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현은 믿기지 않는듯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고 진도현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진도현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달려와서 외투를 벗어 나에게 덮어주었다.“도현아, 너는 마을에 이런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나는 진도현 품에 안겨 물었다. 그러자 진도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나와 거리를 유지했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예린아, 난 네가 똑똑해서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진도현은 입술을 깨물었고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비서 박서연을 불렀고 진도현이 나를 안아 들어 차에 올랐다. 박서연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예린 언니,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가서 증거라도 확보해요.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예린아, 지금 신고하면 나도 조사받아야 할 거고 내가 경찰서에 가면 어머니가 네 사진을 공개할 거야. 그 사진을 보고도 너를 좋아할 남자가 나 말고 또 있을까?”진도현이 박서연의 말을 끊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유난히 낯설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자 진도현은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해 주었다.“예린아,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을 당했든 늘 사랑할 거야. 오늘 일은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널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지?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하자. 네 뜻대로 할게, 응?”“하지만...”박서연이 반박하려고 하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집으로 가자.”나는 부모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뒤로 진도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났고 나를 대놓고 걸레 취급했다. 우리는 매일 다른 방에서 잤고 진도현이 일찍 퇴근한 날에 내가 먼저 씻고 나오면 욕실 수증기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씻었다. 날 더러운 쓰레기 취급했고 나랑 닿았던 모든 것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가 한 번 사랑을 나누었고 나한테 통보하듯 말했다.“며칠 뒤에 해외로 출장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러니까 날 기다리지 마.”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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