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정은 위청재와 다투기 귀찮아하며 기모진의 예쁘지만 초점거리가 없는 눈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모진, 내가 물을게요, 당신은 내 딸을 사랑합니까?"이 질문은 기모진을 약간 놀라게 했다."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정말 천리를 사랑합니까?” 사화정이 물어보는 말투가 상당히 급박했다.기모진은 "당연히 사랑합니다."라고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자, 당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게요. 천리는 내일 기묵비 함께 F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기모진의 눈이 먼 눈빛속에 조금 외로움과 절망이 조금 더해졌다."알겠습니다.”"이게 다예요?" 사화정은 이렇게 침착하게 반응하는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기모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미소 지었다. "방해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 않는 게 내가 천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에요." 사화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기모진이 난간을 만지며 위층으로 올라간 것을 보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내일 아침 10시 30분 비행기, 갈지 안 갈지 당신 스스로 결정하세요."이 마지막 말을 마치고 사화정은 가버렸다.기모진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위청재는 기모진의 뒤를 따라 연거푸 "모진, 너 절대 가지 마, 너는 소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라고 강조했다."모진, 엄마의 권유를 들어라, 이 세상에 소만리보다 더 좋은 여자가 많으니 더 이상 그녀를 생각할 필요 없어.""모진, 모진..."그러나 위청재가 뭐라고 하든 기모진은 그녀를 외면했다.그는 한때 소만리와 결혼했던 침실로 한 걸음 한 걸음 돌아갔다.그러나 그녀의 오래된 향기는 사라지고 외로움과 쓸쓸함만 남아 있었다.그가 어둠 속을 더듬어 그 해의 웨딩 사진첩을 찾아, 사진의 무늬를 살살 어루만지자 기모진의 손끝은 차가웠고, 이 서늘함은 마음속으로 직행했다.천리, 당신이 행복하기만 하면 난 행복
다른 이유?기모진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소만리의 모습이 떠올랐다.천리, 석 달이 지났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기모진 곁을 황급히 지나갔고, 그 사람은 그의 어깨와 부딪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진료기록카드와 검사 보고서 모두를 땅에 떨어뜨렸다. "미안해요, 제가 급합니다."그 사람은 사과하고 바로 도망갔다.기모진은 갑자기 생각이 중단된 것에 불만을 품은 기모진은 쪼그려 앉아 떨어뜨린 물건을 주웠다."선생님, 이것들은 당신의 물건이에요."눈앞에서 여인의 온유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기모진이 떨어뜨린 진료기록카드를 건네 주었다.기모진은 긴 눈을 치켜들고 감사 인사를 하려는데, 앞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그의 팔을 잡고 뒤로 당겼다.“조심해요, 차가 있어요.” 그녀는 호의로 일깨워 주었다.기모진은 똑바로 서자마자 "감사합니다"라며 즉시 팔을 뒤로 뺐다."천만에요." 여자는 말투가 우호적이었고, 아름다운 눈으로 기모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선생님, 눈이 안 보이시죠?"기모진이 대답하지 않자 여인은 황급히 사과했다. “실례했습니다, 다만 저는 악의는 없었어요."기종영은 이때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 한 여자가 기모진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이 아가씨는…"그는 말을 반쯤 하다가 문득 여인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어안이 벙벙했다.여자는 웃으며 친근하게 명함 한 장을 건네 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 명함입니다."기종영은, 시선을 떼고 명함을 들고 한 번 바라보며 "만비비, 정신과 의사?""당신은 정신과 의사입니까?" 기모진은 살짝 곁눈질했다."네, 저는 정신과 의사예요. 제 삼촌이 여기서 일해요. 오늘은 주말이라 잠깐 그를 보러 들렸어요.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섰다.기모진은 볼 수 없었지만 기종영은 이상한점을 알아차렸다."왜요? 이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있어요?"기종영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기모진은 찾는 동작을 갑자기 멈췄다.그는 놀라며, 빛도, 색도 구분할 수 없는 그 눈동자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당신이에요? 경도에 언제 돌아왔어요?"“어제.”이 대답을 들은 후, 기모진의 암담한 눈동자 속에 갑자기 빛이 들어섰다.그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와 마주했다. "천리도 당신과 함께 돌아왔어요?"기묵비는 두 눈을 실명한 기모진을 쳐다보고, 또 방금 주운 이 결혼반지를 내려다보며, 흥미진진하게 손끝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가 살짝 입술을 열었다."맞아. 천리도 같이 돌아왔어."말을 꺼내는 동시에, 기묵비는 기모진의 눈에서 기쁨을 보았다.그는 입꼬리를 구부리고 웃었다. "나와 천리는 이번에 경도에 돌아와서 군군을 데리고 F국으로 돌아갈 거야."그의 대답은 기모진 즐거운 표정을 과감히 깨뜨렸다. "천리는 너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아 해. 당신도 천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좋겠어. 특히 지금 당신 같은 모습으로….""나의 지금 이런 모습?" 기모진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 "눈먼 장님이 당신으로부터 천리를 데려올까 봐 두려운가요?"기묵비는 불쾌한듯 인상을 찌푸렸다. “기모진, 너는 전에 자격을 갖춘 남편이 아니었어. 이제는 자격을 갖춘 전 남편이 되길 바래. 자격을 갖춘 전 남편은 죽은 듯이 있어야지.” 기모진의 눈빛이 짙어지더니, 기묵비의 말을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재빠르게 손바닥을 내밀며 "반지 돌려줘요"라고 말했다."반지는 너에게 돌려줄 수 있지만 네가 한 말을 기억하는 게 좋겠어. 천리를 그만 괴롭혀.""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기모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내놔요.”"일주일 뒤 천리와 나는 F국으로 돌아갈 거야. 그때 사람을 시켜 네 앞에 반지를 놓을게."이 뜻을 들으니, 기묵비는 지금 이 반지를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기모진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막 손을 뻗어 기묵비의 멱살을
"엄마, 이따가 진짜 군군 오빠를 만날 수 있어요?" 기여온의 앳된 목소리는 계곡의 맑은 샘처럼 감미로웠다.소만리는 "엄마가 어떻게 염염을 속일 수 있겠어, 잠시 후에 군군 오빠를 만날 수 있어요."라며 빙그레 웃었다."좋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막대사탕을 군군 오빠에게 줄 거예요." 염염은 귀여운 손으로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손뼉을 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자, 마치 가슴팍에 박힌 박자기처럼, 보는 것 같았는데, 한 번 한 번 칠때마다, 기모진의 마음이 은근히 아파왔다.그는 분명히 소만리가 웃음꽃을 피우며 1미터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자신을 지나쳤다는 것을 느꼈다.그는 지금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고, 현모양처였을 때의 온유하고 다정했던 모습을 상상하며, 매일 밤 그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푹 잘 것이라고 상상하니, 기모진의 눈시울이 거의 바람결과 함께 붉어졌다.그는 소리 없이 돌아서서, 소만리의 반대쪽으로 점점 멀어져갔다…….기여온이 기란군을 처음 만났을 때, 두 꼬마는 유난히 서로에게 무척 친절했다.이제 와서 상대방이 자신의 친남매임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비록 혈육이라는 이 두 글자가 어린 이들에게 아직은 생소하지만, 그 기쁨은 진실이었다.모현과 사화정은 일찌감치 기여온에게 큰 돈봉투를 준비해 두었는데, 이렇게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인형 같은 여자 아이를 보고 두 부부는 기쁨에 겨워 두 눈을 붉혔다.두 아이는 이복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았다..소만리는 신나게 놀고 있는 두 남매를 보며 머릿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기모진을 떠올렸다.기묵비가 전화하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사화정 옆에 앉았다. "엄마, 기모진 전에 다리를 다쳤나요?"사화정은 그 두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만리가 이렇게 물으니 좀 의외였다.소만리는 부랴부랴 "그는 나를 구하다가 다쳤는데, 만약 그가 괜찮다면 다행이에요"라고 해명했다.사화정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 부상은 다 나았지만,
"천리?"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고, 마음속에서 사슴이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며, 마치 대학에서 소만리를 만난 것처럼 긴장했다.기모진은 자신이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하늘은 그에게 평생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날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소만리는 눈앞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그 섬세한 눈썹은 조금 덜 차갑고 조금 더 따뜻했다.그녀는 침착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의 다리는 이제 괜찮은 것 같군요."소만리의 목소리를 듣고 기모진의 가슴은 큰 만족으로 벅차올랐다.그녀의 이 한마디에 그는 놀랐다.혹시 천리가 저번에 내가 다친 상처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일부러 온 건 아닐까? 그게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모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몇 초 동안 행복해하기도 전에, 소만리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과 나는 이제 아무 상관이 없으니, 당신에게 다시는 빚지고 싶지 않아요."기모진은 마음이 얼어붙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천리, 당신은 내게 빚진 게 없어,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빚진 게 너무 많아."라고 말했다."당신은 더 이상 내게 빚진 게 없어. 당신은 지난번 이미 나에게 다 갚았어. 당신이 정말 내게 빚진 게 있다면 그건 이혼증이고, 당신은 내게 이혼증 하나를 빚진 거야." 소만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일주일 동안 경도에 머무를 테니, 기선생이 반나절 시간을 내서 나와 함께 민정국에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래요."기모진은 소만리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 매우 간결하게 들리는 그의 대답이었다.소만리는 어찌된 일인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기모진의 온유하고 옥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핑크빛 입술로 "이번에는 꼭 만나요"라고 말했다."응, 꼭." 기모진은 웃으며 대답했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아쉬움과 미련은 함께 가슴속에 묻었다. "나 아직 일이 좀 있어. 할아버
소만리는 바보가 아니니 노인의 말씀의 뜻을 잘 이해했다.다만, 더 이상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소만리는 마당에서 할아버지를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고, 기모진은 침실의 발코니에 앉아 온유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이 기쁨의 순간을 즐겼다.......기묵비는 그쪽에서 기모진이 소만리를 피하고 소만리에게 자신의 실명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소식 듣고 꽤 만족스러워했다.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상상을 이상으로 소만리에 대한 기모진의 애정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생각했다.그는 기모진이 이렇게 하면 소만리를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그는 그것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피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똑똑똑." 누군가가 그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그의 허락을 받고 한 여자가 천천히 들어왔다."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기묵비가 직접적으로 물었다..여자는 그의 냉엄한 옆모습을 올려다보더니, 겁에 질려 머리를 숙였다. "저는 이미 계획대로 했지만 그는 아직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그녀는 말하면서 다시 기묵비를 힐끗 쳐다보았다.기묵비는 눈을 들어 눈앞의 분홍빛 입술과 극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온통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당신 할 일을 하고, 움직이면 안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마.""제가 어떻게 감히." 여자는 즉시 결심을 바로 밝히는데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그녀가 이미 기억해 놓은 이 번호를 보고 여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전화가 왔어요!"기묵비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받아."이 말을 듣자, 여자는 얼른 응답 버튼을 눌렀고, 그녀는 기묵비에게 돌아서서 기묵비 마주할 때의 복종하는 어조를 바꾸었고 그 순간은 매우 침착했다.두 마디도 안 하고 전화가 끊겼다."그가 뭐라고 했어?" 기묵비가 물었다.여자는 희색을 표하며 말했다. "내일 노천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요.”“노천카페.” 기묵비는 가볍게
소만리는 기묵비를 따라 나와 물건을 사러 나온 뒤, 기묵비는 소만리를 데리고 유명한 야외 카페로 갔다.테라스에 올라서자마자 소만리는 한 남자의 품에 기대어 있는 여자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던 그녀가 시선을 떼려 할 때, 그 남자가 기모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기모진은 한 여자를 안고 있었다."천리, 왜 그래요?" 기묵비는 소만리가 멍하니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소만리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소만리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이 카페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그녀는 아무일 없다는 듯 옆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고래를 들어보니 방금 치모진의 품에 안긴 여인이 보였고, 지금은 이미 기모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었다. 만비비는 소만리를 등지고 앉아 있어서, 소만리는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뒷모습만 보면 소만리는 이 여인의 몸매가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외모도 분명 별반 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종업원이 메뉴를 건네자 소만리는 시선을 돌렸다.저쪽에서 만비비는 앉아서 기모진에게 미소를 지으며 "죄송합니다, 기 선생님, 제 신발은 새로 산 거라서 습관이 안 됐어요. 방금 다행히 당신이 저를 부축해 주셨어요."기모진의 옥 같이 온화한 얼굴에는 "다음 번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냉담한 표정이 역력했다.만비비의 얼굴에 미소가 굳어지더니 2초가 지나서야 "기 선생님 안심하세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라고 대범한 반응을 보였다.소만리는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주문했고, 자신도 모르게 기모진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기묵비는 자연스레 눈치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며 핑계를 대며 화장실에 갔다.십여 미터 거리를 두고 소만리와 기모진은 마주보고 있는 방향이었는데, 소만리는 기모진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계속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소만리는 기모진이 왼손으로 커피잔을
기모진은 원래 있던 자리에 홀로 앉아 있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와, 공기 중에 익숙한 향기를 어렴풋이 맡았다.그러나 그때 전화벨이 울리면서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받았고,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만리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기 선생님, 내일 오전 9시에 민정국으로 올 수 있나요?”기모진은 소리 없이 침묵한 뒤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내일 오전 9시 정각에 민정국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좋아요, 그럼 그때 봐요." 소만리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운전 중인 기묵비에게 미소를 지으며 "묵비, 내일 아침에 당신이 저와 함께 민정국에 가지 않을래요? 더 이상의 의외의 사고는 원하지 않아요.""물론이죠." 기묵비는 기쁘게 동의했다.그도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더 이상의 문제를 원하지 않았다.가을바람이 불자 치모진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들고 실의에 빠져 눈을 감았다. 올 것이 드디어 왔다.천리, 우리는 드디어 당신, 나로 변하는 거야........다음 날 기모진은 일찌감치 민정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는 반드시 소만리보다 먼저 와야 했다.그는 오늘 이혼증도 받지 못할 거라는 상상을 했지만 결국 소만리가 제 시간에 나타났다.기묵비가 소만리를 데리고 함께 왔다.기모진은 소만에게 자신의 문제를 들키지 않도록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에 스태프들은 눈앞의 젊은 부부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확인했다. "두 분, 정말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실래요? 부부사이는 침대 머리맡에서 싸워서 침대 끝에서 화해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냥 움직이지 않으면 이혼이에요."“호의에 감사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만리의 말투는 간결하고 단호했고 심지어 완고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결혼은 이혼이 가장 좋은 결말이에요. 저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가 문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