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라는 두 글자에 고은지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느꼈다.하지만 더욱 메스꺼운 것은 나태현이 고은지에게 한 모든 행동들이었다.고은지는 핸드폰을 나태현에게 주면서 말했다.“희주를 란완 리조트로 돌려보내요. 거래는 아직 유효해요.”고은지는 아이와 량천옥 사이에서 자기 아이를 선택했다. 량천옥이 자기 친모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량천옥을 떠올리면 남는 것은 증오뿐이었다.나태현은 고개를 들어 고은지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그리고 바로 시선을 내렸다.“너도 알잖아. 선택지가 없다는 걸.”“아이가 없어도 난 당신이랑 계속 거래를 할 거예요.”현재 고은지는 량천옥을 증오할 뿐만이 아니라 나태현도 증오하고 있었다.고은영을 만나고 온 후 고은지는 나태현을 향한 증오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고은지는 여전히 이성적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그래서 나태현과 담담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실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말을 마친 나태현은 바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꺼버렸다. 불꽃이 물에 닿는 그 순간 불꽃이 꺼지면서 치익 소리가 났다. 나태현의 차가운 말투를 들으면서 고은지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눈에 넘실대는 증오를 감췄다.“희주, 깨어날 수 있는 거죠?”“당연하지.”“내가 무슨 수로 당신을 믿겠어요?”고은지가 차갑게 물었다.“희주는 내 딸이야. 내가 내 딸을 해칠 것 같아?”그녀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나태현은 희주가 자기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하지만...‘됐어!’고은지는 나태현과 연관된 일에 많은 생각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그저 나태현의 차가운 말투를 들으면서 나태현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태현과 량천옥의 복수에 고은지를 끌어오다니.“그러면 언제 만나게 해줄 거예요?”고은지가 바로 물었다.나태현이 고희주를 란완 리조트에서 데려간 그 순간부터, 고은지는 앞으로 쉽게 고희주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
량천옥을 만날 것인지 물으려던 이지훈은 나태현의 태도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지훈이 나가고 사무실에는 나태현만이 남았다. 나태현이 내뿜던 차가운 기운은 어느새 무거운 슬픔으로 바뀌어있었다....고은지는 천락그룹에서 나와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그리고 동시에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은영은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언니.”“은영아, 마지막으로 나 한 번만 도와줘.”고은영은 마침 량천옥과 같이 있었는데 고은지가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언니, 난 언니가 도와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거야. 왜 마지막이라고 그래?”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은 고은영은 마음이 아팠다.고은지가 자꾸만 고은영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것 같아서였다.아무리 홀로서기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급할 것 없지 않나 생각하던 찰나 고은지가 입을 열었다.“배준우의 사람을 시켜서 공항 이륙을 연착시켜 줘. 가능해?”고은지는 배준우가 강성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두 시간이면 돼!”고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고은지가 덧붙였다.“그래.”“빨리. 급해. 희주가 공항에 있을 수도 있어.”“뭐?”놀란 고은영이 좀 큰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맞은편에 앉은 량천옥을 쳐다보았다. 량천옥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고은지의 말을 들었다.고희주가 공항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량천옥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먼저 준우 씨한테 연락해 볼게.”말을 마친 고은영이 전화를 끊었다.‘희주가 공항에 있다고? 나태현 씨가 데려간 거 아니었나? 도대체 뭘 하려고? 해외로 보내는 거지?’거기까지 생각한 고은영은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얼른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여보, 공항 쪽에 연락해서 모든 비행기를 두 시간 정도 연착시켜 줄 수 있어요?”“무슨 일인데?”“나태현 씨가 희주를 해외로 보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누가 봐도 나태현이 복수를 위해 이런다는
량천옥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이제 고은지에게는 온화한 모습은 사라지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차가운 기운만이 남아있었다. 온화한 고은지의 모습을 떠올린 고은영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마음이 아팠다.“언니.”고은영이 앞으로 다가가 고은지의 손을 꼭 잡았다.“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그렇게 말하는 고은지에게서는 차가움만이 느껴졌다.그 말투는 마치 날카로운 침처럼 량천옥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너무 아파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량천옥은 겨우 참느라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서 있었다.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먼저 희주부터 찾자.”고희주가 이 공항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고은영의 말에 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고은영이 얼른 고은지를 따라갔다.량천옥은 제 자리에 서서 고은영과 고은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량천옥은 절망스러움을 느꼈다.결국 모든 것에는 인과응보가 있는 법이다. 본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량천옥은 돌아선 후 고객센터 쪽을 찾아갔다.그들은 빠른 속도로 고희주가 국내에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결국 그들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나태현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진작 전용기를 이용해 고희주를 데려갔던 것이다.고은지는 온몸에 맥이 풀려 공항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고은영이 고은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언니...”“왜 나한테 일찍 알려주지 않은 거야?”고은지는 고은영을 보면서 겨우 물었다.차가운 시선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만약 진작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태현이 아이를 데려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때는 많은 일들을 확인해야 했었어, 그리고 나태현 씨도...”지신혜와 약혼했으니 말이다.고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처음에는 고은지의 건강 때문에, 후에는 나태현의 약혼 때문에.결국 따지고 보면 고은지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낯빛이 창백해진 고은지를 보면서, 고은영은 고은지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그래도...”“은영아, 너랑 희주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희주는 그래도 친아빠한테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너도 꼭 아프지 말아야 해. 알았지?”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에 고은영은 약간 가슴이 아팠다.량천옥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다가 고은지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은영과 고희주는 고은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고은지가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않지. 저 사람처럼 말이야.”그렇게 말하면서 고은지는 량천옥을 쳐다보았다.“...”“...”그 순간 호흡마저 무거워졌다.량천옥은 고은지를 쳐다보면서 바르르 떨었다.고은영도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언니...”량천옥은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량천옥은 고은지가 본인의 신분을 모르길 바랐다. 고은지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두려웠다.그리고 이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러면 량천옥은 고은지의 무슨 사람인가.혈연관계가 있는 사람? 엄마나 어머니 같은 이름은 량천옥에게 어울리지 않았다.량천옥 또한 본인이 자격 미달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언니...”고은영이 굳은 채로 입을 열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줄은 몰랐다.“맞지?”고은영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은지의 차갑고 증오 가득한 눈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응’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대답이 목에 턱 막힌 기분이었다.결국 고개만 끄덕였다.고은지는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작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비웃음과 풍자가 가득했다.“...”량천옥은 고은지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지만 두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그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어찌하겠는가.량천옥은 하마터면 고은지를 죽일 뻔했고 고희주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그러니...“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뭘 할지 잘 알 거예요.”고은영이 보충해서 얘기했다.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모든 대가는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량천옥은 잘 알고 있었다.고은지가 나태현과 손을 잡고 량천옥을 공격할 것이라는 걸....고은지는 천락 그룹으로 돌아왔다. 감정을 추스른 후 다시 본인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고은지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었다. 이지훈은 돌아온 고은지를 보고 물었다.“오셨군요.”“네.”고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나 대표님께서 사무실로 부르셨습니다.”컵을 들었던 고은지는 이지훈의 말을 듣고 손에 힘을 주게 되었다.기운 또한 더욱 차가워졌다.이윽고 정신을 차린 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그래요.”“얼른 가요. 한참 기다리셨습니다.”이지훈이 덧붙였다.고은지는 컵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훈을 쳐다보았다. 이제 가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이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지는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있지만 이지훈은 고은지 주변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고은지는 대표 사무실로 와서 노크를 했다.안에서는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고은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나태현은 커다란 의자에 앉았다. 날카로운 나태현의 옆태는 아주 차가워 보였다.대표 사무실에서는 차가운 기운과 하얀 담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고은지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냄새를 뺐다.뒤에 있는 나태현이 물었다.“공항에 간 거야?”“네.”고은지는 담담하게 한 글자로 대답했다.“나랑 오래 일 했으면서 왜 아직도 무의미한 일을 하려고 그래.”고은지는 창문을 닫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손톱에 살갗을 파고들 정도였다.고은지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얘기했다.“아이의 일로 저를 협박하지 마셨어
지금 고은지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그래서 고은영의 도움도 마다하고 홀로서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고은지는 인생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졌다.그리고 그 시각.안지영도 비슷한 기분이었다.점심에 장선명과 같이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사무실에 꽃이 가득했다.안지영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다 뭐예요?”“나태웅 대표님이 보낸 겁니다.”안열은 삐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안지영을 향해 대답했다.웃음을 참느라고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안지영은 테이블에 놓인 꽃을 보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어젯밤 나태웅은 킹덤 타운에 쳐들어와 싸움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꽃을 선물하다니.게다가 하얀 국화꽃이었다.‘이제는 내가 죽기를 저주하는 건가?’“왜 갖고 들어오게 한 거예요!”안지영이 겨우 화를 참고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왜 나태웅 같은 인간쓰레기와 엮이게 된 건지.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 나태웅은 배준우의 믿을만한 오른팔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나태웅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일을 수도 없이 그르쳤을 것만 같았다.안열은 안지영이 화내는 모습을 보고 마른기침을 하고 대답했다.“꽃집에서 직접 배송한 겁니다.”“앞으로 이런 재수 없는 일은 쳐내도록 해요.”“네. 알겠습니다.”안열은 계속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웃음을 참느라 안면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안지영은 그런 안열을 보면서 화가 나서 얘기했다.“웃지 마요! 이게 웃겨요?”안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아마 장미를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장미랑 국화도 구분하지 못할 사람 같아요?”눈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장미와 국화 정도는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안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네요.”나태웅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여자한테 국화를 보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사실 안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은 그딴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몰라요. 당장 보내버려요!”만나서 또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런 비열하고 쪼잔한 방법이라도 쓰는 것이다.안지영은 나태웅에게 몇 배로 갚아줄 생각이었다.안열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시켜 꽃을 돌려보내겠습니다.”사무실의 국화는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하지만 국화의 향은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안지영은 그것 때문에 아주 짜증이 났다.한 시간 후, 천락 그룹.나태웅의 사무실과 사무실 밖의 복도까지 국화꽃으로 가득 찼다.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눈을 사로잡았다.사무실의 사람들은 놀라고 또 의아해했다. 이건 그야말로 사무실이 아니라 장례식장이었다.진이훈은 이 국화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대, 대표님...”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다가도 또 뭐를 말해야 할지 몰랐다.게다가 이 모든 것이 안지영이 보내온 것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뭐 하자는 거지? 저주인가?요즘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해서 저주라도 하는 건가?나태웅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었다.“안지영!”나태웅은 이를 꽉 깨물었다.진이훈은 그 목소리를 듣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안지영 씨한테 돌려보낼까요?”그 말을 꺼낸 후 진이훈은 후회하고 말았다.나태웅의 성격을 알면서도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되었다.나태웅의 성격대로라면 정말 안지영에게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것도 몇 배로 말이다.안지영 때문에 사무실은 장례식장이 되어버렸다. 나태웅이 정말 이성을 잃는다면 국화꽃으로 하늘 그룹을 묻어버릴지도 모른다.아니나 다를까 나태웅은 진이훈의 말을 듣고 바로 대답했다.“당연히 돌려보내야지. 만 송이 더 얹어서 가!”‘누구는 저주할 줄 모르나?’“...”진이훈은 본인의 뺨을 때려버리고 싶었다. 왜 굳이 그 질문을 했을까 후회했다.“그... 안 좋지 않을까요?”“뭐가!”“지금 안진섭 씨가 병원에 있는 시점에
나태웅은 이런 일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기를 원했다.나태웅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을 말리고 싶었으나 차가운 나태웅의 모습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삼켜버렸다.몸 돌려 사무실을 떠나던 진이훈은 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물었다.“정, 정말 보내실 겁니까?”“2만 송이!”“...”재차 확인하려 했으나 꽃만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진이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안지영이 왜 갑자기 그렇게 많은 국화를 보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태웅은 화가 많이 났다.퇴근 전, 2만 송이의 국화가 안지영의 하늘 그룹에 도착했다.너무 많아서 프런트와 홀에도 꽃이 가득했다.안지영은 부승호와 얘기를 나눈 후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문을 여는 순간 안지영의 앞에는 하얀색 파도가 일렁였다.안지영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부승호는 눈앞의 모습을 보고 멍해졌다.“이건...”“...”안지영은 화가 난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안열, 안열!”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안열을 불렀다.안열이 당장 달려왔다.“대표님.”“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안지영이 분노에 차서 물었다.이 재수 없는 것은 분명 하늘 그룹에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들여오지 않으면 하늘 그룹 외벽을 둘러쌀 겁니다.”그렇다면 밖에서 본 기자들이 재미난 기사들을 써 내려갈 것이다.“...”안지영의 호흡이 거칠어졌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이 개 같은 놈이...’말하지 않아도 나태웅이 한 짓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뭐해요! 지금 당장 돌려보내요. 천락 그룹 안에 가져갈 필요 없어요. 밖에 쌓아둬요!”안열은 하늘 그룹이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했지만 안지영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지금 당장 천락 그룹을 영안실로 만들어버릴 예상이었다.안지영은 화가 나서 충동적이었다.부승호는 이 꽃들을 천락 그룹에 돌려보낸다는 말을 듣고 머리가 아팠다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