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김에 잘 살아보자: Chapter 1 - Chapter 10

10 Chapters

제1화

사람이 언제 죽는지는, 본인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나는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내 곁에서는 자식과 손주들이 울음소리를 삼키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울음을 참으려 애쓰지만, 눈물은 끝없이 흘러내렸다.“어머니,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아버지께서 지금쯤 편지를 받으셨을 거예요!”아들이 울먹이며 애원했다.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보고 싶지.나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러나 시야에는 창밖에 서 있는 오동나무만 보였다.저건 내가 배이경에게 시집온 날, 우리 둘이 손수 심었던 오동나무였다. 어느덧 사십 년이 훌쩍 지나, 나도 이제 예순이 되어 백발이 성성해졌다.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태어날 땐 꽤나 화려했고, 친정에 문제가 생긴 뒤로도 좋은 인연을 만나 시집갔다.이제 생이 마감될 시간이 다가왔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려 했으나, 마치 세상이 나를 붙잡은 듯 끝내 뜨지 않았다.무거워진 눈꺼풀을 애써 떠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다시 감긴 눈을 떴을 때는,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 자식들은 목놓아 울면서 슬픔에 잠겼지만, 나는 어느새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문득 직접 서방님을 보러 가야겠다는 충동이 치밀었다.마지막으로 그를 딱 한 번만 보고 나면, 원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길도 모르고 무작정 헤매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그러다 마침내 J시 홍문관에 도착했다. 마침 배이경이 내 부고가 적힌 편지를 손에 들고 있는 참이었다.나는 죽었고, 그도 이미 늙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침실 안에 왜 또 다른 여자가 앉아 있는 걸까?“그래도 한 번 가 보시는 게 어때요? 부부였던 인연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죠.”그 여자의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러웠다.배이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당신만이 내 진짜 아내예요. 그 여자는 나와 부부라고 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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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정신은 또렷하지 않았으나 코끝에 스며드는 짙은 술 냄새를 발견했다.손을 뻗어 더듬자 부드럽고 매끈한 살결이 닿았고, 나는 그제야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누군가 내 곁에 있다.내 몸은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였고, 붉은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그리고 등을 돌린 채 깊이 잠든 그 사람 역시, 옷을 전부 벗은 상태였다.숨이 턱 막히는 기분과 함께, 묘하게도 이 장면이 예전에 한 번 겪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곧 머릿속에 전생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애절함과 아픔, 그리고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오자, 나는 심장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차마 말로도 다 못 할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내 기억대로라면, 이 술 냄새가 진동하는 남자는 바로 배이경이다.나는 정말로 다시 태어났다.전생의 기억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깔려 있던 때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바람에 휩쓸려 드러났다.창문 밖, 차가운 달빛은 하얀 서릿발처럼 번뜩이며 나를 울컥하게 했다.누군가의 계략으로 나는 정사에 쓰이는 약을 먹었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배이경과 잠자리를 가졌던 것이다.그 일 때문에 결국, 나는 떳떳하게 그와 혼인할 수 없게 되었다.“혼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평생 시집 못 갈 거야!”시어머니가 될 사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원래 같으면 너 같은 여자를 우리 집에 들일 리가 없지만, 이경이가 정을 중히 여겨 너를 첩으로 들이겠다고 하니 그리 하도록 해라.”그때 나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이 일은 애초부터 석연치 않았다.이상한 약을 먹은 탓에 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으니 말이다.나는 여전히 곤히 잠든 배이경을 흘끗 쳐다보았다. 가슴속에서 사랑과 미움이 뒤엉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사실 전생 우리 사이에도 한때 달콤하고 뜨거운 나날이 있긴 했다.그러나...나는 조심스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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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혼수품 상자를 열어 몇 장의 집문서를 꺼냈다.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나에게 물려주신 물건들이었다.나는 그것들을 챙기고 배씨 가문을 나섰고, 해가 저물 무렵에야 돌아왔다.대문 옆을 지키던 문지기는 멀리서 나를 보고는 다급하게 달려와 말을 건넸다.“미정 아가씨, 어르신께서 오늘 하루 종일 아가씨를 찾으셨습니다. 지금 한껏 화가 나 계시니 빨리 들어가 보셔야 할 듯합니다.”나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섰다.여기는 한때 내가 평생을 보내며 살아온 곳이자, 동시에 나를 가둬 둔 족쇄 같은 곳이었다.옛날을 떠올리며 다시 마주한 이 길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만큼 쓰라리고 허망했다.“미정아, 드디어 돌아왔구나!”배이경이 반가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렇게 창피한 짓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 바깥을 돌아다니다니!”배씨 가문 어르신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고, 사모님 역시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넌 창피한 줄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배씨 가문은 달라!”나는 문턱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영문을 모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제가 무슨 창피한 일을 저질렀나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사모님은 말문이 막힌 듯 얼어붙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이경이가 다 털어놓았어. 어젯밤 너희 둘이...”“사모님, 저는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아침엔 곧장 볼일을 보러 나갔습니다.”나는 일부러 놀란 표정으로 배이경을 쳐다봤다.“어젯밤이라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아니, 어젯밤 우리 둘이 분명 함께 있었잖아!”배이경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미정아, 설마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니겠지? 우리 이미...”“도련님,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세요!”나는 비웃음이 스치는 눈길로 그의 목덜미에 찍힌 붉은 자국을 보았다.“아... 도련님께서 어젯밤 여성분과 정을 나누셨나 보군요.”“하지만 전 어젯밤 도련님을 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술에 취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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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배이경은 몹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미정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며칠 전만 해도 우리가 함께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탔잖아. 그런데 오늘 갑자기...”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데?”“저는 도련님에게서 떠나고 싶어요. 배씨 가문에서 벗어나고 싶어요.”배이경에게 평생을 속았던 기억을 떠올리자, 나는 비웃으며 말했다.“전 더는 비열한 사람들과 함께할 생각이 없어요!”“네가 감히 우리 아들을 우습게 본단 말이냐?”김영애는 내 눈빛에 모욕감을 느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네 처지가 어떤지나 알고 있어라! 죄인 가문의 후손 따위가, 우리 아들 손가락 하나만큼의 가치라도 된다고 생각하니?”“솔직히 말해 주지. 우리 이경이는 조만간 J시로 진출해서 귀한 집안 아가씨와 혼인하게 될 거야!”김영애는 더 이상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험한 말을 뱉어냈다.“너 같은 신분으로는, 설령 첩으로 들어온다 해도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아!”이 한마디에 안뜰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르 떨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서서히 몸을 돌려, 굳은 자세로 서 있는 배이경을 바라보았다.“이게 바로 제가 떠나려는 이유예요.”“배이경, 너희 가족은 죄다 매정하고 간특한 짐승 같은 존재들이야.”나는 손에 들고 있던 옥패를 번쩍 들어 바닥에 집어던졌다.옥패는 산산조각이 났고, 우리 약조도 그와 함께 끊어졌다.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갈라진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파혼이야!”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소란은, 내 결심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나는 서둘러 남은 짐들을 챙겨, 배씨 가문을 떠날 준비를 했다.그때 문가에 서 있던 배이경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한 발짝씩 따라왔다.“미정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는 거야?”예전처럼 맑았던 그의 시선은 사라지고, 복잡한 심정으로 나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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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J시는 확실히 으리으리하고 번화한 곳이었다.하늘은 높고 땅은 광활하며, 사람들의 성격도 시원시원했다.나는 전생에 죽어서 혼령이 되어서야 J시에 와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생에는 이렇게 살아서 이곳을 직접 둘러볼 기회가 생기다니 감개무량했다.Y시에 있던 집과 갖고 다니기 어려운 혼수품은 전부 팔아 돈으로 바꾸었다.그렇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의서와 꽤나 많은 재산을 챙겨 J시로 들어왔다.그리고 J시에 있는 주씨 가문의 빈집을 깨끗이 치운 뒤 한약방을 다시 열었다.문 앞에 펄럭이는 간판에 크게 쓰인 ‘주씨 한약방’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져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아버지, 저는 반드시 많은 것을 해낼 겁니다.’나는 주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반드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내 아버지는 분명 억울한 누명을 썼다.전생에 선왕 유기천이 세상을 뜨기 전, 여러 억울한 일들을 철저히 조사한 적이 있었다.그중에는 아버지의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듣자 하니, 전 황제가 말년에 장생을 하기 위해 온갖 약재를 마구잡이로 뒤져 모았다고 했다.그 과정에서 조정의 어느 탐관오리들이 기묘한 술수를 부려, 아버지 같은 피해자들의 목숨으로 빚을 대신 메우려 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전생에 이 사건이 밝혀졌을 무렵에는, 내가 이미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고, 내내 시댁에 묶여 지내다 보니 주씨 가문을 다시 일으킬 기력조차 없었다.그러나 이번 생은 다르다.새로 단장한 한약방을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이제야 비로소 내 인생이 제대로 펼쳐진 기분이었다.한약방을 갓 열었기에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굳이 서두르진 않았다.늦은 저녁, 가게 문을 닫고 뒷마당으로 가려는 참이었는데, 뜻밖의 사람을 발견했다.전생에 위풍당당했던 선왕 유기천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내가 심어 놓은 약초밭에 쓰러져 있었다.전생에 유기천은 내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준 데다가, 의사로서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안으로 옮겨 치료해 주려 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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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는 네가 나에게 시집와서, 네 배 속 아이의 아버지를 되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지.”내 부탁을 들은 유기천은 복잡한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한 걱정이었군.”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폐하, 저도 바보는 아니랍니다.”사실 나도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유기천일 리는 없었다.그의 신분은 차마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했고, 설령 그가 은혜 갚는다는 명목으로 나를 맞아 주겠다 해도, 나는 궁궐에는 들어가기 싫었다.왕실이라면 아내와 첩이 수두룩할 테니, 나는 다른 여자들과 서로 헐뜯고 싸우며 한 남자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그게 설령 형식뿐인 혼인이라 해도 말이다.“지금은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느슨한 옷으로 간신히 가리고 있겠지만 한두 달만 더 지나면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거다.”유기천은 내 배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그땐 어떻게 할 생각이지?”문득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의 눈은 생각보다 예뻤다.경계심을 내려놓고 사람을 바라볼 때면, 그 눈에는 마치 정이 가득 담긴 듯했다.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 지었다.“폐하께서 걱정하실 일은 아니에요.”유기천은 입 밖에 낸 말을 반드시 지키는 정정당당한 군자였다.내 부탁을 들어준 바로 다음 날부터 사람을 보내 증거를 수집하게 하며,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지금은 이 일을 공론화하기에 적절치 않아. 그래도 네게 약속했으니, 한 번 모험을 해 보지.”그는 무심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 말속에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전 황제께서 과거에 여러 억울한 사건들을 잘못 판결하셨다. 게다가 전 황제는 유기천의 아버지이자 바로 직전 황제다.그래서 유기천은 전생에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오래된 옛 사건들을 다시 들춰낼 수 있었다.잘못된 질서를 바로잡으려면, 큰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나는 한참 동안 침묵한 뒤, 낮게 중얼거렸다.“고마워요.”되짚어 보면, 내가 훨씬 이득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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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 그럴 리가 없어!”배이경은 내 배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우리는 4개월 전에...”“두 사람이 4개월 전에 파혼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유기천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파혼을 하고 난 후 저와 곧장 혼인식을 올렸어요.”“제 마누라가 얼마나 기특한지. 혼인하자마자 제 아이를 가졌거든요.”배이경의 얼굴은 금세 핏기가 가시고,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말도 안 돼... 미정아, 저 말이 전부 거짓말이지, 그렇지?”허리에 감긴 손이 더욱 힘주어 조여 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나는 또렷이 답했다.“아니, 사실이야. 이미 임신 3개월째거든.”배이경이 넋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대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떠오른 일이 있었다.“마침 잘 만났네. J시에 온 김에 네 어머니께 전해. 곧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질 거애. 아버지가 결백을 되찾고 나면 우리 주씨 가문이 예전에 너희 배씨 가문에 맡겼던 땅들도 전부 돌려받을 거야.”배이경이 허둥지둥 얼떨떨해하며 물었다.“땅이라니? 그게 무슨...”“몰랐니?”나는 담담히 그를 바라봤다.“너희 배씨 가문이 J시에 갖고 있는 논밭이며 집, 장원 모두 원래 우리 주씨 가문의 재산이야. 그냥 너희가 잠시 맡아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지.”시간이 흐르다 보니, 마치 정말 자기들 소유인 줄 착각했던 모양이다.“너희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이번에 네가 혼인하려고 준비해 둔 그 집도 마찬가지야.”전생에 그는 내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 저택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그들이 왜 그토록 내게 약을 먹이는 저질스러운 계략을 짰는지, 그리고 한사코 날 첩으로 두려 했는지, 그 이유는 한눈에 보였다.엄청난 이득이 없었다면, 굳이 내내 가식적인 연극을 하며 평생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테니까.“말도 안 돼!”배이경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그럴 리가 없어...”그가 휘청이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옆구리를 감싸 쥔 손등을 툭툭 쳤다.“이제 그만 놓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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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전 황제가 과거에 직접 처리했던 사건이, 알고 보니 완전히 날조된 억울한 사건이었다니!그뿐만 아니라, 전 황제가 장생을 믿고 사치스러운 단약을 만드는 걸 일삼았다는 추문까지 세상에 드러났다.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선왕 유기천이, 나서자마자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한 번 던진 돌멩이가 파장을 일으켜, 커다란 물결이 이는 듯한 소란이 벌어졌다.황실은 체면을 중시해, 무조건 이 일을 덮으려 애썼다.비록 전 황제가 과거에 잘못된 판결을 내렸어도, 황제가 세상을 뜬 뒤에는 그 오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왔다.그런데 선왕, 유기천은 그런 겉치레를 모조리 찢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유기천은 다름 아닌 전 황제의 친아들이다.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난장판이 되었다.나는 비록 조정 일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유기천의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그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치료를 하기로 한 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나는 한약방에 앉아, 아버지가 남긴 의서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었다.생전에 아버지는 주씨 가문의 의술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셨지만, 한순간의 모함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전생의 나는 어리석게 흘러가는 대로 살았지만, 이번 생에는 드디어 아버지의 염원을 이뤄 드릴 기회를 얻었다.사건을 파헤칠수록,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유기천의 무서운 명성이 더욱 커져 갔다.그리고 마침내 사건 진상이 드러난 날, 배이경이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내 한약방을 찾아왔다.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한눈에 봐도 괴로운 표정이었다.“미정아, 이건 주씨 가문의 재산이야.”“네가 했던 말, 처음에 어머니께선 믿지 않으셨지만... 내가 애를 쓴 끝에, 전부 되찾아 왔어.”나는 그의 얼굴과 목덜미에 난 긁힌 자국과 물에 젖은 흔적을 보았다.아마 어머니와 심한 다툼을 벌인 듯했다.“토지 문서와 그에 상응하는 돈이 모두 들어 있어.”나는 말없이 그 상자를 받았다.배이경은 눈가가 벌겋게 물든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미정아... 혹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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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어떻게 된 일이에요?”나는 코끝이 시큰해져,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유기천은 배이경을 힐끔 보며 담담히 말했다.“지금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 주미정은 이미 내 마누라거든.”“주미정이 폐하 부인이라고요? 증거라도 있어요? 왕실 족보에라도 올랐나요? 궁중에 계신 분들은 주미정을 알고 계신가요?”배이경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넌 대체 미정이를 뭐로 여기는 거냐!”유기천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썹을 들어 올렸다.“증거는 없어. 왕실 족보에 오른 적도 없지. 하지만 궁중에 계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셔.”“미정이가 허락만 해준다면 모두 해결될 일들이야.”그는 느긋하게 내 어깨에 몸을 기대더니, 한껏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 깜빡했네. 알려 줄 게 하나 있어. 이래 봬도 나는 데릴사위거든.”“지금도 어떻게 해야 미정이가 정식으로 나를 받아줄지 몰라 애쓰고 있지.”나는 그의 말이 점점 더 이상해질까 봐 조마조마해졌다.“배이경,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난 지 오래야. 다시는 만날 수 없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려 했다.“앞으로 더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줘.”설령 그가 이번 생에 진심으로 사죄한다 해도, 나는 그 마음을 받아 줄 수 없었다.한 번 어긋나 버린 인연은 다시 맞추기 힘든 법이니까.배이경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며, 아마도 이게 우리 마지막 만남이겠구나 싶었다.“씁...”유기천이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자, 나는 급히 돌아서 그의 상처를 살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어요? 다른 데도 다친 데가 있나요?”내가 초조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유기천은 내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듯 달랬다.“미정아, 몸조심해.” 나는 벌써 임신한 지 8개월이나 지났다. 게다가 쌍둥이는 조산 가능성도 크다.“아버지께서 아무리 잘못하셨어도 어쩔 수 없지. 자식인 내가 뭔가를 시정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해.”“이 정도 부상으로 끝난 건, 황제와 태후께서 봐주신 거나 다름없어.”“정말 고마워요.”나는 가슴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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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기천은 잠자코 있다가 문득 물었다.“왜 똑같이 전 황제의 아들인데, 내 이름이 유기천인지 알고 있어?”다른 형제들의 이름에는 모두 ‘유’자와 ‘정’자가 들어있다.지금의 황제도 이름이 유정천이다.“왕자인 내가 어쩌다 독을 먹어 일찍 죽게 되었는지 알아?”나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미정아, 내 원래 이름은 유기천이 아니야.”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어서 말했다.“태후는 사실 내 친어머니가 아니야. 그런데도 나를 친아들처럼 아껴 주셨지.”“이 모든 건, 내가 지금의 황제 대신 재앙을 뒤집어썼기 때문이야.”나는 유기천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어릴 적에 그는 태자궁에 놀러 갔다가, 태자가 마시려던 독이 든 국을 잘못 먹었다.“S국에서 들여온 치명적인 독, 아주 조금만 먹었을 뿐이야.”독을 먹은 유기천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고, 하마터면 궁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대비전의 모든 의원이 총동원되어 겨우 목숨만 건져 내었을 정도였다.“그 독 때문에 결국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어.”나는 아찔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그래서 전생에 폐하께서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던 거군요.”유기천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때 독을 탄 자는 무자비하게도 태자의 대를 끊으려 했던 거지. 태자가 죽든, 자손이 끊기든, 둘 중 하나만 이뤄지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야.”그러나 계산이 틀려, 그 독약이 태자가 아닌 유기천의 입으로 들어갔고, 왕실 체면을 지키려는 탓에 이 일은 몰래 묻혔다고 한다.이 일은 황제와 태후를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고, 유기천의 생모는 아들을 잃을 뻔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다.그제야 태후가 그를 곁에 두고 친자식처럼 키웠고, 남은 생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천으로 지어주었다. 그러나 전생에 유기천은 결국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는 가슴이 아릿해졌다.“미정아, 그래서 네가 아이를 가진 게 너무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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