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에 아직 연정훈의 체온이 남아 있었고 안시연은 거절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삼키고 말았다.연정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안시연에게 옷을 덮어준 뒤, 연정훈은 단호하게 안시연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 힘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안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 했다.연정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 집에 가기 싫어?”연정훈이 말하는 집은 당연히 강남을 뜻했다.안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거부감을 드러냈다.“난 외할머니댁으로 갈 거예요.”연정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며 안시연을 억지로 데려가려는 듯했다.“정훈 씨!”안시연이 막 목소리를 높히자 차 안에 있던 양혁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빠르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시연 씨가 정훈 씨와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것을 모르겠어요?”양혁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도발적인 태도로 말했다.“연 대표님, 억지로 데려갈 필요는 없잖아요?”연정훈은 양혁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안시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양혁수는 혀를 차며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안시연의 다른 손을 잡아당겼다.안시연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그녀는 거의 연정훈의 품에서 벗어날 뻔했지만, 순간 왼손이 다시 연정훈의 손에 잡혔다.순식간에 상황은 민망해졌다.밤이 깊어 길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한두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호화로운 차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모습은 지나치게 이목을 끌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안시연의 얼굴은 화끈거렸고 창피함을 느끼지 않으려 애쓰며 두 손을 뺐다.양혁수가 미친 듯이 행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연정훈도 평소와는 다르게 안시연을 꽉 잡고 있었다.두 남자가 힘을 세게 주었고 안시연의 두 손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안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함을 참았다.갑자기, 왼손이 풀렸다.안시연은 잠시 멍해졌다.양혁수가 그
양혁수의 성격을 알면 양혁수가 원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부탁해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명령은 더더욱 통하지 않을 것이다.연정훈이 양혁수에게 손을 놓으라고 할수록 양혁수는 오히려 더 태연하게 손을 꽉 잡았다!안시연은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둘 다 손 놓아줘요!”안시연은 최대한 큰 소리로 말하며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양혁수가 고집스러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따라 연정훈까지 이상하게 고집을 부리며 손을 놓지 않았다.안시연은 직감했다. 이대로 가면 연정훈이 정말로 양혁수에게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세 사람 사이의 긴장은 팽팽한 줄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웠다.그때 갑자기.멀리서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들 앞에 멈췄다.차 번호판을 본 양혁수가 먼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곧이어 뒷좌석 문이 열리고 양지원이 차에서 내렸다.안시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숙였고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양지원은 그들의 상황을 보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지금...줄다리기라도 하는 거야?”안시연은 침묵했다.“…”양지원은 먼저 연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혁수는 워낙 뻔뻔해서 창피한 것도 모른다고 치자. 하지만 너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양지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잖아요.”연정훈은 차갑게 대답했다.“아드님을 데려가려고 오신 거라면 환영하죠. 하지만 편들러 오신 거라면 당분간은 어른으로 모시기 어렵겠습니다.”양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응수했다.좋다.그러고는 안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안시연은 의아했다.“…?”양지원이 말을 이어갔다.“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시장이 그들에게 줄다리기하듯 아이를 잡아당기라고 했죠. 이긴 사람이 아이를 갖는 거였어요.”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사실 시장의 진짜 의도는
차는 이미 멀리 떠났고 다시 돌아가면 그 두 고집스러운 사람을 또 마주해야 했다.양지원은 차라리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길가에서 바람을 쐬기로 했다.심야였지만, 양지원은 여전히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무심코 사탕 한 봉지를 꺼내 안시연에게 하나 건넸다.두리안 맛이었다.안시연은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하며 사탕을 받았다.양지원은 안시연을 한 번 쓱 보며 말했다.“두리안 안 좋아해요?”“아니요. 좋아해요.”“그럼 먹어요.”“네.”안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사탕을 까기 시작했다.양지원은 턱을 괴고 거울로 안시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혀를 차며 말했다.“시연 씨의 아빠는 좋은 사람일 거예요.”안시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양지원이 말했다.“그렇지 않다면 시연 씨 같은 딸을 낳을 수 없었을 거예요.”안시연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소현정을 대신해 사과하려 했다.“소현정 대신 사과할 필요 없어요.”양지원은 안시연의 행동을 예상했다.안시연은 한숨을 쉬며 사탕을 입에 넣었다.차 안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침묵이 길어지자 안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떻게 갑자기 오셨어요?”“갑자기?”양지원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그렇게 딱 맞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양지원이 말했다.“연정훈이 나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하더라고요.”“언제요?”안시연이 놀라 물었다.“대략...15분 전쯤일 거예요?”안시연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렇다면 연정훈은 이미 오래전에 안시연과 양혁수를 발견했다.양지원은 가볍게 물었다.“연정훈이랑 싸웠나요?”안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응답했다.“싸운 것뿐인데 한밤중에 위험하게 나와서 뭐 하려던 거예요?”“정훈 씨가 저를 외할머니댁에 데려다줬어요. 제가 멋대로 돌아다닌 건 아니에요.”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싸우고도 시연 씨를 데려다줬다니 연정훈은 참 침착하네요. 혁수였으면 분명 문을 쾅 닫고 나갔을 거예요.”“너무 침착한 것도 사람을 힘들게 해요.”안시
이 키스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안시연은 숨을 쉬기 힘들고 혀끝이 아프게 빨려 들어갔다. 아무리 밀쳐도 연정훈의 산처럼 단단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가 저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연정훈은 두리안 사탕의 향기를 참지 못해 안시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탕을 안시연의 입 속으로 넣었다.그는 화를 억누르며 사탕의 이상한 맛을 견뎌야 했다. 안시연의 머리를 붙잡고 그녀에게 입을 벌리게 하며 자신의 요구를 강요했다.모르는 사이에 연정훈의 손이 안시연의 손목에서 풀려버렸다.안시연은 드디어 기회를 잡았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훈을 때릴 수는 없으니 대신 손가락을 힘껏 사용해 그의 턱을 깊게 긁어버렸다.연정훈은 소리를 내며 본능적으로 얼굴을 돌려 그녀를 놓아주었다.턱 아래가 화끈거리며 아팠다.연정훈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다음 순간 안시연은 몸을 일으켜 다시 그의 뺨에 한 대 때렸다!찰싹!차 안의 공간이 좁아 이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서로 얽힌 숨소리도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연정훈의 맞은편 얼굴을 바라보며 안시연은 침착하게 몸을 일으키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몸에서 비켜 주세요!”연정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천천히 얼굴을 돌려 안시연을 바라보았다.안시연은 전혀 겁내지 않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말했다.“내가 혁수 씨를 만난 것에 당신이 화가 나서 내게 화풀이하려는 거죠?”연정훈은 입만 뻐끔거렸다.“...”“아니면 또 이런 방식으로 나를 입막음하려는 건가요?”안시연이 연정훈의 말을 끊었다.차 안은 잠깐 고요해졌다.연정훈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충동이 지나고 난 뒤, 연정훈은 후회가 밀려왔다.연정훈은 정말 미쳤다.안시연은 몸을 뒤로 기대고 손으로 눈을 가리며 흐느끼듯이 말했다. “비켜 주세요.”잠시 후, 그녀 몸 위가 가벼워졌다.연정훈은 운전석으로 돌아갔지만, 차 문을 열고 앞쪽을 돌아 안시연을 보조석에서 안고 넓은 뒷좌석으로 갔다.안시연은 긴장했다. 주위가
세 가지 선택은 안시연이 화가 나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안시연은 당당하게 말했다.“정훈 씨가 소현주 씨와 완전히 정리하면 전 다시 정훈 씨를 믿고 연애를 계속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훈 씨가 소현주 씨를 놓지 못한다면 저를 아내로 맞아주고 명분과 지위를 주세요. “사랑과 권리 중 하나는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봐, 얼마나 일리 있는 이론이야.’밤에 싸울 때, 연정훈은 안시연이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이 짜증 났다. 양혁수가 방해하자 연정훈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안시연에게 결혼을 강요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하지만 안시연은 이렇게 말했다.“부유한 가문의 사모님들은 한쪽 눈을 감고 모른 척 하고 살잖아요. 내가 연씨 사모님이 되면 정훈 씨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규칙을 지킬게요. 양씨나 임씨가 몇 명 더 와도 난 참아낼 수 있어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안시연의 이 말은 분명히 연정훈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있었다.안시연의 성격을 보면 그런 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연정훈이 침묵하자 안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재촉했다. “대표님, 하나만 골라보세요.”안시연은 세 번째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정훈의 아내가 되겠다는 마음을 최근에 서서히 접어두었다.연정훈과의 관계는 마치 도박 같았다. 안시연은 필연적으로 질 것이고 그 끝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그저 독이 전신으로 퍼지는 걸 느끼며 차분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이전의 모든 일은 죽음의 시간을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연정훈은 또다시 안시연을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소현주와의 관계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계속해서 그녀와 연애를 이어가려고 했을 것이다.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연정훈은 한참 동안 안시연을 응시하다가 얇은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물었다.“나한테 시집오고 싶어?”안시연은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그러나 곧 입술을 깨물며 등을 곧게 세우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요?”“정훈 씨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나와
안시연은 잠시 멈칫했다.‘정훈 씨에게 시간을 주라고?’연정훈은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한 자 한 자씩 천천히 말했다.“충분한 시간을 줘. 내가 그 장애물을 다 해결하고 너를 내 아내로 맞이할게.”안시연의 눈빛이 흔들렸고 어쩔 수 없이 침을 삼켰다.잠깐 머릿속이 멈췄지만, 이내 이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얼마나요?”연정훈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최대한 빨리.”안시연은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했다.“정훈 씨는 여전히 날 달래고 싶은 거잖아요.”연정훈은 안시연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안시연은 자신이 연정훈의 아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결혼은 중요한 일이야. 신중해야 하지 않겠어?”연정훈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처음 정훈 씨가 소현주와 결혼하기로 했을 때도 그렇게 신중했나요?”안시연은 여전히 소현주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연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이건 우리의 일이야. 계속해서 소현주를 끌어들이지 마.”“소현주 씨만 있으면 이건 우리 셋의 문제예요!”그녀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혼이며 뭐든 다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안시연은 갑자기 강하게 몸부림치며 연정훈의 품에서 빠져나갔다.“세 번째 선택도 하지 말고 두 번째 선택도 하지 마요. 그냥 우리 헤어져요.”연정훈은 어이없어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눈을 감고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불가능해.”안시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안시연은 일방적으로 헤어지겠다고 선언하면 연정훈이 자신을 붙잡지 못하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연정훈은 뒤에서 안시연을 힘껏 끌어안으며 그녀를 놓지 않았다.“놔줘요!”안시연은 술기운에 화가 나서 어디서 생긴 힘인지 모르게 저항하며, 연정훈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 맞히면 때리고 맞히지 못하면 손톱으로 할퀴려고 했다.연정훈은 처음으로 안시연이 이렇게 거칠게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어쩔 수 없이 그는 안시연의
안시연은 완강하게 강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텼다.결국 연정훈은 어쩔 수 없이 안시연을 다시 반우희의 집으로 데려다주었다.가는 내내 두 사람은 침묵만이 흐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아파트에 도착하자 안시연은 말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연정훈은 안시연이 어두운 계단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결심한 듯 차 문을 열고 빠르게 걸어갔다.계단 입구에서 연정훈은 안시연을 힘껏 안았다.“오늘 밤 여기서 자도 좋아. 하지만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안시연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정훈은 한 걸음 더 양보하며 말했다.“내일 돌아가기 싫으면 여기서 이틀 더 있어도 돼.”그럼에도 안시연은 여전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긴 침묵 끝에 연정훈은 안시연을 조용히 놓아주며 나지막이 말했다.“들어가.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네...”안시연은 침울하게 대답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연정훈은 그 자리에 서서 안시연이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반우희가 문을 열며 깜짝 놀라 안시연을 맞아들이는 소리가 들리자 연정훈은 그제야 차로 돌아갔다.위층에서 반우희는 이미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찾아온 안시연을 보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침실에서 자라고 권했다.안시연은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괜찮아요. 소파에서 자도 돼요.”하지만 반우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손을 휘저었다.“그럴 순 없어요. 시연 씨는 손님이잖아요. 제 침대에서 주무세요.”안시연은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반우희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복잡한 감정들이 낯선 공간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함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반우희의 침대는 오래됐지만, 매우 컸다. 아마도 이전에 어르신이 사용했던 것 같았다.반우희는 이불을 안고 나와 안시연에게 창가 쪽 자리를 내주었다.“언니, 난 먼저 잘게요. 언니도 빨리 자요.”반쯤 낯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들이고는 그
양씨 가문에서.집 밖에서 양혁수는 귀가한 양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앞에서 양지원을 가로막으며 차 창문에 기대어 말했다.“대표님, 어떻게 다른 사람 편을 들어줄 수 있어요?”양지원은 양혁수를 한 번 쳐다본 뒤, 아무렇지 않게 입을 벌려 그에게 ‘후’하고 바람을 불었다.강렬한 두리안 냄새가 났다.“아!”양혁수는 눈을 감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무슨 냄새예요? 너무 지독한데요.”양지원은 웃으며 차 문을 두드렸다.“비켜.”양혁수는 자리를 내주며 불평했다.“앞으로 이거 좀 먹지 마세요. 그 냄새가 몸에 배면 품격 없어 보여요.”양지원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품격을 모르는 놈.”“두리안 같은 심오한 과일은 너희 할아버지와 나도 좋아해. 왜 너만 싫어하는 거야?”“내 유전자가 업그레이드돼서요.”“그건 퇴보야.”양지원은 안시연을 떠올렸다. 안시연은 두리안을 좋아했다.에휴.그들은 집 앞에 도착했고 양지원은 밖에서 2층을 한 번 쳐다봤다.양민아의 방 불이 갑자기 꺼졌다.양지원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시선을 거두고 양혁수에게 빨리 올라가서 쉬라고 재촉했다.“앞으로 안시연 씨한테 매달리지 마. 안시연 씨는 널 좋아하지도 않아.”양혁수는 손을 깍지 끼고 계단을 올라가며 느긋하게 말했다.“진정한 사랑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에요. 엄마는 못 느끼세요? 안시연이랑 연정훈 씨 이제 곧 끝나요.”“끝나도 네 차례가 아닐 거야.”양혁수는 불만스럽게 고개를 돌려 양지원을 쳐다봤다.양지원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양혁수를 보내려 했다.“두고 보세요. 내가 안시연을 결국 저에게 넘어올 거예요.”양혁수가 말했다.글렀다.그 ‘넘어온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양혁수가 안시연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양지원은 한밤중임에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콩국을 먹고 있었다.거실은 조용했고 양지원은 2층 양민아의 방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한강은행 사건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고 양민아의 성격으로 보아
위층 병실에는 양옆으로 각종 의료 기기가 늘어서 있었고 간간이 울리는 기계음은 마치 폭탄의 카운트다운처럼 들렸다.연정훈은 단 한 순간도 양시연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에 초췌해진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마치 피 한 방울 없는 듯했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손을 꼭 잡고 싶었지만 혹여나 의료 기기에 닿을까 조심스러워 손끝에 힘조차 줄 수 없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입술은 창백하게 변해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폭발 응급처치 그리고 혼수상태까지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휘몰아친 듯했다.마치 오래전 그날처럼 갑작스레 울린 전화 한 통이 생각났다. 삼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마지막 순간을 놓쳐버린 뒤였다.그때와 똑같이 반복되는 비극이였다. 또다시 교통사고가 났고 이번에는 연정훈의 아내와 아이가 그 중심에 있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동안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냉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밤을 꼬박 새운 지금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그 순간의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렸고 온몸을 휘감는 공포에 휩싸였다.‘시연, 시연.’연정훈은 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시간을 되짚어가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양시연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야만 가슴속에 박혀 있던 돌덩이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때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연정훈은 원래 아무런 대꾸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양지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방 문이 열리자 그는 입을 열었고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쉬어 있었다.“어머님...”양지원은 급히 달려왔고, 경인에 막 도착했을 때쯤 양시연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오는 내내 가슴을 졸였고 급한 마음에 뛰다가 그만 넘어져 발목까지 삐고 말았다.그녀는 초췌한 연정훈을 훑어보며 조용히 말했다.“이제 곧 아침이야. 밤새 한숨도 못 잤을 텐데 뭐라도 좀
[오늘 저녁 6시경 가로수길 중부에서 차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직후 한 대의 마이바흐가 갑자기 폭발했으며 폭발의 여파는 상당히 컸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구타이 국제공항에서 선글라스를 쓴 한 여성이 뉴스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생각보다 일이 너무 빨리 터졌다. 탁승호 그 무능한 놈.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내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연정훈도 양시연도 끝내 살아남았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러나 방송을 듣는 순간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일이 터진 이상 지금 당장 떠나야만 했다. 망설이면 다음 차례는 그녀가 될 것이었다. ‘인생은 길어. 너희들 끝까지 지켜보겠어.’병원에서.근처 병원에서 치료받았기에 개인 병원과는 달리 병실은 그렇게 호화롭지 않았다.반우희와 승주는 나란히 누울 수 있는 2인실에 배정되었다. 폭발의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단지 깊은 기절 상태에 빠져 있었다.새벽 4시에 부승원은 두 아이와 함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그들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지만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복도 넘어 다른 병실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초조하게 머물고 있었다.부승원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고 가라앉지 않는 긴장감이 온몸을 조였다.‘교통사고’와 ‘폭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그의 온몸이 떨렸다.‘몇 초만 늦었어도...’“우희 언니, 왜 아직도 안 깨나?”“곧 깨어날 거야...”“승주 형도 아직 안 깨어났어.”두 꼬마는 각각 한 명씩 침대 옆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새 입술이 삐죽해지고 커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정을 참지 못하고 결국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우희 언니...”“승주 형...”부승원은 침묵했다.“...”부승원은 이마를 눌러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이것은 이미 세 번째 생
어두운 저녁 거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넓은 가로수길 양옆으로 거대한 나무들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사이로 한 대의 마이바흐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더니 커다란 굉음과 함께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돌진했다.띠 띠디. 따르릉.폭탄을 연상케 하는 소리와 함께 경고음 휴대폰 벨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은 순식간에 터진 에어백에 묻혀버렸다.양시연은 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귓가에 울리는 진동과 멈추지 않는 타이어 소리가 여전히 차가 공중에 떠 있거나 어딘가에 걸려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냄새 점점 뜨거워지는 공기가 그녀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예고했다.아직 몇 분도 지나지 않았고 어쩌면 1분 내로 연정훈이 도착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차 안에 탄 사람들의 운명은 단 몇 초 안에 결정될 터였다.결국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곳곳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무언가가 몸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수뿐만이 아니라 피도 섞여 있을 것 같았다.그제야 생명이 이렇게도 연약하다는 걸 깨달았다.양시연은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마음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부모님 연정훈 모두 마지막으로 보지 못했고 가장 지키고 싶었던 배 속의 아이마저 이제는 지킬 수 없게 되었다.“아!”그 순간 귓가에 힘찬 소년의 외침이 들려왔고 곧이어 덜컹거리는 거친 소리가 났다.그것은 발로 차 문을 거세게 걷어차는 소리였고 이어서 차 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왔다.양시연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보려는 그 순간 한 손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양시연 누나, 내가 꺼내 줄게요. 누나도 힘을 내요.”양시연은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 본능적으로 소년을 향해 힘을 내기 시작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또렷한 띠 띠디 소리가 들려오자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승주...너 먼저 가...”“싫어요. 절대 안 갈 거예요
도시 안이라 차에 도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반우희는 초보 운전자로 아직 면허도 따지 못했다.“우희 씨, 차를 좀 한적한 곳으로 몰아 기름을 다 소모해 버려요.”양시연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배는 점점 더 아파지고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앞에서 반우희는 이미 운전석에 앉아 길을 주의 깊게 보며 눈을 크게 뜨고 운전하고 있었다.반우희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양시연 언니, 사실 지금 차를 모는 게 아니라 그냥 장애물 피하기 게임을 하고 있어요. 길 위의 차들만 피하고 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해요.”‘차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데 한적한 곳으로 가는 건 더 어려워.’양시연은 반우희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그것밖에 못 했다.“우희 씨, 3분만 더 참아요. 3분만 더 참으면 돼요.”연정훈은 몇 분 내로 인근 교통 시스템에 사람들을 보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반우희는 3분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었다. 3분은 그녀에게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갑자기 앞에서 한 대의 차가 다가왔고 반우희는 눈을 크게 뜨며 핸들을 급하게 돌렸다.이번에도 너무 급하게 돌린 탓에 양시연은 다시 안전벨트에 의해 쪼여졌다.승주는 휴대폰을 들고 연정훈에게 상황을 계속 전달하며 양시연을 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양시연 누나, 피를 흘리고 있어요.”“양시연!”연정훈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고 승주는 급히 전화를 양시연의 귀에 가져다 대었지만 양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더 이상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대신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띠 띠디.“정훈 씨, 우리 차에 아마 폭탄이 있는 것 같아요.”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 너머로 들려온 연정훈의 목소리는 마치 천둥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둘은 더 이상 말을 할 기회도 없이 반우희가 앞에서 소리쳤다.“양시연 언니, 앞에 바로 가로수길이에요. 차는 별로 없어요.”“차는 없지만 폭탄은 있어요!”승주가 절망적으로 외쳤다.“제발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양시연은 뒷좌석에 몸을 기대어 창밖의 빠르게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을지 생각했다.조수석에 앉은 반우희가 부승원에게 전화를 걸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나 지금 어디 있는지 맞혀봐요.”승주는 질색하며 대꾸했다.“정말 오글거리네요.”양시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반우희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감추고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부승원과 대화를 이어갔다.양시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하자 몇 분 전 연정훈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함께 좋은 소식도 전해왔다.양시연은 배를 가만히 쓸어내리며 잔잔한 만족감을 느꼈다.“오늘 밤은 야근하지 말아요...”앞좌석에서 반우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양시연은 장난삼아 그녀를 놀리려 했다. 그러나 그때 차가 무언가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강한 충격에 몸이 앞으로 쏠렸다. 운전자는 급히 핸들을 틀었고 단순한 차선 변경이 아니라 차량이 갑자기 속력을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무슨 일이에요?!”반우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양시연은 충격에 숨이 턱 막혔고 안전벨트에 강하게 되감기면서 배에 묵직한 압박감이 몰려왔다.운전석에서 운전사가 다급하게 외쳤다.“차가 이상해졌어요. 갑자기 통제가 안 되면서 옆 차와 부딪쳤습니다!”“그...그러면 빨리 멈춰야죠.”승주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양시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고통을 참았다.“맞아요. 얼른 갓길에 세우세요!”“멈출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운전사의 한마디에 차 안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고 양시연을 포함한 모두의 손발이 차갑게 굳었다.승주와 반우희는 창백한 얼굴로 안전벨트를 꽉 움켜쥔 채 마치 목소리를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양시연은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연정훈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동시에 반우희에
큰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연씨 가문의 본가에서 표세연이 전화를 받았다.“좋아. 알았어.”양시연은 2층에 서서 표세연의 기쁜 목소리를 들으며 대충 짐작했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표세연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괜찮아. 연정훈의 아버지가 다 해결했어.”‘아이고.’“맞아. 오늘 양석진 씨께서 모습을 보이셨대.”표세연이 덧붙였다.양시연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었음을 실감했다.그녀는 연정훈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후속 처리할 일이 남아 있는 듯했다.집에서 기다릴까 했지만 마침 반우희가 세 아이를 데리고 가려 하자 그녀도 차라리 반우희를 태우고 연정훈을 데리러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너무 서두르지 마. 연정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표세연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양시연은 신경 쓰지 않고 배를 살짝 받치며 계단을 내려갔다.“마침 답답했는데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어요.”“알았어. 네가 답답해할 줄 알았어.”표세연은 결국 운전사를 불러 그들을 밖으로 데려가 바람을 쐬게 했다.주차장에서는 세 아이가 여러 차를 구경하고 있었고 반우희가 좋아하는 마이바흐는 승주도 탐을 내는 차였다.“아니면 우리 이 차를 타고 나갈까요?”양시연이 제안했다.“그래도 돼요?”반우희와 승주가 동시에 묻자 양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아싸.”탁승호는 없었고 표세연이 정해준 운전사는 오랫동안 일해온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안전을 위해 희주와 동준은 다른 차에 태웠다.반우희는 마이바흐의 조수석에 앉았고 승주는 양시연과 함께 뒷좌석에 올랐다.“나도 이제 출세했네요. 마이바흐를 타보다니.”양시연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운전사에게 차를 출발하라고 지시했다.출발!...단 15분만에 양원 그룹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누구도 그 전화의 내용을 직접 듣진 못했지만 위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결과는
“괜찮아요. 반우희 씨는 그냥 한 번 올라가서 볼 거예요. 탁승호 씨는 차 시동 켜고 조수석에 앉아요. 우희 씨가 잠깐이나마 만족할 수 있도록 해줘요."양시연이 웃으면서 말했다.탁승호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네.”반우희는 기분 좋게 차에 올라탔고 양시연은 차 밖에서 앉아 있었으며 실내는 시원하게 느껴졌다.탁승호는 계속해서 옆에서 지켜보았고 반우희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그의 눈빛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대로 만지지 않았다.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양시연은 웃으면서 물었다.“마음에 들어요?”“네. 마음에 들어요.”“사법시험 끝나면 부승원 씨에게 차 한 대 사달라고 해요.”반우희는 진지하게 한숨을 쉬었다.“시연 언니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물어보길래 차 한 대 선물해 줄 생각인 줄 알았어요.”양시연이 일어나서 반우희 코를 살짝 쥐었다.“욕심쟁이네요.”반우희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그때 또 한 번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렸고 반우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제 곧 폭우가 올 것 같아요.”“그럴 것 같네요.”...양원 그룹 회의실에서 6시가 다 되어가지만 사람들은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회의라지만 사실 중요한 사항은 이미 끝났고 남은 건 윗사람들의 연설뿐이었다.회의는 이 회장이 직접 참석했고 그의 말 속에는 일부 얌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15분 전 누군가가 또다시 창고에서 발생한 사고를 언급했다.“지금까지 사망자 가족은 아직 보상안을 받지 못했습니다.”이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책임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보상안이 나올 수 있나요?”“우리는 어쨌든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누군가 말했다.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죠. 사람들의 입이 무섭죠.”정 회장은 표원정의 의견을 지지했고 그는 이미 조재민과 얽히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이 회장과 연정훈과 대립 중이었다.이 회장은 그를 한 번 쳐다본 후 웃을 듯한 표정으
양시연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양혁수는 그녀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마음 한구석이 살짝 쓰렸지만 그래도 그녀가 행복하다니 다행이었다.“이제 곧 출산인데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있어. 요즘 같은 때는 한 발짝 덜 움직이는 게 안전한 법이야.”양혁수가 걱정스레 말했다.“어쩜 정훈 씨랑 하는 말이 똑같아?”“연정훈 씨랑 나를 비교하지 마. 난 그 사람이랑 상종도 안 해.”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화 너머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변여름이야?”“응. 변백호가 볼일 있어서 왔는데 변여름도 같이 따라왔어. 한강시에 한 번도 안 와봤다길래 데리고 놀러 왔지.”“잘됐네.”“혹시 처리할 일 있으면 말해. 너희가 직접 움직이기 어려운 건 내가 대신 해줄게.”전화를 끊기 전 양혁수가 덧붙였고 양시연은 그의 배려가 고마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전화를 끊었다.저녁 무렵 반우희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세 아이를 데리고 복숭아를 따러 갔다가 양시연에게도 좀 가져다주고 싶다고 했다.마침 무료하던 참이라 양시연은 주소를 알려주며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아이들이 도착하자 집안 분위기가 한층 활기차졌다.표세연은 특히 동준이가 작은 몸집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만화 캐릭터 같다며 귀여워했다.양시연과 반우희는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반우희는 대게를 한입 베어 물며 무심히 말했다.“요즘 다들 너무 바쁜 것 같아요. 벌써 이틀이나 부승원 씨 얼굴을 못 봤네요.”“내가 없으니 많이 힘들겠죠.”양시연이 말하자 반우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답했다.“그게 아니라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바쁘진 않았는데 요즘은 뭔가 이상해요.”양시연은 부승원이 왜 바쁜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고 반우희를 달래며 더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오늘 부승원 씨의 생일이에요. 이따가 그
이전에는 민수희가 있었기 때문에 표세연은 민씨 가문의 기생충 같은 사람들을 참을 수 있었지만 민수희가 떠나고 나서는 이제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게다가 요즘 마음도 편치 않아 누구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은 참이었다.그때 민지연이 버릇없이 덜컹거리며 들어오는 것을 본 표세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뺨을 한 대 때렸다.‘팍!’양시연은 위층에 있었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동 소리를 듣고 급히 문을 열였다. 그곳에서는 어린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방미선은 아마도 체면이 상했는지 표세연에게 기어이 몇 마디 반박하며 말했다.“혹시 갱년기 아니야?”“갱년기? 너야말로 갱년기야!”“나는 곧 손자를 볼 거야. 갱년기는 이미 다 지나갔다고.”민지연과 방미선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본 양시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표세연은 화가 나서 말이 거칠어졌다.“앞으로 너희는 이 집에 다시 발 들이지 마. 어머님도 돌아가셨고 이제 이 집엔 민씨는 없어. 정인은 이미 내 며느리와 함께 성을 바꿔서 양씨가 되었어. 만약 돈을 원하고 손자 행세를 하려면 양씨 가문에 가서 해.”“사모님.”가정부들은 놀라서 표세연에게 말을 그만하라고 했지만 표세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덧붙였다.“내가 하나만 말해줄게. 우리 사부인 성격이 나보다 더 안 좋아. 가서 손자 행세하고 싶으면 절이라도 소리 크게 내서 해.”방미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당장이라도 화병이 날 듯했고 얼굴이 붉어진 채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고 욕을 하려 했지만 자신이 남의 집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빨을 꽉 깨물며 참았다. 그런 다음 표세연에게 정신과 약을 먹으라고 권한 후 떨리는 손으로 민지연을 끌고 나갔다.가정부 중 한 명은 원래 표세연을 말리려 했지만 방미선의 말을 듣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저희 사모님은 건강하세요. 오히려 당신이나 민지연 씨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표세연은 한바탕 화풀이를 끝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