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선우.”준비해둔 이혼 합의서를 그의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사인해. 그리고 네가 어떻게 너희 엄마를 모시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어.”구선우는 손에 들린 이혼 합의서를 보며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황선영,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줬나 보다.”그는 분노로 소리쳤다.“네가 예전에 조금 억울한 일 당했다고 해서 나를 깔아뭉개도 되는 줄 알아? 말해두지만 네가 정말 이혼하면 넌 그냥 아무도 안 찾는 중고품이야, 쓰레기라고!”“정말 네가 대단한 줄 아는 거야?”구선우는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나는 시어머니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내 아들 구선후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구선우의 편을 들었다.“엄마, 이런 일로 아빠랑 이혼하겠다고 한다면 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걸 후회할 거야.”구선후의 눈에는 나에 대한 경멸만 가득했다.“어떻게 엄마가 이렇게 속 좁고 이기적일 수가 있지!”“정말 창피해!”예전이었다면, 구선후가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상처 입혔다면 나는 아마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나는 시어머니와 닮은 점이 많은 구선후를 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난 절대 너를 내 뱃속에서 낳지 않을 거야. 차라리 하수구에 흘려보냈을 것이야.”구선후는 완전히 폭발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왜, 나 때리기라도 하려는 거야?”구선후는 화가 나서 탁자를 걷어차며 구선우에게 소리쳤다.“아빠, 이 여자를 내보내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요!”구선우도 내가 갈 곳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 듯했다.그는 위압적인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며,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네가 사과한다면 다 잊어줄 수 있어. 하지만 끝까지 고집부린다면, 내게 정을 기대하지 마.”나는 그를 비웃듯 눈을 굴리며 내 짐을 끌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턱에 다다랐을 때 거실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창가에 앉아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문득 시어머니가 거친 남자를 데리고 내 방에 들이닥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선후의 목을 쥔 채 악을 쓰며 나를 위협했다.“황선영, 네가 그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 아들을 죽여버릴 거야.”구선후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시어머니의 협박이다. 나는 그녀 품 안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들과, 바로 코앞에서 더럽게 웃고 있는 거친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아들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고 말았다.하지만 다행히도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구선우가 돌아온 것이다.그는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와 문에 내리꽂으며 그 남자를 쫓아냈다. 이후 시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녀는 도박으로 돈을 잃고 채워 넣을 방법이 없어 그런 끔찍한 짓을 계획했다고 고백했다.무릎을 꿇고 울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시어머니, 결국은 친엄마라는 이유로 구선우는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아들과 이 가정을 위해 나는 또다시 참아야 했다. 구선우는 진정성을 보이겠다며 그녀를 쫓아냈다.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그때 바로 단호하게 시어머니를 경찰에 넘겨 법의 심판을 받게 했어야 했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늦지 않았다.창가에 앉아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취해 내 집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고, 변호사와 상담해 바로 이혼 소송을 진행했다. 나는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는 사이 구선우와 시어머니는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내가 집을 매물로 내놓은 후, 매일 사람들이 집을 보러 가는데 시어머니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그들을 내쫓았다고 했다. 중개업자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완전 소 같은 힘으로 빗자루 휘두르시던데요. 어디 암환자처럼 보이세요. 저보다 더 오래 사실 것 같아요.”나는 중개업자한테 부동산 증명서에 내 이름만 적혀 있으니 그 사람들이 계속 막으면 그냥 경찰에 신고해서 무단침입으로 처리하라고 했다.이 일로 구선우와 구선후는 번갈아가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와 연
시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이어서 말했다.“정말로 날 화나게 하고 싶으면 당신 노후를 감옥에서 보내게 해 줄 수도 있어요.”“내가 당신이라면 매일 불공이나 드리면서 조용히 살겠어요. 사람답게 살 줄 모르면 차라리 짐승으로 살아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날 건드리지 말고요.”시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황선영, 너랑 끝장을 보겠어!”그녀가 더 이상 욕하기도 전에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예전에 구선후를 죽이겠다며 날 협박한 일이나 요독증으로 우리 집에 있었던 일, 그걸 다시 들춰낼 자신 있어요?”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겁을 먹었다는 게 분명했다.나는 미소를 지었다.옆에서 친구가 웃으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멋지다, 자기야.”나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그냥 뭐, 그럭저럭이지.”나는 구씨 가문 사람들의 번호를 차단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여행 일정을 앞당겨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갔다. 거기서 내가 필요한 물건을 챙겨 바로 집으로 돌아와 구선우 회사로 갔다.구선우는 나를 보자마자 화를 내려고 하는데 내가 이혼 협의서를 내던졌다.“일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서명해.”구선우는 서류를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싫다고 하면? 네가 날 어쩔 건데.”맞다. 내가 그를 어쩔 수는 없었다.그래서 가방에서 준비해 온 확성기를 꺼냈다.그리고 그의 회사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구선우, 지난달에 천만 원 리베이트를 받았고, 뒤에서는 전 팀장 인간이 아니라고 욕했습니다. 그리고 조 부장님이 20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도 못마땅하다고...”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구선우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와 내 입을 막았다.구선우가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와 내 입을 막았다.회사는 어떤 곳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가 여기에 계속 남고 싶다면 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너 미쳤어!”구선우는 내 입을 막으며 화를 냈다.“네가 나를 망가뜨리면 너한테 뭐가
“이 따귀는 십몇 년 동안 네가 나한테 빚진 것이야.”시어머니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이 따귀는 우리 둘의 끝이고.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안 그러면 널 감옥으로 보낼 거야.”나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구선후가 따라왔다.“엄마.”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엄마.”구선후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난 몰랐어.”그는 한 발짝 다가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할머니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 엄마, 나 데려가 줘.”“범죄자인 할머니도, 집도 없는 아빠도 다 싫어. 엄마가 날 제일 사랑하잖아. 나 데려가 줘.”구선후가 말을 하는 동안, 구선우가 숨을 헐떡이며 뒤에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구선후에게 물었다.“그러니까 네 아빠가 싫다고?”“오래전부터 그랬어.”구선후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80만 원짜리 게임기도 못 사주는 사람이 어떻게 아빠라고 할 수 있어?”“엄마, 앞으로 정말 잘할게. 나 데려가 줘.”나는 구선우의 철렁 내려앉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들었지?”구선후는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고, 나는 그를 보고 다시 말했다.“이게 네 아들, 그리고 네 엄마다.”구선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나는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미안하지만 네 아빠랑 이혼할 때 네 양육권은 내가 포기했어. 난 너 같은 아들이 없으니까 그냥 네 아빠랑 할머니랑 잘 살아.”나는 뒤돌아섰다.구선후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구선우가 그를 가로막았다.구선우는 이미 나한테 받은 상처와 분노로 화가 나 있었는데 아들의 말까지 듣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을 들어 구선후의 뺨을 내리쳤다.“이 망할 놈아!”“네가 어떻게 네 아버지한테 이럴 수 있어!”구선후는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했다. 그는 맞고 난 후 바로 구선우에게 대들었다.“다 아빠 잘못이에요! 아빠가
나는 구선우가 시어머니를 힘껏 밀치며 소리친 것을 보았다.“비켜요!”구선후의 뒤통수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는 구선우와 시어머니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다 당신들 때문이야! 당신들이 미워!”구선후가 어떻게 다치든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구선우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나는 그들이 병원에 간 틈을 타 이삿짐 센터를 불렀다.그리고 그들의 물건을 전부 포장해 집 밖으로 내던졌다. 방을 완전히 비우고 매수인과 계약을 깔끔히 마쳤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새로운 집을 둘러봤다.새로운 시작을 위해 집을 마련한 것이다.하루 종일 바빴던 나는 쉬기도 전에 동료에게 소식을 들었다.전남편네 가족이 내 회사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그들이 벌인 소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구선우는 확성기를 들고 나를 찾아내겠다고 소리쳤고, 플래카드에는 돈을 갚으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웃음이 나왔다.친구에게 각도를 잘 맞춰 촬영을 부탁한 뒤 나는 단독으로 그들 앞으로 나갔다.나를 본 순간, 구선우는 구선후를 밀어 앞세웠다.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은 구선후는 눈만 내놓고 나를 향해 외쳤다.“엄마.”구선우는 그를 가리키며 나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너랑 이혼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네 아들은 네가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얘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넌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다니, 사람이냐고!”주변 사람들은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구선후가 붕대를 감은 모습과 구선우의 말을 듣고는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설마, 사람같이 보였는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해.”“겉모습에 속지 말라더니, 뱀 같은 여자네.”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어머니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악을 썼다.“우리 아들은 어릴 때 아빠를 잃고, 내가 혼자 힘들게 키워냈어요. 간신히 도시에서 자리 잡았는데, 며느리를 맞아 안정된 삶을 꿈꿨죠.”“그런데 이런 불운한 여자를 데려오다니, 내가 아들 손주 좀 보겠다고 하니까 이혼한다고 난리치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를 까며 웃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게 되었다.“며느리, 왔구나.”내 표정이 굳어졌다.아직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놀랍지 않아? 뜻밖이지?”“내가 네 남편이랑 아들이 날 오라고 했어.”“열받아?”시어머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피줄이 뭔지 알겠니? 나랑 내 아들이랑 손자는 피로 이어져 있어서 너 같은 외부인은 끼어들 수 없어!”여전히 뻔뻔한 시어머니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웠다.나는 시어머니의 표정만 보고도 속이 울렁거렸고, 따질 새도 없이 방에서 나온 남편과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그들이 나를 보자 웃음소리가 딱 멎었다.적막이 흐르는 거실.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시어머니는 금세 태도를 바꿨다.“선우를 탓하지 마. 내가 오래 못 살 것 같아서 애원해서 들여보내 달라고 한 거야.”태도가 돌변한 시어머니는 화해라도 하려는 듯 진단서를 꺼냈다.“자궁암 판정을 받았어. 이제 얼마 못 살아.”시어머니는 목소리가 떨렸다.“네가 날 내쫓으면 정말 사람이 아니야.”내쫓길까 봐 두려운 듯 시어머니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나는 시어머니의 연기에 감탄하며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았다.“너희는 어떻게 생각해?”나와 시어머니가 사이가 좋지 않은 걸 구선우는 모를 리 없었다.과거엔 구선우가 우리의 결혼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시어머니를 내보내야 했다.다시는 시어머니를 우리 앞에 두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었다.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아 구선우는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그는 묵묵히 내 앞에 서서 내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효도는 모든 선행의 시작이야.”“출산했을 때 그 일을 언제까지 기억할 거야? 엄마가 이런데 널 괴롭히면 얼마나 괴롭히겠어?”“나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선후를 생각해야지.”구선후는 당당히 말했다.“할머니가 이제 얼마 못 사는데 노후를
구선우는 시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 듯 보였지만 좋은 말로 시어머니를 달래려고 했다.그럴수록 시어머니는 기세가 등등해졌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엔 도전적인 기색이 가득했다.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한없이 억울하고 서러웠다.“아들아, 네 아빠가 일찍 떠나고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그래도 난 후회 없어. 네가 이렇게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야.”“이제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 얼굴 좀 더 보고 싶어서 그래. 그게 내 욕심인가 보다.”“너희 부부가 다투는 것도 다 내 탓이지. 괜찮아, 내가 나가면 돼.”시어머니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한 발짝씩 걸음을 떼더니 갑자기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아들아, 내가 죽는 게 낫겠다.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외면하다니!”시어머니의 과장된 행동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 초반부터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항상 내게 피해를 입히곤 했다.하지만 이제 더는 속지 않는다.구선우는 시어머니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나를 밀치고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너 진짜 언제까지 이럴 거야? 당장 와서 엄마한테 사과해!”옆에서 나를 보던 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내가 다 들었어. 아빠랑 할머니가 그러는데 예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앙심을 품고 있던 거야? 할머니는 이제 얼마 못 사신다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 주셔야지.”내가 놀라서 아들을 쳐다봤지만 그는 내 눈을 피하며 차갑게 말했다.“할머니가 우리랑 같이 못 살게 하면 엄마랑 연 끊을 거야!”내가 키우고 사랑으로 길러낸 아들이 자신을 거의 죽일 뻔한 할머니를 위해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런 말에는 흔들릴 수 없었다.“좋아, 나도 할 말은 해야겠어.”“이 집에선 우리 둘 중 하나만 남을 수 있어.”나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눈에 힘을 주어 구선후를 바라보다며 거의 울 뻔했다.하지만 내 아들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
나는 구선우가 시어머니를 힘껏 밀치며 소리친 것을 보았다.“비켜요!”구선후의 뒤통수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는 구선우와 시어머니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다 당신들 때문이야! 당신들이 미워!”구선후가 어떻게 다치든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구선우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나는 그들이 병원에 간 틈을 타 이삿짐 센터를 불렀다.그리고 그들의 물건을 전부 포장해 집 밖으로 내던졌다. 방을 완전히 비우고 매수인과 계약을 깔끔히 마쳤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새로운 집을 둘러봤다.새로운 시작을 위해 집을 마련한 것이다.하루 종일 바빴던 나는 쉬기도 전에 동료에게 소식을 들었다.전남편네 가족이 내 회사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그들이 벌인 소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구선우는 확성기를 들고 나를 찾아내겠다고 소리쳤고, 플래카드에는 돈을 갚으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웃음이 나왔다.친구에게 각도를 잘 맞춰 촬영을 부탁한 뒤 나는 단독으로 그들 앞으로 나갔다.나를 본 순간, 구선우는 구선후를 밀어 앞세웠다.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은 구선후는 눈만 내놓고 나를 향해 외쳤다.“엄마.”구선우는 그를 가리키며 나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너랑 이혼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네 아들은 네가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얘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넌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다니, 사람이냐고!”주변 사람들은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구선후가 붕대를 감은 모습과 구선우의 말을 듣고는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설마, 사람같이 보였는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해.”“겉모습에 속지 말라더니, 뱀 같은 여자네.”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어머니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악을 썼다.“우리 아들은 어릴 때 아빠를 잃고, 내가 혼자 힘들게 키워냈어요. 간신히 도시에서 자리 잡았는데, 며느리를 맞아 안정된 삶을 꿈꿨죠.”“그런데 이런 불운한 여자를 데려오다니, 내가 아들 손주 좀 보겠다고 하니까 이혼한다고 난리치고,
“이 따귀는 십몇 년 동안 네가 나한테 빚진 것이야.”시어머니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이 따귀는 우리 둘의 끝이고.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안 그러면 널 감옥으로 보낼 거야.”나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구선후가 따라왔다.“엄마.”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엄마.”구선후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난 몰랐어.”그는 한 발짝 다가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할머니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 엄마, 나 데려가 줘.”“범죄자인 할머니도, 집도 없는 아빠도 다 싫어. 엄마가 날 제일 사랑하잖아. 나 데려가 줘.”구선후가 말을 하는 동안, 구선우가 숨을 헐떡이며 뒤에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구선후에게 물었다.“그러니까 네 아빠가 싫다고?”“오래전부터 그랬어.”구선후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80만 원짜리 게임기도 못 사주는 사람이 어떻게 아빠라고 할 수 있어?”“엄마, 앞으로 정말 잘할게. 나 데려가 줘.”나는 구선우의 철렁 내려앉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들었지?”구선후는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고, 나는 그를 보고 다시 말했다.“이게 네 아들, 그리고 네 엄마다.”구선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나는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미안하지만 네 아빠랑 이혼할 때 네 양육권은 내가 포기했어. 난 너 같은 아들이 없으니까 그냥 네 아빠랑 할머니랑 잘 살아.”나는 뒤돌아섰다.구선후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구선우가 그를 가로막았다.구선우는 이미 나한테 받은 상처와 분노로 화가 나 있었는데 아들의 말까지 듣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을 들어 구선후의 뺨을 내리쳤다.“이 망할 놈아!”“네가 어떻게 네 아버지한테 이럴 수 있어!”구선후는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했다. 그는 맞고 난 후 바로 구선우에게 대들었다.“다 아빠 잘못이에요! 아빠가
시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이어서 말했다.“정말로 날 화나게 하고 싶으면 당신 노후를 감옥에서 보내게 해 줄 수도 있어요.”“내가 당신이라면 매일 불공이나 드리면서 조용히 살겠어요. 사람답게 살 줄 모르면 차라리 짐승으로 살아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날 건드리지 말고요.”시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황선영, 너랑 끝장을 보겠어!”그녀가 더 이상 욕하기도 전에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예전에 구선후를 죽이겠다며 날 협박한 일이나 요독증으로 우리 집에 있었던 일, 그걸 다시 들춰낼 자신 있어요?”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겁을 먹었다는 게 분명했다.나는 미소를 지었다.옆에서 친구가 웃으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멋지다, 자기야.”나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그냥 뭐, 그럭저럭이지.”나는 구씨 가문 사람들의 번호를 차단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여행 일정을 앞당겨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갔다. 거기서 내가 필요한 물건을 챙겨 바로 집으로 돌아와 구선우 회사로 갔다.구선우는 나를 보자마자 화를 내려고 하는데 내가 이혼 협의서를 내던졌다.“일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서명해.”구선우는 서류를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싫다고 하면? 네가 날 어쩔 건데.”맞다. 내가 그를 어쩔 수는 없었다.그래서 가방에서 준비해 온 확성기를 꺼냈다.그리고 그의 회사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구선우, 지난달에 천만 원 리베이트를 받았고, 뒤에서는 전 팀장 인간이 아니라고 욕했습니다. 그리고 조 부장님이 20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도 못마땅하다고...”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구선우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와 내 입을 막았다.구선우가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와 내 입을 막았다.회사는 어떤 곳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가 여기에 계속 남고 싶다면 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너 미쳤어!”구선우는 내 입을 막으며 화를 냈다.“네가 나를 망가뜨리면 너한테 뭐가
창가에 앉아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문득 시어머니가 거친 남자를 데리고 내 방에 들이닥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선후의 목을 쥔 채 악을 쓰며 나를 위협했다.“황선영, 네가 그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 아들을 죽여버릴 거야.”구선후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시어머니의 협박이다. 나는 그녀 품 안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들과, 바로 코앞에서 더럽게 웃고 있는 거친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아들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고 말았다.하지만 다행히도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구선우가 돌아온 것이다.그는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와 문에 내리꽂으며 그 남자를 쫓아냈다. 이후 시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녀는 도박으로 돈을 잃고 채워 넣을 방법이 없어 그런 끔찍한 짓을 계획했다고 고백했다.무릎을 꿇고 울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시어머니, 결국은 친엄마라는 이유로 구선우는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아들과 이 가정을 위해 나는 또다시 참아야 했다. 구선우는 진정성을 보이겠다며 그녀를 쫓아냈다.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그때 바로 단호하게 시어머니를 경찰에 넘겨 법의 심판을 받게 했어야 했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늦지 않았다.창가에 앉아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취해 내 집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고, 변호사와 상담해 바로 이혼 소송을 진행했다. 나는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는 사이 구선우와 시어머니는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내가 집을 매물로 내놓은 후, 매일 사람들이 집을 보러 가는데 시어머니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그들을 내쫓았다고 했다. 중개업자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완전 소 같은 힘으로 빗자루 휘두르시던데요. 어디 암환자처럼 보이세요. 저보다 더 오래 사실 것 같아요.”나는 중개업자한테 부동산 증명서에 내 이름만 적혀 있으니 그 사람들이 계속 막으면 그냥 경찰에 신고해서 무단침입으로 처리하라고 했다.이 일로 구선우와 구선후는 번갈아가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와 연
“구선우.”준비해둔 이혼 합의서를 그의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사인해. 그리고 네가 어떻게 너희 엄마를 모시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어.”구선우는 손에 들린 이혼 합의서를 보며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황선영,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줬나 보다.”그는 분노로 소리쳤다.“네가 예전에 조금 억울한 일 당했다고 해서 나를 깔아뭉개도 되는 줄 알아? 말해두지만 네가 정말 이혼하면 넌 그냥 아무도 안 찾는 중고품이야, 쓰레기라고!”“정말 네가 대단한 줄 아는 거야?”구선우는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나는 시어머니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내 아들 구선후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구선우의 편을 들었다.“엄마, 이런 일로 아빠랑 이혼하겠다고 한다면 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걸 후회할 거야.”구선후의 눈에는 나에 대한 경멸만 가득했다.“어떻게 엄마가 이렇게 속 좁고 이기적일 수가 있지!”“정말 창피해!”예전이었다면, 구선후가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상처 입혔다면 나는 아마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나는 시어머니와 닮은 점이 많은 구선후를 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난 절대 너를 내 뱃속에서 낳지 않을 거야. 차라리 하수구에 흘려보냈을 것이야.”구선후는 완전히 폭발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왜, 나 때리기라도 하려는 거야?”구선후는 화가 나서 탁자를 걷어차며 구선우에게 소리쳤다.“아빠, 이 여자를 내보내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요!”구선우도 내가 갈 곳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 듯했다.그는 위압적인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며,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네가 사과한다면 다 잊어줄 수 있어. 하지만 끝까지 고집부린다면, 내게 정을 기대하지 마.”나는 그를 비웃듯 눈을 굴리며 내 짐을 끌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턱에 다다랐을 때 거실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구선후는 입에 발린 말을 하며 시어머니를 웃게 만들었다.겉보기에는 화목한 가족 같아 보였지만 그 화목함은 내 고통 위에 쌓인 것이었다.시어머니의 웃음소리는 내 귀에 거슬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너도 네 엄마랑 너무 따지지 마.”시어머니는 여전히 착한 척하며 말했다.“젊었을 때부터 뒤끝이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네 엄마잖니. 네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봐.”그렇게 말하며 어머니의 목소리는 갑자기 울컥해졌다.“나는 네 엄마가 달라질 줄 알았어. 근데 어쩜 이리도 안 바뀌고, 오히려 더 심해지니.”나는 마지막 옷 한 벌을 가방에 넣으며 그날을 떠올렸다.그때 나는 몰래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그걸 보더니 대노하며, 아이들에게 병을 옮길지 모른다며 부엌칼을 들고 고양이들을 죽이려 했다.나는 뒤따르며 울면서 말렸다. 길고양이들도 불쌍한 생명인데, 제발 해치지 말라고.그런데 시어머니는 내 말을 비웃으며 내가 착한 척한다고, 남편 돈으로 이런 거나 챙기고 다닌다고 하였다.그날 시어머니는 나를 밀쳤고, 나는 차량에 치여 구선후를 조산하게 되었다.나는 가슴이 쓰라려지며 아들을 떠올렸다.그때 조그맣게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던 구선후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났는데지금은 오히려...가방의 지퍼를 올리고 거실로 나섰다.그리고 거실에 모여 있는 가족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그때 당신이 날 차도로 밀쳐 선후를 조산하게 하고, 중환자실에 한 달을 누워 있던 그 아이를 한 번이라도 보러 갔습니까?”구선후가 태어난 그때 어머니는 구선우에게 병원비를 내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병원비가 비싸다며 병원에서 울며불며 소동을 일으켰다.결국 우리 부모님이 먼 지방에서 급히 달려와 병원비를 대신 냈다.그때 어머니는 눈물로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다가 돈이 해결되자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그때 부모님이 돈을 낸 뒤로 왜 갑자기 태도가 변했죠?”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선후가 한 달간 병원에
구선우는 시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 듯 보였지만 좋은 말로 시어머니를 달래려고 했다.그럴수록 시어머니는 기세가 등등해졌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엔 도전적인 기색이 가득했다.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한없이 억울하고 서러웠다.“아들아, 네 아빠가 일찍 떠나고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그래도 난 후회 없어. 네가 이렇게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야.”“이제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 얼굴 좀 더 보고 싶어서 그래. 그게 내 욕심인가 보다.”“너희 부부가 다투는 것도 다 내 탓이지. 괜찮아, 내가 나가면 돼.”시어머니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한 발짝씩 걸음을 떼더니 갑자기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아들아, 내가 죽는 게 낫겠다.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외면하다니!”시어머니의 과장된 행동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 초반부터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항상 내게 피해를 입히곤 했다.하지만 이제 더는 속지 않는다.구선우는 시어머니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나를 밀치고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너 진짜 언제까지 이럴 거야? 당장 와서 엄마한테 사과해!”옆에서 나를 보던 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내가 다 들었어. 아빠랑 할머니가 그러는데 예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앙심을 품고 있던 거야? 할머니는 이제 얼마 못 사신다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 주셔야지.”내가 놀라서 아들을 쳐다봤지만 그는 내 눈을 피하며 차갑게 말했다.“할머니가 우리랑 같이 못 살게 하면 엄마랑 연 끊을 거야!”내가 키우고 사랑으로 길러낸 아들이 자신을 거의 죽일 뻔한 할머니를 위해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런 말에는 흔들릴 수 없었다.“좋아, 나도 할 말은 해야겠어.”“이 집에선 우리 둘 중 하나만 남을 수 있어.”나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눈에 힘을 주어 구선후를 바라보다며 거의 울 뻔했다.하지만 내 아들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를 까며 웃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게 되었다.“며느리, 왔구나.”내 표정이 굳어졌다.아직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놀랍지 않아? 뜻밖이지?”“내가 네 남편이랑 아들이 날 오라고 했어.”“열받아?”시어머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피줄이 뭔지 알겠니? 나랑 내 아들이랑 손자는 피로 이어져 있어서 너 같은 외부인은 끼어들 수 없어!”여전히 뻔뻔한 시어머니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웠다.나는 시어머니의 표정만 보고도 속이 울렁거렸고, 따질 새도 없이 방에서 나온 남편과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그들이 나를 보자 웃음소리가 딱 멎었다.적막이 흐르는 거실.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시어머니는 금세 태도를 바꿨다.“선우를 탓하지 마. 내가 오래 못 살 것 같아서 애원해서 들여보내 달라고 한 거야.”태도가 돌변한 시어머니는 화해라도 하려는 듯 진단서를 꺼냈다.“자궁암 판정을 받았어. 이제 얼마 못 살아.”시어머니는 목소리가 떨렸다.“네가 날 내쫓으면 정말 사람이 아니야.”내쫓길까 봐 두려운 듯 시어머니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나는 시어머니의 연기에 감탄하며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았다.“너희는 어떻게 생각해?”나와 시어머니가 사이가 좋지 않은 걸 구선우는 모를 리 없었다.과거엔 구선우가 우리의 결혼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시어머니를 내보내야 했다.다시는 시어머니를 우리 앞에 두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었다.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아 구선우는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그는 묵묵히 내 앞에 서서 내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효도는 모든 선행의 시작이야.”“출산했을 때 그 일을 언제까지 기억할 거야? 엄마가 이런데 널 괴롭히면 얼마나 괴롭히겠어?”“나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선후를 생각해야지.”구선후는 당당히 말했다.“할머니가 이제 얼마 못 사는데 노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