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괴의 영지를 깨운 뒤 윤구주와 연규비는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동산을 데리고 여씨 일족 영지를 떠나자마자 윤구주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번뜩이는 두 눈으로 먼 곳에 있는 벌거벗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왜 그래? 구주야?”연규비는 윤구주가 갑자기 멈춰서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구주는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갑자기 말했다.“뭔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어.”“누구?”연규비는 화들짝 놀라며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신념술을 발동했다. 엄청난 정신력이 마치 그물망처럼 주위를 뒤덮었다.신념술은 정신력을 감지하는 신통한 기술이다.윤구주는 곧바로 신념 사이에서 사악한 기운 하나가 그 벌거벗은 나뭇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그 사악한 기운을 찾은 윤구주는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찾았다! 규비야, 날 따라와!”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는 두 발로 땅을 살짝 구르더니 순식간에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는 윤구주가 그곳으로 가자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동산은 아래에서 바쁘게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몇 분 뒤, 윤구주는 사악한 기운을 따라서 한 황폐한 산에 도착했다.그 산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그 산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윤구주는 그곳에 도착한 뒤 순식간에 조금 전 문아름과 노인, 독고명이 있던 곳에 나타났다.연규비도 이때 날아왔다.“구주야, 찾았어?”연규비는 윤구주의 곁으로 온 뒤 서둘러 물었다.윤구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찾았어. 기운은 여기서 끊겼어.”“하지만 이 주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연규비는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았다.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말했다.“엄청난 기운이야!”“뭐?”옆에 있던 연규비는 당황한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의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역시
“그들은 신경 쓰지 마! 그들이 정말로 나타난다고 해도 내가 이기면 되니까.”윤구주가 카리스마 넘치게 말하자 연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윤구주가 두려워할 강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신급 절정이라고 해도 윤구주는 그를 죽일 수 있었다.그는 과거 12대 신급 절정 중 최강자였기 때문이다....군형 5대 가족 중 마지막으로 류씨 일족만 남았다.류씨 일족은 구류족이라고도 불린다.소문에 따르면 구류족은 먼 옛날 치우 부족이었다고 한다.구류족은 5대 가족 중 가장 강했다.그들은 무신을 신봉하고 요술을 수련한다.그리고 구류족 중에는 신급 강자에 다다른 선조가 있었다.음산 산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시 부족이 바로 구류족이었다.멀리 구류족 안에 구름처럼 높이 솟은 제단들이 보였는데 그 제단은 수십 미터에 달했다.게다가 위에는 구류족이 신봉하는 무신이 조각되어 있었다.윤구주가 황폐한 산에 나타났을 때 구류족에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두 팔로 검을 안고 있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이다.그의 얼굴은 초췌했고 몸은 단단했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직 어두운 살육의 기운만 느껴졌다.그가 바로 문아름 곁의 호위 독고명이었다.그는 독고 일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독고명은 구류족의 범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구류족 밖에 있던 십여 명의 경비원들은 멀리서 검을 든 낯선 남자가 갑자기 다가오자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갔다.“누구냐? 누가 감히 흉기를 들고 우리 구류족으로 들어오려는 거야?”몸집이 큰 구류족 경비원이 독고명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바위 같은 독고명은 천천히 무감정한 눈빛을 들어 또박또박 말했다.“난 방지형을 찾으러 왔다. 나와서 날 만나라고 해.”“방지형? 방지형이 누군데?”경비원은 당황했다.“군형 삼영이라 불리는 방씨 선배님이 아닐까요?”한 경비원이 입을 열었다.덩치가 큰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방 선배님?”방지형의
독고명이 구류족 경비원들을 학살하고 있을 때, 구류족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원형 궁전 안에는 흉악하기 짝이 없는 큼지막한 신상이 있었다.그 신상은 군형에서 제일 유명한 흑무신이었다.커다란 흑무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한 손에는 어둠의 삼지창을, 다른 한 손에는 피범벅이 된 시체를 들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군형의 흑무신은 무족의 기원이라고 한다.수천 년 전의 화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이때 음산한 대전 안에는 구류족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가장 중앙에는 온몸에 요기가 서린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은 눈이 먼 것처럼 눈알이 하얬고,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머리카락도 뻣뻣했다.그는 에메랄드가 두 개 박힌 뼈로 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그가 바로 구류족의 족장이었다.그는 5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요법을 이용해 신급 경지에 다다른 강자였다.“어르신, 4대 가족은 모두 연합하여 그 외부인을 상대한다고 합니다. 어르신, 이번만큼은 저 방지형을 한 번만 도와주세요. 그 외부인을 죽인다면 저 방지형, 앞으로 구류족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동시에 어르신께 큰 상을 내려야 한다고 서울에 있는 여왕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군형 삼마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방지형이 말했다.그는 4대 가족을 떠난 뒤 구류족 족장을 설득하러 왔다.방지형은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급 강자가 나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군형 5대 가족 중 유일하게 윤구주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구류족 족장이 유일할 것이다.방지형의 말을 들은, 신급 경지에 다다른 노인은 킥킥대며 괴상하게 웃었다.“외부인의 실력이 그렇게 강하다고? 4대 가족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방지형이 말했다.“네, 그게 아니었으면 제가 직접 어르신을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재밌군!”구류족 족장은 그렇게 말한 뒤 잠깐 뜸을 들였다.“내가 그 외부인을 죽여줄 수는 있어.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어. 내가 그 외부인을 죽인다면 서울에 있는 그 여자는 앞으로 서남의 모든 권력을 우리 구류족에 맡겨야
방지형이 입을 열었다..구류족 족장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검을 쓰는 무인 따위가 뭐가 그렇게 두렵다고.”“어르신은 모르시겠지만 그 사람은 패도멸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이황왕께서는 신급 아래 강자 중에 그의 검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가 검으로 신급 강자도 벨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욱 무시무시한 건 그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는 평생 검법에만 빠져 살았습니다.”그 말에 구류족 족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울 이황왕의 사람이 왜 갑자기 우리 구류족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거지??”방지형이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제가 나가서 물어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방지형은 곧바로 빠르게 날아갔다.대전 안의 구류족 장로들과 신급 경지인 족장도 빠르게 따라 나갔다.구류족 정중앙.수백 명의 사람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차가운 표정의 검을 안은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남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마치 천군만마도 그의 눈에는 개미처럼 보이는 듯했다.그는 그렇게 한 걸음씩 구류족 대전을 향해 나아갔다. 앞에 수백 명의 구류족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그의 등 뒤에 이미 수십 구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독고명 씨, 그만하세요!”이때가 되어서야 군형 삼마 중 한 명인 방지형이 사람들 틈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그의 등 뒤에는 구류족 족장과 장로들이 있었다.방지형이 나온 뒤 바위처럼 냉담하던 독고명이 천천히 무감정한 눈을 들어 방지형을 바라보았다.“드디어 나왔군.”방지형은 독고명의 뒤에 수많은 구류족 사람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안색이 돌변했다.“독고명 씨, 우리 모두 이황왕의 부하인데 왜 갑자기 구류족에 쳐들어와서 구류족 사람들을 죽인 겁니까?”“흥!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가씨 부하라고 자처하는 거지?”독고명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방지형은 화가 났다. 독고명
뭐라고?4대 가족이 전부 죽었다고?그 소식을 들은 방지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귀신이라도 본 듯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앞의 독고명을 바라보았다.뒤에 있던 신급 경지에 다다른 족장을 포함 구류족 사람들도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놀랄 필요 없어요. 당신들도 다 죽게 될 테니까.”독고명이 갑자기 한마디 보탰다.그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그저 미지근한 물을 마신 사람처럼 태연했다.방지형과 뒤에 있던 구류족 사람들은 그들이 죽을 거라고 하자 당황했다.“아가씨께서 명령을 내리셨어요. 죽기 전에 쓸모를 다하라고.”독고명이 다시 말했다.방지형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쓸모를 다하라는 건... 뭔 뜻이죠?”독고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챙’ 소리와 함께 품속에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검은색 검을 꺼냈다.길고 검고 차가운 검이었다.검을 뽑아 드는 순간, 무시무시한 검은색 검의가 삽시간에 먹구름처럼 몰려와 하늘을 까맣게 메웠다.들끓는 검의에 폭풍이 휘몰아쳤다.검을 뽑자 하늘이 어두워졌지.다들 거대한 검이 하늘에 나타나는 걸 보았다.그것은 패도였다.패도의 검의가 나타나자 그 공간의 모든 사람이 큰 산에 심장이 짓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졌다.심지어 신급 강자라는 구류족 족장도 이 순간 표정이 좋지 않았다.무시무시한 검의에 방지형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독고명을 바라보았다. 그는 독고명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독고명은 손가락으로 하늘 위 비틀린 검을 가리켰고, 그 순간 들끓는 검의가 그의 손끝에 모여들었다. 검의가 다 모여든 뒤 그는 갑자기 방지형의 가슴팍을 가리켰다.쿵!그 순간 방지형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저렸다.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뼛속까지 스미는 서늘한 패도 검의가 그의 땀구멍과 혈액 속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모든 검의가 방지형의 몸에 전해진 뒤 독고명은 갑자기 손가
연규비는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당황했다.“구주야,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들리는 거야?”그녀는 깜짝 놀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출중한 그에게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마치 신처럼 허공에 서 있었다.“술법의 끝은 절정의 근원이지. 내 신념술은 발동되면 자연의 소리가 들릴 뿐만 아니라 길흉도 점칠 수 있어. 겨우 이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어.”카리스마 넘치게 말한 뒤 윤구주는 허공에서 내려왔고, 연규비는 다급히 그를 따라서 내려왔다.“구류족에서 먼저 죽으려고 찾아왔으니 그들을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네.”윤구주는 천천히 말한 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윤구주가 책상다리를 하자 연규비도 묵묵히 그의 곁에 앉았다....윤구주와 수십 리 떨어진 음산 산맥의 깊은 곳에는 많은 사람이 윤구주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들은 구류족이었다.과거에는 노기등등했던 구류족이 지금은 서리 맞은 가지처럼 다들 풀이 잔뜩 죽어서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다.심지어 가장 앞에 있던 구류족 족장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지형 씨, 당신이 건드린 그 녀석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강해요? 혼자서 4대 가족을 없앨 정도로?”얼마 뒤, 구류족의 한 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화가 난 얼굴로 군형 삼마 방지형을 노려보았다.방지형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머릿속에 윤구주가 그날 시전했던 천둥이 떠오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네...”그 말에 구류족의 다른 장로가 곧바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혼자 군형 4대 가족을 없앴다고요? 설마 마귀인가요?”“마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신급 경지 이상이에요.”방지형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방지형의 말을 듣자 구류족 장로들은 안색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다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그 자식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우리 군형 5대 가족을 상대해?”그 말을 한 사람은 구류족 족장이었다.
족장의 말에 장로는 흠칫하면서 먼 곳의 숲으로 시선을 옮겼다.무성한 숲속에는 옅은 안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심지어 숲속의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쥐 죽은 듯 고요함과 억눌린 듯한 분위기뿐이었다.“족장님, 왜 앞의 숲속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옆에 있던 장로는 숲속에서 느껴지는 수상쩍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물었다.“예전에 고서에서 한 사람의 살기가 극에 달하면 사절의 땅이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이 광경을 내가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구류족 족장은 눈앞의 숲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족장 옆의 장로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절의 땅이란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 지옥과도 같은 땅을 가리켜. 그 사람이 있는 곳 주위의 모든 생명체가 두려움에 떨다가 사라진다고 해. 그것이 바로 사절의 땅이야.”그 말에 장로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멀리 있는 숲을 바라봤다.“이번에는 진짜 고수를 만난 듯해.”구류족 족장은 음산하게 말한 뒤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다들 전투 준비를 해!”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구류족 사람들은 일제히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고, 다들 큰 적을 마주한 사람처럼 앞을 바라봤다.구류족 족장은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 한기 어린 눈빛으로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다들 날 바짝 따라!”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앞에서 갑자기 사악한 기운이 넘실댔다. 그 사악한 기운은 방패처럼 그들의 몸 주위를 둘러쌌다.그렇게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사절의 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모두가 사절의 땅에 들어섰을 때, 숲 전체에서 암울한 기운이 퍼졌다.마치 숲이 아니라 지옥인 것처럼 말이다.칼로 베는 듯한 섬뜩한 살기를 제외하면 절망의 기운뿐이었다.“족장님... 어서 보세요.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족장 뒤를 따
군형 삼마 방지형이 드디어 윤구주를 알아봤다. 구류족 사람들과 신급 강자인 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윤구주는 책상다리를 하고 산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이 자식, 드디어 나타났네!”윤구주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공간이 격렬히 흔들렸다.엄청난 살기가 그의 눈동자에서 발사되어 공간 전체를, 그리고 방지형을 감쌌다.군형 삼마인 방지형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정말... 정말 너였어!”방지형은 턱이 덜덜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보였다.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강성에서 너희 세 명이 채은이를 해쳤어. 오늘 난 그 빚을 갚으러 온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방지형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 자식, 내가 널 두려워할 것 같아? 오늘 이곳은 서남 군형이야. 너 혼자서 우리 일족을 상대할 수 있겠어?”“족장님, 저 자식이 4대 가족을 몰살한 놈입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자식을 죽일 수 있을 겁니다.”방지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류족 족장에게 말했다.백발이 성성하고 눈이 희끄무레하며 지팡이를 짚은 구류족 족장은 처음부터 윤구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정신력으로 윤구주의 실력을 파악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정신력으로 윤구주를 살폈을 때 윤구주의 몸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에 구류족 족장인 그는 긴장되기 시작했다.그는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대체 누구야? 왜 우리 군형 사람들을 죽이려는 거야?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말이야!”구류족 족장은 윤구주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갑게 말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죽고 싶으면 그냥 빨리 죽어!”그 말에 족장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비록 윤구주의 실력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한 일족의 족장이었다.그래서 윤구주의 말을 듣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거만한 자식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