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만리는 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미소를 지었다."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묵비의 약혼녀 천미랍입니다."그녀의 소개는 기모진의 마음을 찢어지게 아프게 했지만, 기묵비는 조용히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기모진은 냉정하게 몰아붙여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갑자기 소만리의 손을 잡았다."천리, 난 기 선생이 아니고, 당신 남편이야!"소만리는 갑자기 자기 손을 뒤로 빼며 불쾌하게 그를 노려보았다."기 선생님, 자중해 주세요. 저는 당신의 미래의 숙모입니다."그 말이 다시 기모진의 고막을 뚫고 들어가자 그의 상처투성이 가슴에 다시 소금을 뿌렸다.보이지 않는 피가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고 찢고 찢기는 고통이 그를 숨쉬기 어렵게 만들었다."모진, 이런 농담하지 마. 미랍이 화낼 거야."기묵비가 걸어와서 정색을 하고 일깨워 주었다.기모진의 적대적인 눈빛을 미묘하게 맞이하며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미랍이 아직 낫지 않았어. 미래에 숙모가 더 이상 자극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그렇지?"그는 기모진이 소만리와의 과거, 특히 기모진과 소만리의 관계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 것을 암시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상태가 호전되기 위해 이를 견뎌야 했다.그는 지금 소만리를 내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그는 마음을 꿰뚫는 화살의 맛을 맛볼 수 있었다.이날 오후, 기노인도 깨어났다.하지만 신체기능이 노화된 데다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까지 겹치면서 기노인은 삶의 자활능력을 상실하고 회복의 기회도 거의 없었다.즉, 할아버지는 아직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으며, 이런 상황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위청재는 할아버지를 돌본 지 하루도 안 돼 짜증을 내며 일을 영설에게 떠넘겼다.간병인 한 사람에게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그녀는 지금 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전혀 없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문을 밀고 들어가려고 손을 드는데 누군가에게 손이 잡혔다.소만리는 고개를 돌려 기묵비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았다.“수속은 다 끝났어요, 이제 우리 갑시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나려고 했다.소만기라 그를 붙잡고 말했다.“묵비, 이 안에 어떤 여자가 노인을 괴롭히고 있어요.”“남의 집안일은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기묵비는 난처한듯 얼굴을 찡그리며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어쨌든 우리는 자초지종을 모르니, 그냥 가요.”소만리는 다시 병동을 들여다보았고, 위영설의 가증스러운 얼굴과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의 뒷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괴롭혔다.위청재는 소만리를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다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불만을 억누르며 돌아서려는 순간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경찰서에서 막 돌아온 기모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그 얼굴은 차갑고 굳은 표정으로 매서운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위청재가 급히 달려가서 말했다.“모진, 오전 내내 어디 갔었어? 방금 기묵비가 소만리를 데리고 간 거 알고 있어? 내가 말이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위청재는 기모진의 눈에서 퍼지는 분노를 느꼈다.기모진은 시선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모진, 그 여자 좀 내버려 둬, 곧 할아버지가 퇴원하실 텐데, 너 없이 어떻게 해!”위청재는 기모진을 부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걱정하기 시작했다.“모진, 지금 네 할아버지는 말도 못하고 걸음도 못 걸으시니 얼마나 불쌍하니!”“어렸을 때부터 너는 할아버지의 총애를 많이 받았는데, 네가 여자 때문에 할아버지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니? 비록 네가 이 문제는 소만리와 관련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증인과 물리적인 증거는 모두 소만리를 가리키고 있어. 그녀는 이번 독극물 사건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기모진은 차가운 눈동자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소만리가 기묵비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화정과 모현은 다소 긴장했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그들은 기묵비라는 사람을 잘 모르지만, 기묵비가 소만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한편, 기묵비는 소만리를 이전 아파트로 직접 데려갔다.소만리는 이 아파트가 낯설지 않은 듯 침실로 들어가 간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기묵비는 곁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며 기억상실은 희한한 일이지만, 소만리의 행동은 확실히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그 기억들은 모두 치모진과 관련이 있었다.그녀는 그것이 사랑이든 미움이든 기모진이란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이것은 기묵비에게 있어서 기쁜 일이라 할 수 있었다.소만리가 갑자기 옷을 꾸리기 시작하자 기묵비는 의아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미랍, 뭐하는 거예요?""우리가 여기 온 지 꽤 됐는데 F국으로 돌아가서 염염을 보고싶어요.”기묵비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밝은 검은 눈동자 속에는 물처럼 부드러운 정이 담겨 있었다."미랍, 나는 당신과 염염에게 반드시 행복을 줄 것을 약속할게요.""알아요."소만리는 살짝 웃었고, 기묵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눈으로 가볍게 미소 지었다.“하지만 묵비, 의사는 내가 기억의 일부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가요?"기묵비는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늘씬한 손가락을 들어 소만리의 아름다운 눈썹을 어루만졌다."당신이 일어나기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뇌진탕을 일으켰어요. 의사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과 사물을 선택적으로 잊었다고 말했어요."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듣고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렸다.기묵비는 재빨리 그녀의 생각을 중단시켰다."미랍, 그것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기억이니까, 그냥 과거로 둬요. 앞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있을 것을 약속할게요."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낯선 전화 번호였지만, 기묵비는 별 생각 없이 전
기대에 차 있는 사화정과 모현의 눈빛에서 그들은 기묵비의 소개를 들었다.소만리 놀라며 의아한 듯 말했다."나의 친부모님?"그녀는 분명히 이 관계를 모조리 잊었다.사화정과 모현은 아픔을 참으며 미소 지었다."천리, 우리가 진짜 너의 친부모야."서글픈 부부의 눈빛을 바라보는 소만리의 마음도 점점 무거워졌다.그녀는 단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단 한 명이었고 그 가족이 바로 외할아버지 시윤이라는 것만 기억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할 뿐,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런데 부모님이, 바로 눈앞의 모습이라니?"미랍, 당신은 사고 전에 이미 친부모님을 만났어요. 당신의 진짜 이름은 모천리예요.기묵비가 진지하게 설명했다.소만리는 점점 정신을 차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전혀 기억이 안 나요.”그녀는 사화정과 모현의 눈에 진심 어린 사랑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부드럽게 속삭였다."당신들이, 정말 우리 엄마 아빠예요?"이 말을 들은 사화정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소만리의 손을 꼭 잡자, 뜨거운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천리야, 나 진짜 너의 엄마야! 그땐 엄마 아빠가 너무 소홀해서 나쁜 사람에게 빼앗기고 너를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힘들게 했어. 천리야, 엄마가 다시는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기..."사화정은 소만리를 끌어안으며 울었고, 모현도 오열하며 소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천리야, 아빠는 더 이상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야. 이 목숨을 걸고라도 엄마와 아빠가 너를 지켜줄 거야."소만리는 약간 넋이 나간 듯이 사화정에게 꼭 안겼다.그녀는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를 확실히 기억할 수 없지만, 그녀는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갈망했던 따뜻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따뜻함은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궜다.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사화정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처음에 그들은 기묵비에게 전화했을 때 약간 긴장했었다.그리고 기모진이 기묵비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지금 그들에게 기묵비는 신사이며 온화하고 우아한 남자로 보였다."기 선생님 감사합니다."사화정이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천만에요, 저도 미랍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하지만 아버님 어머님께서 미랍 앞에서 조카 모진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기묵비가 말하며 난색을 표했다."모진이 미랍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주었어요. 미랍이 그를 따랐을 때 잠시 동안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이제 그녀는 기모진을 잊기로 선택했어요. 이것이 기모진이 그녀에게 가장 상처를 입혔다는 증거입니다.”“또한 저와 미랍이 F국에 있을 때 딸을 낳았습니다. 이름은 여온이고, 별명은 염염입니다.”“저는 원래 문제를 모두 해결한 후 미랍을 데려가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지금 당신들과 아는 사이인 만큼, 저는 그녀가 모천리로 제 아내가 되어 아버님 어머님께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사화정과 모현은 기묵비가 말했던 걱정을 이해했다.비록 이 세월 동안 그들은 기모진의 후회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소만리에 대한 그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다만 사화정은 약간의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기 선생님, 정말 염염이 당신과 천리의 아이가 맞습니까?"기묵비는 아무 생각 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오래전부터 미랍을 좋아했지만, 다만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모진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모진과 결혼해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과는 모두가 보신바와 같습니다.”“3년 전 저는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F국으로 데려갔더니.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어요."기묵비의 해석은 듣기에 상당히 합리적이었다."묵비, 엄마 아빠랑 무슨 얘기해요?"소만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사화정과 모현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기묵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우리 미래
기모진은 소만리의 어깨를 잡고 초조하고 걱정스럽게 소만리를 불렀다.그러나 소만리는 들리지도 않은 듯, 앞에 있는 두 대의 자동차 사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천리, 겁내지 마, 천리 무슨 일 있어?"기모진은 더더욱 걱정이 되었고, 그의 깊은 눈동자에 한 줄기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앗, 아파요."소만리는 마침내 반응을 보였지만, 자신의 머리를 힘겹게 감싸 안고 괴로워하며 가볍게 두드려 쳤다."저 머리가 아파요……"소만리가 눈썹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모진은 가슴이 아팠다.그는 허리를 굽혀 소만리를 안아 들고, 교통사고를 지켜보던 사람들을 뚫고, 소만리를 차에 태워 바로 병원으로 갔다.“천리,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 옆에서 지켜줄게, 당신은 괜찮을 거야.”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고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소만리는 의자에 기대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기묵비는 전화를 받고 왔더니 소만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카운터에 여자는 소만리가 잘생긴 남자에게 끌려갔다고 말했고 그는 즉시 그 사람이 기모진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곧바로 소만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 울린 뒤 끊겼다.바로 뒤이어 기모진의 전화에 벨이 울렸고 이번에는 더욱 직접적으로 끊어버렸다.기묵비의 눈동자에 검은 물결이 일었다, 그는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얇은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기모진.”병원으로 가는 길, 기모진은 소만리의 상황이 더 나빠질까 계속 걱정했다.자신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 것인지, 또 소만리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자책했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만리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고, 아프다는 소리 없이 멍하니 잠든 것 같았다.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자, 기모진은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후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천리."그는 부드럽게 부르며 손을 내밀어 소만리를 껴안았다.소만리는 잠에서 깬 듯 어슴푸레한 눈을 번쩍 뜨더니, 눈앞에 다가온 것을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더 놀랐다.그녀는 기모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과연 눈앞에 있는 사람이 기모진인지 묻는 듯이 기모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나 소만리의 이 반응에 기모진은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그가 그녀에게 저지른 상처와 범죄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았다.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을까.기모진은 소만리를 쇼핑몰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를 만나고나서 그는 이 의사가 남사택이라는 것을 알았다.남사택과 기모진은 동문이지만, 그도 역시 소군연의 좋은 친구이기도 하므로 기모진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당신은 언제 뇌과 의사가 되었나요?"기모진이 물었다.남사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서랍에서 침착하게 카드 홀더를 꺼냈고, 그 안에는 정신과 의사 남사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지루해져서 공부를 좀 더 해 봤어요. 불법은 아니겠죠?”기모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소만리의 상태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소만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모진, 당신 먼저 좀 나가 있어 줄래요?”이 요청에 기모진은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스스로 나갔다.그리고 기모진이 나가자 소만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남사택에게 부탁했다.“남 선생님, 모진이 제가 아픈 걸 아는 것 같아요. 그가 나중에 물어보면 꼭 비밀로 해주세요.”남사택은 잠시 멍해 있다가, 소만리의 진실하고 맑은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실 문이 열리자 소만리는 편안한 표정으로 기모진을 바라보며 화장실에 간다며 기모진에게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소만리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 것을 보고, 일부러 돌아서서 떠나는 척했고 소만리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을 때, 기모진은 남사택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상태를 남사택에게 알렸다.남사택의 말을 듣고 매우 직설적인 결론을 내렸다."판단을 해보니 자극으로 인해 해리성 기억상실증, 즉 자기 정체성의 인지장애가 생겼다는 것
소만리는 기모진을 매우 유심히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현재 그녀의 기억 속에는, 눈앞에 있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를 미워하는 남자였다.기모진은 소만리의 눈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함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천리, 날 두려워하지 마. 난 당신을 슬프게 하는 어떤 일도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소만리는 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기모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사납고 화가 나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소만영에게 화풀이를 해 주겠다고 했던 그의 차갑고 매서운 눈빛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어떻게......“모진, 당신, 당신 괜찮아요?”소만리는 걱정이 앞섰다.기모진은 애처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천리, 내가 잘못했어. 소만영의 거짓말을 믿어서 당신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주어서는 안되는 거였어. 나는 당신을 계속해서 슬프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소만영의 눈빛이 밝아졌다.“모진, 당신 결국 나를 믿어주는 거예요? 내가 소만영을 해치지 않았다는 걸 믿어주는 거예요?”그녀는 계속 물었고, 그 눈에서 신뢰받고 이해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렬했다.치모진은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꼈다.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고 두 눈은 따뜻함과 굳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천리, 나는 당신이 미래에 하는 모든 말을 믿을 거야. 이전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만회할 기회를 주겠어?”소만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흘렀다.기모진의 경건하고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순간 그녀의 용서로 기모진은 그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괴로워하고 미워할 뿐이었다.가슴 아픈 건 소만리이고, 미운 건 자신이었다.왜 그가 그녀를 심하게 다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그때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길래 이렇게 서슴지 않고 그를 사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