥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은지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고은지는 나태현의 아이를 낳은 사람이니까 말이다.나씨 가문 사람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 량천옥은 잘 알았다.량천옥의 요구에 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량천옥의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난 그럴 자격이 없지만 아이를 위해 생각해 봐. 나태현은 희주가 네 딸인 걸 알면서도 이 거래를 진행했어. 얼마나 무서운 놈이야!”량천옥은 무서운 것도 없었고 두려워하
고은영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본 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부드러움은 너에게만 주는 거야. 조영수와 이혼한 걸 보면 알 수 있어. 네 언니는 참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고은영은 숨 쉬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조영수와의 이혼은 고은지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홀로 희주를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을 알았어도 그런 힘듦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안지영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더욱 불안해졌다.나씨 가문의 사람도 장씨 가문의 사람처럼 깨끗하지 못했다. 만약 나태현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은영아?”고은영의 얼굴이 점점 파리해지는 것을 본 안지영이 손을 뻗어 고은영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고은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지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무슨 생각해?”“나씨 가문의 사람들... 너무 괘씸해.”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였다.나태웅도 한결같이 미친 짓을 벌이고 있으니, 그 가문 사람들은 괘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나태현은 괜찮은 사람 같아보아였거든. 그런데 왜 네 언니랑 이런 거래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안지영은 나태현에 대해서 잘 몰랐다.강성의 모든 사람이 나태현이 지신혜와 약혼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고은지를 자기 곁에 두다니.고은지가 복수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아니면 나태현도 고은지가 연약한 사람이라,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만약 그렇다면 나태현이 자만한 것이다. 혹은, 량천옥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다고 생각할 수 있다.“글쎄. 모르겠어. 어쨌든 량천옥과 연관 있는 일이야.”고은영이 얘기했다.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이번 일에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확실히, 이건 고은영이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두 사람의 이익 관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었다.다만 고은지가 나태현을 향한 증오가 어느
희주가 그렇게 된 건 량천옥 때문이니까 말이다.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휴,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일이람.”정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나태현이란 량천옥 씨는 또 무슨 원한이 있길래.”“...”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고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지영이 얘기했다.“하지만 량천옥 씨가 너무 겁 없이 살아와서 적을 많이 만들었어. 나씨 가문과 원한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어떤 원한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태현과 고은지가 손을 잡을 정도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이 일에는 신경 쓰지 마. 량천옥 씨가 복수를 당한다고 해도 그건 인과응보니까.”깊이 생각하던 안지영이 대답했다.안지영은 량천옥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다.전에 고은영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안지영은 영원히 량천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인과응보야!”전에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잘해줄 때, 고은영은 그 원한을 다 잊으려고 했다.하지만 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고은영은 량천옥을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도 네 언니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네 언니가 미워하는 건 량천옥뿐만이 아닐 것 같거든.”“...”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의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놓치고 있는 일들이 있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방관자로서 더 냉정하게 사건을 볼 수 있었다.“아마 나태현도 미울 거야. 나태현은 거의 폭탄을 곁에 둔 거랑 다름없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말이야.”“우리 언니는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순진하기는.”“...”순진하다는 말을 또 들은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가 조영수와 이혼하고 희주가 폭력을 당한 건 다 나태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잊지 마. 그러니 나태현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 거야.”“...”“원래 부드러운 사람이 화가 나
하지만 고은영은 그 차가움이 싫지 않았다.고은영은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가지 않을 거야.”“은영아, 난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내 주변에서 행복할 수 있는 건 이제 너밖에 없어.”고은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금세 두 눈을 붉혔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실 나...”“나 바빠서 이제는 끊어야 할 것 같아.”고은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고은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이미 끊긴 전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졌다.그리고 고은지가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고은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은영과 고희주라고 말이다.이제 희주의 아빠도 찾게 되었고 고은지의 친모도 찾게 되었지만 고은지는 여전히 고은영과 고희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서 나태현의 일에 고은영이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고은지의 일 때문에 행복한 고은영의 삶에 영향을 끼칠까 바였다.나태웅의 함정은 아주 깊어서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 고은지는 그런 함정에 고은영과 함께 빠지고 싶지 않았다.전화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고은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안지영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우리 언니야.”“들었어. 그렇게 마음 약한 언니도 반대하는 일이야. 그러니 진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아?”안지영에게 있어서 고은지는 마음 약한 사슴과도 같은 사람이었다.그런 고은지도 진씨 가문을 극도로 싫어하니 할 말 다 한 것이다.고은지가 마음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린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의 고은지는 예전의 고은지와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었다.안지영은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웬 한숨이야?”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짜증도 나고, 우리 언니도 걱정되니까...”진씨 가문의 일은 고은영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걱정되는 건 고은지였다.고은영이 고은지에 대해서 얘기하자 안지영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얘기했다.“천락 그룹으로 간 이유가 나태현이
정말 고은영을 지켜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내가 마음이 약하다고 해도 그건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거야. 예를 들면 네 앞에서 마음 약해지는 거지.”“...”화가 잔뜩 나 있던 안지영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갑자기 화가 사르르 풀렸다.“쳇, 그래도 양심은 있네.”“걱정하지 마. 진씨 가문의 일에는 양보하지 않을 거니까.”’“그러면 약속해. 진윤과 진정훈이 너를 설득해도 넘어가지 않겠다고.”안지영은 진윤과 진정훈이 고은영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은 짜증 나는 김영희와 진유경이 나타나서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진윤과 진정훈이 와서 고은영을 설득한다면?신장 수술은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적합성 검사에 통과된 후에 수술을 거부한다면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그러니 결론은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누가 얘기해도 소용없으니까.”“음, 그래. 이제야 마음에 드네. 만약 거절하기 힘들면 나한테 말해.”안지영은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고은영이 정말 신장을 내어줄까 봐 계속 걱정되었으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진씨 가문 사람들이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었다.“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진씨 가문과는 많이 엮이지 마. 거기는 심보가 고약한 사람들이 가득하니까.”“...”“전에는 량천옥과 짜고 들면서 진유경과 배준우를 결혼시키려고 했잖아. 아마 진유경의 뜻을 이뤄주지 못해서 화가 잔뜩 나 있을걸?”“...”안지영은 진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고은영도 마찬가지였다.고개를 끄덕인 고은영이 대답했다.“응, 알았어!”“내가 잔소리하는 거 같아 보여도 들어! 넌 너무 순진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걸 철석같이 믿잖아.”안지영은 고은영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배준우의 일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고은영의 남편이니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그래도 안지영은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