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 난 널 사랑하지 않아.”“여기 제 약혼녀 초초예요.”“왜? 기부인은 내가 기묵비의 아이를 해칠까 두려운 건가?”소만리는 가슴 아파하며 자신의 배를 만졌다.기모진, 당신의 아이야.이번 생에서 당신 말고는 내게 다른 남자는 없어.그런데 당신은 결국 나를 믿지 못하는군.소만리는 고민스러운 듯 웃더니, 갑자기 이틀 전 자신의 실연한 얘기를 털어놓는 낯선 사람을 위챗에 추가한 것이 생각났다.그녀는 지금 이 낯선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소만리는 그 사람의 위챗 대화창을 열었다.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안부를 물었더니 그쪽에서 바로 답장이 왔다.[안녕하세요. 친추해 주셔서 너무 기뻐요.][안녕하세요.]소만리가 답했다.[저기, 저 실연당했어요. 기분이 우울해요. 지금 저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소만리도 기분이 우울했던 참에 있는 말 없는 말 주저리주저리 이 사람과 얘기하기 시작했다.이튿날 깨어나자 비로소 소만리는 자기도 모르는 와중에 잠들어 버린 것을 알았다.그녀는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아침을 다 먹을 즈음 기묵비가 왔다.그는 그녀를 데리고 기 씨 그룹으로 가서 말했다. 소만리에게 기 씨 그룹 보석디자인 부문 감독을 맡아 달라고 했다. 소만리는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만일의 하나를 위해서 계약을 협의하기로 했다. 기모진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기모진은 2억 원을 제시하였다. 자신을 위해 보석을 주문 제작해 줄 것을 기 씨 그룹에 요구하였다.소만리는 기묵비가 그녀를 시험해 보려고 이런 일을 꾸몄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기묵비는 대범하게, 그것도 한밤중에 소만리를 기모진과 단독으로 협의하게 하였다.소만리는 이른바 기 씨 그룹의 총재 직함의 기모진과 회의실에서 만났다.이 시간에는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퇴근한다. 건물 전체에는 그들 둘뿐이다.이때 기모진은 소만리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전혀 개의치도
기모진은 소만리의 갑작스럽고 적극적인 포옹이 의아했다.어둠 속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만리의 허리에 손을 얹었으나 말투는 오히려 담담했다.“계약에 관한 일 말고 기부인이 나와 무슨 할 말이 있지?”소만리는 지금 기모진이 자신에게 차갑게 말하는 것을 탓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전에 자기는 더 모진 태도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기모진,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기모진은 핸드폰의 희미한 불빛을 빌려 눈을 내리깔고 품 안의 소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말해 봐.”소만리는 심호흡을 하고도 여전히 경계하는 표정으로 회의실 입구를 보았다. 그녀는 기모진의 팔을 잡고 있는 손에 약간 더 힘을 주며 말했다.“모진, 사실 우리의 여......”“윙윙윙.......”소만리가 말을 더 하려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의 심장은 요동 쳤고 빛을 내뿜는 핸드폰 화면에는 기묵비의 이름이 떠 있었다.이미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어 하고 싶은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소만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역시 그녀는 결코 기묵비의 감시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무슨 말인데?” 기모진이 다시 물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아마도 그녀가 방금 그를 “모진"이라고 불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더덩.”갑자기 회의실 전등이 환하게 켜졌지만 소만리의 마음속 등불은 이미 꺼져가고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기모진을 꼭 잡고 있던 두 손을 풀고 빨리 핸드폰을 주워들었다.기묵비의 전화를 막 받으려는 순간 기모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소만리는 놀라고 당황한 눈빛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기모진, 손 놔.”“아까 하려던 말 아직 안 했잖아. “남자는 굳은 표정을 하고 여자를 추궁했다. “당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거야?”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니 소만리의 마음속에서 수많은 충동이 밀려왔다.순간 그녀는 기모진이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지
전화기 너머 기묵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여온이한테 일이 생겼어.”소만리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뭐라구요? 일이 생겼다고요? 무슨 일인데요?”“여온이가 잘못하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깨지고 피가 많이 흘렀어. 방금 왕립병원에 입원했어.”기묵비의 말투는 평온했고 이어서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당신 지금 기모진이랑 같이 있어?”“저 지금 같이 있지 않아요. 지금 당장 비행기 표 예약해서 F국으로 돌아갈 거에요.”기모진은 회의실에서 나오다가 소만리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기모진의 눈 속에 질투의 빛이 떠올렸다. “그 사람 전화 한 통에 이렇게 빨리 서둘러 돌아가서 그를 만나다니. 소만리, 넌 애초에 나한테 그렇게 신경 쓴 적 있었어?”소만리는 밤 비행기를 타고 F국으로 돌아갔다.그녀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기여온은 중환자실로 옮겨져 계속 관찰 중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소만리는 핏기 없는 인형의 얼굴을 보았다.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유모가 말하길 기여온이 놀다가 실수로 머리를 부딪쳐서 깨졌다고 했다. 그러나 소만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기묵비의 경고였다.그는 그녀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진실을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하지 않으면 온전히 상처받는 사람은 기여온이라는 경고였다.소만리는 지친 듯 의자에 앉았다. 마음이 더욱 지친 하루였다.눈앞에 기묵비의 큰 체구가 다가왔다. 소만리는 그것이 거대한 산맥처럼 느껴져 압도당하고 짓눌려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렇게 겁에 질린 채로 얼마나 더 많은 나날을 버텨야 할지 몰랐다.기묵비는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여온은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해. 이렇게 일부러 급하게 올 필요는 없었어.”소만리는 마치 옥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그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지금 저 안에 누워 있는 아이는 내가 10개월 동안 품어 낳은 내 혈육인데 어찌 편안하게 경
”신혼부부라 아주 금슬이 좋다 못해 뜨겁구만.”그는 날카로운 칼날 같은 비꼬는 말투를 하며 소만리의 신혼방을 지나갔다.그녀는 괴로워 속이 쓰린 것을 억지로 참으며 기모진과 언초가 팔짱을 끼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만리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피차 마찬가지 아닌가요? 기 선생님과 당신의 약혼녀도 금슬이 좋아 보이는군요.” “물론이지.”기모진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의 보드라운 눈길이 언초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초초는 내 인생 가장 어두운 순간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났고 내 평생 초초처럼 좋은 여자를 만났으니 당연히 소중히 아껴줘야지.”“모진, 당신이 말한 것만큼은 아니에요.”언초는 수줍은 듯 말하며 기모진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참, 어서 기 선생님과 기부인에게 청첩장을 드리세요.”청첩장?소만리는 당황스럽고 의아해서 뒤따라 가 보았다. 기모진은 세심하게 만든 청첩장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이번 주 토요일에 저와 기모진이 경도에서 약혼식을 거행하니까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도 오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건네준 청첩장을 보는 소만리의 눈빛이 흐려졌다.그들은 과연 약혼을 하는 것이다.“나와 소만리는 꼭 제시간에 도착해서 참석할게요.”기묵비는 청첩장을 받고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 저 깊은 곳이 캄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언초를 바라보았다.어딘가에서 한 번쯤 본 듯한 이 느낌은 그의 평온했던 심장을 다시 휘저어 놓았다.언초는 기묵비의 그런 시선을 느끼고는 더욱더 대범하게 그를 반기며 말했다.“기 선생님,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세요?”“언초 양이 왠지 낯이 익어서요. “기묵비가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래요? 아마 저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나 봐요. 그래서 기 선생님이 낯이 익어 하시는 것 같아요. “언초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기모진의 팔을 끌어당겼다.“모진, 우리 갈까요. 저랑 같이 약혼드레스 보러 가요.”“그
그런데 기모진,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그때 당신을 따라간 건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걸.당신은 단지 내가 변심했고 당신을 가지고 논 거라고 굳게 믿었지.그녀는 청첩장의 이름을 어루만지고 마음 아프게 웃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모진, 당신이 만약 여온이 살아있다는 걸 안다면 정말 기뻐할 거야.”아픈 마음을 가라앉힌 후, 소만리는 다시 펜을 들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설계도면에 그렸다. 다음날 그녀는 도안을 기모진에게 보냈다.그는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마치 그때 그가 그녀를 무시했던 상태와 흡사했다. 거의 저녁때가 되어서야 소만리는 기모진의 답장을 받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설계하라는 내용이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의 뜻에 따라 설계를 고쳤으나 거절당했고 그 후로도 몇 번을 고쳤다. 기모진은 늘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소만리에게 그가 바쁘다는 걸 강조하며 이런 알맹이 없는 디자인을 보내 쓸데없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일부러 그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여 아예 아이패드를 가지고 그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갔다. 그곳은 기모진이 자신의 명의로 새로 세운 회사였다. 기 씨 그룹 빌딩에서 그리 멀지 않아 소만리는 몇 개의 블럭을 지나 곧 도착했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예의 바르게 자신을 소개하였다.“저는 기 사장님의 결혼반지를 설계하는 일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제 명함입니다. 기 사장님께는 이미 메시지를 보내 반지 디자인에 관해 말씀 드리겠다고 했으니 기 사장님께 제가 도착했다고 알려주시겠어요.”“알겠습니다. 잠시만요.”데스크 직원은 소만리의 명함을 들고 기모진의 사무실로 갔다. 잠시 후 데스크 직원이 돌아왔다.“죄송하지만, 지금 사장님이 화상회의 중이시라 급하지 않으시다면 잠시 기다려 보시겠어요?”“네 알겠습니다. 기다리지요.”소만리는 시간을 확인하고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기모진은 사
눈앞에 그녀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기모진은 입꼬리를 말려 올렸다.“내가 어찌 숙모님을 가지고 놀 수 있겠습니까?”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이었다.“회의는 이미 끝났지만 주무시는 숙모님을 보니 방해하기 미안했던 거죠.”“......”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소만리를 보다가 기모진은 그녀가 안고 있는 담요를 보았다. “숙모님, 이 담요를 제가 덮어준 거라고 오해하진 마세요. 데스크 직원이 한 거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그는 그녀와의 관계에 분명히 선을 그으려 했고 그의 눈 속에는 소만리에 대한 미련이나 관심 따윈 조금도 없어 보였다. 소만리는 담요 밑에 감춰진 두 손을 꽉 쥐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럼 정말로 제가 오해했네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기 사장님이 약속 시간을 정해 주시죠. 저도 더 이상 사장님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긴 싫거든요.”“기 씨 그룹에는 어떻게 다른 보석 디자이너는 없나요? 아니 이 귀하신 기 부인이 임신한 몸으로 이리 바삐 움직여야 한답니까?”“회사의 일은 곧 기묵비의 일이고 기묵비의 일은 곧 아내인 제 몫이기도 하지요. 남편을 위해서 바쁘다면야 기꺼이 하지요.”소만리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기모진은 이 말을 듣고 눈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이렇게나 훌륭하신 부인을 두셨다니. 작은 아버지가 정말 부러운데요.”그는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낮은 그의 목소리가 소만리의 귓가를 감쌌다. “그래, 만약 그때 내가 소중한 걸 알았다면 지금 당신은 나를 위해 바쁘게 달렸을까? 내가 걱정은 되는 모양이지?”소만리는 마음이 너무 떨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만리, 내일 아침 9시에 내 사무실로 와. “기모진은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뱉고는 거침없이 걸어나갔다.소만리는 왜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그녀는 제시간에 기모진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뜻밖에도 언초가 와 있었다. 기모진은 디자인
”기 부인, 제 키스를 기대하신 건가요?”“......”“안타깝게도 지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키스할 거야.”그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 눈은 조롱하고 희롱하는 빛으로 더욱더 가득 찼다.소만리는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으나 애써 침착하였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내가 당신의 키스를 기대한다고 생각해? 난 단지 당신의 연기에 맞춰주고 있었을 뿐이야. 기모진.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길 원하는 거예요? 아직도 날 못 내려놓은 거야? 참 안타깝네요. 그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은 또 얼마나 당신을 미워하는지 알겠어요?”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단호한 시선을 던지며 그 자리를 떠났다. 기모진은 허공에 머문 손을 오므리더니 조롱으로 가득한 얼굴과 눈 속에는 서서히 잿빛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고 어느덧 토요일.소만리는 단정하게 예복을 입고 기묵비의 팔짱을 끼고 모진과 언초의 약혼식장에 왔다. 그녀는 기모진의 약혼파티가 굉장히 성대하게 치러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혼식장은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그녀와 기묵비 외에는 의외로 초대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저는 시끌벅적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간소하게 준비했어요.“ 언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모진씨가 말했어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분이 기 선생님과 기부인이시라구요. 그래서 우리 약혼식에 두 분을 빼놓을 수 없었죠.”기묵비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모진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저희 두 사람, 꼭 약혼식 잘 보겠습니다.”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자 운전기사가 식장에서 나왔다. 그 사람은 기묵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였고 갑자기 기묵비의 안색이 싹 변하며 말했다.“소만리, 나 일이 좀 있어서 잠깐 나가서 전화 좀 하고 올게.”“네.”소만리가 웃는 척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옆에 앉았다.약혼드레스, 부케, 그리고 그.소만리는 눈앞에
”잠을 잔 거면 많이 친한 셈인가?”기묵비는 의미심장하게 반문했다. 언초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잤다고 해서 두 사람이 꼭 많이 친한 건 아니죠. 어차피 밤새 정을 나누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난 그녀와 하룻밤만 보낸 게 아니라 아주 많은 밤을 보냈거든.”기묵비는 낮은 목소리로 언초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려 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기를 흘끗 보고는 신사다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언초 양, 지금은 통화를 좀 해야겠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얘기하지.”“네, 언제든지요. “언초는 기묵비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기묵비의 모습이 차츰차츰 사라졌다.약혼식장 정원.소만리는 벽을 짚은 채 헛구역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몸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기모진이 다른 여인과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을 봐서 마음이 아픈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우리 딸을 죽인 남자를 위해 뭘 그렇게 그 사람 아이를 소중히 품고 있으려는 거야, 소만리. 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기모진이 차갑게 물으며 뒤에서 불만스럽게 따라왔다. 소만리는 그제야 기모진이 이미 그녀 바로 뒤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주먹에 힘을 주며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상관없잖아요.”“정말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어째서 내가 다른 여자와 약혼하는 장면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거지?”“기 선생님 정말 재미있는 분이로군요. 이건 단지 그냥 평범한 입덧이에요. 저 바람 좀 쐬고 올게요.”소만리는 차분하게 부인했다.“왜 기 선생님은 내가 항상 당신을 신경 쓴다고 생각해요?”“정말 당신이 날 신경 쓰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다면 돌아서서 나를 한 번 봐요.”“내가 왜 증오하는 찌질한 남자를 돌아봐야 하죠?”소만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과 당신 약혼녀가 약혼식도 이미 마친 것 같으니 저와 기묵비도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