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또 찾아왔다. 저녁 준비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CCTV를 열어 다시 확인해봤다. 아침에 봤던 그대로였다. CCTV가 고장 난 것 같았다. ‘혹시 정영호가 일부러 그런 걸까?’ 저녁을 다 차리고 식탁에 음식을 하나씩 옮겨놓았다. 그때 정영호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상쩍게 굴며 내가 보지 못하도록 케이크를 창고에 숨겼다. 나는 슬쩍 보았다. 그것은 프랑스식 무스 케이크로 아주 먹음직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오늘은 정여호의 생일도, 내 생일도 아닌데 왜 케이크를 샀는지 몰랐다. 그가 말을 꺼내지 않기에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정영호는 마치 식당의 손님 같았고, 나는 그저 서빙하는 사람 같았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오른손에 감긴 거즈를 갈아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거즈를 풀고 소염제를 바른 뒤 다시 감았다. 그런데 정영호는 옆에 누워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보고만 있었다. “있잖아, 경희야. 생각해봤어?” 갑자기 정영호가 말을 꺼냈다. 나는 놀라며 물었다. “뭘 생각해보라는 거야?” “이혼 말이야. 고민해봤냐고.” 정영호는 다시 물었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이 자식, 속셈이 뭐지?’ ‘결혼까지 해놓고, 단지 집 한 채를 노리고 있었던 건가?’ 나는 되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이혼하고 싶어?” 정영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가 나랑 사는 게 재미없다면 이혼해. 난 네 행복을 방해할 생각 없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영호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몸을 홱 돌려 등을 보였다. “잠이나 자!” “네가 그랬잖아. 나보고 시간 좀 달라고. 네 마음 병만 해결되면 우린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지 않아?” 나는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기다려 보자고.” 정영호는 더 짜증난 듯 말했다. “졸려 죽겠어.
“경희야, 내 친구한테 물어봤어!” 출근하자마자 유지민이 내 손을 붙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동료들이 있어서 나는 얼른 그녀에게 소리를 낮추라고 눈짓했다. 유지민은 입을 막으며 웃더니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 웬만한 방범문은 다 열 수 있대!”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주변 동료들이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가, 그리고 유지민을 붙잡아 앉히고 귓속말로 말했다. “지민아, 부탁 하나만 들어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야, 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그냥 말만 해.” 나는 사무실 문을 흘낏 확인한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 어깨를 감싼 채 귀에다 대고 몇 마디 했다. 유지민은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우리는 무려 10분 동안 계획을 짠 뒤 유지민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나는 사무실에 남아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중간중간 정영호가 몇 번이나 슬쩍슬쩍 사무실 근처를 맴도는 게 눈에 띄었다. 아마도 내가 지난번처럼 집에 몰래 돌아갈까 봐 감시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11시쯤 유지민한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해, 친구. 내 친구가 너희 집 지하실 방범문을 못 열었어.”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놀랐다. 유지민과 그녀 친구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 방범문을 열고 지하실 비밀을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도저히 안 열려. 그리고 이상하게도 열릴 듯하면 안에서 누가 문을 잠그는 느낌이야.” 나도 의심스러웠다. “알겠어. 고마워, 너희는 얼른 빠져나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제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신고하지 않으면 지하실의 비밀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고했다가 지하실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때는 정영호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될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정영호가 방해할 것을 예상하며, 나는 옆으로 몸을 살짝 움직여 언제든 차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정영호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신고해. 그건 네 권리니까.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봐. 신고한 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당신이 나한테 가정폭력을 휘둘렀으니까 이혼할 거야. 그리고 당신은 빈손으로 집을 나가야 해!” “그래?” 정영호는 교활하게 웃으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내 팔에 상처를 낸 건 너야. 이게 내가 가정폭력을 한 거라고?” “당신이 먼저 날 때렸잖아!” 나는 소리쳤다. “네가 먼저 날 찔렀잖아.” 정영호는 비웃으며 말했다. “가정 문제는 판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데, 경찰이 오면 이걸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정영호가 이렇게 뻔뻔할 줄이야! 맞다, 나도 다치고, 그도 다쳤다. 이렇게 되면 누가 옳은지 가리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다투는 건 지하실 때문이잖아. 너도 계속 의심하던 거 맞지?” 정영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러지 말고, 내가 너를 지하실로 데려가서 직접 확인시켜주면 어때?” 나는 정영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의심하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 먼저 약속부터 하자. 만약 지하실에 네가 의심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할지, 없으면 또 어떻게 할지.” 정영호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미리 약속을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정영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좋아, 서류 작성해.” “좋아. 어떻게 할 건데?” “지하실에 내가 의심하는 게 있으면 당신은 조건 없이 이혼하고 빈손으로 나가야 해. 하지만 없으면 내가 당신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평화롭게 지낼게. 오늘 일도 없던 일로 하자.” “좋아, 그렇게 하자!” 우리는 곧바로 종이와 펜을 찾아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
우리는 유지민과 친구를 정성껏 대접했고, 집안 분위기도 한층 더 좋아졌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웃으며 그녀들을 배웅했다. 10시, 우리는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은 평소와 똑같았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잠이 오지 않아 침대 머리에 반쯤 기대어 영상을 보고 있었다. 도시 뉴스에 관심을 두고 있던 나는 우리 회사 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뉴스가 재방송된 것을 보았다. 현장에서 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크게 다쳤으며, 그중 두 명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뺑소니 운전자는 사고 후 도주하여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BMW 운전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명했던 불량배 설수빈이라는 여성이었다. 당시 설수빈는 동급생들을 자주 괴롭혔고, 난 그녀와 약간 아는 사이였지만 깊게 교류하진 않았다. 갑자기 떠올랐다. 정영호가 예전에 설수빈와 연애를 했었다는 것을! 왠지 모르게 설수빈이 뭔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영호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자 난 그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물었다. “너 설수빈을 알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정영호는 온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화면을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휘저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 얘긴 왜 꺼내? 자자!” “근데 이 설수빈이...” “안 들려?! 자라고 했잖아!” 정영호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정영호도 곧바로 불을 끄고 누웠지만 우리는 그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심하게 다퉜다. 그는 나를 때렸으며 나는 작은 가위로 그를 찔렀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얘기를 나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아침을 준비했다. 바나나 팬케이크, 빵, 봄나물 만두, 호박 팬케이크, 샌드위치 플래터, 호두 대추 죽, 고구마 옥수수 죽 등 모두 정영호가 좋아하는 아침이다.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그렇게 ‘똑똑하니까’ 나는 그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응?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정영호가 이를 닦고 나서 나가서 아침을 보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좀 많이 했어. 남은 건 내가 싸서 지민에게 줄 거야.” 내가 부드럽게 설명했다. 정영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앉아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물어보았다. “호두 대추 죽 먹을래, 아니면 고구마 옥수수 죽?” “고구마 옥수수 죽, 설탕 좀 더 넣어.” 정영호는 호박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휴대폰을 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나는 고구마 옥수수 죽을 한 그릇 덜어 설탕을 넣고, 미리 준비한 파두 가루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릇을 그 앞에 놓았다. 몇 분 후, 그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말했다. “한 그릇 더 줘.” “알겠어.” 나는 준비한 게 많아서 또 한 그릇을 덜어 설탕을 넣고, 파두 가루도 넣어 다시 정영호 앞에 놓았다. 정영호는 또다시 그 죽을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죽 잘 끓였어!” 아주 드문 칭찬이다. 나는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더 먹을래?” “응, 반 그릇 더 줘. 아,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정영호는 배를 감싸고 몸을 굽히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정영호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쓰던 그릇을 들어 화장실로 가서 깨끗이 씻어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파두 가루도 깨끗이 정리했다. “여보, 이거 좀 이상한데, 빨리 와!” 몇 분 후, 정영호는 화장실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좀 이상해, 설사를 멈출 수가 없어...”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코를 막으며 다가갔다. “뭐 먹었어?” “아침에 더워서 차가운 음료 먹었어. 아, 이게 멈
“우리가 왔어!” 유지민이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드디어 도착했다. 유지민은 네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두 남자, 두 여자. 방범문을 파는 사장님과 세 명의 기술자였다. 그들은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왔고, 심지어 절단기도 가지고 왔다. 우리는 빠르게 지하실의 방범문 앞에 도착하여 방범문을 열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꺼운 방범문으로 은행에서 사용하는 그런 방범문과 비슷하게 매우 견고했다. 잠금 장치를 교체하는 방법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전기를 연결해 절단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슝! 슝! 두 남자 기술자가 교대로 절단기를 들고 문을 절단했다. 두 시간 가까이 작업 후, 드디어 방범문을 열었다. 나는 지하실 안에 불을 켰다. 세 개의 방 문은 열려 있었고, 하나의 방은 닫혀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는 그쪽으로 가서 문을 열려고 했다. 문을 밀어보니 밀리지 않았다. 분명히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유지민과 눈빛을 교환하며 두 사람 모두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를 끌어내야 했다. “문을 부셔!” 유지민이 한 기술자에게 명령했다. 이 문은 더 간단했다. 그 기술자는 바로 안에 있는 자물쇠를 부수고 발로 문을 찼다. 처음에는 한 명으로 문을 차서 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결국 문을 부수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안으로 비췄다. “오지 마! 너희들, 오지 마!” 안에는 한 여자가 숨어 있었다. 여자는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내 은색 긴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과일 칼을 들고 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들이댔다. 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웃고, 문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봤다. 그 안에는 휴지가 있었고, 그 위에는 남자의 배설물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정영호가 이 여자를 숨기고, 이곳에서 그녀와 미친 듯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누구야? 왜 내 집
정영호는 병원 병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나는 물었다“아직도 설사가 나?” “아직 나, 좀 줄어들긴 했어. 나 기저귀 차고 있어.” 정영호가 옆에 있는 기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사이에서 나오는 게 느껴져. 네가 좀 씻어주고 새 기저귀로 갈아줘.”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씻어?” 정영호가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너는 내 아내잖아. 내 아내가 씻어주지 않으면 누가 씻어주겠어?” 정영호의 당당한 태도를 보며 나는 웃었다. 이 순간, 내가 아내로서 유용하게 쓸모가 있었다. “너는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한테 말해야지.” “누구?” 정영호는 어리둥절했다. “설수빈.” 정영호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일어나 말했다. “누구? 설수빈? 너 뭐라고 하는 거야?” 정영호는 계속 모르는 척하였다. “설수빈 기억 안 나?”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영호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반복했다. “몰라, 들어본 적도 없어.”“그래?” 나는 정영호에게 말했다. “내 집 지하실에 네가 숨긴 사람, 그 사람은 누구야?” 정영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화난 척했다. “뭐야? 경희야, 내가 아파서 입원했는데 너는 위로는 안 해주고 시비를 걸어? 너 왜 그렇게 무정해?” 정영호의 말에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나는 웃으며 정영호가 하는 연기를 계속 지켜봤다.“나를 돌볼 거 아니면 그냥 가!” 정영호는 화가 나서 머리를 돌렸다.“갈 거야. 그런데 가기 전에 네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누군가 너를 보러 왔어.”나는 방 문을 가리켰다. 정영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 문을 보았다. 두 명의 경찰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정영호를 보고 병실로 다가왔다. 다른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은 경찰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정영호
난 계단 난간을 꽉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작은 별장은 내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해 주신 신혼집이다. ‘여긴 내 집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내가 지하실에 들어갈 수 없단 말이야?’ ‘남편이라는 사람이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독한 말을 내뱉는 거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화를 참았다. “정영호, 너 지금 나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정영호는 여전히 내 잠옷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여보, 우리 위로 올라가서 방에서 얘기하자. 거기서 다 설명해 줄게.”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캄캄한 지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내가 내려갈 수 없는데? 나한테 그런 권리조차 없다는 거야?” “나 운동하잖아. 아래에 내 소중한 물건들이 있는데, 지금은 아직 보여줄 수 없어.” 정영호는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 내 길을 막아섰다. “왜?” “지금은 때가 아니야. 때가 되면 꼭 보여줄게!” 속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또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다면 아까 올라올 때 굳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해야 했어?” “내가... 내가 좀 흥분했어. 그리고 나 원래 말은 좀 거칠어도 마음은 약해. 너도 알잖아.” 나는 냉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남자가 말은 거칠고 마음은 약하다고?’ ‘좋아. 그렇다면 내일 출근하고 나서 지하실에 내려가 확인해 볼 거야.’ ...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지하실에 분명 뭔가 수상한 게 있다. 그리고 그게 사소한 문제가 아닐 것 같다. ‘혹시 정영호가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옆에 누워 있는 그를 쳐다봤다. 그도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달빛 아래 그의 옆모습은 선이 뚜렷하고, 매우 잘생겨 보였다. 몸도 탄탄하고 매력적이었다. 처음 그가 나를 좋아했다고 쫓아다녔을 때 나는 설레기도 하고 믿기지 않
정영호는 병원 병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나는 물었다“아직도 설사가 나?” “아직 나, 좀 줄어들긴 했어. 나 기저귀 차고 있어.” 정영호가 옆에 있는 기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사이에서 나오는 게 느껴져. 네가 좀 씻어주고 새 기저귀로 갈아줘.”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씻어?” 정영호가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너는 내 아내잖아. 내 아내가 씻어주지 않으면 누가 씻어주겠어?” 정영호의 당당한 태도를 보며 나는 웃었다. 이 순간, 내가 아내로서 유용하게 쓸모가 있었다. “너는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한테 말해야지.” “누구?” 정영호는 어리둥절했다. “설수빈.” 정영호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일어나 말했다. “누구? 설수빈? 너 뭐라고 하는 거야?” 정영호는 계속 모르는 척하였다. “설수빈 기억 안 나?”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영호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반복했다. “몰라, 들어본 적도 없어.”“그래?” 나는 정영호에게 말했다. “내 집 지하실에 네가 숨긴 사람, 그 사람은 누구야?” 정영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화난 척했다. “뭐야? 경희야, 내가 아파서 입원했는데 너는 위로는 안 해주고 시비를 걸어? 너 왜 그렇게 무정해?” 정영호의 말에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나는 웃으며 정영호가 하는 연기를 계속 지켜봤다.“나를 돌볼 거 아니면 그냥 가!” 정영호는 화가 나서 머리를 돌렸다.“갈 거야. 그런데 가기 전에 네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누군가 너를 보러 왔어.”나는 방 문을 가리켰다. 정영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 문을 보았다. 두 명의 경찰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정영호를 보고 병실로 다가왔다. 다른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은 경찰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정영호
“우리가 왔어!” 유지민이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드디어 도착했다. 유지민은 네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두 남자, 두 여자. 방범문을 파는 사장님과 세 명의 기술자였다. 그들은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왔고, 심지어 절단기도 가지고 왔다. 우리는 빠르게 지하실의 방범문 앞에 도착하여 방범문을 열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꺼운 방범문으로 은행에서 사용하는 그런 방범문과 비슷하게 매우 견고했다. 잠금 장치를 교체하는 방법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전기를 연결해 절단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슝! 슝! 두 남자 기술자가 교대로 절단기를 들고 문을 절단했다. 두 시간 가까이 작업 후, 드디어 방범문을 열었다. 나는 지하실 안에 불을 켰다. 세 개의 방 문은 열려 있었고, 하나의 방은 닫혀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는 그쪽으로 가서 문을 열려고 했다. 문을 밀어보니 밀리지 않았다. 분명히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유지민과 눈빛을 교환하며 두 사람 모두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를 끌어내야 했다. “문을 부셔!” 유지민이 한 기술자에게 명령했다. 이 문은 더 간단했다. 그 기술자는 바로 안에 있는 자물쇠를 부수고 발로 문을 찼다. 처음에는 한 명으로 문을 차서 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결국 문을 부수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안으로 비췄다. “오지 마! 너희들, 오지 마!” 안에는 한 여자가 숨어 있었다. 여자는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내 은색 긴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과일 칼을 들고 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들이댔다. 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웃고, 문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봤다. 그 안에는 휴지가 있었고, 그 위에는 남자의 배설물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정영호가 이 여자를 숨기고, 이곳에서 그녀와 미친 듯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누구야? 왜 내 집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아침을 준비했다. 바나나 팬케이크, 빵, 봄나물 만두, 호박 팬케이크, 샌드위치 플래터, 호두 대추 죽, 고구마 옥수수 죽 등 모두 정영호가 좋아하는 아침이다.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그렇게 ‘똑똑하니까’ 나는 그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응?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정영호가 이를 닦고 나서 나가서 아침을 보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좀 많이 했어. 남은 건 내가 싸서 지민에게 줄 거야.” 내가 부드럽게 설명했다. 정영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앉아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물어보았다. “호두 대추 죽 먹을래, 아니면 고구마 옥수수 죽?” “고구마 옥수수 죽, 설탕 좀 더 넣어.” 정영호는 호박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휴대폰을 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나는 고구마 옥수수 죽을 한 그릇 덜어 설탕을 넣고, 미리 준비한 파두 가루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릇을 그 앞에 놓았다. 몇 분 후, 그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말했다. “한 그릇 더 줘.” “알겠어.” 나는 준비한 게 많아서 또 한 그릇을 덜어 설탕을 넣고, 파두 가루도 넣어 다시 정영호 앞에 놓았다. 정영호는 또다시 그 죽을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죽 잘 끓였어!” 아주 드문 칭찬이다. 나는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더 먹을래?” “응, 반 그릇 더 줘. 아,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정영호는 배를 감싸고 몸을 굽히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정영호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쓰던 그릇을 들어 화장실로 가서 깨끗이 씻어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파두 가루도 깨끗이 정리했다. “여보, 이거 좀 이상한데, 빨리 와!” 몇 분 후, 정영호는 화장실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좀 이상해, 설사를 멈출 수가 없어...”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코를 막으며 다가갔다. “뭐 먹었어?” “아침에 더워서 차가운 음료 먹었어. 아, 이게 멈
우리는 유지민과 친구를 정성껏 대접했고, 집안 분위기도 한층 더 좋아졌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웃으며 그녀들을 배웅했다. 10시, 우리는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은 평소와 똑같았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잠이 오지 않아 침대 머리에 반쯤 기대어 영상을 보고 있었다. 도시 뉴스에 관심을 두고 있던 나는 우리 회사 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뉴스가 재방송된 것을 보았다. 현장에서 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크게 다쳤으며, 그중 두 명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뺑소니 운전자는 사고 후 도주하여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BMW 운전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명했던 불량배 설수빈이라는 여성이었다. 당시 설수빈는 동급생들을 자주 괴롭혔고, 난 그녀와 약간 아는 사이였지만 깊게 교류하진 않았다. 갑자기 떠올랐다. 정영호가 예전에 설수빈와 연애를 했었다는 것을! 왠지 모르게 설수빈이 뭔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영호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자 난 그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물었다. “너 설수빈을 알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정영호는 온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화면을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휘저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 얘긴 왜 꺼내? 자자!” “근데 이 설수빈이...” “안 들려?! 자라고 했잖아!” 정영호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정영호도 곧바로 불을 끄고 누웠지만 우리는 그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심하게 다퉜다. 그는 나를 때렸으며 나는 작은 가위로 그를 찔렀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얘기를 나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정영호가 방해할 것을 예상하며, 나는 옆으로 몸을 살짝 움직여 언제든 차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정영호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신고해. 그건 네 권리니까.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봐. 신고한 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당신이 나한테 가정폭력을 휘둘렀으니까 이혼할 거야. 그리고 당신은 빈손으로 집을 나가야 해!” “그래?” 정영호는 교활하게 웃으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내 팔에 상처를 낸 건 너야. 이게 내가 가정폭력을 한 거라고?” “당신이 먼저 날 때렸잖아!” 나는 소리쳤다. “네가 먼저 날 찔렀잖아.” 정영호는 비웃으며 말했다. “가정 문제는 판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데, 경찰이 오면 이걸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정영호가 이렇게 뻔뻔할 줄이야! 맞다, 나도 다치고, 그도 다쳤다. 이렇게 되면 누가 옳은지 가리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다투는 건 지하실 때문이잖아. 너도 계속 의심하던 거 맞지?” 정영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러지 말고, 내가 너를 지하실로 데려가서 직접 확인시켜주면 어때?” 나는 정영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의심하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 먼저 약속부터 하자. 만약 지하실에 네가 의심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할지, 없으면 또 어떻게 할지.” 정영호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미리 약속을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정영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좋아, 서류 작성해.” “좋아. 어떻게 할 건데?” “지하실에 내가 의심하는 게 있으면 당신은 조건 없이 이혼하고 빈손으로 나가야 해. 하지만 없으면 내가 당신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평화롭게 지낼게. 오늘 일도 없던 일로 하자.” “좋아, 그렇게 하자!” 우리는 곧바로 종이와 펜을 찾아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
“경희야, 내 친구한테 물어봤어!” 출근하자마자 유지민이 내 손을 붙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동료들이 있어서 나는 얼른 그녀에게 소리를 낮추라고 눈짓했다. 유지민은 입을 막으며 웃더니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 웬만한 방범문은 다 열 수 있대!”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주변 동료들이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가, 그리고 유지민을 붙잡아 앉히고 귓속말로 말했다. “지민아, 부탁 하나만 들어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야, 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그냥 말만 해.” 나는 사무실 문을 흘낏 확인한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 어깨를 감싼 채 귀에다 대고 몇 마디 했다. 유지민은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우리는 무려 10분 동안 계획을 짠 뒤 유지민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나는 사무실에 남아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중간중간 정영호가 몇 번이나 슬쩍슬쩍 사무실 근처를 맴도는 게 눈에 띄었다. 아마도 내가 지난번처럼 집에 몰래 돌아갈까 봐 감시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11시쯤 유지민한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해, 친구. 내 친구가 너희 집 지하실 방범문을 못 열었어.”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놀랐다. 유지민과 그녀 친구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 방범문을 열고 지하실 비밀을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도저히 안 열려. 그리고 이상하게도 열릴 듯하면 안에서 누가 문을 잠그는 느낌이야.” 나도 의심스러웠다. “알겠어. 고마워, 너희는 얼른 빠져나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제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신고하지 않으면 지하실의 비밀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고했다가 지하실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때는 정영호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될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
저녁이 또 찾아왔다. 저녁 준비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CCTV를 열어 다시 확인해봤다. 아침에 봤던 그대로였다. CCTV가 고장 난 것 같았다. ‘혹시 정영호가 일부러 그런 걸까?’ 저녁을 다 차리고 식탁에 음식을 하나씩 옮겨놓았다. 그때 정영호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상쩍게 굴며 내가 보지 못하도록 케이크를 창고에 숨겼다. 나는 슬쩍 보았다. 그것은 프랑스식 무스 케이크로 아주 먹음직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오늘은 정여호의 생일도, 내 생일도 아닌데 왜 케이크를 샀는지 몰랐다. 그가 말을 꺼내지 않기에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정영호는 마치 식당의 손님 같았고, 나는 그저 서빙하는 사람 같았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오른손에 감긴 거즈를 갈아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거즈를 풀고 소염제를 바른 뒤 다시 감았다. 그런데 정영호는 옆에 누워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보고만 있었다. “있잖아, 경희야. 생각해봤어?” 갑자기 정영호가 말을 꺼냈다. 나는 놀라며 물었다. “뭘 생각해보라는 거야?” “이혼 말이야. 고민해봤냐고.” 정영호는 다시 물었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이 자식, 속셈이 뭐지?’ ‘결혼까지 해놓고, 단지 집 한 채를 노리고 있었던 건가?’ 나는 되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이혼하고 싶어?” 정영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가 나랑 사는 게 재미없다면 이혼해. 난 네 행복을 방해할 생각 없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영호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몸을 홱 돌려 등을 보였다. “잠이나 자!” “네가 그랬잖아. 나보고 시간 좀 달라고. 네 마음 병만 해결되면 우린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지 않아?” 나는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기다려 보자고.” 정영호는 더 짜증난 듯 말했다. “졸려 죽겠어.
아침이 밝았다.평소처럼 나는 정영호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침을 준비했다.그는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밥을 먹었다. 나와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마치 내가 그의 아내가 아닌 가정부 같은 느낌이었다.아침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차로 그를 회사까지 데려다줬다.우리 둘은 같은 향수 회사에서 일하며 둘 다 영업 업무를 하고 있었다.회사에 도착하자 나는 정영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동료에게 몇 마디를 전하고 곧바로 회사를 떠났다.운전 대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머릿속은 온통 지하실 생각뿐이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거실로 달려 들어갔다.그리고 곧바로 지하실로 향했다.하지만 내가 본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지하실 문이 바뀌어 있었다.언제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비밀번호가 필요한 방범문으로 교체되어 있었다.비밀번호 없이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문을 찍었다.혹시 이런 문에도 마스터키가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뭐 하는 거야?!”정영호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렸다.깜짝 놀란 나는 뒤돌아보았다.그는 걱정이 됐는지 몰래 따라왔던 것이다.정영호는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내 뺨을 힘껏 때렸다.“내가 뭐라고 말했어?!”나는 휴대폰을 쥔 채 차갑게 말했다.“네가 지금 나를 때렸어?”그는 여전히 화를 냈다.“내가 뭐라고 말했냐고 물었잖아!”나는 소리쳤다.“여긴 내 집이야! 내가 들어갈 자격도 없다고? 문을 바꾸려면 적어도 말은 했어야지!”“말하려 했다고! 네가 그냥 기다려주면 됐잖아!”정영호는 또다시 손을 올렸다.나는 몸을 뒤로 피하며 손을 들었다.“경찰에 신고할 거야.”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노가 온몸을 타고 올라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폭력을 쓰다니 앞으로는 더 심해질 수도 있다.정영호는 내 손을 잡으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신고를 하는 거야?”“내 집인데 왜 들어가지 못하냐고? 그리고 나를 때려? 신고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난 계단 난간을 꽉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작은 별장은 내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해 주신 신혼집이다. ‘여긴 내 집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내가 지하실에 들어갈 수 없단 말이야?’ ‘남편이라는 사람이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독한 말을 내뱉는 거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화를 참았다. “정영호, 너 지금 나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정영호는 여전히 내 잠옷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여보, 우리 위로 올라가서 방에서 얘기하자. 거기서 다 설명해 줄게.”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캄캄한 지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내가 내려갈 수 없는데? 나한테 그런 권리조차 없다는 거야?” “나 운동하잖아. 아래에 내 소중한 물건들이 있는데, 지금은 아직 보여줄 수 없어.” 정영호는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 내 길을 막아섰다. “왜?” “지금은 때가 아니야. 때가 되면 꼭 보여줄게!” 속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또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다면 아까 올라올 때 굳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해야 했어?” “내가... 내가 좀 흥분했어. 그리고 나 원래 말은 좀 거칠어도 마음은 약해. 너도 알잖아.” 나는 냉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남자가 말은 거칠고 마음은 약하다고?’ ‘좋아. 그렇다면 내일 출근하고 나서 지하실에 내려가 확인해 볼 거야.’ ...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지하실에 분명 뭔가 수상한 게 있다. 그리고 그게 사소한 문제가 아닐 것 같다. ‘혹시 정영호가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옆에 누워 있는 그를 쳐다봤다. 그도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달빛 아래 그의 옆모습은 선이 뚜렷하고, 매우 잘생겨 보였다. 몸도 탄탄하고 매력적이었다. 처음 그가 나를 좋아했다고 쫓아다녔을 때 나는 설레기도 하고 믿기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