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는 이 망나니가 미쳐 날뛸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의 여론 파동을 떠올렸다. 비록 일이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이 망나니가 발작을 일으킬 때는 집안의 명예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그 아이는 우리와 정이 없지 않니?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과연 가치가 있니?” “정? 고은영은 이 집에서 자라지도 않았어요. 우리에게 무슨 애착이 있겠어요?” “그래, 유경은 이 집에서 자랐으니 그 정이야 어찌 이루 말할 수 없지 않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가 있니? 버릴 수 있다면 버린다는 말인가?” 진정훈을 보며 김영희는 속으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지팡이를 휘둘러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미친놈이었다. 정말로 폭주하면 사실 김영희도 그가 조금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서는 진정훈이 진유경을 내쫓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그들이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감정에 호소하고 이성으로 설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편처럼 보였다. 심사숙고한 후 김영희는 진정훈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정훈아, 네가 은영을 아낀다는 거 안다. 은영이가 돌아오면 본집에서 살게 해 주면 안 되겠니?” 본집은 진 씨 가문에서 다섯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오로지 어른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자손들은 모두 작은 별채에서 살고 있었다. 본집에 거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진 씨 가문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유경은 김영희가 고은영이 돌아오면 본집에 머물도록 하자는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영희는 늘 자신을 가장 아껴 주지 않았던가? 그런 김영희가 어찌 고은영을 본집에 머물게 하자고 제안할 수 있단 말인가?’ 진유경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이 작은 별채에서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하지만 방금 김영희의 제안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만약 자신이 본집에 살 수 있
진정훈은 진 씨 가문을 떠났다! 그가 차가운 뒷모습으로 사라지자 그 순간 진 씨 가문은 그로 인해 완전히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진호영이 그를 쫓아 나왔다. “형, 형, 잠깐만!” 진정훈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차가움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를 대할 때조차 어느 정도 조소의 기색이 있었지만 지금 이 동생을 대하는 그의 눈빛에는 오직 냉기만이 남아 있었다. 진호영은 그 시선에 뼛속까지 오싹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아버지께서도 지금 이때에 유경이 곁에 있어 주길 바라고 계셔.” 그러자 진정훈은 팔을 들어 ‘철썩’ 하고 진호영의 얼굴에 강하게 손바닥을 내리쳤다. 진정훈은 원래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진호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따귀를 맞고 입안에서 철철 피 맛이 났다. 이빨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그만큼 그의 손길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진호영은 아픈 얼굴을 감싸 쥔 채 억울하게 진정훈을 바라보았다. 진정훈은 말했다. “아버지께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잖아!” “우리 어머니는 그 두 인간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어. 넌 왜 어머니를 위해 마음 아파하지 않니?” 진정훈은 최근에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나 악독하고 무서운 사람들일 줄은. 그들이 할머니와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진호영이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셨잖아. 이런 걸 어떻게 아버지와 할머니 탓으로 돌릴 수 있어? 형, 언제부터 이렇게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게 된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얼굴에 또 한 번 ‘철썩’ 하고 진정훈의 손길이 내려왔다. 진호영은 할 말을 잃었다. 진정훈은 동생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그는 차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일주일 내로 진유경을 진 씨 가문에서 내보내.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그만큼 운이 좋지 않을 거야. 그 누구도 진유경을
고은영은 자신의 식사량이 꽤 많다고 생각했었다. 최소한 배준우보다는 많았다. 하지만 진정훈의 식사량은 더 대단했다! 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그릇째 드셨습니다.”진정훈이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많이 먹었어?” ‘그럼 자기가 몇 그릇을 먹었는지 몰랐단 말인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다섯 그릇이라니, 그게 얼마나 많은 양인지 실감이 안 갔다.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먹는 걸까? 하지만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많이 먹는 건 사실 예의가 아닌데 대체 누구네 집에서 이렇게 많은 밥을 준비한단 말인가? 도우미가 난처해하는 걸 보자 진정훈은 드디어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도우미에게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밥을 더 많이 준비해 줘요!” “네.” 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진정훈이 고은영을 바라보았다. 원래 잘 먹던 고은영이었지만 아마 오늘은 그도 놀랐는지 반 그릇도 채우지 못했다. 진정훈이 말했다. “그것만 먹어?” “더 먹을 것도 없잖아요.” 고은영이 대답했다. 평소라면 그녀도 더 먹었겠지만 이제 밥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진정훈을 보면서 고은영은 그가 진윤만큼 침착하지 않지만 적어도 진호영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진정훈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내가 너무 많이 먹었다고 싫어하는 거야?” “아니요.” “괜찮아. 내가 생활비를 10배로 낼게!” 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당황한 얼굴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에요?” ‘장기적으로 여기서 식사할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이건 너무 황당하지 않나?’ 다섯 그릇이나 먹어 놓고도 모자라서 계속 먹으려고 한다니. 이건 한 가정이 감당하기 힘든 양이었다. 진정훈이 말했다. “보다시피 지금 나는 진 씨 가문에서 쫓겨난 상태라서 밥 먹을 데가 없어. 그래서 당분간 여기서 밥을 얻어먹어야 해.” “진 씨 가문에서 왜 쫓겨난
진정훈이 식사를 마치고 떠난 후 배준우가 집에 돌아왔을 때 냄비에는 이미 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그는 평소 점심에는 집에 잘 돌아오지 않지만 집에 오지 않더라도 도우미들이 항상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고은영은 말했다. “제 밥이라도 드실래요?” “무슨 일이야?” 그는 이런 상황을 이전에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혹시 이 아가씨의 식사량이 다시 늘었나?’ 도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을 쳐다봤고 고은영은 도우미와 배준우의 시선에 조금 주눅이 들었다. 특히 배준우의 시선은 마치 그녀가 대식가라도 되는 듯한 눈빛이었다. 솔직히 고은영은 최근 복잡한 일들로 인해 식사량이 예전처럼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시선은 정말 억울했다. 고은영은 투덜거렸다. “진정훈이 와서 밥을 먹었거든요. 냄비 하나에 있던 밥을 다 먹어버렸어요. 저는 이 작은 반 공기밖에 못 먹었어요.” “냄비에 있던 밥을 다 먹었다고?” 배준우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고은영의 식사량이 유전된 게 분명했다. 이렇게 많이 먹는 게 단지 그녀만의 일이 아니라 진 씨 가문 사람들 전체가 그럴 줄이야. 하지만 과거에 진윤과 함께 있을 때는 진윤이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냄비에 있던 밥을 다 먹어버렸어요. 다섯 그릇이나 먹었거든요.” 그 말을 들은 배준우도 말문이 막혔다. 냄비 하나의 밥을 다 먹어버리다니! 그 정도면 정말 대식가라 할 만했다. 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아직 식사 못 하셨죠? 제가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냥 반찬 조금 먹으면 돼.” 배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많이 먹지 않았기에 굳이 밥을 더 짓지 않아도 됐다. 진정훈이 많이 먹었지만 밥 다섯 그릇을 제외하고는 반찬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았다. 배준우가 자리에 앉자 도우미가 바로 그에게 식기 세트를 차려 주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며 고은영에게 물었다
그러나 거절하지도 않았다! 특히 진정훈이 그 말을 했을 때의 태도는 마치 거절이라도 하면 고은영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네가 허락하지 않았어도 오려 한다고?”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의 얼굴빛이 한층 어두워졌다. 진정훈은 진 씨 가문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듯했다. 만약 그가 이곳으로 이사 온다면 고은영이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특히 진 씨 가문 쪽에서! 최근 그들이 조용했지만 진정훈이 란완리조트로 이사 오면 상황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배준우는 골치가 아파졌다. 이제 진윤에게 동생을 좀 단속하라고 해야 할 판이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정작 진정훈은 지금 여동생을 보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아마도 그와 진윤에게 더 크게 와닿는 부분일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두 사람에게 남긴 말은 동생을 꼭 찾고 동생을 잘 돌보라는 것이었다. 그때 진 부인은 진유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당부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진유경의 생모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아마도 진호영이 지금까지 진유경을 아끼는 이유일 것이다. 진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 진호영은 아직 철이 없었기 때문에 생모에 대한 감정이 깊지 않았다. 그래서 진윤과 진정훈이 그에게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도 그는 그들이 고은영 때문에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했다. 점심 식사 후 배준우는 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의 주제는 단순했다. 진정훈이 란완리조트로 이사 오는 걸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진윤은 통화 내용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정훈이 란완리조트로 이사 온다고?” “그래.” “그건...” 진윤은 그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진정훈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 씨 가문 쪽에서는
진정훈이 구토를 끝내자 진유경은 피가 묻은 손으로 다시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입 헹구세요.”그녀의 말투는 차분하고 인내심이 가득했다.진정훈은 고개를 숙이다가 그녀의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시선을 느낀 진유경은 서둘러 물컵을 그의 손에 쥐여주며 손을 뒤로 숨겼다.조용히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저 괜찮아요...”그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지금 진유경이 보이는 모든 행동과 말투는 한없이 연약하고 애처로워 보였다.또한 그녀의 조심스러운 태도에서는 진정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엿보였다.사실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가 진씨 가문에 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적으로 이 둘째 오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진호영은 그녀를 도와줄 수 있지만, 집안 내 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고, 진성택은 그녀를 지켜주려고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상황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과거에 진정훈은 그녀에게 누구보다도 다정했고, 항상 그녀를 아껴주었다.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진정훈이 여전히 자신을 아끼고 있다고 확신했다.그러나 진정훈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진유경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물었다.“속 많이 안 좋아요? 제가 죽이라도 좀 끓여드릴까요?”그런데 진정훈의 눈에는 전혀 감정이 없었다.진유경은 자기가 이렇게까지 했으면 그의 마음도 조금은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가 내뱉은 건 차가운 헛웃음이었다.그는 그녀가 손에 쥐여준 물컵을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진정훈은 그녀를 아예 무시한 채 입을 헹군 뒤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나갔다.그 과정에서 그녀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진유경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마치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왜? 둘째 오빠는 정말로 고은영 때문에 나를 완전히 버린 걸까?’그는 예전에 진유경을 그렇게나
김영희는 지금 진정훈을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이런 뻔뻔한 녀석, 더 이상은 봐줄 수 없어!’진유경이 할머니를 보고 더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할머니!”김영희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아래층으로 내려가 진정훈과 마주 앉아 그를 노려보았다.“너 대체 뭐 하려고 하는 거야?”“저 할 말이 있어요.”그의 말에 세 사람은 동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호영은 본능적으로 진정훈을 쳐다보았다.진정훈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한 번 쭉 훑고 나서 말했다.“진유경이 진 씨 가문에 남길 정말 원해요?”“유경이는 반드시 진씨 가문에 있어야 해!”김영희가 단호하게 말했다.진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정말로 승낙하는 건가?’하지만 그들 모두 진정훈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거고 상황은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역시나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세 장의 서류를 들고 내려왔다.그 후 진유경, 할머니, 진호영에게 각각 서류를 건넸다.세 사람은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그러다 서류에 ‘주식 양도 계약서’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고 세 사람은 눈이 커졌다.“진유경이 진 씨 가문에 남아도 괜찮지만 여러분은 손에 있는 주식들을 전부 회사에 돌려줘야 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주식은 전부 고은영에게 주는 거죠. 그건 은영이에 대한 보상입니다.”진유경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김영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진호영은 진정훈을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서명하면 유경이 여기 남을 수 있어?”“아니, 모든 사람들이 서명해야 해!”진호영이 그렇게 말하자 진정훈은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가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을 뻔했다.‘이 녀석, 진유경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나? 진유경을 위해 자기 손에 쥔 주식까지 기꺼이 넘기겠다는 건가?’“안 돼, 유경이의 주식은 회사에 넘기지 않을 거야. 유경이는 진 씨 가문에서 이미 갖고 있는 게 얼마 없어.”그 주식은 진유경에게 매우 중요했다.진정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고은영의 그 건물을 불태운 순간 이미 넌 동생도 아니야!” “저 아니에요...” “인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도대체 뭘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그의 말은 단호하고 날카로웠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그의 태도에 진유경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심지어 무례하게 느껴졌다. “둘째 형, 유경이 말이 맞아. 유경이도 우리와 함께 자랐잖아...” “입 다물어!” 진정훈은 이제 진호영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만 들으면 너무 화가 나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 녀석, 진짜...’ 그는 진정훈을 슬픈 눈으로 한번 바라본 뒤 눈물이 가득한 진유경을 봤다. 진정훈은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았지만 진호영은 진유경을 정말로 아끼는 마음이 컸다. 김영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난 동의할 수 없어!” 그녀는 그 주식 양도 계약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이 주식은 진유경의 결혼 자금으로 쓰려던 것인데 어떻게 고은영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주식 양도의 수혜자는 고은영이었다! ‘그 저주받은 아이가 진정훈을 어떻게 홀린 거지? 진정훈이 돌아와서 이렇게 우리들과 싸우게 만들다니.’ 진정훈은 진유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너도 싫은 거야? 너는 고은영의 인생을 그렇게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잖아. 너 착한 사람이잖아? 너는 진 씨 가문 밖의 것들은 다 상관 없다고 했잖아.” ‘그전에 뭐라고 했던가? 분명 할머니랑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없다고 하더니. 지금 할머니와 함께 있을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왜 망설이는 거지? 진유경이 해야 할 것은 단지 주식을 내놓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싫은 거냐?’ 그게 바로 그녀가 말한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 것인가? 진유경은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주식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 이 주식은 그녀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만약 이 주식을 잃는다면 그녀는 진 씨 가문에서 무엇이 남겠는가? 그리고 오늘 그는 할머니와
안지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주원을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태웅에게 달려가서 바로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선명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지영 씨!” 안지영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 자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지 봐요!” “일단 지영 씨 먼저 사무실로 가요.” 장선명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위협이 묻어 있었다. 이 순간, 장선명은 나태웅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태웅이 여기서 안지영 씨에게 사과하라고 한다고?’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안지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안지영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 자식을 찢어버릴 거예요!” 지금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진짜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이 순간의 안지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장선명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자 안지영은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 아파요!” “약 안 바르면 진짜 흉터 남을 거예요.” 장선명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지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진짜 미쳤어! 확실히 다들 미쳤어!’ 그녀는 아직도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얼굴이 흉지게 될 걸 생각하니 결국 약을 바르러 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처리 좀 해줘요.” 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말했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요. 지영 씨가 만족하게끔 처리할게요!”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진이훈은 몸을 움츠렸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안지영은 장선명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이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안지영 씨!” “구이준.” 진이훈이 말을 꺼
하지만 나태웅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하주원은 바로 눈물을 훔쳤다. 방금 안지영과 싸울 때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태웅은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안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해.” 차갑게 뱉은 세 글자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가가 떨렸다. ‘사과?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고?’ 안지영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이훈은 나태웅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나 대표님, 설마...” 진이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태웅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과하라고.” 안지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의 말투는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말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안지영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하주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지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야, 정말 병 걸렸다고 이러기야? 어?” 그녀는 나태웅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알기에 이곳에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라니 나를 더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걸까?’ 안지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조각조각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이훈이 한 걸음 나섰다. “안지영 씨, 대표님께서는 그냥 이번 일은 사과하고 지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사과 안 하면? 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안지영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태웅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의 결정을 고수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그의
진이훈은 왕 비서가 장선명에게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안지영의 회사는 분명 장선명을 사위로 인정한 모양이다.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이훈은 나태웅이 얼마나 억울할지 마음이 아팠다. 이 기간 동안 나태웅은 무엇을 했던 걸까? 장선명은 비밀스럽게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안지영과 하주원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주원은 나태웅이 오자 억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왔네, 사촌 오빠! 이 여자가 나를 죽여버릴 뻔했어!”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비웃고 싶었다. ‘이 여자가 먼저 고자질이라니!’ 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았다. ‘저 눈빛은 뭐지? 내가 하주원에게 손을 댔다고 저러나? 나태웅은 진짜로 하주원의 말을 믿는 건가?’ 하주원은 여전히 울면서 말했다. 안지영은 장선명을 보자 화가 올라와 자신도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왔네요. 저 짐승이 갑자기 쳐들어 오더니 날 때리고 할퀴었다니까요.” ‘고자질? 누군 못하는 줄 알고?’ 그녀들은 마치 학교에서 싸운 초등학생 같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 부모님을 불러오는 초등학생 말이다. 나태웅은 안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선명에게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주원은 계속해서 울며 얘기했다. “정말 너무 잔인했어! 내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갔어!” 안지영도 대꾸했다. “제 얼굴도 할퀴어서 흉터 생긴 것 같아요!” 진이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선명의 비서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아가씨들이 이렇게 서로 고발하는 걸 보니 혹시 두 대표가 직접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태웅의 기운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위험해
안열은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이전에 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의식을 잃었을 때 회사는 안팎으로 위기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안진섭의 결혼식 때는 하늘 그룹을 삼키려 했다. 그때도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왕 비서가 말했다. “하주원이라는 여자와 싸웠습니다.” “하주원, 그게 누구예요?” 안열은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하주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 비서는 조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고 보니 그 여자가 바로 나태웅의 사촌 여동생이라니, 안열은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안 대표님 다치지 않게 해요. 제가 바로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안열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태웅이 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열이 돌아보았을 때 나태웅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는 나태웅이 안열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던 차였는데 상황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안열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 대표님, 이제 당신은 제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셔야겠죠? 왜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 안 대표님에게 손을 댔죠?” 그런데 나태웅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병원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안열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는 해명을 해줘야 할 차례 아닐까? 그런데 딱 이 시점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버리다니. 대체 이 사람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그때 진이훈이 뒤따라 나섰다. 안열이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
한편, 하늘 그룹에서는 안지영이 진이훈을 차단한 후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안지영의 세계는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나오자 비서부의 작은 비서가 다가왔다. “안 대표님, 접대실에 하주원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하주원?”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머릿속에서 그녀와 관련된 사람을 검색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서가 말했다. “나 회장님의 여동생의 딸입니다.” “나태웅의 사촌?” “네, 맞습니다.” ‘이런!’ 그제야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언제나 따라왔다. 안지영은 머리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금발의 긴 파마머리로 화려하게 꾸민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본래의 단아함을 가리고 풍만한 매력을 풍기며 섹시한 기운을 뽐냈다. 특히 짧은 청바지와 상의가 안지영의 머릿속에 두 글자를 떠오르게 했다. ‘불량소녀!’ 안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나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지만 그 순간 하주원의 화려한 화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린 아이섀도와 은색이 박힌 네일이 그녀에게서 여유보다는 떠도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주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안지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안지영 씨?” 하주원은 적대적인 어조로 물었다. 안지영은 그녀가 왜 왔는지 감을 잡았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를 찾으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나요?” 하주원은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대화는 금세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주원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안지영에게 다가갔다.
“안지영 씨가 오면 분명히 대표님을 때릴 거예요!” ‘때린다’는 말을 진이훈은 아주 세게 강조했다. 나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진이훈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보스가 정말 아픈 거였다. 병이 심각해 보였고 이런 상태로 가면 안지영까지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파서 안지영 씨까지 미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진이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태웅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아리 박사님이 이미 왔어요. 큰 도련님께서 의사와 협력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어요.”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이훈을 노려보았다. 진이훈은 그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말했다. “몸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진이훈도 답답했다. 나태웅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결국 나태웅과 함께 병원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니. 나태웅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는 마음속으로 더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웅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며 진이훈은 다시 물었다. “그럼 안지영 씨가 여전히 안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유골함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 돼.” ‘유골함을 열다니! 안지영 씨에게 유골함을 보여준다고?’ 나태웅이 그런 말을 하자 진이훈은 급히 인터넷에서 유골함을 열어본 사진을 찾았다. 그가 캠퍼스를 떠나 처음 일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지만 지금은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하다니. 안지영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서둘러 그 사진을 안지영에게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고 떴을 때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안지영 씨가 저를 차단했어요. 이제 귀찮아서 오지 않을 거예요.” 진이훈은 힘없이 말했다. 나태웅은 책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
안열은 처음엔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안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태웅이 말하길 제가 아침에 음식을 가져가지 않으면 화장 증명서를 받게 될 거라던데 지금 아침 시간이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났잖아요?” ‘한 시간 만에 죽었다고? 화장 증명서까지 나왔다고?’ 안지영은 결국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 나태웅, 진짜 못돼 먹었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도덕적으로 옭아매려고 하다니.’ 안지영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열은 뒤늦게 납득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럼 결국 장난친 거잖아요?” “화장 증명서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어요.” “설령 진짜 죽었다고 해도 병원에서 절차를 다 마쳐야 화장터로 갈 수 있잖아요.” 안지영은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 충격에 휩싸여 허둥대던 그녀는 이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바로 나태웅을 정말 죽여버려도 돼요?” 안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나태웅 이 자식, 미친 거 아니에요?” 안지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정신과 의사도 예약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이 진심으로 죽으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지영은 안열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초조해했죠?”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그걸 내가 잘못 볼 리가 있냐고?’ 아까 안열이 보였던 반응은 분명 초조함이었다. 안열은 더 이상 안지영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나태웅을 찾아가 따질 생각뿐이었다. 안열은 안지영의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회의하러 가세요.” “그럼 안열 씨는요?” “저는 마음을 좀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해요!” 안지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다니,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 나태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너무 지쳤다. 회의실로 올라간 안지영은 이제 겨우
‘진짜 너무 악랄해.’ 진이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 보스가 안지영 씨에게 얼마나 진심인데 그 마음을 완전히 짓밟아버렸어.’ 그는 나태웅의 손을 꼭 붙잡으며 혹시라도 그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훈의 끝없는 잔소리에 나태웅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러나 진이훈은 더 꽉 붙들며 간절하게 말했다. “우린 안지영 씨 생각하지 말자고요, 네?” 심지어 말 끝에 ‘말 잘 들어요’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나태웅의 눈빛이 점점 더 위험해지더니 낮게 물었다. “우리?” ‘뭐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잠시 멍해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우리가 아니라 대표님이 안지영 씨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이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으면 말조차도 안지영 씨와 관련되면 불편한 거야?’ “손 놔.” 진이훈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으며 강하게 말했다. “안지영 씨는 별로예요. 게다가 지금은 장선명 씨와 이미 사귄다는 소문도 있잖아요. 그런 여자를 정말 원하시겠어요?” “내가 손 놓으라고 했지.” 나태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힘을 주어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진이훈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웠다. 진이훈은 나태웅의 그 눈빛에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나태웅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안지영을 헐뜯어봐.” ‘이제 안지영 씨에 대해 나쁜 말도 못 하게 해?’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여자한테 얼마나 깊이 빠진 거야... 병이 이렇게 심한데도 안지영 씨를 지키려 하다니.’ 한편, 안지영은 진이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곧바로 메시지 창에서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 시도했지만 나태웅 쪽에서 받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지며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