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네 글자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소만리의 가슴을 꿰뚫었다.그녀는 기모진이 곁눈질로조차 그녀를 다시 한번 눈 여겨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기모진, 당신은 과연 그때의 나의 무자비하고 잔인했던 거짓말을 정말 믿는 군요.“생각보다 당신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기묵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중요한 고객이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당신 먼저 여기서 뭐 좀 먹어요, 내가 잠시후에 당신을 찾아갈게요.” 기묵비가 돌아서자 소만리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그녀는 긴 테이블로 가서 와인 한 잔을 들고 다시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와인 속의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를 맛볼 수 없었고, 씁쓸한 맛이 마음에 와 닿았다.“당신 모천리 아니에요?”“당신은 도대체 누구의 여자예요? 몇 달 전에 기모진과 결혼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여기에 또 기모진의 작은 삼촌 기묵비와 함께 있어요?”“역시 재벌들은 엉망진창이네, 난 기모진과 기묵비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고 들었어요, 삼촌가 조카의 관계는 모두 깨졌고, 지금은 겉으로만 화목할 뿐이죠.”“쯧, 미인이 있으면 재앙이 있어. 역시 여자는 아름다울수록 독이야.”“맞아, 너 그녀 좀 봐, 얼굴이 여우같이 생겼어.” 귓가에 호의적이지 않는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소만리는 손에 술잔을 들고 우아하게 몸을 돌려, 자신을 토론하고 있는 몇 명의 귀부인들을 마주했다. “여러 사람의 의미를 이해해요,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싶으면 직접 말하세요, 빙빙 돌려서 말할 필요 없어요. 여우 같은 얼굴이 보통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요.”“……….”“…..……”몇 명의 귀부인들은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 낮은 목소리로 걸어갔다.소만리는 그것이 이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몰랐지만, 그녀의 가슴은 갑자기 매우 답답해졌다. 그녀는 답답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와인을 한잔 더 마셨지만 속이 더 불편했다.바람 좀 쐬러 나갈까 생각
기모진이었다.그녀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잘못 듣지 않았을 것이다. 소만리는 서둘러 자신의 컨디션을 추스르고 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난간 옆에 서서 바람을 쐬었다. 그녀는 기모진이 그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들었고, 그녀의 심장박동이 그의 걸음걸이에 다라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보아하니 기 여사가 이 찌질한 남자를 떠나니 더 좋아 보이네요.”소만리는 뒤에서 그의 비꼬는 말을 듣고 조용히 괴로워했다. 기모진은 그녀의 등 뒤로 걸어오니, 달빛이 그녀의 차갑고 하얀 피부를 비추었고, 그녀의 긴 드레스의 어깨끈이 저녁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의 뒷모습은 그의 눈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소만리는 강제로 냉염한 가면을 둘러쓰고, 살며시 웃으며 돌아서서 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했다.“마찬가지예요, 기 도련님도 아주 좋아 보여요, 이렇게 빨리 새 여자친구를 찾으셨네요.”“어쩔 수 없었어요, 그날 F국에서 기 여사님께 잿빛이 되어 쫓겨난 후, 저는 너무 괴로워서 새 애인을 찾아 상처를 치료했는데, 이 방법이 정말 유용하더라고요.”“그럼 잘됐네요, 당신과 당신의 새 여자친구를 축복해요.” 소만리는 무심하게 축복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기모진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소만리가 곁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그의 숨결에 파고들었다. 그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소만리의 손을 잡았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고혹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소만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이 접촉은 그녀의 마음에 끝없는 억울함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녀는 냉담한 척하며, “나와 당신이 무슨 좋은 꼴을 보려고요?”라고 경멸하듯 말했다.말을 마치자 소만리는 기모진의 손바닥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청량한 향기가 강하게 다가왔다. “난 죽지 않았어, 혹시 실망했어?”소만리는 알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
입찰 회의장에 입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만리는 기모진이 언초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소만리는 여전히 이 여자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지만, 이 여자가 약간 인터넷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낯이 익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뜻밖에도 기모진이 언초를 데리고 그들 뒤에 앉아있는데, 기모진의 위치가 소만리 뒤쪽 가장자리에 있어서, 그녀가 눈꼬리로 살짝 쳐다보면 그의 섬세하고 잘생긴 얼굴을 포착할 수 있었다.그리고 기묵비도 뒷줄에 앉아 있는 기모진을 알아차렸고, 그는 일부러 그런 듯 손을 뻗어 소만리의 손을 잡고 더욱 다정하게 다가가 그녀의 뺨 옆에 가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미스 모와 그녀의 남편은 사이가 정말 좋아요.” 기모진의 옆에 앉은 언초는 “모진 우리 자리 바꿀까요? 당신은 처음에 그렇게 미스 모를 좋아했는데, 이렇게 보니 불편하지 않아요?”“괜찮아요, 작은삼촌과 작은어머니가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야. 더구나 나는 당신이 있는데 내가 왜 다른 여자를 신경 쓰겠어요?”소만리는 기모진의 대각선 앞쪽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기모진과 언초의 대화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다른 여자?그 의미는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녀라는 여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소만리는 신경 쓰지 않는 척 침착하게 앞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꽉 쥔 손가락은 이미 저릴 정도로 아팠다.보아하니, 그는 당시 그녀의 무자비한 무관심에 의심의 여지없이 믿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는 정말로 이미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며, 그녀를 서서히 잊고 심지어 그의 마음에서 추방한 것 같았다.그래서, 이것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사랑이었나?소만리는 쓴 웃음을 지으며 무대위에서 진행하는 사회자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그녀가 이번에 경매에 부쳐진 것이 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이 땅의 위치는 경도 개발 예정 지역으로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소만리는 그가 요즘 바쁜 것이 아마도 이번 입찰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속셈이 있었다. 사
소만리는 불안해하며, 기모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작은 삼촌이 원래 이 땅을 기 부인에게 리조트를 지어주려 했다면서요? 정말 미안하지만 저는 이 땅을 이용해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에게 성을 지어주고 싶어요.” 그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소만리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언젠가 내 사랑하는 여자가 그 성에서 살며 평온한 공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녀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 그녀를 지키고, 평생동안 그녀의 기사가 될 용의가 있습니다.” 말이 끝나자 연초는 기모진에게 다정하게 다가갔다. “모진, 당신 정말 저에게 잘해주시네요.”소만리는 가슴을 칼로 찌르듯 얼굴을 찌푸리고 가슴이 아픈 느낌을 참으며 기묵비를 향해 웃었다, “묵비, 나 배고파요, 같이 가서 뭐 좀 먹을래요?”라고 말했다.“좋아요.” 기묵비는 부드럽게 웃으며 일어나 담담한 표정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내가 조카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네. 기씨 재단의 소유권이 바뀐 것은 너에게 아무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 같네.”기모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웃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소만리의 얼굴에 머물렀다. “저도 작은 아버지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어요. 제가 마음을 비우고도 얻을 수 없는 여자를 당신이 단념하게 만들다니요.”기모진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소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번 웃었고, 그녀는 기묵비의 팔을 살짝 감은 후 돌아섰다. 기묵비가 돌아서기 전에, 그의 검은 눈동자가 기모진 옆에 서 있는 언초를 힐끗 쳐다보았다.언초는 입꼬리를 올리며, 기묵비에게 공손하게 미소를 지었고 입술에 있는 두개의 보조개는 기묵비를 조금 더 바라보게 만들었다.호텔을 나온 기묵비는 “내가 사람을 시켜 당신을 별장에 데려다 줄게요.” 라고 말했고 “저 친정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차갑게 말했다.기묵비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중얼거렸다. “당신이 돌아가도 되지만, 그런데……”“당신이 나에게 다시 경고하지 않아도 돼
“할아버지, 제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할아버지가 천리에게 가르쳐주세요.” 갑자기 핸드폰 진동벨이 울렸고, 그녀는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낯선 사람이 핸드폰 번호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친구로 추가하려고 했다. 소만리는 그것을 힐끗 보았고, 정보가 소녀임을 보여주었다. 비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작성되었다: 나는 실연당했어요, 아무렇게나 입력한 번호,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요.소만리는 너무 피곤해서 실연당한 사람을 위로할 기분이 아니라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음날 아침, 소만리는 일어나자마자 위가 시큰거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화장실로 뛰어들어 헛구역질을 했지만, 어떤 것도 토하지 않았다.그녀가 기란군을 임신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런 증상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녀가 기여온을 임신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죽을 것 같았고, 불편한 증상은 특별히 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랫배를 만지며 3개월 전 기모진과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천리, 우리 다시 아기 한 명 낳을까.” 라고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 소만리는 감히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수 없었고, 그녀는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화정이 푸짐하게 아침상을 준비한 것을 보았다.“천리, 일어났구나, 엄마가 직접 아침을 준비했으니 어서 와서 먹어.” 사화정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소만리를 불렀다. 소만리는 문을 힐끗 보고 식당으로 걸어갔다.사화정은 처음에 소만리에게 너무 잔인하게 대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소만리가 여전히 그녀와 모현을 미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투가 조심스러웠다.“천리, 석 달 동안 기묵비와 F국에 있었어? 너, 잘 지냈니? 나는 F국에 있는 친구에게 너와 기묵비가 비즈니스 연회에 자주 참석한다고 들었어, 친구가 너희들이 애정이 깊어 보인다고 말했어.”소만리는 반박할 수 없었고, 기묵비와의 ‘부부’관계는 F국의 상류사회에서 그렇게 생각될
그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소만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녀의 손이 떨렸고, 휴지통에 던져진 종이 뭉치가 바닥에 떨어졌다.그녀는 서둘러 그것을 주으러 손을 뻗었지만, 기모진의 속도가 더 빠를 줄은 몰랐다.그는 몸을 구부려 다가왔고 그의 섬세한 옆얼굴이 그녀의 뺨을 살짝 스쳤다.서로의 숨결이 한순간에 얽혔다.기모진은 종이뭉치를 주워 바로 버리려 했지만, 소만리의 눈빛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기모진이 종이 뭉치를 열려고 하자 소만리는 얼른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기모진은 검사 보고서 내용을 보자마자, 눈빛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그 섬세한 얼굴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소만리는 기모진의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다시 손을 내밀어 보고서를 빼앗아 휴지통에 넣었다.그녀는 마음이 복잡하여, 기모진이 위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갈까 생각하다가 기모진의 차가운 웃음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그의 아이를 가졌군."“......”그 말을 들은 소만리의 얼굴이 굳어졌고, 마음도 한순간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그가 뭐라고 말했지?그녀는 자신이 들은 것을 확신하지 못했고, 기모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당신과 그 사이에 아이가 생겼군."소만리는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워진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는 그녀가 기묵비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소만리는 억울함을 느끼며, 어쩔 수 없었지만, 기모진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최근 3개월 동안, 그녀는 줄곧 기묵비와 함께 ‘생활’했다. 기모진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진작에 기묵비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기묵비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기묵비는 자신이 그녀와 피부를 접촉했다고 생각했던 밤에도, 그것은 그녀가 그를 위해 아로마 테라피로 만든 환상에 불과했다.소만리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그녀가 묵인한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떠났다.차에 올라탄 뒤 소만리는 배를 만지며 방금 기모진의 눈빛을 생각했다.분노일까, 질투일까, 아니면 마음이 아픈 걸까.소만리는 분간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기묵비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곧 그의 부하로부터 알게 되었다.그는 무척이나 기쁜 듯, “천리, 정말이에요? 내 아이를 임신했어요?”라고 말했다.소만리는 부인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부인한다면, 어쩌면 기묵비가 어떤 방법으로 이 아이를 유산하게 만들지도 몰랐다. 그녀는 기묵비에게 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내일은 외할아버지의 기일이에요. 묘지에 가서 향을 피워야 해요.”라고 말을 돌렸다.기묵비는 즉시 “그 땅의 경매를 실패해서, 내가 처리해야할 일이 좀 있으니, 내일은 사람을 시켜 보낼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리, 이건 우리의 첫 아이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 아이가 생겨도 나는 여온을 친 딸로 대할 거예요.”라고 말했다.“만약 당신이 정말로 여온을 딸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녀를 바둑알로 취급하지 않을 거예요.” 소만리가 노골적으로 폭로했다.기묵비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고, 소만리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는 무심코 눈을 내리깔고 손목에 동여맨 그 머리끈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의 마음이 멀어져갔다.…………다음 날 아침 일찍 소만리는 흰 국화와 향초를 사서 묘지로 갔다.초봄에는 산들바람이 불며 가랑비가 약간 내려 서늘했다.소만리는 차에서 내린 후, 경호원이 다시 따라오려고 하자 불만을 터뜨렸다. “따라오지 마세요. 저 혼자 외할아버지 모시고 잠깐 앉아있고 싶어요.”경호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감히 소만리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단지 주차장 부근에서 소만리가 묘지에 들어가는 뒷모습만 주시하고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는 몸을 떨며, 소만리가 단지 향을 피우러 가는 거라 아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서서 차에 올라타 기다리며 핸드폰을
소만리는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녀는 지금 임신 중이었고, 기모진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소만리가 피하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비꼬았다. "기 부인,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걱정하시는 겁니까? 내가 기묵비의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운가요?“......”그녀는 정말로 뱃속에 있는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하는 건 맞지만 아이는 기모진의 것이었다.소만리는 이 억울함을 말없이 삼키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맞아요, 뱃속의 아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므로 기 선생님, 당신의 말과 행동을 주의하시기 바래요."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만리는 기모진의 눈빛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그의 미간이 삽시간에 찬바람으로 물들었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 감기 걸리지 않게 우산 써요."그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펼쳐 소만리에게 건네주며 주머니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소만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그녀는 기모진의 손가락 틈에 색이 좀 바랜 색색의 조개껍데기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처음에 당신이 모든 것을 돌려주겠다고 했으니, 우리 둘 다 청산하고 다시는 서로에게 빚지지 않기를 바래요. 이제, 나도 돌려줄게요." 기모진의 뜻은 분명했다, 다만 이 상황은 소만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이 조개껍데기는 그녀가 그에게 준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는 한 번도 몸에서 떼지 않고 간직해 왔지만, 지금은 그가 그녀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그래서, 이것이 그가 방금 그녀가 떨어뜨렸다고 말한 것일까?기모진은 소만리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기 부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저와 청산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일부러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며 "당신의 말이 맞아요, 서로가 깨끗이 청산하려면 당시의 증표를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네요."라고 말했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