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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1화

Author: 송언희
하지만 나태웅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하주원은 바로 눈물을 훔쳤다. 방금 안지영과 싸울 때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태웅은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안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해.”

차갑게 뱉은 세 글자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가가 떨렸다.

‘사과?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고?’

안지영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이훈은 나태웅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나 대표님, 설마...”

진이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태웅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과하라고.”

안지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의 말투는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말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안지영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하주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지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야, 정말 병 걸렸다고 이러기야? 어?”

그녀는 나태웅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알기에 이곳에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라니 나를 더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걸까?’

안지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조각조각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이훈이 한 걸음 나섰다.

“안지영 씨, 대표님께서는 그냥 이번 일은 사과하고 지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사과 안 하면? 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안지영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태웅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의 결정을 고수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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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5화

    나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나태현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했지만 나태현은 거절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나태범은 량천옥이 무슨 심정으로 나태현을 죽이려고 드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순조롭게 귀국하는 것은 이제 어려울 것이다.“하...”나태범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나태범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집사가 다가가 얘기했다.“어르신, 일단 진정하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까요.”나태범은 또 한숨을 쉬었다.“하...”아무리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나태현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그해의 일을 떠올린 나태범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겼다.이건 끝나지 않은 복수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지?”나태범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그들은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나태현은 많은 의료진을 고용해서 고희주를 보살폈다.그런데 고희주가 죽다니.“량천옥 씨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정말 죽은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나태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고희주를 법적인 손녀로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아이이니...그래서 나태범은 더더욱 고희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준우가 나태현을 지켜준다면 좋겠는데...”나태범이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량천옥이 얼마나 독한지 잘 아는 나태범은 나태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해의 일도 겨우 잠재운 것이다.량천옥이 아무리 요즘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량천옥은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집사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준우 님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집사가 얘기했다.나태범이 배준우에게 전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집사는 나태범을 말렸다.아무리 배준우가 나씨 가문 형제들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금은 고은영의 남편이니까 말이다.그러니 사랑 앞에서 우정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난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4화

    “계약 파기 때문에요?”고은영이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물었다.고은영은 나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지만 수많은 계약 파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배준우와 진윤까지 계약을 파기했으니, 배씨 가문이나 진씨 가문과 연관 있는 가문들도 연달아 나씨 가문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판단을 급하게 내리려고 하니까 말이다.아마 천락 그룹은 지금 수많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배준우가 지금 계약 파기를 취소한다면, 천락 그룹에게 희망이 주어질 것이다.고은영은 그래서 나씨 가문이 배준우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러면 왜...”“나태범 어르신은 나태현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어.”“나태현 씨가 귀국하는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의 뜻을 알아차렸다.나태범은 정말 교활한 사람이었다.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배준우와 량천옥의 사이는 아주 어색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와 사이가 좋고 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다.배준우가 고은영을 설득한다면 고은영이 고은지를 설득하고 이어서 고은지가 량천옥을 설득해 나태현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미친 거 아니에요?”고은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아마 나태범은 고은지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고은지를 이용해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니. 차라리 고은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모른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어떻게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절대 안 돼요. 우리 언니는 나태현을 용서해줄 리가 없어요.”배준우에게까지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해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생각하면 나태범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3화

    고은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량천옥이 나태현을 죽이려고 아득바득 달려드는 것을 보면, 고은영은 진윤의 말대로 진정할 수 없었다.만약 고희주가 살아있다면 량천옥도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바로 눈앞에서 배준우가 기성훈과 전화하고 있었지만 고은영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고 고은영을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고은영은 정신을 차렸다.“은영아, 은영아?”“아? 어... 듣고 있어요.”고은영은 멍한 시선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고 배준우는 따뜻한 손으로 고은영의 손을 감싸 쥐었다.고은영을 바라보는 배준우의 표정은 아주 진중했다.아무래도 량천옥의 반응을 보면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량천옥이 이렇게 불같이 달려들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코를 훌쩍인 고은영은 붉어진 눈가를 매만졌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품에 안고 조심스레 고은영의 등을 토닥여주었다.“다 괜찮아질 거야.”무기력한 위로였다.모든 건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고은영도 이토록 슬퍼하는데, 고은지는 얼마나 더 슬플까.“언니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진작 알려줬어야 했는데...”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얘기했다.고은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나태현이 고희주의 아빠라는 것만 믿고 고희주를 나태현에게 보냈다. 나태현이 고희주를 해칠 줄도 모르고 말이다.만약 고은지가 량천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나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알았다면...고은영이 울먹이면서 어깨를 들썩이자 배준우가 고은영을 꼭 안았다.“네 탓이 아니야. 넌 그저 네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맞는 말이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고희주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량천옥이, 고은지가 죽도록 증오하는 량천옥이, 결국 고은지의 친모였다는 걸 어떻게 알리겠는가.하지만 그 충격보다도 고희주의 죽음이 더욱 아플 것이다.“나태현 씨가 희주를 데려가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그러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2화

    “준우 씨는 나한테도 잘해주고 우리 아이한테도 잘해주니까 좋은 사람이에요.”“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는 없어?”“그리고 매일 나를 데리고 출근해요.”배준우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을 하는데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출근은 하다니...배준우는 바로 고은영을 품에 안고 키스를 퍼주었다.“읍... 갑자기...”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전화, 전화 와요.”고은영이 배준우를 밀면서 얘기했다.배준우는 진동 소리를 듣고 약간 미간을 구긴 채 고은영을 놓아주었다.고은영은 이때다 싶어서 도망갔다.배준우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나다.”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배항준이였다.배준우는 배항준의 전화에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표정을 굳힌 배준우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너, 여자 하나 때문에 점점 선 넘는 짓을 하는구나.”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아마도 나태범이 배항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나태현과 나태웅이 다 사라졌으니 나태범이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했다.하지만 배준우는 나태범이 바로 배항준에게 연락할 줄은 몰랐다.이제는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태범, 배항준 세대까지 이 싸움에 엮이고 말았으니 말이다.배준우는 속으로 나씨 가문 사람을 욕했다.“제가 하는 일에 신경 쓸 사이가 있으세요? 아이가 벌써 다 컸나 봐요?”그렇게 말하면서 배준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배준우의 아들과 배항준의 아이가 나이가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사람들은 배씨 가문을 헐뜯고 비웃을 것이다.선을 넘는다니.배준우가 봤을 때 배항준이야말로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량천옥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량천옥을 그렇게 만든 건 여자에 눈이 먼 남자들이다.전화기 너머의 배항준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 바로 화가 났다.“너 이 자식, 뭐라는 거야!”“이 나이에 아이를 돌보는 게 재밌나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1화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40화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439화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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