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재와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 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전방을 주시했다.바로 염구준이었다.“여기 마을이 있네. 제발 무사하길 바란다.”염구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전속으로 질주했다.오랜 시간을 최고속으로 달렸더니 목구멍에서 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지금 이런 것을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휴, 소리를 들으니까 시끌벅적한 것이 주민들은 무사한 거 같구나.”염구준은 마을 밖에서 소리를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목소리가 갈라지고 타는 것 같아 물을 마시고 싶었다.“거기 서, 넌 누구야?”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두 그림자가 관목에 올라가더니 염구준의 앞을 가로막았다.보초병이었다.“산골짜기에서 싸움이 벌어졌던데 너희들 4대 뱀의 부하들이야? 내가 보고할 것이 있어.”염구준이 나서서 말을 걸었다.“멍청한 놈, 자기 편도 알아보지 못해?”“맞아. 네 분을 부를 때 님까지 붙여.”두 놈은 염구준을 책망했다.필경 네 뱀을 따라 철수했으니 심복이나 다름없었다.“하, 알았어.”염구준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스스슥!곧이어 염구준은 오른손에 검을 들고 두 줄기 검기를 발사하여 상대방을 죽였다.신분을 알았으니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펑!그런데 관목 위에 보초병이 더 있었다.놈이 신호를 보내려고 할 때 염구준이 먼저 돌진하여 살해했다.보초병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던 것이다.이어서 마을에 들어간 그는 거록 조직의 부하들을 만나는 즉시 참살했다.한편, 거하게 취한 흑만파가 또 화를 내면서 소란을 피웠다.“빨리 음식을 올려!”소녀는 옆에 앉아 억지로 술을 대접했다.선을 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도 최대한 참고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이거면 충분해?”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한 그림자가 식탁 위로 던져지며 피를 사방에 튀겼다.“아아악!”깜짝 놀란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야, 이 새끼야, 우리 애들을 죽였어?”분노한 흑만파는 마을 사람들이 반항하는 줄 알았다.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술이 확 깼다.염구준이었다.“네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네놈들이 한 짓을 봐.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염구준이 엄숙하게 물었다.“흑흑, 저기요. 저 대신 복수해줄 수 있어요? 저놈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죽였어요.”소녀는 한 패가 아닌 것을 알고 울면서 애원했다.“죽어라!”분노한 염구준은 한마디 외치면서 놀라울 정도로 기운을 폭발시켰다.아나콘다 일행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기세로 돌진했다.이것이 바로 거록 조직을 처단하려는 이유였다.짐승보다 못한 놈들은 사람을 해치는 일도 서슴없이 하기 때문이다.이런 놈들을 남기면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신호를 보내서 모두 이쪽으로 불러!”아나콘다가 명을 내리고 혼자서 염구준을 상대하려 했다.그는 여섯 뱀의 수장으로서 거록 존주에 비해 실력이 뒤처지지 않았다.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라고 말할 수 있었다.쿵!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거의 백 초식을 겨루었다.결국은 아나콘다가 뒤로 밀려났다.이미 단단히 화난 염구준은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여기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왜 죽였어?”염구준의 공세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놈을 향해 돌진했다.슝!그때 신호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어디 갔어?”아나콘다가 포효했다.위험한 상황에서 한 명이 더 많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찾지 마. 너희들은 곧 지옥에서 만날 거야.”염구준은 대답하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다른 놈들은 그가 마을에 들어올 때 이미 제거했다.“전력으로 싸운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아나콘다가 언성을 높였다.염구준의 실력이 강하다는 것은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이 정도로 강한 반보천인 고수는 처음 보았다.쿵!놈들은 합세하며 각종 초식을 펼쳤다.독약이며 석회 가루며 비열한 수법을 남김없이 보여줬다.이기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에게 어떤 수법도 통하지 않았다.얼마지나지 않아 네 명의 뱀을
쾅쾅!염구준은 연속으로 주먹을 날리며 두 사람을 물리쳤다.실력이 약한 흑만파는 뒤로 날아가며 연신 피를 토했다.염구준이 갑작스럽게 폭발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살모사, 얼룩뱀. 철수해!”가슴을 공격당한 아나콘다는 염구준을 막지 못하자 언성을 높여 주의를 주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염구준의 속도가 더 빨랐다.“안 돼!”살모사, 얼룩뱀 두 형제는 공포에 질려서 동공을 크게 떴다.곧 죽게 생겼는데 인질을 잡을 겨를이 없었다.억울한 고함 소리와 함께 두 놈은 피바다에 쓰러졌다.염구준은 그들을 처리한 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아나콘다와 흑만파를 노려봤다.연달아 강력한 주먹을 날렸지만 놈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하하하, 네 몸은 강철로 만든 줄 알았는데 상처가 생기긴 하는구나!”아나콘다가 미친듯이 웃으면서 기뻐했다.염구준이 다쳐야 그들이 살아남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하, 조금 다친 걸로 뭘 그렇게 좋아해?”염구준은 말하면서 상의를 벗어 던졌다.그의 몸에 온통 흉터들이 남아 있었다.근육이 팽팽하지 않아서 작은 상처로 보였을 뿐이었다.“너… 넌 생사를 건 싸움을 몇 번이나 해봤어?”아나콘다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면서 말을 더듬었다.이런 부류의 인간은 틀림없이 시체와 피바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기억나지 않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너희들은 오늘 죽는다는 것만 기억해. 거록 존주는 어디 있어? 말하면 통쾌하게 보내줄게.”염구준은 다쳤지만 몸에 기운은 더 강렬하여 충분히 치명상을 날릴 수 있었다.자연계에서 어떤 맹수들은 다칠수록 더 맹렬해지지 않던가.“하하하, 나도 말하고 싶어. 그런데 존주님의 행적이 묘연해서 나도 어디 있는지 몰라. 다음 달에 바위성에 마술쇼가 있는데 존주님이 그때 입국하실 거야.”아나콘다의 입에서 정보가 술술 나오니 협박할 필요가 없었다.만약 오늘 죽는다면 거록 존주가 대신 복수해 줄 테니 이것도 보이지 않는 장기판과 흡사했다.“알았어. 고통 없이 죽여 줄게.”염구준이 앞
비록 자신의 주먹에 염구준이 부상을 조금 입었지만 터무니없이 강했다.“주, 죽이지 마.”아직 숨이 붙어 있는 흑만파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죽여요. 저놈이 우리 할아버지를 살해했어요!”소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더니 빗자루를 들고 흑만파에게 돌진했다.“조심해!”염구준이 쏜살같이 나아가 강력한 기운으로 소녀를 감싸며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반보천인인 흑만파의 실력이라면 중상을 입어도 평범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저 나쁜 놈한테 복수할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는 아무 죄도 없는데 저놈의 손에 죽었어요! 흑흑!”소녀는 실성하며 통곡했다.너무 비통해서 숨도 올라오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뜻밖의 재난이었다.쿵!그 말을 들은 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흑만파에게 강력한 기운을 발사했다.이어서 놈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단전까지 파괴했다.흑만파는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었다.“으으윽!”아직 한 가닥 숨이 붙어 있는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를 힘마저 없었다.툭!염구준은 기운을 거두고 소녀의 앞에 비수를 던지면서 말했다.“원한에는 원수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어. 복수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원한을 품고 사는 인생은 매우 괴롭기 때문이었다.물론 지금 흑만파 상태로 보아 소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아아악!”소녀는 할아버지가 비참하게 살해당한 모습과 자신이 겁탈당할 뻔한 기억을 떠올리며 미친듯이 달려가서 비수를 찔렀다.흑만파는 본인이 어떻게 죽을지 수없이 생각해 봤지만 일반인의 손에 죽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염구준이 앞으로 다가가 비수를 거두며 탄식했다.“에휴, 할아버지는 유감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해. 얼른 정신을 차려!”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했다.소녀는 바닥에 주저 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한참 뒤, 염구준은 전신전에 연락하여 뒷수습을 부탁했다.마침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주작이 빠른 걸음으로 청산재에 도착했다.여러 번이나 수색하
주작이 활짝 웃으면서 소녀를 부축했다.“앞으로 넌 내 부하야. 내가 말하는 것이 명령이니까 반드시 따라야 해. 참, 이름이 뭐야?”전신전은 노닥거리는 병사들을 키우는 곳이 아니니, 일단 조직에 가입하면 무조건적으로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조영미라고 해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소녀는 이름을 말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별호를 지어줄게. 앞으로 넌 ‘환생한 유령’이야.”주작이 별호를 말한 것은 정식으로 제자로 받았다는 것을 뜻했다.사건을 마무리한 뒤, 염구준은 차를 타고 청해로 돌아갔다.다시는 제 발로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소녀는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저분은 누구세요? 우리랑 돌아가지 않나요?”“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네가 실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주작은 엄숙한 목소리로 부하를 대하는 태도로 말했다.일단 전신전에 가입하면 앞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니 더는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이로서 거록 조직의 여섯 뱀은 모두 염구준의 손에 전멸했다.이제 거록 존주는 유력한 심복이 없으니 앞으로 행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어쩌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지도 모른다.해외 어느 외딴 마을에서 이 소식을 들은 거록 존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쿵!“멍청한 놈, 그러게 멋대로 일을 벌여서 용하의 내 정예병들을 절반이나 죽였어. 아나콘다, 넌 죽어 마땅해!”화난 모습을 보니 시체라도 끌어내서 토막을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주변의 벽은 공격으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바람이 새어서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거록 존주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집안에 있던 부하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말해. 다들 벙어리가 되었어?”거록 존주는 손을 들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존주님, 제발 진정하세요!”부하들은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쓸데없이 말했다가 오히려 단체로 죽을 수도 있었다.거
염희주는 말을 마치고 바로 통화를 끊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집에서는 손가을의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녀는 염구준을 존중하기 때문에 한번도 그의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염구준은 기분 좋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오늘 마침 여유 있으니까 희주한테 줄 선물 사야겠네.’“비켜!”바로 이때,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염구준의 등을 밀치려고 했다.쿵!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그는 염구준의 몸을 감싼 진기에 의해 몇 미터 밖으로 튕겨나갔다.힘이 약한 수준이라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 게 뻔했다.“뭐 하는 짓이죠?”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물었다.방금 상대방의 행동이 몹시 불쾌했지만, 혹시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일반 행인과 다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고개를 돌린 후 염구준은 상대방의 행렬 규모가 마치 국주가 행차하는 것처럼 큰 걸 발견했다.그 무리의 중심에는 검은색 연미복에 마술사 모자를 쓰고, 손에 지팡이를 쥔 고풍스러운 마술사 차림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를 둘러싼 백여 명의 경호원들은 전부 검은 상의와 바지를 입고 근육질의 체격을 뽐냈다.바깥쪽에는 수많은 팬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고함을 질렀다.“로브! 사랑해요!”“로브 씨, 용하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어요? 제가 진짜 선생님 마술을 좋아하거든요.”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마술사로, 세계각지에 팬들이 많이 있었다.팬들의 열정적인 환호에도 로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팬들은 여전히 환호하고, 기뻐했다. 지금 문제가 있다면 염구준이 길 중간에 서 있어 행렬이 계속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거기, 길 좀 비켜주세요. 저희 선생님 길 막지 마시고요.”이에 앞길을 터주던 경호원이 소리쳤다.주변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아까 진기에 튕겨 나간 경호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뭐야, 이건 또 무슨 마술이야?”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갑작스레 추가된 공연이라 생각하기도 했다.한 대씩 맞고 난 뒤 얌전해진 경호원들은 더 이상 감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씩은 말보다 주먹이 더 효과적이었다. 한 대 맞아야 얌전해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하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결국 로브가 나서서 예의있게 물었다.“왜 제 길을 막으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하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지.’염구준은 미소를 머금고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전 원래부터 여기 서 있었어요. 절 부딪힌 건 당신들이죠.”상대가 막무가내로 나오니, 그도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의 말에 로브의 팬들이 발끈하며 염구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로브 씨의 길을 막아 놓고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말이 돼?”“그러니까. 로브 씨가 어쩌다 용하국에 오셨는데, 저 눈치 없는 놈은 굳이 길을 막겠다고 저러고 있네.”“난 저런 사람들 많이 봤어. 딱 봐도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잖아.”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염구준을 향해 온갖 욕들을 퍼부었다.‘맹목적으로 외국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광팬들만 모인 건가?’혼자서 많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기에는 불리했지만 그는 여태껏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기에 여전히 매우 담담했다.“다 입 닥쳐!”그는 곧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질렀고, 이에 사람들은 고막이 아파 말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심지어 배가 불렀던 일부는 아침 먹은 것까지 토해내기도 했다.그렇게 현장은 다시금 매우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억지 부리는 외국인을 위해 절 몰아붙이는 겁니까? 뇌를 어디다 빼먹었어요?”“이 나라를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당신들을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다 용하인이 아닌가요?”용하국의 안전은 솔직히 대부분
체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로브는 양보하지 않고 급히 말했다. “그래요. 첫 번째 라운드는 천으로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걸로 하죠. 단, 반드시 거리가 백 미터 밖이어야 해요. 두 번째는 신체 분리 마술로 합시다. 이건 사지와 머리, 그리고 몸통을 분리해야 하는 거예요.”두 가지 모두 대형 마술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세 번째는... 누가 주먹을 더 오래 버티는지 보는 걸로 하죠.”‘주먹을 버틴다고?’그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한번도 그런 마술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꽤 신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대했다.하지만 대부분은 로브의 실력으로는 세번째 라운드까지 갈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룰을 정하며 두 명 모두 이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내기에 걸린 건 ‘공손한’ 호칭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건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누가 먼저 시작할 겁니까?”이때, 기다리다 지친 구경꾼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제가 먼저 하죠.”염구준은 방금 전에 길가에서 국수를 파는 아줌마에게서 빌린 테이블천을 손에 쥐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로브의 팬들은 바로 비웃었다.“저런 도구를 쓰는 걸 보니 프로는 아니네. 질게 확실해!”“진짜로 마술에 성공하면 내가 아버지라고 부른다, 진짜.”휙.염구준은 주변의 비난을 개의치 않고 테이블천을 한 바퀴 휘둘러 허공에 던졌다. 정식으로 마술을 시작한 것이다.그리고 놀랍게도 테이블천이 떨어진 자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라?’다년간의 경험으로도 상대방이 선보인 마술의 원리를 간파하지 못한 로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염구준이 선보인 건 마술이 아니라 반보천인의 속도였기 때문이다. 반보천인의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체로 보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녀와 마주친 남자들은 이대로 가만 있지 않고 휴대폰을 꺼냈다.“저기요. SNS 추가하죠. 저는 이성환이라고 해요. 바위성을 잘 알고 있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알려드릴게요.”“그러죠.”붉은 장미는 별 생각 없이 휴대폰을 건넸다.그냥 연락처를 주고받는 시늉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주제를 모르고 계속 말을 걸었다.“마술쇼 끝나면 야식 먹으러 갈까요?”참 고리타분한 수법이었다.야식을 먹으면서 술을 잔뜩 먹이고 다음 절차로 가려는 수작이었다.붉은 장미가 바로 거절해버렸다.“시간 없어요. 그리고 궁금한 거 물어봤을 뿐인데 쓸데없는 착각하지 마세요.”그녀는 염구준 쪽을 쳐다보며 일행이 있다는 눈치를 주었다.“괜찮아요. 다들 같이 가면 더 북적거리고 좋잖아요.”이성환은 말하면서 은근슬쩍 두 팔을 벌여 주작과 붉은 장미의 어깨를 감싸려고 했다.염구준을 포함한 남자는 아예 무시하면서 은근 텃세를 부렸다.그냥 몇 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이런 뻔뻔한 녀석을 만나다니 참 재수가 없었다.“내가 물어보라고 했으니까 내가 해결할게요.”퍽퍽!말이 끝나기 바쁘게 염구준은 이성환 일행을 기절시키고 밖으로 내쫓았다.옆에 관중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드디어 조용해졌다.“아, 역겨워.”주작이 짜증을 내며 툴툴거렸다.비록 손이 닿지는 않았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방금 이성환이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버렸을 것이다.그러고 보면 염구준이 목숨을 살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드디어 사회자가 간단하게 게스트와 심사위원을 소개하고 마술쇼 대회가 시작되었다.무대 위에서 대부분 대형 마술쇼를 펼쳤다.처음 시작했을 때 아무 문제없다가 중간에 이르렀을 때 변고가 발생했다.현무가 최신 정보를 받자마자 염구준에게 보고했다.“주상, 저들이 움직였어요. 밖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것도 모자라 주변까지 파괴하고 있어요.”할 일이 생기자 모두 염구준을 보며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를 보였다.“대놓고
주작은 말하는 동시에 한 줄기 기운을 던지면서 로브를 물리쳤다.이것은 경고에 불과했다.“맞아, 어제 이런 힘을 썼어. 비열해.”로브는 전혀 두렵지 않는지 끈질기게 들러붙었다.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염구준은 두통이 아파왔다.죽이기엔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어서 한 가지 질문만 했다.“그쪽 무술계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어? 나 같은 무술인에게 시비를 걸지 말라고.”“그건…”깜짝 놀란 로브의 표정을 보니 아마 처음 듣는 것 같았다.무술계 친구라는 작자가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은 모양이다.윙!염구준이 한 줄기 기운으로 그를 제자리에 고정시키더니 앞으로 다가가며 한마디 했다.“사람이 성격이 난폭하면 안 돼. 다시 귀찮게 굴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진 않겠지만 적어도 다리는 부러트릴 수 있었다.“아아악!”로브는 억울함에 고함을 질렀다.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마지막 남은 의식에서 상대방의 말이 옳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일행은 로브를 뒤로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좌석이 뒤쪽에 위치해 있어 출입하기 편리했다.염구준이 주도면밀하게 안배한 것이 느껴졌다.주작과 붉은 장미도 세심하게 간식까지 챙겨왔다.정말 마술쇼를 보러 온 사람들처럼 말이다.아직 마술쇼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관중들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그 얘기 들었어? 이번 이벤트 상품이 돌이래. 너무 웃기지 않아?”“돌이라고? 모르는 소리. 그건 혈석이야. 원래 주인이 마술 실력이 대단한 걸 보면 마술사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거 같아.”…두 남자가 주고받는 말에 염구준은 벌써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그가 옆을 보며 눈짓을 보냈다.“저기요. 혈석은 뭐예요? 설명해 줄 수 있어요?”“저도 듣고 싶어요.”주작과 붉은 장미가 뒤돌아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남자들에게 물었다.예쁜 여자 둘이 질문하자 남자들은 홀린 듯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토로했다.“이 돌은 적혈석이라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염구준에게 쏠렸지만 다음 말은 없었다.“주상, 조금만 말씀해 주시죠.”주작이 궁금해서 물었다.“오늘 저녁 대형 마술쇼 대회가 있어. 우리 같이 보러 가자. 아주 특별한 상품이 있단다.”진지하게 말하는 염구준의 표정은 전혀 장난치는 것 같지 않았다.그 말에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싸우는 게 아니라 놀러가자고?’현무가 잠깐 뜸을 들이다 최신 소식을 말했다.“주상, 오늘 저녁 거록이 움직입니다. 우리가 지정한 목표물에 손을 댈 거 같습니다.”바위성 마술쇼 이벤트 기간에 명성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적합한 후임도 많을 것이다.“급하지 않아. 저들이 움직이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어부지리를 챙기는 거지.”염구준은 가슴을 펴면서 손을 저었다.지금 거록 조직은 분산되어서 상대하긴 조금 까다로웠다.얘기하는 사이에 요리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다들 맛있게 음식을 먹은 후, 일행은 바위성의 거리를 여유롭게 거닐면서 다양한 상품을 구경했다.어제 거록이 손해를 보았기에 오늘은 감시자들을 보내지 않았다.그렇게 걷다가 어느새 공연장에 도착했다.오늘 저녁 마술쇼 대회가 열리는 장소였다.이곳은 원래 축구장이었는데 나중에 축구팀이 해체되면서 극장으로 재건한 것이다.규모가 상당히 커서 수만 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었다.“가자. 검표 시작한다.”염구준이 입구를 가리키며 일행에게 말했다.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마술쇼를 보러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대장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저기요. 거기 서세요!”그때 귀에 거슬리는 고함소리가 들렸다.주작이 홱 돌아서서 노려보더니 입을 가로막고 피식 웃었다.“큭큭, 주상의 아들이 왔네요.”바로 로브였다.어제 참교육을 받았는데 오늘 또 시비 걸러 오다니 참 용감상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시끄러운 소동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어제보다는 많지 않았다.‘아들?’멀리서 그 말을 들은 로브는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그립죠. 방금 꿈에서도 아들을 봐서 더욱 그립네요.”마거봉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아들은 그의 보배이자 삶의 전부였다.거록은 상대방의 아픈 곳을 건드린 뒤 조건을 내세웠다.“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차마 그럴 수 없었어. 이렇게 하자. 바위성에 비밀 통로가 어디 있는지 말하면 사람을 풀어주겠다.”‘사람을 풀어줘?’마거봉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지만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그것도 마린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아마도 죽거나 누구에게 구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왜, 알려주기 싫어?”“그럴 리가요. 약속대로 존주님이 필요하시다면 비밀 통로 안내하겠습니다.”마거봉은 약점을 건드렸다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했다.비밀 통로는 마거봉과 마씨 가문의 유일한 카드이니 쉽게 꺼내면 안 되었다.“지금 당장 필요해. 말해 봐.”거록 존주가 기운을 폭발시키는 것을 보니 이 자리에서 손을 쓸 것 같았다.마거봉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존주님, 약속대로 내일 저녁에 안내할게요.”“죽고 싶으냐?”거록 존주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마거봉에게 돌진하더니 무릎을 꿇렸다.조금만 힘을 줘도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었다.“내… 내일 저녁에 반드시 말할게요. 바위성에서 저만 비밀 통로를 알고 있어요.”마거봉은 겨우 소리를 내어 말했다.지금 말하면 바로 죽고 시간을 끌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휴.”한참을 사색하던 거록 존주가 한숨을 내쉬더니 기운을 거둬들였다.“단독으로 가둬라. 내일 저녁 일을 마치면 비밀 통로를 안내해줄 것이다.”“네.”옆에 있던 두 부하가 마거봉을 양쪽으로 끌며 밖으로 나갔다.그때 뒤에서 거록 존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마거봉! 개수작을 부린다면 너의 가족을 전부 몰살할 거다.”“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가족들은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마거봉은 대꾸하지 않고 비굴하게 행동했다.본채 별장에 거록 존
계획대로 주작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염구준이 나타나자 그녀가 앞으로 다가갔다.“주상, 일이 잘 풀렸나 보네요.”“그래, 녀석을 청룡에게 맡겨서 잘 돌보라고 해.”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린을 내려놓고 얼굴에 물을 뿌렸다.차가운 기운에 화들짝 놀란 마린은 낯선 사람을 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워서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우아아앙~! 집에 갈래요. 아빠 찾으러 갈래요.”“울지 마. 나야.”염구준은 인피가면을 벗고 원래 얼굴을 보여줬다.몇 년 전에 마씨 일가를 구해줬을 때 본 적이 있었다.“천신 아저씨!”그제야 마린은 활짝 웃으면서 와락 안겼다.아저씨라는 말에 조금은 억울해도 녀석에게 따지지 않았다.나이 차이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 부르게 내버려두었다.“마린, 네 아빠가 잠시 할 일이 생겨서 나랑 같이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며칠 뒤에 돌아오자.”염구준이 타일렀다.“알았어요. 아저씨 말 들을게요.”마린은 어린 아이처럼 얌전하게 말을 잘 들었다.“그럼 이 누나랑 같이 가. 너를 보살펴줄 거야.”염구준이 앞을 가리켰다.“같이 가죠. 이모.”마린은 말하자마자 주작의 기분을 망쳐놓았다.“누나라고 불러!”주작은 이마를 찌푸리며 예민하게 굴었다.그녀의 모습에 마린은 몸을 움츠리고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주작은 마린을 데리고 떠났다.그렇게 오늘 저녁 작전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휴.”염구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린이 그의 말을 잘 따라주어서 다행이었다.하지만 마린의 성격으로 상황을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청룡이 꽤 애를 먹을 것 같았다.일을 마쳤으니 염구준은 호텔에 돌아가 쉬었다.나머지는 거록 존주가 알아서 지지든 볶든 내버려두었다.그의 추측이 맞다면 거록 존주는 바로 소식을 차단하고 마거봉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 것이다.마거봉이 어떻게 할지는 가기 전에 했던 말이 있으니 정확한 선택을 했으리라 믿는다.소식은 예상대로 빨리 퍼졌다
“시끄러워 죽겠네. 위에서 명령하지 않았다면 지금 널 죽였어.”남자는 악독하게 말하며 옆에 있는 그릇을 들어 바닥에 냅다 던졌다.언행을 보면 평소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등 나쁜 짓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그런데 이런 놈을 조식 코너에 안배하다니 호텔에서 직원을 뽑는 기준이 상당히 의심스러웠다.깜짝 놀란 마린은 숨을 죽여 흐느꼈다.타닥타닥!문 밖에서 일행의 걸음소리가 들렸다.바로 미행하던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문을 잠갔다.“빨리 저놈을 납치하고 철수한다.”매니저가 재촉했다.거록 존주의 태도를 보면 혹시나 죽게 될까 봐 1초도 지체할 수 없었다.쿵!그때 염구준이 갑자기 나타나 한 줄기 기운으로 일행을 물리쳤다.목표를 확정했으니 더는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넌 뭐야? 왜 너를 본 기억이 없지?”그제야 매니저가 눈치를 채고 나지막하게 물었다.“어차피 죽을 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 필요 없어.”염구준은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어떤 정보는 숨길수록 상대방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이봐,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 그냥 가. 내가 못 본 걸로 할게.”매니저는 시간이 촉박하여 사람만 데려가고 싶었다.“그런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어. 재주껏 덤벼 봐.”어렵게 녀석을 찾았는데 저들에게 타협할 가치도 없었다.“좋아. 괜히 끼어들다가 죽어도 날 탓하지 마.”매니저는 더는 설득하지 않고 몸에서 기운을 폭발시켰다.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였다.“내가 저놈을 잡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저 녀석을 데려가.”“조심하세요!”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쿵!위험을 감지한 매니저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주먹을 맞고 미끄러져 떨어졌다.주먹 한 방에 기절한 것이었다.“싸움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콜록콜록! 개 자식, 습격했어? 비열한 새끼.”매니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겨우 일어서서 염구준을 노려봤다.“이제부터 공격할 테니까 조심해.”염구준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일합권법으로 상대
한편, 같은 시각에 호텔 밖에 있는 거록 조직의 감시원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포커를 치고 있었다. 염구준이 호텔에 들어간 뒤로 다시 나오지 않는 걸 본 그들은 오늘내로는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폭탄 카드 낼래?”“젠장, 한 게임에 폭탄 카드가 네 개나 나와? 너 꼼수 부렸지?”“재수 없네. 난 안 놀래!”바로 이때, 갑자기 이어폰에서 긴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모든 팀 주의! 몇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호텔에서 뛰어나왔다. 추적해.”감시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일어났지만, 이미 타겟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염구준의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최소 전신 위 경지의 강자들이었기에, 감시원들은 그들을 쫓아갈 재간이 없었다.“1팀, 타겟 놓침.”“2팀, 타겟 같은 인물 발견.”...각 팀에서 들려오는 보고는 하나같이 상황이 좋지 않았다.“쫓아!”현장의 총책임자는 화를 내며 소리 질렀으나 그도 사실 누구를 뒤쫓아야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에 감시원들은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무작정 타겟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그러나 호텔에서 뛰어나온 이들은 ‘친절하게’ 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 감시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그 다음 곧장 성 한 바퀴를 달린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30분 후, 거록 조직의 감시원들이 완전히 지쳐버린 뒤에야 염구준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걸어나왔다. 주변에는 이제 감시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그의 계획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염구준은 재빠르게 호텔 입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젠장, 또 사라졌네!”“그러니까. 어떻게 사람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수가 있어?”조용한 골목 한쪽에서는 감시팀 한 무리가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담배를 피우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슥.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며 한 명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피곤에 찌든 감시원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
예전에 전신전에서 염구준은 굉장히 엄격한 리더였다.부하들이 실수하면 반드시 벌하고, 잘해도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군 했으니까 말이다.‘야수의 군대’ 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며칠 전에 전주님께서 남기신 옥패의 무학 필사본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서 돌파한 겁니다.”현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는 염구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잔소리하는 걸 잊지 않았다. “같은 반보천인이라도 그 실력이 천차만별이니까 이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나태해져서는 안 돼.”특히 고대영이 전에 그에게 알려준 극한 반보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천인경은 그가 여러 번 도전했지만, 여전히 넘지 못한 벽이었다.이렇게 되면 현재 네 명의 전존들 중, 오직 주작만이 전신 위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셈이 되었다.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녀에겐 잡념이 너무 많았다. 오자마자 붉은 장미와 말다툼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염치도 없지. 말해, 일부러 주상께 접근한 의도가 뭐야?”“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난 이미 약혼자가 있어!”붉은 장미는 지지 않고 손가락의 반지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그 반지는 꽤나 큰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었다.“흥, 나도 있어!”주작은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는데, 그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붉은 장미의 것보다 열 배는 컸다.“그래서? 넌 여전히 솔로잖아.”붉은 장미는 비웃으며 말했다.“나... 나는 내가 솔로인 게 자랑스러워! 그리고 내가 솔로든, 아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이에 주작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채로 반박했다.‘머리 아파.’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두 사람은 전생에 원수였는지 계속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겨, 매번 만날 때마다 말싸움을 하기 때문이었다. 전신 위의 강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평범한 여자처럼 사사건건
마거봉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억지로 태연하게 말했다. “존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구는 걸 보면 약점이 잡힌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마.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니까.” 그러나 거록 존주는 인질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하지만...”이에 마거봉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거록 존주가 바로 말을 끊었다. “그쯤해. 넌 네 일만 잘 하면 돼.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체 마씨 가문을 없애버릴 거니까, 명심하고.”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시켜먹을 때, 협박과 회유를 섞어 쓰지만, 거록 존주는 오직 협박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예.”마거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바로 물러났지만 속으로는 염구준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돌이켜보았다.한편 염구준은 이미 전에 전세 낸 호텔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호텔 주변에는 그가 배치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밟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못했다.조용한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붉은 장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추측한 걸 전부 털어놓았다. “마거봉이 이상해요. 그 주변 경호원들도 뭔가 수상하고요. 당신도 눈치챘죠?”그러나 염구준은 느긋하게 차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거록 존주의 부하들입니다. 다만 거록 존주가 직접 왔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바위성에 오자마자 실세부터 잡은 걸 보면, 뭔가 큰일을 벌이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아...”붉은 장미는 그의 말을 듣고나서 어느정도 깨달았으나 궁금한 점이 더 많아졌다.“그렇다면, 아까 우리가 그 경호원 넷을 처치하고 마거봉을 도와줬으면 됐잖아요?”언뜻 보기엔 그녀의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확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