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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만나요의 모든 챕터: 챕터 661 - 챕터 670

967 챕터

제661화

조유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누군가가 하이힐로 문질렀다고?조유진은 피식 웃었다.“하이힐로 문지른 사람은 내가 아니네요. 배 대표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조유진은 손을 뻗어 배현수를 밀쳤다.그의 품에서 살짝 떨어지자마자 그에게 잡혔다.남자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네가 아니라고?”조유진 말고 누가 감히 하이힐 구두로 그의 다리를 문지르겠는가?조유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진짜 나 아니에요. 배 대표님, 미팅 자리에서 구두로 고객사 대표의 다리를 문지를 만큼 그렇게 심심하지 않아요.”배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간은 점점 더 찡그려졌다.조유진인 줄 알고 마음껏 문지르도록 내버려 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배현수의 눈빛은 음험하고 혐오스럽게 변했다.신발이 양복바지 위를 문질렀지만 목구멍에는 파리가 끼인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손가락 마디마디의 뼈가 보일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다시 정신을 차린 조유진은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배 대표님, 따지려면 엄 팀장님을 찾아가세요. 하지면 계약서에 이미 사인까지 했으니 계약을 무르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할 것 같네요.”엄명월은 방금 일부러 그녀를 이용했다.그러니 한 번쯤 역습하는 것이 그리 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배현수의 얼굴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배 대표님, 엄 팀장님 사무실은 9층에 있습니다. 안내해 드리죠.”가서 따지라고?물론 조유진은 이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9층 사무실.엄명월은 대박을 터뜨린 기쁨에 잠겨있었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엄 팀장님, 배 대표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미친, 조유진 이 여자, 복수심이 대단하네! 이렇게 빨리 역습하다니?’사무실 문이 열리자 조유진은 배현수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포즈를 취했다.배현수가 들어가자 조유진은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배 대표님, 그럼 엄 팀장님과 얘기 잘 나누세요. 저는 이만 다른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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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배현수가 떠나자마자 사무실에 있던 엄명월이 소리쳤다.“엄환희!”입구에 앉아 업무를 보던 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엄명월을 바라보며 말했다.“엄 팀장님, 명이 기네요. 어디도 다치지 않은 것을 보니.”엄명월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일부러 그랬죠? 계약서에 금방 사인했어요. 배 대표가 혹시라도 계약을 파기하면...”앞에 서 있는 조유진은 입을 달싹였다.“엄 팀장님, 팀장님이 먼저 그렇게 행동하셨어요. 그저 그대로 돌려드린 것뿐입니다.”“하...”엄명월은 씩 웃었다.그제서야 조유진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래... 그렇단 말이지...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인 줄 알고 한참 놀렸는데 결국에는 엄명월이 얕잡아 본 것이다.조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웃음을 참으며 한마디 했다.“엄 팀장님이 저를 이용한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엄명월은 한참을 참다가 겨우 대답했다.“그래요. 훌륭해요!”조유진은 그녀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였다.엄명월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바닥을 힐끗 쳐다봤다.“또 뭐예요?”“방금 SY그룹과의 계약은 저와의 관계 때문에 성사된 거잖아요. 2000억 원의 차액을 엄 팀장님은 어떻게 나눌 생각인가요?”‘그래, 좋아. 계산이 이렇게 빠르단 말이지. 조유진, 이 여자가 엄창민 그 목탁머리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 같네...’엄명월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20%?조유진은 뻗은 손을 거두지 않은 채 손바닥을 내밀었다. 50%라는 뜻이다.엄명월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50%?”“엄 팀장님만큼이야 하겠어요? SY그룹에 2000억 원이라는 바가지까지 씌울 만큼이요. 김주희를 시켜 고객사를 꼬시려고 한 일은 외부에 발설하지 않을게요. 물론 엄 팀장의 성의를 보고 판단할 거예요. 만약 엄 팀장님이 김주희를 시켰다는 것을 배 대표님이 알면...”엄명월의 얼굴에 싸늘한 웃음이 번졌다.좋은 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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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엄명월 코웃음을 쳤다.“비서 하나 누가 아까워해요? 본인이 뭐...”장난기 가득한 조유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도 좋고 일도 시원시원하고 눈치도 잘 보는 전임 비서가 생각났다.그런데...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떠난 그달의 월급도 아직 그에게 정산되지 않았다.이 자식, 어느 회사의 높은 연봉에 홀려 도망갔는지도 모른다. 만약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바로 가서 귀를 비틀어 버릴 것이다.엄명월은 일을 제쳐두고 도망가 본인이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부하 직원을 가장 싫어한다.엄명월이 넋을 잃은 모습에 조유진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엄 팀장님? 1000억 원, 제 월급 카드에 송금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엄명월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저기요! 현금 1000억 원이 어디 있어요? SY그룹과 거래하는 자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미친! 이 프로젝트 진행해도 연말 배당금이 1000억 원이 안 돼요! 그런데 내가 왜 1000 억 원을 줘야 하는데요?”조유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한마디 했다.“엄 팀장님, 말에 책임을 지셔야죠. 비서와의 약속도 번복하는데 앞으로 성행 그룹에서 어떻게 발을 붙이시겠습니까?”엄명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나에게 1000억의 현금이 어디 있겠어요? 가서 엄 어르신에게 달라고 하세요! 이 돈은 회사 재무팀에 들어간 것이지 나 엄명월 주머니에 들어간 것이 아니에요! 미친... 엄환희 씨, 당장 돌아와요!”조유진을 호구로 알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오후 비즈니스 협상테이블에서 조유진과 짜고 SY그룹에 바가지를 씌움으로써 2000억이 넘는 마진을 보게 되었다. 기쁨에 겨운 나머지 조유진에게 절반의 금액을 주겠다고 약속해 버린 것이다!하지만 마진 2000억이 엄명월의 개인 계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설마 사비를 털어 비서에게 상이라도 줘야 한단 말인가?엄명월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성행 집단 전체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수혜자는 엄준이다. 엄준의 유일한 후계자는 엄환희이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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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저녁.조유진은 엄명월을 따라 신라호텔로 가 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이 좋은 식당에 도착했다. 엄명월은 배가 아프다며 조유진을 자리에 혼자 남겨두었다.잠시 후, 엄명월의 꿍꿍이 수작을 알아차린 조유진은 자리를 뜨기 위해 말했다.“배 대표님, 엄 팀장님이 갑자기 생리 중이라고 저더러 생리대를 사달라고 하네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어설프고 합리적인 이유를 꾸며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뒤에 있는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배현수는 뒤에 서서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엄 팀장님, 안 올 거야.”조유진은 어색하게 웃었다.“설마 변기에 빠진 거 아닐까요? 그럼 내가 가서...”“유진아.”배현수는 굳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얼굴은 매우 엄숙해 보였다.“성남에 온 이후로 너 계속 나를 피해. 전에 선유와 스위스로 가라고 한 것은 내가 잘못했어. 숨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번에 서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지난 보름 동안 충분히 시간을 줬어. 성남에 오래 있다 보니 나라는 사람마저 잊어버린 것 아니야?”조유진은 달싹이더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배현수는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강경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얘기해봐.”냉전 때마다 조유진은 배현수를 공기처럼 무시했다. 남들과는 정상적으로 웃고 떠들었고 엄명월과도 여러 번 눈을 마주쳤다.배현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시큰시큰했다.조유진에게 이틀 가까이 무시당하니 그동안의 인내심은 싹 사라졌다.그녀를 뼛속까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솟구쳤다. 그녀의 왼손을 감싼 후, 창가에 누르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다.보름 만에 만났다. 배현수라는 사람을 잊었다면 다시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도 괜찮았다.품에 안긴 조유진은 쓸데없이 몸부림치는 작은 새처럼 보였다.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문득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느껴졌다. 커플링과 핑크 다이아몬드를 착용하지 않았다.배현수는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반지는? 왜 안 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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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웁...”배현수가 홱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무거운 키스가 그녀의 입술과 입안을 파고들었다. 심한 키스에 조유진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그는 자기의 품에 조유진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하이힐을 신은 탓에 한동안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줬다. 키스가 끝난 후에야 그녀를 놓아줬다. 눈물이 그렁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신용 자질을 재점검하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 하지만 유진아, 날 버리려고 하는 것은 안 돼.”낮은 그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있었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조유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덥석 올려 들었다.여기는 식당이다. 비록 사람이 없지만 깊은 얘기를 하기에는 곤란했다.테이블 위의 음식도 얼마 먹지 않았다.배현수는 이미 조유진을 안고 꼭대기 층 전망식당을 나와 9층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방에 도착한 후, 조유진은 두 발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떠날 생각을 했다.하지만 배현수에게 붙잡혔고 침대에 옮겨졌다. 배현수는 얼굴을 찌푸렸다.“제대로 앉아.”남자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던지더니 넥타이도 풀어헤쳐 한쪽으로 내팽개쳤다.셔츠 단추가 두 개 풀렸다.플래티넘 커프스도 협탁에 놓았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굵고 매끄러운 팔이 드러났다.온몸의 우울함이 이제야 조금 사라지는 듯했다.조유진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그는 그녀 앞에 섰다.“방금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는데 오늘 밤 다 말하고 가.”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억지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조유진은 심호흡한 후 한마디 했다.“할 말 없어요. 10시가 다 됐어요. 안 돌아가면 아빠가 걱정하실 거예요.”그녀의 치졸한 변명에 배현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그녀의 발에 있는 하이힐에 시선이 옮겨졌다.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몸을 숙였다.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녀의 발목을 잡고 발에 있는 하이힐을 벗겼다.살며시 안아 침대에 옆에 기대게 해주었다.배현수는 옆 의자를 끌어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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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아이가 없어졌다.이 한마디는 마치 평지를 내리친 천둥 같았다.그녀를 껴안고 있는 배현수의 팔이 눈에 띄게 굳었다.안경 렌즈 뒤의 눈동자도 한순간에 얼어붙었다.처음에 그는 믿지 않았다.조유진을 쳐다보며 장난이라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니다.조유진의 눈빛은 아주 잔잔했다. 배현수가 얼어붙은 틈을 타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바닥에 놓인 하이힐을 다시 신고 일어서려 했다.이때 뒤에 있던 배현수가 팔목을 움켜쥐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성행 그룹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알아. 하지만 그런 일로 날 속이지 마.”조유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코만 살짝 훌쩍이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내가 현수 씨를 속이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현수 씨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예요? 배 대표님, 잘 아시잖아요. 배 대표님, 잘 못 들었었으면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아이는 없어요. 4주 차에 핏덩이로 변해 없어졌어요.”말투는 가볍고 은은했지만 무거운 한 글자 한 글자는 날카롭고 무거운 도끼처럼 그의 몸에 박혔다.심장을 찢고 폐를 찢는 날카로운 통증과 둔탁하지만 큰 통증이 가슴을 찢었다.배현수는 그녀 손목을 잡고 가볍게 떨었다.온몸이 그대로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사지가 점점 마비되어 힘을 잃었다.조유진은 그의 손을 살짝 뿌리쳤다.“배 대표님, SY그룹과 성행 그룹의 협력은 주로 엄 팀장님이 담당합니다. 업무적인 일이 있으면 다음에 저희 엄 팀장님을 찾으시면 됩니다.”가장 예의를 차린 말을 내뱉은 조유진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갔다.‘철컥’하는 문소리와 함께 하이실 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배현수는 온몸에 힘이 거의 빠졌다.아이가 없어졌다.이 한마디는 머릿속에서 폭발한 듯 그를 완전히 산산조각냈다.침대에 주저앉은 배현수는 심장이 아파 오랫동안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안경 렌즈에 안개가 끼어 눈앞이 흐려졌다....조유진이 엄씨 사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거실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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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못생겼다고? 귀엽기만 한데?”“그리고 왜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 있는 게 아니야? 다른 집 아이들은 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중간에 있던데.”그림 속 배현수는 조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선유는 그의 다리 옆에 선 채 작은 머리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맹한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 없었다.선유는 코를 찡그렸다.“아, 알겠어! 무조건 아빠가 그린 것일 거야!”조유진은 작은 그림책을 덮더니 선유를 끌어당겼다.“아빠에게 임신했다고 얘기했어?”선유는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응. 엄마. 아빠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돼? 보니까 아주 기뻐하는 것 같던데!”처음에 이 일을 들었을 때는 아주 기뻤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일 것이다.조유진은 순간 멈칫했다.엄준이 지팡이를 짚고 2층에 서서 조유진에게 외쳤다.“환희야, 내 서재에 와.”“알겠습니다.”말을 마친 조유진은 녀석의 작은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자. 엄마가 할아버지와 할 얘기가 좀 있어.”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조유진이 2층 서재로 가자 녀석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던지고 창문으로 달려왔다.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만약 오늘 밤, 눈이 계속 온다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어린 녀석은 작은 두 손으로 창문을 짚고 바깥을 바라봤다. 흥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마당에 가서 눈싸움하고 싶었다....위층 서재.조유진이 문을 밀고 들어오며 말했다.“아빠, 무슨 볼일 있어요?”엄준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크라프트지 봉지가 뜯겨 있었다.눈살을 찌푸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에 병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너도 방금 유산을 해서 많이 물어보지 못했어. 대제주시에 사람을 보내 원인을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너의 양어머니가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지? 지금까지 네가 친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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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중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만약 애초에 유괴되어 복지 시설에 입양되었다면 나는 분명 빨리 찾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충남 조씨 집안의 딸이 될 줄은 몰랐어.”“아빠, 조범과 인맥이 있어요?”엄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조범과 안정희, 두 사람 모두 접해 본 적이 없어. 성행 그룹은 성남에서 유명해지고 나서 최근에야 대제주시에서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어. 비즈니스에서는 성행 그룹과 대제주시 충남 조씨 집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 사실 나도 궁금하고 이해가 안 돼. 그래도 인신매매범에게 팔려가지 않아 다행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 아빠와 만날 수도 있잖아.”조유진은 엄준의 팔짱을 낀 채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그때 유괴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쩌면 엄마도 계속 살아있었을 수 있었는데.”엄준은 그녀의 손을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배현수를 못 만날 수도 있었겠네.”그렇다. 만약 유괴되지 않고 충남의 조씨 집안 딸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배현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배현수와 얽히고설킨 일이 이렇게 많지도 않을 것이다.선유는 더더욱 없다.운명은 모든 사람을 연루시키며 삶을 이어나가게 했다. 그들을 떠돌게 하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했다.거대한 운명의 룰렛 앞에서 모든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다.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이때 엄준이 물었다.“배현수를 만난 것을 후회해?”조유진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대신 한마디 물었다.“참, 아버지. 오늘 집에 와서 무슨 말 하지 않았어요?”“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나와 같이 바둑 한판 뒀어. 오늘 지면 앞으로 엄씨 사택에 오지 말라고 했어. 너는 성행 그룹의 후계자이기에 너와 결혼할 마음은 일찌감치 버리라고 했어.”엄준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그대로 믿은 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럼, 누가 이겼어요?”엄준은 장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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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차 안에서.배현수는 뒷좌석에 앉아 멀리 스위스에 있는 셀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스위스는 오후이다.셀리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배 대표님?”“조유진 유산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어?”배현수의 목소리는 바깥의 눈바람보다 더 매서웠다.당황한 셀리나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배 대표님, 죄송합니다... 사모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가 없어졌으니 말해봤자 한 사람만 더 괴로울 뿐이라고요. 귀국하면 화해할 줄 알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전화기 너머 배현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희로애락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셀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배 대표님?”“유진이가... 왜 유산한 거예요?”전화기 너머로 이미 물은 이상 셀리나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이 그날 아침 스위스를 떠나자마자 사모님에게 하혈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해서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의사 말로는 사모님의 몸이 좋지 않아 유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몸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돌아가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지나치게 걱정하면 안 된다고요. 그런데... 그런데 나중에 대표님이 다른 사람과의 약혼 소식을 보고 감정이 복받쳐서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대표님이 받지 않았어요. 홧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던지고 주신 블랙 카드도 잘라버렸어요. 원래부터 태아가 불안정했는데 감정이 동요하면서 아이가... 그냥...”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배현수는 심장이 욱신욱신했다.목젖이 격렬하게 굴렀고 한참 동안 응답이 없었다.무뚝뚝하고 아무런 반응 없이 셀리나의 말을 계속 들었다.“병원에 갔을 때는 바지에 피가 흥건했어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계속 옆에 있었는데 무서워하더라고요. 대표님께 계속 전화하라고 했어요. 제가... 서 비서님께도 전화를 여러 번 드렸는데 계속 전원이 꺼져있었어요.”셀리나는 상세히 말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바지가 피범벅이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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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이날 밤, 밖에 큰 눈이 많이 내렸다.조유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한밤중에 몇 번이고 일어났다.엄씨 사택 밖의 검은 차는 아직도 가지 않았다. 차 지붕에 눈이 두껍게 쌓였다.아래층에서 인기척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바스락거리는 낮은 소리였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이튿날 아침 일찍, 조유진은 세수를 마친 후 사택 현관 밖을 내다봤다.검은색 차가 보이지 않았다.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대충 때우고 성행 그룹으로 향했다.마당에는 눈사람 세 명 있었다.모양이 그럴듯하게 보였다.제일 작은 눈사람의 팔뚝 옆에 탕후루도 꽂혀있었다. 선유는 탕후루를 제일 좋아한다.엄씨 사택의 정원에는 많은 풀이 있다.눈사람 옆에는 머메이드 모양의 웨딩드레스 모델이 원목 레저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앙상한 어깨 위에 하얀 레이스 베일이 걸쳐져 있었다.웨딩드레스 눈사람은 시원하고 단정해 보였다.굳이 얼굴이 없어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또 하나의 눈사람이 신부 눈사람 옆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 눈사람의 목에는 짙은 색의 양털 목도리가 둘려 있었다. 남자 것이다.배현수가 가끔 코트에 맞춰 목에 걸치는 스카프이다.아침 일찍 일어난 도 집사도 마당을 들여다보았다.“아가씨, 눈사람을 없애버릴까요?”조유진은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휴대전화를 거두고 말했다.“선유가 눈사람 좋아하니까 일단 놔두세요.”좀 이따 녀석이 깨어났을 때, 이렇게 ‘놀랍고 무서운’ 작품을 본다면 두 눈이 얼마나 휘둥그레질지 모른다.도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하긴, 눈사람 세 개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었을 거예요.”조유진은 한밤중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떠올랐다.“아저씨, 저 출근할게요.”“휴, 아가씨 운전 조심히 하세요. 눈 오는 날에는 길이 미끄러워요.”“알겠습니다. 아저씨.”조유진은 차 안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흰색 벤츠가 나가자 검은 그림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녀를 따라다녔다.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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