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이 간질거리자 부승희는 이승우의 손길을 내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승우의 손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고 부승희는 아예 손목을 잡고 아래로 끌었다.“왜 그러는 거야?”이승우는 손은 어느새 아래로 끌려 부승희의 허리춤으로 내려갔고 부승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절로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이승우는 부승희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술 꽤 많이 마셨는데 불편한 곳은 없어?”부승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이승우가 가져간 물컵을 도로 쥐려고 했다.하지만 이승우가 그 손을 찰싹 때렸다.“또 마시려고? 따뜻한 물로 다시 따라줄게.”“잔소리하긴.”부승희는 이승우와 실없는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이승우가 손목을 살짝 잡아 떠나려는 부승희를 잡았다.부승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뭐야? 한판 하자는 건가?’이승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등 켜줄게. 돌아가는 길에 넘어지지 말고.”부승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뻗어 이승우의 머리를 뒤로 쭉 밀었다.그러나 부승희가 별로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승우는 아픈 소리를 냈다.부승희가 이승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엄살은.”이승우는 작게 탄식하며 가까이로 상처를 보여줬다.“엄살 아니야. 네가 어젯밤 물어서 정말 아픈 거라고.”“...”‘잘 지내다가 왜 또 그쪽으로 대화가 돌아가는 거야?’어두운 거실, 부승희는 이승우의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승우가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부승희도 알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기 전에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지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쌤통이지 뭐. 오빠가 키스하지 않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네가 먼저 시작한 건데 날 탓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봐주지도 않았을 거야.”“웃기시네.”“빨리 봐봐.”이승우는 자연스레 부승희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피 나는 거 아니야?”부승희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헛소리하지 마. 벌써 몇
어떤 기분이라...키스가 전체적으로 달콤했던 것 같았다. 또 이승우가 마신 과일 알코올 향이 느껴져 달짝지근하니 거북하기만 했다.부승희는 애써 쿵쿵거리는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과 불규칙한 호흡이 벌써 부승희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그때.쪽.이승우는 부승희의 볼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가 당황한 찰나, 이승우는 두 번째 뽀뽀를 강행하려 했고 부승희는 빠르게 손으로 가려 입술을 막아섰다.그러다 보니 이승우는 부승희의 손바닥에 뽀뽀했고 그와 동시에 한 손은 부승희의 허리에, 다른 한 손은 부승희의 손목을 잡고 뒤로 눕혀버렸다.등에 소파가 닿는 것도 잠시 부승희는 이승우가 도로 소파에 누우며 그 몸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두 눈이 마주치고 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의 턱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고 주먹질이나 하며 어색한 기분을 숨기려 했다.그러나 먼저 눈치챈 이승우가 부승희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앞으로 내려놨다.“그만 때려. 벌써 매만 몇 번째인지 알아? 우리 대화로 하자, 응?”“지금 이게 나랑 제대로 대화하려는 사람 태도 맞아?”부승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이승우는 입꼬리를 올렸다.“응. 대화도 하고 다른 것도 하고.”“...”부승희는 거의 이승우의 몸 위로 겹쳤고 이승우가 덮고 있는 얇은 담요도 바닥에 떨어져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겨우 옷을 사이 두고 이승우의 변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이어 작은 몸 다툼이 벌어졌다. 부승희가 손을 빼내면 이승우가 다시 손목을 잡았고 허리를 일으키려 하면 이승우가 허리를 잡고 눕혔다. 어쨌든 절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부승희는 어느새 땀이 났고 두 사람 주변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이승우는 여전히 부승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승희야, 그때 나한테 몰래 뽀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부승희는 이제 머릿속이 텅 비었고 아예 이승우를 꽉 깨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서.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남자의 허리춤을 휘감고 있는 여자의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간지럽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시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튕기면서 눈앞의 사람이 빨리 끝내길 바랐다.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읍!”안시연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가 몸짓을 멈추었다.“처음이야?”안시연은 몸을 불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잇따라 허전한 기분이 들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단단히 감아 들었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정훈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여자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긴장 풀어.”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정신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예민했다.안시연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만 했다.두 달 전, 그녀는 주지혁의 팔짱을 끼고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했었다. 연정훈은 성진대학교의 우수 졸업자 겸 학부 특임 교수로서 그 동문 모임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에게 선남선녀라며 칭찬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지혁은 바람을 피워 곧 명문 가문 아가씨와 결혼한다.그리고 그녀는 연정훈의 아래에 누워 그가 순결을 앗아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경인시에서의 연씨 가문은 권력이 대단했다.연정훈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정인 그룹을 맡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경인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안시연을 사정없이 괴롭혔다.안시연은 하마터면 그의 차에서 숨이 멎을 뻔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일이 끝난 후, 그녀는 옷을 꼭 껴안고는 힘이 풀린 채
안시연은 경찰서에 세 시간의 취조를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때 주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다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혁 씨,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요. 굳이 내 인생을 망칠 생각인가요?”그 8억은 분명 그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해 빼내라고 한 것이다.주지혁은 그녀의 분노를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말했다.“시연 씨,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었어요.”“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안 꺼내면 당신이 어떻게 조이현 씨를 안을 수 있겠어요?”안시연이 비꼬며 말했다.주지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나 다음 달에 이현이와 약혼해요. 하지만 난 이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시연 씨, 3년만 기다려요. 3년 뒤면 내가 이혼하고 꼭 시연 씨와 결혼할게요.”안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럼 3년 동안 나는 어떡하라고요.”“외국으로 유학 보내줄게요.”뻔뻔스럽네!명문 가문 출신인 조이현과 결혼은 해야겠고, 또 그 돈으로 안시연을 ‘내연녀’로 만들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안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자와 잤어요.”주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나 화나게 만들면 시연 씨에게 좋을 것 없어요.”안시연이 심호흡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나 찾으러 와요. 내가 시연 씨 외국 보내줄게요.”“꿈 깨요!”주지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시연 씨, 만약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시연 씨는 돈의 행방을 모두 찾아내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야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8억이면 시연 씨 감옥에서 10년 갇히고도 더 남아요. 시연 씨가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외할머니를 돌보겠어요?”안시연에게 힘이 남아돌았다면 진작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내가 정말
안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빠르게 거울 앞을 지나 옷을 벗고는 욕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다 씻고 나서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욕실 안에는 남성 가운 하나밖에 없었다.안시연은 어젯밤 연정훈을 떠올렸는데 그가 여색을 밝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어쩌면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녀는 가운을 입고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연정훈을 불러보았다.“연 교수님?”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빠르게 나가 데스크에 전화해 옷을 부탁하려고 했다.침대에 앉아 이제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정이슬이 그녀에게 보내준 스크린샷이었다.“시연아, 무슨 일이야? 전민준에게 부탁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싸우게 된 거야? 그 새끼가 단톡방에서 너 꽃뱀이라며 욕하고 있어.”안시연이 단톡방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정이슬의 말대로 전민준은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거짓말에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도 건넸다.[걸레 같은 년은 나도 싫어. 그 와중에 보답 없이 부탁하는 것 좀 봐. 퉤!]안시연은 이 보름 동안 불행의 시간을 보냈다.그녀에게 도움을 베푼 사람이 있기는커녕 지금 단톡방에서 또 이런 비난을 받고 있으니, 그녀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코끝이 찡했다.“옷은 이따가 누가 가져다줄 거야.”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안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그제야 연정훈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뭐야? 왜 소리를 안 내?’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연정훈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느긋하게 말했다.“난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 들은 거야.”그 말인즉 자기 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발목에서 고통이 몰려와 그녀는 작은 신음을 뱉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게 되었다.연정훈
안시연이 얼어붙었다.잠깐 생각하고서야 그의 뜻을 알아챘다.어제는 그녀의 첫날밤이었고 연정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그의 뜻은 전에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안시연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는데 그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그녀와 잠자리를 가져본 사람은 연정훈밖에 없었다.주지혁이 바람피우기 전 두 사람의 스킨십은 포옹과 키스에 그쳤고, 잠자리는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그녀는 경험도 없어 이런 얘기가 꺼내질 때마다 어색한 마음이 들곤 했다.연정훈이 또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는 겨우 대답했다.“습관 되지 않아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사실이었다.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맑은 눈을 가진 그녀였기 때문이다.“넌 참 착한 여자야.”연정훈이 덤덤하게 뱉은 말에 안시연은 입술을 꽉 물었다.방금까지 단톡방에서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받은 불공평한 대우까지 떠오르니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분명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녀를 비난하곤 했다.연정훈이 무심하게 말을 뱉고는 약을 다 바른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안시연이 서둘러 몸을 뒤로 뺐는데 허벅지 사이로 약간의 고통이 전해졌다.어젯밤의 부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연정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리를 모을 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포착했다.“다리에도 상처가 있어?”그 얘기를 듣자, 안시연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그녀의 눈가, 그리고 코끝이 빨개졌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마치 비바람 속에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 같았다.연정훈이 한 발짝 다가서자, 안시연은 몸을 더 뒤로 뺐다.“안시연.”연정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에 있는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연정
안시연은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는데 마침 주인을 기다리는 정교한 선물 같았다.연정훈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달콤한 입술을 맛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여자가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었다.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가는 허리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사실 아까 병풍을 사이 두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안시연은 전민준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연정훈은 목덜미를 물어뜯자, 안시연은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것 같았다.점점 거칠어지는 남자의 숨소리와 손길,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클을 푸는 남자를 보며 안시연은 얼굴이 빨개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어두운 불빛 아래 뭔가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젖은 눈을 크게 뜨고는 빛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의 형체를 똑똑히 보려고 했다.연정훈 손에 낀 반지였다.그것도 약지에 끼어 있었다.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던 안시연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대충 세어보니 연정훈도 거의 서른 되는 나이였다.명문 가문의 후계자라면 이 나이에 진작 결혼했을 텐데 말이다.“집중해.”남자는 여자의 귓불을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꽉 잡아 벌리려고 하자 안시연이 갑자기 몸을 뒤로 빼며 남자를 밀어냈다.“안 돼요!”연정훈의 새까만 눈동자는 욕망으로 타올랐다.그는 안시연이 그에게 도움을 부탁할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조건을 내세울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그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상처 난 부위를 피해 잡았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힘으로 제압했다.안시연이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의 입술을 피했다.연정훈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숨을 헐떡이고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왜 그래?”“결혼하셨잖아요!”안시연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주지혁이 바람피워서 마음고생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연녀’라는 존재를 싫어했다. 그래서 절대 다른 사람의 결혼에 끼어들 생
호텔 로비에서.연정훈이 내려왔을 때는 이미 샤워를 마쳤고 다른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였다.김세연이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임유정이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잡지 속의 주얼리를 가리키며 김세연과 얘기를 나눴다.연정훈이 걸어오자, 임유정은 바로 그를 발견했다.“정훈 씨.”그 말에 김세연도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바로 샤워한 사실을 알아차렸다.하지만 아들이 체면도 지켜줘야 했으니, 김세연은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왜 이제야 내려와? 나랑 유정이가 너 거의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연정훈이 덤덤한 얼굴로 소파 위에 앉고는 말했다.“데스크에서 약혼녀가 왔다고 하던데요. 약혼녀와의 첫 만남이니까 제대로 꾸미고 내려와야죠.”김세연이 의아한 얼굴을 보이고는 임유정에게 고개를 돌려다.임유정의 얼굴에 홍조가 띠더니 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약혼녀? 데스크가 그래?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김세연은 그녀의 연기를 간파하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연정훈을 보며 말했다.“데스크에서도 너랑 유정이가 선남선녀로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이런데도 기회 안 잡고 뭐 해?”임유정의 얼굴이 더 빨개지더니 그녀는 김세연의 팔을 끌어안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님.”김세연이 그녀의 팔을 툭툭 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연정훈을 흘겨봤다.연정훈은 기분이 좋았는데도 임유정이 연기하는 꼴을 참을 수 없었다.그는 김세연을 보며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너 집에 안 들어온 지 몇 달이나 됐잖아. 전화해도 계속 건성건성 대답하고. 유정이랑 밥 먹다가 네가 이곳에 묵고 있다는 걸 알았어. 아니면 엄마가 아들 얼굴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즘 바빠서요.”“핑계는.”김세연은 아들 얼굴 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사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 임유정을 보며 말했다.“오늘 너도 피곤할 텐데 일찍 들어가서 쉬어. 대신 네 엄마에게 안부도 물어
어떤 기분이라...키스가 전체적으로 달콤했던 것 같았다. 또 이승우가 마신 과일 알코올 향이 느껴져 달짝지근하니 거북하기만 했다.부승희는 애써 쿵쿵거리는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과 불규칙한 호흡이 벌써 부승희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그때.쪽.이승우는 부승희의 볼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가 당황한 찰나, 이승우는 두 번째 뽀뽀를 강행하려 했고 부승희는 빠르게 손으로 가려 입술을 막아섰다.그러다 보니 이승우는 부승희의 손바닥에 뽀뽀했고 그와 동시에 한 손은 부승희의 허리에, 다른 한 손은 부승희의 손목을 잡고 뒤로 눕혀버렸다.등에 소파가 닿는 것도 잠시 부승희는 이승우가 도로 소파에 누우며 그 몸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두 눈이 마주치고 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의 턱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고 주먹질이나 하며 어색한 기분을 숨기려 했다.그러나 먼저 눈치챈 이승우가 부승희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앞으로 내려놨다.“그만 때려. 벌써 매만 몇 번째인지 알아? 우리 대화로 하자, 응?”“지금 이게 나랑 제대로 대화하려는 사람 태도 맞아?”부승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이승우는 입꼬리를 올렸다.“응. 대화도 하고 다른 것도 하고.”“...”부승희는 거의 이승우의 몸 위로 겹쳤고 이승우가 덮고 있는 얇은 담요도 바닥에 떨어져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겨우 옷을 사이 두고 이승우의 변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이어 작은 몸 다툼이 벌어졌다. 부승희가 손을 빼내면 이승우가 다시 손목을 잡았고 허리를 일으키려 하면 이승우가 허리를 잡고 눕혔다. 어쨌든 절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부승희는 어느새 땀이 났고 두 사람 주변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이승우는 여전히 부승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승희야, 그때 나한테 몰래 뽀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부승희는 이제 머릿속이 텅 비었고 아예 이승우를 꽉 깨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턱이 간질거리자 부승희는 이승우의 손길을 내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승우의 손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고 부승희는 아예 손목을 잡고 아래로 끌었다.“왜 그러는 거야?”이승우는 손은 어느새 아래로 끌려 부승희의 허리춤으로 내려갔고 부승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절로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이승우는 부승희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술 꽤 많이 마셨는데 불편한 곳은 없어?”부승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이승우가 가져간 물컵을 도로 쥐려고 했다.하지만 이승우가 그 손을 찰싹 때렸다.“또 마시려고? 따뜻한 물로 다시 따라줄게.”“잔소리하긴.”부승희는 이승우와 실없는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이승우가 손목을 살짝 잡아 떠나려는 부승희를 잡았다.부승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뭐야? 한판 하자는 건가?’이승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등 켜줄게. 돌아가는 길에 넘어지지 말고.”부승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뻗어 이승우의 머리를 뒤로 쭉 밀었다.그러나 부승희가 별로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승우는 아픈 소리를 냈다.부승희가 이승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엄살은.”이승우는 작게 탄식하며 가까이로 상처를 보여줬다.“엄살 아니야. 네가 어젯밤 물어서 정말 아픈 거라고.”“...”‘잘 지내다가 왜 또 그쪽으로 대화가 돌아가는 거야?’어두운 거실, 부승희는 이승우의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승우가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부승희도 알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기 전에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지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쌤통이지 뭐. 오빠가 키스하지 않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네가 먼저 시작한 건데 날 탓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봐주지도 않았을 거야.”“웃기시네.”“빨리 봐봐.”이승우는 자연스레 부승희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피 나는 거 아니야?”부승희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헛소리하지 마. 벌써 몇
부승희는 이승우에게 남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승우의 마음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 끝이 아름답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승우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쳤고 아무도 그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이승우는 타고나길 만인의 연인이었고 부승희는 이승우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승우가 술 한잔하며 과거 얘기를 안주 삼을 때 거론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부승희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미모 좋고, 학벌 좋은 완벽한 여자였다. 그런데 굳이 그런 오점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부승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설득했다.그러나 다른 한편, 인생은 한 번뿐이니 끝이 좋지 않더라도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는 건 순서가 없다는 데 그러다가 영영 떠나보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나이가 들어 본인이 이승우의 안주 거리가 될 수도 있고, 이승우도 본인의 안주 거리가 될 수 있었다.그러니 젊었을 때 첫사랑의 꿈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마침 이승우도 지금 부승희를 좋아하지 않은가?그러니 이 기회를 빌려 실컷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부승희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러나 눈을 뜨니 조용한 방이 보였고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환상이 깨졌다.부승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가 없었으며 자칫하다가 평생 이승우만 좋아할 수도 있었다.아무것도 모르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해외를 떠나 자리를 비운 그 시간까지도 부승희의 마음속엔 이승우뿐이었다.그리고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던 이승우가 점차 식어가는 상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러니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겠어?’부승희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승우보다 더 끌리고 더 특별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더 이상 목메지 않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포기하기엔
달짝지근한 술이 목으로 넘어가고 이승우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기억 파편이 떠올랐다.이승우는 변명이라도 하려 했다.“나 최근 몇 년 동안 아무 사람도 안 만났어.”“나도 알아. 사업 때문에 바빴잖아.”부승희는 이승우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몇 년 지나고 일이 안정되면 곧 생길 거야.”“나도 좋은 사람 만나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 수 있어.”부승희는 웃음이 터졌다.“오빠가 말하고도 웃기지 않아? 오빠는 절대 우리 오빠 같은 사람 아니니까 거짓말 마.”부승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지만 속이 문드러졌고 눈가가 따가워 차라리 두 눈을 감았다.“잠시 아픈 거랑 평생 아픈 거 차이는 나도 알아.”“두 달 지나고 모연준 그 새끼가 준 상처가 사라지면 나도 소개팅 받을 거야.”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혹시 알아? 그러다가 나도 찐사랑 만나게 될지.”너무 솔직한 부승희의 말에 이승우는 벌써 웨딩드레스를 입은 부승희가 떠올랐다.그래서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머릿속의 악몽에서 깨어나려 했다.눈앞에 부승희가 보이자 부승희가 아직 다른 사람의 옆에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이승우의 말에 부승희가 손을 휘휘 저었다.“다녀와.”이승우는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고 찬물을 켜 얼굴에 끼얹었다.차갑고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이승우는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세면대에 양손을 올려 지탱한 채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차가운 불빛이 비쳐오고 사방이 조용한 것이, 모든 게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똑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부승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졸린데 어느 방에서 자면 돼?”이승우는 빠르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문을 열었다.부승희는 문 옆으로 기대 있다가 문이 열리는 찬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이승우의 젖은 머릿결과 빨개진 눈가가 보였다.부승희는 못 본 척 외면하며 이승우를 재촉했다.“빨리. 나 나이가 들어 그런지 더 이상 밤새는 건 무리야.”이승우는 부승희의 옆으
부승희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왜 갑자기 웃어?”부승희가 고개를 돌려 이승우를 향해 말했다.“오빠는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뭐가 달랐는데?”이승우는 바로 구미가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오빠는 좀 발랑 까졌잖아.”“뭐라고?”당황해하는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그 단어는 좀 아니다.”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좀 날티 났어.”“...”‘그게 뭔 차이가 있다고.’“난 또 착하고 바른 내 성심에 반한 건 줄 알았네.”“말이 되는 소리를 해.”“그때 우리 오빠 알지? 반듯하고 단정함의 표본이었잖아. 그런데 오빠는 연애도 실컷 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걸 보며 오빠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부승희는 이승우가 자신의 짝사랑을 몰랐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짝사랑은 다 티가 나는데 말이다.이승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후회가 찾아왔다.“혹시 내가 예전처럼 멋있지 않아서 날 안 좋아하는 거야?”부승희는 웃음이 터졌고 이승우를 힐끔 바라봤다.“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찐 사랑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그 사람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 꺼내는 거야?”“쯧쯧. 그 여자분이 오빠 찬 거지?”“찬 건 아니고, 감정이 식어서 평화 이별한 거지.”“오빠는 참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부승희가 비꼬았다.“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은 고쳤어.”부승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퍽이나 믿겠어.’“그럴 필요 없어. 오빠는 그냥 신선한 사람이 좋은 거야. 다음 사람이 영원히 오빠의 찐 사랑인 거지.”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승우는 한참 부승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부승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사실 우린 같은 부류 사람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오빠 뒤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어.”이승우는 입꼬리를 내린 채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뭐가 같
밤하늘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부승희는 깜짝 놀라다가 감탄을 이었다.“정말 오빠도 인생 원 없이 사는 것 같아.”“글쎄. 누가 와서 이걸 봐주길 내내 기다렸는걸.”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감정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오랜 시절 함께 한 우정이 있었다.부승희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소파에 기대며 별밤을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승우에게 물었다.“초지현 나랑 동갑이지 않아?”“그렇지 않을까?”“그런데 결혼이라니.”“너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젠장, 나 아직 28살밖에 안 됐다고.”“말 좀 이쁘게 해.”“젠장, 오빠나 닥쳐!”“...”이승우는 에그타르트를 집어 부승희의 입에 넣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노려보다가 우걱우걱 씹었다.‘젠장. 젠장. 젠장.’단 음식만 먹었더니 속이 조금 부대낀 부승희는 와인 셀러에서 예쁘게 생긴 과일 와인을 골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자 이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휙 뺏어갔다.“뭐 하는 거야?”부승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담배 피우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부모님 앞에서 피워.”“오빠 정말 싸우려고 작정했어?”그러나 이승우는 담배를 빠르게 주머니에 숨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차라리 나 때려.”“...”부승희는 담배가 많이 당겼지만 어쩔 수 없어 입을 삐죽였다.이승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초지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아?”“이름은 익숙한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진여울, 축구팀 주장.”“뭐라고?”부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초지현이랑 결혼하는 거야?”이승우는 부승희가 이렇게 말할 거라 예상했다.“진여울 그때도 초지현 좋아했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그럴 리가 없어.”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앙숙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잘생긴 선배가 눈이 삐었네.”“그걸 우린 사랑의 콩깍지라고 하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연씨 저택을 빠져나왔다.이승우는 자꾸 부승희를 졸랐고 부승희는 이승우의 차량이 더 넓고 편한 걸 이유 삼아 그 차에 올랐다.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부승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눈을 뜨니 어느새 이승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이승우를 바라봤다.이승우는 헤헤 웃어 보였고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멍청한 이승우는 그런 일을 벌일 용기도 없었다.그래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턱을 세운 채로 말했다.“먹을 것 좀 내와. 단 걸로.”“왜 단 걸 찾아? 살찔까 봐 걱정도 안 돼?”부승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왜 갑자기 단 게 당기지?’“내오라면 내오라고. 잔소리하지 말고.”이승우는 말괄량이 같은 부승희에 적응이 되었기에 고분고분 행동에 옮겼다.“네네. 바로 내오겠습니다.”부승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배달시킬 생각은 버려. 오빠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아 너 진짜 너무해. 몰래 시키고 내가 만든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벌써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이 별장은 평소 이승우 홀로 지내는 별장이었다. 이씨 가문은 가족이 많았고 부모님 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빠르게 집을 구해 본가를 떠났다. 그리고 주말마다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부승희는 예전에는 자주 이 집을 찾았지만 해외로 나간 뒤로는 처음이었다.사실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부승희는 익숙하게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게임을 작동했으며, 이승우는 그 옆에 앉아 패드로 음식을 주문했다.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간단하게 게임을 시작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승우와 부승희는 게임 메이트로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게임 취향은 거의 일치했다.“2층에 몬스터 있어. 네가 해치워.”“나 총알 부족해.”“쯧. 쓸모없긴. 내 뒤로 숨어. 내가 해치울게!”펑!부승희가 마지막 보스까지 처리하고 게임은 끝났다.어느새 잠이 깬 부승희는 나른
부승희는 이승우를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또 슬쩍 손을 놓는 장난을 하려 했었다.그런데 진지하게 손을 닦는 이승우를 보며 그 마음을 버렸다.‘이승우 뒤로 꽃이 얼마나 많은데. 또 넘어지면 그 꽃들까지 상할 거야.’‘그러니까 꽃을 봐서 이번만 봐줄게.’이승우는 부승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부승희와의 거리를 좁혔다.푹 젖어버린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했다.“정말 똥강아지 같아.”그리고 이승우 몸에 묻은 진흙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정말 똥강아지 맞잖아.”이승우는 화도 내지 않았다.“네 방으로 데려다줘. 옷만 갈아입을게.”“내 방엔 강아지 옷 없는데?”“네 옷이라도 좋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부승희는 몸을 돌렸다.“혼자 정훈이 오빠 찾아가서 새 옷 달라고 해.”“지금 이 시간에 정훈이 문을 두드리면 퍽이나 열어주겠어.”‘하긴.’부승희는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그럼 도우미나 경호원 찾아가. 아무나 도와줄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내가 싫어.”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기 싫었다.“네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부승희는 입을 삐죽였다.‘까다롭긴.’“그럼 오빠나 방으로 돌아가. 방문 안 잠갔고 난 이만 가볼게.”부승희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대문으로 향했다.그러자 이승우가 따라왔고 부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몸을 휙 돌렸다.“왜 따라와!”“술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운전하지 마. 사람 찾아줄게.”“오빠만 기사 있는 줄 알아? 웃기시네.”“...”부승희가 정말 떠나려고 하자 이승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손목을 잡았다.“왜 자꾸 가시처럼 톡톡 쏴? 조금만 기다려줘. 옷만 갈아입으면 우리 야식도 먹고 새로 나온 게임도 밤새 하자.”“싫어. 오빠네 가서 야식 먹는 건 내가 아예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내가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너한테 무슨 짓 하겠어? 너한테 무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