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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빨간 감귤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05 19:10:09
내가 너무 심각하게 말했는지 10분도 안 되어 경찰이 도착했다.

“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

“제가 신고했어요. 경찰 아저씨, 얼른 와보세요.”

나는 경찰에게 인사를 건넸고 인파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경찰이 다가오자 나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경찰 아저씨, 저 한 달 전에 성폭행당했어요. 근데 누가 저한테 약을 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증인도 있으니까 헛소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옆에 서 있는 김재현을 가리켰다. 경찰이 수첩에 기록하면서 김재현에게 물었다.

“이 학생이 성폭행당하는 거 봤어요? 그게 언제죠?”

김재현은 경찰이 나타난 순간부터 겁을 먹었고 말까지 더듬었다.

“그게... 전... 아무것도 몰라요. 경찰 아저씨... 전 아무것도 몰라요.”

경찰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더 세게 울었다.

“쟤 알고 있어요. 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었고 동영상도 있어요.”

나는 김재현을 보면서 애걸복걸했다.

“재현아, 상대가 교수라서 겁먹은 거야? 걱정하지 마. 경찰 아저씨가 우릴 지켜줄 거야. 양심도 없는 그 나쁜 교수를 같이 감방에 보내자.”

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김재현은 겁에 질려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 일은 나랑 아무 상관이 없고 난 아무것도 몰라.”

“쟤 알아요.”

그때 다른 룸메이트 오수정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김재현이 확실히 그런 말을 했고 우리한테 동영상까지 보여줬어요.”

그러고는 나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오수정은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완전히 나를 위해서 나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일을 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증인까지 생기자 경찰은 김재현을 잘 타이르면서 모든 사실을 얘기하게 했다.

그날 점심 김재현은 딱히 할 일이 없어 새로 산 망원경을 꺼내 보다가 학교 숲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찍었다고 했다.

경찰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뭘 보려고 망원경을 꺼냈어요? 그렇게 먼 곳이 보인다고요? 혹시 공범 아니에요?”

그러자 김재현이 재빨리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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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게시판에 내가 무대 위에서 장학금을 받는 사진이 올라왔는데 밑에 이런 글도 덧붙여 있었다.[23학번 남은비, 나 너 좋아해. 정말 너무너무 예뻐. 남자 친구가 없다면 연락해도 될까?]짧은 몇 분 사이에 밑에 댓글이 십여 개나 달렸다.[남은비는 예쁘고 공부도 잘해. 정말 소설 속 여자 주인공 같은 존재야.][와. 저도 남은비 선배님 연락처 알고 싶어요.]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댓글을 확인하다가 김재현이라는 사람이 올린 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여자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원. 남은비가 뭐가 좋다고. 남은비 걔 우리 학교에서 유명한 바람둥이야. 돈만 주면 잠자리하는 발랑 까진 년이라고. 전교 남학생들하고 다 잤을걸?]그 댓글 밑에 대댓글이 바로 달렸다.[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놈이 여기서 유언비어를 퍼뜨려?]대체 어느 단어가 김재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또 길게 댓글을 달았다.[유언비어 아니야. 걔가 남자랑 자는 거 내가 직접 봤어. 대낮에 호텔도 아니고 구석에서 그 짓거리를 하더라니까? 남은비는 너희들 같은 1학년만 꼬셔. 장학금과 우수 학생 대표를 잠자리로 얻어냈을지 누가 알아.]그 댓글을 본 순간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은비야, 안색이 왜 그래?”룸메이트가 휴대전화를 주우면서 힐끗 들여다보다가 소리를 질렀다.“유나야, 네 남친이 왜 게시판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댓글을 함부로 달아?”성유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댓글을 본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나머지 몇몇 룸메이트도 댓글을 보고는 나 대신 분노를 터트렸다.“김재현이 무슨 말을 이렇게 해? 이건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야. 은비야, 경찰에 신고해.”“안 돼. 하지 마.”성유나가 미안해하며 말했다.“은비야, 내가 사과할게. 무슨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지금 당장 재현이를 찾아가서 댓글을 지운 다음 사과글도 올리라고 할게.”성유나가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조건 성유나의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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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은 학교 단톡방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이찬이 나를 불렀다.“남은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일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잖아.”나는 어깨를 들먹였다.“전 얘기하지 않았어요.“네가 얘기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다 알아?”이찬이 안절부절못했다.“그때 그 자리에 우리 몇 명밖에 없었어. 유나랑 재현이는 절대 말할 리가 없으니까 당연히 너겠지. 이 일을 잘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얘기했어? 난 아직 네 지도교수야. 지금 당장 인터넷에 아니라고 합성된 동영상이라고 해명 글을 올려. 안 그러면 절대 가만 안 둬.”그의 협박에 나는 이 말을 던졌다.“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못 믿겠으면 신고하세요.”그러고는 이찬의 사무실을 나왔다.이튿날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따귀부터 날렸다.“남은비, 학교에서 낯뜨거운 짓을 하고 다닌다며? 넌 창피한 것도 몰라?”노발대발하는 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지난 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그때 그들은 나를 원수 보듯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곰곰이 생각했다.이번 생에 경찰에 신고한 바람에 김재현이 가지고 있던 동영상이 유출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우리 학교 사람밖에 없다.그런데 부모님이 이 소식을 알고 있다는 건 이찬이 말한 게 틀림없었다.나는 괴로운 마음을 애써 참으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진실을 얘기하면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 때문에 이찬의 명예가 더러워졌다면서 오히려 더 화를 냈다.아버지는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했다.“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떻게 지도교수를 건드려? 남이 유언비어를 퍼뜨려도 그냥 내버려 둘 거지,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면 앞으로 어쩌겠다는 거야?”어머니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은비야, 네 아버지 말이 맞아. 지도교수를 건드려서 앞으로 졸업도 못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남이 뭐라 하든 그냥 무시했어야지.”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6화

    “말도 안 돼. 어떻게...”오수정이 맨 먼저 입을 열더니 놀란 두 눈으로 성유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끝까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시각 성유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김재현의 얼굴이 핏기라곤 없이 창백해졌고 보안실 직원에게 뒤를 더 보여달라고 했다.“말도 안 돼요. 유나일 리가 없어요. 뒤에 다른 사람이 더 있는지 봐봐요.”하지만 그날은 휴일이라 숲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두 사람은 그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16배 속도로 4시간이 되는 CCTV 영상을 확인했지만 숲을 드나든 사람은 더는 없었다.경찰이 이찬을 돌아보았다.“이건 합성한 영상이 아니겠죠?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진실이 드러나자 이찬은 발뺌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전부 솔직하게 얘기했다.알고 보니 성유나가 장학금을 받으려고 맨날 이찬에게 달라붙었고 낯뜨거운 말까지 한 것이었다. 이찬은 결국 성유나의 유혹에 넘어갔고 두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었다.하지만 이번에 학교에서 장학금을 중요시하면서 그에게 몰래 손 쓸 기회를 주지 않은 바람에 성유나에게 주지 못했다. 그 후로 두 사람의 관계도 끝이 났다.경찰이 오해할까 봐 이찬이 말했다.“성유나가 원해서 한 거예요. 휴대폰에 대화 기록도 남아있고요. 전 진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요. 저한테만 꼬리 친 게 아니라 다른 교수한테도 꼬리 쳤고 학생회 회장도 성유나랑 잔 적이 있다고 했어요.”이찬의 말에 김재현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유나를 보면서 물었다.“저 말이 다 사실이야?”성유나는 김재현에게 다가가 울면서 말했다.“내 얘기 좀 들어봐.”“듣긴 개뿔.”김재현은 성유나의 따귀를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평소 내가 손만 잡아도 우니까 엄청 순진한 애인 줄 알았더니 정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걸레였구나, 너.”김재현이 말하지 않아도 성유나가 평소 김재현의 스킨십을 거절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3개월이나 연애했지만 아직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5화

    “그 여학생의 얼굴도 못 봤다면서 남은비 학생인 건 어떻게 알아요?”경찰의 질문에 우리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김재현은 여학생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옷을 봤다고 했다.나중에 그 옷이 우리 기숙사의 베란다에 걸려있는 걸 보고 성유나에게 물었는데 성유나가 나의 옷이라고 대답했다고 했다.나는 더 세게 울면서 말했다.“경찰 아저씨, 다 들으셨죠? 그 여학생이 제가 맞대요. 제발 그 나쁜 놈 빨리 잡아주세요.”내가 다그치자 경찰은 나의 지도교수인 이찬에게 연락했다. 마침 학교에 있었던 이찬은 전화를 받자마자 10분 후에 바로 달려왔고 경비원까지 동행했다.이찬이 손짓하자 경비원들이 주변에 몰려든 학생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우리 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옆 학교 학생까지 몰려와 구경했다.하도 빼곡히 둘러싼 바람에 경비원이 구경하는 학생들의 학점을 깎겠다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거들떠보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이찬은 이미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듯 경찰에게 악수하며 인사를 건네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경찰관님, 전 이 학생들의 지도교수입니다. 어찌 된 상황인지 대충 들었는데 오해예요. 이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그러고는 나의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남은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학교를 찾아서 해결해야지.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면 우수 학생 대표와 장학금을 다시 회수할 수도 있어. 게다가 학교의 명예도 먹칠해서 퇴학당할 수도 있다고.”또 같은 말이었다. 지난 생에 신고했다가 이 말에 겁을 먹고 다시 신고를 철회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이상 내가 원하는 건 내 명예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기에 학교와 장학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지난 생을 겪어보니 얌전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더 괴롭힘을 당했다.나는 눈물을 닦고 이찬을 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절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퇴학까지 시키겠다는 말이에요?”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이찬에게 향했다. 그는 얼굴이 시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4화

    내가 너무 심각하게 말했는지 10분도 안 되어 경찰이 도착했다.“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제가 신고했어요. 경찰 아저씨, 얼른 와보세요.”나는 경찰에게 인사를 건넸고 인파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경찰이 다가오자 나는 울먹거리며 말했다.“경찰 아저씨, 저 한 달 전에 성폭행당했어요. 근데 누가 저한테 약을 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증인도 있으니까 헛소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요.”나는 옆에 서 있는 김재현을 가리켰다. 경찰이 수첩에 기록하면서 김재현에게 물었다.“이 학생이 성폭행당하는 거 봤어요? 그게 언제죠?”김재현은 경찰이 나타난 순간부터 겁을 먹었고 말까지 더듬었다.“그게... 전... 아무것도 몰라요. 경찰 아저씨... 전 아무것도 몰라요.”경찰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더 세게 울었다.“쟤 알고 있어요. 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었고 동영상도 있어요.”나는 김재현을 보면서 애걸복걸했다.“재현아, 상대가 교수라서 겁먹은 거야? 걱정하지 마. 경찰 아저씨가 우릴 지켜줄 거야. 양심도 없는 그 나쁜 교수를 같이 감방에 보내자.”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김재현은 겁에 질려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 일은 나랑 아무 상관이 없고 난 아무것도 몰라.”“쟤 알아요.”그때 다른 룸메이트 오수정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김재현이 확실히 그런 말을 했고 우리한테 동영상까지 보여줬어요.”그러고는 나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오수정은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완전히 나를 위해서 나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일을 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증인까지 생기자 경찰은 김재현을 잘 타이르면서 모든 사실을 얘기하게 했다.그날 점심 김재현은 딱히 할 일이 없어 새로 산 망원경을 꺼내 보다가 학교 숲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찍었다고 했다.경찰의 표정이 엄숙해졌다.“뭘 보려고 망원경을 꺼냈어요? 그렇게 먼 곳이 보인다고요? 혹시 공범 아니에요?”그러자 김재현이 재빨리 부정했다.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3화

    지난 생에 그 영상이 퍼지자마자 나도 바로 보았다. 영상 속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고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것만 보였다.그때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김재현의 말 때문에 다들 그 여자가 나라고 생각했다.내가 아니고 어릴 적부터 남자 손도 잡은 적이 없다고 여러 번이나 해명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해 신고하려 했으나 지도교수가 말렸다.지도교수는 나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이젠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교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면서 나를 퇴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나는 너무도 속상했고 영상 속 여자가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가 이렇게 말했다.“너의 선생으로서 난 당연히 널 믿어. 근데 친구들이 믿지 않는데 어떡해? 이 일이 너한테도 영향이 아주 커. 내가 학교 측과 얘기해서 퇴학은 막았는데 그 대신 몇 년 휴학해야 해. 이 일이 잠잠해진 다음에 다시 학교에 나와.”정확히 말하면 학교를 나가라는 뜻이었다. 내가 계속 경찰에 신고해서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지도교수는 동의하지 않았다.그는 증거가 없는 이상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가 계속 조사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거의 협박하듯 했다.결국 나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 보니 가족들도 그 영상을 알고 있었다.부모님은 나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면서 홧김에 나와 연을 끊고 집에서 내쫓았다.나는 매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다가 우울증에 걸렸다. 하지만 약을 살 돈이 없어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목숨을 끊은 그날 밤 나는 내 인생을 망쳐버린 영상을 수백 번도 넘게 돌려봤다. 그러다가 여학생의 종아리에 빨간 모반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아주 독특한 모반이었는데 하트 모양 같았다.예전에 성유나와 함께 샤워할 때 그녀의 다리에 똑같은 모반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지금 이 순간 나는 성유나의 표정을 보면서 드디어 확신했다. 영상 속의 여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2화

    “그러니까 네 말은 이게 다 사실이라는 거네? 성폭행당했는데도 기억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누군가가 날 정신 잃게 만든 다음에 그 짓을 했다는 거잖아. 네가 봤다고 했으니까 나랑 경찰서 가서 증언해줘. 걔네들 싹 다 고소할 거야.”나의 목소리가 높아 적지 않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충격적인 화제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문자하면서 소문을 퍼뜨렸다.그렇게 2분도 채 되지 않아 구경꾼들이 가득 모였다.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김재현은 그제야 당황하면서 다시 사과했다.“은비야, 내가 말실수했어. 넌 전교 남학생이랑 잔 적이 없고 다 내가 헛소리 지어내 거야.”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내가 보는 앞에서 댓글 두 개를 삭제했다.“은비야, 댓글 지웠으니까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면 안 될까?”성유나도 나서서 수습했다.“그래. 은비야. 재현이도 나쁜 마음에 그런 거 아닐 거야. 사진을 잘못 보고 널 다른 여학생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잖아. 한 번만 용서해줘.”‘사진을 잘못 봤다고? 사진은 잘못 볼 수 있어도 이름은 잘못 볼 리가 없지.’그 댓글에 전부 나의 이름이라 김재현이 못 봤을 리가 없었다.두 사람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이대로 넘기려 했다.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른 댓글을 가리켰다.“내가 전교 남학생이랑 잔 게 가짜라면 대낮에 그런 짓을 했다는 건 진짜겠지? 어디서 봤어? 학교야?”김재현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그것도 그냥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얘기를 했어. 넌 공부 잘하니까 공부 못하는 우리랑은 따져 묻지 않으면 안 될까?”성유나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은비야, 이 일 다 재현이 탓인 건 맞지만 너한테 사과했잖아. 오늘 사과의 의미로 밥도 사라고 할 테니까 화 풀어. 응?”나는 배시시 웃는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물었다.“밥 한 끼 사는 거로 퉁 치려고?”김재현이 화들짝 놀랐다.“그럼 원하는 게 뭔데?”“거짓말이라고 했으니까 허위사실을 유포한 거잖아. 학교 게시판을 본 사람이 많아서 나한테 이미 안

  • 고백받은 날 나는 바람둥이가 되었다   제1화

    학교 게시판에 내가 무대 위에서 장학금을 받는 사진이 올라왔는데 밑에 이런 글도 덧붙여 있었다.[23학번 남은비, 나 너 좋아해. 정말 너무너무 예뻐. 남자 친구가 없다면 연락해도 될까?]짧은 몇 분 사이에 밑에 댓글이 십여 개나 달렸다.[남은비는 예쁘고 공부도 잘해. 정말 소설 속 여자 주인공 같은 존재야.][와. 저도 남은비 선배님 연락처 알고 싶어요.]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댓글을 확인하다가 김재현이라는 사람이 올린 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여자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원. 남은비가 뭐가 좋다고. 남은비 걔 우리 학교에서 유명한 바람둥이야. 돈만 주면 잠자리하는 발랑 까진 년이라고. 전교 남학생들하고 다 잤을걸?]그 댓글 밑에 대댓글이 바로 달렸다.[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놈이 여기서 유언비어를 퍼뜨려?]대체 어느 단어가 김재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또 길게 댓글을 달았다.[유언비어 아니야. 걔가 남자랑 자는 거 내가 직접 봤어. 대낮에 호텔도 아니고 구석에서 그 짓거리를 하더라니까? 남은비는 너희들 같은 1학년만 꼬셔. 장학금과 우수 학생 대표를 잠자리로 얻어냈을지 누가 알아.]그 댓글을 본 순간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은비야, 안색이 왜 그래?”룸메이트가 휴대전화를 주우면서 힐끗 들여다보다가 소리를 질렀다.“유나야, 네 남친이 왜 게시판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댓글을 함부로 달아?”성유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댓글을 본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나머지 몇몇 룸메이트도 댓글을 보고는 나 대신 분노를 터트렸다.“김재현이 무슨 말을 이렇게 해? 이건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야. 은비야, 경찰에 신고해.”“안 돼. 하지 마.”성유나가 미안해하며 말했다.“은비야, 내가 사과할게. 무슨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지금 당장 재현이를 찾아가서 댓글을 지운 다음 사과글도 올리라고 할게.”성유나가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조건 성유나의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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