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재의 뻔뻔한 질문을 듣고 더 이상 그와 말다툼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혼 서류는 1분이면 100장을 인쇄할 수 있어. 도망쳐 봐야 소용없어.”정민재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자 의자는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마치 미친 듯이 방을 왔다 갔다 하며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여보, 정말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내가 보증서 써줄게. 유언장을 써도 좋아! 혜리 아이를 내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내 재산도 그 애한테 상속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겠지?”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재산은 종이에 적어 보증할 수는 있어도 감정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정말 모르는 건가? 아이가 크다 보면 결국은 자기와 점점 닮아가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동할 수 있을 텐데...’내가 정민재를 다시 믿는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이었다.“정민재, 당신이 누구를 지키든, 누구와 아이를 낳든, 누구에게 돈을 주든, 이제 난 상관없어.”“난 당신을 8년 동안 사랑했고 심지어 당신과 손혜리의 그 어정쩡한 관계도 참아가며 살았어. 당신 없이는 못 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제 정신이 번쩍 들었어. 당신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어.”“이혼의 이유는 딱 하나야. 내 마음이 식었고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됐어. 그게 다야. 이해됐어?”이 말을 할 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이전처럼 애원하거나 절망하며 울거나 질투심에 미쳐 날뛸 필요가 없었다.정민재도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완전히 당황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정민재는 회사에 일이 있다고 둘러대며 허겁지겁 자리를 떠났다.나는 그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전에는 날 소중히 여기지 않더니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지? 그냥 이혼하고 손혜리랑 함께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아니면 가정에서의 현명한 아내와 바깥에서의 첫사랑을 동시에 누리는 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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