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기모진의 사진을 어루만졌다.비록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혐오스러운 강연의 얼굴이 떠올랐다.“쯧, 이렇게 상심하고 있다니.”강연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소만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연이 들어오는 걸음을 막았다.“꺼져. 넌 여기 환영 받지 못할 사람이야.”강연은 두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나와 기 사장님은 친구예요. 지금 그가 죽었으니 빈소에 방문하는 건 인지상정이죠.”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가 향 세 개를 가지고 불을 붙였다.소만리는 차가운 기세로 강연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막았다.“강연, 당신이 흑강당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여기는 F국이 아니야. 흑강당도 아니고. 내 남편은 너 같은 종류의 파렴치한 여자의 조문 따위 필요하지 않아. 당장 나가!”소만리는 강연이 가지고 있던 향을 빼앗아 화로에 던졌다.“껴져.”소만리는 체면 따위 강연한테 세울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강연은 입가에 머금고 있던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약이 바짝 올라오기 시작했다.그때 위청재가 달려 나왔다.“소만리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모진이 친구가 빈소에 찾아왔는데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대접하니?”위청재가 강연을 옹호하였다. 소만리에게 적개심을 품은 사람이라면 위청재도 뒤처지지 않는다.강연은 위청재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보고 억울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기 사장님의 친구 강연이라고 해요. 이렇게 기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어요. 전 그저 향이나 몇 개 피워드리려고 왔는데 기 사모님이 저렇게 꺼지라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위청재는 이 말을 듣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기 사모님? 허. 이 여자가 어떻게 기 사모님이야! 모진이가 이 여자 때문에 죽었는데!”“뭐라구요? 기 사장님의 죽음이 저 여자 때문이라고요?”강연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
”요트에서 사살당한 일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죠?”소만리는 직설적으로 물었다.기묵비는 고개를 저었고 눈에는 더 이상 나쁜 기운이나 숨김이 없었다.“초요의 말이 맞았어. 몇 년 동안 나는 그저 모진을 질투하고, 그가 나보다 잘 지내는 것을 질투하고, 그가 당신을 얻을 것을 질투했어. 그렇지만 사실은...”그가 가볍게 스스로를 비웃었고 초요의 유골이 담긴 조그만 유리병 목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때 속죄하러 갈 거야.”이 말을 듣자 소만리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기묵비, 당신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 거예요?”기묵비는 그저 웃으며 차가운 유리병을 만져 볼 뿐이었다.“초요는 내가 뭘 할지 다 알고 있을 거야.”소만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기묵비의 깊은 회한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기 씨 그룹의 모든 주식을 이미 당신 명의로 다 옮겼어. 변호사가 처리 중이야. 내가 비록 불법 거래를 했지만 지금 기 씨 그룹의 자금은 모두 깨끗하게 처리되었어. 앞으로 그룹은 당신에게 맡기겠어.”그는 정중하게 말하고 소만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소만리, 미안해.”기묵비는 사과의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묵비.”기 할아버지가 급히 다가와 그를 불렀다.기묵비가 걸음을 멈추자 그 가냘픈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묵비야. 모진도 이미 떠났는데 너마저 떠나면 안 된다. 기 씨 그룹은 네가 관리해야 해.”“소만리가 저보다 더 잘 할 거예요. 게다가 난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해요.”기묵비는 이 말을 남기고 바로 돌아섰다.온갖 평지풍파를 다 겪은 듯 노련하고 침착한 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기묵비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죄송합니다. 큰아버지. 제가 그 동안 오해했습니다.”“윗사람이 어떻게 아랫사람한테 그런 걸 따지겠느냐. 묵비야. 가지 마라. 여기가 너의 집이다.”기 할아버지의 만류하는 눈빛에 절절한 기대가 가득했다.기묵비는 더 마음이
이 말을 듣자 강연은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였다.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침대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있다가 문득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강연은 이 황홀한 복숭아꽃 같은 눈빛을 보고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드디어 깨어났군요.”...경도.한 달이 지나자 소만리는 매일 일에 매달리며 자신의 상념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뱃속의 아이와 귀여운 두 아이를 위해서 그녀는 긍정적으로 밝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여전히 기모진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운 밤을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월요일 아침 소만리는 일찍 기 씨 그룹으로 왔다. 일찍이 기모진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그녀는 온갖 잡다한 서류들을 능숙하고 신속하게 처리했다.조회시간이 되어 그녀는 회의를 하러 갔다. 그녀는 이미 기 할아버지가 인정한 기 씨 그룹 신임 최고 경영자이고 명실상부한 사장이었지만 여전히 직원들에게 사장 사모님이라고 부르도록 했다.이 호칭은 그녀로 하여금 기모진이 마치 세상에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이런 착각이 그녀에게 가슴에 난 아픔을 치유해 주었다.금세 점심시간이 되어 소만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비서가 와서 말했다.“사모님, 경강 그룹의 책임자인 경연이 향수의 출하 날짜 변경과 디자인 일로 사모님을 특별히 찾아뵙고 상의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옆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고객이 왕이지. 소만리는 바로 갔다.마침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면서 일 얘기를 하는 것은 사업상 자주 있는 일이었다.소만리는 식당으로 갔고 만나는 장소가 수없이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식당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비록 그 기억들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모든 순간에 그가 있었고 소만리에게는 다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었다.예전에 앉았던 그 창가 자리,
귓가에 경연이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만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경연 씨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고맙습니다.”소만리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웨이터가 이 장면을 보고 빨리 와서 사과하고 소만리에게 식사대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소만리는 추궁하지 않았고 경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왔다.돌아와서 소만리는 결혼반지를 열심히 다시 디자인했다.이튿날 그녀는 일찍 기 씨 집안에 도착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기모진이 떠난 지 49일이 지났고 오늘은 49재를 지내는 날이었다.소만리가 현관에 들어서자 위청재는 이상야릇한 괴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흥.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 아주 슬픈 척 무거운 표정을 연기하는 모습이라니. 아주 배우가 따로 없구나.”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기모진에게 향을 피우고 있었고 불사를 하는 스님들도 경을 읽으며 그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소만리가 자기를 무시하자 위청재는 얼굴을 찌푸렸고 어투는 더 거칠어져서 말했다.“소만리. 너 여기서 모진에 대한 정이 깊은 듯 그렇게 연기하지 마라. 넌 예전부터 모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길 고대했었잖아. 모진이가 죽었으니 가장 기뻐할 사람은 너지.”방금 밖에서 돌아온 기종영은 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위청재가 소만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그는 급히 가서 가로막았다.“위청재, 당신도 좀 이제 그만해. 정말로 소만리가 모진이를 신경 쓰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모진이의 유복자를 뱃속에 품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겠어? 당신 너무 심하게 말하지 마!”“무슨 유복자. 이 아이는 모진이의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위청재가 내뱉은 말은 두뇌의 사고체계를 전혀 거치지 않고 나온 것이다.소만리는 몸을 홱 돌리며 말했다.“어머니. 기모진에 대한 내 감정을 의심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공연히 나를 겨냥해 퍼부으실 수 있지만 내 아이를 모욕하지는 마세요.”“너...”위청재는 지지 않고 얘기하려다 입을 다물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소만리는 오매불망 그리던 얼굴을 보았다.그녀는 급히 차창을 내리고 멍하니 옆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겹겹이 쌓인 빗발 사이로 남자의 강직하고 아름다운 옆얼굴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소만리는 믿을 수 없어 눈을 의심했고 가슴이 점점 뛰기 시작했다.“모진...”그녀가 가볍게 부르자 차 안에 있던 남자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천천히 옆얼굴을 돌렸다.하필 그때 공교롭게도 녹색불이 켜지고 차가 ‘휙' 소리를 내고 그녀의 눈앞을 지나갔다.마치 지금 이 순간 일어난 일처럼 느꼈지만 환상이었다.소만리는 뒤에서 재촉하는 경적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액셀을 밟았다. 그러나 방금 그 차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녀는 그 차의 번호를 기억하지 못했다.소만리는 즉시 사람을 통해서 알아보려 했으나 소득은 없었다.모진, 내가 너무 당신이 그리워서 환각을 일으킨 걸까?그녀는 자문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다음날 소만리는 회사에 막 도착해서 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한 무리의 가십 매체 기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질문을 퍼부어댔다.“기 사모님, 경연과 개인적으로 사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당신은 이미 당신이 기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잊은 거 아닙니까?”“누군가가 당신을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했다고 폭로했는데 사실 기 사장님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 아닙니까? 뱃속의 유복자도 단지 기 씨 그룹을 물려받을 카드로 쓰신 거 아닌가요?”“경연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하면 상간녀가 되는 거 아닌가요? 기 사모님, 당신 생각으로는 명성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소만리는 의혹에 가득 찬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경멸하는 눈빛을 하고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으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내 생각엔 당신들처럼 진실을 쫓는척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 정말 혐오스러워요.”“...”한
주위에서 더욱더 강하게 목표를 향해 전해져오는 저격성 말들이 소만리의 온몸에 화살처럼 꽂혔다. 소만리는 눈빛이 붉게 변하며 날카롭게 말했다.“그럼 내가 당신 뜻대로 진실과 증거를 당신 얼굴에 내리쳐 줄게요!”소만리는 말을 마치고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USB를 아까 그 말을 한 남자 기자의 얼굴에 세게 내리쳤다.“당신, 당신 어떻게 사람을 때려요?”“내가 때린 것이 사람이었어요? 난 입만 열면 악담하는 얼굴이 밉살스럽게 생긴 빈대를 때렸을 뿐인데요!”“...”“방금 내가 식당에서 받은 CCTV인데 경연과 내가 함께 있던 모습이 선명하게 잘 찍혀 있어서 가져와 직접 확인했어요. 보고 나서 나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 이 업계에서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할 거예요!”“...”소만리는 말을 마치고 시원스럽게 돌아서 갔다.그리고 그 사람들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USB의 내용을 보았다.기자들은 USB를 통해 식당에서 소만리가 일어서려고 했을 때 발밑의 뭔가 물 같은 것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소만리는 탁자를 짚었고 경연은 자진해서 앞으로 나가 넘어질 뻔한 소만리를 부축했다. 다급히 뒤따라온 직원이 바삐 사과를 했다.이것은 분명히 그냥 사고일 뿐이었다.소위 말하는 ‘끌어안기'란 경연이 넘어지려는 소만리를 부축한 것일 뿐이었다. 한 탕 해먹겠다는 파파라치들한테 걸려든 것이었다.방금 소만리를 쫓아다니며 따지던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한바탕 부끄러움을 느꼈다. 기자들은 당황했고 급히 사과했지만 소만리가 더 추궁할까 봐 두려웠다.소만리가 정말로 추궁을 해 온다면 그들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군중 속에서 어떤 여인이 이 광경을 보고 소만리의 뒷모습을 보며 불쾌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사무실로 돌아온 소만리는 곧 인터넷에 관련된 해명 내용과 각종 인증 매체의 사과 글을 보았다.그러나 이런 글들을 보니 소만리는 한층 더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이때 소만리는 경연의 전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준수하고 멋진 모습을 응시하며 서둘러 앞에 있는 군중을 헤치고 열심히 그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만약 임신 중이 아니라면 소만리는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했던 그녀는 오히려 그들과 거리가 더 벌어지는 듯했다.“모진.”그녀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외쳐 불렀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해서 더욱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멀리 보이는 그 남자가 되돌아보기를 기대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소만리는 어느새 연회장 밖까지 쫓아나가게 되었지만 모퉁이를 돌자 눈앞의 긴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방금 눈에 들어온 그림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치 하나의 환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소만리는 복도에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자신이 그리움 때문에 병이 나서 환각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아닌지걱정되었다.그녀는 어둡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소만리, 그 사람은 이미 널 떠났어.영원히 널 떠났어...이제부터 너는 그의 따뜻한 손길에 더 이상 닿을 수 없고 그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품에 안길 수도 없을 거야.소만리는 넋이 나간 듯 돌아섰다. 뒤돌아서는 순간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곁눈질로 슬쩍 본 소만리는 심장이 이미 정상적인 박자를 잃어버리고 뛰기 시작했다.그녀가 휙 뒤돌아보니 남자의 각진 정교한 얼굴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왔다.소만리는 눈을 크게 뜨고 완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모진.”그녀는 자신이 지금 본 것이 환각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러나 지척의 거리에서 익숙하고 차가운 향기가 은은하게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는 것을 보니 이것은 진짜였다.소만리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떨리는 손을 들어 이 얼굴을 향해 뻗었지만 남자의 얼굴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눈앞의 남자가 손목을 꽉 잡았다.꽉 잡힌 손목에서 전해져 오는 아픔 때문에 소만리의 생각과 의식이 순식간에 다시 맑아졌다.아니야.
남자는 불쾌한 듯 가지런한 눈썹을 한 번 찡그렸다가 자신이 손을 잡아당길수록 소만리가 더 꽉 쥐는 모습을 보고 힘껏 그녀를 떼어냈다. 낮은 울림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냉혹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이런 식으로 제 관심을 끌려고요? 임신한 여자는 흥미 없어. 그만 따라와.”손바닥이 텅 비자 소만리의 마음도 같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을 배척하는 이 남자를 보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더 괴로워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도 기뻐해야겠지.왜냐하면 그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그가 이 세상에 무사히 살아 있다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소만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또 그를 뒤쫓았다.“기모진, 가지 마.”다시 소만리가 따라오자 남자는 아름다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만약 또 따라와서 매달리면 정말 당신 후회하게 만들 거야.”그가 경고했다.소만리는 이 차갑고 냉혹한 남자의 얼굴을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모진, 당신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가 꼭 있을 거라는 거 알아요. 날 따라와요. 내가 당신에게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증명해 보여줄게요.”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강연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소만리는 기모진의 손을 잡고 더욱 힘을 주었다.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소만리는 성큼성큼 걸어오는 강연을 노려보았다.강연은 섹시한 스커트를 입고 회색 머리를 파란색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짧은 헤어스타일이었다.그녀의 거만스러운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소만리, 내 남자의 손을 놓아줘.”강연이 입을 열었다.강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소만리는 움켜쥔 손을 뿌리쳤다.뒤에 있던 남자는 곧장 강연의 곁으로 다가갔고 차가운 눈빛으로 가득했던 눈꼬리가 갑자기 한결 부드럽고 온화하게 바뀌어 강연을 바라보았다.“어디서 튀어나온 여자인지 자꾸 날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