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1화

Author: 목련청
남설아의 눈물이 끝내 떨어지고 말았다. 평생의 눈물은 오직 배나은을 위해 흘릴 줄만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배서준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사랑해온 사람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해온 사람이었으며 심지어는 모든 걸 참고 견뎌줄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사람이 사람답지도 못한 인간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손익 계산뿐, 자연의 법칙이라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마치 배나은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개처럼, 아니, 그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처럼, 없어져도 그만인 한낱 풀잎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 마음속엔 단 한 번도 딸을 품은 적이 없었다. 배나은이란 존재는 배서준의 인생에서 단 한 줄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당신이 날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건 알아요. 날 미워해도 좋아요. 하지만 나은이는,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었어요!”

“서준 씨, 내가 이 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당신과 함께 나은이를 낳은 것, 그리고 당신이 나은이의 친아빠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남설아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눈가는 부어오를 대로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남설아는 그동안 수년간 배서준 앞에서만큼은 늘 감정을 억제해온 사람, 한 번도 이렇게 미친 듯이 소리친 적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표정은 너무나 처절했고 그 광기 어린 모습에 배서준은 혐오를 드러냈다.

“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언제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게 마땅해.”

“딸은 죽었고 우리 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됐어. 이걸로 서로 비긴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랑 돌아가. 넌 여전히 배씨 가문 사모님이야.”

배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다음 수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지금 남설아가 붙들고 있는 이 감정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하지 않은 아이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남설아는 완전히 깨달았다.

이 사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굿바이 쓰레기   제62화

    남설아가 끝까지 체면을 버린 이상, 배서준도 더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그는 지시를 내렸다.“당장 남도일을 찾아와.”“대표님, 남도일은...”비서인 천기준은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배서준의 날카로운 눈빛에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남도일은 지금 복역 중입니다.”‘감옥에 있다고?’그 말에 배서준은 다소 놀란 기색을 드러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예전에 빚이 있었는데 수표가 부도 처리되자... 남설아 씨가 빚 대신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로 강연찬 쪽에서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리고 감옥에 보냈다고 하더군요.”천기준은 이런 건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뭐라고?”배서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왜 나는 몰랐지?”그의 날 선 질문에 천기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마누라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지금 와서 직원한테 화풀이하면 뭐가 달라지나?’“나가.”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손을 휘저었다.‘남도일이 분명 남설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그 끈이 이미 끊어졌다고?’강연찬은 배서준에게 있어서 진짜 재수 없는 재앙 그 자체였다.창가로 다가가 복잡한 도로를 내려다보며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남설아, 이 모든 건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한편 남설아 역시 미친 듯이 원고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반드시 배서준을 사회적으로 끝장낼 작정이었다.사람은 자신의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특히 배서준 같은 자는 더욱 그래야 했다.그가 무슨 자격으로 이 모든 걸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그때 강연찬이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그러고는 손에 들린 배달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배서준, 반격 시작했어.”“반격?”남설아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떴다.“어떤 반격?”“네가 그때 얼마나 온갖 수를 써가며 그와 결혼했는지, 어떻

  • 굿바이 쓰레기   제63화

    사실 지금의 배건 그룹은 이미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심지어 적자도 꽤나 쌓여 있었다.그러니까 만약 정말 정면 충돌하게 된다면 남설아가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망가진 회사를 떠안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 결과는 그녀가 아무것도 모를 때에나 가능한 얘기였다.지금처럼 모든 것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 배서준 뜻대로 되게 둘 수는 없었다.“오빠, 이것 좀 흘려줘.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아니면 이쪽에 더 관심이 많은지 한번 보자고.”남설아는 비웃듯 콧소리를 내며 옆에 있는 강연찬을 올려다봤다.강연찬은 넘겨받은 자료를 훑어보았다. 비록 핵심 자료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이 됐다.“역시 내 후배답네. 대단해.”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설아는 어쩐지 조금 민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자기 앞에서 바로 해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자신을 피해자인 양 포장하려고? 그럼 더더욱 그렇게 못하게 만들어야지.’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새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처음엔 많은 네티즌들이 또 하나의 재벌가 막장극인가 하고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곧 전문가들이 등장해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기 시작했다.그들은 하나둘씩 실마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이거, 회사 자산을 빼돌린 거 아닌가요?][데이터가 완벽하진 않아서 단정하긴 어렵지만 느낌이 그래요.][헐... 이게 진짜면 콩밥 먹으러 가는 거 아님?][결혼해서도 전 여자친구랑 엮인 거야 그렇다 쳐도 이건 감정이 아니라 돈 문제잖아.이건 선 넘은 거지.]점점 거세지는 여론은 곧바로 배건 그룹의 이사회에까지 닿았다.배씨 가문이 절대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다른 주주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이들은 평소엔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주식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강연찬에게 그 자금을 맡

  • 굿바이 쓰레기   제64화

    원하는 게 분명하다면 그만큼의 대가는 감수해야 했다.아마 배서준에게 너무 깊이 상처받았기에 지금은 목적이 확실한 사람이 오히려 덜 두렵고 감정에 휘둘려 움직이는 사람이 더 두려웠는지도 몰랐다.남설아가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자 강연찬은 울컥한 듯 그녀의 코를 꼬집으며 툴툴댔다.“너 진짜 무심하긴 무심하다!”“아야!”남설아는 즉시 반격하며 그의 손을 탁 쳐냈다.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강연찬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떴고 남설아는 그를 배웅하려고 문을 열었다.하지만 그 순간 카메라와 마이크, 질문들이 쏟아졌다.“사모님, 여기가 바람피운 장소 맞습니까?”“옆에 있는 이 남성과의 관계는요? 정말 혼인 중에 외도를 한 건가요?”기자들의 질문은 시작부터 칼날 같았다.남설아는 단박에 알아챘다. 이 기자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 주소까지, 전부 배서준의 작품이었다.그는 분명 지금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내가 망신당하고 눈물 흘리며 허둥대는 장면을 기대하고 있겠지. 언제나 그랬듯 그 사람 눈에 난 무능한 존재일 뿐이었으니까.’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나은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 남설아는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그녀는 흔들림 없이 기자들을 마주했고 오히려 강연찬을 은근슬쩍 보호하는 태도까지 보였다.“여러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저와 배서준 씨는 이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상태입니다.”“그리고 이분은 제 선배이자 파트너인 강연찬 씨입니다. 저희 둘이 함께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필요하신 분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제가 직접 할인도 해드립니다.”기자들이 진흙을 던지는 와중에도 남설아는 이 상황을 홍보 기회로 바꿔버렸다.“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결국 본인이 혼인 중 외도를 인정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혼까지 간 거고?”“회장님이 물려준 지분도 결국 이 남자한테 다 퍼주신 거 아닙니까?”기자는 집요하게 파고들며 남설아를 수치스러움의 중심에 세우려 했다.그러나 남설아는 결코

  • 굿바이 쓰레기   제65화

    “사과는 필요 없어요. 변호사한테 받을 서류나 기다리시죠.”강연찬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내뱉고는 그대로 지나쳐 나가버렸다.남설아는 오히려 그녀를 동정하듯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기자님, 시간 되시면 강씨 가문 법무팀 수준 좀 알아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그러고는 문을 쾅 닫았다.이제 배씨 가문은 체면도 실속도 완전히 잃었다. 반격도 엉망진창으로 망해버렸다.배건 그룹, 홍보팀.“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평소의 냉철하고 침착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배서준의 얼굴은 시커멓게 질려 있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그대로 책상 위에 내던졌다.홍보팀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하나같이 억울한 심정이었다.누가 이런 사태를 예상했겠는가? 결정적으로 이 사단은 자기네들이 만든 것도 아니지 않은가?‘못된 짓들은 다 자기가 해놓고 왜 지금 와서 책임을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야?’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배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지다가 폭발했다.“다 죽은 거야? 왜 말을 안 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마지막 한마디는 거의 고함이었고 홍보팀 사무실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모두 숨조차 죽인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간 누구든 한 방에 잘릴 분위기였다.그때, 천기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대표님, 이사님들이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 사람들이 지금 왜 온 건데!”배서준은 다시금 분노했다.그들이 왜 왔겠는가?말할 것도 없이 자산 유용 건을 따지러 온 것이었다.회사 통장이 텅 비어 있지는 않은지 그걸 확인하러 온 게 분명했다.그 시각, 남설아도 회의 참석 통보를 받았다.지금 그녀는 배건 그룹의 최대 주주이기에 이사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거울 앞에 선 그녀는 차분하게 검정 수트를 꺼내 입고 옅은 메이크업을 했다.분위기는 냉정하고 단호했다.눈빛은 더없이 매서운 것이 말 그대로

  • 굿바이 쓰레기   제66화

    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향하는 게 아니야. 배서준이지.”만약 배서준이 재산을 빼돌리고 배건 그룹을 무력화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질책하려고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남설아는 단순히 전달자이자 증인일 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하니 남설아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이제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서준이 궁지에 몰린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그를 처음 만난 이후 줄곧 높은 곳에 서 있던 배서준의 모습만 봐왔다. 남설아는 그런 모습을 이제 질릴 만큼 충분히 보았다.그녀가 이렇게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자 강연찬은 만족스러워하며 미소 지었다.“그래, 이게 바로 너야. 우리 설아.”학창 시절 강연찬은 남설아를 ‘우리 설아’라고 불렀었다. 지금 다시 불러도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정작 남설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두 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움켜쥔 채 그녀는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얼굴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곧 배건 그룹에 도착했다. 남설아는 차에서 내리기 전, 미리 준비해 둔 하이힐로 갈아신었다.그러고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 보인 뒤, 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입구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천기준이 직접 내려왔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한 뒤, 함께 위층으로 향했다.“사모님...”“설아 씨라고 불러요.”남설아는 단번에 호칭을 정정했다.예전에도 밖에서는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사이인데 왜 굳이 가식적으로 예의를 차려야 한단 말인가?“설아 씨, 지금 모든 이사진이 회의실에 모여 있습니다. 대표님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버티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남설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비꼬듯

  • 굿바이 쓰레기   제67화

    지금 남설아는 배건 그룹에서 배서준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였다. 따라서 이 자리는 당연히 그녀가 앉아야 할 자리였다.그러나 한 남자가 이를 가로막으며 단호하게 냉소를 내뱉었다.“네가 뭔데? 그저 집에서 빨래나 하고 애나 보는 가정주부 주제에 지분 좀 있다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이 말은 분명 의도적으로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주식 보유량도 중요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었다.배건 그룹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서준의 뛰어난 사업 수완 덕분이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사진들 역시 속으로는 그에게 더 기대고 있었다.반면 남설아는? 그들의 눈에는 단지 집에서 빨래하고 요리하며 아이나 키우는 가정주부일 뿐이었다.조용히 집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모를까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러나 남설아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컵을 그대로 들어 올려 그 남자의 머리에 힘껏 내리꽂았다.“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순종적이고 나약하기만 했던 여자가 감히 이렇게 대놓고 폭력을 행사할 줄은 말이다.머리를 감싸 쥔 채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그는 남설아를 바라보았다.“감히...!”“왜요? 내가 감히 못 할 것 같아요?”남설아는 반으로 깨진 컵을 단단히 쥐고 위협적으로 내밀었다.“더 맞아보고 싶으면 한 번 더 떠들어 봐요.”남자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지만 여기서 더 나섰다가는 정말 들것에 실려 나갈 수도 있었다.결국 억울한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 채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남설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냉정한 시선으로 배서준을 바라보았다.“배 대표님, 이렇게 주주들을 모두 모아놓고 무슨 중요한 안건이라도 있나요?”“제가 알기로 오늘은 주주총회 일정이 아닌데요?”이 말 한마디가 배서준을 그대로 궁지로

  • 굿바이 쓰레기   제68화

    “남설아!”배서준이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돌진해왔다.남설아는 애초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배서준이 평소에도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여 그녀는 주머니에 미리 숨겨두었던 전기충격기를 꺼내더니 그대로 배서준의 배에 찔러 넣었다.전류가 흐른 소리와 함께 배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배 대표님, 여긴 회사입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지금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한다면 정식으로 신고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남설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배서준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경고했다.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는 태도였다.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이미 배서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모두들 일제히 노트북을 열고 메일함을 확인하며 그녀가 보낸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순식간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처음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사들이 실제 자료를 보며 얼굴빛을 하나둘 굳히기 시작한 것이다.정작 온라인에서 퍼졌던 건 전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천기준이 다급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배서준을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병원에 가보셔야...”하지만 배서준은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남설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랑 나는 부부잖아! 내 것이 곧 네 거 아냐?”“그래요? 그럼 당신 말이 맞는지, 당신 양심에 한번 손 얹고 생각해봐요.”남설아는 냉소를 띠며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하게 쏘아붙였다.“만약 당신 것이 내 거였다면 왜 내 딸은 고작 1억 2000만 원의 치료비 때문에 죽어야 했을까요?”1억 2000만은 남설아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숫자였다.딸이 병원에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때, 배서준은 똑같은 돈으로 다른 여자를 위해 불꽃놀이를

  • 굿바이 쓰레기   제69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나가버리다니 이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천 비서님, 뭐라도 말씀 좀 해보세요!”회의실 한가운데 천기준 혼자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불쌍할 정도로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내가 뭔 말을 해?’솔직한 얘기는 할 수 없고 거짓말은 아직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다.결국 그는 침묵으로 모든 걸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천기준의 그런 모습에 이사진들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당장이라도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심정들인 듯 보였다.하지만 이들은 끝내 선을 넘지 않았다.결국 그도 한 명의 월급쟁이일 뿐, 같은 처지의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누구도 진짜 책임을 묻긴 어려웠다.한편, 배건 그룹을 나온 남설아는 온몸이 가뿐했다.햇살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그동안 쌓였던 모든 어둠과 고통이 마치 한순간에 사라진 것만 같았다.“나은아, 보고 있지? 엄마가 해냈어. 엄마 멋지지? 걱정하지 마. 엄마, 진짜 열심히 살아볼게.”남설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잔잔히 웃었다.하지만 그 미소와 함께 눈물 한줄기가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그만큼 딸이 그리웠다.“남설아, 이 못된 년!”“혼자 살겠다고 서준이를 망치겠다는 거야?”갑자기 어디선가 서유라가 나타나 살기를 띠며 소리쳤다.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팔을 치켜올려 뺨을 후려치려 했다.하지만 지금의 남설아는 더 이상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서유라의 손목을 단번에 낚아채고 망설임 없이 똑같이 한 대 갈겼다.“서유라, 남의 가정 쑤셔놓고 숨도 못 쉬는 불륜녀 주제에 내 앞에서 떠들 자격은 없지.”“배서준이 그쪽한테 준 돈, 그건 다 내 몫 절반이 들어간 거야. 그건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니까 돌려받을 권리는 나한테도 있어.”남설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마치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강하게 말을 내뱉었다.“참, 너희 집 망해서 돈 없지?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Latest chapter

  • 굿바이 쓰레기   제236화

    “서유라 씨가 저보고 개래요. 대표님은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천기준은 말할수록 억울함이 북받쳤다.명문대 출신에 수년간 배서준을 따라 일해 왔건만 돌아오는 건 모욕뿐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된 사과나 공정한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니.‘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일하는 사람도 사람인데, 감정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데!’“뭐요?”남설아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설마 이런 이유였단 말이야? 진짜로 이 일 때문이었어?’배서준은 지금 서유라한테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이젠 이성이 마비됐는지 자기 옆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을 모욕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질 않나?진짜 머리에 뭐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아니,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걱정 마요. 이번 일은 내가 기억해둘게요. 언젠가 꼭 되갚아줄 겁니다.”“지금 당장 회사 최근 5년간의 핵심 자료가 필요해요. 구할 수 있어요?”이미 서로 손을 잡기로 한 이상 남설아는 더는 멋쩍게 굴 필요가 없었다.이젠 파트너이니 필요한 건 당연히 요구할 수 있었다.천기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구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내일 밤까지 드릴게요.”이렇게 말하고 일어선 천기준은 망설이다가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 이제부터 설아 씨 편이에요. 그 말은 곧 배 대표님을 배신하겠단 뜻이죠. 모두가 배신자를 어떻게 보는지 저도 잘 알아요. 그리고 설아 씨도 목적 달성하면 절 옆에 두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 돈이 필요해요. 멀리 떠나서 새 인생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요.”사실 남설아는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좋았다.뒤에서 어정쩡하게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았다.결국 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200억. 일 끝나면 200억 줄게요. 멀리 떠나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예요.”“감사합니다, 남 대표님!”천기준은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솔직히 처음엔 남설아 성격상 많아야 몇억을

  • 굿바이 쓰레기   제235화

    바보도 아닌데 서유라가 천기준의 말에 담긴 냉소와 비아냥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천 비서님은 그냥 서준이 옆에 붙어 다니는 개일 뿐이잖아요! 근데 감히 나한테 이빨을 드러내요? 일하기 싫어진 모양이죠?”그러자 천기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대꾸했다.“죄송합니다, 서유라 씨. 저는 배 대표님의 개가 아니라 비서거든요. 개가 좋으시면 대표님께 새로 한 마리 사달라고 하시죠.”서유라는 천기준이 이렇게까지 대들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뺨을 올려쳤다.하지만 천기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단번에 붙잡고 차갑게 말했다.“서유라 씨, 선은 지키시죠.”그 순간 병실에 들어선 배서준이 이 장면을 보자마자 성큼 다가와 천기준을 가로막았다.그러고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대표님, 서유라 씨가 제 뺨을 때리려 했습니다.”천기준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곧 그녀의 손목을 놓으며 덧붙였다.“전 단지 제 몸을 방어했을 뿐입니다. 공격할 생각은 없었습니다.”서유라는 억울함과 분노에 눈이 뒤집힌 채로 배서준에게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서준아, 난 진짜 때리려던 게 아니었어... 하지만 저 사람이 계속 날 모욕했어.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왜 모두가 나한테 이래?”천기준은 이런 ‘울고 떼쓰고 매달리는’ 전형적인 서유라의 방식에 익숙했기에 담담하게 받아치듯 말했다.“병원 CCTV는 음성까지 녹음됩니다. 정말 억울하시다면 언제든지 확인하시면 됩니다.”이 말에 서유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배서준 품에 안긴 채 흐느끼는 것 외엔 더 할 말이 없었다.배서준도 바보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한 명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여자, 한 명은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비서.두 사람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배서준은 천기준의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 굿바이 쓰레기   제234화

    “비켜!”배서준은 고함을 내질렀고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돌아서 있었다.하지만 간병인 안경희는 배서준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이봐요, 전 제 환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나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아주머니, 괜찮아요. 나가 계세요. 이 사람 제 남편이에요.”‘남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 남설아의 말투에선 명백한 비웃음이 묻어났다.그 말을 들은 안경희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남설아를 돌보며 봐왔던 남자는 언제나 강연찬이었고 이 무서운 얼굴의 남자가 남편이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이렇게 험악하게 구는 남편이라니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설아에게 물었다.“정말 경찰 안 불러도 괜찮아요?”“괜찮아요, 나가 계세요.”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안경희의 손등을 살며시 눌렀다. 진정시키려는 듯한 동작이었다.안경희는 코웃음을 치고 배서준을 노려보았다.“나 문 앞에 서 있을 거니까 손끝 하나라도 대 봐요, 바로 신고할 테니까! 멀쩡하게 생겨선 아내 때리는 놈이라니, 에잇!”그러고는 어깨로 배서준을 밀치며 씩씩하게 병실 밖으로 나갔다.안경희에게 호되게 당한 배서준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며 남설아는 참지 못하고 속으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배서준 같은 사람한테 저런 대접은 평생 처음일 게 분명했다.“서준 씨, 지금 당신 꼴 좀 봐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남설아는 몸을 조금 옆으로 틀어 가능한 한 그와 거리를 뒀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딱 하나만 묻겠어. 송우민이랑 아는 사이야?”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남설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표정 하나하나를 다 읽어내려는 듯 의심과 긴장이 얽혀 있는 눈빛이었다.결혼 후 이렇게까지 그녀를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선 안에서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남설아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역겨움을 느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모르는

  • 굿바이 쓰레기   제233화

    “설아가 서도현이 한 짓이라고 했지. 너랑은 무슨 상관이야? 네 동생은 원래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애였잖아. 엇나간 짓 좀 했다고 이상할 것도 없지.”배서준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옆에 있던 서유라는 그 말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이젠 자신이 배서준 마음속에서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걸.예전이라면 자신과 관련된 일에 이성이니 판단이니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언제나 감정대로 움직였던 사람인데 지금은 이렇게까지 차분하다고? 이제는 날 신경도 안 쓰는구나.’“서준아, 설마... 날 사랑하지 않게 된 거야?”서유라는 억울함에 목소리가 떨렸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나도 내가 요즘 어떤지 알아. 진짜 미안해. 그런데도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너무 사랑해서 그래. 너 없이는 안 돼. 진짜 난 너 없으면 안 돼.”말을 하면서 그녀는 조수석에 몸을 웅크렸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그런 서유라의 모습에 한순간 마음이 약해진 배서준은 말투도 한결 누그러졌다.“너한테 화내려는 건 아니었어. 그리고 너 떠날 생각도 없어. 걱정하지 마.”“정말... 정말 믿어도 돼? 정말 날 떠나지 않을 거야?”서유라는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눈을 마주한 순간, 배서준은 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려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바보야. 내가 어떻게 널 떠나.”어릴 때부터 줄곧 함께해온 사이였고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그녀를 품어온 사람인데 그렇게 쉽게 끊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둘은 말없이 차를 타고 해변가 별장까지 도착했다.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서유라는 비명을 지르더니 바로 배서준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배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에 매달린 서도현을 바라봤다. 피범벅이 된 몸을 본 순간,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당장 내려!”그의 명령에 별장 안의 도우미가 덜덜 떨며 서도현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사람이 바닥에 닿는 순간, 서유라는 비로소 그게 자기

  • 굿바이 쓰레기   제232화

    고통이 클수록 남설아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배서준은 병실을 나서자마자 서유라의 팔을 거칠게 붙잡더니 그대로 그녀를 끌고 자신의 차까지 갔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서도현한테 전화해.”“서준아?”서유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서준을 바라봤다.“너 정말 설아 씨 말 믿는 거야? 진짜 도현이가 그랬다고 생각해?”“전화하라고.”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한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엔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이었다.서유라는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억울함에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지만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서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서도현은 손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모진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아아아아악!!”비명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이어졌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울려 퍼진 핸드폰 벨소리는 그에게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다.“형님! 형님! 저 돈 있어요! 전화 좀 받게 해주세요, 제발요!”서도현은 연신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제는 정말 더는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전기태는 매질하느라 저린 손을 털며 짜증스럽게 말했다.“남자라는 놈이 여자나 패고 다니더니 이제 와선 우리한테 사정이나 하고 있어? 퉤! 네 그 몇 푼 더러운 돈 누가 신경이나 쓴대?”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힘껏 채찍을 내리쳤다.이제 진짜로 더 못 견딜 것 같았던 서도현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형님, 진짜 돈 있어요! 제발요! 제 몸에 260억짜리 수표 있어요! 다 드릴게요, 살려만 주세요. 제발요!”그 말에 전기태는 순간 멍해졌다.‘이런 놈이 260억짜리 수표를 들고 있었다고?’전기태는 곧장 그의 몸을 샅샅이 뒤졌고 정말로 그 수표를 꺼냈다. 한참을 확인한 뒤, 그는 곧바로 자기 부하에게 넘겼다.“야, 내가 널 완전 우습게 봤구나. 너 좀 있네?”“보아하니 그 여자한테서 꽤 많이도 뜯어냈구먼. 진짜 찌질함의 끝판왕이네.

  • 굿바이 쓰레기   제231화

    “남설아, 나 정말 너랑 싸우기 싫어.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냥 솔직히 말해.”배서준은 피곤한 듯 미간을 주물렀다. 지금 회사는 전환의 중요한 시점에 있었고 하필이면 집안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앞뒤가 다 막혀 있는 상황에 그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런 배서준의 지친 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말했다.“서준 씨, 나 당신이랑 이혼하고 싶어요. 공평하게, 내가 받아야 할 건 전부 다 받는 조건으로요.”“뭐라고?”배서준은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심지어 다시 아이를 가지는 것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게 결국 돈 챙겨서 떠나는 거였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그 순간 지금껏 참고 있던 인내심과 온화함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배서준은 성큼성큼 다가가 남설아의 목을 움켜잡았다.“이렇게까지 이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내 재산 나눠 가져서 결국 강씨 가문 그놈 도와주려는 거였어? 나쁜년... 대체 두 사람 언제부터 붙어먹은 거야!”분노로 가득 찬 남자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오자 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냉소적으로 말했다.“결혼을 우습게 여긴 쪽은 당신이잖아요. 그런데도 이제 와서 나한테 뒤집어씌우겠다고요?”“남설아,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배서준의 손이 점점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숨이 막히기 시작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설아는 몸부림치다 상처가 당겨지는 고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 눈물이 배서준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분명 차가운 물방울인데 배서준은 마치 데인 듯한 느낌이 들어 손을 홱 빼버렸다.그는 천천히 몸을 세우고 눈물에 엉망이 된 여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오랜 세월 부부로 지내면서 온갖 모습을 봤다.교활하고 눈치 빠르고 요령 있게 사람을 다루는 모습들을 말이다.그가 제일 싫어하던 모습들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이렇게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왜인지 모르게 남설아의 눈물이 똑 떨어질 때마다 마음 한구

  • 굿바이 쓰레기   제230화

    남설아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억울하고 안쓰러운지 배서준의 마음이 한순간 흔들렸다.서유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제 대놓고 유혹하는 작전까지 쓰네?’배서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지는 걸 보자 서유라의 머릿속엔 경고등이 켜졌다.“서준아, 도현이는 절대 그런 짓 안 했어. 남 팀장이 거짓말하는 거야.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맞아, 맞아, 다 내 잘못이야. 유라 씨 말이 다 맞지.”남설아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동의했다.그 말투, 그 표정에 또다시 화가 치밀어오른 서유라는 씩씩대며 성큼 다가와 이를 악물고 말했다.“설아 씨가 서준이 때문에 예전부터 나 싫어한 거 알아. 근데 날 싫어하면 날 미워하면 되지, 왜 하필 우리 동생이야? 걔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설아 씨가 그렇게 대할 이유 없어!”“내가 걔한테 뭘 했다고 그래? 내가 때렸어? 욕이라도 했어?”남설아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갈비뼈 쪽을 손으로 짚으며 배서준을 바라봤다.“당신은 당신 와이프한테 다른 여자가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 세상에 이런 남편이 또 있을까?”그가 ‘남편’이라는 신분으로 자기를 구속하려는 거라면 자신도 그대로 받아치면 되는 일이었다.‘남편’이라는 자리를 원한다면 거기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유라야, 진정해. 나 혼자 얘기 좀 할게. 잠깐 나가 있어.”배서준은 서유라의 팔을 살짝 잡아끌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서유라는 여전히 미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이를 갈며 남설아를 날카롭게 노려보고는 병실을 나섰다.서유라가 나가고 나자 병실엔 남설아와 배서준, 단둘만 남았다. 공기는 잠시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치료비는 회사 보험으로 처리하면 돼.”배서준이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비록 법적으로는 부부고 아이도 있지만 이 둘은 서로를 잘 모른다. 대화도, 감정도, 공통의 언어도 거의 없었다.그 말을 들은 남설

  • 굿바이 쓰레기   제229화

    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자기 정체부터 내세웠다. 아무리 봐도 이 상황에서 화낼 자격은 자신 쪽이 더 있다는 태도였다.그런 그의 모습에 강연찬은 더 말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걸 직감했고 입꼬리만 살짝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자기 위치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더 이상 자리만 차지하고 일도 안 하는 짓은 하지 마세요.”“강연찬 씨. 남의 가정 사이에 끼어들어 놓고 그렇게 떳떳합니까? 우리 집안 어른들이 알면 그쪽은 끝이에요.”배서준은 비웃듯 말하며 경고를 날렸다.“배건 그룹 대표란 인간이 고작 하는 짓이 어른한테 일러바치는 거라고요? 진짜 웃기네요. 유치하게.”강연찬은 한마디 남기고 남설아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남설아는 조용히 앉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몸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눈을 들자마자 마주친 건 배서준의 날선 눈빛이었다.“내가 몇 번을 말했어? 넌 내 아내야.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고! 남자들이랑 밖에서 얽히지 말라고 했잖아! 창피하게 굴지 마!”“너랑 강연찬, 두 사람 도대체 무슨 사이야?”배서준은 이를 꽉 물고 남설아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덮쳐 물어뜯을 기세였다.“맞아, 남 팀장.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아침부터 사람 기죽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설마 남편인 서준이를 이 정도로 무시할 줄은 몰랐네.”서유라까지 거들고 나섰는데 말끝엔 마치 남설아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통증도 심한 데다 두 사람의 짜증 나는 공세까지 들으니 남설아의 얼굴빛이 더 창백해졌다.그녀는 갈비뼈 부근을 감싸 쥐고 차분하지만 날이 선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봤다.“어젯밤에 왜 안 왔어요? 나 한참 기다렸다고요. 거기서 진짜 죽을 뻔했고요. 그건 알고 있어요?”“난...”배서준은 본능적으로 변명을 꺼내려 했지만 곧 그녀의 말뜻을 눈치채고는 찌푸린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소리야?”“당신이 준 주소로 가서 문을 열었더니 거기엔 서

  • 굿바이 쓰레기   제228화

    송우민은 강연찬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는 늘 신사적인 인상만 남아 있었는데 이런 야성적인 기운은 처음 느껴졌다.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은 송우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강연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걱정 마. 난 남의 아내한테 관심 없어.”배건 그룹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사람이다.강연찬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선배 왔구나. 밥은?”병실에서 남설아는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유일한 위안은 강연찬의 도시락이었다.그녀의 먹을 것만 밝히는 모습에 강연찬은 부드럽게 웃으며 도시락을 테이블에 놓았다.“넌 참, 오직 먹을 생각뿐이지? 다 네가 좋아하는 거로 해왔어. 옥수수 수프도 끓였고.”“선배는 진짜 너무 좋아! 나 선배 사랑해!”“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선배 내가 책임질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매일 밥만 해줘. 그럼 돼.”남설아는 신난 얼굴로 젓가락을 집어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그런 천진한 모습에 잠시 말을 망설이던 강연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송우민, 그 사람 너 보러 온 거야? 두 사람... 친한 거야?”“친하진 않아. 전에 나 납치했던 사람이야. 나중엔 살기 위해 서로 손잡은 거고.”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근데 왜 다들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꺼리더라? 그냥 애 같기만 하구만.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주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를 모두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그 말에 강연찬은 조급해졌다.“너 제발 그 사람 얼굴만 보고 착한 척하는 거에 속지 마. 겉보기엔 순둥이처럼 생겼지만 속은 냉혈한이야. 완전 미친놈이라고!”“미친놈이든 바보든 날 도와주면 내 친구야.”남설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그 사람은 내 목숨 구해준 은인이야. 그 사람 없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