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지만, 이 아름다움은 독점하고 싶은 이기적인 바람이었다.소만리는 웨딩드레스를 입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직도 생각 중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하지 못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현재 기억 상태가 그를 깊이 사랑했던 그때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매우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웠다.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침대 옆에 앉히고, 그녀의 곱고 아름다운 눈매에 어루만졌다."천리, 생각하려 하지 마. 당신이 기억을 잃었으니까 기억이 안나는 거야.""나, 기억상실증이에요?"소만리는 곤혹스러운 듯 눈을 크게 떴다.남자는 애처롭게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천리, 사실 우린 결혼한 지 6년 전이야. 단지 당신의 기억이 빗나가서 많은 것을 잊었어. 당신의 몸 안의 종양은 이미 잘 치료되었어. 소만영의 일가족 나쁜 사람들은 모두 악한 징벌을 받았어.그리고 우리는……”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전에 없던 두려움이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그는 그녀가 그를 미워할까 봐, 그녀가 그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중간에 얽힌 갈등을 알릴 용기가 없었다."모진, 모진, 왜 말을 안 해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요?"소만리의 추궁에 기모진은 정신을 차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소만리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소만리의 얼굴빛은 거의 찰나의 순간에 은은한 홍조를 띠었고, 그 날렵한 눈매는 미묘해서 낮게 드리워진 그의 깊은 눈길과 감히 마주할 수 없었다.그녀의 이 수줍은 모습은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녀를 꼭 닮았다."천리, 지나간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앞으로 잘 지켜주고 돌봐줄게."그는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렸다."그때 약속했던 대로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거야."소만리는 그녀의 맑은 눈을 천천히 들어 올려다보며, 기모진의 애틋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모진, 꿈을 꾸는 것 같아요.""바보야,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기모진은 눈이 더
기묵비는 양복과 가죽 구두를 신었고,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랑 양복을 입었다. 빗줄기가 더 거세지자 그는 검은 우산을 쓰고도 여전히 풍채가 넘치지만, 그의 눈빛은 더이상 온화하지 않았다.소만리는 눈앞의 기묵비를 차분히 바라보며,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이미지가 떠올랐다.역시나 비가 많이 내리는데 기묵비는 검은색 우산과 깔끔한 검은색 양복을 입고 그녀에게 다가왔다….."기묵비, 또 뭐 하러 왔어요?"기모진의 싸늘한 목소리가 소만리의 먼 마음을 불러왔다. 그녀가 올려다보니 마침 기묵비가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나는 당신을 찾으러 온 게 아닙니다."기묵비가 소만리의 얼굴에 시선이 닿자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만리, 나는 당신이 많이 혼란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까 나랑 같이 교회에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건…”"기묵비!"기모진이 불쾌한듯 말을 끊고 소만리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의 눈매는 날카로웠다."내 아내에게 그녀에게 속하지 않은 추억을 만들지 말아요."매섭게 쏘아붙였다.기묵비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지금 당신이 만리에게 거짓 기억을 심어주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녀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천리도 지금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기모진은 자신만만하게 되받아 쳐 가더니 우산을 펴고 소만리를 감싸고 차에 올라탔다.차는 아주 빨리 출발했고 소만리는 조수석에 앉아 눈을 들어 백미러를 보았다.기묵비의 그 깊은 웃음기 어린 얼굴이 눈에서 점차 사라졌다.모씨의 집.사화정과 모현은 기모진이 소만리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기모진의 소개 후, 소만리는 사화정과 모현이 그녀의 친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의아해하며 이 소식을 접하고, 눈앞에 있는 부부의 친숙한 느낌을 어렴풋이 느꼈다.“엄마, 엄마.”바로 그때, 은방울처럼
소만리의 행방을 묻기 위해 모씨의 집에 들렀지만 기모진이 눈에 띄었다."기모진, 이 쓰레기, 당신이 만리를 어디에 숨겼어요?"예선이 급하고 화를 내며 기모진에게 달려갔다.소만리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홀에 있었는데, 마침 기란군을 데리고 뒤뜰로 돌아섰다.기모진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이미 화가 난 예선이 손을 들어 치모진을 치려고 했다."예선!"소군연은 서둘러 그녀를 붙잡고 부드럽게 위로했다."예선 먼저 진정해. 만리는 괜찮을 거야.""제가 어떻게 냉정하죠? 만리가 계속 그를 따라다니다가 그에게 해를 당해 죽을 수도 있어요! 소 선배, 놔요. 이 쓰레기를 죽여버리겠어요!"예선은 새빨간 두 눈을 부릅뜨고 분개했다."기모진 이 나쁜 놈아, 내가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를 것 같아? 당신은 소만영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거잖아! 당신은 또 거짓말로 만리에게 사랑한다고 속이는군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지 알아요? 아냐고요!"예선은 한마디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훈계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녀는 소만리에 대해 괴로움을 느꼈고 너무 마음 아파했다."기모진, 만리가 당신을 따라다녔던 몇 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그녀가 당신과 결혼한 후, 그녀가 언제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웃은 적이 있었나요? 그녀는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고 자존심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만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은요? 당신은 그녀를 어떻게 대했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녀에게 그렇게 냉담한 태도를 취했나요? 당신은 소만영과 손잡고 3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할 정도로 냉혈해요! 당신은 또한 그녀의 얼굴도 망가뜨리고, 혈육도 빼앗아 갔어요!”"기모진, 만리가 자기 아이를 임신했다가 그녀가 중병에 걸렸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아요? 그녀는 나를 사월산의 해변으로 데리고 가더니, 만약 그녀가 살아남지 못하면 내가 그녀의 유골을 바다에 뿌려 달라고 말했어요.
기모진이 한쪽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그의 눈속에는 눈물이 넘칠 지경이었다.그의 눈에 담긴 헌신은 진실하고, 그 사랑도 매우 깊고 강했다.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우리 다시 시작해요.”소만리의 대답을 듣고서 그제야 예선이 정신을 차렸다.그녀도 뜻밖에 기모진의 지금 행동거지에 넋을 놓았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소만리가 기모진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피범벅이 됐던 지난 일들이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다.특히 기억을 상실하기 전의 소만리는 기모진을 그토록 증오했던 기억이 났다.소군연은 옆에서 지켜보던 중, 어찌된 일인지 기모진에 대한 소만리의 반응을 보고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침내 그는 소만리를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예선이 그녀를 또 막으려 하자 사화정과 모현이 말렸다."“예선 양, 천리의 의견대로 따라가줘요."소만리의 병세를 자극할까 봐, 예선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돌아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의 차에 앉아 분통을 터뜨렸다.“선배, 왜 방금 아무 말을 안 했어요? 소만리가 다시 기모진의 마수에 떨어지면, 또 그에게 괴롭힘 당해 죽을 게 분명해요!”그녀가 고민에 한숨을 내쉬었다."만리의 IQ가 그녀의 외모에 눌린 거 아닐까요? 그녀는 그렇게 좋은 선배도 원하지 않고, 그렇게 신사적이고 온유한 기묵비도 원하지 않고, 그 무정하고 냉혈 쓰레기만 원하네, 이 바보!”소군연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그게 아마 사랑이 가장 거부하기 힘든 것일 거야.”"흥, 이건 사랑이 아닐 거예요. 지켜보세요, 만리가 기억을 회복하게 된다면 그녀가 천검으로 기모진을 베지 않은 게 한이 될 거예요!"소군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여전히 화가 예선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우리 내기 할래?"“내기요?”"응."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만리가 기억을 되찾은 후에 기모진을 더 사
말이 떨어지자 기모진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졌고, 그는 절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싶었다.그는 소만리를 자극한 후,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그를 잊을까 봐 두려워했다.그는 차라리 그녀가 그를 미워할 망정, 그 이후로 그녀의 기억에서 그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기모진은 남사택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말은 소만리가 알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금 사무실에서 말하지 않은 몇 가지가 있었다.남사택은 기모진에게, 소만리는 현재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 되어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는 기모진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기모진을 증오하는 것인데, 이 두 인격은 서로 통하지 않고 서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특정한 경우에 자극이 된다고 했다.이런 특정한 상황을 기모진은 이미 짐작했다.그것은 강한 충격이나 갑작스럽게 격렬하게 두드리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그리고 소만리가 원상태로 완전히 회복되려면 그녀의 주인격을 깨워야 한다고 했다.기모진은 이 소식을 듣고 소만리를 보았다.이기적인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 그는 정말 소만리가 그 불행한 일들을 영원히 잊어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이제부터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랬다.“모진, 할아버지 보러 가고 싶은데 고택에 한 번 가볼까요?”소만리가 갑자기 이런 요구를 했다.기모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가 다시 설명했다."천리야, 집에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옛날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려 할아버지께서 병으로 쓰러지셨어."소만리는 놀라워했다."그럼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사세요? 모진, 우리 할아버지를 별장으로 모시고 함께 살아요. 할아버지를 돌보고 싶어요."기모진은 의외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그래, 우리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자.”십여 분 후, 그는 차를 어느 동네에 주차하고, 곧 소만리를 데리고 갔다.노인의 몸을 닦는 일을 위영설에게 떠넘기며 위청재가 밖에 나가 쇼핑하려
노인이 이때에야 소리를 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위영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새파랗게 질렸다.이 늙은이는 이미 중풍이라 되어 죽을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지금 반응이 있는 거지?그 동안 그녀는 매일 몰래 구타와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을 주었다.늙은이의 굴욕이 다 드러나지 않았나요?"할아버지."기모진은 놀라서 노인에게 돌아섰다."할아버지, 움직일 수 있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세요?"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해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한 글자도 더 뱉지 못했다.비틀거리는 오른손은 검지를 힘겹게 내밀어 앞을 가리켰다.이를 본 위영설은 황급히 옆으로 물러나서, 따라다니며 헐뜯었다."사촌오빠, 보셨죠, 할아버지가 이 여자를 가리키는 거 보셨죠.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이 여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예요.”뒤이어 온 위청재는 비웃으며 말했다."모진, 네 할아버지께서 직접 그녀를 손가락질하셨는데, 아직도 그녀를 위해 변호해 줄 거니? 분명 기억상실증을 가장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거야."말소리가 끝날 무렵, 치나리는 더욱 숨을 헐떡이며 격앙된 모습이었다.“보세요, 네 할아버지가 피를 토할 것 같아!”치모진은 발끈 화를 내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쩍였다."할아버지는 당신들에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그는 얼른 할아버지의 옷을 챙겨 소만리에게 건네며 말했다."천리야, 우리 할아버지 집에 모시자. 할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리면 할아버지께서도 틀림없이 좋아지실 거야.”소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휠체어를 밀었다."할아버지, 만리가 할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할아버지는 소만리의 말에 화답하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면서 감정도 점점 안정되었다."모진아, 할아버지를 어디로 모실 거니? 집에 가니? 어디 집에 가니? 우리 아직 집이 있니?"위청재가 불만을 품고 기모진을 쫓아다니며 물었지만, 기모진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위청재는 그
위영설은 걱정스러운 척 따라갔지만 얼굴에는 음산한 웃음꽃이 피었다.하지만 그녀는 위청재가 소만리를 찾아가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 올 줄은 몰랐다.옛 인맥을 이용해 위청재는 소만리의 병세를 알아냈다.상황을 파악한 뒤 그녀는 매우 기뻐서 웃었다."하하, 그 나쁜 년 정말 기억상실증이구나, 어쩐지 아까 그렇게 공손하게 엄마를 불렀는데, 예전의 그 바보 같은 상태로 돌아간 거군!”위청재는 기회가 온 것 같아서, 즉시 동네로 돌아가서 정리하고 그리고 방을 나가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짐을 끌고 기모진과 소만리의 신혼집 별장으로 갔다.택시에서 막 내리려고 하는데 우연히 기모진이 차를 몰고 별장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소만리는 기노인의 몸을 꼼꼼하고 섬세하고 인내심 있게 닦아주며, 이불을 덮어주고 주무시게 했다.할아버지께 몇 마디 하려던 참에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위청재와 위영설을 보았다."엄마?" 소만리가 예의 바르게 소리쳤다."왜 여기 오셨어요?”위청재는 소만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이 집은 내 아들의 거야. 어머니로서 내가 원하면 여기로 올 수 있어! 이제부터 위영설과 나는 여기서 살 것이고 어쨌든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김에 나와 영설도 모시고 가..”치모진이 지금 나간 것을 알고 영설은 도도하게 눈썹을 치켜 세웠다."사촌 새언니, 왜 가만히 계세요? 어서 저와 고모님의 짐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세요. 빨리 방 두 칸을 치워줘요 빨리요!"말이 끝나자, 위잉설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걸음을 내딛고, 소만리의 옆을 지나가다 일부러 그녀는 소만리의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소만리는 둘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 또 문 앞의 두 개의 캐리어를 바라보았다."와, 이 집이 정말 예쁘네요."위영설은 들어가자마자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 집의 여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더욱 소만리 같은 여자는 기모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위청재 전에 몇 번
기모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위청재와 위영설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두 사람은 과육이 사레가 들었고, 기침을 심하게 하여 두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소만리가 올려다보니, 기모진의 얼굴이 차갑고, 눈빛이 예리한 검과 예리한 칼끝 같았다.그러나 그녀의 시선을 접하는 순간, 그의 눈은 봄바람에 스쳐 지나갔던 것 같이 삽시간에 물처럼 부드러워졌다."천리."방금 슈퍼마켓에서 사온 일용품을 놓고 간 그는 가슴이 아팠다."바보야, 뭐 하는 거야?""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사촌 여동생 위영설과 함께 살겠다고 해서 객실 정리를 마쳤어요."소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기모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고 매서운 눈빛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당장 가세요."그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내쫓았다.기모진의 화난 모습을 본 위청재는 바로 가엾은 척했다.“모진, 난 네 엄마야, 네 아버지가 약간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또 해외로 갔어. 어떻게 너의 어머니를 혼자 살게 할 수 있니?""혼자요?"기모진은 차가운 눈으로 흘겨보았는데, 이때는 위영재가 숨을 쉴 수가 없었다."여기 하나 더 있잖아요?""......"위청재는 치모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위영설을 바라보며 한탄스럽게 말했다."너의 사촌 여동생 영설은 아직 졸업하지 않았고 경도에 다른 친척과 친구도 없어, 고모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데 우리 둘 다 직업이 없는 여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제가 보기에 둘 다 꽤 유능하다고 생각했는데요."치모진은 비웃으며 엉망이 된 바닥을 바라보았다."모진, 엄마랑 위영설 사촌이 여기서 살게 해줘요. 어차피 방이 있으니까요."소만리가 조언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손에 든 빗자루를 저 두 사람 앞에 던졌다."여기 살고 싶으면 더러워진 곳을 깨끗이 치워 주고 또 다시 천리를 찾는 곤경에 처하게 하면 모두 꺼지게 할 거예요."“......”“......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