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우의 말에 주세호는 머쓱해졌다.소채은이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건 맞지만 명문가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주세호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소씨 일가는 강성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류 가문이었기 때문이다.화진 전체를 놓고 보면 먼지 한 톨만도 못했다.그래서 주세호는 아주 머쓱했다.“왜 그래? 얼른 말해 봐. 그분 아주 예쁘시지?”정태웅이 작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그가 입을 떼자마자 옆에 있던 천현수가 그를 힘껏 걷어찼고 그 바람에 정태웅은 비틀거리면서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제기랄, 천현수, 난 왜 차는 거야?”천현수에게 차인 정태웅이 고개를 돌리며 욕했다.“멍청한 놈! 감히 저하의 약혼녀를 멋대로 품평하려 하다니, 당연히 처맞아야지!”천현수가 화를 내며 말했다.“하하하하! 잘했어, 천현수!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는 맞아야 해. 자기 입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멋대로 지껄이니 말이야!”옆에 있던 박창용이 동의했다.정태웅도 자신이 조금 전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은 건지 차인 곳을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난 저하가 걱정돼서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그만해. 궁금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알려주지!”윤구주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내 여자는 소채은이라고 해. 소씨 가문은 왕실 친척도 아니고 명문가도 아니야. 그저 강성시의 아주 평범한 가정이지!”“평범하다고요?”정태웅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과거 구주왕은 천하의 모든 여자를 홀렸었다.10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 나라의 많은 황실 공주가 윤구주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진으로 왔다. 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자신과 결혼할 여자가 강성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자라고 하자 정태웅은 믿을 수가 없었다.“맞아! 채은이 집안은 아주 평범한 가정이야. 심지어 솔직히 얘기해서 지금까지도 채은이 집에서 우리가 만나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세상에!그 말에 정태웅은 펄쩍 뛰었다.“장난이시죠? 화진의 그 어떤 사람이 감히 자
고개를 들자 윤구주의 마음속으로 소채은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윤구주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10개국 간의 전쟁이 끝난 뒤 난 화독 때문에 죽음의 바다에 빠졌었어.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수련한 구양진용결 호신 공법 덕분에 깊은 바다에 빠져도 죽지는 않았어. 그리고 내가 바다에 빠져 실신했을 때 채은이가 바닷속에서 날 봤었어.”그녀에 관한 기억을 윤구주는 조금씩 얘기했다.그는 소채은이 자신을 구한 일, 그가 잠깐 기억을 잃었고 소채은이 그를 자동차 정비원으로 오해한 일, 소채은의 집안에서 돈 때문에 소채은을 억지로 중해그룹의 조성훈과 결혼시키려고 한 일, 소채은이 윤구주를 지키기 위해 집안에서 쫓겨난 일 등등을 얘기했다. 사소한 것까지 전부 말이다.지난 과거에는 웃음과 눈물이 있었지만 더욱 많은 건 사랑이었다.정태웅 등 사람들은 윤구주와 소채은의 만남과 오해, 그들의 사소한 일을 듣고 그것에 푹 빠졌다.특히 정태웅은 소채은이 사랑을 위해서 집안과 연을 끊으면서까지 윤구주를 지키려고 한 걸 알았을 때, 다시금 눈시울을 붉혔다.“정말 훌륭하신 분이군요! 전 비록 그분을 본 적이 없지만 그분은 제 마음속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에요!”옆에 있던 박창용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맞아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서 자격이 충분하죠.”그들 중 주세호가 윤구주와 소채은의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이때, 윤구주와 소채은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주세호는 흐뭇하기도 하고 개탄스럽기도 했다.윤구주가 평생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났다는 것이 흐뭇했고, 자기 딸에게는 그런 복이 없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나 윤구주는 평생을 종횡무진하며 무적으로 살았어. 그러나 소채은은 그 사실을 전혀 몰라.”윤구주는 갑자기 감탄했다.“소채은의 눈에 난 그저 윤구주일 뿐이야. 기억을 잃은, 심지어 직장도 없는 바보일 뿐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소채은은 여전히 날 사랑하고 날 지켜주려 해. 이런 바보 같은 여자를 내가
5일 뒤면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식이다.소씨 집안 대문 앞.민규현은 암부 부하들을 데리고 바짝 경계하며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정태웅과 천현수가 강성에 도착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그는 자기 형제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정태웅의 뻔뻔함과 천현수의 침착함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이 저하를 뵀을 때 얼마나 흥분할지 생각해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정태웅 아마 또 울고 있겠지?”정태웅을 떠올린 민규현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소씨 저택 정원 안.소채은과 윤구주의 결혼식 날짜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소씨 집안 사람들은 바빠졌다.첫 번째는 소청하였다.그는 모든 친척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심지어 예전에 연락하지 않던 낯선 친척들에게도 전부 알렸다.이 때문에 천희수는 소청하와 싸우기까지 했다.천희수는 연락하지 않던 친척들에게는 왜 알렸냐고 면박을 줬고, 소청하는 우리 딸이 결혼하는 데 당연히 알려야지, 왜 알리지 말아야 하냐는 입장이었다.천희수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을 잃은 데다가 직장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데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말이다.소청하는 천희수의 말을 듣더니 그녀를 욕했다. 식견이 짧은 당신이 뭘 아냐, 윤구주의 험담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말이다.천희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소청하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갑자기 이렇게 윤구주를 감싸고 도는지 말이다.심지어 그는 윤구주가 기억을 잃은 것도, 직장이 없는 것도 못마땅해하지 않았다.답답한 천희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소청하가 모든 친척에게 다 연락을 돌리는 걸 지켜만 봤다.심지어 아주 오래전에 해외로 갔던, 염치없는 친척 누나에게까지 연락했다.그 친척 누나는 소지영이었다.과거 그녀는 소청하와 큰아버지 집안의 재산을 빼앗으려 들었고, 그의 친아버지를 산 채로 굶겨 죽여놓고는 훌쩍 해외로 떠나서 살았다.요 몇 년 동안 해외에서 꽤 잘 지낸다고 들었다.10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들은 이번
“윤구주 쪽에서 성대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소씨 가문은 크게 망신당할 거야!”천희수가 말했다.엄마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팠다.윤구주의 친척들에 대해 소채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그러나 문제는 윤구주가 기억을 잃었다는 점이다.그가 친척들을 기억할 리가 있겠는가?“너 설마 윤구주가 아직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할 건 아니지?”천희수는 소채은이 말이 없자 너무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엄마... 저랑 구주랑 결혼하는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저희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요. 친척들이 얼마나 오는지, 성대한지 성대하지 않은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소채은이 말했다.그 말에 천희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장난해? 여자 결혼식이 성대하지 않으면 뭐가 성대해야 해? 소채은, 경고하는데 이번 결혼식을 윤구주가 성대하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천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면서 말했다.“그리고 윤구주가 기억을 잃었든 말든 상관없어.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더라도 꼭 친척들이 결혼식에 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걔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화를 낸 뒤 천희수는 몸을 돌려 떠났다.소채은은 혼자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곳에 남아있었다.엄마의 말이 맞았다.결혼은 여자에게 있어 인생에서 아주 큰 일이었다.천희수가 부모로서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부모라면 무릇 자기 딸이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서 집안 체면이 서길 바랄 것이다.하지만 윤구주의 상황은 좀 남달랐다.그는 기억을 잃지 않았는가!그런 생각이 들자 소채은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일단 윤구주에게 어떤 상황인지 물어볼 생각이었다.만약 친척과 친구가 정말 없다면 배우라도 고용할 생각이었다....용인 빌리지.윤구주가 형제들에게 소채은과의 사랑 이야기를 해준 뒤로, 박창용과 원성일, 주세호, 정태웅, 천현수 등은 다들 소채은을 인정했다.게다가 그들은 이미 소채은을 윤구주의 아내로 인정했다.“저하, 이제 며칠 뒤면 결혼식이네
형제들이 윤구주의 결혼 준비에 관해 묻고 있을 때 윤구주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소채은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쉿!”그는 형제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박창용과 정태웅, 천현수, 원성일, 주세호는 똑똑한 사람들이었기에 윤구주가 조용히 전화를 받기를 원하자 누가 전화한 건지 단번에 눈치챘다.그래서 그들은 숨을 죽이고 마치 도둑처럼 윤구주의 곁에 붙어서 엿들었다.“구주야, 뭐해? 나 안 보고 싶었어?”전화 건너편에서 소채은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연히 보고 싶었지!”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그 말에 정태웅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박창용은 정태웅을 걷어찼고 정태웅은 찍 소리 내지 못했다.“어머, 구주야, 너 옆에 다른 사람 있어?”전화 너머 정태웅의 기척을 들은 소채은이 서둘러 물었다.“아니, 아니.”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태웅을 향해 눈을 흘겼다.“그래? 구주야, 이제 5일 뒤면 우리 결혼식이잖아. 흥분되지 않아?”소채은이 전화 건너편에서 말했다.“흥분되지!”“정말? 그거 알아? 나 매일 밤 너무 들떠서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감으면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달콤하게 살지 머릿속에 떠올라. 헤헤!”소채은이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자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참, 구주야. 너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소채은은 잠깐 고민한 뒤 말했다.“무슨 얘기?”“저번에 내가 너랑 결혼식에 참석할 친척에 대해 얘기했었잖아!”소채은은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뗐다.“넌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우리 아빠가 우리 결혼한다는 걸 알고는 미친 듯이 우리 집안의 모든 친척과 지인들에게 얘기했어. 심지어 십 년 넘게 연락하지 않았던 친척들에게까지 연락을 돌렸어! 그래서...”소채은은 거기까지 말한 뒤 멈췄다.눈치 빠른 윤구주는 소채은의 말을 듣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채은아, 혹시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내가 친척들을 좀 불러서 본인들의 체면을 세워주길
“그래도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마. 그냥 대충 하면 된다고 해. 난 그렇게 요구가 높지 않으니 말이야. 참, 너 돈 모자라지 않아? 돈 모자라면 내가 회사 통장에서 돈 꺼내서 너한테 보내줄게!”소채은이 전화 건너편에서 말했다.돈이라는 말에 윤구주는 서둘러 사양했다.“아냐, 아냐. 모자라지 않아.”“정말?”“응!”“그래. 혹시나 뭐 부족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나한테 얘기해!”소채은과 잠깐 얘기를 나눈 뒤 윤구주는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정태웅이 첫 번째로 펄쩍 뛰었다.“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정말 좋은 여자예요! 저하, 전 비록 그분을 뵌 적은 없지만 전 이미 그분의 선량함에 깊이 감복했어요!”주세호는 웃으며 말했다.“맞아. 그분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주 선량해. 우리 저하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걱정하시잖아. 하하하하! 그분은 우리 저하가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바로 돈과 권력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하하하하! 확실히 그렇지!”박창용이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너희들 다 잘 들어. 조금 전에 소채은 씨께서 그러셨잖아. 소채은 씨 부모님께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길 원한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게 우리 저하의 결혼식을 가장 성대하게 꾸며서 화진에 이름을 널리 떨치게 하자고!”“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천하회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저도요!”...1일 뒤, 강성국제공항 출구.두 명의 낯익은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아빠, 고모 진짜 해외에서 온대요?”말하는 사람은 재킷을 입은, 눈에 핏발이 가득 선 남자였다.그는 안색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엉망이었다. 그는 공항 픽업 게이트에서 목을 움츠린 채로 연신 하품하며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당연하지! 게다가 네 고모 말로는 해외에서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네 고모 남편이 다국적 기업에서 해외 매니저를 맡고 있는데 연봉이 수백만 달러래!”낡은 정장에 안경을 쓰고 있는 중년 남성이 말했다.“그래요? 정말 좋
소천홍 부자는 소씨 일가에서 쫓겨난 뒤 DH그룹이 전에 SK 제약에서 인수했었던 100억을 들고 도망쳤다.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강성을 떠난 건 아니었다.그들은 처음에 희망을 조씨 일가에 걸었고, 심지어 두 부자는 조씨 저택 앞에 무릎 꿇고 그들이 소씨 일가의 대권을 빼앗을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랐다.그러나 뜻밖에도 조씨 일가가 곧 망했다.중해그룹의 도련님 조성훈이 갑자기 죽고, 조씨 일가마저 강성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이러한 상황에 소천홍 부자는 절망에 빠졌다.비록 그들에게는 100억이 있었지만 소진이 강성의 양아치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마약에 빠졌다.그리고 반년도 되지 않아 그들은 100억을 전부 다 써버렸다.지금 소천홍 부자는 빈털터리였다.결국 막다른 길까지 몰린 소천홍 부자는 소씨 일가로 돌아가서 대권을 빼앗을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소채은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심지어 해외로 나갔던 소청하의 친척 누나가 돌아온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다.그래서 두 부자가 이곳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지독한 친척 누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아버지, 고모가 정말로 저희를 도와 소씨 일가의 대권을 빼앗고 가업을 빼앗을까요?”눈에 핏발이 가득 선 소진이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아마도 될 거야. 잊지 마. 당시 난 네 고모를 도운 적이 있어!”“헤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소채은, 이 빌어먹을 계집애. 딱 기다려. 우리가 소씨 일가의 대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소진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뜩였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십여 분 뒤, 로앤에서 강성으로 오는 국제 항공편이 도착했다.잠시 뒤, 많은 외국인과 출국했던 사람들이 크고 작은 짐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그러다 짙은 화장에 선캡을 쓰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늙은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그 여자는 머리에 웨이브를 넣었다.목에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 목걸이를 했는데 손이 더 과했다. 그녀는 거의 모든 손가락에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
소천홍은 소지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말했다.“누나 말이 맞아요. 참, 제가 누나를 위해 호텔을 예약해 뒀는데 우선 호텔로 가요!”“그래!”소천홍 부자는 소지영을 데리고 공항을 떠났다.BMW 안, 소천홍은 운전하고 있었고 해외에서 돌아온 소지영은 뒷좌석에 앉아있었다.그녀는 미간을 구기면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구질구질하네. 공기도 탁하고 말이야. 저것 좀 봐. 거리가 아주 더럽고 지저분해. 역겨워 죽겠어!”소지영이 계속 투덜대도 소천홍은 대꾸하지 않고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누나, 이번에는 국내에 얼마나 있을 생각이에요?”“내가 왜 여기서 지내? 여기처럼 구질구질한 곳에는 1분이라도 더 있을 생각이 없어!”소지영이 불평했다.“그러면 누나는 이번에 소채은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돌아온 건가요?”소천홍이 물었다.“소채은을 위해서라니? 말도 안 돼! 솔직히 얘기할게. 이번에 내가 돌아온 건 네 형부 쪽의 한 협력업체가 국내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우선 상황 좀 알아보려고 온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곳에 왜 왔겠니?”소지영이 같잖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에 소천홍은 미소를 지었다.“누나, 누나가 떠난 10년 동안 우리 소씨 일가가 많이 달라졌어요.”소천홍이 갑자기 감개하며 말했다.“달라졌다고?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데?”소지영이 냉소했다.“휴, 말하자면 긴 얘기예요. 누나는 모르겠지만 우리 소씨 일가는 지금 외부인에게 점령당했어요. 심지어 저도 쫓겨났어요!”소천홍은 말하다가 갑자기 울먹거렸다.“뭐? 네가 쫓겨났다고? 무슨 뜻이야?”소지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소천홍은 억울한 척하면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솔직히 얘기할게요. 저랑 소진이 지금 소씨 일가에서 쫓겨나서 길거리에 나앉았어요.”“응? 그럴 리가 없잖아. 넌 소씨 일가 장남이잖아. 그런데 네가 왜 집안에서 쫓겨나?”소지영은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제가 소씨 일가 장남이기 때문에 절 집안에서 내쫓은 거죠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