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야, 지금 누가 제일 좋아?”이승우가 소리쳐 물었다.예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삼촌.”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고 부승희는 양시연에게 말했다.“연정훈은 아이들한테 꽤 인내심이 많아요.”양시연은 연정훈이 예지와 눈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인내심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사실 예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그 옆에 있던 태양은 어른스럽게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망했어.'그는 아마도 귀여운 막내 여동생을 얻기 어려울 것 같았다.집 앞에서 부승희는 예지를 안고 있는 연정훈에게 두세 마디 말을 건넸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고’라는 소리가 나왔다.양시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왜 그래요?”“괜찮아요. 배가 갑자기 묵직해진 것 같아요.”“아기 찬 거 아니에요?”“그런 것 같아요.”부승희는 곧 출산 예정이라 작은 움직임에도 이승우는 바로 그녀 곁으로 달려갔다.“어디 불편해?”“아니야.”“빨리 앉아서 좀 쉬어.”이승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고 양시연은 그에게 제안했다.“위층에 올라가서 좀 쉬는 게 어때요?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요.”부승희는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지만 올라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승우의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오후에는 소에게 우유를 짜는 일이었기에 연정훈과 양시연은 태양과 예지를 데리고 함께 갔다.예지는 그저 장난으로 생각하며 장난치는 것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태양은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양시연과 연정훈은 학업 외에도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들은 세 사람 모두 진지하게 협력하며 일을 했다.드디어 해가 지기 전 큰 우유 통 몇 개를 채웠다.양은 직접 짠 우유를 담아 집으로 가져가 양시연에게 요구르트를 만들어 주려고 했다.연정훈은 저녁에 일이 있었기에, 그들은 예지를 목장 휴양 시설로 데려가 평소 예지를 돌보던 가정부에게 맡기고 세 식구는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이 떠난 직후 부승희는 예지를 데리러 오려고 했지만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뭔가
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도 채애정이 돌아오자마자 슬쩍 다가가 조용히 일러바쳤다.“아빠는 엄마한테만 라즈베리를 사주고 나한테는 안 사줘요.”채애정은 예지의 말에 맞장구치며 일부러 화난 척하고 예지의 편을 들어 주었다.“고모가 아기 낳고 나면 할머니가 예지한테 잔뜩 사줄게.”“엄청 많이 사줘야 해요!”“알았어...”그제야 예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예지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라즈베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두 개 이상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단지 평소처럼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었다.한편 맞은편에는 반우희와 부승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부승원은 벽에 기대앉아 반우희를 흘깃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얼굴 하나 안 빨개지네? 반만 남겨 두라고 했는데 한 입도 안 남겼잖아.”반우희는 콧방귀를 뀌며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마지막 라즈베리 케이크였어요. 당신이 사준 거지만 나 혼자 먹기에도 모자랐다고요.”부승원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아직 철이 덜 들었네.”“뭐라고요? 나 오늘 혼자 소송해서 이겼거든요.”이야기가 나오자 부승원은 그녀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법정에서의 그녀는 그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고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부승원은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이미 그녀를 위한 축하 선물로 무엇을 준비할지 머릿속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한편 병실에서는 부승희가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이승우에게 머리를 감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차분히 출산을 준비했다.그러나 몇 시간을 기다려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새벽이 지나고 피곤함이 몰려오던 그때 갑작스럽게 진통이 시작됐다.이승우는 당황하면서도 재빨리 그녀를 부축해 분만실로 향했고 그는 옆에서 조용히 응원을 건넸다.부승희가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휴대폰 만지다가 걸리면 죽는 줄 알아.”이승우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휴대폰을 볼 정신이 있긴 해? 내 손바닥에
“너, 시도 알아?”부승희는 이승우를 놀리며 말했다.“그만해. 갑자기 그러면 무서워.”“먼저 나를 놀리지 말고 들어봐.”“그럼 말해 봐.”“동쪽에서는 해가 뜨고 서쪽에서는 비가 내리네. 완전히 맑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안에 맑음이 숨어 있지.”부승희는 눈썹을 한껏 올렸다.“이동하?”이승우는 침묵했다.“...”“이유하.”부승희는 잠시 멈칫하며 생각에 잠겼고 이승우는 턱을 쭉 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이름 예쁘지 않아?”이쁜 건 둘째 치고 부승희는 이 시구절이 가진 다른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하늘은 흐린 듯하지만 그 안에 맑음이 스며 있고. 차가워 보이지만 속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여름을 뜻하는 한자 ‘하’를 쓸 거야?”그녀가 이승우에게 물었다.“응. 우리 아이가 평생 여름 날씨처럼 맑고 비바람 없이 햇살만 가득한 삶을 살기를 바래.”이승우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었고 어젯밤보다 훨씬 더 기뻐 보였다.“내가 애칭도 생각해 뒀어.”부승희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본명은 네가 지었으니 애칭은 내 차례야.”“알아. 난 그냥 이름 후보를 추천하는 거야. 본명도 그렇듯이 넌 거부할 권리가 있잖아.”부승희는 마지못해 동의하며 고개를 들었다.“그럼 말해 봐.”“미소, 어때?”“미소?”부승희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미소가 얼마나 좋은데. 항상 행복하게 웃으며 살면 좋잖아.”“…”그녀는 본명에는 꽤 만족했다. 애칭도 몇 가지 고민해 두었지만‘미소’만큼 마음에 드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없었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아기의 이름을 불러 보았고 아기는 여전히 냠냠 먹으며 멈추지 않았다.이승우가 장난스레 말했다.“봐, 미소도 반대 안 하잖아.”부승희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미소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야 부승희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고 많은 친구가 찾아와 축하를 건넸다.그날 아침 이승우는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부승희와 딸을 차에 태웠다.이
다음 해가 되었다.알람이 울리자 문 밖에서 태양의 발소리가 제시간에 들려왔고 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고 웃음을 터뜨렸다.“얘는 왜 이렇게 부지런해요? 초등학교 다니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요?”연정훈은 자세를 바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동시에 침대 옆 램프를 켰다.“신기해서 그렇지. 며칠만 지나면 지겨워질 거야. 예전에 유치원 갈 때도 그랬잖아.”양시연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아직 시간이 있고 아침 식사는 누군가 준비해 줄 거라서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연정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 옆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물었다.“어디 아픈 곳은 없어?”양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무렇지도 않아요.”이틀 전 검사 결과를 받았고 양시연은 둘째를 임신했다. 아직 태양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녀가 처음 임신했을 때부터 벌써 6, 7년이 흘렀다. 연정훈은 그때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녀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썼다.“내 생각에는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그는 돌려 말했다.양시연은 아직 배가 많이 나온 것도 아닌데 집에서 쉬면 오히려 답답할 것 같아 거절했다.“걱정 마요. 조심할게요.”연정훈은 아직도 양시연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재촉을 받아 일어섰다. 그는 4년 전에 원래 근무지에서 떠나 지금은 서운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예전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태양 오늘 생일인데 정시에 퇴근할 수 있겠어요?”양시연이 물었다.“응. 요즘은 별일 없어.”연정훈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일어나지 말고 좀 더 자. 내가 아침 챙겨줄게.”“괜찮아요.”양시연은 일어나서 뒤에서 연정훈을 끌어안고 말했다.“어제 태양한테 침대에서 먹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는데 오늘 내가 침대에서 먹으면 양심이 좀 찔릴 것 같아요.”“그냥 배 속에 여동생이 있어서 여동생이 침대에서 먹고 싶다고 하면 태양은 분명히 괜찮다고 할 거야.”양시연은 웃었다.“아니요. 그냥 나중에 말해줘요. 태양이에게 서
양시연은 연정훈에게 태양이 너무 일찍 어른스러워지려 한다며 투덜거렸지만 부씨 가문은 온 가족이 꼬마 악당에게 휘둘려 진이 빠진 상태였다.새벽부터 온 가족이 예지를 둘러싸고 유치원 갈 옷을 입히려 분주했다.이승우의 아들 라온도 곧 돌을 맞이했고 예지는 세 살이 되었다. 채애정은 예지가 또래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최고의 사립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유치원은 주 4일 운영되며 매일 오전 9시에 등교해 오후 2시에 하원하는 시스템이었다.그런데도 예지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고 아침마다 울음을 터뜨렸다.“예지야 착하지? 할머니 들어봐. 유치원 정말 재미있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은서 선생님도 계시잖아.”“싫어요. 싫어요.”예지는 치마를 입으려 하지 않고 바지를 입은 채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기회만 있으면 아빠 품에 안겼다.“예지는 유치원 안 갈래요. 할머니가 가요.”채애정은 머리가 아팠다.부승원이 예지를 안아 올리며 달래는 모습을 보니 유치원에 가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채애정은 부승원에게 눈짓을 보내며 겨우 깨웠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아빠.”예지는 부승원의 목을 꼭 껴안고 훌쩍이며 울었다.“예지를 유치원에 보내지 마세요.”“유치원이 싫어?”“싫어요. 싫어요.”부승원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소파로 데려갔다.채애정은 굳이 맞힐 필요도 없이 그의 말을 미리 짐작했다.“그러면 오늘은 가지 말자.”채애정은 먼저 말했다“이번 주에 이미 두 번이나 결석했어.”일주일은 7일인데 2일만 다니고 5일은 쉬는 셈이었고 이건 도저히 안 되는 일이었다.부승원은 채애정을 흘끗 보며 다른 손으로 예지를 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예지가 다섯 살에 유치원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뭘 배우고 싶으면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면 된다고 여겼다.하지만 부모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고 그는 아이의 성장을 놓치는 게 두려웠다.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부승원이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자 예지는 불안해하며 부승원
반우희는 이불 속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문밖에서는 예지가 할머니와 화해하고 채애정이 예지를 치마를 입혀 줄 때 얌전하게 있으면 방과 후의 일정을 짜고 있었다.“태양 오빠랑 놀러 가요.”“알았어. 태양 오빠랑 놀자.”반우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태양이랑 같이 놀러 간다니. 그건 진짜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양을 괴롭히겠다는 거잖아.’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한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뒷목을 쥐었다.“안 일어날 거야?”반우희는 콧방귀를 뀌고 문밖을 힐끗 살펴보았다. 채애정이 예지를 안고 내려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서 침대에 앉아 있던 부승원에게 달라붙었다.“안 일어날 거예요. 당신도 날 달래줄 수 있어요?”그녀는 예지에게 질투하는 일상이었지만 부승원은 재미있어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달래주면 네가 어린이집 갈 때 데려다줄까?”“좋아요.”반우희는 잠시 눈을 돌려 생각한 후 그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나 선생님 할 거예요. 우희 선생님.”그녀는 그의 뒤쪽 목덜미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 특유의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말 안 들으면 벌주겠어요.”부승원은 즉시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그녀의 역할 놀이를 떠올렸다.역시 반우희는 이어서 그를 불렀다.“어린이?”아침 일찍 모든 것이 자라기 쉬운 시간 부승원은 아무렇지 않게 숨을 고르고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일부러 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갔다.부승원은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었고 이제 막 옷을 입고 일을 보러 갈 시간이었기에 그녀를 다루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는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양 볼을 살짝 쥐었다.“다시 말해 볼래?”반우희는 그의 꾸짖음에도 이미 익숙해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를 품에 파고들었다.부승원은 그녀에게서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점점 이끌려 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아래층에서 꼬마 악마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예지는 어릴 때 우유를 먹으며 하얗고 통통하게 자랐다. 반우희가 걱정하자 채애정은 우유를 끊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예지는 여전히 하얗고 통통한 모습이었다. 그때도 채애정은 이제 밥을 먹기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결국 이 아이는 정말 편식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음식에 가리지 않고 흰쌀밥이나 잡곡밥도 잘 먹었다. 다른 아이들은 밥을 먹이려고 애를 쓰거나 간식과 보조식을 먹여야 하는데 예지는 기분이 좋을 때만 먹고 싶어 했다. 보통은 혼자서 밥을 들고 앉아 한참 동안 조용히 먹었다.부씨 가문은 아침이 풍성했지만 작은 아이는 아무거나 먹지 않았다. 매일 아침은 꼭 죽을 먹었고 죽의 종류와 반찬만 달랐다.그렇게 계속 먹다 보니 작은 얼굴이 점점 둥글어졌다.지금은 어리니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반우희는 몇 년 후 예지가 더 자라면 비만이 될지 걱정했다. 그래서 드물게 제대로 부승원에게 예지의 식사를 너무 방치하지 말고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예지는 식탁에서 아빠와 엄마가 한 속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지가 반우희에게 양보할 기미가 없자 울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작은 통통한 손으로 만두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반우희는 그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부승원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채애정과 부형석은 즐겁게 웃었다.다행히도 예지는 작은 만두 하나만 먹고는 금세 자리를 떠났다.여러 일이 끝난 후 드디어 출발할 준비가 되었고 차에 오르기 전에 사람들에게 한 바퀴 인사를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채애정은 할 일이 있어 나가야 했고 반우희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나서 한숨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다시 자야지.’...태양의 생일이 다가오고 양시연은 오후 일찍 집에 돌아와 이웃을 초대했다. 마침 부승희와 이승우도 시간이 나서 미소를 데리고 왔다.물론 제일 먼저 온 건 예지였고 예지는 방금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승원과 함께 집에 왔다.부승원은 정말 인내
주방에서 태양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 작은 쿠키를 굽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그 옆에는 한 살 위인 우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우주는 늘 형처럼 굴고 싶어 하며 팔짱을 낀 채 태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너 올해도 생일 소원으로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했어?”“응.”“내가 충고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아.”우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언했다.태양은 의문스러웠다.‘?’“왜?”“나중에 진짜 여동생이 생기면 그때 알게 될 거야.”우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태양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멀리서 양시연은 거실의 디저트 테이블을 정리하며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아이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때 미야가 방으로 달려와 문가에 서서 부끄럽게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미야는 엄마를 닮아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피부는 하얗게 빛났으며 크고 맑은 눈동자가 반짝였다.“오빠.”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꿀 속에 빠진 듯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태양은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문가로 향했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려던 순간 미야의 뒤에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태양의 마음속이 따뜻하게 물들었다.민주는 우주의 친여동생으로 세 살이었고 미야보다 조금 어렸다. 작은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고, 태양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너희 뭐 하러 왔어?”뒤에서 우주는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뭐 하러 왔어? 그 상냥한 말투는 또 뭐야? 엄청 과장하네.’양시연은 우주의 반응을 보고 더욱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 앞에 선 두 꼬마는 작은 손으로 큼지막한 자두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손이 작다 보니 원래 작은 자두조차 커다랗게 보였다.미야가 먼저 자두를 내밀며 말했다.“오빠 이거...”태양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나한테 주는 거야?”“네.”그는 기쁘면 가득한 표정으로 자두를 받아
늦여름, 거리에는 이름 모를 꽃잎이 흩날리고 달빛과 도시의 네온 등이 반짝였다. 밤에는 그래도 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반짝이는 이 도시에서도 가장 화려한 이곳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한강시에서 제일 큰 지엔 카지노는 로맨틱한 해안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건 낭만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었다.누군가는 평생 가진 걸 모두 걸어 겨우 입장권 하나를 얻었지만 누군가는 출발선부터 달라 가장 위층에서 그들이 돈을 벌고 또 잃는 장면을 내려다봤다.그때, 가장 꼭대기에서 빛이 반짝였고 누군가 1번 방에 입장을 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 방의 입장 비용은 시작부터 20억이었다.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봤고 대체 어느 유명 인사가 찾아왔는지 수군거렸다.그러나 다들 알지 못했던 사실은... 그 상대는 사실 이곳 카지노 주인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고 빌어 초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곳에는 관심이 없는 듯 따분해 보이기도 했다.결국 주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양 대표님, 일단 게임부터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양혁수는 나른하게 자리에 기대앉아 눈가를 꾹꾹 눌렀고 자신을 향해 말하는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나이로 보면 아버지뻘로 보이는 카지노 주인이 굽신거리며 아부를 맞추고 있었다.양혁수는 말 대신 손을 뻗어 담배를 손에 쥐었다.그러자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빠르게 담뱃불을 붙여줬다.빨간 불빛이 일렁이고 양혁수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예상과는 달리 익숙한 얼굴이었다.양혁수는 불필요한 친절이라 생각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자리에 기대앉았다.“장 회장님, 장사가 점점 커지더니 간도 점점 커지나 봐요?”장형철은 양혁수가 입장한 순간부터 불법 프로젝트를 일곱 개 정도 나열했고 그 내용은 차마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그리고 양혁수가 말을 자르자 장형철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양혁수는 더 이상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헛수고라고 생각해 절반 피운 담배를 끄고 사람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장
수영을 마친 양승윤은 조금 피곤한 기운이 있었지만 연정훈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동생들과 파티에 참석했다.양시연은 아주 커다란 케이크를 준비했고 양승윤은 의자 위로 올라가 천천히 케이크 커팅을 했다.전에 있었던 오해를 피하고자 양승윤은 아주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나눴고 최대한 똑같은 크기로 배분했다.다행히 과거의 일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그런데 케이크 커팅을 하기 전에 반우희가 양승윤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이번 해 소원도 여동생 생기게 해달라는 거야?”양시연은 양승윤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거로 생각했고 저도 모르게 배를 움켜쥐며 연정훈의 눈치를 살폈다.연정훈은 말없이 양시연의 어깨를 잡았다.그리고 케이크 앞에 선 양승윤은 애어른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렇죠. 뭐.”‘그렇죠... 뭐?’양시연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양승윤은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해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그래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진심으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질지도 몰라.”양승윤은 주변을 빙 둘러보며 다른 동생들을 살펴보다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그때, 심정우가 몰래 양승윤의 등 뒤로 다가왔고 양승윤은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이렇게 속삭였다.“뻔한 대사 말고 다른 건 없어?”심정우는 크게 케이크 한 입을 먹더니 잠시 고민에 잠겼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슬쩍 자리를 피했다.“...”생일 파티는 아주 평화롭게 흘러갔다. 어른들은 서로 모여 얘기를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도우미들과 함께 위층으로 자리를 옮겼다.가장 어린 이유하는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양승윤은 이유하를 품에 안고 카펫 위로 자리를 잡았고 함께 블록 쌓기를 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루카스는 퍼즐을 했고, 부예지와 미야는 슈퍼마켓 소꿉놀이를 했다. 심정우는 심민주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도우미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걱정할 필요 없었다.양승윤은 속으로 곧 동생들도 집으로 돌아갈 테
연정훈은 예지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내려놓았다. 그 순간 루카스가 달려와서 자기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알았어. 이리 와.”연정훈은 루카스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았다.마치 알 수없는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처럼 두 명 이상의 친구가 함께하면 아이들은 꼭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다. 심지어 부모가 바로 옆에 있어도 연정훈에게 안겨 물속에 들어가려고 했다.다행히 이번 일은 그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는 일일 뿐이었다.연정훈은 떡을 삶듯 작은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았다.태양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도 울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예지는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발을 펄럭이며 마치 작은 오리처럼 태양 옆으로 헤엄쳐 지나갔다.그녀는 수영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듯 한 번 왕복한 후 개구리처럼 물속을 튕기며 다시 지나갔다.태양은 웃으며 말했다.“예지, 수영 정말 잘한다.”꼬마 악당은 기뻐하며 부승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총을 들고 태양 앞에 멈췄다.“오빠, 예지랑 물총놀이 해요.”“좋아.”태양은 그녀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지만 물총이 없어 대신 손으로 물을 퍼 예지의 머리에 물을 부었다.예지는 화내지 않고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물총으로 반격했다.그사이 한줄기의 물이 끼어들었고 태양이 옆을 보니 미야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태양은 미야에게도 물을 뿌리며 1대1의 전투를 2대1로 바꿨다.점점 더 재미있어진 태양은 아빠에게 큰 물총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며 수영장 바닥에 앉아 동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마치 쿠키를 나눠줄 때처럼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왜냐하면 태양은 예지와 더 친밀했기 때문이다. 예지의 장난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지와의 관계가 더 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그가 반격할 때 예지를 향해 물을 조금 더 뿌린 것을 미야는 눈치챘고 계속 태양을 불렀다. 그가 듣지 못한 사이 미야는 갑자기 화를 내며 크게 외쳤다.예지는 미야에게 ‘시끄럽지 말라’고
태양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민주가 착하고 말을 잘 들을 거라 생각하며 작은 토끼 모양 쿠키를 그녀에게 내밀었다.“민주야, 작은 토끼 쿠키도 정말 귀엽지?”민주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미야가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 쿠키로 시선을 옮긴 뒤 조용히 응시했다.태양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한번 토끼 쿠키를 민주 앞에 내밀었다.아기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민주가 망설이다가 토끼 쿠키를 받아서 들었다.태양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마침내 그는 예지에게 쿠키를 주러 갔다. 익숙한 듯 판다 모양 쿠키를 꺼내며 말했다.“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는 판다야.”‘얌전히 있어야 해.’예지는 정말 기뻐하며 쿠키를 받아 들고 고개를 흔들며 맛있게 먹었다.그 옆에서 민주가 ‘판다’라는 말을 듣고 살짝 태양을 쳐다보다가 다시 예지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미야가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 쿠키를 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쥔 토끼 쿠키를 응시했다.입술을 삐죽인 민주는 조용히 엄마에게로 달려갔다.한편 태양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지가 쿠키 하나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그는 큰 접시를 들고 더 많은 쿠키를 가져다주려 했다. 그리고 꼬마 악당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잠시 그녀의 하인이 되어 주기로 했다.모두가 작은 쿠키를 먹고 있었지만 민주만이 말없이 쿠키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점점 억울함이 차오른 민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려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태양은 당황했다.???예지는 쿠키를 입에 문 채 손을 멈추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또 다른 쿠키를 집어 들고 평온하게 말했다.“민주가 울어요.”‘엄마는 민주가 울지 않는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야. 민주는 예지보다 훨씬 더 자주 운다고.’어른들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다가와 민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민주는 작은 손에 쿠키를 꼭 쥔 채 서럽게 울고 있었지만 아무리 말하려 해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
주방에서 태양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 작은 쿠키를 굽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그 옆에는 한 살 위인 우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우주는 늘 형처럼 굴고 싶어 하며 팔짱을 낀 채 태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너 올해도 생일 소원으로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했어?”“응.”“내가 충고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아.”우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언했다.태양은 의문스러웠다.‘?’“왜?”“나중에 진짜 여동생이 생기면 그때 알게 될 거야.”우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태양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멀리서 양시연은 거실의 디저트 테이블을 정리하며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아이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때 미야가 방으로 달려와 문가에 서서 부끄럽게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미야는 엄마를 닮아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피부는 하얗게 빛났으며 크고 맑은 눈동자가 반짝였다.“오빠.”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꿀 속에 빠진 듯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태양은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문가로 향했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려던 순간 미야의 뒤에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태양의 마음속이 따뜻하게 물들었다.민주는 우주의 친여동생으로 세 살이었고 미야보다 조금 어렸다. 작은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고, 태양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너희 뭐 하러 왔어?”뒤에서 우주는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뭐 하러 왔어? 그 상냥한 말투는 또 뭐야? 엄청 과장하네.’양시연은 우주의 반응을 보고 더욱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 앞에 선 두 꼬마는 작은 손으로 큼지막한 자두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손이 작다 보니 원래 작은 자두조차 커다랗게 보였다.미야가 먼저 자두를 내밀며 말했다.“오빠 이거...”태양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나한테 주는 거야?”“네.”그는 기쁘면 가득한 표정으로 자두를 받아
예지는 어릴 때 우유를 먹으며 하얗고 통통하게 자랐다. 반우희가 걱정하자 채애정은 우유를 끊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예지는 여전히 하얗고 통통한 모습이었다. 그때도 채애정은 이제 밥을 먹기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결국 이 아이는 정말 편식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음식에 가리지 않고 흰쌀밥이나 잡곡밥도 잘 먹었다. 다른 아이들은 밥을 먹이려고 애를 쓰거나 간식과 보조식을 먹여야 하는데 예지는 기분이 좋을 때만 먹고 싶어 했다. 보통은 혼자서 밥을 들고 앉아 한참 동안 조용히 먹었다.부씨 가문은 아침이 풍성했지만 작은 아이는 아무거나 먹지 않았다. 매일 아침은 꼭 죽을 먹었고 죽의 종류와 반찬만 달랐다.그렇게 계속 먹다 보니 작은 얼굴이 점점 둥글어졌다.지금은 어리니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반우희는 몇 년 후 예지가 더 자라면 비만이 될지 걱정했다. 그래서 드물게 제대로 부승원에게 예지의 식사를 너무 방치하지 말고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예지는 식탁에서 아빠와 엄마가 한 속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지가 반우희에게 양보할 기미가 없자 울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작은 통통한 손으로 만두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반우희는 그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부승원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채애정과 부형석은 즐겁게 웃었다.다행히도 예지는 작은 만두 하나만 먹고는 금세 자리를 떠났다.여러 일이 끝난 후 드디어 출발할 준비가 되었고 차에 오르기 전에 사람들에게 한 바퀴 인사를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채애정은 할 일이 있어 나가야 했고 반우희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나서 한숨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다시 자야지.’...태양의 생일이 다가오고 양시연은 오후 일찍 집에 돌아와 이웃을 초대했다. 마침 부승희와 이승우도 시간이 나서 미소를 데리고 왔다.물론 제일 먼저 온 건 예지였고 예지는 방금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승원과 함께 집에 왔다.부승원은 정말 인내
반우희는 이불 속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문밖에서는 예지가 할머니와 화해하고 채애정이 예지를 치마를 입혀 줄 때 얌전하게 있으면 방과 후의 일정을 짜고 있었다.“태양 오빠랑 놀러 가요.”“알았어. 태양 오빠랑 놀자.”반우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태양이랑 같이 놀러 간다니. 그건 진짜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양을 괴롭히겠다는 거잖아.’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한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뒷목을 쥐었다.“안 일어날 거야?”반우희는 콧방귀를 뀌고 문밖을 힐끗 살펴보았다. 채애정이 예지를 안고 내려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서 침대에 앉아 있던 부승원에게 달라붙었다.“안 일어날 거예요. 당신도 날 달래줄 수 있어요?”그녀는 예지에게 질투하는 일상이었지만 부승원은 재미있어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달래주면 네가 어린이집 갈 때 데려다줄까?”“좋아요.”반우희는 잠시 눈을 돌려 생각한 후 그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나 선생님 할 거예요. 우희 선생님.”그녀는 그의 뒤쪽 목덜미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 특유의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말 안 들으면 벌주겠어요.”부승원은 즉시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그녀의 역할 놀이를 떠올렸다.역시 반우희는 이어서 그를 불렀다.“어린이?”아침 일찍 모든 것이 자라기 쉬운 시간 부승원은 아무렇지 않게 숨을 고르고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일부러 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갔다.부승원은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었고 이제 막 옷을 입고 일을 보러 갈 시간이었기에 그녀를 다루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는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양 볼을 살짝 쥐었다.“다시 말해 볼래?”반우희는 그의 꾸짖음에도 이미 익숙해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를 품에 파고들었다.부승원은 그녀에게서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점점 이끌려 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아래층에서 꼬마 악마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양시연은 연정훈에게 태양이 너무 일찍 어른스러워지려 한다며 투덜거렸지만 부씨 가문은 온 가족이 꼬마 악당에게 휘둘려 진이 빠진 상태였다.새벽부터 온 가족이 예지를 둘러싸고 유치원 갈 옷을 입히려 분주했다.이승우의 아들 라온도 곧 돌을 맞이했고 예지는 세 살이 되었다. 채애정은 예지가 또래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최고의 사립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유치원은 주 4일 운영되며 매일 오전 9시에 등교해 오후 2시에 하원하는 시스템이었다.그런데도 예지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고 아침마다 울음을 터뜨렸다.“예지야 착하지? 할머니 들어봐. 유치원 정말 재미있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은서 선생님도 계시잖아.”“싫어요. 싫어요.”예지는 치마를 입으려 하지 않고 바지를 입은 채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기회만 있으면 아빠 품에 안겼다.“예지는 유치원 안 갈래요. 할머니가 가요.”채애정은 머리가 아팠다.부승원이 예지를 안아 올리며 달래는 모습을 보니 유치원에 가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채애정은 부승원에게 눈짓을 보내며 겨우 깨웠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아빠.”예지는 부승원의 목을 꼭 껴안고 훌쩍이며 울었다.“예지를 유치원에 보내지 마세요.”“유치원이 싫어?”“싫어요. 싫어요.”부승원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소파로 데려갔다.채애정은 굳이 맞힐 필요도 없이 그의 말을 미리 짐작했다.“그러면 오늘은 가지 말자.”채애정은 먼저 말했다“이번 주에 이미 두 번이나 결석했어.”일주일은 7일인데 2일만 다니고 5일은 쉬는 셈이었고 이건 도저히 안 되는 일이었다.부승원은 채애정을 흘끗 보며 다른 손으로 예지를 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예지가 다섯 살에 유치원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뭘 배우고 싶으면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면 된다고 여겼다.하지만 부모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고 그는 아이의 성장을 놓치는 게 두려웠다.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부승원이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자 예지는 불안해하며 부승원
다음 해가 되었다.알람이 울리자 문 밖에서 태양의 발소리가 제시간에 들려왔고 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고 웃음을 터뜨렸다.“얘는 왜 이렇게 부지런해요? 초등학교 다니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요?”연정훈은 자세를 바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동시에 침대 옆 램프를 켰다.“신기해서 그렇지. 며칠만 지나면 지겨워질 거야. 예전에 유치원 갈 때도 그랬잖아.”양시연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아직 시간이 있고 아침 식사는 누군가 준비해 줄 거라서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연정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 옆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물었다.“어디 아픈 곳은 없어?”양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무렇지도 않아요.”이틀 전 검사 결과를 받았고 양시연은 둘째를 임신했다. 아직 태양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녀가 처음 임신했을 때부터 벌써 6, 7년이 흘렀다. 연정훈은 그때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녀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썼다.“내 생각에는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그는 돌려 말했다.양시연은 아직 배가 많이 나온 것도 아닌데 집에서 쉬면 오히려 답답할 것 같아 거절했다.“걱정 마요. 조심할게요.”연정훈은 아직도 양시연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재촉을 받아 일어섰다. 그는 4년 전에 원래 근무지에서 떠나 지금은 서운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예전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태양 오늘 생일인데 정시에 퇴근할 수 있겠어요?”양시연이 물었다.“응. 요즘은 별일 없어.”연정훈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일어나지 말고 좀 더 자. 내가 아침 챙겨줄게.”“괜찮아요.”양시연은 일어나서 뒤에서 연정훈을 끌어안고 말했다.“어제 태양한테 침대에서 먹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는데 오늘 내가 침대에서 먹으면 양심이 좀 찔릴 것 같아요.”“그냥 배 속에 여동생이 있어서 여동생이 침대에서 먹고 싶다고 하면 태양은 분명히 괜찮다고 할 거야.”양시연은 웃었다.“아니요. 그냥 나중에 말해줘요. 태양이에게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