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이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싼 채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며 바닥에 흥건히 퍼진 핏자국을 발견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상혁이는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듯 다가오려 했지만, 이은정이 그의 팔을 붙잡고 가로막았다.“자기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왜 저 여자랑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 건데?”“혹시 저 여우 같은 년이 자기를 꼬드긴 거야?!”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상혁에게 몰려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진 대표님! 방금 저 여자가 얼마나 뻔뻔했는지 아세요? 감히 사모님을 때렸다니까요!”“맞아요! 남자라면 가끔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모님, 한 번만 진 대표님 용서해 주세요!”상혁이는 이은정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이윽고 상혁이의 인내심이 폭발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고함을 질렀다.“닥쳐! 다들 입 좀 다물라고!”상혁이의 고함에 사람들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그제야 상혁이는 나를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시은아,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나는 상혁이의 손길을 차갑게 쏘아보며 비웃었다.그리고 그가 내밀던 손을 매몰차게 밀어냈다.“꺼져. 손 대지 마.”상혁이의 반응에 당황한 이은정은 입술을 떨다가 이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자기야, 설마... 정말 저 여자한테 마음이라도 준 거야?!”“저 배 속에 든 애가 누구 애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감싸겠다고?”“우리 웨딩사진까지 다 찍었는데!”난 참을 수 없는 아랫배의 고통에 손을 짚으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따뜻한 액체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며 흰색 카펫을 붉게 물들였다.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절망감이 나를 덮쳤다.‘왜? 진상혁,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그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허무함만이 가슴에 밀려왔다.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상혁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를 향한 분노로 타들어 가는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진상혁, 정말 믿기지 않아. 우
호텔 사장은 이은정을 경멸스럽게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 비굴한 미소를 가득 띠고 내게 다가왔다.“강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완전히 오해였어요! 저희도 그 여자한테 속아서 이렇게 된 겁니다!”그의 변명에 소라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께서 오늘부터 이 호텔에 대한 모든 투자를 철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법정에서 해결하시면 되겠네요.”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이 등장하자 다들 눈에 띄게 초조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은정을 두둔하던 그들은 이내 태도를 바꿔 서로 앞다투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전 손도 안 댔습니다! 그리고 먼저 때린 건 이은정 씨였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맞아요, 저희는 그저 말리려고 했을 뿐이에요!”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이 얼마나 역겹고 비열한 사람들인가.눈을 감은 채, 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그 얘기들, 경찰한테 하세요.”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아이를 잃으셨습니다.”나는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히 동의서에 서명했다.잃었다면 잃은 대로.어차피 상혁이와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이 아이도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든 작은 해프닝으로 남을 뿐이었다.수술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나는 그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나와 상혁이의 7년도 이걸로 끝이 났다.병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에 모여 있었다.소라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강 대표님, 회장님께서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중이긴 한데 조금 시간이 걸리실 것 같습니다. 경찰은 우선 진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그리고 구석에서 여전히 화가 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는 이은정에게 시선이 멈췄다.“내 결혼식장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손실이 약 10억. 그리고 한정판 악어가죽 가방을 망가뜨려 4억. 거기다 나를 폭행해 유산까지 시켰으니...”
억 단위의 손해배상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은정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으로 상혁이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자기야, 제발 나 좀 도와줘.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눈물로 범벅이 된 이은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말했다.“자기야, 우리 혼인신고는 안 했어도 부부 사이잖아. 자기도 강시은이랑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근데 왜 나를 선택하지 않는 거야? 왜!”왜냐고? 강씨 가문에서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네가 줄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크니까.이은정은 아직도 상혁이를 재벌가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확실히 깨달았어. 진상혁과 결혼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야.”내 말이 떨어지자, 상혁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은정을 쳐다보는 것도 피하며 구겨진 옷깃을 매만지더니 차분한 척 입을 열었다.“결혼식은 취소할 수 없어. 이미 모든 친척과 지인들을 초대했는데 지금 와서 취소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그러더니 황급히 말을 고쳤다.“내 말은... 강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냐고.”그때였다.병실 문 밖에서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체면? 네 주제에 체면값이라고 할 만한 게나 있어?”문이 열리며 나타난 건 바로 우리 아빠였다.아버지는 강서 그룹의 회장으로 그 단호한 성격과 무게감 있는 카리스마로 유명한 사람이었다.아빠의 얼굴에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분노가 가득했다.병실에 있던 경찰들도 상황이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조용히 물러났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병실에는 숨소리조차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적막이 감돌았다.아빠는 성큼성큼 다가와 누워 있는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시은아, 아빠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그 말과 함께 아빠는 곧장 몸을 돌려 상혁이를 바라보았다.날카롭게 번뜩이는 그 눈빛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진상혁, 네가 감히 내 집에 들어와 기생하려고 해? 그것도 이따위로?”그제야
몸조리를 마친 뒤로 나는 제대로 먹고 마시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틈틈이 소라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며 마음의 짐도 조금씩 덜어냈다.하지만 내가 이은정의 허영심을 너무 얕본 것 같다.어느 날 비행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소라가 휴대폰을 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강 대표님, 이은정이 또 무슨 짓거리 했는지 보실래요?”나는 소라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최근 소라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상혁이 문제를 정리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나는 차분히 말했다.“소라야, 자꾸 강 대표라고 하지 말고 그냥 언니라고 불러. 괜히 거리감 느껴지잖아.”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근데 이은정이 이번엔 또 뭐 했는데?”소라는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이건 쇼를 넘어서 그냥 자폭이에요. 언니, 직접 보세요. 진짜 웃기지도 않아요.”화면 속에는 이은정이 비비크림 범벅에 두꺼운 아이라인을 그린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악행을 고발하고 있었다.영상 속 이은정은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울먹였다.“저는 진상혁 씨랑 대학 때부터 정말 사랑했는데 강시은 씨가 나타나서 저희를 갈라놨어요. 돈 많고 힘 있다고 사람 마음마저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그뿐만이 아니었다.이은정은 공들여 만든 80페이지짜리 PPT를 띄우며 나와 상혁이의 스캔들 사진을 증거라며 공개했다.심지어 우리 둘의 웨딩사진이라며 합성 사진까지 내밀었다.채팅창에서는 정의의 사도라는 닉네임을 단 누군가가 이은정을 위로하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이은정 씨 진짜 불쌍하네. 저 여자가 사람 인생 망쳤네!][결혼식까지 준비 다 끝났는데 돈으로 남의 남자를 빼앗아 가다니! 너무하네!][이은정 씨는 이 일로 직장도 잃고 정신까지 피폐해졌는데 강시은 씨는 10억 넘는 손해배상까지 요구한다네요. 이건 사람 죽이겠다는 거잖아요!]소라는 휴대폰을 내려치며 짜증을 냈다.“진상혁 그 사람 눈이 진짜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언니 같은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저런 여
그 시각, 이은정은 상혁이가 사준 명품 가방을 흔들며 자신의 라이브 방송을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었다.방송은 예상 외로 급격히 인기를 끌며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그런데... 화면 속 방의 인테리어가 왠지 익숙했다.본능적으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머릿속에 스친 황당한 생각이 점점 명확해졌다.설마 이럴 리가...?확인하기 위해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상혁이와 함께 찍었던 사진 중 하나를 골라 확대하고 또 확대했다.역시 사진 속 배경과 이은정의 라이브 방송에 비친 방의 구조는 완벽히 일치했다.나는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라앉히고 소라를 불렀다.“소라야, 법무팀 준비시켜. 같이 갈 데가 있어.”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소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네? 어디요?”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이은정한테 선물 하나 전해줘야지.”10분 뒤, 난 상혁이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하고 주소 하나를 메시지로 보냈다.네티즌들이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좋아, 제대로 된 쇼를 보여줄게.차 안에서 나는 이은정의 SNS 계정을 살펴보며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했다.상혁이가 얼마나 이은정을 물심양면으로 챙겼는지 그 흔적이 역력했다.진 사모님 행세를 이렇게까지 즐겼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다.30분쯤 뒤, 나는 소라와 법무팀을 대동한 채 이은정의 라이브 방송이 진행 중인 집 앞에 도착했다.쿵!묵직한 발길질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이은정은 한 손에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표정을 잠시 지었다.하지만 이내 감정을 억누르고 준비된 듯한 태도로 카메라를 향해 연기를 시작했다.“여러분, 보세요! 바로 이 여자예요!”이은정은 울먹이며 내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이제는 집까지 찾아와서 괴롭히네요! 정말 너무해요...”채팅창은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와, 진짜 악질이네
상혁이는 내 뺨을 맞고 나서 얼굴을 감싼 채 반박은커녕 한사코 변명만 늘어놓았다.“시은아, 내 말 좀 들어줘. 그 집은 정말 이은정한테 임대한 거야. 내가 널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상혁이의 비겁하고 한심한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나는 이은정이 켜둔 라이브 방송용 휴대폰을 확 낚아챘다.머리를 정리한 뒤, 일부러 이은정의 말투를 흉내 내며 카메라를 향해 비웃는 듯 말했다.“여러분, 어쩌죠? 방금까지만 해도 이은정 씨가 자기 집이라더니 지금 주인이 나타나니까 임대한 집이라네요. 자, 여러분은 누구 말을 믿으시겠어요?”순간 정적이 흐르던 채팅창은 곧 폭발하듯 댓글로 가득 찼다.[와, 이 누님 미모랑 재력 클래스 대박! 진짜 멋있어!][아, 이거 제대로 망신당했네! 뒤통수 맞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우리 진 대표 등장! 변명이나 잘해 보시죠!]나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듯 뒤에 서 있던 법무팀 직원에게 지시했다.“바로 고소하세요. 이은정을 주거침입죄로 신고합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이은정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그 서류를 확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찢어진 서류를 바닥에 뿌린 이은정은 뻔뻔하게 나를 노려보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웃음을 터트렸다.“좋아요. 이제 타인의 재산 훼손죄도 추가하죠.”법무팀 직원도 그 당돌한 행동에 잠시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 추가 진행하겠습니다.”그 순간, 상혁이가ㅏ 이은정을 뒤로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너 미쳤어? 네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이 난리를 쳐? 너 때문에 나 완전히 망했다고! 이젠 만족해?!”이은정은 그 말에 놀란 듯 움찔하더니 이내 눈물로 얼굴을 뒤덮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내가 이 모든 걸 누구를 위해 했는데...”그러자 상혁이가 비웃듯이 외쳤다.“누구를 위해? 네 자신을 위해겠
거울 앞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던 중, 호텔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의 호화 결혼식장이 난자판이 됐습니다. 한 번 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목소리엔 걱정스러운 척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그 안에 깃든 비웃음은 숨기지 못했다.난장판이라고?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 결혼식을 위해 반년 동안 정성을 쏟고 수백만 원을 들였는데 누가 감히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거야?게다가 내일은 나와 7년을 연애한 예비 신랑, 진상혁과의 결혼식이었다.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고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상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상혁아, 결혼식장에 문제 생겼어. 빨리 와줘.]그렇게 핸드백을 들고 황급히 호텔로 달려갔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매니저의 지나치게 아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이고, 진 사모님! 이렇게 젊고 아름다우시다니요! 진 대표님과 정말 천생연분이세요.”“그래서 결혼식 준비하는 내내 신랑 얼굴을 못 본 이유가 따로 있었네요. 원래 와이프가 따로 계셨다니!”“사모님, 우리 연락처 교환하시죠? 앞으로 호텔 프로젝트 생기면 사모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진 사모님?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물결치는 긴 머리와 볼룸감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여자가 매니저의 명함을 거만한 게 받으며 말했다.“좋아요. 그런데 먼저 이 뻔뻔한 불륜녀부터 정리해야겠어요!”“오늘 당신의 공로는 잊지 않을게요!”나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정성스럽게 꾸며놓았던 꽃 아치 입구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고급 샴페인 타워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거기에 더해 바닥에는 썩은 채소와 달걀 껍데기들이 널려 있었다.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화려했던 그 결혼식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이를 악물며 간신히 분노를 눌러 삼키고 물었다.“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짝!대답 대신 한 여자가 내 뺨을 후려쳤다.“내가 그랬어! 오늘 내가 네 꼴을 제대로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결혼식 안 한다고? 좋아. 그럼 위약금은 어떻게 할 건데?”눈길을 돌려 난장판이 된 결혼식장을 쭉 훑어보고 호텔 매니저를 차갑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그리고 내가 10억 들여서 준비한 이 결혼식장은? 당신들이 이걸 다 보상할 수 있긴 해?”그러자 이은정이 비웃으며 내 머리채를 확 잡아챘다.“보상? 네가 쓴 돈이 원래 누구 돈인데! 우리 남편 돈으로 이렇게 호화롭게 꾸며놓고도 보상을 요구해? 진짜 뻔뻔하네.”머리채를 잡힌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그런데 이은정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한정판 악어가죽 핸드백에 닿더니,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졌다.“이 가방! 내가 왜 못 샀나 했어! 네가 우리 남편한테 받아서 들고 다닌 거야? 네가 도둑고양이야?”이은정은 다짜고짜 내 핸드백을 빼앗으려 들었다.처음엔 나도 필사적으로 가방을 붙잡았다.하지만 이런 여자와 실랑이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더 불리해질 게 뻔했다.그래서 난 손을 놓아버렸다.그러자 그녀는 핸드백을 낚아채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그걸 본 주변 사람들은 이은정을 부축하면서 오히려 나를 손가락질했다.“아니, 저런 여자까지 들여보내다니 요즘 호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돼?”“그러게 말이야. 은정 씨 같은 분을 이런 꼴로 만들다니 호텔 명성 다 떨어지겠네.”“맞아요! 은정 씨, 저희 남편도 강서 그룹 마케팅부에 다니거든요. 나중에 진 대표님께 꼭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진 대표? 이름만 올려놓은 간판 대표에 불과한데... 그것도 우리 회사도 아닌 강서 그룹에서? 우습군.’나는 속으로 비웃었다.며칠 전 아빠가 결혼만 하면 회사 지분을 하나씩 내 이름으로 넘기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런데 지금 이 꼴이라니.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이은정은 사람들이 부축하자 우쭐해진 표정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호텔 매니저를 향해 소리쳤다.“이 호텔은 뭐 하는 곳이에요? 저런 천박한 여자를 들여보내다니 명성에
상혁이는 내 뺨을 맞고 나서 얼굴을 감싼 채 반박은커녕 한사코 변명만 늘어놓았다.“시은아, 내 말 좀 들어줘. 그 집은 정말 이은정한테 임대한 거야. 내가 널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상혁이의 비겁하고 한심한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나는 이은정이 켜둔 라이브 방송용 휴대폰을 확 낚아챘다.머리를 정리한 뒤, 일부러 이은정의 말투를 흉내 내며 카메라를 향해 비웃는 듯 말했다.“여러분, 어쩌죠? 방금까지만 해도 이은정 씨가 자기 집이라더니 지금 주인이 나타나니까 임대한 집이라네요. 자, 여러분은 누구 말을 믿으시겠어요?”순간 정적이 흐르던 채팅창은 곧 폭발하듯 댓글로 가득 찼다.[와, 이 누님 미모랑 재력 클래스 대박! 진짜 멋있어!][아, 이거 제대로 망신당했네! 뒤통수 맞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우리 진 대표 등장! 변명이나 잘해 보시죠!]나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듯 뒤에 서 있던 법무팀 직원에게 지시했다.“바로 고소하세요. 이은정을 주거침입죄로 신고합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이은정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그 서류를 확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찢어진 서류를 바닥에 뿌린 이은정은 뻔뻔하게 나를 노려보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웃음을 터트렸다.“좋아요. 이제 타인의 재산 훼손죄도 추가하죠.”법무팀 직원도 그 당돌한 행동에 잠시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 추가 진행하겠습니다.”그 순간, 상혁이가ㅏ 이은정을 뒤로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너 미쳤어? 네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이 난리를 쳐? 너 때문에 나 완전히 망했다고! 이젠 만족해?!”이은정은 그 말에 놀란 듯 움찔하더니 이내 눈물로 얼굴을 뒤덮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내가 이 모든 걸 누구를 위해 했는데...”그러자 상혁이가 비웃듯이 외쳤다.“누구를 위해? 네 자신을 위해겠
그 시각, 이은정은 상혁이가 사준 명품 가방을 흔들며 자신의 라이브 방송을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었다.방송은 예상 외로 급격히 인기를 끌며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그런데... 화면 속 방의 인테리어가 왠지 익숙했다.본능적으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머릿속에 스친 황당한 생각이 점점 명확해졌다.설마 이럴 리가...?확인하기 위해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상혁이와 함께 찍었던 사진 중 하나를 골라 확대하고 또 확대했다.역시 사진 속 배경과 이은정의 라이브 방송에 비친 방의 구조는 완벽히 일치했다.나는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라앉히고 소라를 불렀다.“소라야, 법무팀 준비시켜. 같이 갈 데가 있어.”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소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네? 어디요?”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이은정한테 선물 하나 전해줘야지.”10분 뒤, 난 상혁이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하고 주소 하나를 메시지로 보냈다.네티즌들이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좋아, 제대로 된 쇼를 보여줄게.차 안에서 나는 이은정의 SNS 계정을 살펴보며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했다.상혁이가 얼마나 이은정을 물심양면으로 챙겼는지 그 흔적이 역력했다.진 사모님 행세를 이렇게까지 즐겼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다.30분쯤 뒤, 나는 소라와 법무팀을 대동한 채 이은정의 라이브 방송이 진행 중인 집 앞에 도착했다.쿵!묵직한 발길질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이은정은 한 손에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표정을 잠시 지었다.하지만 이내 감정을 억누르고 준비된 듯한 태도로 카메라를 향해 연기를 시작했다.“여러분, 보세요! 바로 이 여자예요!”이은정은 울먹이며 내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이제는 집까지 찾아와서 괴롭히네요! 정말 너무해요...”채팅창은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와, 진짜 악질이네
몸조리를 마친 뒤로 나는 제대로 먹고 마시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틈틈이 소라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며 마음의 짐도 조금씩 덜어냈다.하지만 내가 이은정의 허영심을 너무 얕본 것 같다.어느 날 비행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소라가 휴대폰을 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강 대표님, 이은정이 또 무슨 짓거리 했는지 보실래요?”나는 소라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최근 소라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상혁이 문제를 정리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나는 차분히 말했다.“소라야, 자꾸 강 대표라고 하지 말고 그냥 언니라고 불러. 괜히 거리감 느껴지잖아.”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근데 이은정이 이번엔 또 뭐 했는데?”소라는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이건 쇼를 넘어서 그냥 자폭이에요. 언니, 직접 보세요. 진짜 웃기지도 않아요.”화면 속에는 이은정이 비비크림 범벅에 두꺼운 아이라인을 그린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악행을 고발하고 있었다.영상 속 이은정은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울먹였다.“저는 진상혁 씨랑 대학 때부터 정말 사랑했는데 강시은 씨가 나타나서 저희를 갈라놨어요. 돈 많고 힘 있다고 사람 마음마저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그뿐만이 아니었다.이은정은 공들여 만든 80페이지짜리 PPT를 띄우며 나와 상혁이의 스캔들 사진을 증거라며 공개했다.심지어 우리 둘의 웨딩사진이라며 합성 사진까지 내밀었다.채팅창에서는 정의의 사도라는 닉네임을 단 누군가가 이은정을 위로하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이은정 씨 진짜 불쌍하네. 저 여자가 사람 인생 망쳤네!][결혼식까지 준비 다 끝났는데 돈으로 남의 남자를 빼앗아 가다니! 너무하네!][이은정 씨는 이 일로 직장도 잃고 정신까지 피폐해졌는데 강시은 씨는 10억 넘는 손해배상까지 요구한다네요. 이건 사람 죽이겠다는 거잖아요!]소라는 휴대폰을 내려치며 짜증을 냈다.“진상혁 그 사람 눈이 진짜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언니 같은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저런 여
억 단위의 손해배상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은정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으로 상혁이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자기야, 제발 나 좀 도와줘.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눈물로 범벅이 된 이은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말했다.“자기야, 우리 혼인신고는 안 했어도 부부 사이잖아. 자기도 강시은이랑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근데 왜 나를 선택하지 않는 거야? 왜!”왜냐고? 강씨 가문에서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네가 줄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크니까.이은정은 아직도 상혁이를 재벌가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확실히 깨달았어. 진상혁과 결혼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야.”내 말이 떨어지자, 상혁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은정을 쳐다보는 것도 피하며 구겨진 옷깃을 매만지더니 차분한 척 입을 열었다.“결혼식은 취소할 수 없어. 이미 모든 친척과 지인들을 초대했는데 지금 와서 취소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그러더니 황급히 말을 고쳤다.“내 말은... 강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냐고.”그때였다.병실 문 밖에서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체면? 네 주제에 체면값이라고 할 만한 게나 있어?”문이 열리며 나타난 건 바로 우리 아빠였다.아버지는 강서 그룹의 회장으로 그 단호한 성격과 무게감 있는 카리스마로 유명한 사람이었다.아빠의 얼굴에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분노가 가득했다.병실에 있던 경찰들도 상황이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조용히 물러났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병실에는 숨소리조차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적막이 감돌았다.아빠는 성큼성큼 다가와 누워 있는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시은아, 아빠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그 말과 함께 아빠는 곧장 몸을 돌려 상혁이를 바라보았다.날카롭게 번뜩이는 그 눈빛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진상혁, 네가 감히 내 집에 들어와 기생하려고 해? 그것도 이따위로?”그제야
호텔 사장은 이은정을 경멸스럽게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 비굴한 미소를 가득 띠고 내게 다가왔다.“강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완전히 오해였어요! 저희도 그 여자한테 속아서 이렇게 된 겁니다!”그의 변명에 소라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께서 오늘부터 이 호텔에 대한 모든 투자를 철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법정에서 해결하시면 되겠네요.”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이 등장하자 다들 눈에 띄게 초조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은정을 두둔하던 그들은 이내 태도를 바꿔 서로 앞다투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전 손도 안 댔습니다! 그리고 먼저 때린 건 이은정 씨였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맞아요, 저희는 그저 말리려고 했을 뿐이에요!”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이 얼마나 역겹고 비열한 사람들인가.눈을 감은 채, 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그 얘기들, 경찰한테 하세요.”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아이를 잃으셨습니다.”나는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히 동의서에 서명했다.잃었다면 잃은 대로.어차피 상혁이와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이 아이도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든 작은 해프닝으로 남을 뿐이었다.수술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나는 그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나와 상혁이의 7년도 이걸로 끝이 났다.병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에 모여 있었다.소라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강 대표님, 회장님께서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중이긴 한데 조금 시간이 걸리실 것 같습니다. 경찰은 우선 진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그리고 구석에서 여전히 화가 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는 이은정에게 시선이 멈췄다.“내 결혼식장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손실이 약 10억. 그리고 한정판 악어가죽 가방을 망가뜨려 4억. 거기다 나를 폭행해 유산까지 시켰으니...”
상혁이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싼 채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며 바닥에 흥건히 퍼진 핏자국을 발견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상혁이는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듯 다가오려 했지만, 이은정이 그의 팔을 붙잡고 가로막았다.“자기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왜 저 여자랑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 건데?”“혹시 저 여우 같은 년이 자기를 꼬드긴 거야?!”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상혁에게 몰려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진 대표님! 방금 저 여자가 얼마나 뻔뻔했는지 아세요? 감히 사모님을 때렸다니까요!”“맞아요! 남자라면 가끔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모님, 한 번만 진 대표님 용서해 주세요!”상혁이는 이은정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이윽고 상혁이의 인내심이 폭발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고함을 질렀다.“닥쳐! 다들 입 좀 다물라고!”상혁이의 고함에 사람들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그제야 상혁이는 나를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시은아,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나는 상혁이의 손길을 차갑게 쏘아보며 비웃었다.그리고 그가 내밀던 손을 매몰차게 밀어냈다.“꺼져. 손 대지 마.”상혁이의 반응에 당황한 이은정은 입술을 떨다가 이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자기야, 설마... 정말 저 여자한테 마음이라도 준 거야?!”“저 배 속에 든 애가 누구 애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감싸겠다고?”“우리 웨딩사진까지 다 찍었는데!”난 참을 수 없는 아랫배의 고통에 손을 짚으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따뜻한 액체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며 흰색 카펫을 붉게 물들였다.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절망감이 나를 덮쳤다.‘왜? 진상혁,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그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허무함만이 가슴에 밀려왔다.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상혁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를 향한 분노로 타들어 가는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진상혁, 정말 믿기지 않아. 우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그 순간 등이 아찔하게 짓눌렸다.“방금 내 남편한테 다 말했어! 곧 올 거니까 어디 한 번 네가 얼마나 뻔뻔한지 보자고!”통증을 참으며 반사적으로 이은정의 발목을 붙잡아 세게 당겼다.이은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호텔 매니저는 깜짝 놀라 급히 이은정을 부축했다.“아이고, 사모님! 괜찮으세요? 구급차라도 부를까요?”하지만 이은정은 매니저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구급차는 무슨! 저 여자 당장 잡아! 이 여자가 얼마나 뻔뻔한 불륜녀인지 세상에 알려져야 해!이은정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혐오와 비난을 쏟아냈다.“어디서 우리 남편 꼬셔 놓고는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오늘 네 꼴을 아주 제대로 봐주겠어!”호텔 사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우리 호텔에는 CCTV가 있어! 이미 경찰에 신고했다고!”순식간에 내 주위는 군중으로 둘러싸였다.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옷깃을 잡아 뜯었다.“은정 씨를 건드려! 이런 증거는 남겨야지!”“맞아! 다 찍어서 올리자! 이 여자 제대로 망신 주자고!”난 그들에게 끌려 웨딩 포토가 걸려 있는 쪽으로 몰렸다.군중 중 누군가 내 결혼사진을 집어 들더니 한순간에 찢어버렸다.“쯧쯧, 이런 사진이나 찍고. 잘 어울리긴 한다!”찢긴 사진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마음은 미동조차 없었다.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건 분노와 혐오뿐이었다.‘잘 찢었다. 시원하게 더 찢어보라고.’이은정은 그런 내 반응에 기세가 등등해져 손가락을 까닥이며 군중을 부추겼다.“찍어! 다 찍어서 올려! 이 여자가 얼마나 뻔뻔한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아야지!”나는 손에 쥔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화면에는 상혁에게서 온 수십 개의 미확인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메시지를 보내? 대단하다, 진상혁.’메시지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온통 변명과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결혼식 안 한다고? 좋아. 그럼 위약금은 어떻게 할 건데?”눈길을 돌려 난장판이 된 결혼식장을 쭉 훑어보고 호텔 매니저를 차갑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그리고 내가 10억 들여서 준비한 이 결혼식장은? 당신들이 이걸 다 보상할 수 있긴 해?”그러자 이은정이 비웃으며 내 머리채를 확 잡아챘다.“보상? 네가 쓴 돈이 원래 누구 돈인데! 우리 남편 돈으로 이렇게 호화롭게 꾸며놓고도 보상을 요구해? 진짜 뻔뻔하네.”머리채를 잡힌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그런데 이은정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한정판 악어가죽 핸드백에 닿더니,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졌다.“이 가방! 내가 왜 못 샀나 했어! 네가 우리 남편한테 받아서 들고 다닌 거야? 네가 도둑고양이야?”이은정은 다짜고짜 내 핸드백을 빼앗으려 들었다.처음엔 나도 필사적으로 가방을 붙잡았다.하지만 이런 여자와 실랑이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더 불리해질 게 뻔했다.그래서 난 손을 놓아버렸다.그러자 그녀는 핸드백을 낚아채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그걸 본 주변 사람들은 이은정을 부축하면서 오히려 나를 손가락질했다.“아니, 저런 여자까지 들여보내다니 요즘 호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돼?”“그러게 말이야. 은정 씨 같은 분을 이런 꼴로 만들다니 호텔 명성 다 떨어지겠네.”“맞아요! 은정 씨, 저희 남편도 강서 그룹 마케팅부에 다니거든요. 나중에 진 대표님께 꼭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진 대표? 이름만 올려놓은 간판 대표에 불과한데... 그것도 우리 회사도 아닌 강서 그룹에서? 우습군.’나는 속으로 비웃었다.며칠 전 아빠가 결혼만 하면 회사 지분을 하나씩 내 이름으로 넘기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런데 지금 이 꼴이라니.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이은정은 사람들이 부축하자 우쭐해진 표정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호텔 매니저를 향해 소리쳤다.“이 호텔은 뭐 하는 곳이에요? 저런 천박한 여자를 들여보내다니 명성에
거울 앞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던 중, 호텔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의 호화 결혼식장이 난자판이 됐습니다. 한 번 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목소리엔 걱정스러운 척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그 안에 깃든 비웃음은 숨기지 못했다.난장판이라고?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이 결혼식을 위해 반년 동안 정성을 쏟고 수백만 원을 들였는데 누가 감히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거야?게다가 내일은 나와 7년을 연애한 예비 신랑, 진상혁과의 결혼식이었다.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고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상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상혁아, 결혼식장에 문제 생겼어. 빨리 와줘.]그렇게 핸드백을 들고 황급히 호텔로 달려갔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매니저의 지나치게 아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이고, 진 사모님! 이렇게 젊고 아름다우시다니요! 진 대표님과 정말 천생연분이세요.”“그래서 결혼식 준비하는 내내 신랑 얼굴을 못 본 이유가 따로 있었네요. 원래 와이프가 따로 계셨다니!”“사모님, 우리 연락처 교환하시죠? 앞으로 호텔 프로젝트 생기면 사모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진 사모님?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물결치는 긴 머리와 볼룸감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여자가 매니저의 명함을 거만한 게 받으며 말했다.“좋아요. 그런데 먼저 이 뻔뻔한 불륜녀부터 정리해야겠어요!”“오늘 당신의 공로는 잊지 않을게요!”나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정성스럽게 꾸며놓았던 꽃 아치 입구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고급 샴페인 타워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거기에 더해 바닥에는 썩은 채소와 달걀 껍데기들이 널려 있었다.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화려했던 그 결혼식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이를 악물며 간신히 분노를 눌러 삼키고 물었다.“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짝!대답 대신 한 여자가 내 뺨을 후려쳤다.“내가 그랬어! 오늘 내가 네 꼴을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