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재는 강연찬을 힐끔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정말이지 강연찬의 이번 수는 진짜말 독했다. 아마 서유라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질 것 같았다.“저쪽 전문가들은 정신병 환자 다루는 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전문가들에게 봐줄 필요 없다고 잘 말씀드려. 어쨌든 미래의 사모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말을 하다가 강연찬은 그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미 서유라가 어떤 꼴을 당할지 뻔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그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자 안민재도 안도하며 조용히 물었다.“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우리 할 일 하면 돼. 저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설아가 연락할 거야.”강연찬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서유라를 겨냥한 건 의도된 일이었다. 그녀를 통제하고 절대 편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병상에서 눈을 뜨는 순간 남설아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코끝을 스치는 소독약 냄새가 역겨웠다.나은이가 아팠을 때부터 병원이란 곳이 싫었고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다시 병실에 누워 있었다.“깨어났네.”배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설아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기절한 건 연기였지만 저혈당 증세는 사실이었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나은이가 엄마의 복수를 돕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네.”그녀는 무표정하게 몸을 일으켰고 배서준을 외면한 채 고개를 숙였다.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불쑥 히아신스 꽃다발 하나가 들이밀어졌다.그 순간 남설아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히아신스를 좋아했지만 그 사실을 배서준이 알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즉 그는 지난 세월 동안 그녀를 기쁘게 할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단지 해주고 싶지 않았을 뿐.그걸 깨닫는 순간 남설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서는 어금니를 악물며 그를 노려봤다.“이게 무슨 뜻이죠?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데
“진짜예요?”남설아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맑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배서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억지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하자 독하게 내뱉으려던 말이 입안에서 맴돌기만 했고 결국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이 순간 남설아는 더욱 비웃고 싶어 졌지만 배서준을 더없이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배서준은 회사를 핑계 삼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이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이 여자에게 관심조차 없었으니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스스로가 왜 이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병실을 나오자마자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침대에 처참하게 묶여 있던 서유라는 배서준이 들어오자마자 몸을 필사적으로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그는 다가가 그녀를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고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도 떼어냈다.“서준아, 드디어 왔네, 나를 구하러 온 거야?"“다들 널 위해서야. 네 병이 심각해서 치료가 필요해.”그는 서유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눈빛엔 애정이 서려 있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한없이 차갑고 가혹했다.“나 병 안 걸렸어. 우리 집에 가자, 응? 다시는 문제 안 일으킬게.”서유라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유라야, 넌 원래 날 곤란하게 하지 않잖아. 그렇지?”“너희 동생 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지금은 남설아가 필요해.”배서준은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강요가 뒤섞여 있는 눈빛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애틋하게 쓰다듬었다.그 눈빛은 마치 그조차도 억울한 상황이고 서유라는 알아서 순응해야 한다는 뜻과 같았다.서유라는 이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껏 그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던 걸지도 몰랐다.‘대체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변한 거지?’‘맹세했던 사랑은 거짓이었
남설아는 강연찬이 이런 비꼬는 말투를 쓸 줄은 정말 몰랐다.그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선배, 내가 기억하기로는 예전에 이렇게 독설적인 스타일 아니었는데?”“새로 생긴 버릇이야. 왜? 불법이라도 돼?”강연찬은 태연하게 받아쳤다.하지만 남설아는 뭔가 이상했다. 강연찬이 자기한테 말할 때마다 은근한 불만과 분노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선배, 내가 기억하기론 선배한테 무슨 잘못한 일 없을 텐데?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거야?”“넌 배서준의 와이프잖아. 설령 나한테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흥!”강연찬은 말할수록 기분이 상하는 듯했고 심지어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그는 원래 남설아가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고 그녀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속으로 몰래 기뻐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을 줄 몰랐다.‘이게 무슨 일이래!’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남설아는 대충 짐작이 가서 웃으며 말했다.“우리 둘은 원래 그냥 쇼였잖아. 그렇게까지 열받을 일은 아니지? 난 내 걸 다 찾아오면 그 인간을 가차 없이 차버릴 거야.”“좋아, 그럼 내가 네 걸 되찾아 주지, 어때?”강연찬은 재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그의 눈빛은 너무도 또렷하고 진지했다. 그대로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왠지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남설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강연찬, 제발 이런 얘기하지 마.”“싫어. 꼭 해야겠어. 사실은 진작 했어야 했어. 남설아, 설아야, 나 너 좋아해.”강연찬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존재했다. 학창 시절 내내 가벼운 불씨처럼 은근한 감정이 있었지만 끝내 서로에게 확실한 고백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강연찬이 유학을 떠났고 그 기회는 사라졌다.그리고 지금
남설아의 말을 들은 강연찬은 조용히 손을 거두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그럼 널 기다릴게.”이것이 배서준과 강연찬의 차이였다. 배서준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했고 남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찬은 존중했고 기다려 주었다.그런 그를 바라보며 남설아의 마음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선배, 돌아가. 앞으로의 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요.”“응.”강연찬은 억지로 머물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남설아의 뺨을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팔로 스스로를 꼭 감싸 안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다음 날 아침 배서준이 다시금 히아신스를 들고 찾아와서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은 어떤 것 같아?”그의 얼굴에는 한없이 다정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마치 남설아가 그의 세상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이런 그의 태도에 마음이 설렜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이상 이런 가식적인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늦어버린 사랑과 관심은 하찮기 짝이 없었다. 하물며 그마저도 가짜라면 아무 가치도 없는 법이었다.남설아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네가 아이를 원하는 거 알아.”“임신하게 해 줄게.”그는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마치 그녀에게 크나큰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그 오만한 모습이 역겨워 견딜 수 없었다!남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다.“난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아이 가질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도 아이 싫어하잖아요. 굳이 억지로 만들 필요 있겠어요?"“남설아, 대체 뭘 바라는 거야?”배서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남설아가 전혀 기쁘지 않다는
배서준이 떠난 후 남설아는 책상 위의 히아신스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울 따름이었다!하지만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녀도 꽤 능숙했기에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 서유라의 방으로 향했다.지금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은 강연찬이 미리 손을 써 둔 상태였으니 서유라를 만나는 것도 문제없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남설아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서유라를 비웃듯 바라보았다.“배서준의 운명적 사랑이 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어?”“남설아, 이 천박한 년아! 넌 천하의 개자식이야! 잔인하고 간교한 악녀라고!”서유라는 남설아를 보자마자 치를 떨며 이를 갈았고 욕설도 모자라 그녀를 저주하기까지 했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묵묵히 참거나 애써 못 들은 척했을지도 있었다. 하지민 지금은 가만히 당하기만 할 남설아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한 걸음 성큼 다가가 그대로 서유라의 뺨을 후려쳤다.“천박해? 대체 누가 천박한 년인데? 배서준은 가정이 있고 와이프도 자식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달라붙은 건 너야. 진짜 뻔뻔한 건 너라고!”“잔인하다고? 감히 그런 말이 네 입에서 나와? 네가 뭘 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해? 나은이가 떠난 날 일부러 배서준을 붙잡아 둔 거 다 알아!”남설아는 그 일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분노로 터질 듯했다.서유라는 평소에도 늘 약한 척 가련한 척하며 동정을 샀지만 남설아는 그녀가 겉으로만 착한 척할 뿐 속은 시커먼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 모든 연약함은 고작해야 거짓된 가면일 뿐이었다.서유라는 눈앞의 남설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언제나 비굴하게 당하기만 하던 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칼날을 세울 줄이야.서유라는 분을 참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남설아, 배서준의 마음속엔 오직 나뿐이야. 그런데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수모를 주겠다고? 좋아, 두고 봐.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직접 배서준에게 이혼하라고 시킬 거야!”“내가 이혼을 두
문 앞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서유라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남설아는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배서준도 똑같이 당해봐야 마땅했다.자신의 병실로 돌아오자 네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모두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저는 인성훈입니다. 오늘 스타일링을 맡게 되었습니다.”“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드레스와 액세서리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걸로 고르시면 됩니다.”인성훈이 뒤에 준비된 물품들을 가리켰는데 모두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제품이었고 보석들은 국보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값비싼 것들이었다.그것들을 바라보며 남설아는 이번 기자회견과 저녁 연회가 꽤 중요한 행사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서준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그는 철저한 사업가라 이익이 보장될 때만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가장 비싼 걸로 할게요.”이미 차려진 밥상이라면 기꺼이 누릴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배서준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도 엿 정도는 먹일 수 있으니까.인성훈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전까지 남설아는 언제나 소극적이었고 선택하는 것도 최대한 보수적이며 저렴한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촌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종종 오갔다. 배서준의 와이프로서의 품격이 부족하다는 수군거림까지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렬했다.그런 변화가 반갑기라도 하듯 인성훈은 망설이지 않고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를 꺼냈다.이 드레스는 착용자의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디자인이었다. 노출이 상당한 편이었으며 특히 등이 거의 전부 드러나는 과감한 스타일이었다. 입어보지 않았는데도 남설아는 이 드레스가 얼마나 대담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드레스를 바라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
가볍게 화장을 마치자 더욱 완벽하고 세련된 얼굴이 드러났다. 인성훈은 자신의 작품을 보며 몹시 흡족해했다.그들은 분명 뛰어난 실력을 가진 스타일리스트였지만 그래도 타고난 외모가 좋은 사람을 손보는 게 더 즐거웠다. 없는 걸 창조하는 것보다 있는 걸 살리는 게 훨씬 쉬웠고 효과도 확실했으니까.마치 화장을 안 한 듯하면서도 완벽한 변화를 주는 것, 그게 바로 최고의 경지였다.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녀는 원래는 이렇게 눈에 띄는 색감을 좋아했었는데 배서준과 함께한 후부터 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점점 자신의 색을 지워나갔다. 그가 저속하다고 평가한 후 무의식적으로 그의 눈치를 보며 칙칙한 색의 옷들만 골라 입게 됐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는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이거 아주 마음에 드네요, 계산은 배서준한테 하라고 하세요.”남설아는 당당하게 말했다.이 정도 돈은 배서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 이상의 가치를 돌려줄 터였고 배서준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니까.거울 속 자신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보던 남설아는 문득 자신이 상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배건 그룹.배서준은 곧바로 도착한 4억의 명세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이게?”“사모님께서 오늘 저녁 파티에 입을 드레스와 주얼리입니다.”천기준이 담담하게 보고했다.그는 오랫동안 배서준을 보좌해 왔지만 사모님이 이렇게 큰돈을 쓴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급의 사모님들은 매달 이 정도는 기본으로 지출하고 있었다.남설아가 배서준의 와이프로 살면서 감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배서준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불쾌하게 중얼거렸다.“이제 돈 쓰는 재미라도 붙인 건가?”솔직히 그녀가 이 정도를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면 자기한테도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마지못해 결제 서명을 했다.‘그래
“그래요? 이게 바로 방금 국제 슈퍼모델이 런웨이에서 입은 신상인데 뭐가 가볍다는 거죠?”“정말 고지식하다니까요.”남설아는 대놓고 눈을 굴리며 그의 가스라이팅을 단칼에 거절하고 한 마디로 맞받아쳤다.이건 정말 전례 없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배서준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고 그는 온갖 방식으로 남설아를 깎아내렸지만 그녀는 감히 반박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신이 정말 잘못한 게 아닌지 반성하곤 했다.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남설아는 더 이상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이 잘못됐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아까 스타일리스트들조차 예쁘다고 감탄했는데 유독 이 남자만 혼자 시커먼 얼굴을 하고 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도 없고 분위기나 망치는 수준이었다.배서준도 자신이 단 두 마디 던졌을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말을 되돌려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그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남설아, 이게 네 새로운 수법이야? 이렇게 해서 내 관심이라도 끌어보겠다고? 헛꿈 꾸지 마.”“대체 누가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네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남설아는 완전히 인내심이 바닥났다.오늘 화장이 너무 잘 돼서 이미지 망가질까 봐 참는 거지,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배서준의 대가리에 하이힐을 내리꽂았을 것이었다.‘보는 눈 하고는? 안과나 좀 가보시지? 대표라는 사람이 병 보일 돈은 없는 거야?’돈은 그렇게 많으면서 병원 갈 생각은 안 하나?속으로 배서준을 온갖 욕설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후 그녀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그대로 지나쳤다.‘지금 여기 기자들도 없는데 쇼를 할 필요가 없잖아?’솔직히 남설아는 이제 배서준이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혐오로 변해버렸다!이 남자와 닿기만 해도 역겨울 지경이었지만 배건 그룹의 핵심 자료를 손에 넣고 원래 자기 것이었던 걸 되찾기 전까지는 참아야 했다!남설아는 배서준 따위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기만 하면 인생이 이렇게도 평온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서도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알았어, 누나. 이 일은 나한테 맡겨.”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누나가 만족할 만큼 깔끔하게 처리할게.”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도현이 너라면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절대 흔적을 남기면 안 돼.”“걱정 마, 누나.”서도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전문가들이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그렇게 서도현은 조용히 킬러 몇 명을 접선해 남설아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성공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그 말에 킬러들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돈 냄새에 눈이 먼 그들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그들은 남설아를 몰래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한편, 강연찬은 최근 배서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배서준이라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인물이었다.남설아의 안전이 걱정된 강연찬은 그녀 주변의 보안을 은밀히 강화했다.신뢰할 수 있는 경호원들을 붙여 24시간 감시하게 하고 그녀의 집 주변에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했다.그리고 결국 암살 시도가 벌어진 날, 킬러들이 남설아의 집 안으로 침입했다.완벽하게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이미 감시망에 포착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남설아에게 칼끝이 겨누어지려는 순간, 강연찬이 경호원들과 함께 들이닥쳤다.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강연찬은 혼자서도 여러 명을 상대할 만큼의 실력을 지녔기에 전혀 물러섬 없이 킬러들과 싸웠다.경호원들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격렬해졌고 결국 킬러들은 모두 제압되었다.남설아는 다치지 않았지만 강연찬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칼에 복부를 찔렸고 피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경호원들이 급히 강연찬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긴급 수술이 시작됐다.소식을 들은 남설아는 모든 걸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수술실 앞, 그녀는 눈물과 함께 기다림을 견뎠다.가슴은 쿵쾅거리며 터질 듯 뛰었다.‘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해.’그녀는
배건 그룹의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고 시가총액은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주주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배서준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남설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건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남설아가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진짜 끝장날 것이었다.그는 남설아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때 이곳은 배서준도 함께 쓰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외부인, 불쑥 찾아온 침입자일 뿐이었다.남설아는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침착해 보였다“남설아.”입을 열었지만 배서준의 목소리는 몹시 갈라져 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왜 왔어요?”그녀는 담담하게 물었다. 말투에서도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나... 얘기 좀 하려고 왔어.”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우리가 아직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하죠?”남설아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엔 조롱이 가득했다.“내가... 예전에 잘못했어.”배서준은 고개를 숙이며 후회의 기색을 보였다.“하지만 지금은 내 잘못을 인정하고 벌도 받았어. 그러니까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어?”“봐달라고요?”끝내 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렸다.“배서준 씨, 미안하다 한마디로 나한테 준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난...”입을 뗐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남설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일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당신은 우리 딸을 죽였고 내 인생을 망가뜨렸어요. 나로 하여금 모든 걸 잃게 만들었죠!”남설아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냥 한 번만 봐달라고요? 당신이 뭔데요?”“보상할게.”배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나를 용서만 해준다면 뭐든 다 줄게. 배건 그룹도 넘기겠어. 네가 원하면 다 줄 수 있어!”“보상?”남설아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두 사람이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배서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야?”배서준은 전화를 받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큰일 났어요!”전화 너머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인터넷에 갑자기 대표님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폭로됐어요, 지금 이미 난리가 났습니다!”“뭐?!”배서준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정말로, 인터넷에는 배서준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도배처럼 퍼져 있었다. 사생활 문란, 직권 남용, 상업 사기 혐의 등, 하나하나가 그를 사회적으로 몰락시킬 만큼 심각했다.“이... 이게 무슨 일이야?”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배서준은 자신이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준아, 무슨 일이야?”서유라는 배서준의 얼굴이 안 좋아지자 급히 물었다.“문제가 생겼어.”배서준의 목소리가 떨렸다.“누군가 내 불법적인 정보들을 인터넷에 폭로했어.”“뭐?!”서유라도 크게 놀라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그랬어?”“남설아 그 악질인 여자 말고 누가 있어?”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건 분명 나에게 복수하려는 거야!”“못된 사람, 진짜 끝까지 집착하네?!”서유라도 분노했다.“서준아, 그럼 우리 지금 뭐 해야 해?”“뭘 어떡하긴? 빨리 대처해야지!”배서준이 고함을 질렀다.“언론에 연락해서 이 부정적인 뉴스를 덮어야 해!”“하지만 대표님,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쉽게 덮기 어려울 것 같아요.”비서의 목소리에는 무기력함이 묻어났다.“상관없어! 돈이 얼마나 들든지, 이 부정적인 뉴스는 무조건 덮어야 해!”배서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것도 못 덮으면 너희들 다 잘려야지!”비서는 배서준의 분노에 놀라 몸을 떨며 급히 대답했다.“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비서가 사무실을 떠난 후, 그의 뒤로 욕설이 퍼져 나왔다.처음엔 부부였고 남설아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남 대표님, 요즘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천기준이 머리를 싸매며 전화를 걸었다.“배 대표님이 이번에 정말 대단하게 준비했어요. 여러 회사를 끌어들여서 저를 처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남설아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 1면에 그녀와 몇몇 경쟁 회사들 간의 불법 경쟁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내용은 말도 안 되는 루머와 비방으로 가득했다.“남 대표님, 이번 일은 정말 심각해요. 이미 몇몇 고객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천기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도 빨리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알아요.”남설아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배서준, 정말 강수를 두었네요. 내 명예를 훼손하고 내가 업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천기준이 물었다.“기자 회견을 열어서 이 루머들을 해명할까요?”“소용없어요.”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배서준이 이렇게까지 한다면 이미 완벽한 준비를 마친 거예요. 우리가 뭐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나요?”천기준이 초조한 듯 물었다.“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할 거예요!”“물론 가만히 있지 않아요.”남설아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그 사람이 원한다면 끝까지 함께 할 거예요. 그 사람이 음모하기를 좋아하니까 이제 나도 똑같이, 당한 만큼 갚아줄 거예요!”“무슨 계획이 있으신가요?”천기준이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네, 몇몇 언론과 연락 해서 이 불법적인 자료 퍼뜨려줘.”남설아가 말했다.“배서준을 모두의 표적이 되게 할 거야.”“알겠어. 바로 처리할게.”그러자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떠났다.남설아는 송우민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와 동시에, 배건 그룹 대표 사무실에서 배서준은 서유라의 보고를 만족스럽게 듣고 있었다.“서준아, 네 계획 정말 대단해!”서유라가 배서준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설아 씨 이번에 완전히
배서준은 파일을 받아들고 단숨에 훑어봤다.이마는 점점 더 깊이 찌푸려졌고 얼굴빛도 차츰 싸늘하게 변해갔다.“이 미친년...!”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송우민이랑 엮여 있다니, 그것도 회사 기밀까지 빼돌렸다고?”“서준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서유라가 조용히 물었다.“폭로해야지.”배서준의 눈에는 분노가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저 여자의 진짜 얼굴을 세상에 알려야 해. 남설아, 반드시 망신당하게 만들 거야.”“좋아, 나도 도와줄게.”서유라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무슨 결정을 하든 난 언제나 서준이 네 편이야.”배서준은 그런 서유라를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고마움을 느꼈다.“유라야, 고마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서유라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린 반드시 이길 수 있어.”“그래. 꼭 이겨야지.”배서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빛에 희망의 불씨를 띄웠다.서유라의 도움을 받아 배서준은 자신이 가진 언론 인맥을 총동원해 반격에 나섰다.언론은 연일 난설아와 송우민의 관계를 보도했고 그가 말한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기밀’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에 자리 잡았다.뉴스는 삽시간에 퍼졌고 난설아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줬다.“대표님, 이거 보세요.”비서가 안색이 어두운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손에는 신문과 기사 프린트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언론이 완전히 날조된 이야기로 도배됐습니다.”난설아는 차분하게 신문을 받아들고 몇 장 넘겨봤다.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배서준 짓이네요.”“딱 봐도 그렇죠.”비서는 씩씩대며 말했다.“정말 비열해요, 그 인간.”“예상한 수순이에요.”난설아는 무심히 말했다.“몰린 자는 뭐든 하게 돼 있으니까.”“그런데 이대로 두실 건가요? 대표님도 대응하셔야죠.”“물론이죠.”난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만히 앉아서 당하진 않아요.”“무슨 계획이신가요?”“언론사 몇 군데 연결해줘요. 기자회견 열 겁니다.”그녀는 단호하
사무실 안, 이사들은 치열한 논의 끝에 결국 배서준의 직무 정지를 결정했다.“배건 그룹에 배 대표 하나밖에 자식이 없어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으면 애초에 회사를 배 대표 손에 넘기지도 않았을 거야!”“이제 나가보게.”배서준은 이를 악물었다.아무리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도 이사회 전체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간신히 문을 나서자마자 안에서는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왔다.“역시 회장님이 지분을 바로 넘기지 않으셨던 이유가 있었지. 설아 씨가 떠난 뒤, 회사가 이 지경이 됐잖아.”그 말에 배서준은 이마를 세게 찌푸렸고 자기 사무실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대표님, 이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비서 최두식이 그를 바라보며 애타게 말했다.“지금은 회사 존폐의 기로예요. 대표님이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배서준은 무기력하게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눈은 텅 비었고 생기도 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정신을 차리라고? 어떻게?”그는 쉬이 들릴 듯 말 듯 낮고 거칠게 중얼거렸다.“남설아 그 여자는... 날 완전히 망가뜨리려 하고 있어. 배건 그룹까지 함께.”“대표님,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최두식이 재빨리 말했다.“그 여자의 약점만 찾을 수 있다면 우린 다시 반격할 수 있어요!”“약점? 그 여자는 빈틈이 없어. 모든 게 치밀하게 계획돼 있다고.”배서준은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약점을 찾아낸다 해도 뭐가 달라지겠어? 주주들이 이미 전부 그 여자 편인데.”“그래도...”“됐어.”배서준이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잠깐 혼자 있고 싶어. 나가봐.”그러자 최두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네...”곧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다시 사무실 안엔 고요가 내려앉았고 배서준은 눈을 감았다.자꾸만 머릿속을 스치는 건 남설아의 싸늘하고 단호한 얼굴이었다.‘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언제나 계획을 쥐고 판을 움직이던 사람 아니었나? 설마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야.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남설아야
“뭘 더 어쩌겠어?”배서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다 남설아, 그년 때문이야. 완전히 배건 그룹을 무너뜨릴 작정이잖아!”“대표님, 우리 경찰에 신고하는 건 어떨까요?”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남설아 씨가 의도적으로 회사를 모함했다고 하면...”“신고해서 뭐해?”배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기사들 죄다 사실이야. 반박할 방법이 없다고.”“그럼 정말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비서는 속이 타들어 가는 듯 울상으로 물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끝장이에요...”“잠깐만... 생각 좀 하자. 생각 좀...”배서준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그때, 서유라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서준아, 너무 걱정하지 마.”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배서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내가 항상 곁에 있을게.”“유라야, 그래도 너만은 날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야.”배서준의 눈가에 진심 어린 감동이 어렸다.“이런 때에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우린 부부잖아. 당연히 함께해야지.”서유라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 어려움 반드시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거야.”“그래... 우리가 마음을 모으면 반드시 남설아 그 여자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순간, 서유라의 눈동자엔 잠시 싸늘한 기색이 스쳤다.‘걱정 마, 서준아. 난 네 편이니까.’그녀는 속으로 중얼댔다.‘남설아... 이번엔 가만두지 않겠어. 네가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려주겠어.’한편 남설아는 조용히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그녀는 배건 그룹의 주요 주주들에게 하나씩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안 대표님, 최근 배서준 씨의 결정들에 많이 실망하셨다고 들었습니다.”남설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제가 그 사람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정보요? 어떤 겁니까?”안 대표는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였다.“그 사람 회사 자산을 몰래 빼돌리
“남설아, 여긴 뭐하러 온 거야?”배서준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평소와 달리 그 말투에는 감추지 못한 당황이 실려 있었다.남설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조용히 회의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며 주주들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의심, 불만, 그리고 은근한 기대.잠시 후,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뭐긴요? 예전엔 여러분과도 나름 친분이 있었죠. 지금처럼 회사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제가 한 번쯤 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게다가 저번에도 제가 몇 가지 개선안을 드리지 않았나요?”그 말이 떨어지자 배서준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설아 씨, 그 말은 이미 배 대표님에게도 들었습니다.”한 주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회사는 여전히 이 모양 아닙니까.”“그건 배 대표님의 개혁이 미흡했기 때문입니다.”남설아가 단호하게 받아쳤다.“저는 그보다 더 과감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요.”“그런 말, 무슨 근거로 하는 거지?”배서준이 참다못해 물었다.“이걸 보면 알게 될 거예요.”남설아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 한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여기엔 배건 그룹 내부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제품 품질 문제, 직원 처우 문제 등... 전부 다 주가 하락의 원인이죠.”“남설아,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배서준의 얼굴이 일순 새파래졌다.“너 지금 배건 그룹을 무너뜨리겠다는 거야?”“배건 그룹을 무너뜨린다고요?”남설아는 코웃음을 쳤다.“웃기지 마요. 배건 그룹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게 누구였는지 스스로는 모르겠어요? 나예요, 그저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너...!”배서준은 분노에 치를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좋아요, 설아 씨. 이번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조용히 듣고 있던 한 주주가 입을 열었다.“제발 우리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그럴 일 없을 겁니다.”남설아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고 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남설아를 바라봤다.지금의
서유라의 행동은 곧바로 남설아에게 감지되었다. 이제 서유라가 막다른 길에 몰려 발악을 시작했다는 걸 남설아는 단번에 알아챘다.“송우민, 우리 계획을 앞당겨야겠어.”남설아는 바로 송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유라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언론을 접촉했더라. 우리 관계를 폭로하려는 모양이야.”“그래?”송우민의 목소리는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차분했다.“그 여자, 결국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군.”“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할까?”남설아가 물었다.“막아야 하지 않을까?”“아니.”송우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맡겨둬. 오히려 시끄러울수록 좋아. 그래야 배서준도 저 여자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게 될 테니까.”“하지만... 정말 우리의 관계가 공개되면 우리 명성에 큰 타격이 있을지도 몰라.”남설아는 아직 걱정이 남은 듯 조심스레 말했다.“걱정 마. 내가 다 준비해뒀어.”송우민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냥 내 말만 믿고 따라와.”“알겠어. 믿을게.”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내가 뭘 하면 될까?”“아무것도 하지 마.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면 돼.”송우민이 덧붙였다.“이제부턴 내가 처리할 차례야.”주주총회 날이 다가오자 배서준은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남설아가 어떤 폭로를 준비하고 있을지, 얼마나 많은 약점을 쥐고 있는지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서준아, 너무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배서준을 다독였다.“이미 다 준비해뒀어. 설아 씨가 무슨 짓을 하든 이번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완전히 끝장내 줄 거라고.”“그래야 할 텐데...”배서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번만큼은 정말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고 있어.”드디어 주주총회가 시작됐다.배건 그룹 회의실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찼고 배서준은 의장석에 앉아 긴장된 표정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여러분, 오늘 이렇게 모인 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함입니다.”배서준은 마른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최근 주가가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는 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