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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운생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5 15:26:22
둥그랬던 달은 이내 기울어졌다.

엄마는 문득 나를 떠올린 듯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더니 입가를 비틀며 중얼거렸다.

“명절인데도 집에 오질 않네. 밖에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언니는 소파에 누워 기분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 이서아가 그랬어요. 명절엔 집에 못 온다고. 아마 남자친구랑 보내려고 그런 걸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서 남자친구를 만들었다고 그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니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쏘아붙였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오래 안 오는 건 분명 뒤가 구린 일이 있기 때문이지.”

“대학 들어가자마자 남자 만나고 다닌다고? 그렇게 남자가 필요하면 차라리 술집에 가서 몸이나 팔아. 그러면 큰돈이나 벌어서 집에 갖다 줄 거 아니야.”

“학교에서 만나봤자 뭐가 좋아? 결국 공짜로 몸이나 줬겠지.”

엄마는 한동안 쉼 없이 날 비난했다.

“애초에, 이 불구자를 살리겠다고 애쓰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됐겠어? 내가 의대 석사인데 약국에서 벌이도 안 되는 일이나 하고 남들 눈치나 보고 살아야 했냐고.”

도대체 엄마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니가 인형을 나무 위에 올려놨다며 내가 대신 찾아달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오른손을 다치게 된 것이었는데, 엄마는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날 노려보며 손바닥으로 뺨을 세게 때렸다.

“이 못된 년, 네 잘못을 왜 언니한테 덮어씌워? 네 언니가 얼마나 착한데 그런 짓을 하겠어?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그러고는 다친 오른손을 힘겹게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

“네가 날 이 모양으로 만들 줄 알았으면 네가 태어나기 전에 그냥 없애버렸어야 했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미 죽었는데도 이런 기억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언니는 엄마를 안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서아 때문에 신경 쓰실 필요 없잖아요. 엄마에겐 제가 있잖아요!”

언니의 목소리에는 달콤함이 묻어났다. 늘 이렇게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꿔가며 두 가지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래, 내 딸 승아가 최고야. 서아는 마음대로 살다가 사고나 치고 인생 망치는 거나 봐야지. 나중에 어디까지 망가지는지 한 번 두고 보자고.”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왜 같은 자식인데, 엄마 아빠 눈에는 언니만 보일까?’

억울하고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억지로 그녀들 사이에 끼워 넣고, 엄마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평생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아무런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

추석에 잠시 나를 떠올리더니 다시금 날 기억의 쓰레기통에 버린 그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아빠가 기쁜 얼굴로 문을 열며 들어왔다.

아빠는 손에 초대장을 들고 있었고, 너무 급했는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가 이렇게 들떠 있는 모습을 본 것은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지역 대회 미술 경연에서 1등을 했고, 아빠는 우수 학생의 학부모 대표로 무대에 섰었다. 그때는 엄마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아빠만큼은 나를 감싸줬었다.

아빠는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승아야, 결승 결과 나왔어! 네가 금상을 받았단다. 이번 주에 직접 가서 시상식에 참석해야 한대!”

언니는 흥분해 방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엄마는 언니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딸 너무 대단하다. 엄마가 너 정말 자랑스럽구나.”

엄마는 언니의 이마에 뽀뽀하고 웃었다.

한쪽 구석에는 내 뼈와 살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외로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뒤집혔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외치는 듯했다.

그 말라버린 뼈들이, 나를 원망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듯했다. 나는 힘겹게 조각상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무기력과 절망감만이 날 휘감았다.

그 순간, 아빠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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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9화

    [심서준 번외편]처음 이서아를 본 건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밝은 미소로 말했다.“저를 억지로 배려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서아의 용기 있는 모습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녀를 본 건 화실이었다. 왼손으로 떨리는 손끝에 조각칼을 쥐고 뭔가를 연습하고 있었다.누군가 서아의 아빠가 꽤 유명한 조각가였다고 했다. 서아도 재능이 뛰어났지만, 불행한 사고로 조각을 포기해야 했다고 들었다.그날, 나는 화실 밖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서아가 버린 석고상을 몰래 주워 갔다. 서아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아의 가정은 따뜻하고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어느 날, 벽 모퉁이에서 이승아가 서아를 몰아세우는 장면을 보았다. 승아는 학교에서 공인된 미대의 천재였고, 한때 나를 쫓아다니던 사람이었다.승아는 서아를 바닥에 밀어 넘어진 뒤, 서아의 잘린 손가락을 짓밟으며 비웃었다.“이 병신아, 아직도 포기 못 한 거야? 손가락도 없으면서 무슨 조각이야?”서아는 바닥에 쓰러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뒤에서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경찰이다!”그러자 승아는 서아를 놔두고 떠났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서아는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풀처럼 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그녀를 몰래 지켜봤다. 서아의 삶은 단조로웠다. 수업과 도서관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한동안 서아를 볼 수 없었다.걱정되어 서아의 룸메이트에게 물었더니, 집안 사정으로 장기 휴학을 했다고 했다.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그 무렵, 승아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조각 금상 수상작이 전시된 전시회에서, 나는 일부러 승아를 찾으러 갔다.그 작품을 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 조각상은 너무도 서아를 닮아 있었다. 그야말로 실제 사람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나는 승아에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8화

    엄마는 언니를 품에 안으며 질책했다.“너 왜 이렇게 조급해하니? 다른 사람들한테 입이 있으면 너한테도 입이 있잖아. 그 애는 이미 재가 됐고, 지금은 네가 뭐라 말하든 다 사실이 되는 거야.”엄마의 침착함과 강단은 여전히 대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언니의 뒤처리를 위해서만 발휘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그 말에 언니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우리 동생은 민감하고 착한 아이였어요.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자신감 넘치고 밝은 모습만 보였죠. 하지만 사실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어요. 의사도 그녀가 심각한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요.][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돕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동생은 살아 있을 때도 고통스러웠는데, 죽어서까지 이런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다니, 가족으로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부디 서아를 편히 보내주세요.]이 글 아래에는 엄마가 위조한 유서를 증거로 첨부하자, 한 줄 한 줄이 마치 심금을 울리는 듯했다.팬들은 즉각 반응하며, 승아를 두둔하고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어머, 승아가 동생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니, 정말 감동적이네!]...댓글은 승아를 동정하고 칭찬하는 말들로 넘쳐났고, 그녀의 인기는 치솟으며 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한편, 아빠는 바빠진 인터뷰와 강연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일정으로 꽉 찼다. 그는 훌륭한 자녀를 키우는 비결을 자랑하며 여러 매체에 출연했다.엄마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스님에게서 부적을 사 왔고, 그것이 죽은 영혼을 지옥에 묶어 다시는 환생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다. 엄마는 매일 부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했다. 그러고는 기도 끝에 낮은 목소리로 나를 저주했다.“이 못된 것아, 짧은 생이나마 네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는 밑에서나 얌전히 있어.절대 네 언니를 괴롭히지 마.”나는 그 모습을 비웃으며 바라봤다. 만약 그녀가 내 존재를 볼 수 있었다면, 정말로 기절했을 것이다.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7화

    차 안에서 언니는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엄마, 왜 그걸 가져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안해요.”엄마는 드물게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입 닥쳐. 지금은 조용히 지내는 게 최선이야. 지금까지는 불법적인 시체 처리 정도로 끝날 수 있어. 이유도 충분하니, 잘만 조율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어.”“네가 계속 이렇게 떠들어대면 의심을 사고, 나중에는 네가 감옥에 갈 줄 알아라.”그 말에 겁을 먹은 언니는 입을 닫았다. 곧 나는 그들이 말하는 말이 무엇인지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아빠는 그동안 예술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고,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관계들을 활용해 약간의 뇌물을 돌리고, 사건을 무마시켰다.경찰은 단순히 구두로 경고하고 나서, 내 유골을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동시에 언니는 기자들 앞에서 발표했다.“금상 수상작은 장애를 가진 동생을 모델로 한 작품이에요.”“며칠 전 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동생을 홀로 두기 싫어 조각상과 함께 화장하여 묻기로 결정했어요.”또한, 언니는 이번 전시회에서 작품을 철회하며, 이미 수상한 금상 또한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언니의 발표 이후, 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람들은 외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고운 언니라고 칭찬했다. 그녀의 팬들은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언니라며 찬사를 보냈다.화장이 이루어지던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니는 내 유골함을 안고 서서 억지로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나는 화가 나 언니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녀를 밀어낼 수 없었다.역겨웠다. 이 세상도, 이 상황도 모두 역겨웠다. 나는 지쳐 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이 내 유골함을 작은 납골당 칸에 집어넣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직사각형의 비석에는 사랑하는 딸, 이서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붉게 물든 그 글자는 나에게 모욕 그 자체였다.눈이 흐려지며, 멀리 납골당 끝자락에 누군가의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다시 보니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6화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엄마는 거울 속 초췌해진 자기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듯, 만족한 표정이었다.하지만 경찰서에 도착해 심서준을 보았을 때, 나는 순간 굳어버렸다.‘정말로 나를 위해 우리 집에 온 것이었단 말인가?’엄마는 그를 보자마자 소리치며 달려들었다.“이 도둑놈아, 우리 물건 내놔!”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엄마는 계속 그를 쫓아다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서준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애썼다.뒤에서 이승아는 어설프게 그들을 말리는 척하고 있었다. 경찰은 심서준을 잠시 쳐다보더니, 엄마를 붙잡아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누군가 당신들의 조각상에 사람 뼈가 들어 있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현재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 중입니다.”엄마는 얼굴을 감싸며 울부짖었다.“확인할 필요 없어요. 제 막내딸이에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놀라 굳어버렸다. 서준은 한순간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했고, 그의 얼굴은 충격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서준은 엄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나는 한쪽에서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서준의 진심 어린 걱정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엄마는 흐느끼며 연극을 이어갔다.“우리 서아는 정말 불쌍한 아이였어요. 장애 때문에 늘 자신감이 없었죠. 그날 집에 돌아왔더니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유서를 남겨둔 걸 발견했어요.”엄마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나는 그것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놀랍게도, 그것은 분명 내 필체로 쓰여 있었다.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장애로 인해 평생 조롱받으며 살아왔고, 더는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해.][하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조각상만큼은 저와 함께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엄마아빠한테 부탁드릴게요. 저를 조각상 속에 넣어 작품으로 만들어주세요.]짧은 문장이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눈물로 쓰인 것처럼 보였다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5화

    아빠가 시내에서 돌아오더니 비로소 조각상의 수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지하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엄마는 당황해서 소리쳤다.“분명 여기 있었잖아! 문도 잠겼는데 이렇게 큰 게 어떻게 없어질 수가 있어?”언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그럴 리 없어요. 그럴 리가.”엄마는 추궁하듯 물었다.“너, 심서준을 지하실에 들어가게 했니?”언니는 머뭇거리며 말했다.“그가 마침 전시장에 갈 일이 있다고 해서 조각상을 옮겨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아빠가 어젯밤에 조각상 수리를 다 끝낸 줄 알았어요.”언니는 황급히 변명하며 아빠를 가리키고는 원망스럽게 말했다.“다 아빠 탓이에요! 어젯밤에 수리만 끝냈다면 오빠가 조각상을 가져가도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모든 게 아빠 잘못이에요.”아빠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걔가 뭔가 눈치챘으니까 온 거겠지. 그런데도 너는 그를 지하실에 들여보냈다고?머리가 있기는 한 거냐, 이 멍청한 것아!”언니는 엄마 품에 뛰어들어 흐느끼기 시작하자. 엄마는 아빠를 노려보며 말했다.“당신은 왜 이렇게 몰아세워?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승아를 탓하면 뭐가 달라져?”그러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말했다.“서아한테 전화해서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해. 이 못된 게 내 전화를 무시하기만 해봐라.”아빠는 잠시 주저하며 물었다.“그, 그건 혹시...”엄마는 차갑게 말했다.“그런 걱정은 하지 마. 걔는 병신이야. 살아 있어도 쓸모없어. 이번 기회에 우리가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돼.”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나는 이미 죽었다.언니는 엄마 품에서 나오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서준 오빠가 온 이유가 틀림없이 그년 때문이에요. 그 못된 게 뭐가 좋다고, 도대체.”나는 옆에서 떠돌며 그녀를 차갑게 바라봤다. 이제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려나? 나를 죽였다고 이제 인정하려나?엄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언니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4화

    눈이 마주칠 뻔한 순간, 엄마는 재빨리 몸을 숙여 끊어진 손가락을 손바닥에 감쌌다. 그리고 심서준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차 안에서 아빠는 잔뜩 취한 채 방금까지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떠올리며 코를 골고 있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며, 나머지 손으로 끊어진 손가락을 움켜쥔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엄마는 휴대폰을 꺼내 내 프로필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망설였다. 결심이 선 듯, 음성 메시지 녹음 버튼을 누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아야, 요즘 바쁘니? 시간 되면 집에 한 번 와. 엄마가 널 보고 싶구나.”나는 놀라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봤다.백미러 속에서 보이는 엄마의 날카롭고 차가운 얼굴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엄마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입을 삐죽이며 욕을 퍼부었다.“이 못된 것, 이제는 잘난 척하는 거야? 내 전화까지 무시하다니.”그러고는 뒤돌아 언니에게 말했다.“승아야, 서아가 너한테 연락하면 이번에 안 오면 영원히 오지 말라고 전해. 그냥 밖에서 죽어버리라 해.”그러자 언니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엄마, 걔가 안 오면 안 오는 거죠. 집에 와서도 죽은 듯이 있으니까 답답하기만 했잖아요.”엄마는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네 조각상은 잘 복구됐고,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무사히 있어야 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엄마는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나는 얼음물에 빠진 듯 속부터 얼어붙었다. 엄마가 나를 부르려 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고가 나면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언니도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비비며 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언니는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엄마, 서준 오빠가 내일 우리 집에 온대요! 밥도 먹고 부모님도 뵙고 싶다는데요.”엄마는 잠시 의아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3화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만약 서아였으면 더 잘했을 텐데.”엄마와 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언니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엄마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저도 이서아만큼은 못하죠. 그래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엄마는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아빠를 노려보았다.“서아 얘기는 왜 꺼내는 건데?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금은 아주 쓸모없는 폐물이잖아.”“식탐이 그리 많으니 그 꼴이 나지. 개랑 고기 싸우다 손가락 물리는 건 당연하지.”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땅에 웅크렸다. 손가락이 잘린 자리에서 고통이 다시 밀려왔다.그때가 떠올랐다. 엄마는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밥도 제대로 먹게 두지 않았다.어느 날, 언니가 나에게 고기 한 점을 몰래 주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그 고기를 들고 몰래 아래층으로 내려가 먹었다.그때 어디선가 개 여러 마리가 달려왔다. 나는 고기를 놓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손가락 세 개를 물어뜯겼고 왼손마저 심하게 다쳤다.엄마와 언니가 달려왔을 땐, 나는 고통에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언니는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외쳤다.“엄마, 서아한테 개랑 고기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안 들어요!”엄마는 그 말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하며 나를 발로 걷어찼다.“이 못난 것, 집에서 너 먹을 거나 입을 게 부족해? 개랑 고기 싸우다니, 똥이랑도 싸우지 그랬어? 물려 죽어도 싸.”아빠는 내가 손가락이 잘린 걸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엄마는 혹시 내가 광견병이라도 걸려 자신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욕을 퍼부으며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그날 이후, 내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세 개가 사라졌고 왼손도 거의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조각칼을 쥘 수 없었다.아빠는 모든 관심을 언니에게 쏟아부었다. 언니가 아무리 가망 없는 나무토막 같아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결국 아빠는 증명했다. 훌륭한 조각가의 손길 아래라면 나무토막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시상식 당일, 아빠와 엄마는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2화

    둥그랬던 달은 이내 기울어졌다.엄마는 문득 나를 떠올린 듯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더니 입가를 비틀며 중얼거렸다.“명절인데도 집에 오질 않네. 밖에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언니는 소파에 누워 기분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엄마, 이서아가 그랬어요. 명절엔 집에 못 온다고. 아마 남자친구랑 보내려고 그런 걸 거예요.”‘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서 남자친구를 만들었다고 그래?’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니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쏘아붙였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오래 안 오는 건 분명 뒤가 구린 일이 있기 때문이지.”“대학 들어가자마자 남자 만나고 다닌다고? 그렇게 남자가 필요하면 차라리 술집에 가서 몸이나 팔아. 그러면 큰돈이나 벌어서 집에 갖다 줄 거 아니야.”“학교에서 만나봤자 뭐가 좋아? 결국 공짜로 몸이나 줬겠지.”엄마는 한동안 쉼 없이 날 비난했다.“애초에, 이 불구자를 살리겠다고 애쓰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됐겠어? 내가 의대 석사인데 약국에서 벌이도 안 되는 일이나 하고 남들 눈치나 보고 살아야 했냐고.”도대체 엄마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언니가 인형을 나무 위에 올려놨다며 내가 대신 찾아달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오른손을 다치게 된 것이었는데, 엄마는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날 노려보며 손바닥으로 뺨을 세게 때렸다.“이 못된 년, 네 잘못을 왜 언니한테 덮어씌워? 네 언니가 얼마나 착한데 그런 짓을 하겠어?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그러고는 다친 오른손을 힘겹게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네가 날 이 모양으로 만들 줄 알았으면 네가 태어나기 전에 그냥 없애버렸어야 했어.”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미 죽었는데도 이런 기억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언니는 엄마를 안으며 상냥한 목소

  • 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   제1화

    한밤중, 지하실.엄마는 수술용 메스를 들고 내 살을 천천히 갈라내고 있었다. 칼끝은 정확했고, 움직임은 능숙했지만, 오랜만에 손에 쥔 탓인지 약간 떨리고 있었다.잘려 나간 살덩이들이 가지런히 쓰레기봉투 안으로 던져졌다. 언니인 이승아는 팔짱을 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엄마, 우리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아요? 저 너무 무서워요.”나는 어깨 너머로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며칠 전이었다. 엄마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는데, 지하실로 와보라는 내용이었다.별다른 의심 없이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내 머리를 내리쳤고, 극심한 통증 뒤에 의식을 잃었다.눈을 떴을 때 내가 본 것은 산산조각 난 내 몸이었다.얼굴과 몸은 산성이 강한 유산에 흠뻑 젖어, 원래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언니는 겁에 질려 몸을 떨며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엄마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경찰을 부르면 뭐가 달라지니? 이 사람은 자기 발로 우리 집에 들어온 거고,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야. 그럴 시간에 제대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승아야, 너 곧 조각 대회 나가잖아. 마침 잘됐어.”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가 끼어들었다.“맞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승아야, 네 조각 실력이 평범하긴 한데, 진짜 사람 뼈를 모델로 쓰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야.”나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 뼈를 언니의 조각 모델로 쓴다고?’화가 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휘저으며 따지려고 했지만 메스는 멈추지 않았다. 칼날은 내 손바닥을 관통하며 내 몸을 계속해서 갈랐다.눈앞에서 엄마는 내 뼈대를 하나씩 분리해 내고 있었다. 핏물과 살점이 튀어 그녀의 옷을 더럽혔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끔찍했지만, 놀랍도록 손놀림은 정확했다. 나는 엄마의 기술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어릴 적, 장난치다가 나무에서 떨어졌던 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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