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자신이 낯선 사람에게 성폭행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그녀는 더 없이 절망했다.이제 진짜 더러워졌다.아마도 이승하는 그녀를 혐오할 것이다.이승하, 이승하, 이승하…서유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의 이름을 외쳤고, 눈가에서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렸다.남자는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턱을 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누구 때문에 우는 거야?!”서유는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넥타이를 적셨다.그녀의 침묵은 남자를 언짢게 만들었다.“넌 내 것이어야만 해!“남자는 서유의 붉은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그러고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놓아주었다…서유의 몸은 이미 힘이 풀린 지 오래되었고 전에 마셨던 수면제를 탄 와인 때문에 머릿속이 흐리멍덩했다.남자는 그녀의 몸을 침범하자마자 바로 떠나지 않고 그녀를 안아서 욕조에 내려주었다.온수로 깨끗이 씻긴 후 공주 안기로 침대까지 데려갔다.부드러운 침대에 눕자 서유는 바로 잠이 들 것 같았다.하지만 임태진이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하자 혀를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고 버텼다.입 안에서 피 맛을 느낀 후에야 정신이 좀 들었다.”이제 저를 놓아주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무조건 죽여버릴 것이다.남자는 옷을 입는 듯했지만 서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서유는 화가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잠까지 자놓고 설마 날 죽이려는 거예요?“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남자는 다시 몸으로 그녀를 눌렀다.그는 서유의 붉은 입술에 살짝 입맞춤하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너 위조 계약서로 임태진을 속였잖아. 너한테 보복할까 봐 두렵지 않아?“”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뭔 상관이야!“서유는 울부짖듯 말했다.이미 강간을 당했으니 더 잃을 게 없어 더 이상 이 남자가 무섭지 않았다.그러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그녀를 가만히 쳐다
서유는 칼도 빼앗기고 손도 남자에게 붙잡혀서 움직일 수 없었다.이런 피동적인 느낌은 그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아예 주저앉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울지마.”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위로했다.하지만 그 말은 서유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떠나갈 듯 울부짖었는데 그 모습은 더없이 비참했다.남자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면서 주저앉아 서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녀가 손을 뿌리치자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한순간 나도 모르게 참지 못했어. 미안해.”보고 싶었다고?그럼 이 변태 자식이 갑자기 발정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소리야?임태진을 사칭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것을 보면 그녀가 임태진이 마음에 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임태진이 서유를 자기 여자라고 선포한 것은 그날 밤 나이트 레일에서였다.서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 밤 확실히 이렇게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가 있긴 했다.이승하와 이연석 외에도 다른 부잣집 도련님들이 많았다.이씨 가문의 형제는 그녀를 얕잡아 보기 때문에 절대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임태진이 데려온 사람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그는 임태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녀가 전화를 걸어서 확인할 때 임태진이 회의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자 서유의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임태진과 어울려 지내는 사람만이 이런 짓을 벌일 것이다.그러다 갑자기 조금 전 이 남자가 자신을 잠시 풀어주었을 때 자신이 모든 계획을 알려준 것을 생각하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만약 이 남자가 임태진에게 그 계획들을 전부 알려준다면, 임태진을 해결하는 것은 둘째 치고 그전에 그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서유는 겁이나 몸을 떨었고 절망이 덮쳐와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남자는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서유가 위장 계약서로 임태진을 속인 다음 무엇을 하려고 했을지 짐작
임태진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계약서를 들고 JS 그룹에서 나왔다.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당장 하얏트 호텔로 달려가 서유를 만날 생각이었다.하지만 차가 절반쯤 달렸을 때 몇십 대의 SUV가 나타나 그를 둘러쌌다.임태진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당장 차를 버린 채 도망쳤다.그러나 고작 몇 미터 달렸을 때 한정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제어가 안 되어 급발진한 듯 곧장 그에게 돌진했다.임태진은 깜짝 놀라 펄쩍펄쩍 뛰었고, 그가 도망치려 할수록 차는 더 끈질기게 달려들어 그를 쳐 죽이려 했다.임태진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운전석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그리고 금색 가면을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려왔다.차 앞쪽의 극도로 눈부신 두 개의 헤드라이트 광선이 임태진의 눈을 강타했다.그 때문에 임태진은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캐주얼하고 헐렁한 옷을 입은 소년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그가 소년이라고 느낀 이유는 그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이 모두 소년의 감성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임태진은 그 소년을 보고 상대방이 어느 부잣집의 도련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서울에서 임씨 가문은 이름 있는 집안이었는데, 어떻게 감히 부잣집 도련님이 그렇게 많은 차를 불러서 그를 둘러싸고 있을 수 있을까?이것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꼬마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임태진은 상대방이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감히 그의 길을 막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 남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고, 움직임은 다소 경박하고 도발적이었다.“알아.”그의 목소리는 일부러 위장한 듯 쉰 목소리였다.그가 감히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고 임태진은 상대방이 별다른 능력이 없다는 것을 더욱 느꼈고, 그래서 전혀 두렵지 않았다.그는 땅에서 일어나 위풍당당하게 그 남자에게 다가가 삿대질하며 화를 냈다.“이놈아,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감히 여기까지 와서 나를 막아? 너 살고 싶지 않은 거지?”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손을 살짝
지금껏 감히 그의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계약서를 수정하기 위해 서둘러 JS 그룹으로 오느라 경호원을 데려오는 것도 잊어버렸으니 그의 부주의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상대방과 한바탕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는 혼자였기 때문에 가면을 쓴 남자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여기서 탈출하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임태진은 여기서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면에 남자는 그를 당장 여기서 죽이려고 생각했다.그 남자는 턱을 치켜들었고, 임태진의 뒤를 막고 있던 경호원들은 즉시 발을 들어 임태진의 무릎 뒷부분을 찼다.방심하고 있던 임태진은 털썩 주저앉고 두 손을 바닥에 댄 채 극도로 비참한 자세로 그 남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수치심을 느낀 그는 너무 화가 나 눈앞에 뵈는 게 없었다. 고개를 들고 이를 갈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면서 포효했다.“이 개자식,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돌아가면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허-”남자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고 더 이상 말대꾸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손에 든 칼을 들고 임태진의 손목을 베었다.그렇게 하는 동안 남자는 내내 눈을 깜빡이지 않았고 끝까지 차가운 시선으로 천천히 체계적으로 임태진을 손봐줬다.“넌 서유에게 키스하고 안고 무릎에 앉히기까지 했으니 이 벌을 받아야 마땅해!”임태진은 너무 고통스러워 몇 번이나 기절할 뻔했고, 입을 뻐끔거리는 것만 보였을 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미 망가진 그의 모습을 본 남자는 손에 든 칼을 내려놓고 경호원이 건네준 손수건을 받아 손에 묻은 피를 천천히 닦아냈다.“이제 갈 시간입니다.”임태진의 손가락을 잘랐던 경호원이 앞으로 나와 그에게 말했다.그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임태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남자가 차에 타는 것을 본 택이는 재빨리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제야 수십 대의 SUV가 물러갔다.그리고 고통으로 인해 기절했던
서유는 기사를 다 읽은 후 온몸이 얼어붙었다.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길래 하룻밤 사이에 서울의 거물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걸까?그녀는 갑자기 어젯밤 가면을 쓴 남자가 임태진이 돌아올 수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임태진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그 사람이 범인일까?만약 그가 그랬다면 가면을 쓴 남자가 임태진의 친한 친구라는 그녀의 추측은 틀린다.임태진의 친구가 이 하룻밤 사이에 태안 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건 불가능했다.임태진의 친구가 아니라면 이 ‘김 씨’는 누구일까?서유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하지만 다행히 누군가가 임태진을 호되게 혼내주었으니 다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다만 임태진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다른 변태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서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끝내 호텔 매니저에게 가서 감시 카메라의 영상을 요청했다.하지만 감시 카메라에는 임태진이 방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만 찍혔을 뿐, 그 남자에 대한 정보가 담긴 영상은 모두 삭제되었다.이를 통해 서유는 그 남자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감시 카메라 영상도 없었고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를 고소할 증거도 없었다.하지만 이 남자를 그냥 놓아줄 수 있을까?서유는 그 남자가 정가혜로 자신을 위협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과감히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다.경찰이 사건을 접수한 후 그 남자의 휴대폰 번호, 카카오톡 아이디, 문자 메시지 전송 내역 등을 모두 경찰에 제공했다.그러나 경찰은 그의 휴대폰 번호가 본인 인증이 되어 있지 않고, 카카오톡 IP 주소도 찾을 수 없어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그리고 문자 메시지 부분은 서유가 먼저 상대방과 약속 잡은 것이기 때문에 그 남자가 임태진을 사칭했다고 해도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다.경찰은 서유더러 병원에 가서 체액을 추출하도록 제안했다. 그러면 일부 증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서유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병
“서유야, 너 이게 뭐야...”서유는 아직 자기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정가혜의 놀란 눈을 보고서야 반응했다.그녀는 부랴부랴 손으로 목을 가리고 난감해서 고개를 숙였다.“나...”“임 대표라는 사람이 강요했어?”임 대표가 서유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어제 정가혜는 서유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혼식을 신경 쓰고 강은우의 친척들을 돌보느라 바빠서 서유와 이야기할 시간조차 없었다.서유가 이런 상태로 돌아온 것을 보니 임 대표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욱 의심스러웠다.“서유야, 사실대로 말해봐. 만약 임 대표에게 강요당한 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가서 따질 거야!”정가혜는 서유가 음란한 남자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생각하자 너무 화가 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가져오고 싶었다.서유는 황급히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다혜야, 임 대표님이 한 게 아니야.”정가혜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그럼, 누구야?”서유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정가혜는 우물쭈물하는 서유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너 이승하랑 화해했어?”전에 서유는 이승하의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피부가 항상 멍이 들어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도 이승하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그 사람도 아니야.”서유는 더 이상 정가혜를 속이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말했다.“나... 나 어젯밤에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어.”정가혜는 서유가 이승하가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감히 믿지 못했지만 서유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고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서유의 손을 잡고 긴장해하며 물었다. “누구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정가혜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본 서유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믿, 믿을 수 있는 사람 맞지...”정가혜는 눈썹을 찌푸렸다.“서유야, 너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야?”그녀는 요즘 서유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었던
서유는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생각할 기운이 없어 목욕하고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다음 날 오후 세 시 가까이 잠을 자고 보니 기면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말기 환자의 경우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지금 그녀에게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어차피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니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서유는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고, 약간의 야채를 곁들인 죽이면 충분했다.죽을 먹으면서 정가혜가 건 영상 통화를 받았다.이미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그곳의 하늘은 서울보다 훨씬 더 파랗고 바닷물도 수정처럼 맑았다.정가혜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롱스커트를 입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밟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서유는 정가혜의 얼굴에 광채가 가득한 것을 보고 그녀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저도 모르게 함께 행복해졌다.“서유야, 여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다음에는 꼭 너를 데리고 와서 보여 줘야겠어!”“좋아.”서유는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들이 이어서 말레이시아 음식에 관해 이야기한 후, 정가혜는 강은우의 부름에 배를 타러 갔다.서유는 안전을 조심하라고 당부한 뒤 영상 통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고 죽을 먹고 싶었던 서유는 이때 갑자기 김씨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나이트 레일 로열 스위트룸으로 와.」이 메시지는 내용 그 자체로 이 남자가 그녀와 자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서유는 휴대폰을 움켜쥐고 이를 갈며 타이핑했다.「어떻게 감히 나보고 그런 곳으로 오라고 해요?」김씨는 담담하게 여섯 글자를 보냈다.「너와 자고 싶어.」서유는 그 여섯 글자를 바라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당신이 어제 한 짓이 이미 범죄 행위였는데 감히 또 뻔뻔스럽게 이런 문자를 보내요?!」서유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보낸 후 즉시 해당 문자를 캡처했다.비록 감시 카메라 영
「30분만 기다릴 거야.」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결정권을 서유에게 넘기려는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꽉 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경찰에 문자 내용을 넘긴 뒤 임태진을 언급했다. 호텔 룸에 임태진이 드나드는 것이 CCTV에 찍혔을 것이다.경찰은 이런 증거들을 토대로 임태진을 찾아 조사할 예정이었다.만약 이 시점에서 그 남자가 경찰에 그녀가 임태진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하면 그녀는 분명 살인미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다.그리고 임태진도 그녀의 의도가 그에게 계약서를 전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겪은 모든 고통을 그녀 탓으로 생각할 것이다.임씨 가문이 아직 범인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가 임태진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두 그녀가 범인이라고 의심할 것이 뻔했다.임태진은 지금 스캔들이 터졌지만 임 회장님처럼 바로 잡혀들어가진 않았다. 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로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여전히 임태진이 무서웠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임태진이 아무리 추락했다고 한들 그녀와 정가혜의 숨통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서유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정가혜는 그녀의 유일한 약점이었다.고민 끝에 얌전히 그 남자의 프레지던트 스위트 룸으로 향했다.임태진에게 보복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를 엿먹이는 편이 나았다.나가기 전 그녀는 전기 충격기를 챙겼다.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안쪽에서 문이 바로 열렸다.자동문이라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었기에 문을 연 사람은 창문 앞에 서 있었다.그는 여전히 같은 스타일이었다. 얼굴은 금빛 가면 아래 숨겨져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에 캐쥬얼 룩을 입고 있었다.그는 창문 앞에 서서 한 손을 바지 주머니 안에 넣고서는 다른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보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