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양시연은 소파에 앉아 눈앞의 차를 보며 한참 침묵했다.이건 연정훈이 수납장에서 꺼낸 차로 직접 우린 것이었다.“한번 와봤는데 집이 너무 텅 빈 것 같아서 채워 넣었어.”양시연은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래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아래로 내려갔다.연정훈은 계속 양시연의 뒤를 따랐다.늦은 밤이 되자 밖은 꽤 시원했다.동네의 낡은 주차장을 떠나 어두운 구역까지 걸어가자 오랜 세월 고장 난 가로등 아래에서 한 커플이 키스하고 있는 게 보였다.양시연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변백호...소녀는 변백호의 목에 팔을 걸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변백호는 그 손길을 두어 번 피하더니 곧 가만히 노지혜의 손길을 받아들였다.연정훈도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양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연정훈도 양시연을 바라보았다.이제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양시연은 말을 꺼내기도 귀찮아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길가에는 연정훈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차에 타. 할 말 있어.”양시연이 걸음을 멈췄다.‘그래.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는 거야.’양시연이 좌수석 손잡이를 당겨 안으로 앉았다.문이 닫히고 밀폐된 공간에는 두 사람만 남겨졌다.연정훈은 외투를 벗어 뒷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고 편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양시연은 차창을 내렸다.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는데 연정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 사람이랑 무슨 사이야?”“말했잖아요. 연인 사이라고.”양시연은 될 대로 되라는 심산이었다.연정훈은 이에 화를 내지도 않고 침착하게 변백호의 신상을 읊었다.“멕하든의 최고 권력 가문인 변씨 가문. 무기 장사로 일떠선 가문이지. 지금도 티후아엔에서 가장 큰 검은 세력이고 변백호는 3년 사이 4번의 암살 위협을 받았어. 변백호의 주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양시연이 인상을 찌푸렸다.“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왜 굳이 조사한 거예요?”“여기는 경
“거절할게요.”차 안에서 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연정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덤덤했다.지금 연정훈은 유독 담배가 당겼지만, 손에는 담배가 없었다.양시연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문 열어줘요.”연정훈은 미동조차 없었다.양시연 역시 당황하지 않았다.“정훈 씨가 재결합을 부탁해서 거절했어요. 저를 못 가게 막는 건 정말로 끝까지 매달리겠다는 뜻인가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정훈은 버튼을 눌러 양시연 쪽 창문을 닫았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의 행동은 갈수록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엔 자존심이 강해서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강남시티 사건에서 이미 그 믿음은 깨졌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연정훈이 입을 열었다.“재결합을 거절하는 이유를 말해줘.”양시연은 연정훈의 자존심을 잘 알기에 망설임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이유는 없어요. 이제 당신을 찾고 싶지 않거든요. 당신에게 권력과 지위가 있어도 나에겐 이제 아무 의미 없어요. 어느 가문이든 그런 정도는 있잖아요? 연애할 거라면 당연히 젊고 활기찬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왜 하필 당신이어야 하죠?”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는 걸 보고 연정훈의 아픈 곳을 찔린 걸 눈치챘다.연정훈이 그녀를 한 번 쳐다봤고 양시연은 그 시선에 물러서지 않고 똑바로 맞섰다.오래도록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연정훈은 여전히 차 문을 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양시연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연정훈 씨, 이렇게 굴면 정말 품위가 떨어지는 거 아시죠? 이렇게까지 매달리면 내가 당신을 가지고 놀까 봐 걱정 안 되세요?”“걱정 안 해.”양시연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바라보며 깊고 어두운 눈빛을 띠고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나는 네가 나를 가지고 놀기를 바라고 있어. 어떻게 가지고 놀거야?”양시연은 어이없었다.“...”‘역시
양시연은 자신의 청각에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연정훈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뭐라고? 정인 그룹을 나에게 준다고?’양시연의 관심은 오로지 정인 그룹에 쏠려 있었지만, 연정훈의 관심은‘결혼’에 맞춰져 있었다.양시연이 얼떨떨해하는 모습을 보며 연정훈이 덧붙였다.“이번 주 내로 하자.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하고 모든 절차를 마치면 정인 그룹은 네 것이 될 거야.”양시연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래. 내 청각엔 이상이 없어. 연정훈 씨가 미쳤어.’양시연은 연정훈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주도권을 쥐고 연정훈을 조롱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모든 걸 뒤집는 결정을 내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난 필요 없어요!”양시연은 한쪽 발을 차 밖으로 내밀며 미간을 찌푸렸다.“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돈 때문에 결혼할 일은 없어요.”연정훈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눌렀다.양시연은 순간 당황했다.???연정훈이 말했다.“네가 먼저 요구했잖아. 내가 동의했는데 이제 와서 번복하려고?”“번복하면 어쩔 건데요?”양시연은 당당하게 말했다.“아까 경고했잖아요. 너무 매달리면 결국 내가 당신을 가지고 놀 거라고요. 연정훈 씨, 너무 방심 하신 거 아니에요?”“...”연정훈은 양시연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응시했다.양시연은 좌석에 기대어 옆으로 앉아 있었다.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섬세한 힐을 신고 하얀 손목으로 머리를 받치며 도전적인 미소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은 양시연을 보며 이가 갈릴 듯했다. 그녀를 품에 안아 단단히 제압하고 싶었다.긴 대치 끝에 갑자기 멀리서 강한 불빛이 그들을 향해 비춰왔다.둘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돌려 눈이 부신 빛을 피했다.양시연은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며 몇 번 깜빡인 후 손가락 틈 사이로 빛의 방향을 살폈다.검은색 SUV가 가까운 곳에 멈춰 섰고 차 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가 내렸다.그는 검은 반소매 티셔츠에 부드러운 소재의 캐주얼 바지를 입고 밤인데도 검은 야구
양시연은 묵묵히 양혁수의 뒤를 따랐다.뒤에서 연정훈은 운전석에 느긋이 앉아 그들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양시연은 슬쩍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힐끗 바라보았다.양시연은 확신할 수 있었다.연정훈의 교활한 여우 같은 성격을 떠올리며 그는 분명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적어도 자존심 상할 일을 연정훈이 가만히 넘기진 않을 터였다.양시연이 마음을 정리할 새도 없이 양혁수가 그녀의 손을 잡고는 투덜댔다.“왜 그렇게 쳐다봐? 이미 가져봤던 남자면서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라도 들어?”양시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양혁수는 양시연의 손을 꼭 쥐고 주차된 차 쪽으로 걸어갔다.양시연은 양혁수의 걸음에 맞춰 다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차에 오르고 나서야 양시연은 백미러를 통해 겨우 연정훈의 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양혁수는 거울을 닫아버렸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쾅!차 문이 닫히자 양혁수는 재빨리 시동을 걸어 양시연을 데리고 멀리 사라졌다.뒤에서는 연정훈도 주저하지 않고 차를 돌려 연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차 안은 고요했고 양시연은 양혁수를 몇 번 슬쩍 쳐다봤다.양혁수는 예전보다 한층 성숙해 보였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매력이 더해져 있었다.갑자기 양혁수가 고개를 휙 돌려 양시연을 바라보았다.양시연은 딱 걸린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양혁수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보려면 두 눈으로 실컷 보라고 나처럼 젊고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많이 보면 네 안목도 높아지지 않겠어? 연정훈 씨 같은 늙은이 그만 포기해.”양시연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양시연은 좌석에 기대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었다.양혁수는 여전히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고 느낌도 예전과 변하지 않았다.그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덜 갚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뒤를 돌아보니 차에 가득 실린 꽃과 선물들 그리고 커다란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너 원래부터 올 계획이었구나?”“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이 물건들은 미
“그냥 소소한 물건일 뿐이에요.”양석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양홍두는 노안경을 밀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이 부자는 본래 말수가 적어 함께 있으면 서로 말없이 눈빛만 주고받는 사이였다.그때 마당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먼저 양지원이 들어왔다. 오늘 그녀는 자연스러운 볼륨이 살아 있는 웨이브 머리로 우아함을 더했다.환한 미소가 양지원의 얼굴에 평온하고 온화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양지원은 양석진을 보자 반가운 기색이 얼굴에 가득 번졌다.양시연도 잠시 뒤 따라 들어와 뜻밖의 모습에 놀란 듯 입을 살짝 벌렸다.양혁수는 여유롭게 그들 앞을 지나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농담을 던졌다.“외삼촌, 몇 년 만에 뵙는데 우리 집 여자들 앞에서는 여전히 최고 인기남이시네요.”양석진이 가볍게 받아쳤다.“너보다는 조금 나은가 보네.”“조금은 아니죠. 우리 집 큰아씨가 삼촌을 보는 눈빛이 정말 특별하던데요.”양지원은 당황했다.!!!“이 녀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고 양혁수는 소파에 기대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과장한 건지 시연한테 물어보세요.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쓸데없는 소리만 하는구나.”“네.”양혁수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억양을 늘리며 대답했다.“제가 헛소리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좀 보세요.”양지원은 어이없었다.“...”양홍두가 가볍게 헛기침했다.이를 본 양혁수가 일부러 놀리듯 말했다.“아이고. 할아버지도 여기 계셨군요.”양홍두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사실 큰손자가 친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양홍두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하지만 지금은 이미 많은 것들을 내려놓은 듯했다.양홍두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말을 꺼냈다.“이제는 결혼할 사람을 찾아서 너도 좀 잡아놔야겠구나. 그렇게 오래 밖에 나가 있다가 우리 얼굴 보러 올 생각도 안 하고.”“아직 부족하신 거예요? 보물 같은 손녀가 곁에서
연씨 가문에서.김세연은 저녁 만찬까지 양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민망함에 그 자리를 견디기 힘들었다.연정훈이 집에 들어섰을 때 김세연은 연재혁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당신 아들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친엄마를 망신 줬어요! 양지원 씨가 나를 보고 웃을 때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요?”김세연이 고개를 들자 연정훈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연재혁에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당신 아들이 돌아왔어요!”연재혁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왜 그런 소리를 해요? 내 아들이면 당신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요?”“당신 아들이라고요!”김세연은 화가 치밀어 목소리를 높였다.연재혁은 어이없었다.“...”연재혁과 말이 통하지 않자 김세연은 전화를 끊고 화난 눈빛으로 연정훈을 노려보았다.연정훈은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야식을 먹으려 했다. 그는 반우희 집에서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그가 한 숟가락 들었을 때 김세연은 그릇을 뺏어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이제 와서 먹을 염치가 있어? 내 얼굴 좀 봐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지!”연정훈은 엄마를 잠깐 보고 나직하게 말했다.“붓긴 하셨네요. 이젠 밤새우지 말고 피부 관리에 신경 좀 쓰셔야죠. 나이도 있으시니.”김세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정말 이 아들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연정훈은 다시 죽을 먹으려 했다.김세연은 가까이 다가서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시연이 어떻게 양씨가 된 거냐?”“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중요하지 않다고? 그러면 뭐가 중요해?”연정훈은 죽을 한 모금 먹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저는 시연과 결혼할 거예요.”김세연은 잠시 침묵하며 당황한 듯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며 낮게 물었다.“지금은 시연이...”“시연은 나와 결혼하고 싶지 않으려 해요.”김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 듯 말했다.“그래. 네가 그래도 정신은 차린
연정훈은 침묵했다.김세연은 우아하게 앉아 두 손을 살짝 모은 채 가볍게 마주쳤다. 자신의 제안이 너무나 기발하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평소 남을 괴롭혔는데 좀 고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김세연은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싫다고 하셔도 내가 직접 얘기할 테니까. 만약 할머니가 동의하지 않으시면 앞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하게 해야지. 언제 나설 땐 안 나서면서 자꾸 참견은 뭐야?”연정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알아서 하세요.”김세연은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연정훈이 위층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요즘 집에 별로 없었으니까 엄마가 방을 정리해 두라고 할게.”“괜찮아요. 제가 할게요.”김세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방문 앞에 다다르자 김세연은 재빠르게 나서며 말했다.“엄마는 양시연을 먼저 달래는 게 좋을 것 같아. 예전에 왜 헤어진 건지 솔직히 얘기하고 소현주 일은 양시연한테 얘기했니?”연정훈은 대답 없이 방문을 열었다.김세연은 곧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말해야지. 소현주가 우리를 얼마나 속였는지 알아? 공휘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지 너뿐만 아니라 나도 양시연에게 평생 죄책감을 느꼈을 거야!”“이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내가 신경 쓰고 싶어서 그런 거로 생각해?”김세연은 방으로 들어가며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이러고 있지 말고 제대로 말해. 양시연을 원한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제대로 대시해.”연정훈은 김세연을 등지고 손목시계를 풀며 방을 정리했다.김세연은 한숨을 쉬었다.‘그만하자.’“나에게 귀한 금박 팔찌 한 쌍이 있어. 며칠 후에 진 선생님께 가서 받아올 테니까 네 할머니가 그것을 가지고 양씨 가문에 가게 할게.”김세연은 만족한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정훈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필요 없어요.”“마음에 안 들어?”김세연은 다급해졌다.“그 팔찌 상태가 아주 좋은데.”연정훈은 김세연 앞을 지
“잘 지내고 있어.”양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밤의 고요함을 즐겼다.문 옆에 서서 양혁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너는?”“그냥 그래.”양혁수는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양시연이 웃으며 말했다.“아까 테이블에 놓은 담배 엄마가 쓰레기통에 버렸어.”양혁수는 혀를 차며 말했다.“정말 철저하네.”“담배는 좋은 게 아니니까 끊는 게 좋겠어.”양시연이 조용히 말했다.“우리 큰 아씨께서는 최대한 적게 피우라고 하는데 넌 아예 끊으라고 하는 거야?”양혁수는 난간에 기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리더로서 살다 보니 말투가 강력해진 건가?”“나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끊을 수 없어.”양혁수는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히며 어깨를 풀었다.“너...무슨 걱정 있어?”양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양혁수는 한숨을 내쉬고 동작을 멈춘 채 양시연을 한 번 흘깃 쳐다봤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양혁수는 주먹을 입술에 대며 하품하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어. 그냥 피우면서 즐기고 있어.”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래도 끊는 게 좋아.”“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고 양시연은 다시 무심코 양혁수가 손목에 찬 팔찌를 바라보았다.그 팔찌는 한 뼘 정도의 넓은 중성적 디자인이었다. 처음 양시연이 찼을 때는 다루기 힘들었지만, 이제 양혁수가 차니까 오히려 잘 어울렸다.“내가 돌아오기 전에...”양혁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가 말을 멈췄다.양시연은 양혁수가 계속 말할 줄 알고 기다렸으나 양혁수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원래 너한테 선물 좀 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그렇구나.”양시연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괜찮아. 선물은 언제든지 줘도 돼. 며칠 후에 내가 마음에 드는 걸 보면 그때 네가 결제해 줘.”양혁수는 웃었다.“알았어. 네가 골라. 내가 결제할게.”양혁수는 양시연 뒤에 있는 문을 보며 말했다.“이제 가자. 나도 자야 해.”양시연
양시연은 민지연 같은 철없는 아이에게 더 이상 화낼 기운조차 없었다.민수희는 특별한 신분을 지닌 연호민의 아내였기에 그녀의 장례식은 평범한 이들의 장례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영정이 마련되자마자 조문객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양석진은 다음 날 오후에 도착했다. 그가 제사를 마치자 곧이어 양지원도 도착했고 연정훈과 양시연은 두 사람을 직접 맞이해 뒤쪽 휴게실로 안내했다.두 사람 모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모습이었고 양석진이 입을 열었다.“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일에 집중해.”연정훈은 떠났고 양시연은 남아 부모님께 차를 따라주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양지원은 이마를 가볍게 톡톡 쳤다.“그만하고 가서 연정훈 도와줘. 지금 사람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잖아.”양시연은 민망하게 웃으며 아무 말 없이 곧바로 뛰어나갔다.그녀가 떠난 뒤 양지원이 고개를 들어 양석진과 눈이 마주쳤고 급히 시선을 피하자 양석진은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결혼한 것뿐인데 양씨 아가씨를 놀라게 해서 본가로 가게 만들다니 내가 좀 체면이 있는가 봐.”양지원은 말문이 막혔다.“...”양지원은 입술을 오므리며 대꾸했다.“누가 놀랐다는 거예요?”“그러면 왜 도망쳤어?”양석진이 되물었는데 양지원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무서워했기에 잠시 고민에 빠졌을 뿐이었다. 양석진의 생각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지 못해서 전략적인 후퇴를 선택한 것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히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아이고.”양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지금 장례를 치르고 있잖아요. 석진 씨는 뭐 하러 온 거에요? 여기서 결혼 얘기를 꺼내다니.”양석진은 침묵했다.“...”...연씨 가문은 장례를 3일 동안 치르기로 했고 마지막 날에는 화장을 진행할 예정이었다.둘째 날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애도의
민수희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양시연은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고 연정훈은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정을 조정하느라 바빴다. 항공편 문제로 그들은 바로 갈 수 없었고 연정훈은 오전 비행기를 예약하고 먼저 가서 양시연은 쉬게 하려고 했다.“괜찮아요. 나도 같이 갈 거예요.”양시연은 민수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때때로 밖에서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체면을 차려야 할 때가 있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면 며느리가 장례가 끝난 후에 가는 것은 듣기에도 좋지 않다.게다가 만약 장례가 치러지면 양시연은 연정훈과 함께 안팎으로 도와야 한다.연정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해가 밝기 전에 평소처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양시연은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아침이 되어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결국 세운행 비행기에 올랐다.점심 전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고 연재혁 부부는 이미 도착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민씨 가문 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병원 복도에 가득 서 있었다.연정훈이 병실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하고 나오자 의사는 말했다.“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모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고 연재혁은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민씨 가문 사람 중 몇 명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양시연과 표세연은 한쪽에 서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오후에 민수희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고 집 안에서는 간간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었다.양시연은 민수희의 병세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 같아 의심스러웠고 표세연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이가 많아서 사실 넘어졌다가 겨우 회복되었는데 또 밤새 잠을 안 자고 연정훈 삼촌을 생각하며 정인의 일까지 신경 쓰다 보니 그렇게 힘든 걸 못 견디고 있는 거야.”연정훈 삼촌에 대해 양시연은 잘 알지 못했지만 민수희가 고령에 아들을 낳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의 죽음을 겪는 것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연정훈과 양시연 두 사람
“나를 조사한다고?”“네. 못하게 하려고요?”연정훈은 웃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부드럽게 말했다.“마음대로 조사해.”양시연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사실 양시연은 그렇게 화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정훈이 자신과 채팅하려고 다른 계정을 만들었다는 고도의 계산과 엉뚱한 발상이 놀라웠을 뿐이었다.양시연이 진지하게 조사하려 하자 연정훈은 개인적인 것부터 공적인 것까지 모든 계정과 관련된 정보를 솔직히 공개했다. “이메일! 이메일은요?”“세 개 있고 비밀번호는 다 똑같아.”연정훈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자 양시연은 그의 책상에서 일어나 그의 무릎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연정훈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양시연이 자신을 신경 쓰고 더 붙잡으려 할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묘한 기쁨이 피어올랐다.“이건 개인용이야.”연정훈은 양시연이 마우스를 잡은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며 직접 가이드를 해줬다.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바라보며 농담처럼 하지만 반쯤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들어 물었다.“그러면 전에 정훈 씨가 말했던 거 기억나요? 당신이랑 소현주 씨가 관계를 확정하기 전에 꽤 오랫동안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던 거.”연정훈은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이메일 아직 있어요?”“그 이메일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양시연은 실망한 듯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정말 사랑했나 봐요. 그래서 그때의 편지도 다시 보지 않으려고 이메일까지 지운 거겠죠.”연정훈은 양시연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런 걸로 놀리지 마. 그냥 귀찮아서 정리한 거야.”양시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연정훈은 그녀가 진심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조용히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건네며 말했다.“마음대로 해.”“쳇. 누가 궁금하다고 했어요.”양시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자 연정훈은 그녀의 옆얼굴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말했다.“관심 없으면 됐어.
“다시 아니라고 해봐요.”서재에서 양시연은 책상을 향해 단호하게 손바닥을 내리쳤다.“정훈 씨, 바로 당신이 엔이잖아요.”연정훈의 손은 아직 책상의 전원 버튼 위에 머물러 있었다. 방금 그는 재빠르게 컴퓨터 전원을 꺼버렸고 양시연은 다시 켜보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난 상태였다.연정훈이 또 변명을 꺼내려는 순간 양시연은 단호한 손짓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지금 제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면 오늘 밤 침실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세요.”연정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맞아. 나야.”양시연은 어이없었다.“...”‘아!’양시연은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며 방 안을 서성였다.“정훈 씨, 정말 뻔뻔하네요.”연정훈은 등을 곧게 세운 채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을 뿐이야.”“거짓말하지 마세요.”“...”“결혼 전 당신이 말했던 인생철학이나 도리는 결국 나를 속이기 위한 핑계였잖아요. 이건 거의 사기 결혼 수준이죠.”‘정말 나쁜 놈. 다른 계정을 만들어서 결혼하자고 설득하다니.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네.’연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논리와는 상관없이 기세를 세우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위급한 상황에는 위급한 방법이 필요한 법이야. 그때 넌 날 너무 밀어냈잖아. 선택지가 없었다고.”“듣기 싫어요.”양시연은 깊게 숨을 내쉬고 연정훈의 맞은편으로 돌아서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냉전 중일 때도 당신 나랑 채팅했잖아요.”“...네가 너무 힘들까 봐.”양시연은 비웃음 섞인 웃음을 흘리며 그를 비꼬았다.“정말 내가 걱정돼서 그랬어요? 내가 외롭고 지쳐서 당신한테 개인 사진까지 보낸 거였나요?”연정훈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대답했다.“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양시연은 주변을 둘러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찾아 들었다. 마치 벽돌처럼 묵직해 보이는 책을 들어 올린 그녀는 연정
아직 침실로 가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서재의 소파에서 웃음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양시연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쁜 숨을 고르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정훈 씨, 정말 너무해요. 나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 있다고요.”연정훈은 양시연 옆에 비스듬히 누워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미소 띤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머리 끈을 들어 건네주었다.양시연은 대충 머리를 묶으며 연정훈의 손에서 머리 끈을 받아 든 후 퉁명스럽게 말했다.“저 목말라요. 가서 물 떠와요.”연정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시연의 뒤로 손을 뻗어 묶은 머리를 살짝 당겼다. 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몇 번 때렸다.연정훈은 소파에서 내려와 가까운 곳에서 물을 가져와 양시연에게 먼저 건넸다. 양시연은 시원하게 마신 뒤 소파에 누워서 연정훈은 다시 물을 따라와 그녀 맞은편에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양시연은 옆으로 누워 그에게 물었다.“정훈 씨, 할머니 건강은 좀 어때요?”“별로 좋지 않아.”“네?”양시연은 당황했다. 그녀는 연정훈의 태도를 보고 적어도 할머니가 당분간은 괜찮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연정훈은 말했다.“나이가 많으셔서 생로병사는 자연스러운 일이야.”양시연은 연정훈의 말에서 할머니에 대한 큰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도 연정훈은 단지 교양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손자 역할을 간신히 다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한 양시연은 느긋하게 고개를 들고 그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응?’양시연은 속으로 의문을 가지고 눈을 가늘게 떴다.방금 연정훈과 장난을 치느라 어깨를 덮은 진한 색 잠옷 상의 단추가 풀려 쇄골이 살짝 보였고 양시연이 앉은 위치에서 유리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그의 뛰어난 턱선이 잘 보였다.‘잘생기긴 했지만...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지?’양시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맞은편에서 연정훈은 영문도 모른 채 정색하며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꺼내려 했다.“잠깐.
‘망했어.’반우희는 송민재의 말이 점점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시연은 충분히 반우희 데리고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결정권을 부승원에게 넘겨버린 상황이 의아했다. 결국 양시연이 부승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 보였다.“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반우희가 초조하게 물었다. 송민재는 살짝 기침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기다려야죠. 부 변호사 쪽에서 곧 팀 명단을 보내줄 겁니다. 만약 그 명단에 우희 씨 이름이 없다면 그때 가서 부 변호사에게 직접 부탁하세요.”반우희는 그 말을 듣고 맥이 빠졌다.‘부승원의 성격에 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통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듯 그녀는 부승원의 사무실 쪽을 몰래 훔쳐보며 첫 번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 시각 부승원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비서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부승원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무슨 일이야?”비서는 두 가지 중요한 업무를 간단히 보고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반우희 씨 문제는 우리 쪽 인원을 배정해서 처리해도 괜찮을까요?”그제야 부승원이 고개를 들었고 비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를 띠고 덧붙였다.“게다가 만약 우리가 부주의하게 처리해서 사기 사건 같은 문제라도 연루되면 업계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잖아요.”부승원은 비서의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이런 침묵에 비서가 당황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비서는 이미 부승원이 반우희에게 특혜를 준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의 뒷수습도 자신이 처리했기 때문이다.잠시 후 부승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또 같은 실수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거야.”“알겠습니다.”비서는 예상했던 반응이라 놀라지 않았고 부승원의 얼굴을 살짝 살피며 조용히 물러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부승원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다른 일이라도 있습니까?”부승원은 잠시 생각에
“양시연 언니, 저 오늘부터 같이 갈 수 있는 건가요?”반우희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양시연은 부승원의 반응을 떠올리며 눈앞의 작고 귀여운 소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양시연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반우희의 볼을 살짝 꼬집었고 반우희는 애교를 부리며 양시연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은 안 돼요.”양시연이 말하자 반우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응?’반우희는 금세 자세를 고치며 애처로운 얼굴로 물었다.“저 안 데려가요?”양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너를 이용해 큰 물고기를 낚으려는 거야.’양시연은 반우희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부 변호사님께 이미 얘기했어요. 며칠 뒤에 부 변호사님이 팀을 이끌고 정인에 들어가실 건데 우희 씨도 그 팀에 합류해서 함께 가면 돼요. 이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에요.”반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반짝였다.‘좀 돌아가는 느낌인데 그냥 바로 데려가면 되잖아.’반우희는 계속해서 간절한 표정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양시연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길어야 삼사일 내로 우희 씨도 정인에 갈 수 있을 거예요.”“그럼...”“240만이에요.”양시연은 장난스럽게 윙크했고 반우희는 얼굴이 환해지며 손을 흔들었다.“그럼 언니, 조심히 가세요!”“다음에 봐요.”양시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떠났고 뒤에서 반우희는 마치 만화 속 캐릭터처럼 환한 얼굴로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너무 좋아!’그런데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는 유리창 너머로 부승원의 냉혹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부승원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침묵했다.“...”한편 위층에서 양시연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연정훈에게 해결되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연정훈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그렇게 쉽게?]양시연은 다리를 꼬며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타이핑을 이어갔다.[부승원 씨가 처음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살짝 놀라게 했더니 배우고 싶다고
양시연은 입꼬리가 살짝 떨렸고 송민재는 빠르게 반응하며 반우희를 끌어당겼다.“알았어요. 우희 씨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먼저 양시연 씨와 부 변호사님과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해요.”“네? 그런데 저는...”“그만 말해요.”송민재는 반우희를 끌고 나갔지만 반우희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양시연을 간절히 바라봤다.‘언니, 저를 잊지 마세요.’양시연은 침묵했다.“...”사무실 문이 닫히고 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부승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부승원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연필을 쓰레기통에 던졌다.“연정훈이 양시연 씨에게 남겨준 팀이 부족해서 나한테 폐품을 구하러 온 거에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저 입은 연정훈보다 더 못됐어.’양시연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방문한 이유를 말했지만 부승원은 대답했다.“능력이 부족해서 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양시연은 잠시 침묵했다.“...”양시연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부 변호사님, 겸손하시네요. 능력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급하게 찾아온 게 문제겠죠. 바쁘신데 시간을 낼 수 없는 것도 이해합니다.”부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서 선반에서 파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양시연은 다시 한번 부승원을 떠보았다.“부 변호사님, 연정훈 씨의 부탁이라 생각하고 한 번만 배려해 주세요.”부승원은 대답했다.“전 협력자를 찾을 때는 상대의 능력과 안목만 봅니다. 누구의 체면도 보지 않죠.”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부 변호사님,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부승원은 얼핏 미소를 보였지만 여전히 무표정했다.“반우희를 눈여겨본 사람이 누구죠? 내가 생각하기엔 당신의 안목이나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봅니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응시했다.“반우희를 먼저 눈여겨본 건 부 변호사님 아니었나요?”부승원은 잠시 멈칫하며 이마를 찌푸렸고 양시연은 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내가 봤을
부승원은 냉정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처리할 능력이 없으면 애초에 문제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네가 사기를 당한 건 네 욕심 때문이야. 욕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너를 노리지 않았겠지.”반우희는 그의 말에서 도덕적 결함을 느끼고 곧바로 반박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피해자 유죄론 이에요!”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송민재와 양시연을 번갈아 쳐다보며 속으로 외쳤다.‘이거 보세요.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요?’양시연은 웃음을 꾹 참으려다 결국 터트리고 말았고 송민재도 헛기침하며 억지로 웃음을 삼켰다.하지만 부승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냉정하게 물었다.“그 건담 피규어의 중고 시세가 얼마인지 알고 있나?”반우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열장에만 있었을 때는...천만 원 정도였어요.”“그래. 그럼 너는 얼마에 팔았지?”“...1600만 원에 팔았어요.”반우희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덧붙였다.“근데 그건 그 고객이 먼저 제안한 금액이에요.”부승원은 조소를 띤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사기꾼이 먼저 제안하지. 네가 제안하길 기다리겠냐?”반우희는 눈이 반짝이며 손등으로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이거 보세요. 부 변호사님도 인정했잖아요. 그 고객이 사기꾼이라고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반우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좋아요. 저도 솔직히 살짝 욕심이 났던 건 인정할게요. 하지만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문제는 그 여자가 먼저 사기를 쳤다는 거죠. 그건 명백히 잘못이고 비도덕적이고 무엇보다 불법이에요.”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동의했다.“맞는 말이네요.”송민재는 방울토마토를 하나 더 입에 넣으며 천천히 덧붙였다.“어쨌든 난 우희 씨 편이에요.”반우희는 송민재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부승원을 바라봤다.속으로는 이렇게 외쳤다.‘보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다 저를 동정한다고요!’그러나 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