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선글라스 사이로 소만영의 일그러진 웃음을 봤다.소만리가 아무 말없이 평온한 걸음으로 경매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과거의 소만리는 화장도 안 하고 꾸미지도 않고 하이힐을 신고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 몇 년 동안 그녀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하지만 지금 소만리의 모든 것이 변했다.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예전의 소만리가 아니다!소만리는 웃으며 태연하게 소만영 뒤 빈자리에 앉았다.기모진의 시선은 여전히 소만리에게 향했다.기모진이 소만리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자 소만영은 불쾌해하며 주먹을 쥐었다.기모진은 여전히 소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여자가 소만리와 좀 닮았다고 끊임없이 볼 수 있었을까!소만리는 기모진이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빛은 아마도 그녀가 가장 바라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자리에 앉은 지 얼마되지 않아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저 여자 누구야? 우리 모임에 이런 여자가 있었나?”"팔찌랑 목걸이 좀 봐, miss l.ady 회원만 살수 있는 신상품이야.”"저 여자 돈 좀 있어 보이는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선글라스 쓰고 있으니까 신비감 있어 보여.”"신비감은 무슨, 다 가짜일지도 모르는데."오늘 밤의 하이라이트는 기모진의 약혼녀 소만영이에요. 오늘 밤 기모진이 가게를 낙찰 받아서 소만영 생일 선물로 줄 거예요!”소만리는 사람들의 추측을 들으며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 진행자가 도착해 인사말을 한 뒤 본격적으로 경매가 시작되었다.경매에 나온 곳은 수정거리 1번지에 있는 가게로 최저가가 오백만 원이다.오늘 밤 기모진이 낙찰 받을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최고 번화가의 가게로 높은 가치 창출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했다.소만영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어올릴 때마다 더 높은 금액을 불렀다.어느덧 팔백 팔십만
소만리의 말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눈길이 쏟아졌다. 소만영은 피켓을 부러뜨릴 만큼 화가 났다. 저 여자는 일부로 나와 경쟁하는 건가?그녀가 뭔데 감히 나와 경쟁을! 소만영은 숨 삼킬 틈도 없이 당장 피켓을 들었다.사람들은 소만영이 단숨에 몇 백만 원을 올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오십만 원만 올렸다.소만영의 말이 끝나자 소만리가 놀라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천만 원.”“이씨..."경매장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소만영의 체면이 구겨졌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애써 부드러운 미소로 소만리를 째려봤다. "아가씨, 혹시 누가 일부러 여기 와서 가격 높이라고 시켰어요? 그 가게 내 약혼자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는 거 여기 모든 사람이 다 알아요, 설마 남의 물건 뺏는 거 좋아해요?“남의 물건을 뺏어요? 그건 소 아가씨가 잘하는 거 아니에요?”"그게 무슨 뜻이에요?" 소만영의 안색이 변했다."아니에요." 소만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는 그냥… 그 가게에 소만영씨 이름 적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매 규칙을 존중해 주세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이 가게 받는 거예요.”"너…" 소만영은 너무 화가 나 말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피켓을 들고 다시 금액을 올리고 싶었지만 금액을 올리지 못하고 그저 기모지만 쳐다봤다. “모진아…”“저 여자 말이 맞아, 높게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거야.” 기모진은 소만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만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진행자는 소만리가 부른 금액을 반복하기 시작했다.소만영은 화나고 조급해졌다. 그녀가 정신 차리고 금액을 더 올리고 싶었을 때 이미 경매가 끝났다. 진행자는 소만리를 단상으로 불렀다. 그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단상으로 올라갔다.소만리의 여유로운 표정과 우아한 몸짓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여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제 성은 천입니다."
”감사합니다.”소만리가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이 기모진의 귓가를 맴돌며 그의 마음에 깊게 꽂혔다.그는 소만리의 작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한순간 모든 감각을 잃었다. 그는 심지어 지금 이 1초가 꿈이라고 생각했다.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얼굴.놀랍도록 눈부시게 아름답다. 만리!그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3년 동안 잠들어 있던 마음이 이 순간 깨어난 것 같았다.기모진의 모습을 보며 소만리는 입술을 깨물었다.기모진, 많이 놀랐지? 네가 가장 싫어하는 전처 죽지 않았어. 하지만 난 더 이상 내 자존심까지 버리며 너를 사랑하는 그런 소만리가 아니야!"기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소만리는 그의 손을 놓으며 우아하고 여유롭게 기모진을 스치며 지나갔다.손안의 따뜻함이 떠나가고 기모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그의 곁에서 특별한 향기가 풍겼다. 뒤를 돌아보니 소만리가 옆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기모진은 망설이지 않고 소만리를 따라 나갔다.경매장 안의 모든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의아해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 중 예전에 소만리를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저 얼굴이 참 예쁘고 낯이 좀 익은 정도였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소만영은 소만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녀는 기모진이 다른 여자를 따라 나가자 곧장 그를 쫓아갔다. 소만영이 호텔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이미 기모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둠으로 뒤 덮인 도시의 밤이 불빛으로 반짝거렸다.소만리는 호텔 문을 나서 몇 발자국 안 갔을 때 길가에 주차된 차 백미러로 기모진이 따라오는 것을 봤다. 기모진의 안색은 안 좋았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해 보였다."소만리!" 그녀는 기모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소만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며 차 백미러로 자신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기모진을 보았다.
소만리의 말을 들은 기모진의 얼굴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갑자기 손을 뻗어 소만리의 턱을 잡았다. 소만리는 기모진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피하며 말했다.“기 선생님, 이미 약혼자까지 있으니 자중해주세요.” 소만리는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그러나 기모진은 몹시 차가운 표정으로 소만리를 노려보았다.“소만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왼쪽 가슴 좀 보여줄 수 있을까요?”그는 소만리의 왼쪽 가슴에 있는 점을 잊지 못했다. 기모진의 말을 듣고 소만리의 얼굴이 굳어졌다."기 선생님, 장난하세요? 제가 가슴을 보여드릴 것 같아요? 이거 놓으세요.” “자신 없어서 안 보여주는 거지? 소만리, 너 안죽었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은 거야.” 기모진은 소만리의 아름다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안 죽었어? 기모진, 내가 살아서 방해 되니? 내가 다시 죽기를 바라는 거야?기모진의 말을 듣고 소만리는 웃었다. "기선생, 정말 웃기시네요, 제 이름은 천미랍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기모진씨의 죽은전처 소만리가 아니에요, 이 손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바로 그때, 승용차가 멈춰 서며 창문을 내렸다. 성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미랍아, 경매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이제 그 가게의 주인 됐는데 우리 축하주 마시러 가자! 어? 근데 이 분은 누구신데 네 손을 잡고 있어?”기모진은 여자가 의심스러운 듯 묻는 것이 듣기 싫었다. 그리고 소만리가 자신을 소개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이 분은 경도 제일의 부잣집 황태자, 기가 집안 재벌 기모진, 기 선생이셔.”"아~ 기모진씨였구나. 그런데 이분이 왜 네 손을 잡고 있어?""기 선생이 내가 죽은 자기 전처와 닮았데." 소만리는 웃으며 말했다. “퉤퉤퉤, 무슨 죽은 사람을 닮았다고 하니, 기선생님, 설마 미랍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작업 거는 거 아니죠? 이런 수법 너무 많이 봤어요, 하지만 미랍이 차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
기모진은 자료를 열어보던 손을 잠시 멈췄다. "나가 있어."육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기모진의 말에 바로 나갔다.기모진이 자료를 펼치자 위의 내용은 간단명료했다.천미랍, F나라 국적으로 F나라에서 자라 경도에 온 적이 없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취미가 다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간관계에 대한 자료는 전혀 없었고, 그저 남자 친구 한 명만 있다고 했다. 남자 친구. 기모진의 머릿속에 그날 KFC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약지손가락에 껴진 반지가 생각났다.그녀는 이미 약혼 한 걸까?기모진이 담배에 불을 붙이자 하얀 연기가 그의 입술 사이로 뿜어져 그의 시선을 가렸다.눈앞의 사진을 보면서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기모진의 타깃이 예선으로 바뀌었다.당시 예선이 소만리의 시신을 가지고 장례식장에 갔다. 기모진이 장례식에 도착했을 때 예선이 소만리의 유골함을 가지고 나왔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것이 소만리의 유골이 아닐 거라는 의심을 한 적 없었다.그런데 지금은...기모진은 곧바로 예선의 직장으로 찾아가 그녀를 미행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예선의 며칠간 통화 기록도 조사했지만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예선은 소만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만약 소만리가 살아있다면 예선과 반드시 연락했을 것이다. 혹시 소만리가 기모진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연락하지 않은 걸까?만약 유골로 DNA 검사를 할 수 있었다면 그는 했을 것이다.하지만 아쉽게도 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일찍 일어나 딸의 머리를 곱게 땋아 어린이집에 보냈다.소만리가 유치원을 막 떠나려 할 때, 유치원 정문에서 걸어오는 남자아이에게 시선이 끌렸다. 소만리는 한 눈에 알아봤다. 바로 기란군이었다.3년이 지나 기란군은 다섯 살이 되었다. 그 당시 앳된 얼굴이 더 잘생겨졌다. 미간이 기모진과 많이 닮았다.소만리는 기모진과 소만영의 아들 기란군이 밉지도 싫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만리는 기란군을 볼 때 마다 잔혹하게 죽은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소만리는 입술
기모진도 아들과 서먹하게 지내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기모진은 소만리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기모진은 소만리 오른쪽 뺨에 두 개의 깊은 칼자국이 그녀가 죽는 날까지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흰 피부와 복사꽃 같은 볼에 아름다운 미소가 눈부셨다. “미랍 아가씨, 우리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기모진이 여유롭게 말했다. “오늘은 죽은 전처 취급 안 하시네요?” 소만리는 기모진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표현이 불만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제가 미랍 아가씨에게 저녁 대접해도 될까요?”“저녁은 안될 것 같고… 오늘 점심은 괜찮아요.” 소만리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소만리의 대답에 기모진은 왠지 기뻤다. 다만 기뻐한 지 불과 몇 초 만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는 소만리를 생각했다.기모진은 소만리와 결혼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소만리는 매일 기모진을 위해 밥을 차리고 기다렸지만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기모진은 소만리를 닮은 여자에게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로해야 했다.소만리는 수정거리 1호점 가게 인테리어를 하며 개점 준비를 했다. 열한 시가 안 됐을 때 기모진이 왔다.그는 한정판 흰색 스포츠카로 차를 바꿨다. 차가 가게 앞에 서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차에서 내린 기모진에게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다.그는 젊은 나이에 재능 있고, 게다가 흠잡을 곳 없는 외형까지 더해져 여자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남신이다. 그는 매우 젠틀하게 소만리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 소만리는 차에 타자 아이러니했다. 소만리는 한때 그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는 그녀를 미워하고 더럽게 여겼다. 심지어 소만리를 조수석에 태우기는커녕 그의 차를 만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알게 된 지 하루도 안된 여자를 조수석에 태웠다. 이것은 당시 그의 마음속에서 소만리의 지위가 얼마나 낮았
소만영이 황급히 식당에 도착했을 때 창가 쪽 자리에 기모진이 앉아 있는 것을 봤다.비록 뒷모습이지만 그녀가 기모진을 잘못 봤을 리 없다.그러나 기모진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소만영은 그녀가 화장실에 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모진에게 인사하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화장실에는 사진 속과 같은 옷차림의 여자는 없었다.소만영은 속으로 욕을 하고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띄며 기모진에게 갔다. 하지만 기모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기모진의 하얀 스포츠카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게다가 조수석에는 분명히 여자가 앉아있었다. 소만영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즉시 기무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소만리는 밤마다 노트북으로 새로운 쥬얼리 디자인을 만들었다. 딸이 그녀의 다리에 기어올라 마치 고양이처럼 달라붙었다."엄마, 염염이 오늘 오빠 만났어요, 오빠가 귀여운 막대사탕 줘서 너무 좋았어요.”소만리는 고개를 숙여 바비인형 같은 작은 얼굴을 보며 귀여워 뽀뽀를 했다."그래? 그럼 염염이도 오빠한테 선물 줬어?""응!" 소만리의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사준 오리인형 줬는데 오빠가 싫다고 그랬어요.”"그랬구나….""아! 알았어요! 내일 이거 란군 오빠 줄 거예요! " 그녀의 딸이 갑자기 소만리의 다리에서 내려와 탁자로 달려갔다. “염염아 그 오빠 이름이 뭐라고?” 소만리의 안색이 변했다. “기란군, 오빠 성이랑 염염이 성이랑 똑같아요.”“......”소만리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자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경도 가서 적응 잘 잘했어?”"응, 너 언제 와?" 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동안 침묵을 하다 말했다.“무슨 일 있어?”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염염이가 기란군이랑
소만영은 위기를 느끼고 발을 삐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 전예가 기모진에게 과장되게 말해 그를 속여 모가 집으로 그녀를 보러 오게 만들었다. 넓고 예쁜 방을 화려하게 꾸미고, 옷방에는 온갖 명품들로 가득했다.소만영은 원래 소만리의 것을 당연하게 즐기며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심지어 모보아의 죽음마저도 자신의 결단력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만이 이런 상류층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소만리와 모보아 모두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천미랍에게 질 수 있겠는가?소만영이 우쭐거리며 생각하고 있을 때 기모진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이내 약하게 침대에 기대어 가식적으로 아련하게 그를 쳐다봤다. “모진아, 나 보러 왔구나”“괜찮아?” 기무진은 오른발에 깁스를 한 소만영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모진아 네가 날 보러 오면 난 괜찮아." 소만영은 기모진에게 손을 내밀며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 주길 바랐다.그러나 기모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지 않고 오던 걸음을 멈췄다. “너 별일 없으면 나 바빠서 먼저 가볼게.”"모진아 가지마!" 소만영은 잠시 멍하며 안색이 변했다.소만영은 흥분한 척 침대에서 떨어져 눈물을 글썽이며 기모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모진아, 가지마. 제발 날 떠나지 마!" 그녀는 울며 슬픈 척했다. "모진아, 너 나한테 왜 이렇게 차가워? 3년이 지났는데 왜 나랑 결혼 안 하는 거야? 너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나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던 그때 그 약속은 잊은 거야? 아니면 만리가 죽기 전에 나를 비방한 말을 믿는 거야? 너 진짜 내가 만리 눈을 멀게 했다고 생각해?기모진은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기모진은 소만영의 말을 듣고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기모진은 소만영이 말한 ‘비방’ 이라는 말이 웃겼다.“모진아…”소만영이 해명하려고 할 때 기모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맑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