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진승철의 마음에는 박현아에 대한 죄책감이 가득했다.박현아는 점점 더 까다로워졌고 심지어 진승철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여자들에게 경고하곤 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박현아는 자신이 얼굴이 망가져서 진승철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딸을 찾아온 일이 벌어진 것이다.박현아는 어딘가에서 들은 이상한 처방을 믿었다.피부를 바꾼다는 것이었지만, 박현아의 집착 때문에 진승철은 결국 박현아 편에 서게 되었다.박현아는 눈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난 눈물에 젖지 않은 박현아의 흉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비웃으며 말했다.“이 얘기, 실종된 다른 소녀들한테도 했겠죠?”박현아는 눈물을 닦던 손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감정을 좀 풀어보려 했을 뿐이야, 그게 잘못이야?”난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잘못은 아니죠, 근데 진승철이 깨어났어요.”“이 이야기도 진승철이 알고 있겠죠.”예상대로 박현아는 진승철을 바라보며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자기 몸 하나 못 지키는 남자, 죽어 마땅하지 않아?”말을 마치고 박현아는 주사기를 집어 들고 약물을 다시 주입하며 나에게 다가왔다.“가인아, 걱정하지 마. 네가 죽으면 아무도 이 모든 걸 알지 못할 거야.”“그때가 되면 너도 백민아랑 나란히 누워 있을 거야. 너희 둘은 내가 본 가장 완벽한 예술 작품이거든.”박현아는 온몸을 비틀며 웃었고 얼굴은 일그러져 흉측해 보였다.“이제야 백민아를 당신이 죽였다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난 고개를 들어 박현아에게 물었다.박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지. 내가 민아를 조종할 수 없었고 감히 내 남편을 유혹하려고 했으니까.”“민아가 나랑 닮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뼈도 남기지 않고 갈아버렸을 거야!”난 가만히 박현아를 바라보며 지하실 출구 쪽을 보았다.그리고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럼 당신은 이제 끝장이에요.”박현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다음 순간 박현아는 땅에 세게 내리쳐졌다.옆에 있던
“너희 둘한테 거액의 돈을 줄게. 내 명의의 모든 재산을 다 너한테 넘겨줄 수도 있어.”“현아만 용서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다 줄게.”진승철은 비굴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성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하는 듯했다.난 지성에게 눌려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박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뭐든지 다 준다고요?”난 땅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진승철을 바라보았다.진승철은 내가 금방이라도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럼 당신 목숨을 내놔요!”말을 마치고 난 진승철의 옷깃을 붙잡아 백민아의 시체 앞으로 끌고 갔다.지성은 내가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 몰랐던지 나를 바라보는 눈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그때 박현아는 몸부림치려 했지만 지성이가 박현아를 더 세게 무대 위에 눌렀다.“너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심지성은 백민아를 위해 이러는 거고, 넌 뭘 위해서지? 우리 진씨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넌 진작에 그 망나니들한테 죽었을 거야. 진가인, 넌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거야?”진승철의 큰 목소리는 내 짜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난 진승철의 머리를 더 세게 눌러 얼굴이 흉터 가득한 백민아의 얼굴에 거의 닿을 뻔하게 했다.“내가 뭘 하려는지? 당연히 당신 입으로 직접 백민아를 죽인 과정을 말하게 하는 거죠.”“말하지 않으면 당신 둘 다 죽고, 말하면 한 명은 살 수 있어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승철은 흥분해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자신이 직접 백민아를 죽였다고 말했다.사랑을 얻지 못해서 그렇게 했다고.진승철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모습을 보며 난 할 말을 잃었다.“봐, 이 정도 상황인데도 당신을 도우려 하잖아요.”“당신은 진승철이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해친 거예요.”“밤에 꿈을 꾸면 무섭지 않아요?”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박현아를 비웃으며 말했다.지성은 박현아를 향해 짜증 섞인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박현아는 잠깐 멍해
지성이가 내 팔을 부축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난 지성의 손을 가볍게 두드린 뒤, 귀 뒤에 숨겨진 카메라를 점검했다.고개를 끄덕이며 철수하려고 할 때 진승철이 갑자기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너희가 정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진가인, 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근데 네가 그걸 놓친 거야.”진승철은 바닥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 들어 우리에게 휘둘렀다.입에선 미친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 현아가 나아질 수 있어.”“내가 먼저 현아한테 잘못했으니, 너희는 죽어야만 해!”난 몸에 이상한 약물이 대량 주입된 탓에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진승철의 몽둥이가 곧 내게 닿으려는 순간, 지성이가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고 몽둥이는 지성이의 뒤통수에 그대로 내리꽂혔다.그러나 지성은 진승철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심지성!”난 비명을 지르며 지성이가 휘청거리는 몸을 안아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아보려 했다.하지만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지성은 나를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민아의 시신... 네가 꼭... 데리고 나가줘...”피투성이가 된 내 두 손을 바라보며, 난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때, 언제 그랬냐는 듯 박현아의 광기 어린 모습이 사라진 채 일어나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예전의 고상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박현아는 내 앞에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조사해봤어. 심지성은 가족이 없어.”“너도 없잖아. 그러니 우리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해. 그렇지, 여보?”박현아는 옆에서 흐릿한 눈빛을 한 진승철을 바라보았다.진승철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설득하려 했지만 박현아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다.“또 나를 거역하려는 거야? 당신, 아직도 나를 배신할 생각이 있는 거지!”“이번만 나를 도와주면 우리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그 말에 진승철은 눈이 반짝이며 나에게
“근데 이번엔 정말 잘했어.”“가인아, 난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난 그 손을 뿌리치고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입을 삐쭉이며 말했다.“필요 없어요.”“그 미친놈들,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직접 물어볼 게 있어요.”남자는 나를 깊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진승철과 박현아를 만났을 때,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고 있었다.눈에는 핏줄이 가득했고 경찰에 끌려간 그날부터 저지른 더러운 일들이 모두 언론에 보도된 상태였다.내가 온 것에 진승철은 전혀 놀라지 않는 듯 보였다.진승철은 자조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어. 너도 그 사람처럼 고집이 세네.”“심지어 눈매도 닮았어. 이젠 네가 복수하러 왔다는 거지?”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백민아가 네 목적은 아니었던 거네.”진승철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그러더니 크게 웃고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그럼 지금 와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도 이 꼴인데,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난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에는 차가운 기운만 가득했다.“당연하지. 네 심장에 바로 칼을 꽂아 넣고 싶어. 네가 우리 아빠한테 그렇게 했듯이 말이야.”“근데 우리 아빠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그래서 너희가 모든 걸 잃는 그런 벌을 받아야 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아.”“근데 한 가지 더, 네가 관심 있어 할 만한 게 있어.”난 가방에서 친자 확인서를 꺼내 진승철의 눈앞에 내밀었다.“이건 백민아과 너희 사이의 혈연관계를 증명한 거야. 직접 낳은 딸을 네 손으로 죽였다니, 기분이 어때?”“네 와이프도 이미 이 사실을 알았어. 미친 상태라더라. 감옥에서 혀를 깨물어 거의 죽을 뻔했대.”“이게 너희 업보야!”진승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민 서류를 바라보며 연신 불가능하다며 중얼거렸다.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갑게 말했다.“예전에, 백민아가 우리 아빠한테 도움을 청했었
난 고개를 저었다.“그만두겠어.”“나처럼 병든 사람을 구하는 건 맞지 않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아빠 친구가 맞았어. 내 인생은 아직 길어.”“난 더 잘 살 거야. 그래야 아빠가 저 아래에서 걱정하지 않겠지.”콧날이 시큰해져서 손으로 살짝 만졌다.멀리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아마 이제는 정말로 앞을 보고 살아야 할 때인 것 같다.석양 아래, 나와 지성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오랫동안, 나는 웃었다.난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고, 내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아빠, 나를 믿어줘. 난 반드시 멋지게 살아갈 거야.’...이번 달에만 아빠와 난 몇 번째 싸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아빠가 경찰이 된 이후로는 자주 나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몇 번이나 난 학교에서 잠들 뻔했다가 아빠가 늦게 와서야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오늘은 내 생일이었는데, 온종일 기다렸지만 아빠는 끝내 오지 않았다.대신 다른 여자아이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가인아. 아빠가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이게 생일 케이크야.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먹자, 응?”아빠는 케이크를 흔들며 내 앞에 서 있었다.난 옆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찡그린 채 바라보며 세차게 밀쳐냈다.“내 생일에 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거야!”아빠는 언니인 백민아라고 설명했다.어떤 사건에 백민아의 도움이 필요하고 지금 보호하는 중이라고 했다.난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백민아를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눈을 돌렸다.결국 아빠를 따라 집에 돌아갔다.백민아가 원래 재벌 집안의 친딸로 돌아갔지만 실험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그때부터 난 서서히 백민아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백민아는 아주 친절했고 내가 모르는 문제들도 참을성 있게 가르쳐 주었다.하지만 백민아의 눈에는 항상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한 번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내가 고열에 시달리며 아빠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빠는 백민아가 지금 위험하니 지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한 환영 연회에서 어제만 해도 날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후회하던 박현아는 지금 날 괴롭히던 그 사람들에게 맡긴 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뒷마당에서 무리의 리더격인 여자가 내 턱을 쥐고 비웃었다.“진짜 네가 재벌집 딸이라도 된 줄 알아?”“이 진씨 가문이 되찾았다고 하는 딸이 한둘인 줄 알아? 네가 진짜라고 생각해?”난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여전히 겁에 질린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자 뒤에서 병 하나를 꺼내며 흔들었다.“가인아, 이거 한 번 써볼래? 내 새 장난감이거든.”난 병에 적힌 황산이라는 글자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그리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오늘 밤 이 저택을 무사히 나갈 수 있을지 한번 해봐.”내 말에 확실히 화가 난 듯했다.병마개를 열고 날 향해 그걸 뿌리려고 하자 난 목청껏 비명을 지르며 드레스를 걷어들고 홀로 달려나갔다.“살인자야! 살인자야!”내 절규에 홀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놀라 날 바라봤다.내 뒤에서 황산을 들고 쫓아오는 그 여자를 본 이들은 모두 나서서 막아섰다.난 박현아의 팔에 매달려 오열하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박현아는 날 보는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결국 그 여자를 포함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경찰서로 끌려갔다.손님들도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하나둘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떠났다.한순간에 넓은 저택은 조용해졌다.잔 속 액체가 출렁이는 소리만이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바로 그때, 난 박현아 앞에 무릎을 꿇고 다리에 매달리며 흐느꼈다.“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경솔했어요.”“근데 그 여자가 저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손에 들고 있던 걸 못 보셨어요...”찰싹!맑은 따귀 소리가 저택 안을 울렸다.“내가 뭐라고 했지? 날 진 사모님이라고 불러. 감히 엄마라고 부를 자격이 너한테 있다고 생각해?”박현아의 얼굴은 이미 어둡게 변해 있었다.난 얼굴을 감싸 쥐고 고
오히려 나를 저택 안에 숨겨진 지하실로 데려갔다.그 안의 약물을 내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내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할 때마다 박현아는 항상 흥분해서 손뼉을 쳤다.때로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그리고 주사기를 들고 있는 진승철은 줄곧 말이 없었다.분명 강주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재벌이지만 이 순간 박현아 앞에서는 유난히 위축돼 보였다.마치 자신이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박현아를 화나게 할 것처럼 두려워하는 듯했다.아마 가장 악랄한 사람은 박현아일 것이다.그날, 약물의 부작용으로 겨우 눈을 떴을 때 박현아는 서둘러 나를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가 도우미들에게 나를 씻기고 꾸미라고 지시했다.난 몸을 떨며 감히 박현아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본 도우미들의 눈빛은 어두웠다.“너희는 너희 일이나 똑바로 해, 아니면 너희를 잘라서 개한테 던져줄 테니까!”박현아가 도우미들에게 그렇게 협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박현아는 대외적으로 대단한 자선가로 알려졌었지만 저택 안에서는 모두 어떤 악마인지 잘 알고 있었다.박현아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경고했다.“곧 아주 중요한 손님이 널 보러 올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아니면 이런 벌로 끝나지 않을 거야.”“가인아, 착하지. 난 네가 잘할 거라 믿어.”박현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가득 찬 위협이 서려 있었다.난 이 손님이 정말 중요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본 순간, 난 모든 걸 이해했다.강주시의 신흥 IT 재벌, 수많은 사람이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협력 상대인 심지성.난 옆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현아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엄마, 게임이 시작됐네.’“심 대표님, 여자는 꾸미는 데 시간이 좀 걸리잖아요, 이해해 주실 거죠?”박현아는 허리를 굽히며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진승철은 일찍이 소파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차를 따르고 있었다.진승철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는 전혀 관심
서류에 적힌 소녀들의 정보를 보며 난 고개를 떨구었다.‘이제 이 빚을 제대로 청산해야 할 때야.’나와 지성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 알게 되었다.그때 우리는 목표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성은 뒷수습을 맡았다.난 미끼를 던지는 역할이었다.다행히도 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능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그렇지 않았으면 박현아가 나를 탐낼 리 없었을 것이다.지성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진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벽에 투사했다.“이건 그들이 협력하는 파트너들이야. 며칠 후에 자선 파티가 열리는데 박현아가 주최하는 거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나는 지성을 곁눈질로 보며 웃고 차갑게 말했다.“내가 할 일에 네가 간섭할 필요는 없어.”“네가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 아니면 책임은 네가 져야 할 거야!”그 말을 마치고 난 서류를 안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단지 협력 관계일 뿐인데, 마치 날 부리려는 것처럼 행동하네.’침실에서 난 서류 첫 장에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코끝이 찡해지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이게 정말 운명이라는 걸까?’...며칠 후, 난 지성의 팔짱을 끼고 자선 파티에 들어섰다.박현아의 눈에 깜짝 놀라는 기색이 보이자 난 미소를 지으며 박현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박현아에게 지성은 그저 바람둥이에 불과했다.지성이가 나를 진지하게 생각할 리 없다고 여긴 것이다.하지만 박현아의 놀람도 잠시뿐, 곧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잔을 들어 보였다.그 눈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나는 박현아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지금 내 신분은 진씨 가문의 딸이고, 언젠가는 그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지금 말을 듣지 않으면 기다리고 있는 건 끝없는 고통뿐일 것이다.파티가 시작되자 난 자연스럽게 박현아 옆에 앉았다.친밀한 척 박현아의 어깨에 기대었지만, 내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엄마, 요즘 소문을 들었는데, 엄마는 못 들으셨나요?”박현아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을 보내자 난
난 고개를 저었다.“그만두겠어.”“나처럼 병든 사람을 구하는 건 맞지 않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아빠 친구가 맞았어. 내 인생은 아직 길어.”“난 더 잘 살 거야. 그래야 아빠가 저 아래에서 걱정하지 않겠지.”콧날이 시큰해져서 손으로 살짝 만졌다.멀리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아마 이제는 정말로 앞을 보고 살아야 할 때인 것 같다.석양 아래, 나와 지성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오랫동안, 나는 웃었다.난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고, 내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아빠, 나를 믿어줘. 난 반드시 멋지게 살아갈 거야.’...이번 달에만 아빠와 난 몇 번째 싸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아빠가 경찰이 된 이후로는 자주 나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몇 번이나 난 학교에서 잠들 뻔했다가 아빠가 늦게 와서야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오늘은 내 생일이었는데, 온종일 기다렸지만 아빠는 끝내 오지 않았다.대신 다른 여자아이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가인아. 아빠가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이게 생일 케이크야.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먹자, 응?”아빠는 케이크를 흔들며 내 앞에 서 있었다.난 옆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찡그린 채 바라보며 세차게 밀쳐냈다.“내 생일에 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거야!”아빠는 언니인 백민아라고 설명했다.어떤 사건에 백민아의 도움이 필요하고 지금 보호하는 중이라고 했다.난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백민아를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눈을 돌렸다.결국 아빠를 따라 집에 돌아갔다.백민아가 원래 재벌 집안의 친딸로 돌아갔지만 실험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그때부터 난 서서히 백민아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백민아는 아주 친절했고 내가 모르는 문제들도 참을성 있게 가르쳐 주었다.하지만 백민아의 눈에는 항상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한 번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내가 고열에 시달리며 아빠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빠는 백민아가 지금 위험하니 지
“근데 이번엔 정말 잘했어.”“가인아, 난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난 그 손을 뿌리치고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입을 삐쭉이며 말했다.“필요 없어요.”“그 미친놈들,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직접 물어볼 게 있어요.”남자는 나를 깊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진승철과 박현아를 만났을 때,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고 있었다.눈에는 핏줄이 가득했고 경찰에 끌려간 그날부터 저지른 더러운 일들이 모두 언론에 보도된 상태였다.내가 온 것에 진승철은 전혀 놀라지 않는 듯 보였다.진승철은 자조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어. 너도 그 사람처럼 고집이 세네.”“심지어 눈매도 닮았어. 이젠 네가 복수하러 왔다는 거지?”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백민아가 네 목적은 아니었던 거네.”진승철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그러더니 크게 웃고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그럼 지금 와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도 이 꼴인데,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난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에는 차가운 기운만 가득했다.“당연하지. 네 심장에 바로 칼을 꽂아 넣고 싶어. 네가 우리 아빠한테 그렇게 했듯이 말이야.”“근데 우리 아빠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그래서 너희가 모든 걸 잃는 그런 벌을 받아야 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아.”“근데 한 가지 더, 네가 관심 있어 할 만한 게 있어.”난 가방에서 친자 확인서를 꺼내 진승철의 눈앞에 내밀었다.“이건 백민아과 너희 사이의 혈연관계를 증명한 거야. 직접 낳은 딸을 네 손으로 죽였다니, 기분이 어때?”“네 와이프도 이미 이 사실을 알았어. 미친 상태라더라. 감옥에서 혀를 깨물어 거의 죽을 뻔했대.”“이게 너희 업보야!”진승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민 서류를 바라보며 연신 불가능하다며 중얼거렸다.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갑게 말했다.“예전에, 백민아가 우리 아빠한테 도움을 청했었
지성이가 내 팔을 부축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난 지성의 손을 가볍게 두드린 뒤, 귀 뒤에 숨겨진 카메라를 점검했다.고개를 끄덕이며 철수하려고 할 때 진승철이 갑자기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너희가 정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진가인, 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근데 네가 그걸 놓친 거야.”진승철은 바닥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 들어 우리에게 휘둘렀다.입에선 미친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 현아가 나아질 수 있어.”“내가 먼저 현아한테 잘못했으니, 너희는 죽어야만 해!”난 몸에 이상한 약물이 대량 주입된 탓에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진승철의 몽둥이가 곧 내게 닿으려는 순간, 지성이가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고 몽둥이는 지성이의 뒤통수에 그대로 내리꽂혔다.그러나 지성은 진승철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심지성!”난 비명을 지르며 지성이가 휘청거리는 몸을 안아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아보려 했다.하지만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지성은 나를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민아의 시신... 네가 꼭... 데리고 나가줘...”피투성이가 된 내 두 손을 바라보며, 난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때, 언제 그랬냐는 듯 박현아의 광기 어린 모습이 사라진 채 일어나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예전의 고상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박현아는 내 앞에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조사해봤어. 심지성은 가족이 없어.”“너도 없잖아. 그러니 우리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해. 그렇지, 여보?”박현아는 옆에서 흐릿한 눈빛을 한 진승철을 바라보았다.진승철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설득하려 했지만 박현아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다.“또 나를 거역하려는 거야? 당신, 아직도 나를 배신할 생각이 있는 거지!”“이번만 나를 도와주면 우리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그 말에 진승철은 눈이 반짝이며 나에게
“너희 둘한테 거액의 돈을 줄게. 내 명의의 모든 재산을 다 너한테 넘겨줄 수도 있어.”“현아만 용서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다 줄게.”진승철은 비굴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성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하는 듯했다.난 지성에게 눌려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박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뭐든지 다 준다고요?”난 땅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진승철을 바라보았다.진승철은 내가 금방이라도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럼 당신 목숨을 내놔요!”말을 마치고 난 진승철의 옷깃을 붙잡아 백민아의 시체 앞으로 끌고 갔다.지성은 내가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 몰랐던지 나를 바라보는 눈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그때 박현아는 몸부림치려 했지만 지성이가 박현아를 더 세게 무대 위에 눌렀다.“너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심지성은 백민아를 위해 이러는 거고, 넌 뭘 위해서지? 우리 진씨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넌 진작에 그 망나니들한테 죽었을 거야. 진가인, 넌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거야?”진승철의 큰 목소리는 내 짜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난 진승철의 머리를 더 세게 눌러 얼굴이 흉터 가득한 백민아의 얼굴에 거의 닿을 뻔하게 했다.“내가 뭘 하려는지? 당연히 당신 입으로 직접 백민아를 죽인 과정을 말하게 하는 거죠.”“말하지 않으면 당신 둘 다 죽고, 말하면 한 명은 살 수 있어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승철은 흥분해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자신이 직접 백민아를 죽였다고 말했다.사랑을 얻지 못해서 그렇게 했다고.진승철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모습을 보며 난 할 말을 잃었다.“봐, 이 정도 상황인데도 당신을 도우려 하잖아요.”“당신은 진승철이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해친 거예요.”“밤에 꿈을 꾸면 무섭지 않아요?”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박현아를 비웃으며 말했다.지성은 박현아를 향해 짜증 섞인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박현아는 잠깐 멍해
그 이후, 진승철의 마음에는 박현아에 대한 죄책감이 가득했다.박현아는 점점 더 까다로워졌고 심지어 진승철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여자들에게 경고하곤 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박현아는 자신이 얼굴이 망가져서 진승철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딸을 찾아온 일이 벌어진 것이다.박현아는 어딘가에서 들은 이상한 처방을 믿었다.피부를 바꾼다는 것이었지만, 박현아의 집착 때문에 진승철은 결국 박현아 편에 서게 되었다.박현아는 눈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난 눈물에 젖지 않은 박현아의 흉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비웃으며 말했다.“이 얘기, 실종된 다른 소녀들한테도 했겠죠?”박현아는 눈물을 닦던 손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감정을 좀 풀어보려 했을 뿐이야, 그게 잘못이야?”난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잘못은 아니죠, 근데 진승철이 깨어났어요.”“이 이야기도 진승철이 알고 있겠죠.”예상대로 박현아는 진승철을 바라보며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자기 몸 하나 못 지키는 남자, 죽어 마땅하지 않아?”말을 마치고 박현아는 주사기를 집어 들고 약물을 다시 주입하며 나에게 다가왔다.“가인아, 걱정하지 마. 네가 죽으면 아무도 이 모든 걸 알지 못할 거야.”“그때가 되면 너도 백민아랑 나란히 누워 있을 거야. 너희 둘은 내가 본 가장 완벽한 예술 작품이거든.”박현아는 온몸을 비틀며 웃었고 얼굴은 일그러져 흉측해 보였다.“이제야 백민아를 당신이 죽였다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난 고개를 들어 박현아에게 물었다.박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지. 내가 민아를 조종할 수 없었고 감히 내 남편을 유혹하려고 했으니까.”“민아가 나랑 닮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뼈도 남기지 않고 갈아버렸을 거야!”난 가만히 박현아를 바라보며 지하실 출구 쪽을 보았다.그리고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럼 당신은 이제 끝장이에요.”박현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다음 순간 박현아는 땅에 세게 내리쳐졌다.옆에 있던
박현아의 눈에 서린 충격을 보고 난 천천히 일어났다.그제야 안갯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자선 파티 영상 속의 백민아라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백민아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두려워졌어?”박현아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내 귀에 속삭였다.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마 나도 그렇게 만들 생각인가요?”그러자 박현아는 거의 집착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지. 네 얼굴은 꼴 보기 싫지만 정말 아름다워.”“그래서 난 네 얼굴 가죽을 원한단 말이야...”내 몸이 순간 떨렸다.‘이게 바로 박현아의 최종 목표였던 건가? 근데 박현아가 사람의 피부를 왜 필요로 하는 걸까?’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던 찰나 박현아는 이미 자신의 오른쪽 뺨의 피부를 벗겨 내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흉측하고 끔찍한 흉터가 드러났다.“이 오랜 시간 동안, 난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할 줄 알았어.”“그런데 네가 이렇게 스스로 찾아올 줄이야. 원래는 네가 더 오랫동안 천금 같은 삶을 즐기게 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말을 듣지 않아서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어.”박현아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며 난 발을 떼어 나가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소용없어, 진가인. 네가 우리 보호 아래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런 대가를 치를 걸 각오했어야 했어.”말을 하며 박현아는 내 팔을 잡아채 안개로 둘러싸인 탁자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박현아는 내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도 이런 짓이 잔인하다는 걸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어.”“우리 둘 다 여자잖아. 여자는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않아?”난 비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성형 기술도 발달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박현아는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그들은 다 쓸모없는 것들이었어! 내가 수년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과는 어땠는 줄 알아? 계속해서 내 피부를 바꿔야만 했어!”“내가 원하는 건 영원한 거야. 넌 포기해. 내가 너한테 쓴 그 약제들은 아주 유용해. 피부를 벗겨
말이 끝나자마자, 박현아의 독기 어린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곧바로 나를 날카롭게 흘겨보더니, 태연한 척 표정을 정리하며 모든 걸 해명했다.결국 박현아의 열정적인 연설로 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모두가 이것을 백민아의 장난으로 여겼다.하지만 내 옆에 앉아 있던 지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지성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난 급히 손을 눌러 잡고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때가 아니야. 성급하게 굴지 마.”“진실을 알고 싶다면 인내심을 가져.”말을 마치고 난 미소를 띤 채 연단에서 내려오는 박현아를 바라보았다.“심 대표님, 오늘 웃음거리를 보여드려 죄송하네요. 제가 가인을 데리고 하룻밤 함께 보내도 될까요?”피곤한 표정의 박현아가 나를 바라봤다.진승철은 곧바로 일어나 박현아의 허리를 감싸며, 나를 보며 찡그린 채 말했다.“뭘 멍하니 있어? 그 사람 애인 노릇이라도 하려는 거야?”지성이가 놀란 듯 진승철을 바라보았다.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지성이에게 눈짓을 보낸 후 박현아의 뒤를 따라나섰다.박현아가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이 일이 진씨 가문의 가식을 벗겨 낸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하며 앞에서 서로 기대어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난 미소를 지었다.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박현아의 표정은 곧바로 어두워졌다.그리고 도우미에게 내 몸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찾아내게 한 뒤 내 눈앞에서 그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내가 말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박현아가 비아냥거렸다.“진가인, 보아하니 꽤 수법이 좋은 모양이네.”“말해봐. 심지성이 너한테 뭘 줬길래, 감히 날 공개적으로 망신시킬 생각을 했지?”난 충격을 받은 척 박현아를 바라보며 눈물로 가득 찬 눈을 흔들었다.“엄마, 저 정말 몰라요.”“심지성이 나한테 내가 당신들이 찾은 열 번째 딸이라고 말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연회장에서 그렇게 물어본 거예요. 다음에도 또 다른 딸이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말을 하며 내 목소리는 떨리
서류에 적힌 소녀들의 정보를 보며 난 고개를 떨구었다.‘이제 이 빚을 제대로 청산해야 할 때야.’나와 지성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 알게 되었다.그때 우리는 목표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성은 뒷수습을 맡았다.난 미끼를 던지는 역할이었다.다행히도 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능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그렇지 않았으면 박현아가 나를 탐낼 리 없었을 것이다.지성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진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벽에 투사했다.“이건 그들이 협력하는 파트너들이야. 며칠 후에 자선 파티가 열리는데 박현아가 주최하는 거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나는 지성을 곁눈질로 보며 웃고 차갑게 말했다.“내가 할 일에 네가 간섭할 필요는 없어.”“네가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 아니면 책임은 네가 져야 할 거야!”그 말을 마치고 난 서류를 안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단지 협력 관계일 뿐인데, 마치 날 부리려는 것처럼 행동하네.’침실에서 난 서류 첫 장에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코끝이 찡해지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이게 정말 운명이라는 걸까?’...며칠 후, 난 지성의 팔짱을 끼고 자선 파티에 들어섰다.박현아의 눈에 깜짝 놀라는 기색이 보이자 난 미소를 지으며 박현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박현아에게 지성은 그저 바람둥이에 불과했다.지성이가 나를 진지하게 생각할 리 없다고 여긴 것이다.하지만 박현아의 놀람도 잠시뿐, 곧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잔을 들어 보였다.그 눈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나는 박현아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지금 내 신분은 진씨 가문의 딸이고, 언젠가는 그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지금 말을 듣지 않으면 기다리고 있는 건 끝없는 고통뿐일 것이다.파티가 시작되자 난 자연스럽게 박현아 옆에 앉았다.친밀한 척 박현아의 어깨에 기대었지만, 내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엄마, 요즘 소문을 들었는데, 엄마는 못 들으셨나요?”박현아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을 보내자 난
오히려 나를 저택 안에 숨겨진 지하실로 데려갔다.그 안의 약물을 내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내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할 때마다 박현아는 항상 흥분해서 손뼉을 쳤다.때로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그리고 주사기를 들고 있는 진승철은 줄곧 말이 없었다.분명 강주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재벌이지만 이 순간 박현아 앞에서는 유난히 위축돼 보였다.마치 자신이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박현아를 화나게 할 것처럼 두려워하는 듯했다.아마 가장 악랄한 사람은 박현아일 것이다.그날, 약물의 부작용으로 겨우 눈을 떴을 때 박현아는 서둘러 나를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가 도우미들에게 나를 씻기고 꾸미라고 지시했다.난 몸을 떨며 감히 박현아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본 도우미들의 눈빛은 어두웠다.“너희는 너희 일이나 똑바로 해, 아니면 너희를 잘라서 개한테 던져줄 테니까!”박현아가 도우미들에게 그렇게 협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박현아는 대외적으로 대단한 자선가로 알려졌었지만 저택 안에서는 모두 어떤 악마인지 잘 알고 있었다.박현아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경고했다.“곧 아주 중요한 손님이 널 보러 올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아니면 이런 벌로 끝나지 않을 거야.”“가인아, 착하지. 난 네가 잘할 거라 믿어.”박현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가득 찬 위협이 서려 있었다.난 이 손님이 정말 중요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본 순간, 난 모든 걸 이해했다.강주시의 신흥 IT 재벌, 수많은 사람이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협력 상대인 심지성.난 옆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현아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엄마, 게임이 시작됐네.’“심 대표님, 여자는 꾸미는 데 시간이 좀 걸리잖아요, 이해해 주실 거죠?”박현아는 허리를 굽히며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진승철은 일찍이 소파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차를 따르고 있었다.진승철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는 전혀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