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여산맥.세나미는 생사인을 통해 윤구주에게 통제당한 뒤, 그의 하인이 되었다.국경 군영 안, 윤구주는 구음만상결을 수련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이 흑여산맥은 대자연의 원기가 맑고 짙게 흐르며, 구음만상결 수련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그의 전신을 감싸는 압도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수련을 거듭할수록 그의 육체와 기운은 더욱 강해지고, 구음만상결은 그의 몸을 보강하며 거대한 힘을 부여했다.그의 옆에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세나미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어떤 속박도 없었지만, 그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윤구주에게서 풍겨 나오는 절대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를 기습하려 해도, 자신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생사인에 의해 통제된 몸이니, 윤구주가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목숨은 끝장날 터였다.‘정말 여섯 해 전, 화진의 첫 번째 주왕, 그 살신이란 말인가?’‘어떻게 이렇게 젊을 수 있지?’세나미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들려준 화진과 관련된 이야기 속, 늘 등장하던 이름이 바로 윤구주였다.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본 그는 그녀가 상상했던 나이 든 모습과 달리 젊고도 매력적이었다.윤구주의 아름다운 얼굴선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한 증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두려움과 경외심이 그녀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게다가... 이렇게 잘생겼다니!’세나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즉시 자신의 위험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이 사람은 내 원수야! 우리 설국의 병사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잖아! 망할 놈... 내가 왜 이놈이 잘생겼다고 생각했지?’‘악마야! 설국의 원수라고!’세나미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증오의 눈길로 윤구주를 쏘아보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갑자기 윤구주의 몸에서 거대한 상아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몸을 감싸는
세나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그녀는 잔뜩 경계하며 윤구주를 노려보았다.“지, 지금 뭐 하려는 거야?”“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자유지. 네 위치를 잊지 마. 지금 넌 내 하인일 뿐이야.”윤구주의 차갑고 날카로운 말이 날아들자, 세나미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이제 그녀의 생사권은 완전히 윤구주의 손아귀에 있었고, 심지어 자살조차도 불가능했다.윤구주가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명령하자, 어쩔 도리가 없었던 세나미는 마지못해 그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완벽한 몸매는 은빛 갑옷과 어우러져 굴곡이 뚜렷하고 풍만한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세나미는 정말로 아름다웠다.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과 설국 특유의 선명한 얼굴선,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동자까지.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정령 같았다.“앉아.”윤구주의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세나미는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옆에 얌전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어깨가 좀 뻐근하네. 주물러 봐.”윤구주가 느닷없이 말했다.“뭐라고? 내가 네 어깨를 주무르라고?”세나미는 어이없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설국에서 가장 존귀한 여전사이자, 신성한 광명 신전에 속한 제1 제사장의 제자였다.게다가 머지않아 설국의 황후로 등극할 사람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자신에게 어깨를 주무르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굴욕이었다.“이해가 안 되나?”윤구주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세나미의 푸른 눈동자가 분노로 가득 차며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차라리 날 죽여. 그게 이렇게 모욕 당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윤구주는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그래? 정말 그럴까?”그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세나미는 그의 시선에 잔뜩 겁에 질렸다.‘지금 뭐 하려는 거지? 설마 날 만지려는 건가?’윤구주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다시 묻지. 할 거야, 말 거야?”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세나미는
‘국경전’이라는 글자를 들은 순간, 붉은 머리칼의 세나미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반면, 윤구주는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들었나? 너희 설국이 감히 우리 화진과 국경전을 하겠다고?”세나미의 얼굴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창백해졌다.그녀는 윤구주의 강력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6년 전, 바로 눈앞의 이 살신이 홀로 한 군대를 이끌고 설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열 개 국가의 군대를 무너뜨린 전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그런 그를 상대로 설국이 국경전을 벌이겠다고? 그야말로 자멸로 가는 길 아닌가!세나미는 간절하게 호소했다.“제발... 날 풀어줘! 날 돌려보내 주면, 내가 아버지를 설득하고 우리 국왕까지도 설득해 전쟁을 철회하도록 할게. 그리고 어떤 조건이라도 들어줄 수 있어. 화진이 이 전쟁만 포기해 준다면!”윤구주는 냉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네 말은, 우리가 설국과의 전쟁이 두렵다는 뜻인가?”“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다만 이 전쟁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설국은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겠다는 뜻이야!”이제 세나미는 완전히 굴복한 상태였다.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앞의 이 사내는 화진의 왕, 윤구주였다. 과거 10국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하물며 설국 하나로 그를 막을 수 있을까?“이미 늦었다.”윤구주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와 동시에 몸에서 천지를 압도하는 기운이 퍼져나갔다.“지금부터 너희 설국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윤구주의 목소리는 차갑고도 피비린내가 서려 있었다. 그의 말에 세나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물었다.“무슨 짓을 하시는 거야?”“설국을 멸하겠다.”윤구주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 뒤, 곁에 서 있던 염수천을 불렀다.“염수천!”“예, 군왕님!”염수천은 몸을 굽혀 명령을 기다렸다.“지금부터 너의 친위대를 국경지대에 배치해. 누구든 넘어오면, 죽여라!”윤구주의 목소리는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명령대로 하겠습니다!”염수천이 대답했다가 잠시 머뭇거렸
이런 폭풍우 속에서 하늘에 생명체가 나타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그 그림자들은 금빛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신이 내려온 것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저, 저게 뭐야?”한 눈치 빠른 설국의 초병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급히 소리쳤다.“설마, 사람이야? 아니면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그들 앞에서 그림자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그림자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였다. 남자는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에 마치 천신처럼 눈부셨고, 여자는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은빛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인간계를 거닐고 있는 요정을 연상케 했다.특히 그녀의 굴곡진 몸매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하지만 그녀는 남자의 뒤에 조용히 서서 마치 충성스러운 하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들은 바로 하진에서 설국의 땅을 침범한 윤구주와 세나미였다.“저, 정말 사람이야?”“어서 봉화 연기를 올려! 누군가 우리 설국 진영에 침입했어!”설국의 초병들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봉화를 피우며 비상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그때였다.어둑한 하늘 속에서 바람을 타고 움직이던 윤구주는 눈앞에 보이는 설국 군영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음을 지었다.“여기서 시작해 볼까.”그의 목소리는 매서운 한기처럼 날카롭게 흩어졌다.“내려간다.”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하늘에서 유성처럼 땅으로 떨어졌다.쾅!그의 두 발이 설국 군영의 중심에 닿는 순간, 대지가 흔들리며 군영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곧이어 세나미도 그를 따라 조심스럽게 착지했다.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세나미는 두려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윤구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차갑게 대답했다.“곧 알게 될 거야.”그들의 거침없는 착지가 불러온 충격에 설국의 병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
그 창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광채는 압도적인 파괴의 힘을 품고 있었고, 마치 천둥처럼 수십 명의 설국 병사들을 향해 내리꽂혔다.쿵!형언할 수 없는 파괴력이 그 불운한 병사들에게 닿는 순간, 한순간에 그들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으아악!”“악마다!”“저건 악마다!”“어서 지원군을 불러!”살아남은 몇몇 병사들은 윤구주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동료들을 몰살시키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나미도 완전히 얼어붙었다.자신의 동포들이 순식간에 무참히 쓰러지는 광경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너...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왜 우리 설국의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죽였어?”세나미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윤구주에게 외쳤다.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하진의 영토를 침범하고 우리 백성을 짓밟은 설국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넌 응징이 두렵지 않아?”세나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외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구주는 무자비하게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퍽!설국의 전설적 여전사로 불리던 세나미는 한순간에 눈보라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몸은 눈 위를 몇 바퀴 구르며 멈췄고, 입가에는 선명한 피가 흘러내렸다.“너 따위가 감히 날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윤구주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에게는 그녀가 설국의 여전사든, 미래의 황후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누구도 봐주지 않았다.세나미는 멍하니 눈 속에 쓰러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높은 지위에 있던 자신에게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윤구주의 노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생사마저 그에게 달린 처지가 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억울함과 분노에 복받쳐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윤구주는 그녀를 향해 냉정히 선언했다.“잘 들어. 하진은 침범할 수 없어. 감히 침범하는 자는 누구든 죽일 거야. 더군다나
그 수염이 덥수룩한 설국 장군이 ‘나미’라는 이름을 외치자, 주변의 모든 설국 병사들은 하나같이 얼어붙었다.“세나미 아가씨?”“맙소사!”“저분이 우리 설국의 군신 세나스 각하의 따님이라고?”“게다가 설국의 여전사라니?”세나미를 바라보던 병사들 중, 그녀의 사진을 본 적 있는 몇몇은 그제야 그녀를 알아챘다.“세나미 아가씨, 대체... 어쩌다 여기 계신 겁니까?”위룡 장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세나미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세나미는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군대가 전멸당한 사실을, 더군다나 자신이 윤구주의 노예가 되어 생사까지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위룡 장군, 제 말을 들으세요. 당장 철수하세요. 이 사람과 싸워선 안 됩니다!”“뭐라고요?”세나미의 말에, 마치 거인 같은 위룡 장군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세나미 아가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세나미는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말했잖아요. 모두 철수하라고요! 싸우지 마세요!”그녀의 단호한 말을 들은 설국 장군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뒤에 서 있던 수백 명의 병사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그들 중 몇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우리에게 저 하진인을 완벽히 포위하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철수라니?’잠시 생각에 잠긴 위룡 장군은 이윽고 갑옷을 바로잡으며 냉랭한 눈빛을 윤구주에게로 돌렸다.그리고 그가 혼자임을 확인한 순간, 또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했다.“혹시...”“세나미 아가씨, 들리는 말로는 아가씨의 군대가 하진의 매복에 당했다더군요. 설마, 지금 저 하진 놈에게 인질이 된 건 아니겠죠?”세나미는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장 철수하세요!”그녀의 단호한 반응에, 위룡 장군은 더욱 확신했다.“세나미 아가씨,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미 군신께서 전군에 아가씨의 소식을 알리셨고, 지금 군신께서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주변의 설국 병사들은 신급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순간 멍해졌다.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러서려 했지만, 불행히도 이미 늦었다.허공에 우뚝 선 윤구주가 두 팔을 벌리고 사방으로 손을 내리며 외쳤다.“진역 결계, 열려라!”윤구주를 중심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금빛 그물이 형성되더니, 단번에 모든 설국 병사들과 군영 전체를 뒤덮었다.결계가 펼쳐지자, 그 위압감은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강력했다. 그 압박은 단지 병사들뿐만 아니라, 세나미와 위룡 장군에게도 가해졌다. 마치 몸 위에 거대한 산이 얹힌 듯한 기분이었다.“하늘이시여!”“저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신력을 펼칠 수 있지?”사방의 설국 병사들이 모두 윤구주의 금빛 결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며,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위룡 장군마저 두려움에 휩싸였다.하지만 그는 설국의 장군이었다. 곧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겁먹지 마라! 저자는 혼자다.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겠는가?”“탱크를 준비하라!”“탱크의 포격이라면 저놈이 버텨낼 리 없다!”위룡 장군의 명령과 함께 설국의 탱크 세 대가 일제히 움직였다. 검은 포신이 윤구주를 향해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장군! 정말 발포하시겠습니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포격이 우리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한 탱크병이 다급히 말했다.위룡 장군은 이를 악물며 단호히 답했다.“그런 건 상관없다! 오늘 이 하진 놈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윤구주와 같은 신급 강자를 상대하려면 대포와 같은 대형 화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발포하라!”“저 하진 놈을 산산조각 내버려라!”장군의 명령과 함께, 중장갑 탱크에서 강렬한 포성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며, 두려운 속도로 날아간 포탄이 허공의 윤구주를 향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분히 그 광경을 응시하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찮군.”그의 손에 들린
“명중했습니다! 장군, 우리가 저놈을 맞췄습니다!”탱크병 한 명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주변의 설국 병사들도 환호를 터뜨렸다.“그 하진 놈이 드디어 죽었어요!”“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우리 탱크 공격을 버티지 못했어요!”모두가 윤구주가 죽었다고 확신했다.심지어 위룡 장군도, 연기 자욱한 하늘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네 운이 다한 거다.”그는 그렇게 말하며 세나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아가씨, 드디어 그 끔찍한 하진 놈을 처치했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그러나 세나미는 위룡 장군의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넓게 뜬 눈으로 연기가 자욱한 하늘만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정말... 죽은 걸까요?”위룡 장군은 세나미의 멍한 표정을 보고는 다시 말을 건넸다.“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신급 강자라고 해도, 우리 탱크의 포격을 버틸 수는 없습니다.”그 순간이었다.하늘을 가득 메웠던 검은 연기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이어, 연기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세나미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이럴 수가! 윤구주가... 아직 살아 있어요!”“뭐라고요?”위룡 장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그리고 그 순간, 검은 연기로 가득했던 하늘이 강한 바람에 휩쓸리며 맑아지기 시작했다.검은 연기가 흩어진 자리에서, 굉음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를 죽인다고? 설국의 벌레들이 감히 나를 넘본다고?”연기가 걷히며 드러난 윤구주의 모습은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그의 온몸이 황금빛 광막에 둘러싸여 있었다.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허공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마치 신화 속의 마신 같았다.“하늘이시여! 그 하진 놈이 아직 살아 있다니! 이게... 이게 말이 돼?”“우리 탱크의 포탄이 분명히 저놈을 맞췄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지?”설국 병사들은
유니스가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설국 대신들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여성이 어떻게 우리 설국의 국주가 된단 말입니까?”“비록 세나미 씨는 세나스 각하의 딸이긴 하지만 국주가 된다는 건 어림없는 일입니다.”설국 대신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윤구주는 단호히 말했다.“다들 똑똑히 들어. 난 오늘 당신들에게 통보하러 온 거야. 의논하러 온 게 아니라고. 알겟어?”그의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구주왕, 선 넘지 마세요! 우리 설국에서 감히 행패를 부리는 겁니까? 우리나라의 위엄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까?”대학사 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위엄? 금전에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감히 나라의 위엄을 입에 담아?”윤구주가 유니스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 설국을 대표하여 항의합니다. 세나미 씨가 국주가 된다면 전 차라리 죽겠습니다.”유니스는 죽겠다면 위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죽겠다고? 그러면 내가 그 소망을 들어주지.”윤구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현이 마치 총알과도 같이 날아가서 대학사의 가슴팍을 꿰뚫었다.피가 금전에 흩뿌려지면서 유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유니스가 윤구주의 손에 죽자 금전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세나미는 앞으로 나서더니 윤구주를 향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왜, 왜 또 사람을 죽인 거야? 나랑 약속했잖아.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저자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는데 왜 날 원망하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고집불통인 노인네가 여기 남아있으면 설국의 미래에 방해만 될 뿐이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남은 설국 대신들을 바라보았다.“이젠 당신들 차례야. 얘기해 봐. 내 말대로 할 의향이 있는지.”윤구주가 그렇게 얘기하자 설국 대신들은 모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다
“구주왕, 당신은 우리 국주를 죽였어요. 게다가 우리 설국의 금전까지 점유했죠. 대체 뭘 어쩔 생각입니까?”이때 유니스 대학사가 앞으로 나서며 매섭게 말했다.윤구주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난 설국의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어.”“정상으로요?”대신들은 놀랐다.“맞아.”윤구주는 말을 이어갔다.“난 죽어 마땅한 설국인들에게 다 벌을 주었어. 지금 설국은 국주의 자리가 비었지. 그래서 나는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할 생각이야. 그래야만 설국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뭐라고?’“우리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하겠다고 한 겁니까?”“그... 그럴 수 있나요?”윤구주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이곳을 설국이고 윤구주는 심지어 설국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구주가 무슨 자격으로 설국을 대신하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단 말인가?“구주왕! 우리 설국의 일에 화진인인 당신은 끼어들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설국의 국주는 당연히 설국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다는 거죠?”유니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윤구주니까. 난 설국의 존망을 정할 수 있어. 내가 설국의 존재를 허락한다면 설국은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설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라면 설국은 망할 거야.”패기 넘치는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윤구주는 자신이 한 나라의 존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얼마나 놀라운가?“이... 이... 정말 너무 하는군요!”유니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씩씩댔다.윤구주는 그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이 뭘 어쩔 수 있지?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린다면 화진의 병사 수십만 명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설국을 공격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윤구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현재 화진의 병사들 수십만 명이 낙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들은 곧바로 설국을 평정할 수
설국 금전.천 년 가까이의 역사가 있는 대전은 엉망이었다.게다가 금전의 지반은 땅 밑으로 우묵하게 내려앉았다.백옥이 깔린 금전의 지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과 틈이 생겼다.이 순간, 유니스 대학사는 설국의 문무백관을 이끌고 금전 밖에 도착했다.커다란 금전을 바라보면서 유니스는 갑자기 눈빛이 혼탁해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군요.”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백옥 계단으로 올라갔다.대신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댕.댕.댕우렁찬 종소리는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유니스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금전을 올랐고 곧 그들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세나미였다.“세나미 아가씨야...”“세나미 아가씨께서 살아계셨어!”세나미를 본 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세나미는 이때 유니스가 문무 대신들을 데리고 온 걸 보고 빠르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드디어 오셨군요!”유니스는 서둘러 말했다.“세나미 씨, 다치지는 않았습니까?”“네, 괜찮아요.”세나미가 말했다.“그런데 세나미 씨께서는 그 악마에게 납치당한 것 아니었습니까? 왜 그가 그냥 풀어준 거죠?”일부 대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세나미가 말했다.“절 풀어준 이유는... 그가 우리 설국에 아주 중요한 일을 전하기 위해서예요.”“아주 중요한 일이요?”“그 악마는 우리 설국인들을 수도 없이 죽였어요. 심지어 국주님의 목까지 베었죠. 그런데 또 뭘 하려는 거죠?”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가 말했다.“여러분도 아시죠? 화진의 구주왕 말입니다.”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침묵했다.구주왕.설국에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지금 때문만이 아니라 6년 전 구주왕이 설국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그가 천하무적의 구주왕이면 뭐 어떤가요? 이 세상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어요?”유니스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유니스 대학사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윤구주가 설태현의 목을 벤 뒤로 설국의 종은 계속해 울었다.그렇게 종은 1박 2일을 울렸고 그러다 이 순간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대신에 힘이 느껴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그 종소리는 설국 금전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함을 의미하는 종소리였다.설국 수도의 거리 양쪽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그 종소리를 들었다. 그 종소리가 설국 수도에 널리 울려 퍼졌을 때 백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금전을 바라보며 의논했다.“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금전의 종소리가 멈췄어. 대신에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하는 의미를 종소리가 울리는데?”“설마 우리 화진을 침략했던 그 악마가 떠난 걸까?”“모르겠어.”백성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황성의 한 대학사부 밖에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눈앞의 대학사부는 화진의 재상부와 비슷했다.설국의 대학사는 유니스라고 불렸다.유니스는 설국 백관의 우두머리이자 세 명의 국주의 중용을 받았던 원로로서 설국에서의 지위가 높았다.이때 금전에서 우렁찬 소리가 대학사부에 울려 퍼졌다.“대학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우렁찬 소리와 함께 백발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바로 설국의 원로 유니스였다.유니스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문무 대신들 모두 예를 갖추었다.“대학사님을 뵙습니다.”유니스는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을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다들 왔습니까?”“네, 대학사님.”“대학사님,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 알려졌습니다. 더욱 괘씸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이때 군복을 입은 설국의 장군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판인국과 연국에서는 우리의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유니스는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면서 비참하게 웃으며 말했다.“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다는 말이 있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설국은 아주 작은 나라였다.게다
맞는 말이었다.윤구주는 비록 설국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사실 그가 죽인 사람들 중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흑여산맥 국경 지역에서 설국의 10만 병사들은 화진의 백성들을 박해했다.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 세나스도 마찬가지였다.그동안 세나스는 계속해 설국의 병력을 키우며 6년 전의 패배로 얻은 치욕을 씻으려고 화진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다. 세나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윤구주가 만약 설국 국주를 죽이지 않고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세나미는 충격을 받았다.“나는 항상 죽어 마땅한 사람들만 죽였어. 내가 조금 전 얘기한 사람들 중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나? 만약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 복수해. 하지만 명심해. 벌레만도 못한 설국이 감히 정말로 우리 화진과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사상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걸 말이야. 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일 수도 있어. 심지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도 잘 알 거야.”윤구주의 말은 칼이 되어 세나미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팠다.이 순간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는 넋을 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윤구주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비록 윤구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고 설국인을 2, 3만 명 가까이 죽이고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지만, 윤구주의 말대로 설국과 화진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는 사람은 절대 2, 3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 심지어 모든 설국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윤구주의 엄청난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6년 전 설국의 백만 대군이 윤구주로 인해 낭파산에서 죽었던 걸 떠올린 순간 세나미는 정신이 문득 들었다.그녀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그녀
그녀는 거의 1분 가까이 넋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파란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지금... 지금 생사인을 그냥 없앤 거야?”“그러면 내가 뭘 하려는 건 줄로 알았는데?”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세나미에게 되물었다.세나미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윤구주가 자신의 미모에 반해서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사실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줄 생각이었을 뿐이었다.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걸까?세나미는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옷부터 입어.”윤구주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는 그제야 자신이 나체임을 깨닫고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서 입었다.그런 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서 있었다.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했다.윤구주가 비록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녀를 죽이는 건 여전히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그러니 그녀는 감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왜...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야? 왜 날 놓아주려는 거야?”세나미는 용기를 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처음부터 널 죽일 생각이 없었거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흑여산맥에서 세나미가 화진의 유목민들을 놓아주고 그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는 걸 본 순간부터 윤구주는 이미 측은지심이 생겼다.설국은 처단해야 했지만 세나미는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국적이 다르니 입장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당신이 날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난 당신에게 고마워할 생각이 없어. 난 오히려 당신을 증오해!”세나미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세나미는 설국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윤구주의 손에 죽었다.심지어 윤구주는 설국의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가족의 원수이며 설국의 원수인 윤구주를 그녀가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구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증오하는 건 상관없어. 날 죽일 실력이 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서 복수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
국제중재기구 출신의 두 사람이 떠난 뒤 윤구주는 다시 설국 금전으로 돌아왔다.아수라장인 설국 금전 안에서 세나미는 멍하니 서 있었다.조금 전 세나미는 국제중재기구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제압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를 일격에 죽이는 걸 본 순간,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앞으로는 설국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금전 안, 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공기 취급했다.윤구주는 과거 설국 국주가 앉았었던 의자에 앉은 뒤 세나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리 와.”마치 하인을 부르는 듯한 태도였다.그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세나미는 겁에 질린 채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세나미가 얌전히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자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겉옷 벗어.”‘뭐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세나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었다.겉옷을 벗으라니?“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세나미는 두려운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윤구주는 짜증 난 표정이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벗으라면 벗어!”“싫어! 죽일 거면 그냥 죽여. 하지만 날 모욕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세나미는 분노 때문에 눈이 벌게졌다.한때 설국의 군신이자 설국 미래의 황후였던 그녀가 윤구주의 앞에서 옷을 벗는 치욕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그가 손을 올려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기운 하나가 세나미 가슴 쪽의 혈 자리에 닿았다.그 혈 자리를 눌린 세나미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 악마,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만약 날 모욕한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세나미가 필사적으로 울부짖어도 윤구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 순간 기운 하나가 세나미의 옷을 찢
밀라나가 다시 한번 말했다.밀라나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랐다.그녀는 서방 제2 제국 황실 공작의 딸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유럽 교황청에서 생활한 그녀는 아시아 국가를 무시했고 그래서 아주 거만했다.밀라나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눈앞의 윤구주를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구주왕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불경을 저지른다는 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화진은 동방의 용이라고 불리지만 아무리 강해도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 결국 망하게 될 거예요.”밀라나의 말을 듣던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천천히 왼손을 들었고 기다란 그의 손가락은 허공에 멈췄다.손을 들어 올린 순간, 윤구주의 훤칠한 몸에서 눈부신 흰빛이 뿜어졌다.그 흰 빛은 바로 윤구주의 적선의 빛이었다.흰빛이 나타나자 어마어마한 살기가 밀라나를 둘러쌌다.“조금 전 그 말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허공에서 살짝 움직였다.그 순간 무시무시한 적선기가 지현으로 변했다.그 공격은 신도 없앨 수 있고 악마도 벨 수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옆에 서 있던 레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구주왕, 안 됩니다... 밀라나는... 밀라나는 제2 제국 프로이트 공작의 하나뿐인 딸입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이 세상에 감히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촤악!빛나는 지현이 밀라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제2 제국 황실 출신의 밀라나는 그렇게 윤구주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운이 좋지 않았던 밀라나의 시체는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다.그녀는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그런데 몇 초 사이,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죽었다.제2 제국의 엄청난 천재가 윤구주의 일격에 죽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상대는 국제중재기구의 일원이었다.윤구주는 밀라나를 죽
윤구주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가장 처음 놀란 것은 레이였다.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칠살 절정 강자인 레이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어떻게... 어떻게 당신일 수가... 당신은 분명... 죽었는데?”레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레이 님, 왜 그러세요?”건장한 체구의 아나스는 레이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물었다.옆에 있던 팔이 잘린 밀라나는 궁금증이 생겼다.“저 사람은... 화진의 구주왕이에요. 6년 전 홀로 10국과 싸웠던 그자 말이에요!”레이는 윤구주의 신분을 얘기했다.‘뭐라고?’그 말에 아나스와 밀라나 모두 넋이 나갔다.구주왕?화진의 왕?윤구주를 본 아나스는 몸과 영혼 다 윤구주의 기운에 억눌린 것만 같았다.윤구주로 인해 팔이 잘린 밀라나는 안색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화진의 구주왕이라고요?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요? 설마 화국이 우리 10국을, 전 세계를 속인 건가요?”아나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윤구주를 본 순간, 그들의 몸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윤구주는 온몸이 흰빛으로 둘러싸였다.조각된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국제중재기구에 날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윤구주의 목소리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마치 국제중재기구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구주왕, 조금 전에는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희 국제중재기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칠살 절정인 레이는 윤구주를 본 순간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옆에 있던 아나스와 팔이 잘린 밀라나는 레이가 윤구주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갖추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해 말했다.“국제중재기구는 아마도 설국 일 때문에 온 거겠지?”“...네.”레이는 비록 인정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국제중재기구가 왔으니 얘기해줄게. 설태현의 목은 내가 잘랐어. 설국의 백 년 국운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