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하는 게 아니에요.”강연은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 파일을 열어 기모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동영상은 얼마 전 소만리가 호텔 방에 기모진을 찾으러 들어온 것을 찍은 것이었다.기모진은 동영상을 다 보고 동영상 속의 대화도 다 들은 후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왜냐하면 동영상 속의 소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낯선 남자를 기모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기모진은 소만리가 당시 왜 그녀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고 더럽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동영상 속 이 남자는 분명히 그가 아니었다. 생김새도 전혀 달라 옷차림만이 비슷한 것만 빼면 조금도 이 남자가 기모진과 닮은 구석이 없는데 소만리는 정말로 이 남자를 기모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강연,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소만리가 이런 거야!”기모진은 강연에게 물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사슬이 가슴을 옥죄는 것 같았다.소만리가 그 남자를 기모진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괴롭고 실망했을지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강연은 손에 들고 있던 핑크색 알약 한 봉지를 기모진의 손에 던졌다.“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환각 약물이에요.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기모진은 손안에 있는 가늘고 긴 분홍색 알약을 보았고 주머니에서 그가 소만리를 위해 매일 지니고 다니는 약을 꺼내어 보았다. 완전히 똑같았다.그의 머릿속에서 무섭고 두려운 예감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기모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알약을 움켜쥐었다.알고 보니 남사택이 준 약은 환각 작용이 있는 것이었다. 남사택.“잔인한 사실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남사택은 그냥 단순한 의사가 아니에요. 당신 아내는 남사택의 실험 대상일 뿐이에요.”실험 대상!이 네 글자를 소만리의 몸에 쓰다니. 기모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러나 강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해 소만리가 남사택의 약을 먹고 무사히 아이를 낳았든 지금 태아를 안전하게
소만리는 방금 깨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기모진과 강연이 병실 문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강연이 웃음이 가득 넘치는 얼굴로 갑자기 기모진에게 키스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소만리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앉았고 막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배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배를 단단히 감쌌다.강연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나 기모진에게 세차게 밀쳐졌다.하지만 방금 그렇게 시도한 동작으로 소만리가 기모진과 그녀가 키스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기모진은 강연에게 약을 받아오라고 계속 묻고 싶었으나 병실 안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나는 것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소만리가 이미 깨어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꺼져. 더 이상 내 아내 앞에 거슬리게 하지 말고 꺼져.”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강연을 보내고 즉시 문을 밀고 들어갔다.소만리가 눈살을 찌푸리고 복부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보니 기모진은 더욱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소만리, 당신 아까 집에서 쓰러졌었어. 지금은 어때? 배가 아직도 아파?”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으러 갔으나 소만리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피했다.기모진은 소만리가 약물의 영향 때문에 자신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해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남사택이 소만리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그녀가 본 것은 그녀가 만든 환각일 분이라고 기모진은 해명했다.그러나 이 말은 그녀의 기분을 더욱 우울하고 나쁘게 만들고 말았다.“난 지금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나가 주세요.”소만리는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기모진은 이때 소만리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병실 밖으로 나와서 지키고 있었다.그는 남사택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는 또 소군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소군연과 남사택의 관계는 친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사택에 대해 물었
다른 남자가 소만리를 데리고 갔다고?“점잖게 생기셨고 안경을 썼어요. 그리고 잘생기셨어요.”간호사가 묘사하는 남자는 기모진에게 남사택을 떠올리게 했다.그러나 남사택은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친근했던 그 의사가 아니다. 소만리가 그와 함께 있다면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그는 즉시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가 끊어졌다.차 안에서 소만리는 점점 어두워지는 핸드폰 스크린을 보고 아예 핸드폰을 꺼버린 것이었다.남사택은 소만리를 보고 우아하고 고상한 선비 같은 얼굴로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나와 함께 가면 기모진이 당신을 찾지 못해 걱정할까 봐 두렵지 않습니까?”소만리가 웃으며 말했다.“그는 지금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남사택은 일부러 궁금한 척하며 말했다.“다른 여자요?”소만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백미러를 통해서 눈에 익은 차를 보았다.그것은 기모진의 차였다.소만리의 머릿속은 온통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모진과 강연이 함께 있는 장면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남 선생님,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남사택을 백미러를 보고는 그 이유를 이해했고 액셀에 발을 대어 속도를 붙였다.그러나 기모진의 속도가 더 빨라서 길목을 지나갈 때 기모진은 남사택의 차를 추월했고 남사택의 차를 멈추어 세웠다.소만리는 원래 남사택에게 유턴하라고 하려고 했다. 그때 기여온과 기란군이 기모진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기모진은 더욱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그녀의 얼굴빛이 갑자기 변했고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었다.그때 남사택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메시지를 본 후 소만리에게 말했다.“소만리, 나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어요.”“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했어요.”소만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기모진은 남사택을 막을 기회도 없이 남사택은 핸들을 꺾어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다
소만리가 원망 어린 질책과 분노가 가득 찬 눈빛으로 기모진에게 달려들었으나 기모진은 안색도 바꾸지 않고 말했다.“맞아. 오늘부터 이렇게 할 거야. 당신한테 절대로 이 약을 먹게 하지 않을 거라고.”소만리는 기모진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떼었고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하며 말했다.“기모진, 다시 한 번 말해 봐요.”“소만리, 난 절대로 당신에게 이 약 먹이지 않을 거야.”“퍽!”소만리는 그의 빰을 한 대 때렸다. 화가 나서 두 손이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만리는 진정되지 않았고 모든 의식이 혼돈스럽게 얽혀서 제대로 숨도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깊고 날카로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실망의 빛이 흘러넘쳤다.“기모진,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소만리가 이어서 말했다.“당신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어요? 아니면 내 뱃속의 아이가 죽는 걸 보고 싶은 거예요? 지금 이렇게 나와 내 아이를 무시할 거면서 왜 그때 나 없으면 못 살 것처럼 애틋한 시늉을 했어요?”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없이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손을 떼었다.“당신 강연한테 관심 생겼어요? 당신은 그런 염치도 모르는 여자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둘이 잘 될 수 있도록 밀어줄게요.”소만리는 앞에 있는 남자를 홱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기모진은 빠르게 소만리를 뒤쫓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어디로 가는 거야?”“남사택한테 가서 약 받아오려구요.”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당신은 내가 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바라겠지만 난 꼭 이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거예요! 비켜요!”소만리는 기모진을 밀치고 떠나려 하자 남자는 그녀를 껴안았다.“나 절대 당신을 남사택한테 가게 하지 않을 거야. 당신 그 약 먹으면 안 돼.”소만리는 마음이 더욱 차가워졌고 자신을 힘껏 안고 있는 남자를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기모진, 남사택의 약을 먹지 않으면 나와 내 아이는 모두 죽어요. 당
기모진의 진실한 고백을 듣고 있는 순간 소만리는 잠시 얼떨떨했다. 분명히 그녀는 그때 강연과 그가 호텔에서...“소만리, 당신의 안전을 위해 이전에 있었던 작은 섬으로 당신을 보내고 싶어. 기란군과 기여온도 함께 데리고 가게 할게. 당신 그러면 외롭지 않을 거야.”기모진은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소만리가 반대하기 전에 그는 모든 것을 얼른 다 준비했다. 다음날 소만리는 강제로 그의 개인 요트에 태워졌다. 소만리는 저항하며 요트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기모진에게 안겨 요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요트가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자 그제야 그는 겨우 그녀를 놓아주었다.소만리는 창밖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말했다.“기모진, 날 이런 외딴섬에 버리면 당신은 강연과 마음대로 연애할 수 있겠군요, 그렇죠?”기모진은 해명하지 않고 소만리가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고 여전히 침착하게 참으며 말했다.“소만리,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다시는 당신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을 거라는 것만 기억해.”“꼭 먹어야 하는 약도 못 먹게 하는 것도 날 위해서인가요?”“그래. 당신을 위해서야.”기모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갑판 위로 두 아이가 목소리가 전해졌다.“와~ 찰랑찰랑해!”여온이 푸른 바다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오빠, 빨리 엄마랑 잘생긴 오빠도 보러 오라고 해.”소만리도 기여온의 목소리를 들었고 바로 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고 아이들에게 갔다.바닷바람이 귓가를 가볍게 스쳐가면서 파도 소리를 전했다. 요트가 지나가는 물 위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기모진은 육경을 불러 그들의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두 아이도 같이 있고 해서 소만리도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가족의 따뜻하고 훈훈한 모습이 먼 곳의 망원경 속으로도 떨어지고 있었다.강연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눈빛은 악랄하게 번뜩이고 있었다.“저 여자 처리해 버려.”주변의 저격수는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목표를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기모진은 마침 두 아
지금 상황이 한시도 늦출 수가 없어서 육경은 서둘러 구명정을 준비하러 갔다.기모진은 두 발을 맞았는데 한 발은 등 뒤에, 또 한 발은 다리에 맞았다. 남자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그리하여 기모진의 얼굴빛은 육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하얗게 식어갔다. 심지어 그는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며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기모진 자면 안 돼. 버텨야 해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소만리는 목소리가 떨렸고 거즈를 든 두 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았다.거의 눈물투성이가 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모진은 힘겹게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쓸어내려 닦아주며 말했다.“소만리, 나 때문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말라고 했잖아.”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으나 숨결이 매우 약했다. 소만리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침대 위에 있던 담요를 들고 힘껏 기모진의 상처를 눌렀다. 새하얀 담요가 바로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방울방울 뜨거운 눈물이 아프게 기모진의 얼굴에 알알이 박혔다.기모진의 피로 물든 손이 소만리의 손을 잡았다.“그만 울고 내 말 들어. 어서 여온이와 기란군을 데리고 여길 떠나.”소만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절대로 가지 않을 거예요!”“소만리...”“기모진 당신 꼭 버텨야 돼요. 당신 아직 뱃속의 아이 얼굴도 못 봤잖아요. 아직 여온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도 못 들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기모진의 지친 눈동자는 소만리의 약간 불룩한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얇은 입술을 움직여 불러보았다.“여온이는...”소만리는 기여온을 불러오려고 했지만 이때 육경이 다급하게 말했다.“구명정이 준비됐습니다! 요트는 이미 불타기 시작했으니 곧 폭발할 겁니다. 기 사장님, 어서요.”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꼭 잡고 창백한
육경은 이미 의식을 잃은 기모진을 힘없이 바라보며 최대한 기모진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고 기여온과 기란군을 먼저 구명정에 태운 뒤 다시 요트 창고로 돌아와 소만리를 찾았다.하지만 소만리는 기모진을 안고 놓지 않았고, 육경은 어쩔 수 없이 소만리를 잡아당겼다.“놔요! 당신들 먼저 가세요! 난 꼭 이 사람과 함께 있을 거예요!”소만리는 감정이 무너진 듯 으르렁거렸고 도저히 손을 놓기가 싫었다.“부인, 당신은 기여온 아가씨와 기란군 도련님을 잊으셨습니까?”육경이 계속 말을 이었다.“그들이 아버지도 없는데 어머니마저 잃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빨리 어서 가셔야 합니다. 곧 요트가 폭발할 거예요. 부인은 꼭 살아서 사장님의 복수를 갚으셔야 합니다.”복수.소만리는 눈물 젖은 눈동자를 들어 이미 숨결을 잃어버린 기모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다.“기모진, 나도 당신 사랑해요. 들려요?”그녀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를 요트 창고에 버리고 구명정에 올라타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불타는 요트를 점점 멀리하며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요트가 폭발했고, 그 충격이 소만리의 가슴을 사정없이 때리며 더 할 수 없는 아픔으로 부딪쳐왔다.“모진...”그녀는 산산조각이 난 요트를 바라보며 절절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다음 순간 모든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파도, 모래사장, 그리고 소년 기모진.소만리는 맨발로 기슭에 서서 자신을 향해 부드럽게 웃는 소년에게 달려갔지만 갑자기 눈앞의 그가 사라졌다.“모진 오빠!”그녀는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대고 소리쳤지만 그는 응답이 없고 무심한 파도 소리뿐이었다.“모진, 모진!”소만리는 눈을 번쩍 떴고 초롱초롱한 예쁜 두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엄마, 이제 일어나세요.”여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괜찮아요?”기란군이 다정하게 물어보았다.소만리는 이 두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며 혼수상태에
소만리의 심장은 갑자기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분명히 여름인데도 매서운 찬 겨울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그녀는 너무 춥다고 느꼈다.눈앞이 어둡고 흐릿했다.이때 육경은 문간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소만리가 이미 깨어난 것을 보고 그는 걸어왔다.“인양을 맡은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부인께서 잠시 경찰서에 가서 확인해 주셔야 할 물건이 있다고 합니다.”소만리는 슬픔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육경을 따라나섰다.소만리는 경찰서에 도착했고 헝클어진 옷 조각만 보였다. 바다로 나가기 전 그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이미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소만리는 손가락을 떨며 붉게 물든 옷을 살짝 집어 들었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와 앞을 가렸다.“모진.”소만리는 계속 더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존재했지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소만리는 깊은 호흡을 하고 돌아서려다 파편 속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그녀는 놀라서 그 책갈피를 집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희미하게 떠올랐다.그날 외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그는 그녀 눈앞에서 이 책갈피를 불태우며 그녀와 깨끗하게 끝내겠다고 말했다.그런데 왜 이 책갈피가 여기서 나왔을까?설마 그가 그때 책갈피를 태우는 동작으로 나로 하여금 책갈피를 태우고 나에 대한 감정마저 다 불태운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던 걸까?그런데 알고 보니 책갈피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녀에 대한 감정도 여전히 그대로였다.소만리는 기모진과의 신혼 방으로 돌아와 혼자 그들의 침대에 누워 그가 누웠던 베개를 어루만졌다.그의 숨결과 체취는 점점 가벼워졌고 다시는 이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그가 사고를 당하기 전 날 그녀는 여전히 그와 말다툼을 했었고 그의 뺨을 때렸다.난 당신을 믿어야 했었어요. 당신과 강연과의 사이에 정말 뭔가가 있었다 해도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난 왜 그렇게 침착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