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연이 신음을 흘리자 연정훈이 손으로 입을 막았고 거친 호흡을 내쉬며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조용히 해. 우리 잠자리 가진다고 광고할래?”‘쳇, 방음이 뭐 그렇게 나쁘겠어?’‘지레 겁을 먹고... 음...’익숙한 기분이 찾아오고 양시연은 발가락 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겨우 연정훈의 품에 안겨 숨을 돌리는데 연정훈이 또 키스를 해왔다.그러자 마치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쪽배가 파도에 치여 이리저리 휘청이는 기분이 들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칭얼거리며 연정훈더러 조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말했다.연정훈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연정훈이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시연아, 너 전보다 더 음탕해진 것 같아.”양시연은 머리가 펑 터지는 기분이 들었고 연정훈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변태!’11시가 넘어서고 저택은 평화를 되찾았다.양시연은 땀을 흠뻑 흘렸고 연정훈의 품에 기대 작게 숨을 헐떡였다.연정훈은 입으로 양시연에게 물을 먹이고 또 짧게 키스했다.다시 호흡을 빼앗긴 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연정훈은 또 스멀스멀 침대 안으로 손을 움직였고 양시연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무기력해진 팔을 들어 살짝 밀었다.“그만해요. 조금만 쉬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볼에 얼굴을 비비고 허리를 꾹꾹 눌러 마사지하며 말했다.“겨우 한 번만 했잖아.”양시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목에 팔을 걸었다.“이제 아기 보러 가야죠. 걱정도 안 돼요?”“아기 봐주는 사람 있잖아.”“그래도 우리가 데리고 와야죠...”“오늘은 괜찮아. 어머니가 자기 방에 따로 아기 침대도 마련했으니 오늘 밤만 봐달라고 부탁하자.”연정훈은 말을 하는 내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양시연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더 이상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보고만 올래? 아기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그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연정훈은 그 말을 하고도 한참 양
태양이 분유를 모두 비웠으나 양시연은 다시 표세연에게 넘겨주기 아쉬웠다. 비록 하룻밤뿐이었으나 태어난 뒤로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지 않았기에 마음이 불안했다.“잠이 들었으니 아기 침대로 눕혀요.”양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말했다.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다시 아까 끝내지 못한 거사를 이어가려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두 눈을 꼭 감았다.양시연은 두 볼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정, 정훈 씨 빨리 아기부터 데리고 와요. 내가 달래줄게요.”“우리 태양이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한번 달래면 계속 달래줘야 해.”“그래도 어떻게 모르는 척 내버려둬요...”양시연이 연정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저 어린 녀석이 눈치도 없이.’‘낮엔 쿨쿨 잘 자던 녀석이 밤만 되면 자꾸 좋은 일을 망치네.’연정훈은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내려갔다.불만이 가득한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이 잠옷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연정훈이 고개를 돌리자 양시연이 말을 이었다.“이번만 달래주고 어머님께 아이 보내요.”양시연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자 연정훈은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고 다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연정훈은 빠르게 양시연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금방 올게.”‘뭐지?’양시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연정훈은 외투를 챙겨 입고 태양을 품에 안은 채로 밖으로 향했다.태양은 울먹이다가 왜 달래주지 않는지 의아해했다.양시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내가 달래주기로 했잖아요.”연정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아이 할머니가 잘 달래줄 거야.”“...”‘정말. 무슨 아빠가 이래?’하지만 양시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양손으로 무릎을 꼭 껴안은 채로 연정훈을 기다렸다.새벽이 되고 마지막 손님들도 파티를 끝냈다. 그 사람들은 연정훈 무리와 술을 마시다가 또 다른 사람들과 2차를 했고 새벽까지 끝내주는 파티를 즐겼다.이승우는 부승희에게 쫓겨 도망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
비 오는 날,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서.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남자의 허리춤을 휘감고 있는 여자의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간지럽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시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튕기면서 눈앞의 사람이 빨리 끝내길 바랐다.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읍!”안시연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가 몸짓을 멈추었다.“처음이야?”안시연은 몸을 불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잇따라 허전한 기분이 들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단단히 감아 들었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정훈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여자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긴장 풀어.”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정신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예민했다.안시연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만 했다.두 달 전, 그녀는 주지혁의 팔짱을 끼고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했었다. 연정훈은 성진대학교의 우수 졸업자 겸 학부 특임 교수로서 그 동문 모임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에게 선남선녀라며 칭찬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지혁은 바람을 피워 곧 명문 가문 아가씨와 결혼한다.그리고 그녀는 연정훈의 아래에 누워 그가 순결을 앗아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경인시에서의 연씨 가문은 권력이 대단했다.연정훈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정인 그룹을 맡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경인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안시연을 사정없이 괴롭혔다.안시연은 하마터면 그의 차에서 숨이 멎을 뻔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일이 끝난 후, 그녀는 옷을 꼭 껴안고는 힘이 풀린 채
안시연은 경찰서에 세 시간의 취조를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때 주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다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혁 씨,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요. 굳이 내 인생을 망칠 생각인가요?”그 8억은 분명 그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해 빼내라고 한 것이다.주지혁은 그녀의 분노를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말했다.“시연 씨,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었어요.”“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안 꺼내면 당신이 어떻게 조이현 씨를 안을 수 있겠어요?”안시연이 비꼬며 말했다.주지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나 다음 달에 이현이와 약혼해요. 하지만 난 이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시연 씨, 3년만 기다려요. 3년 뒤면 내가 이혼하고 꼭 시연 씨와 결혼할게요.”안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럼 3년 동안 나는 어떡하라고요.”“외국으로 유학 보내줄게요.”뻔뻔스럽네!명문 가문 출신인 조이현과 결혼은 해야겠고, 또 그 돈으로 안시연을 ‘내연녀’로 만들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안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자와 잤어요.”주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나 화나게 만들면 시연 씨에게 좋을 것 없어요.”안시연이 심호흡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나 찾으러 와요. 내가 시연 씨 외국 보내줄게요.”“꿈 깨요!”주지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시연 씨, 만약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시연 씨는 돈의 행방을 모두 찾아내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야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8억이면 시연 씨 감옥에서 10년 갇히고도 더 남아요. 시연 씨가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외할머니를 돌보겠어요?”안시연에게 힘이 남아돌았다면 진작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내가 정말
안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빠르게 거울 앞을 지나 옷을 벗고는 욕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다 씻고 나서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욕실 안에는 남성 가운 하나밖에 없었다.안시연은 어젯밤 연정훈을 떠올렸는데 그가 여색을 밝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어쩌면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녀는 가운을 입고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연정훈을 불러보았다.“연 교수님?”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빠르게 나가 데스크에 전화해 옷을 부탁하려고 했다.침대에 앉아 이제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정이슬이 그녀에게 보내준 스크린샷이었다.“시연아, 무슨 일이야? 전민준에게 부탁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싸우게 된 거야? 그 새끼가 단톡방에서 너 꽃뱀이라며 욕하고 있어.”안시연이 단톡방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정이슬의 말대로 전민준은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거짓말에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도 건넸다.[걸레 같은 년은 나도 싫어. 그 와중에 보답 없이 부탁하는 것 좀 봐. 퉤!]안시연은 이 보름 동안 불행의 시간을 보냈다.그녀에게 도움을 베푼 사람이 있기는커녕 지금 단톡방에서 또 이런 비난을 받고 있으니, 그녀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코끝이 찡했다.“옷은 이따가 누가 가져다줄 거야.”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안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그제야 연정훈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뭐야? 왜 소리를 안 내?’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연정훈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느긋하게 말했다.“난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 들은 거야.”그 말인즉 자기 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발목에서 고통이 몰려와 그녀는 작은 신음을 뱉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게 되었다.연정훈
안시연이 얼어붙었다.잠깐 생각하고서야 그의 뜻을 알아챘다.어제는 그녀의 첫날밤이었고 연정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그의 뜻은 전에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안시연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는데 그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그녀와 잠자리를 가져본 사람은 연정훈밖에 없었다.주지혁이 바람피우기 전 두 사람의 스킨십은 포옹과 키스에 그쳤고, 잠자리는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그녀는 경험도 없어 이런 얘기가 꺼내질 때마다 어색한 마음이 들곤 했다.연정훈이 또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는 겨우 대답했다.“습관 되지 않아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사실이었다.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맑은 눈을 가진 그녀였기 때문이다.“넌 참 착한 여자야.”연정훈이 덤덤하게 뱉은 말에 안시연은 입술을 꽉 물었다.방금까지 단톡방에서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받은 불공평한 대우까지 떠오르니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분명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녀를 비난하곤 했다.연정훈이 무심하게 말을 뱉고는 약을 다 바른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안시연이 서둘러 몸을 뒤로 뺐는데 허벅지 사이로 약간의 고통이 전해졌다.어젯밤의 부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연정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리를 모을 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포착했다.“다리에도 상처가 있어?”그 얘기를 듣자, 안시연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그녀의 눈가, 그리고 코끝이 빨개졌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마치 비바람 속에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 같았다.연정훈이 한 발짝 다가서자, 안시연은 몸을 더 뒤로 뺐다.“안시연.”연정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에 있는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연정
안시연은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는데 마침 주인을 기다리는 정교한 선물 같았다.연정훈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달콤한 입술을 맛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여자가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었다.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가는 허리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사실 아까 병풍을 사이 두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안시연은 전민준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연정훈은 목덜미를 물어뜯자, 안시연은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것 같았다.점점 거칠어지는 남자의 숨소리와 손길,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클을 푸는 남자를 보며 안시연은 얼굴이 빨개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어두운 불빛 아래 뭔가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젖은 눈을 크게 뜨고는 빛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의 형체를 똑똑히 보려고 했다.연정훈 손에 낀 반지였다.그것도 약지에 끼어 있었다.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던 안시연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대충 세어보니 연정훈도 거의 서른 되는 나이였다.명문 가문의 후계자라면 이 나이에 진작 결혼했을 텐데 말이다.“집중해.”남자는 여자의 귓불을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꽉 잡아 벌리려고 하자 안시연이 갑자기 몸을 뒤로 빼며 남자를 밀어냈다.“안 돼요!”연정훈의 새까만 눈동자는 욕망으로 타올랐다.그는 안시연이 그에게 도움을 부탁할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조건을 내세울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그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상처 난 부위를 피해 잡았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힘으로 제압했다.안시연이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의 입술을 피했다.연정훈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숨을 헐떡이고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왜 그래?”“결혼하셨잖아요!”안시연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주지혁이 바람피워서 마음고생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연녀’라는 존재를 싫어했다. 그래서 절대 다른 사람의 결혼에 끼어들 생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
태양이 분유를 모두 비웠으나 양시연은 다시 표세연에게 넘겨주기 아쉬웠다. 비록 하룻밤뿐이었으나 태어난 뒤로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지 않았기에 마음이 불안했다.“잠이 들었으니 아기 침대로 눕혀요.”양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말했다.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다시 아까 끝내지 못한 거사를 이어가려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두 눈을 꼭 감았다.양시연은 두 볼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정, 정훈 씨 빨리 아기부터 데리고 와요. 내가 달래줄게요.”“우리 태양이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한번 달래면 계속 달래줘야 해.”“그래도 어떻게 모르는 척 내버려둬요...”양시연이 연정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저 어린 녀석이 눈치도 없이.’‘낮엔 쿨쿨 잘 자던 녀석이 밤만 되면 자꾸 좋은 일을 망치네.’연정훈은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내려갔다.불만이 가득한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이 잠옷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연정훈이 고개를 돌리자 양시연이 말을 이었다.“이번만 달래주고 어머님께 아이 보내요.”양시연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자 연정훈은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고 다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연정훈은 빠르게 양시연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금방 올게.”‘뭐지?’양시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연정훈은 외투를 챙겨 입고 태양을 품에 안은 채로 밖으로 향했다.태양은 울먹이다가 왜 달래주지 않는지 의아해했다.양시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내가 달래주기로 했잖아요.”연정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아이 할머니가 잘 달래줄 거야.”“...”‘정말. 무슨 아빠가 이래?’하지만 양시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양손으로 무릎을 꼭 껴안은 채로 연정훈을 기다렸다.새벽이 되고 마지막 손님들도 파티를 끝냈다. 그 사람들은 연정훈 무리와 술을 마시다가 또 다른 사람들과 2차를 했고 새벽까지 끝내주는 파티를 즐겼다.이승우는 부승희에게 쫓겨 도망
양시연이 신음을 흘리자 연정훈이 손으로 입을 막았고 거친 호흡을 내쉬며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조용히 해. 우리 잠자리 가진다고 광고할래?”‘쳇, 방음이 뭐 그렇게 나쁘겠어?’‘지레 겁을 먹고... 음...’익숙한 기분이 찾아오고 양시연은 발가락 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겨우 연정훈의 품에 안겨 숨을 돌리는데 연정훈이 또 키스를 해왔다.그러자 마치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쪽배가 파도에 치여 이리저리 휘청이는 기분이 들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칭얼거리며 연정훈더러 조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말했다.연정훈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연정훈이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시연아, 너 전보다 더 음탕해진 것 같아.”양시연은 머리가 펑 터지는 기분이 들었고 연정훈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변태!’11시가 넘어서고 저택은 평화를 되찾았다.양시연은 땀을 흠뻑 흘렸고 연정훈의 품에 기대 작게 숨을 헐떡였다.연정훈은 입으로 양시연에게 물을 먹이고 또 짧게 키스했다.다시 호흡을 빼앗긴 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연정훈은 또 스멀스멀 침대 안으로 손을 움직였고 양시연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무기력해진 팔을 들어 살짝 밀었다.“그만해요. 조금만 쉬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볼에 얼굴을 비비고 허리를 꾹꾹 눌러 마사지하며 말했다.“겨우 한 번만 했잖아.”양시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목에 팔을 걸었다.“이제 아기 보러 가야죠. 걱정도 안 돼요?”“아기 봐주는 사람 있잖아.”“그래도 우리가 데리고 와야죠...”“오늘은 괜찮아. 어머니가 자기 방에 따로 아기 침대도 마련했으니 오늘 밤만 봐달라고 부탁하자.”연정훈은 말을 하는 내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양시연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더 이상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보고만 올래? 아기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그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연정훈은 그 말을 하고도 한참 양
큰 공간에는 소파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점점 민망해졌다.양시연은 귓불을 붉힌 채로 연정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그러다가 참다못한 연정훈이 양시연을 끌어당기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우린 아이 보러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볼 게.”그리고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남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눈치를 챘다.아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 만들러 가는 것임을.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선 건 한우빈과 한우빈의 파트너였다. 그 여자는 다정하게 한우빈에게 물었다.“우빈 씨 아까 먹던 감자칩 아직도 매워요?”‘당연히 맵지. 매워 죽겠어.’한우빈을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머리가 아파서 먼저 올라가서 쉴게.”“...”그리고 양혁수는 그 상황에 관심이 없었기에 어린 친구나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여름의 헤드셋을 똑똑 두드리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그러자 변여름은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그다음으로는 변백호였다. 변백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지혜는 꼬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랐다.부승원은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았으며 친오빠로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잔을 세게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그 소리에 소파의 움직임이 조금 멈췄다.“승희야.”“오빠,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봐!”부승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정말 어이가 없네.’부승원은 숨을 길게 내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우희를 잡아당겼다.“이만 가자.”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불과 1분 안으로 방은 비워졌다.부승희는 제 위를 올라탄 이승우를 보며 너무 화가 나 머리를 세게 내리칠까 했다.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먼저 예상 한 이승우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승희도 소파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이승우는 빠르게 도망갔고 부승희는 놓치지 않고 뒤를 쫓았다.
“생각해 봤는데 고작 야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아.”“이 손 놓고 말해!”“대화는 여기까지. 말로는 내가 너한테 상대도 되지 못하잖아.”“오빠 정말... 읍!”부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파 뒤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모두 조용해졌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변여름을 바라봤다.그리고 몰래 혀를 쯧쯧 하며 말했다.“여름아?”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의미를 알아차린 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헤드셋을 움켜쥐었다.‘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들려...”“...”이어서 또 찰싹 손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너무 아프겠다.’부승원은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이승우.”소파에서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부승희는 이승우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못했고 두 손도 잡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부승원의 경고에 이승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부승희는 시선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승우를 노려보았다.이승우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술을 매만졌다.지금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고 입술 끝엔 옅은 알코올 향이 남아 있었다. 이승우는 평소에 위스키도 단맛만 골라 마셨고 부승희는 그 단 향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번 침을 삼켜도 여운이 남았다.‘젠장! 감히 어떻게 나한테!’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버둥거리자 이승우는 아예 부승희를 소파에 눕혀 버렸다.부승희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 이승우의 가슴을 밀쳤다.‘정말 미친 거 아니야?’이승우는 양손으로 지탱한 채로 부승희를 내려다보았고 턱을 살짝 세우더니 부승희더러 제 입술을 보라고 시늉했다.“네가 물어뜯었나 봐 너무 아파.”부승희는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오빠가 자초한 거잖아.”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이승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부승희는 손을 휙 빼냈고 손등으로 이승우의 뺨을 찰싹 때렸다.쨕!너무 높지 않은 소리였지만 주변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한우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뭐야, 왜 손찌검까지 하는 거야?”“손찌검인지 다른 건지는 모르지.”양혁수가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부승희는 이를 꽉 깨물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이승우도 이런 부승희를 따라 추욱 몸을 늘어뜨리더니 부승희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그러자 이승우도 그 옆으로 움직였다.부승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경고를 날렸지만 이승우는 당황하지도 않고 얼굴을 들이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손놀림이 예전 같지 않네?”“오빠 정말 내 손에 죽어볼래?”‘정말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사람이야.’이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파 쿠션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은 부승희는 애써 꾹꾹 참으며 말했다.“할 일이 남아 이만 가볼게. 함부로 그 입 놀리면 알지?”그리고 부승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이승우는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부승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부승희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뭐 하자는 거야?”“널 위해 거짓말하는 거면 나도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이득은 무슨.”‘양심이라는 게 있긴 한 건가?’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와 시선을 마주했다.“내가 너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니지. 나도 한성격 하는 사람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 체면 구기면 어떡해?”“그러기만 해봐.”“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우리 좋게 말로 하자.”부승희는 이승우에게 잡힌 손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얼굴이 시뻘게진 이승우를 보며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는 게 떠올랐다.그러니 술주정뱅이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양시연 무리만 있었으면 몰라도 다른
양시연은 노지혜가 카드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부승희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려 했지만 부승희가 너무 술을 마셔서 경계심이 떨어져 그녀의 눈빛을 놓쳤다.결국 마지막 판에서 부승희가 걸렸고 이승우가 카드를 던졌을 때 부승희는 순간 멍해졌다.노지혜는 왕으로서 웃으며 종이 한 장을 뽑더니 원래 3겹으로 되어 있던 종이를 풀어 얇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종이로 입맞춤하라고 했지만 종이는 절대로 찢어지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그 종이는 나비의 날개처럼 얇아서 조금만 다쳐도 찢어질 정도였다.노지혜가 말했다.“입맞춤해서 종이가 찢어지면 그때는 두 번 입맞춤하고 종이가 찢어지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해요.”그녀는 세 장의 나비 날개처럼 얇은 종이를 펼쳐 보이며 부승희에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려 했다.부승희는 침을 삼켰고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모두가 그녀와 이승우를 주목했고 이승우는 무덤덤하게 술잔을 내려놓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해야 하지?’‘뭘 어떻게 하긴.’부승희는 그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정말 재수 없네. 마지막 판에서 이렇게 걸리다니.’부승희가 말했다.“우리 진 거니까 고마 주스를 마시며 벌칙을 받을게요.”변여름은 이번엔 직접 주스를 주지 않고 게임 규칙을 읽기 시작했다.“언니, 게임 시작할 때 혁수 형이 말했잖아요. 결혼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벌칙을 자진해서 요청할 수 없다고.”부승희는 어이없었다.“...”‘뭐야. 양혁수는 너의 조상이라도 돼? 양혁수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네.’부승희는 입만 뻐끔거렸고 그때 노지혜가 말을 이었다.“언니, 혹시 게임을 할 엄두가 없는 거예요?”‘엄두가 없다고? 내 사전에는 그런 단어가 있을 리가 없어. 그건 불가능해.’부승희는 발이 묶인 듯한 상황에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이승우와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으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친구인 변백호에게 눈길을 보냈다.변백호는 부승희와 노래를 부른 뒤 그녀
게임이 계속되는 동안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자 양혁수는 졸음이 싹 달아나더니 결국 포기한 듯 변백호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가만히 있어요. 내가 할게요.”변백호는 당황하며 욕설을 내뱉었다.“양혁수 씨, 대체 어디를 만지는 거예요?”“내가 어디를 만질 수 있겠어요?”양시연과 주변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남자들은 차마 그 장면을 직시할 수 없었다.우여곡절 끝에 탁구공을 배까지 운반하자 반우희가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와 두 분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요?”부승희도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두 분 다 훈훈하니까 보기 좋아요.”그 순간 부승원의 시선이 반우희에게 잠시 머물렀다.양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 예전부터 변백호 씨가 양혁수를 짝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어요. 뭔 일만 있으면 도와주잖아요?”양혁수는 능글맞게 웃으며 변백호를 바라봤다.“방금 나랑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었는데 아주 좋았겠네요?”변백호는 질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꺼져요.”‘진짜 뻔뻔하네.’양혁수와 변백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방 안은 다시 웃음으로 가득 찼다.다음 라운드에서 양시연이 왕을 뽑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던 그녀는 비교적 쉬운 벌칙을 정했다.“2번과 4번이 듀엣으로 러브송을 부르기!”뜻밖에도 2번과 4번은 변백호와 부승희였고 별로 어려운 미션도 아니라 두 사람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골랐다.부승희는 편곡된 ‘사랑’이라는 곡을 선택했는데 뜻밖에도 변백호도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서로가 함께 잠이 들고 나비처럼 함께 날아가네. 온 정원에 봄빛 내려 우릴 감싸안았지. 가만히 스님에게 여인이 예쁜지 물어보았네.”두 사람의 목소리는 모두 듣기 좋았고 함께 부르니 더 매력적이었다.방 안에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그중에서도 노지혜만이 턱을 괴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변백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쁜 놈. 지난번
부승원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가 공개된 자리에서 규칙을 어기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따르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연정훈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이승우는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부승원이 조용히 술을 마시며 움직이지 않자 반우희는 손을 들었다.부승희가 물었다.“우희 씨, 무슨 일이에요?”반우희가 대답했다.“부승원 씨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신청할게요.”모두가 침묵했다.“...”방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정직한 표정이 잠시 억지로 유지되는 듯했다.‘순진하구나.’반우희는 한우빈에게 물었다.“한우빈 씨, 저 해도 될까요?”한우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안 돼요.”“네?”한우빈은 반우희를 놀리듯 말했다.“우희 씨, 규칙을 어기려고 하는 거죠? 내가 동의하려면 먼저 세 잔의 고마 주스를 마셔야 해요.”“너무 잔인하네요.”노지혜는 어깨를 떨며 그 기회를 틈타 변백호의 품에 파고들었다.변여름은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했다.‘애교쟁이.’양혁수는 거의 잠이 들었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곧 눈을 가려야 할 거야.”결국 반우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좋아요. 마실게요.”변여름은 그녀에게 고마 주스를 건넸고 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대 3개를 달라고 했다. 한 번에 다 마실 생각이었다.모두가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3 2...’반우희가 빨대를 입에 물려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반응할 새도 없이 큰 손이 반우희의 얼굴을 돌려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반우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그 순간 부승원은 진심으로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입술을 반우희에게 완전히 맞췄다. 단순히 살짝 닿은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키스였다.연정훈은 잠시 양시연을 바라보았고 양시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평온을 가장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가까이 가서 구경하며 플래시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