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진은 소만리의 어깨를 잡고 초조하고 걱정스럽게 소만리를 불렀다.그러나 소만리는 들리지도 않은 듯, 앞에 있는 두 대의 자동차 사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천리, 겁내지 마, 천리 무슨 일 있어?"기모진은 더더욱 걱정이 되었고, 그의 깊은 눈동자에 한 줄기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앗, 아파요."소만리는 마침내 반응을 보였지만, 자신의 머리를 힘겹게 감싸 안고 괴로워하며 가볍게 두드려 쳤다."저 머리가 아파요……"소만리가 눈썹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모진은 가슴이 아팠다.그는 허리를 굽혀 소만리를 안아 들고, 교통사고를 지켜보던 사람들을 뚫고, 소만리를 차에 태워 바로 병원으로 갔다.“천리,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 옆에서 지켜줄게, 당신은 괜찮을 거야.”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고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소만리는 의자에 기대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기묵비는 전화를 받고 왔더니 소만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카운터에 여자는 소만리가 잘생긴 남자에게 끌려갔다고 말했고 그는 즉시 그 사람이 기모진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곧바로 소만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 울린 뒤 끊겼다.바로 뒤이어 기모진의 전화에 벨이 울렸고 이번에는 더욱 직접적으로 끊어버렸다.기묵비의 눈동자에 검은 물결이 일었다, 그는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얇은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기모진.”병원으로 가는 길, 기모진은 소만리의 상황이 더 나빠질까 계속 걱정했다.자신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 것인지, 또 소만리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자책했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만리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고, 아프다는 소리 없이 멍하니 잠든 것 같았다.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자, 기모진은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후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천리."그는 부드럽게 부르며 손을 내밀어 소만리를 껴안았다.소만리는 잠에서 깬 듯 어슴푸레한 눈을 번쩍 뜨더니, 눈앞에 다가온 것을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더 놀랐다.그녀는 기모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과연 눈앞에 있는 사람이 기모진인지 묻는 듯이 기모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나 소만리의 이 반응에 기모진은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그가 그녀에게 저지른 상처와 범죄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았다.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을까.기모진은 소만리를 쇼핑몰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를 만나고나서 그는 이 의사가 남사택이라는 것을 알았다.남사택과 기모진은 동문이지만, 그도 역시 소군연의 좋은 친구이기도 하므로 기모진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당신은 언제 뇌과 의사가 되었나요?"기모진이 물었다.남사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서랍에서 침착하게 카드 홀더를 꺼냈고, 그 안에는 정신과 의사 남사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지루해져서 공부를 좀 더 해 봤어요. 불법은 아니겠죠?”기모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소만리의 상태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소만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모진, 당신 먼저 좀 나가 있어 줄래요?”이 요청에 기모진은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스스로 나갔다.그리고 기모진이 나가자 소만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남사택에게 부탁했다.“남 선생님, 모진이 제가 아픈 걸 아는 것 같아요. 그가 나중에 물어보면 꼭 비밀로 해주세요.”남사택은 잠시 멍해 있다가, 소만리의 진실하고 맑은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실 문이 열리자 소만리는 편안한 표정으로 기모진을 바라보며 화장실에 간다며 기모진에게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소만리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 것을 보고, 일부러 돌아서서 떠나는 척했고 소만리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을 때, 기모진은 남사택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상태를 남사택에게 알렸다.남사택의 말을 듣고 매우 직설적인 결론을 내렸다."판단을 해보니 자극으로 인해 해리성 기억상실증, 즉 자기 정체성의 인지장애가 생겼다는 것
소만리는 기모진을 매우 유심히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현재 그녀의 기억 속에는, 눈앞에 있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를 미워하는 남자였다.기모진은 소만리의 눈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함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천리, 날 두려워하지 마. 난 당신을 슬프게 하는 어떤 일도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소만리는 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기모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사납고 화가 나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소만영에게 화풀이를 해 주겠다고 했던 그의 차갑고 매서운 눈빛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어떻게......“모진, 당신, 당신 괜찮아요?”소만리는 걱정이 앞섰다.기모진은 애처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천리, 내가 잘못했어. 소만영의 거짓말을 믿어서 당신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주어서는 안되는 거였어. 나는 당신을 계속해서 슬프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소만영의 눈빛이 밝아졌다.“모진, 당신 결국 나를 믿어주는 거예요? 내가 소만영을 해치지 않았다는 걸 믿어주는 거예요?”그녀는 계속 물었고, 그 눈에서 신뢰받고 이해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렬했다.치모진은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꼈다.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고 두 눈은 따뜻함과 굳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천리, 나는 당신이 미래에 하는 모든 말을 믿을 거야. 이전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만회할 기회를 주겠어?”소만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흘렀다.기모진의 경건하고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순간 그녀의 용서로 기모진은 그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괴로워하고 미워할 뿐이었다.가슴 아픈 건 소만리이고, 미운 건 자신이었다.왜 그가 그녀를 심하게 다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그때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길래 이렇게 서슴지 않고 그를 사
그렇게 말하면서 기모진의 눈물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눈물로 시야가 흐리던 중, 그는 소만리의 눈시울도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그러니까, 그 나쁜 여자가 소만영이에요?"소만리는 마음속에 있는 추측을 물었다.기모진은 후회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해, 천리, 내가 당신을 힘들게 했어."그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소만리는 넋이 나간 채 기모진의 가슴에 기대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원래 당신이 소만영에게 그렇게 잘 대해 줬군요, 당신이 그녀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그녀는 눈물에 젖은 입술을 오므렸다."당신이 어린 시절 나의 무지했던 농담을 이렇게 중요한 서약으로 받아들이고 지켜줘서 정말 기쁘고 고마워요.”소만리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기모진은 더더욱 괴로웠다.그녀는 그를 비난해야 마땅했다. 설령 그가 사람을 잘못 알아봤다고 해도 그가 그녀에게 이렇게 잔인하고 야박하게 대해서는 안되며, 더구나 그녀를 다시 만나기에 사랑에 빠진 후에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대학에서 만난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다.그는 분명 다시는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그는 또 한번의 약속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비록 그는 지금 어린 나이에 만난 그녀나 그 후의 그녀가 모두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를 기쁘게 한 여자아이에 대해 정말 고마워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결국 그녀와 함께 너무 많은 세월을 낭비했다.처음부터 그와 소만리는 모두 소만영의 흉계를 꾸미는 목표였기 때문이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이런 인격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소만리의 눈에서 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그렇게 잠시동안 그는 소만리의 인격과 기억이 그녀가 그를 깊이 사랑했던 순간에 머물기를 이기적으로 바랬다.석양의 빛은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금빛처럼 흩어졌고. 마침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소만리의 아름다운 눈동자 속 부드러움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대신 가시 돋친 눈빛으로 변했다."당신이에요?"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기모진을 쳐다보다가 그녀의 눈이 갑자기 의심으로 가득 찼다."여기가 어디죠? 왜 저를 여기로 데려왔어요?"그 말을 들은 기모진은 소만리의 인격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그 기억 속에는 그의 인격은 전혀 없었다.분명히 그녀의 이 인격에는 다른 인격을 물려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의 눈빛이 이렇게 무심할 리 만무했다.만약 그녀가 물려받았더라면 그녀는 지난 이틀동안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화목하고 조화롭게 지냈는지 기억해야 한다.기모진의 잠시나마 즐거웠던 마음은 피어난 불꽃놀이와 같았고 이제는 냉기만 남았다.얼떨떨했던 사이에 소만리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바닥을 벗어나 돌아섰다.기모진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쫓아갔다."천리, 어디 가는 거야?""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난 당신과 친하지 않아요."소만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냉담하게 대답했다.인파가 몰리자 기모진은 소만리를 다시 잃어버릴까 봐 단호하게 잡아당겼다."천리, 가지 마."제지를 당한 소만리는 기모진을 못마땅하게 노려봤다."만약 묵비가 여전히 당신의 숙부라면, 당신은 나를 저를 당신의 숙모로 존중해 주세요.”이에 대해 기모진의 눈빛에는 강한 소유욕이 가득했다."당신은 나의 숙모가 아니라 나의 아내야. 내 여자라고."“아.”소만리가 가볍게 웃었다.“당신은 정말 황당무계하네요, 어쨌든 난 당신을 몰라요.”그녀는 다시한번 귀찮다는 듯 그의 손을 힘차게 뿌리쳤다.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소만리는 고민에 빠졌다.여기가 도대체 어디일까?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기묵비에게 전화를 걸려고 손을 내밀어 주머니를 만지는 소만리는 휴대전화를 찾지 못했지만 손끝에 차가운 것에 닿았다.그녀가 그것을 꺼내어 보
그녀가 이틀 동안이나 실종되었다고?그녀는 왜 이틀 동안 자신의 실종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일까.그녀는 기모진이 쇼핑몰에서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갔다가 교통사고를 보고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것을 기억했다.기모진은 그 자리에 서서 기묵비가 소만리를 데리고 점점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그의 쓸쓸한 눈빛에는 고요히 편집증과 광적인 소유욕이 흐르고 있었다.천리, 다시는 당신이 내 곁을 떠나지 않게 하겠어.절대 안 돼.......소만리는 기묵비를 따라 아파트로 돌아갔다.돌아가는 길, 소만리의 손에는 여전히 책갈피가 들려 있었고, 머리속에도 기모진의 그 말이 메아리 쳤다."천리, 네가 아직도 이 책갈피를 소장하고 있다는 건 아직도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야."이 책갈피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집에 들어서자 소만리는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묵비, 나와 기모진,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기억을 잃은 부분이 그와 관련이 있나요?"기묵비는 그 말을 듣고 놀란 듯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당신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묵비?""네, 미랍, 당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는 실제로 이 사람과 관련이 있어요."기묵비는 솔직하게 인정했다.소만리의 심박수는 갑자기 리듬이 흐트러졌고, 자신이 남편이라는 기모진의 말을 떠올리며 소만리는 더 걱정스럽게 물었다."설마 나와 그 사람이 정말 부부인가요?""당신들은 정말 부부였지만, 당신은 결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당신의 행동에 대한 그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를 매우 미워하고 증오했어요.”“당신과 기모진이 결혼한 이유는 다른 사람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고, 어쩔 수 없이 기노인에게 강요 당했어요. 결혼 후에도 기모진은 당신의 감정을 전혀 무시했고, 첩과 다정하고 친밀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첩이 당신을 다치게 하는 것을 용서하기까지 했어요. 당신이 숨을 거두는
그러자 소만리는 즉시 반항하며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을 팔꿈치로 두들겨 쳤다.그 남자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았다."천리, 나야."남자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가볍게 귓가로 들어왔다.소만리는 어렴풋이 향기롭고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천리야, 겁내지 마.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 평생 후회할 결정을 지금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기모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말했다.작은 부탁이 어렴풋이 내비쳤다.“나와 함께 갈래?"소만리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먼저 놔주세요."이 말을 들은 기모진은 마지못해 팔을 놓았다.소만리 돌아서서 잘생긴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고 그녀의 눈빛은 순간 눈앞에서 분노가 치밀었다.갑자기 소만리의 눈에서 증오의 불꽃을 본 기모진은 조금 놀랐다.기껏해야 그녀의 현재 인격이 그를 미워하고 거부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강한 증오가 있을 수 있을까?하지만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소만리의 손을 꽉 잡았다."천리, 기묵비와 결혼하지 마, 그는 당신이 겉으로 본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는 당신을 이용하고 있어. 당신도 그를 사랑하지 않아. 그 사람과 결혼하면 후회할 거야.......”“찰싹!”기모진 말의 끝자락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만리가 갑자기 뺨을 때렸다.그녀는 조금의 가차도 없이 그의 뺨을 때렸다.기모진은 약간 당황했다.그러나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눈앞의 여인이 칼로 그를 찌른다 해도 그는 몸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묵비에게 시집가면 후회하고, 당신에게 시집가면 후회하지 않나요?"소만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기모진은 눈을 들어 그녀의 얼굴은 차갑고, 눈빛은 얼음과 같았다."천리?""닥쳐요."소만리가 쏘아붙였다.“더 이상 내 앞에서 애틋한 척하지 말아요. 기묵비가 모든 것을 말해줬어요! 이 비인간적인 놈!”이 말을 들은 기모진의 마음이 차가웠던 순간 기분이 나빴다.그는 기묵비가 소만리에게 무엇을 주입시켰는지 모
기모진은 자신이 미쳐가고 있음을 느꼈고 냉철하고 평온했던 예전의 모습이 싹 사라졌다.그는 거의 미친 듯이 소만리를 끌어안고 계속 강조했다."아니야, 만리, 당신은 기묵비를 좋아하지 않아. 당신이 사랑하는 건 나야! 우리가 어렸을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 마음속엔 오직 나 한 남자뿐이었어.”소만리는 힘껏 그를 밀쳤다. "기모진, 날 놔줘요, 나는 당신처럼 냉철한 쓰레기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예요! 놓아줘요!”"쏴…."탈의실의 커튼이 갑자기 열렸다.소리를 들은 예선과 사화정이 서둘러 들어왔다. 첫눈에 소만리를 안고 놓지 않는 기모진을 보자 예선이 급히 앞으로 가서 끌어당겼다."기모진 이 찌질한 남자가 왜 여기 있어? 당신 빨리 소만리를 놔줘요! 놓으라고요!”예선은 욕설을 퍼붓고 기모진을 힘껏 잡아당겼다."이 찌질한 남자에게 소만리가 언제까지 고통을 받아야 당신이 만족하겠어요!"기모진은 예선에게 이렇게 욕을 먹고서 넋이 나갔다.고통.설마 그가 또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건가?아니.그는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힐 수 없다.멍하니 있는 기모진을 보고 예선은 그를 끌어내어 옆에 있는 소만리를 보호했다.“만리, 너 괜찮아? 어떻게 이런 쓰레기가 여기에 있는 거야?”소만리는 기모진을 노려보았다.“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는데,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기모진 들었어요? 만리가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대요, 빨리 꺼져요!"예선은 노골적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기모진의 체면은 조금도 세워주지는 않았다.몇 마디 욕설을 들은 기모진은 갑자기 몸을 흠칫 떨고 예선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당신이 천리의 가장 친한 친구잖아요, 당신이 천리가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 말해줘요.”기모진의 이런 다급한 모습은 의외였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는 소만리를 보고 곧 확실하게 대답했다."만리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묵비였어요. 만리는 이런 찌질한 남자를 좋아한 적이 없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