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이 말이 끝나자 안시연은 고개를 숙인 채 일부러 못 들은 척하며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양지원은 흥미로웠다. 연정훈의 성장 과정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하고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또 생각해 보니, 자기 자녀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다른 사람들은 서로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데 양지원의 자식들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양지원은 조용히 닭 다리를 양석진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드세요.”양석진이 말했다.“난 닭 다리 별로 안 좋아해.”양지원은 말없이 닭 껍질을 떼어냈다. “양석진 씨도 닭 껍질을 안 좋아하나요?”안시연이 물었다.양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안시연이 말했다.“저도 안 좋아해요.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다들 닭 껍질이 치킨의 생명이라고 하잖아요..”안시연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매끈한 닭 다리가 안시연의 그릇에 놓였다.연정훈은 즉석에서 알아차리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안시연은 침묵했다.“...”양지원은 혀를 차며 말했다. “넌 반응이 빠르구나.”연정훈이 답했다.“이모께서 잘 이끌어주셔서요.”연정훈은 콩국을 담은 그릇을 건네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양지원은 감탄하며 말했다.“네 엄마와 나는 오랜 세월을 함께했고 두 가문도 이미 친척이 되었지. 그런데도 넌 늘‘지원 이모’라고만 부르고‘작은 엄마’라고는 한 번도 부르지 않더라. 혁수보다 더해. 내가 너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다니 드문 일이구나.”연정훈이 말했다.“작은엄마라고 부르면 나이 들었다고 느끼실까 봐요.”“작은엄마라고 안 부르고 이모라고 하면 좀 더 젊어 보이시잖아요.”“사실 누나라고 부르고 싶지만, 우리 엄마가 절대 못 부르게 하셔서요.”양지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의 옆에 있던 양석진은 조용히 몇 마리의 소금 새우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양석진은 양지원이 준 독한 과자 때문에 안시
양지원은 단순히 양석진이 누구에게 이렇게 특별히 대접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질투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소녀를 경쟁 상대로 여길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연정훈의 생각은 달랐다.연정훈은 양석진을 한 번 보았다.또다시 한번 보았다.몇 번을 연달아 바라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이 나이에 이 위치에 있는 양석진이 특별한 배경이 아니라면 양석진을 둘러싼 사람들로 한강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안시연이 연정훈을 좋아하게 된 것도 연정훈이 몇 차례나 위험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이었고 마침 양석진 역시 방금 안시연을 구해준 상태였다.연정훈은 씁쓸함을 느끼며 손에 든 진한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그 차는 너무 쓰니, 너무 많이 마시지 마세요.”양지원이 양석진을 흘겨보며 말했다.“만두가 싱겁다면 부엌에 석진 씨가 원하는 게 있을 거예요.”연정훈은 묵묵히 있었다.“...”안시연은 이 식사가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두 사람의 신분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함께 식사할 기회는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양창수가 들어와 말했다.“석진 씨, 가야 할 시간입니다.”안시연은 놀랐다.‘이 밤중에 떠난다고?’양지원도 당황했다. 양지원은 적어도 양석진이 날이 밝을 때까지는 머물 것으로 생각했었다.오직 연정훈만 담담했다. 연정훈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방금 양석진이 양지원에게 보였던 태도를 보고 양석진이 급히 돌아온 것은 양지원 때문일 것을 확신했다.친남매도 아닌데 이렇게 깊은 감정을 가진 것은 분명 눈길을 끌 만했다.거실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깨졌고 안시연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을 느꼈다. 양지원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양석진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양석진은 간단히 몇 마디만 남기고 외투를 챙기러 일어섰다.양지원은 의자에 앉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양지원이 무관심한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별장 앞, 나무들은 크고 정원은 탁 트여 있었다. 바람이 불자 양옆의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양지원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양석진을 불러 세웠다.양창수는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차에 타라고 신호를 보냈다.양석진은 차 옆에 서서 뒤돌아 양지원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시계를 두고 가셨어요.”양지원은 들고 있던 시계를 내밀었다.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졌고 그들은 가까이 서 있었다.양석진이 손을 내밀자 양지원은 자연스럽게 시계의 잠금을 풀어 양석진의 손목에 채워주었다.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다. 양지원이 손을 놓고 양석진도 손을 내렸다.서로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들어가.”양석진이 말했다.“네.”양지원은 한 발 물러서서 양석진이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는 차에 탔고 양지원은 문을 닫아주었다. 마지막 순간, 망설이던 양지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빠, 조심히 가세요.”...저택 안에서는 두 사람이 사라지자 안시연과 연정훈도 조용해졌다.“우리도 집으로 돌아갈까?”연정훈이 먼저 물었다.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연정훈과 함께 가는 것 외에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양석진의 집에 더 머물 수는 없었다.연정훈은 안시연이 동의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마침 돌아오는 길에 양지원과 마주쳤다.양지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연정훈을 한 번 쳐다보며 물었다.“이제 가려고?”“네. 더 이상 신세지지 않겠습니다.”“위층에 있는 약은 챙겨가.”양지원이 무심히 말했다.안시연은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양지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밤 양지원에게 큰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하지만 양지원은 다른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 차분하게 한마디만 던졌다.“혁수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며칠 동안 혁수를 자극하지 마. 다 나으면 네가 혁수에게 아무런 기회도 없다는 걸 알려줘.” 안시연은 침묵했다.“...”안시연은 잠
안방의 욕실은 매우 넓었고 다섯 여섯 명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큰 욕조가 있었다. 욕실 한쪽에는 사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샤워실이 자리하고 있었다.안시연은 평소 이 넓은 공간을 잘 사용하지 않았고 늘 작은 샤워실만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몸이 지쳐 욕조에 몸을 담그기로 했다.그때 연정훈이 당당하게 욕실로 들어와 자신의 물건을 벗어두고 안시연의 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벨트의 금속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시연은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행히 연정훈은 샤워실로 들어갔다.안시연은 긴 한숨을 내쉬며 겨우 안도의 숨을 돌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정훈이 다시 샤워실에서 나와 욕조로 들어왔다.?안시연은 당황했지만 미처 반대편으로 몸을 옮기기도 전에 연정훈은 벌써 안시연 곁으로 다가와 팔을 뻗어 안시연을 감싸 안았다.연정훈은 한쪽 다리를 굽히고 안시연은 다리를 벌려 연정훈의 다리 위에 앉게 했다. 연정훈은 안시연을 안고 마치 안시연의 등받이가 되어 주는 듯했다.이 자세는 안시연에게 낯설고 부끄러웠다. 안시연은 몸을 움츠리며 욕조 밖으로 나가려 했다.연정훈은 단호하게 안시연을 제지하며 팔을 거두지 않았다.연정훈은 옆에 있던 바디워시를 짜서 안시연의 등에 부드럽게 발라주기 시작했다.“몸이 조금 나아졌다고 이렇게 목욕하다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여기서 기절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괜찮아졌어요.”“강한 척하지 마. 정말 기절이라도 했으면, 한밤중에 의사를 불러야 했을지도 몰라.”“...”연정훈은 안시연의 등을 씻어주며 능숙하고도 부드러운 손길로 안시연을 돌보았다.안시연의 몸은 이미 연정훈의 손길에 익숙해져 있었고 연정훈에게 쉽게 이끌렸다.따뜻한 물이 안시연의 몸을 감싸며 전율이 일었다.안시연의 허리는 힘이 풀리고 안시연도 모르게 연정훈의 무릎 위에 엎드렸다. 안시연의 분홍빛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끝을 무의식적으로 핥았다.연정훈은 안시연의 미세한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안시
안시연은 침대 머리맡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기다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히 연정훈에게 화가 나서 혼자 눕기로 했다.멀리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안시연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긴 한숨을 내쉬고 결국 일어났다.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가 아래층으로 가서 차 두 잔을 따랐다. 연정훈의 서재 앞을 지나칠 때 안시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똑똑똑.문을 두드렸다.문이 자동으로 열렸다.연정훈의 서재 앞을 지나칠 때 안시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그가 정말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안시연의 마음속 불편함이 조금 줄어들었다. “아직 안 자?”연정훈이 안시연에게 물었다.“목말라서 아래층에 내려가 차를 따랐어요. 영훈 씨 것도 한 잔 가져왔어요.”“고마워.”연정훈은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그곳에 두면 돼.”안시연은 어이없었다.“...”‘정훈 씨는 이중인격인가? 조금 전까지 계속 집착하더니, 이제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차가워졌네.’차를 내려놓고 안시연은 곧바로 나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연정훈은 눈을 들어 안시연이 살짝 삐죽 내민 입술을 바라보며 미소를 감추었다.한참 동안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안시연은 뜨거운 차를 손에 들고 연정훈을 여러 번 흘끔거렸다.그가 아무 말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안시연은 살짝 찡그리며 차를 들고 일어섰다. ‘더는 신경 쓰지 말고 자러 가자.’연정훈은 안시연이 조금 더 머무르거나 자신에게 잠자리에 돌아가겠냐고 물어줄 줄 알았지만, 안시연은 얼굴을 돌리며 연정훈에게 준 차마저 가져가려 했다.연정훈은 급히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몇 걸음 내딛어 안시연을 붙잡아 차를 빼앗았다.안시연은 등을 돌린 채 말투가 좋지 않았다.“일 계속해요. 방해 안 할게요.”“안 할 거야.”연정훈은 안시연을 뒤에서 껴안고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랑 같이 자러 갈게.”안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마음대로 해요. 자든 말든 상관없어요.”
안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신뢰와 불안이 교차했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연정훈을 믿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관계는 계속 불안하게 이어질 뿐이었다.한 번 더 믿어보자고 안시연은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자신에게도, 연정훈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연정훈은 안시연을 부드럽게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 연정훈은 안시연을 품에 안고 잠들려 했다.“저 혼자 잘게요.”안시연은 몸을 조용히 뒤로 빼며 말했다.연정훈은 그녀를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덮어 안시연의 손을 감싸며 깍지를 꼈다.연정훈의 따뜻한 숨결이 안시연의 목뒤를 간지럽히며 닿았고 안시연은 살짝 웃으며 머리를 앞으로 돌렸다.그러나 잠시 후, 연정훈은 다시 안시연을 따라왔다.안시연은 괴로워하며 그 순간을 떠올렸다. 욕실에서 연정훈이 자신을 간질였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그녀는 연정훈의 몸이 가까워지면서 연정훈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렸다.조용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연정훈의 행동을 기다렸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뒤에서 연정훈의 손길이 다가왔다.연정훈은 잠시 멈췄다. 이내 무엇인가를 가져와 다시 안시연을 끌어안았다.안시연은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차가운 감촉이 다리에 느껴졌을 때 긴장감이 스며들었다.안시연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연정훈은 자신을 하찮게 대하지 않았다.연정훈의 입술이 안시연의 귀를 스칠 때 잠시 애정을 담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곧 괜찮아질 거야.”그러나 안시연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연정훈은 계속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안시연은 방법이 없었다.부끄러운 마찰감과 연정훈의 가빠진 숨소리는 안시연의 얼굴을 더욱 붉게 만들었다.안시연은 이를 꽉 물며 몸속에서 솟구치는 열기를 억누르려 애썼다.그러나 갑자기 연정훈의 손가락이 안시연의 입술을 가볍게 누르자 안시연은 작은 신음을 내며 당황했다.안시연은 손을 꼭
양씨 가문에서.깊은 밤, 양지원은 본가의 거실에 들어갔고 소파에 앉아 있는 양민아와 마주쳤다.모녀는 눈이 한 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서로 깨닫게 되었다. “아직 안 잤어?”양민아는 여전히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양민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엄마는 내가 맘 편히 잘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양민아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의문을 가득 담은 눈빛을 보냈다.양지원은 침착하게 외투를 벗고 반문했다.“왜 잘 수 없지?”“...”“연정훈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너도 연정훈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잖아. 너에게는 단지 이상적인 협력 대상을 잃는 것뿐인데 그 정도로 밤을 지새워야 해?”양민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양민아는 이를 악물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엄마, 왜 제가 정훈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양지원은 평온한 눈빛으로 양민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평가하는 동시에 대답이었다.양민아는 마음이 불편해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제가 정훈 씨를 얼마나 사랑하든 상관없이 엄마는 외부 사람이 아니라 제 편이 되어 주어야 해요.”여기까지 왔으니 분명히 말해야 했다.게다가 양지원은 양민아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양지원은 하이힐을 벗고 일인용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기대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나는 외부 사람과 함께 너를 다치게 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어.”“안시연은 엄마가 데려간 거잖아요.”“어떻게 아는데 안시연이 내가 데려간 거라고?”양지원은 반문했다.양민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나를 미행한 거야? 아니면 안시연을?”“...연 할머니가 저에게 말해줬어요.”양민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그럼 너는 오늘 밤 연정훈이 생일 잔치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양민아는 말문이 막혔다.미행을 인정하든 연정훈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을 인정하든, 어느 쪽도 양지원이 좋아하는 행동이 아니었다.양민아는 두 손을 움켜잡고 깊은숨을 들이쉬며 양지원의
양민아의 성격 결함에 대해 양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처음 양민아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양민아의 부모는 생전에 우연히 양석진을 구한 적이 있었다.양지원은 아이가 아직 어리니 시간을 들이면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양지원의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다른 것들은 괜찮았지만, 양민아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탐욕이 많다는 것이었다.양민아가 야망을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항상 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양민아는 능력이 있었고 회사를 통해 경험을 쌓게 했지만, 프로젝트를 잘 해내는 것보다 권력과 이익을 차지하려고 애썼다.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의 이익을 해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이미 양씨 아가씨인 양민아는 양씨 가문의 지원을 받으며 어느 산업에 들어가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을 들이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양민아는 그럴 수 없었고 언제나 지름길을 택하기를 원했다. 양씨 아가씨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연 부인도 되고 싶었다.이번에는 직접 양홍두에게 연락을 해버렸고 이는 양지원의 한계를 건드렸다.양지원은 결심하고 말했다.“너의 몫은 네가 애쓰지 않아도 줄 것이야. 너와 혁수는 내 자식이니까. 설령 양씨 가문을 반으로 나누지 못해도 너의 몫은 있을거야.”양민아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마음이 불안해졌다.“엄마...”양지원은 계속 말했다.“한강은행이 경인에 분점을 열 예정이야. 내가 너를 추천할게. 2년 후, 네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면 난 한강은행의 지분을 모두 너에게 넘길 거야.” 양민아는 멍해졌다.자신이 잘못 들었을까 의심했지만, 곧 현실을 깨닫고 내심 흥분했다. 동시에 아까 양지원에게 한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엄마, 정말이에요?”"양지원은 양민아의 눈 속에서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보였고 실망감이 더욱 깊어졌다.양지원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양민아는 감동에 눈물이 글썽이며 즉시 사
혀가 제압당하고 있어 물러날 수 없었다.예전에도 연정훈이 강하게 나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양시연은 연정훈 앞에서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된 듯 반격할 힘조차 없었다.연정훈의 커다란 몸이 양시연을 감싸 안았고 그의 가슴과 팔은 마치 쇠처럼 단단해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양시연은 벽에 밀려났고 연정훈의 손에 머리가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이 입술을 깨물려는 순간 양시연의 볼을 단단히 쥐고 거칠게 밀어붙였다.자극적인 감각이 입가로 번져왔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입술을 스치며 그 모든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빨아들였다.그리고 다시 그녀의 모든 호흡을 빼앗아 갔다.양시연은 눈을 뜬 채로 연정훈과 마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양시연은 온몸이 떨리는 가운데 저항해 보려 했으나 연정훈은 그녀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며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양시연은 어쩔 수 없이 두 다리를 모으며 본능적인 반응을 억누르려 애썼다.양시연이 낮게 신음하자 근처에 있던 나비는 머리를 돌려 외면하는 듯했다.아니다. 나비가 이 상황을 목격한들 연정훈을 막을 순 없었다.양시연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힘을 빼려 했지만, 그의 억압적인 힘에 완전히 눌렸다.몸이 몇 번씩 움직이며 오히려 그의 접촉이 더 많아졌고 마치 양시연이 일부러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듯했다.“아주머니...”구조를 청하려 입을 떼었으나 도중에 또다시 막혀버리고 말았다.연정훈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양시연의 고급스러운 블라우스를 통해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양시연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연정훈이 미친 건 아닌지 이렇게 무작정 행동하는 그가 정말로 더 나아간다면 어쩌냐고 하는 두려움이 양시연의 마음을 스쳤다.양시연이 잠시 생각에 잠기던 순간 입술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연정훈이 먼저 양시연의 입술을 깨물었고 살짝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아프다.사람을 이렇게 물다니 잠깐 연정훈이 짐승인지 의심스러웠다.속으로 욕을 내
너무 가까이 앉아 있던 양시연은 태연한 모습으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 연정훈은 양시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해 얼굴을 찡그리며 테이블로 향했다.아이스티를 한 잔을 마신 후 연정훈은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양시연은 할 말이 거의 끝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등지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몇 년 동안 어디 있었어?”마침내 그 질문을 꺼냈다.양시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미국, 영국, 멕시코 그리고 한동안 한강시에 살았었어요.”한강시.양시연은 돌아온 적이 있었지만, 연정훈을 만나러 간 적은 없었다.연정훈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재미있었군.”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 재미있었어요. 이전에 본 것들이 얼마나 적었는지 나가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래서 눈앞의 아름다움에 홀려 발이 움직이지 못했어요.”그녀가 풍경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연정훈은 분명히 알아챘다.밖의 아름다움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하하.양시연은 솔직했다.연정훈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차가운 음료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찡그린 얼굴로 양시연에게 물었다.“왜 그때 떠난 거야?”양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신에게 이별을 이야기한 적이 있잖아요.”“내가 동의했어?”“당신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평생 당신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요?”“...”“연애가 싫어지면 계속할 이유가 없으니 헤어지는 게 정상이에요.”양시연은 연정훈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점에 대해 당신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어요.”“말해봐.”양시연은 미소 지으며 턱을 약간 치켰다.“당신은 다 괜찮은데 전 여자친구를 너무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기억하고 싶고 놓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현재의 사람도 소홀히 하게 되는 거죠.”“이렇게 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계속 이러면 매번 연애가 악순환에 빠
“어디 가려고?”연정훈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잠시 바라보았다.연정훈의 말투는 마치 그녀가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예전 그대로였다.양시연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깼어요?”“응.”“아주머니를 불러서 돌보게 할게요.”양시연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저도 이제 가봐야 해요.”말을 끝내고 양시연은 일부러 손을 빼려 했다.연정훈은 점점 더 손을 꼭 쥐었다.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양시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양시연은 가방으로 테이블 위의 물건을 밀어내고 유리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나한테 술주정 부리려는 거예요?”연정훈은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재미있어요?”양시연이 계속 물었다.자존심이 강한 연정훈이었기에 보통 때라면 손을 놓았겠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양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연정훈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여전히 양시연의 손을 쥐고 있었다.양시연은 옆에 놓인 탕후루 꼬치가 눈에 들어오자 주저 없이 하나를 집어 연정훈의 손목을 찔렀다!연정훈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양시연은 흘끗 연정훈을 쳐다본 후 손목을 주무르며 꼬치를 쓰레기통에 던졌다.서로 간의 긴장감이 오래 이어지자, 옆에 있던 나비마저 지루해하며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얹고 네 발을 쭉 뻗고 있었다.“네 방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연정훈이 물었다.양시연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내 남자친구 변백호 씨예요.”연정훈은 마치 목이 막힌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연정훈은 고개를 돌려 양시연을 바라보며 시선을 고정했다.“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한밤중에 전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줄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네.”“연 대표님은 보통의 전 남자친구와는 다르죠. 연 대표님은 인품도 좋고 함께 있어도 늘 안전할 거로 생각해요.”양시연이 말했다.연정훈은 콧방귀를 뀌었다.“누가 내 인품이 좋다고 했어?”양시연은 대답했다.“저는 경험이 많아요. 전 여자친구들한테 늘 잘 챙겨주셨던 거 다 봤거든요.”“비교해 보면 현재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쳇!‘2만 원이라니! 나를 거지로 보는 건가?!’반우희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려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차 안에서 부승원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반우희가 몇 걸음 더 걸었을 때 뒤에서 다시 경적 소리가 울렸다.돌아보니 현금은 여전히 두 장이었지만, 부승원의 엄지가 살짝 움직이자 그 두 장이 마치 부채처럼 펼쳐져 여러 장으로 변했다!반우희는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가늘게 뜨고 금액을 재빨리 셈했다.16만 원!한 번 더 돌아보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반우희는 잠시 고민했다.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승원은 여유롭게 경적을 누르고는 휴대폰을 꺼내 한 손으로 타자를 하기 시작했다.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부승원은 눈짓으로 반우희에게 휴대폰을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반우희는 서둘러 휴대폰을 확인했다.부승원이 보낸 메시지가 화면에 떠올랐다.[셋을 세기 전에 한 걸음 더 나가면 이 돈은 없는 셈 칠 거야.]반우희는 어이없었다.“...”아아!‘또 협박이야?!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차 안에서 부승원은 여유롭게 기다렸다.셋...그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반우희는 주먹을 꽉 쥐며 화난 얼굴로 돌아서더니 차 문을 열고 단숨에 들어와 문을 쾅 닫아버렸다!반우희는 손을 내밀었다.‘돈 줘!’부승원은 어이없었다.“...”좀 더 버틸 줄 알았다.부승원은 손을 치우며 반우희의 무릎 위로 돈을 던졌다.반우희는 금세 표정을 바꾸고 기쁜 얼굴로 돈을 집어 들었다.돈을 세던 그녀는 부승원의 지갑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 안에 현금이 더 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반우희는 가볍게 헛기침했다.부승원이 냉소적으로 말했다.“탐욕스럽게 침 흘리지 마.”쳇.부승원이 차를 출발시켰고 방향을 보아 반우희를 집까지 데려다주려는 것 같았다.돈을 받은 반우희는 기분이 풀려 더 이상 부승원에게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다음엔 이런 식으로 하지 마세요. 저랑 시연 언니는 친구라 이런 일은 우리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잖아요. 이해하시죠?
“부 변호사님, 연 대표님을 데려가지 않으면 저 여기 두고 갈 거예요!”술집 3층 복도에서 반우희는 부승원을 다시 한번 위협했다.부승원은 느긋한 태도로 대답했다.“그래. 두고 가.”반우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부 변호사님, 제발 저를 그만 괴롭혀요! 한 달에 월급 100만 원밖에 안 주시면서요!”“양시연 씨에게 전화해 봤어?”반우희는 불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정말 너무하네요. 양시연 언니까지 끌어들이는 건 아니잖아요?”부승원은 계속해서 질문했다.“전화했어?”반우희가 대답했다.“...했어요!”부승원은 냉소적인 어조로 대답했다.“우정 때문에 그 정도 의지도 없어졌어.”반우희는 어이없었다.“...”‘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쩌지?’반우희는 방문을 열고 연정훈이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한시름 놓았다.“양시연 씨가 연정훈을 데려가면 너는 후문으로 나가.”부승원이 말했다.“왜요?”반우희가 불만스럽게 물었다.부승원은 즉시 전화를 끊어버렸다.반우희는 미칠 것 같은 마음에 핸드폰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화를 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시연이 가방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반우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달려가 사과했다.“언니, 죄송해요. 일부러 여기까지 오게 해서.”양시연은 반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방에서 작은 액세서리를 꺼내 반우희에게 건넸다.“미안해할 건 나예요. 우희 씨까지 곤란하게 해서요.”“아니에요!”반우희는 팔찌를 찬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그녀는 양시연을 데리고 연정훈을 보러 가며 말했다.“연 대표님이 계속 핸드폰을 들고 계셨어요. 언니에게 전화하려는 것 같더니 중간에 언니를 차단해 버렸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무슨 이유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양시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한 술 냄새가 확 밀려왔다. 양시연은 테이블 위에 가득 놓인 빈 병들을 훑어보았다.싱글 소파에 앉아 있는 연정훈은 눈을 감고 반쪽이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머리를
밤10시.방 안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변백호는 손에 책을 말아 쥐고 소파를 두드리며 양시연을 재촉했다.“빨리 해. 이러다 시간 다 되겠어.”양시연은 펜을 쥔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시험지는 다양한 언어와 주식, 은행, 세무 지식이 얽힌 난해한 문제들로 가득했다.점수가 잘 나올 것 같지 않자 양시연은 살짝 변명할 생각이 들었다.“이거...네가 안 가르쳐 준 부분이 많아서...”“어떤 문제?”변백호는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전공과 관련된 부분에서 변백호는 무섭게 엄격했다.양시연은 선택지 하나를 펜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변백호는 말아놓은 책을 펼쳐 양시연의 머리를 툭 쳤다.“이 문제 네가 귀국하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가르쳤던 거잖아!”양시연은 머리를 감싸 쥐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문제 빨리 풀어.”변백호는 싫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네가 제일 형편없어.”양시연은 침묵했다.“...”양시연은 서둘러 답안을 작성했고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시험지를 제출했다.변백호는 즉석에서 채점했고 양시연의 점수는 80점이었다.됐다. 합격이다.변백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형편없어.”양시연은 할 말이 없었다.변백호는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해서 100점 만점에서 80점이 되어야 겨우 통과라고 인정했다. 그의 다른 학생들은 모두 천재에 가까워서 양시연은 그들을 따라가기 버거웠다.중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혼혈 여학생이 있었고 그녀는 대학을 일찍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기계처럼 정확한 두뇌를 가졌고 정보를 입력하면 답이 바로 나오는 듯했다.“그럼...이제 집에 가도 될까?”양시연은 조심스럽게 변백호를 살피며 물었다.변백호는 조금 더 양시연을 잡아두려 했지만, 휴대폰 알림이 울리자 태연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손짓했다.“가 봐.”양시연은 마침내 해방된 기분으로 방을 빠져나갔다.양시연이 나가자마자 변백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카톡 화
양시연이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하자 변백호가 양시연의 목을 감싸며 앞으로 끌어당겼다.“이거 놔. 무슨 짓이야.”변백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힘 좀 써서 나한테서 벗어나 봐.”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변백호, 너가 내게 복싱을 몇 번이나 가르쳤다고! 그마저도 나를 샌드백 삼아 때리기만 했는데 내가 대체 뭘 배웠겠어?”변백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에이. 정말 형편없네.”양시연은 어이없었다.“...”“당장 놔!”양시연은 소리쳤다.양시연이 정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변백호는 흥미를 잃은 듯 양시연을 풀어주며 투덜거렸다.“양혁수가 널 어디가 좋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체력도 허약한 데다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데.”양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정말 짜증이 치밀었다.변백호는 매번 만날 때마다 이렇게 양시연을 깎아내리곤 했다.분노에 찬 얼굴로 양시연은 문을 열었다. 배달 직원일 거로 생각했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양시연은 멈칫했다.연정훈...?연정훈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겉옷을 대충 손에 걸친 채 흰 셔츠의 단추는 두어 개 풀려 있었고 손등의 핏줄은 도드라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엔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비서가 전한 말이 떠오르며 혹시 따지러 온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양시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떻게 오셨어요?”‘무슨 일이냐고?’양시연은 묘하게도 차분했다.연정훈은 숨이 막힐 듯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를 악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시계를 방에 두고 왔어요.”“시계요?”양시연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디 두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찾아드릴게요.”“내가 직접 찾을 거예요.”양시연은 잠시 멈칫했다. 생각에 잠긴 찰나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변백호의 귀찮은 듯한 연극조 목소리가 들려왔다.“자기야, 누구랑 얘기 중이야?”양시연은 침묵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의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은 채 응시하자, 양시연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검은색 벤츠가 스쳐 지나가며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길가에 서 있던 연정훈은 입가에 냉소를 띠고 있었다.배은망덕하다.아주 좋다.양시연이 연정훈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시연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아했다. 계약을 체결한 다음 날부터 마치 동물을 훈련하듯 연정훈의 눈앞에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그녀의 열정도 점차 식어갔다. 어젯밤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른 아침부터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연정훈의 얼굴을 스쳤다.연정훈은 무거운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가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양시연에게 강한 한 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스스로 억눌렀다.연정훈은 계속해서 양시연에게 핑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마 그녀가 너무 바빠서 그럴 것이라 스스로 위로했다.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시연이 계속 연정훈에게 신경 쓸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점심 무렵 양시연의 비서가 나타나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양 대표님께서 오전에 급한 일이 생겨 연 대표님과의 쇼핑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연정훈의 마음속 불만은 어느 정도 가셨고 연정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가요?”“별일은 아닙니다.”비서는 미소 지었다.“그냥 양 대표님의 남자친구가 귀국해서 대표님께서 마중 나가신 것입니다.”스윽!비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로 한기가 느껴졌다. 눈앞에서 연정훈의 얼굴이 급격히 변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검은 눈동자 속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스쳤고 곧 차가운 눈빛으로 얼어붙었다.연정훈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양 대표님이 왜 가셨다고요?”“남자친구...마중 나갔습니다.”비서는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이 일이 목숨을 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비서는 연정훈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연정훈이 묻지 않는 틈을 타 살짝 자리를 피했다.다시 돌아보니 연정훈은 표면적으로 여전히 냉정을 유지하며 젓가락으로
양시연은 주 팀장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계약서를 들어 확인한 후에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양시연의 마음 한편에 묘한 감정이 스쳐 갔으나 양시연은 담담히 받아들였다.“연 대표님과 정인 그룹이 저희 인터참을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양시연은 사람들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주 팀장은 환한 미소로 답했다.“그럼요. 저희는 양 대표님을 믿습니다.”양시연은 침묵했다.“...”부승원은 변함없는 담담한 얼굴로 계약 절차를 마무리한 뒤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떴다.주 팀장은 양시연에게 식사를 제안했지만, 양시연은 정중히 거절했다.“다음에 주 팀장님께서 시간이 되시면 제가 초대하겠습니다.”“네. 좋아요.”그 사람들을 배웅한 후 비서가 사무실로 달려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양시연이 돌아서자마자 사무실 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몇몇 담당자를 회의실로 불렀다.중요한 이야기를 마친 후 조려욱과 몇몇은 연정훈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주 팀장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양 대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몇몇 사람들은 양시연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양시연의 답을 기다렸다.양시연이 말했다.“계약은 이미 체결했으니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투자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겠지요.”“연 대표님께서는 저희 쪽에 머무르고 계시잖아요.”비서가 상기시켰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연 대표님의 생활을 세심하게 챙기고 최고의 예우를 다하세요.”사람들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양시연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과거 그녀와 연정훈이 사귀었던 사이였고 연정훈이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것을 보고 혹시 그가 재결합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하지만 재결합은 중요하지 않았다.설령 연정훈이 양시연을 다시 원한다 해도 양시연이 원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