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인, 진압!”현모의 몸에 새겨진 녹색 문양이 다시 강렬한 빛을 발하며 번쩍였다.네 개의 돌기둥에서 그물 모양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 영역을 형성하며 귀산을 봉쇄했다. 이 영역은 십만 대군 위에 떠 있는 국운을 보호하고 있었다.하지만 호천신은 갑작스러운 에너지파에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영역을 향해 돌진했다. 영역을 들이받는 순간 강한 힘에 의해 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게 부적인가 전법인가? 대체 뭐야? 당장 깨져라!”호천신은 신술을 발동해 영역을 마구 두들겼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멍청한 놈! 이건 성수인이야. 구주왕 휘하 네 명의 군신이 사용하는 필살기지! 이런 망할 놈 같으니라고! 윤구주가 성수전의 봉인된 술법을 부하들에게 전수했단 말인가!”상공의 검은 구멍에서 분노와 질투로 가득 찬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윤구주가 그런 귀한 술법을 얻었으면서도 그것을 네 명의 평범한 부하에게 전수했다는 것이었다.필살기라니!필살기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호천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신이 그렇게 말했다면 현모의 이 술법이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현모가 다루는 성수인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것이다. 네 눈은 장식품인 것이냐?”호천신은 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상공에는 신귀수의 허상이 떠올라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수였다.“헉! 성경이다!”호천신의 이마에 차가운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사방의 네 개 돌기둥을 바라보니 돌기둥은 실체로 존재했고 그 위에 부적과 토템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이 정보들로 호천신은 현모의 능력을 대략 알아챌 수 있었다.“성수의 허상은 주로 날짐승과 들짐승을 제압하는 데 사용되며 인간이나 신에게는 효과가 미약할 것이야. 그뿐만 아니라 현모 내공의 제한을 받아 이 전법의 위력은 그리 크지 않아.”“하지만 이건 성수전의 천술입니다. 저 혼자서는 깨기 어려워요.”곤륜 출신의 호천신은 마음을
“하왕결, 천하무쌍!”현모가 기법을 바꾸어 화진 임씨의 금술을 펼쳤다.금술과 함께 왕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어두운 금색의 기세가 천하를 흔들며 호천신의 얼음의 왕좌를 순식간에 산산조각냈다.호천신이 반응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상황이 뒤바뀌었다.“뭐야! 이게 뭐야! 현모가 화진 임씨의 금술을 익혔다고? 젠장! 임씨가 저자를 왕실로 삼은 거야?”뭔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호천신의 금창이 부서졌다.법기와 전법이 연이어 파괴되며 그 부작용으로 호천신은 반쯤 죽은 목숨이 되었다.“하우, 왕은 무적이다.”현모가 다시 금술을 펼치자 구름 속에서 금빛 신검이 내려와 호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었다.이 일격으로 호천신은 몸이 갈기갈기 찢겨 더는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내공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이런 쓸모없는 놈! 곤륜 대원만이 구오 후기를 이기지 못하다니. 너는 우리 신계의 수치야!”구름 위로부터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호천신이 윤구주의 목숨을 거두겠다고 큰소리를 쳤기에 호천신과 윤구주의 대결을 기대했는데 윤구주의 얼굴도 못 보고 그의 수하인 현모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하다니 참 망신이로다.연이은 금술로 현모도 힘이 빠져 더는 술법을 펼칠 수 없었고 간신히 신수인으로 국운을 지킬 뿐이었다.“저희 계획에 현모는 없었잖아요. 저는 현모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고.”호천신이 간신히 숨을 내쉬며 구름 위에 있는 상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육신이 망가진 네가 무슨 쓸모가 있지?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주마. 내가 너에게 귀신족의 귀기를 주겠다. 네 영혼을 움직여 윤구주를 죽여라.”신의 말을 들은 호천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지금 이 지경이 된 나더러 윤구주를 죽이라고? 현모도 못 이겼는데 어떻게 윤구주를 죽이란 말이지? 게다가 나는 내공이 부족해 강제로 영혼을 내보냈다가 귀기가 사라지면 죽을 거야.’“일을 완수하면 네 잔혼을 거둬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바로 네 혼을 흩어버릴 것이야.”신의 목소리가 다
수옥인은 음령을 제압하는 부적으로 기습공격을 했다.“감히 기습을 해? 내가 널 못 본 줄 알았나? 겨우 구오 초경의 실력으로 진동왕보다도 못한 것이 누가 너에게 그런 배짱을 줬냐!”호천신은 귀기로 수옥인의 부적을 깨뜨리고 그를 쓰러뜨렸다. 수옥인은 반쯤 얼어붙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온몸에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수옥인을 처리한 호천신은 즉시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다!“윤구주, 죽어!”으스스한 바람이 크게 일며 사신이 윤구주의 목숨을 노렸다.지금 이 자리에서 윤구주를 죽인다면 빙신전의 가장 큰 적을 해결하는 것이니 호천신은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윤구주 영혼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눈을 떴다.“팔기지, 이화금안.”금안이 발동되자 공간을 왜곡되는 듯하더니 혈홍색 연꽃이 피어나며 호천신의 영혼을 불태웠다.그로 인해 귀신족의 귀기는 순식간에 타버렸고 호천신의 영혼은 진법 안에서 허우적댔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리자 정신을 차린 수옥인도 함께 울부짖었다.호천신의 영혼은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사라졌다. 호천신이 사라졌는데도 수옥인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시끄러워. 내가 저놈 태우는데 너는 왜 비명을 지르는 거야?”귀청을 찌르는 비명에 짜증이 난 윤구주는 금안으로 수옥인을 기절시켜 버렸다.호천신이 죽자마자 또 다른 형체가 진법 안에 나타났다.그 투명체는 천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형체를 이룬 것인데 이는 극 신급 절정만이 가능한 일이다.“빙신전의 대 제사장께서 직접 오다니. 하지만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그쪽도 알고 있을 텐데.”윤구주가 웃으며 말하자 그 형체의 표정이 굳어졌다.윤구주의 말은 그를 이곳으로 유인해 죽이려는 것 같게 들렸다.“윤구주, 너무 건방지게 굴지 마라! 우리가 바보로 보이나? 우리가 섣불리 나서면 우리 사람이 죽고 다른 신전이 이득을 보겠지.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나.”형체가 냉소하며 말했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어이가 없어서 욕설을 퍼부었다.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냐! 너 같은 인간이 어찌 감히 곤륜 신계를 거스르려 하느냐?”형체가 노발대발해서 소리쳤다.“곤륜뿐만이 아니다. 누구든 화진을 건드리면 바로 나 윤구주의 적이다. 그게 신이든 마귀이든, 나 윤구주가 빠짐없이 죽여버릴 것이다!”형체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윤구주에게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었기에 더욱 답답했다. 윤구주가 말한 대로 그가 직접 왔다 하더라도 윤구주를 이길 확신이 없었다.직접 와서도 윤구주를 이기지 못하면 이 소식을 들은 곤륜의 다른 신전들이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 틀림없다.“건방지게 굴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혼쭐을 내줄 터이니.”“당장 꺼져! 오지도 못하면서 내 앞에서 떠들지 마.”윤구주는 그와 더는 말싸움하기 싫어 금안을 발동해 그 형체를 지워버렸다. 그는 곤륜의 이놈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싸우더라도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진짜로 운구주를 죽이려는 것은 문씨 가문이다.윤구주는 문아름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의 예감이 맞았다. 형체가 망가진 빙신전의 대 제사장은 즉시 문아름에게 연락을 보냈다.“웃기고 있네요. 말은 잘만 하더니 어디로 간 거죠? 저희가 정면에서 방해하면 그쪽이 숨에서 공격한다면서 어디로 사라진 거죠? 그리고 현무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쪽이 해결하겠다며 죽지 않고 오히려 임씨의 금술을 익혀 구오 후기로 우리 구오 대원만 천신을 죽일 뻔했잖아요.”대 제사장이 비꼬는 말투로 문아름에게 물었다.화진 변경의 설산 꼭대기.법기 속에서 그녀를 꾸짖는 형체를 바라보며 문아름은 담담히 대답했다.“현무가 살아있는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어요. 저도 임세현이 현무를 그렇게 중히 여길 줄은 몰랐어요. 윤구주에게 금술을 맡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현무에게 전수하다니. 윤구주의 실력이 더욱 정진했나 봐요.”형체는 잠시 당황하더니 의심스러운 눈길로 문아름을 바라보았다.“제 뜻은 임씨 가문의 절학이 윤구주에게는 쓸모가 없다는 얘기에요. 윤구주
“드디어 왔군!”윤구주도 다시 눈을 떴다.그는 문아름의 수단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이번에 온 자는 강적이 아니라 윤구주가 차마 죽이지 못할 친구일 것이다.천옥 북쪽에서 한 사람이 산을 뚫고 나와 귀산에 나타났다.그의 모습을 본 십만 대군은 환호성을 멈출 수 없었지만 진동왕은 표정이 어두워지며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십만 병사들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화진의 북경왕이었다.새로운 세대의 왕으로 윤구주와 거의 동시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윤구주보다 먼저 왕위에 올랐다. 그는 화진 북쪽 영토를 빼앗아 와서 국치를 씻은 영웅 같은 존재였다.그의 명성은 화진에서 윤구주에 버금갈 정도였다.그 때문에 왕실은 그를 미래 윤구주의 오른팔로 키우려 했다.“현모, 정신 차려!”진동왕은 지쳐 의식이 흐릿해진 현모에게 소리쳤다. 동시에 북경왕을 맞이하려던 모든 부하에게 후퇴를 명령했다.“후퇴하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북경왕은 우리 편이 아니었나요?”장수들이 하나둘 의아해하며 물었다.“이 바보들아! 저 사람이 우리 편처럼 보이냐!”진동왕이 크게 꾸짖었다.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북경왕은 온몸에 살기가 넘쳤고 차가운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현모도 무언가를 깨닫고 북경왕을 향해 소리쳤다.“북경왕! 그쪽은 화진의 왕입니다! 저와 목숨을 나눈 전우였고 저희 왕은 그쪽을 형제처럼 대했어요. 문아름 씨가 그 쪽에게 무슨 짓을 시켰든 이건 그쪽 본의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현모가 절규했다.북경왕이 지금 손을 쓰면 새로 태어난 국운이 위태로워진다. 국운을 위해서라도 진동왕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새로운 국운이 북경왕의 손에 망가져서는 안 된다.만약 북경왕이 국운을 깨뜨린다면 화진 사람의 손에 의해 국운이 깨진다면 화진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정말 훌륭한 계략이로군. 윤구주, 나올 것인가 숨어있을 것인가.”빙신전 대 제사장은 블랙홀 속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웃었다.북경왕이 현모와 진동왕을 쓸어버리고 화진의
수옥인이 북경왕을 말리려 했지만 북경왕은 더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는 한 손으로 수옥인을 내리쳐 기절시킨 뒤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윤구주 씨, 지난번 싸움은 승부가 나지 않았어요.”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건 몇 년 전 일이었죠. 그땐 저도 아직 구주왕이 아니었죠.”“그래요. 그때 저도 아직 북경왕이 아니었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지난번은 그쪽이 온 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긴 거라는 겁니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뜻이죠? 이번에 제가 온 힘을 다하길 바라는 겁니까 아니면 저번처럼 비겨주는 걸 원하는 겁니까?”이 질문에 북경왕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제가 왜 문씨 가문과 손을 잡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윤구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 이유가 뭐든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 반드시 저와 싸워야 한다면 장소를 바꾸는 게 어때요?”“안 됩니다. 문씨 가문은 저더러 천옥 전법을 파괴하고 폭주하는 영기를 외부로 흘러 나가게 하라고 했어요. 그쪽을 죽이는 건 주요한 임무가 아니에요.”웅!북경왕은 윤구주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디뎌 얼음을 만들어냈다. 차가운 기운이 전법의 절반을 얼려버렸다.윤구주는 이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한 듯했다.전법을 파괴해서 영기가 새어나가면 화진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팔기지, 부자결.”수많은 화염 부적이 나타나 북경왕의 한기를 막아냈다. 이번 대결은 북경왕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북경왕은 이것이 윤구주의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전법을 지키느라 너무 많은 힘을 써 지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북경왕은 두 손을 모아 앞으로 힘껏 밀어냈다. 극한의 한기가 윤구주의 부적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한기가 전법의 핵심을 얼려버리기 직전...“팔기지, 이화금안.”홍!끝없이 치솟는 불이 사방으로 퍼지며 순식간에 상황을 역전시켰다.굉음과 함께 산이 뚫리더니 봉황 모양
“이는 지극히 순수한 공법으로 제가 수련한 얼음의 술법을 완전히 억누르는군요. 천지 음양, 오행 팔괘. 그쪽의 공법이 천지 음양에 속하고 제 오행보다 우위에 있으니 제가 수련한 이 술법은 완전히 억눌려 더는 상대가 되지 못하겠군요.”북경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번에는 누가 승리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지난번 싸움에서 윤구주가 처음부터 구양진용결을 사용했다면 북경왕은 단 한 판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극 신급 절정에 도달한 그는 내공을 믿고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마리의 용도 깨뜨리지 못했다.“북경왕, 그쪽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죽음을 자초한 셈입니다. 절대로 제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니 지금 후회하면 살길을 남겨줄 거에요.”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말을 마친 그는 다시 천옥 진법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저와 대결하면서도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겁니까? 윤구주, 그쪽은 완전히 저를 무시하는군요. 다시 생각해 보니 구주왕과 제 옛정도 거짓이었던 거 아닐까요? 이 위선적이고 간악한 악당의 목숨은 제가 가져갈 것입니다.”북경왕이 다시 돌진했다. 윤구주가 다른 데 신경을 쓴 틈을 노려 공격한 것이다.그는 여전히 윤구주에게 완전히 억눌리는 얼음의 술법을 사용했기에 연이은 공격으로도 윤구주를 보호하는 아홉 마리의 용을 깨뜨리지 못했다.“북경왕! 문아름은 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쪽의 술법이 저에게 억눌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쪽을 이곳으로 보냈죠. 그쪽 내공이 저보다 강하더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말해보세요. 문아름이 또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윤구주가 진지하게 물었다.빙신전과 북경왕보다 문아름이 윤구주에게 더 큰 위협이었다.그 여자에게 반드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그렇게 알고 싶나요? 그럼 먼저 저를 이기세요. 승자만이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습니다.”“금술, 빙역만리.”금술로 인해 대지가 얼어버렸고 주변의 산마저 꽁꽁 얼어붙었다.동시에 천지에 이
북경왕의 영혼을 본 윤구주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금술을 사용했지만 자신의 두 손으로 북경왕의 목숨을 빼앗기는 힘들었다.하지만 저 모양이 된 북경왕에게 어쩌면 윤구주의 손에 죽는 것이 제일 좋은 결과일지도 모른다.“문아름은 그녀의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을 죽음보다 못한 경지로 몰아넣죠. 자신의 편이라도 예외가 아닙니다.”“북경왕! 저는 그쪽이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쪽의 양혼을 보았을 때 저는 이미 그쪽을 용서했어요. 천주 금술, 신마소멸.”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반경 수백 리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불길이 사라지자 조용히 땅에 누워 있는 북경왕의 양혼이 보였다. 그의 영혼은 이미 투명해져 있었고 혼이 흩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드디어 해방되었네요. 구주 씨, 고맙습니다.”북경왕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둠이 드디어 사라졌고 인제야 그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윤구주는 조용히 북경왕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구주 씨 손에 죽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북경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북경왕과 싸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윤구주가 대답했다.“구주 씨에게 할 말이 있어요. 곤륜이 화진의 통일을 방해하고 화진의 부흥을 막는 것은 그들이 화진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화진을 내버려 뒀다가 언젠가 봉신 전쟁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겠죠. 만 년 전, 우리 화진의 인황은 구주와 오방을 다스렸고 하늘과 맞먹는 존재였죠. 인황이 살아있을 때 수련자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살았죠. 인황이 죽자 신과 귀가 함께 세상에 나왔고 온갖 요괴와 마귀들이 스스로 신이라 자칭하기 시작했어요.“저도 제 입장이 있으니 함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어요. 문씨 가문도 권력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구주 씨는 단지 제가 구주 씨 편이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현재 청룡이
“흥! 내 주인님께서 너 같은 개자식을 쓰실 줄이야.”옆에 서 있던 청해가 경멸 어린 눈길로 말했다.“하하! 빙신전 부전주라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구주왕의 개가 됐네.”“나는 지금 구주왕의 수하일 뿐만 아니라 구주왕과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고 게다가 현 왕의 숙부다. 앞으로 구주왕이 왕실에 인사드리러 올 때도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거야.”진동왕이 으스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 진짜 답 없네. 일이나 제대로 해. 현모와 주작도 말했잖아. 문씨 가문이 분명히 뭔가를 꾸민다고.”청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문씨 가문이 언급되자 진동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갑게 비웃었다.“문씨 가문이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굴겠다는 거야? 안 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겠다. 내 손에는 지금 삼만의 구주군이 있어. 서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진동왕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청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늙은이 정말 끝도 없이 잘난 척하네.’삼만의 구주군이 서울로 돌아와 기존의 금위군과 주변 수비군까지 합치면 무려 이십만의 정예 병력이 서울을 지키고 있었다.진동왕에게 이 정도 병력은 철벽같은 방어였다.한편, 빙신전 전주와 주작 현모는 이미 10국 영토에 도착했다.그들은 이제 백만 대군의 지휘 천막에 들어섰다.장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빙신전 전주를 향한 장군들의 태도는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말했잖아.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이놈들은 날 인정하지 않는다니까.”빙신전 전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조용히 해. 너를 서울에 두고 싶어도 못 믿어서 여기 데려온 거야. 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 망할 계략에 다시 빠지면 어쩌려고?”주작은 빙신전 전주를 째려보며 쏘아붙였다.주작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 빙신전 전주도 그와 다투는 것이 귀찮았다.현모는 장군들에게 빙신전 전주가 화진에 투항했다는 사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주작이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 청룡의 실력은 팔부의 정점이었지만 문씨 가문에 섭혼 당한 후 실력이 구오 경지까지 돌파했어요. 하지만 제가 본 사진으로 보면 지금 청룡은 구오 경지를 넘어선 것 같아요.”‘구오 경지 이상이라고?’임홍연은 수련자의 경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인신 경지부터는 생명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화진의 전통에 따르면 구오 경지에 올라서야 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구오 경지에서 무적이 된 자는 진정한 왕자로 인정받는다.500년에 황자가 한번 나오고 100년에 왕자가 한번 탄생하지만 구오 경지는 십여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희귀한 경지였다.“이해가 안 돼. 너희 셋은 모두 윤구주의 도움으로 지금의 수련을 이뤘잖아. 그런데 청룡은 문씨 가문의 지원만으로 이렇게 빠르게 실력이 향상됐다는 거야?”문씨 가문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암살이나 배신 같은 비열한 수작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문씨 가문이 그렇게 강할 리 없어요. 모든 건 청룡 때문이에요.청룡은 우리 사대 군신 중 맏형으로서 천부적 재능과 권모술수 모두 최고였어요. 특히 타고난 능력이 뛰어났죠. 예전부터 청룡은 강력한 존재였어요. 우리 셋이 덤벼도 감히 당해낼 수 없었거든요. 지금은 그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왕마저 신계에 갔어요.”현모가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임홍연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현모와 주작은 모두 철수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지금 국운이 절정인데 철수하면 민심을 잃지 않을까? 몰래 철군한다 해도 10국이 이런 좋은 선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청룡의 배후에 문씨 가문이 있는 한 10국을 움직여 계속 우리를 곤란하게 할 게 뻔해.”임홍연 역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양측의 의견을 들어보니 모두 일리가 있었다.“그래서 더 골치 아픈 거예요. 청룡은 우리 맏형이자 왕의 가장 가까운 형제나 다름없잖아요. 왕의 진영에 가장 먼저 합류한 군신이고 왕과도 오랫동안 함께해왔고 나이까지 왕보다 많아요. 우리 셋 다 청룡
설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녀의 반응에 현모가 당황했다.“참 어려운 문제군요. 이제는 여왕님이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더는 정보를 흘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하께서 여왕님에게 호감을 느끼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하.”“현모, 그만하고 입 다물어. 넌 정말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어.”주작은 현모의 입을 막고 설윤과 작별인사를 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현모와 주작은 암부 대원들을 이끌고 서둘러 화진으로 돌아갔다. 헨드리 사건으로 화진의 국운이 최정점에 달했고 국민의 열광이 절정에 이르렀다.하지만 전 국민이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 슬그머니 닥쳐오고 있었다.북주 총독부.현모와 주작은 화진에 도착하자마자 임홍연을 만나러 총독부로 달려왔다.“공주님,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임홍연을 만난 현모가 단호하게 물었다.임홍연의 눈 아래 깊은 다크서클이 있었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구주가 떠난 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진동왕이 요즘 제대로 일을 안 하셔. 북역 삼주 세가와 귀족들과만 어울리며 재물을 쓸어모으고 10개국 간의 전쟁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안 써.”임홍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10개국 간의 전쟁이라는 단어에 현모와 주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바로 이 문제를 처리하러 급히 귀국한 참이었다.윤구주가 헨드리로 떠날 당시 문씨 가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대군을 국경으로 이동시켜 화진을 도발하던 열개 나라를 공격했었다.전에 윤구주와 협정을 맺었던 나라들이 다시 도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화진이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윤구주가 헨드리에 머물 때 국경에 집결한 백만 대군이 열개 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열개 나라의 무도 고수들은 윤구주에게 전부 소멸당한 상태였고 장군들 역시 임정설과 윤구주의 합동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되어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재정 위기까지 겹쳐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할 형편이었다
육도진은 밤새 설윤과 협상을 진행했다.“첫 번째, 저희는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한 역사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부 반환하고 배상금 지급을 요구합니다. 세 번째, 우리 화진과 전면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화진의 요구사항입니다. 대가로 헨드리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 것을 보장하며 인도적인 지원 완료 후 함대와 육군을 즉시 철수하겠습니다. 추가로 화진은 이자벨라 설윤을 헨드리의 새 군주로 공식 인정할 것입니다.”육도진의 마지막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었다. 화진이 설윤을 헨드리의 새로운 여왕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제든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설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화진 없인 헨드리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새벽 12시에 기자회견 개최로 두 나라는 합의를 보았다.화진이 유라비아의 전투에 개입해서 세계대전을 막았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술렁였다.이는 동방의 잠들었던 용의 진정한 부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화진이 일떠선다면 그 누구도 화진의 부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헨드리 사태가 마무리되자 인도적인 구조를 마친 명필무는 화진 함대와 함께 헨드리를 떠났다.현모와 주작, 그리고 암부는 아직 헨드리에 남아있었다.화진 무도계와 유라비아 수련자들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설윤은 윤구주의 영기 개조를 받은 덕분에 수련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회의에 참여한 황혼 기사단은 어느새 화진 무도계의 편에 묶여 있었다. 기사 대부분이 윤구주 덕분에 능력이 강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럼 제가 먼저 몇 마디 하죠. 유라비아 수련자들이 화진 무도계와 동맹을 맺는다면 그 주도권은 저희 화진에게 있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주작의 발언은 교섭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기사들은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의 최강자인 성기사조차 현모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주작이나 백호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실력 차이가 이렇게 큰데 뭘 더 이
“주작, 현모, 화진의 군신이라. 하하. 네놈들이 말해봐라. 내가 지금 구주왕을 배신한다 해도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겠나? 이전엔 너희 셋이 힘을 합쳐도 백여 합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지금은 내가 황자급 경지에 올랐고 백호는 얼어붙어 잠든 상태라 너희 둘밖에 없는데 뭘 할수 있겠니? 난 세 방이면 충분히 너희들의 목을 벨 수 있어.”빙신전 전주가 비웃듯 말했다.그 말을 들은 주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빙신전 전주를 바라보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당장 빙신전과 결전을 벌이려는 순간 현모가 침착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주작, 진정해. 저놈이 배신할 마음이 있다 해도 최소한 저하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을 거야. 문아름처럼 똑똑한 여자도 실패하지 않았나? 저놈에겐 그럴 배짱이 없을 거다.”막 황자급 경지에 올라 기분이 좋았던 빙신전 전주는 현모의 말에 불쾌해졌다.윤구주를 배신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그는 이미 윤구주에게 정신적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라 생각이 바뀐 지 오래 되였다. 윤구주가 이번 원정에서 실패한다 해도 최소한 생존은 보장될 것이고 윤구주를 따라 황자급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윤구주의 그늘 아래에서 편안히 권력을 누리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그의 현재 실력으로는 결코 4대 군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됐어.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지. 4대 군신은 정상이 하나도 없구만. 구주왕님이 떠나기 전 내게 전음을 남기셨다. 아사신족의 잔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 전법을 파괴하라고 말이야. 너희 저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그분은 곤륜에서도 학살을 벌인 자야. 신계의 결계쯤이야 가뿐히 넘어설 거다.”이 말을 들은 주작은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빙신전 전주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현모, 구주왕님이 너에게 지휘를 맡기셨다. 내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테니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해라. 단 헨드리 문제는 우리 빙신전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재권 따위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윤구주가 황인으로 만든 전법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전법이 사라지면 세 인황과 백 명의 왕, 수만 영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지막 순간, 헨드리에 사는 화진 사람들이 현재 화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 헨드리의 제일 큰 광장 스크린에 올렸다.화려하게 발전한 화진의 모습을 본 영령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세 인황과 왕들은 모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통일된 왕조를 세운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기에 왕조를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왕조가 번성에서 쇠퇴로 기울면 그 순간 화진에 재앙이 밀려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집된 영상 속 화진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했다.“선배님들, 화진은 이미 수많은 고비를 딛고 넘어섰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났으니 안심하십시오. 화진에 저 윤구주가 있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세요. 저 윤구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화진에 재앙을 가져오는 놈들의 뿌리를 뽑아 영원한 태평성대를 만들겠습니다.”전법이 사라지며 영령들은 천지로 흩어졌다. 고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그들의 영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천지 영기는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영령들이 흡수했던 영기는 신들이 소멸할 때 천지에 되돌려졌다. 후손들이 능력만 있다면 화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화진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근본이었다.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이 지난 후 윤구주도 세 인황처럼 선대 인황이 되어 후손들에게 소환될지 모를 일이었다.이 생각에 윤구주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주군 장수들과 암부 대원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격앙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문아름, 너의 비뚤어진 마음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야. 넌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화진의 선조들을 대적하는 것이다. 죽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진 채 선조들조차 너를 가만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진에 부끄럽지 않아. 설령 언젠가 죽어 흔적도 없이
“도망칠 생각 말라. 사악한 신이여 목숨을 내놓아라.”세 인황이 돌진하자 백 명의 강자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도망치려는 타이탄 거신의 영혼을 공중에서 가로막아 산산조각냈다.“우와 대박! 과연 화진의 옛 황제님이시여.”고층 건물 꼭대기에 있던 백호가 세 인황을 향해 외쳤다.진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두 인황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타이탄 신의 잔여 영혼 정수를 모아 강제로 백호에게 주입했다.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오자 백호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져 폭주 상태에 빠졌다.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윤구주가 천주 금술을 발동해 백호의 의식을 봉인했다.휙!세 인황의 의도를 알아챈 빙신전 전주도 술법을 써서 백호를 얼음 속에 가뒀다.“구주왕님의 이 부하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하군요. 영혼을 삼켜 경지를 올릴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마인이 되었을 텐데 이 자는 원래부터 미친놈이라 오히려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군요.”빙신전 전주가 중얼거렸다.“그건 개소리야. 저놈이 음혼을 삼킬 수 있어서 그런 거다. 양도의 혼이라면 순식간에 타버릴걸.”윤구주가 투덜대자 그 말을 들은 빙신전 전주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하의 음기로 수련을 했기 때문에 음혼이 될 수밖에 없었다.정확히 윤구주만이 이 폭주하는 백호를 길들일 수 있었다. 다른 이라면 이미 백호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드디어 해결되었다.화려한 도시의 십 분의 일이 폐허가 되었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유라비아 전체를 구한 대가치고는 합당했다.세 인황과 수백 명의 왕, 그리고 수만 영령이 전법 주변에 모였다. 전법아래에는 화진에서 온 장군들과 암부 대원들이 선조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미래의 화진을 못 보았으니 참 아쉽구나.”당국의 인황이 한숨을 내쉬었다.세 인황 중 제일 인자했던 그는 백성을 가장 아끼던 존재였다.“그만하세.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네. 이젠 우리
“세 번째 방법은 바로 천지의 영기와 음양오행을 빌려 황자가 되는 거야. 이 방법으로 황자급 경지에 오른 자는 모든 천지 속성을 흡수해 약점이 없으니 무적이라 불리지.”윤구주의 말에 빙신전 전주가 흥분하며 물었다.“구주왕님, 그럼 제가 가장 강한 황자인가요?”윤구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내 말은 네놈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너는 천령을 내버려 두고 지하 음기를 빨아들였잖아. 전에 내가 박살 낸 빙황보다는 강하지만 그자의 경지가 너보다 높았으니 너희 둘이 싸우면 넌 여전히 졌을 거야.”“네?”빙신전 전주의 얼굴이 축 처졌다. 황자가 되면 윤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빙신전 전주의 경지 돌파에 이어 다른 빙신전 수련자들도 많이 강해졌고 현모, 주작, 백호 세 사람의 경지도 급상승했다. 주작은 구오 대원만 경지, 현모는 구오 후기, 백호는 극 신급 절정 중급에 도달했다.반면 기사들의 성장은 미미했다. 이들은 수련한 적이 없었고 영기를 정화하는 방법만 익혔기 때문에 근육이 더 발달하고 힘만 세졌을 뿐이었다.“참 훌륭하군. 내가 알기로 화진 역사에서 자네와 같은 경지에 오른 자는 먼 고대의 황제뿐이었어.”무제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다른 두 인황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화진이 윤구주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세 인황은 용기의 가호를 받으며 타이탄 최강의 거신을 협공했고 다른 왕들은 일반 타이탄 신들을 상대했다.그들의 공격에 타이탄 신들이 차례로 쓰러지자 주작과 청해가 법기로 그들의 시신을 수거했다. 이 경지에 오른 수련자의 몸은 귀중한 보물이니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놓아둘 수 없다.타이탄 거신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마침내 최후의 타이탄 시조신만 남았다.세 인황이 힘을 합쳐도 시조신을 잠시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술법을 쓰지 않는 상대임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웠다.“이봐, 네 전법이 거의 끝나가니 계속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나서라.”진왕이 윤구주를 향해 소리쳤
황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윤구주의 모습에 빙신전 전주는 강자에 대한 인식을 또 한 번 갈아엎어야 했다.‘인황은 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구나. 고대 화진의 인황이 구주 오방을 통일한 게 당연했어.’화진의 옛 황제들과 왕들이 힘을 발휘하자 공중에 화진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기세가 하늘을 뚫고 천지를 뒤흔들었다.힘이 약한 사악한 괴물들은 이미 소멸되었고 강력한 파라오는 무제의 창에 찔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갔다. 당국의 왕은 다른 고대 문명의 신을 단칼에 베어 죽였다.사악한 기운마저 이 황제들과 왕들에 의해 정화되고 있었다.이제 헨드리에 남은 적은 타이탄 신뿐이었다.사악한 기운에 빙의된 고대 신들과 달리 타이탄 신은 실체를 가진 수련자들이었다.술법을 쓰지 못하지만 몸을 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단련한 그들은 무적에 가까웠다. 황제들과 왕들이 이끄는 영령 군대는 타이탄 신족과의 결전에서 별다른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이 영령들은 문물과 흩어진 영기에 의존해 잠시 소환된 존재들이었기에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전성기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수련자들을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불길을 더 크게 지펴야겠군.”“구양진용결!”“구음만상결!”“백호, 주작, 현모의 성수여 제자리로 돌아가거라.”아홉 마리 진용이 구름을 뚫고 내려와 왕도 상공에 떠 있었다.황제들과 왕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생전 진용 천자라 불렸던 그들은 용의 기운을 제어할 수 있었기에 그 기운을 마음껏 흡수했다.나머지 영령 전사들은 만상의 힘을 흡수해 한 단계 진화했다.백호, 주작, 현모의 정혈이 윤구주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 성수가 삼각형을 이루며 세 가지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청룡이 부족하구나. 청룡의 정혈이 없으니 환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지.”윤구주가 청룡 성수의 환영을 소환해 나머지 한쪽을 지키게 했다. 네 성수가 모이자 천지의 영기가 배로 증가하였다.무궁무진한 영기들이 영령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동시에 구주군 장군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