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황션, 총황션!”진서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참지 않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총황션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가문을 배신한 이유가 뭐야? 염구준과 오부라은을 제거하라고 거액을 줬더니, 감히 진씨 가문의 뒤통수를 때려? 미쳤어?”이유는 당연히 염구준 때문이었다. 염구준이 전신전 전주인데, 진씨 가문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이유를 알면 뭐 어쩔 건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전화 너머 총황션의 목소리는 매우 냉랭했다.“옛정을 생각해서 충고 하나만 할게.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진씨 가문 힘만 믿고 함부로 사람 건드렸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친다. 뭐, 이미 그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진서호는 분노에 핸드폰을 든 채 자리에 부들부들 떨었다.이런 배은망덕한!처음 총황션이 황혼대로에 들어설 때만 해도 겨우 중위권 세력밖에 안 됐었다. 그런 총황션의 세력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진씨 가문의 후원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진씨 가문의 돈을 먹고도 염구준을 제거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도리어 진씨 가문에 엿을 먹였다.그깟 염구준이 뭐라고!진서호는 반드시 총황션에게 진씨 가문의 위력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멍청한 놈!”이때, 갑자기 조용하던 이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무석도 이 소식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는 망설임없이 거실로 내려와 진서호의 따귀를 때렸다. 진서호는 그 힘에 못 이겨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진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능력을 보이랬더니, 도리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진서호는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했다. 총황션에게 연락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 진무석은 오늘 진서호에게 너무나도 크게 실망했다. “수습하라고 했더니, 사고를 쳐!”진무석이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진서호를 향해 크게 호통쳤다. “앞으로 가문을 물려받을 놈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제정신이야? 지
이건 우연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누구예요? 도대체 누가 뒤에서 이런 장난질 친 거예요!”진서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진씨 가문 상대로 이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얼마 전까지 해도 화련상조회는 봉황국 최강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김씨 가문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멸문한 상태, 이정도로 회원들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 기업도 아닌, 수십개의 기업들이 줄줄이 진씨 가문한테서 등을 돌리다니! 진서호는 도무지 짐작가지 않았다.“손가을, 염구준… 이 둘 아니면, 누구겠어!”진무석이 진서호의 무능함에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이 정도도 모르다니, 진씨 가문을 너에게 맡겼다가는 5년도 못 버티고 망하겠네!”염구준, 또 염구준이라니!그는 이를 악문 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갈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그날 연회에서 있었던 사건 뒤로, 진씨 가문과 손씨 가문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진서호는 곧바로 왕서희를 납치해 모든 죄를 염구준에게 뒤집어씌울 준비를 했으나, 도리어 아무런 손실도 입히지 못하고 진씨 가문만 기둥이 뽑히게 생겼다!“아버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 한 번만요!”진서호가 무릎을 꿇은 채 진무석에게 애원했다.“제가 직접 염구준을 처리하고 이 치욕을 씻어낼게요! 아버지, 저 한 번만 믿어주세요!”아무리 못났어도, 진무석에겐 아들 진서호 하나밖에 없었다.“후….”그는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가라앉힌 뒤, 진서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진서호.”그리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청동 영패를 바닥에 던졌다.“이번엔 절대로 날 실망시키면 안 된다. 꼭 제대로 이 난장판을 수습하고 손씨 그룹을 무너뜨리거라!”그 말을 끝으로 진무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진무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진서호는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영패를 주
황혼대로는 이제 완벽히 오부라은의 통제아래에 들어갔으며, 용하국 상인들의 금지구역도 모두 풀렸다. 그리고 오부라은 공식적으로 손씨 그룹을 지지하는 서명까지 발표했다. 봉화국 세력 구도가 크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생존에 강한 기업들은 알아서 눈치 빠르게 라인을 바꿨다. 이제는 진씨 가문이 아닌, 손씨 그룹이 대세였다.“손 대표님.”짧은 인사말을 나눈 뒤, 한 중년 남자가 조심스레 손가을 책상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오늘 저희가 찾아온 것은 오부라은 선생님과의 협력 체결을 축하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쭙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혹시 앨리스 씨와는 어떤 관계이십니까?”그 말을 들은 손가을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손씨 그룹과 오샤나지 그룹은 공식적으로 협력 파트너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가을은 자기도 모르게 염구준 쪽을 바라봤다. “그저 일반적인 파트너 관계일 뿐입니다.”염구준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손가을 쪽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손씨 그룹과 손을 잡은 것 때문에 화련상조회에서 제제가 들어올까 봐 그러시는 거죠? 그 부분은 제가 장담하죠.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앨리스 씨 때문이 아닌, 저희 손씨 그룹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손씨 그룹은 결코 화련상조회 따위에 밀리지 않습니다!”매우 자신만만한 태도,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최근 이틀만에 활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손씨 그룹은 화련상조회의 도움 없이도 아주 보란듯이 해외에서 적응해 나갔다. 이젠 화련상조회가 제제하려고 나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염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희도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다!”중년 남자와 함께 주변에 함께 있던 여러 사람들은 비로서 안심할 수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저희가 진씨 가문에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가 떨립니다. 봉황국이 워낙 혼잡한 터라,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사업은커녕 목숨까지 위협받아야 하는
“죄송합니다.”염구준은 손가을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잠시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모두 크게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이때, 먼저 말을 꺼낸 노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30프로는 적습니까? 그렇다면 매년 40프로를 지급할 테니, 부디 긍정적으로….”“아니요!”하지만 염구준은 그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얼른 해명했다.“여러분 오해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는 진씨 가문이 아니며, 손씨 그룹은 누군가에게 빨 때 꽂을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시스템, 동등한 공생관계가 되길 원합니다. 어떠한 보호비도 어떠한 부당 우대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그러자 모두들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으로 염구준과 손가을을 쳐다보았다. 충분히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먼저 다른 이들을 배려해주다니, 역시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의 배포는 범인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이들은 다시 한번 염구준과 손가을의 성품과 지혜로움에 감탄했다.“구준 씨.”약 반시간 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가 손가을이 염구준의 품에 가볍게 기대며 말했다.“이분들과 협력관계를 맺게 되면 우리한테는 유리하겠지만, 화련상조회가 크게 반발한 텐데, 괜찮겠어?”그 말에 염구준은 귀엽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화련상조회가 반발해봤자, 그에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미 불쏘시개엔 불이 붙여졌고, 진씨 가문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회원들의 이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염구준의 예상대로 진씨 가문은 지금 아수라장이었다.진서호는 앞에 놓인 수많은 회원 탈퇴 통지서를 보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형세가 완전히 넘어갔다!진무석에게 탈퇴를 요구하는 연락이 빗발쳤다고는 했지만, 진서호는 그것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류까지 날아오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화련상조회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도련님!”이때, 밖에
저택 입구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진을 치고 있었다. 모두 화련상조회 회원탈퇴를 요구하기 위해 진씨 가문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만약 경호원들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이들은 진작에 저택 안으로 쳐들어가고도 남았다.“여기가 어디라고, 이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이때 진서호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노려보며 외쳤다.“간덩어리들이 부었구나! 감히 우리 진씨 가문에 반기를 들고 화련상조회에서 탈퇴하겠다고? 아버지도 안에 계시는데, 어디 가서 직접 얘기해보지 그래!”진서호의 아버지, 진씨 가문의 가주 진무석! 한때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인물이었으나, 이제 손씨 그룹이라는 빽이 생긴 이들에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진서호!”사람들은 전혀 기죽지 않은 채, 하나 둘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진무석의 이름을 대면 우리가 겁먹을 것 같으냐! 우리는 협약 해제를 요구하러 온 사람들이다!”“애초에 화련상조회에 가입한 이유가 서로 돕기 위함이었는데, 진씨 가문은 우리를 동업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잖아! 우리의 피 같은 돈을 빨아가기만 하고!”“맞아! 돈은 적게 벌더라도 더 이상의 노예취급은 사양이다! 오늘 우리는 잃어버린 존엄성을 찾으려고 왔다! 당장 계약을 해지하라!”“그동안 우리가 화련상조회에 납부한 회비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너의 가문에서 모두 독식하지 않았느냐! 화련상조회의 이름을 빌려 우리한테 돈을 강탈하기만 바빴던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 내!”“우리는 앞으로 손씨 그룹, 손 대표님과 염 선생님만을 지지할 것이야! 화련상조회 따위 이제 필요 없어!”손씨 그룹, 손가을, 염구준…! 이들의 이름이 나오자 진서호는 분통이 터졌다!“시끄러!”진서호가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마지막으로 기회 주마! 방금 했던 말 모두 취소하고 얌전히 돌아간다면, 진씨 가문은 지날 일들을 묻지 않고 앞으로도 지원을 이어갈 거야! 하지만 이대로 계속 밀고 들어오겠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이 두 노인은 바로 진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모셔온 초절정 강자, 가씨 가문의 쌍둥이 형제였다!쌍둥이 형은 가천좌, 동생은 가천우, 둘은 나이가 구십이 넘었지만 전신의 경지까지 한단계만 남은 상태였다. 이들이 마지막 단계를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가 바로 진씨 가문의 청동 영패였다!“영패는 가져왔겠지?”가천좌가 앞으로 나서더니, 날카로운 표정으로 진서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동영패는 진서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망설임없이 오른손을 뻗어 영패를 낚아채 이리저리 살펴보듯 영패를 만지작거렸다. 전신의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김웅신도 무성의 경지에서 20년을 헤매다가 신무 옥패의 힘을 빌려 겨우 전신의 경지에 올랐다. 김웅신보다 자질이 부족했던 쌍둥이 형제는 거의 70년이라는 세월을 걸려 겨우 무성의 최고봉에 도달했다. 하지만 결코 스스로의 힘으론 전신의 경지까진 오를 수 없었다. 둘에겐 진씨 가문의 영패가 필요했다. 진씨 가문 노가주는 이들이 임무 하나를 수행해줄 때마다 청동 영패의 무학을 수련할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쌍둥이 형제와 진씨 가문이 가지고 있었던 연결고리였다. 물론 아무나 이 영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안에 담긴 무학의 비밀을 깨우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진무석만 봐도 그러했다. 그는 영패를 물려받고도 지금까지 패자 경자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우린 이미 영패에 담긴 무학을 거의 다 깨우쳤다. 남은 건 이제 연성뿐이지.”가천좌가 영패를 다시 진서호에게 던져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이번 임무만 완수하면 진씨 가문과 우리의 관계도 끝이야. 물론 영패는 약속대로 우리가 가져갈 것이다. 알겠느냐?”염구준만 처리해준다면, 두 쌍둥이가 진씨 가문을 떠난다 하더라도 진서호는 상관없었다. 진씨 가문의 재력이라면 얼마든지 또 다른 고수를 초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진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진서호가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가씨 쌍둥이에게 다시 한번
가천좌는 가슴이 철렁해서 가천우의 옷깃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황하지 마. 도망칠 필요 없어. 우리의 임무는 염구준을 죽이는 거야. 저 반보천인이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생각하자.”“그 사람의 눈밖에 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아니, 그분이 나오시면 공손히 대해야 해. 무림의 대선배님 아니냐. 절대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돼.”그런 말을 하는 사이, 공기 중에 무거운 압박감이 점점 뚜렷해지더니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입구로부터 들려왔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저희는 가씨 가문의 쌍둥이 형제입니다.”가씨 형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반보천인의 앞에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선배님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공기마저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가씨 가문 쌍둥이?염구준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가씨 형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오해이십니다. 저는 두 분이 선배라고 부를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아요. 무예를 열심히 수련하다가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두 분보다 먼저 높은 경지에 올랐을 뿐입니다. 어서 허리를 펴세요.”20대 청년의 앳된 목소리와 공손한 태도에 가씨 형제는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이런. 우리가 괜히 긴장해서 안 좋은 모습을 보였군.”가씨 형제는 머쓱한 얼굴로 염구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천인의 자질을 가진 자라서 그런지 역시 풍채가 남다르군. 그러니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천인의 경지까지 올랐겠지. 감탄할 따름이오.”염구준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고대 사람처럼 점잖을 떠는 모습을 보니 아마 폐관수련한지 꽤 오래된 모양이었다. “칭찬이 과하십니다.”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염구준은 적당히 예의를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고했다.“다른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벤틀리를 향해 다가갔다.“잠깐, 젊은 친구.”등 뒤에서 가씨 형제가 경외심 가득한 얼굴로 염구준을 불렀다.“반보천인을 내 눈으로 직접 보
막혔던 혈이 뚫리자 한결 호흡이 편안해졌다.“두 분은 연세가 있으시고 자질이 너무 좋은 편이 아니라 제가 혈을 대신 뚫어드렸습니다. 아마 3개월 안으로 전신의 경지를 돌파하실 수 있을 겁니다.”염구준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여태 경지를 돌파할 수 없었던 것은 두 분의 수련 공법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경맥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공법의 결함을 알아내고 보충하여 경맥을 뚫는다면 앞으로의 수련도 훨씬 쉬어질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가씨 형제의 대답도 듣지 않고 차에 올라 홀연히 자리를 떠나버렸다.“이게 무슨….”벤틀리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가씨 형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염구준을 죽이려고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한판 붙어보지도 못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가 반보천인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고 놀라서 멍 때리다가 염구준의 도움을 받아 막혔던 혈을 뚫었다고?하지만 염구준이 왜 자신들을 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에 비하면 진씨 가문의 인간들은 양심도 없는 망나니들처럼 느껴졌다.“혀… 형!”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생 가천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렇게 젊은 반보천인이 속세에 생활하고 있었다니.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멍하니 있던 가천좌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오더니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전신전 전주!열여덟에 전신의 경지를 돌파하고 용하국 역사상 최연소 전신강좌로 알려진 전설급 인물. 혈혈단신으로 전신전을 창립하고 G.J 군단을 통솔하여 전국의 전쟁터를 종횡무진하며 수많은 공훈을 세운 불패의 신화!그 사람을 제외하고 이 나이에 반보천인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젊은 세대는 절대 존재할 리 없었다.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속세를 떠나 수련하는 수많은 강자들 중에도 그와 같이 놀라운 업적을 올린 사람은 없었다.현재는 용하국 손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알려져 있지만 가천좌는 그가 바로 그 전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전신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