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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서유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곳은 친구 정가혜가 사는 곳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곤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둘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고 고아라는 슬픔을 공유한 자매 같은 사이었다.

과거 이승하가 서유를 데려갈 때, 정가혜가 그녀에게 말했었다.

“서유야, 앞으로 갈 데가 없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

바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서유는 이승하가 준 집을 돌려줄 용기가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서유를 본 정가혜가 활짝 웃으며 따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우와, 오랜만이네!”

하지만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감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가혜야, 나 너한테 얹혀살려고 왔어.”

그제야 가혜는 서유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미소가 차츰 굳어졌다.

“무슨 일이야?”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유가 멋쩍게 웃었다.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

그 미소가 억지로 쥐어짠 미소임이 가혜는 너무 눈에 선했다.

서유의 작은 얼굴은 찬찬히 뜯어보면 야위어서 눈이 움푹 꺼져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유의 몸은 얄팍한 종잇장처럼 불안해 보였다.

가혜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순간 서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두 손으로 가혜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이 그저 위로일 뿐이라는 걸 가혜가 모를 수 없었다. 서유에게 있어 이승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똑똑히 보아왔으니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승하에게 돌려줄 2억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서유는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

멍청하게도 그리하면 이승하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무정하게 버림받았다.

가혜의 기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

만약 그때, 서유가 송사월을 위해 몸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승하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서유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혜가 그녀와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서유는 살짝 물러나며 부드럽게 웃었다.

“너 나 받아주기 싫은 거 아냐? 왜 계속 문밖에 서서 찬바람 맞게 해. 얼어 죽을 것 같아.”

예전처럼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는 서유를 보니 정가혜도 약간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언젠가 이 슬픔에서 빠져나올 것이라 믿었다. 그들처럼 어려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겐 버려지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잘 살아가기만 한다면 이겨낼 수 없는 역경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혜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녀는 서유의 캐리어를 받아들고 방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얹혀사네 마네 하는 얘기는 하지 마. 여기가 네 집이야.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도 돼.”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한 잠옷을 꺼내 서유에게 건넸다.

“먼저 뜨거운 물에 씻어.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배부르게 먹고 푹 자. 다른 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알았지?”

잠옷을 받아들고 서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혜는 한결같았다. 조건 없이 서유에게 잘해줬는데 인생의 한 줄기 빛처럼 그녀를 따듯하게 품어줬다.

서유가 심부전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약 몇 개월 뒤, 서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걸 가혜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

서유는 가혜처럼 부드럽고 선한 사람을 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부지런히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가혜를 향해 다가갔다.

“가혜야, 나 일 그만두려고.”

그러자 동의한다는 듯, 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인제 그만둘 때도 됐어. 몇 년 동안 야근비 그거 고작 얼마나 받는다고 사람 그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 네 꼴을 봐, 얼른 사표 쓰고 집에서 잘 휴식해. 앞으로 돈 버는 일은 이 언니에게 맡기라고.”

마음이 따듯해진 서유는 가볍게 ‘응.’ 하고 대답한 후, 욕실로 향했는데 두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운명은 한 번도 그녀의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미 예견된 이별이라면 마지막 남은 3달의 시간 동안 가혜의 곁을 잘 지키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짙은 화장으로 창백한 얼굴을 가리고 출근했다.

자리에 앉아 사직서를 작성하려는 찰나, 동료 원영이 의자를 굴려 그녀 옆으로 미끄러져 왔다.

“서유 씨, 메일 봤어요?”

서유가 고개를 저었다. 지난 주말 이승하와 함께했는데 메일 볼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원영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허민 씨가 임명장을 보냈어요. 이사장님 따님께서 CEO로 임명되신다고…”

이사장의 딸에게 관심도 없고 만났던 적도 없었던 서유는 누가 임명되든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사표를 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원영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이었다.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나 봐요. MBA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실전 경험이 별로 없다던데 오자마자 CEO 자리부터 하면 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원영의 옆자리에 있던 최민지가 피식 웃었다.

“누가 감히 수군거리겠어요. JS 그룹 그 유명하신 분의 여신인데?“

JS 그룹이라는 말이 들리자 사직서를 작성하느라 키보드를 두드리던 서유의 손이 멈칫했다.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바보같이 왜 날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 저렇게 매달려서 구질구질하게 사는거지? 저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랑은 살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역지사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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