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윤구주가 말했다.“네 탓을 하려던 건 아니야. 너 보고 떠나라고 한 건 내가 따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야.”“따로 할 일이 있으시다고요?”유기철은 당황했다.“그래. 그러니 이만 돌아가.”윤구주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유기철은 윤구주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윤구주가 혼자 이곳에 남아있어도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고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저하께서 먼저 가보시라고 하셨으니 일단 병영으로 돌아가서 저하를 기다리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는 윤구주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유기철이 떠났다.밖은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바람 또한 휘휘 소리를 내면서 불고 있었다.부지면적이 수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2,000여 명의 병사들이 있는 설국 병영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윤구주는 덤덤한 눈길로 병영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동시에 그는 신념술을 사용하여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전부 뒤덮었다.신념술을 사용하자 근처 설산 위에 있던 천지의 원기가 갑자기 사면팔방에서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역시 이곳은 아주 좋아! 천지의 원기가 기산보다도 더 풍부해!”윤구주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윤구주가 유기철에게 먼저 떠나라고 한 이유는 이곳에서 아주 짙은 천지의 원기를 느꼈기 때문이다.예전에 구음만상결을 수련했을 때 윤구주는 완벽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기산 마궁의 천지 원기가 너무 희박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 끊임없이 이어진 흑여산맥과 상쾌한 공기, 거기에 아주 짙은 천지 원기까지.순수한 천지 원기가 있었기에 윤구주는 구음만상결을 수련할 수 있었다.윤구주가 구음만상결 수련에 성공한다면 윤구주의 실력은 몇 배나 더 성장할 것이다.윤구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제일 높은 설산 위에 섰다.그 설산은 아주 가파른 산이었다.윤구주는 그곳에 착지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그는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고 곧 체내에서
윤구주에게서 팔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설국 병사들이 기세등등하게 그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그 설국 병사들은 윤구주가 죽였던 병사들과는 완전히 달랐다.그 병사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하고 근육이 탄탄했다.게다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물 가죽 하나만 걸치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상체를 드러내놓고 있었다.그들은 현대의 화기를 들고 있지 않고 다들 섬뜩하게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약 600명 정도 될 듯한 병사들은 책 속에서나 볼 법했던 거인처럼 보였다.게다가 자세히 보니 그들의 동공에는 모두 피에 굶주린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그들이 바로 설국에서 가장 유명한 광전사들이었다.설국 광전사들은 설국에만 있는 독특한 부대였고, 설국의 가장 강한 광명 신전 출신들이었다.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설국의 남아들은 태어난 뒤 모두 광명 신전의 검사를 받게 되는데 검사에 합격하면 신전으로 가서 일당백의 광전사로 길러진다고 한다.그 광전사들은 용감무쌍하다고 한다.당시 제1 제국의 가장 강한 특수부대원들을 상대할 때, 광전사 한 명이 특수부대원 열 명을 상대했다고 한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군인이었다면 혼자서 백 명도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광전사들의 몸에 어떤 술법이 걸려있는지는 몰라도 그의 몸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단단하여 일반적인 총이나 칼은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고 한다.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설국의 광전사들은 화진의 병사들을 꽤 많이 죽였다.그런데 이때 흑여산맥의 국경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광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광전사로 이루어진 부대 앞에서 갑자기 섬뜩한 늑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시선을 들어보니 깜짝 놀랐다.온몸이 흰색 털로 뒤덮인 아주 큰 북극 늑대의 왕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설국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이었고 설국의 북극 늑대는 아주 유명했다.그런데 그 북극 늑대 왕이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못 했다.심지어 그 북극 늑대 왕은 털이 흰 눈처럼 하얬고,
그 뒤로 그녀는 설국의 군신이라고 불렸다.지금 그녀는 설국의 국주와 결혼할 계획이라 이제 곧 설국의 가장 유명한 황후가 될 예정이었다.북극 늑대 왕을 타고 있는 세나미는 도도한 자태에 정령 같은 얼굴을 하고선 광전사 부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국경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주둔지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걸려?”감미롭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북극 늑대 왕을 타고 있는 세나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녀의 파란색 눈동자는 앞에 펼쳐진 회색빛 하늘을 서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곁에는 네 명의 노인이 있었는데 그 노인들은 광명 신전의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그들은 광명 신전의 제사장들이었다.질문을 받은 제사장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세나미 아가씨, 주둔지까지는 팔십여 킬로미터 정도 남아있습니다.”“박차를 가해야겠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주둔지에 도착해야 해.”세나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세나미 아가씨, 우리 설국의 땅을 침범했던 포로들은 행동이 너무 굼뜬데 전부 버리고 갈까요? 아니면 죽일까요?”제사장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그들의 뒤에는 실수로 설국 땅을 밟았던 유목민들이 손발이 묶인 채 눈밭을 힘겹게 걷고 있었다.그 유목민 중 대부분이 화진 사람이었다.그리고 대충 봐도 20여 명은 될 듯했다.그들은 설국 땅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설국 병사들에게 잡혔다.사실 유목민들은 죽을 뻔했는데 세나미는 전쟁은 전쟁일 뿐, 무고한 민간인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어느 나라든 똑같았다.제사장이 화진의 유목민들을 죽이겠다고 하자 세나미는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냐?”그녀의 말 한마디에 제사장은 서둘러 몸을 숙이며 말했다.“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그렇다면 저 유목민들을 잘 챙기도록 해! 영원히 명심해야 할 거야. 전쟁터에서의 일은 전쟁터에서 해결해야 해. 감히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는 놈들은 그 자리에서 법에 따라 처단할 것이다!”세나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고 제사장은 서둘러
설국 광전사들은 세나미가 음식과 물을 유목민에게 나눠주라고 하자 다들 다시금 넋이 나갔다.“장군님, 이 사람들은 적국의 유목민들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화진의...”한 병사가 말했다.그런데 그가 입을 떼자마자 세나미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순간 그의 뺨 위로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내 말 못 알아듣겠어?”세나미가 싸늘하게 말했다.거대한 몸집을 가진 광전사는 더는 말대꾸하지 못했다. 겁을 먹은 그는 황급히 말했다.“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장군님!”말을 마친 뒤 그는 곧바로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다들 뭘 넋 놓고 있어? 어서 물과 음식들을 이 유목민들에게 나눠주도록 해!”설국 병사들은 물과 음식들을 꺼내서 가련한 유목민들에게 건넸다.음식을 다 나눈 뒤 정령 같은 세나미는 그제야 풀려난 유목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다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명심해.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우리 설국 땅에 발을 들이지 마!”풀려난 유목민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말문이 막혔다.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나미를 바라보았다.“정, 정말 저희를 풀어주시는 겁니까?”세나미가 말했다.“그럼! 이제 가봐도 돼!”유목민들은 얼빠진 얼굴로 서로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세나미를 향해 짧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도망쳤다.유목민들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뒤 세나미는 그제야 다시 최전방으로 돌아갔다.“출발!”그녀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빠르게 움직여 북극 늑대 왕의 몸 위로 다시 올라탔다.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윤구주는 그 광경을 신념으로 포착했다.윤구주는 비록 팔십 킬로미터 밖에 있었지만 이미 전성기 실력을 회복한 그는 신념으로 모든 걸 볼 수 있었다.그래서 세나미가 화진의 유목민을 풀어주는 걸 본 순간,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저 설국 여자는 꽤 좋은 사람이군. 우리 화진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만약 우리 화진인 한 명을 죽였다면 나도 똑같이 설국인 한 명을 죽였을 테니까.”그렇게 말한 뒤
세나미 곁에 있던 네 명의 제사장 또한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 보였다.주위는 고요했고 오직 눈보라만이 거세게 몰아칠 뿐이었다.고요함 속에서 북극 늑대 왕의 거친 숨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은 거의 십 분가량 이어졌다.결국 한 제사장이 입을 열었다.“세나미 씨, 이 주변에는 위험이 없는 듯합니다.”세나미는 마치 군신처럼 북극 늑대 왕 위에 도도하게 앉아 있었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말도 안 돼. 내 북극 늑대는 최고의 영수야. 얘가 위험을 감지했다는 건 적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의미해.”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 제사장이 말했다.“하지만... 이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세나미는 파란 눈동자로 차갑게 잿빛 하늘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건 한 가지 상황만을 의미해.”“무슨 상황이요?”곁에 있던 제사장들은 궁금한 듯 물었다.“적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지.”그녀의 말을 들은 제사장들은 비록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다들 코웃음을 쳤다. 이곳은 설국의 국경 지역인데 누가 감히 이곳에 잠복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들의 광전사 부대는 다른 나라의 정예군을 만난다고 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나미가 너무 의심이 많고 걱정이 많다고 생각했다.설국의 광전사 부대가 경계 태세를 취하자 팔십 킬로미터 밖에 있던 윤구주는 의아함을 느꼈다.윤구주의 신념술을 일반 강자들은 느낄 수 없었다.절정 수준의 강자라고 해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그런데 북극 늑대 왕이 그걸 감지한 것이다.신념으로 북극 늑대 왕을 확인한 윤구주는 갑자기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짐승에 불과한 것이 감각은 아주 기민하네.”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신념을 거두어들이더니 설국 광전사 부대를 무시하고 다시 눈을 감고 수련하기 시작했다.윤구주가 신념술을 거두어들이자
설국 제사장은 몇 번이나 연락을 해보았지만 전화는 통하지 않았다.심상치 않은 상황에 다룬 제사장은 서둘러 아름다운 세나미를 향해 말했다.“세나미 아가씨,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세나미는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우리 주둔지에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네. 내 명령을 전해. 더 빠르게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게끔 지금부터 속도를 높이도록!”“네!”세나미는 명령을 내린 뒤 곧바로 두 다리로 북극 늑대 왕의 몸통을 찼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북극 늑대 왕은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더니 눈보라를 가르며 빠르게 달렸다.눈보라 속.윤구주에게 가장 처음 소멸당한 주둔지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이때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폭풍우 속에서 들려왔다.잠시 뒤 세나미를 태운 거대한 북극 늑대 왕과 그들의 뒤에 있던 설국 광전사 부대들이 눈보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1번 진영은?”입을 연 사람은 다룬 제사장이었다.그는 폐허를 바라보면서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젠장, 우리 주둔지가 파괴당한 것 같은데요?”다른 제사장이 빠르게 앞으로 나오더니 이미 초토화되어 버린 땅과 폐허가 된 주둔지를 바라보고 당황했다.세나미는 북극 늑대 왕 위에서 뛰어내렸다.눈앞의 폐허가 된 설국 병영과 눈에 깊이 파묻힌 설국 병사들의 시체를 본 순간, 세나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세나미 장군님, 큰일입니다. 적이 우리의 주둔지를 습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우리 설국 병영에 쳐들어와서 우리 병사들을 죽인 걸까요? 이곳은 화진과 접하고 있는 국경 지역이니 혹시 화진에서 몰래 병사를 파견해 우리 병사들을 급습한 걸까요?”한 제사장이 입을 열었다.“말도 안 돼요! 화진의 국경 지역에는 병사들이 2,000여 명밖에 없어요. 그들이 어떻게 감히 우리 병영을 공격하겠어요?”다룬 제사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장기간 국경 지역에 주둔한 경력이 있는 다룬 제사장은 화진의 국경수비대가 겨우 2,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나미 일행이 두 번째 진영에 도착했을 때, 똑같이 파괴당한 설국 진영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세나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폐허가 된 병영을 보고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그녀의 뒤에 있던 광전사들 또한 비분에 찬 표정을 지었다.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 설국의 정예군들이었다.그런데 적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진영 두 개가 파괴되었다. 설국인들로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세나미 아가씨, 큰일입니다! 전방에 또 파괴당한 진영이 있습니다!”이때 또 하나의 비보가 들려왔다.이내 파괴당한 다섯 개의 설국 진영 모두 세나미가 이끌고 온 부대에 발견되었다.겨우 30분 사이, 세나미 일행은 무려 다섯 개의 파괴당한 설국 진영을 발견한 것이다.특히 마지막 진영은 대형 진영으로 2,000여 명에 달하는 설국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그 진영은 설국 정예군으로 이루어졌으며 화포, 기관총 등이 갖춰진 진영이었다.그러나 그곳의 건물들은 모두 무너졌고 땅은 갈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땅을 찢어버린 듯 그곳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게다가 무기들마저 전부 산산이 조각나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이러한 상황에 설국 군신인 세나미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빌어먹을! 대체 누가 우리 설국 전사들을 죽인 거지?”그녀의 붉은 머리가 바람에 마구 휘날렸다. 그녀가 뿜어대는 엄청난 살기가 그녀를 한 마리의 야수처럼 보이게 했다.주변에 있던 제사장들과 광전사들 역시 모두 눈이 벌게졌다.죽은 사람들은 설국의 정예군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아우!이때 갑자기 거대한 몸집을 가진 북극 늑대가 울부짖었다.그렇게 울부짖은 뒤 북극 늑대는 피에 굶주린 눈빛으로 멀리 있는 설산을 바라보았다.“북극 늑대 왕이 적을 발견했다. 모두 날 따라와!”세나미는 어렸을 때부터 북극 늑대 왕을 타고 다녔기에 누구보다도 설국의 맹수인 북극 늑대를 잘 알고 있었다.북극 늑대 왕은 굉장히 똑똑해서 위험한 기운이거나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가 명령을 내릴 때, 설산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윤구주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드디어 왔네.”그는 그렇게 말한 뒤 갑자기 합장을 했고, 반경 백여 리의 천지 원기가 모두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천지 원기를 모두 흡수한 뒤 윤구주는 그 자리에서 쿵 일어났다.“저것 봐요! 저 자식이 일어났어요! 우리를 발견한 걸까요?”“제기랄, 당장 잡아야 해요! 도망치게 놔두면 안 돼요!”산 아래, 세나미가 이끌고 온 광전사 부대는 윤구주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가 도망칠 거라고 예상했다.그러나 그들이 말을 마치자마자 윤구주는 빠르게 움직여서 높은 설산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쿵!그의 두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대지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그 광경에 설국의 광전사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그들은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볐고 또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광전사였지만, 윤구주가 높은 설산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려서 그들 앞에 착지하는 순간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세나미의 싸늘한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세나미의 뒤에 있던 북극 늑대는 으르렁대면서 발톱으로 바닥을 긁었다.마치 언제든 윤구주를 공격할 듯이 말이다.“드디어 왔네.”윤구주는 천천히 말하더니 시선을 들며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윤구주가 그렇게 얘기하자 설국의 광전사들은 또 한 번 당황했다.“말투를 들어보니 화진 사람이에요!”“빌어먹을, 화진 사람이 왜 우리 설국 영지에 나타난 걸까요? 게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광전사들이 하나같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세나미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당신은 누구야? 왜 우리 설국 진영에 멋대로 쳐들어온 거지?”세나미의 질문을 들은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설국 만이족들은 내 신분을 알 필요가 없어.”설국 만이족이라니!윤구주의 말을 들은 광전사들은 그 순간 모두 분노했다.추운 지역인 설국은 줄곧 다른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