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진작에 그들을 신경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사화정이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가를 적셨다.소만리의 집을 떠난 후 기모진은 기씨 저택의 방에 계속 틀어박혀 있었다.그동안 위청재와 위영설은 번갈아 가며 방문을 두드렸지만 무시당했다.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꼬박 하루 종일 앉아 소만리와의 결혼식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맞았다. 사실 그는 소만리를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다. 할아버지의 명분으로 소만리와 결혼할 때, 그는 그녀가 아니면 안된다는 가장 좋은 증거였다.그런데 그는 그 어렸을 때의 약속을 위해 6년동안 소만영에게 속았다.결국 소만영은 가짜에 불과했다.그가 사랑하는 여자야말로 그가 그 당시 약속했던 사람이었다.기모진은 의자에 가만히 기대어 있다가 갑자기 웃었다.원래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이었어, 만리.......“웅웅웅.”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기모진은 전화를 받고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뭐라고? 소만리가 전예를 쫓느라 교통사고를 당할 뻔 했다고? 알겠어 바로 갈게.”그는 급히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었다.그때 마침 위영설이 간식을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기모진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알랑 거리며 말했다.“모진 오빠, 드디어 나왔...... 모진 오빠, 이렇게 급히 어딜 가요?”기모진은 못 들은 척 하고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를 본 위청재는 즉시 기모진을 말렸다.“모진, 또 소만리를 찾으려 가려고 하는 거니? 이 집의 모든 재산을 그 여자와 기묵비가 거의 다 먹어 치우고 있는데 너는 그걸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그녀를 찾아다니고 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이니? 오늘 엄마한테 말 좀 해봐, 너 그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 거니?”“제가 누굴 찾든 상관하지 마세요.”기모진은 차갑게 대했다.“만약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으시면 제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
기모진이 말을 마치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 했다.소만리의 눈에 비친 슬픔과 분노가 순식간에 흔들렸다.“기모진, 당신 지금 무슨 소리예요?”진실을 알고 싶은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이 아팠다.“기모진, 당신이 방금 한 말을 다시 말해줘요! 우리 아이가 죽지 않은 거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감정을 삭이지 못한 소만리는 남자의 어깨를 움켜쥐고 따졌다.“말해줘요, 빨리 말해줘요, 아이가 어딨어요!”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더욱 자책하고 마음이 아팠다.“만리, 침착해.......”“침착하라고? 내가 침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만리는 냉소적으로 반문하며 그녀의 눈빛은 얼음 송곳처럼 날카롭게 쏘아붙였다.“기모진, 당신은 그 아이를 신경 안 쓸지 몰라도 난 신경 써요! 당신은 자식과 분리되는 고통을 알아요? 당연히 모르겠죠, 왜냐하면 당신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니까, 당신의 그 인정 없고 냉혹한 마음속에는 소만영 같은 독한여자만 품고 있을 뿐이에요!”“아빠, 엄마.”소만리가 기모진을 추궁하는 순간 기란군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해맑은 미소로 가득 찬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장난기가 있었다.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며 소만리의 가슴속 슬픔과 아픔은 어느새 조금씩 사라졌다.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고 기란군을 향해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군군.”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눈앞까지 달려온 꼬마녀석을 홀딱 껴안았다.이 작은 몸을 감싸 안은 소만리의 눈은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기란군을 좋아해서, 이 아이에게 더 많은 엄마의 사랑을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을 안아주고 싶었다.이 광경을 보고 기모진은 애틋한 눈으로 아낌없이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만리, 군군은 당신의 친자식이고 우리의 보배야.당신이 알았을 때, 당신은 분명히 매우
사화정과 모현은 소만리가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때 그녀가 기란군에게 이끌려 거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부부의 눈이 점차 기쁨으로 빛났다.“만리! 정말 왔구나.”사화정이 설레는 표정으로 소만리에게 향했다.소만리는 의식적으로 사화정이 붕대를 감은 종아리를 힐끗 쳐다보다가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담담하게 말했다.“모 부인 그래도 상처가 터지지 않게 앉아서 좀 쉬세요, 더이상 빚지고 싶지 않아요.” 사화정은 이 말을 듣고 슬픈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엄마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아이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래. 네가 괜찮으면 엄마는 안심할 수 있어. 우리는 너에게 미안한 것이 있지만, 너는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어.”모현 역시 소만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천리, 아빠 엄마가 정말 미안해. 네가 우리를 인정하기 싫으면 우리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게. 널 볼 수만 있다면 나와 네 엄마는 그걸로 만족해.”그러자 소만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군군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는 거 아니에요?”사화정과 모현이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오늘은 군군의 생일인데, 그런데 생일 전에 기모진이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사화정은 케이크를 들고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소만리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사람과는 더이상 아무 관계도 없고, 만약 당신이 이 남자를 위해 좋은 말을 하려고 저를 부르셨다면, 저는 지금 가겠어요.”“천리, 가지 마!”사화정은 황급히 앞으로 나가 저지하며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다.“천리야, 화내지 마, 네가 싫으면 엄마는 말하지 않을게.”소만리가 지나가는 순간, 기모진은 더욱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손바닥의 온기가 그녀의 피부로 전해져 그 따스한 감촉이 한 층 더 커졌다.소만리는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놓으세요.”“군군의 생일에 당신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이 나의 선물
기란군의 말을 들은 기모진의 두 눈썹이 잠겨 있었다.그의 눈에는 기란군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이 담겨 있었지만, 한편으로 충격과 분노가 더 컸다.알고 보니 소만영이 그가 없을 때, 뜻밖에도 기란군을 이렇게 대했었다는 것을 그는 정말 전혀 몰랐다.어쩐지 그래서 기란군의 성격이 그렇게 이상하고 우울해 보였던 것들이 모두 소만영이 만들어 낸 것들이었다.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살며시 조여주었고, 하얀 손등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뭐라고? 이 소만영이 그렇게 악랄하다니!”사화정과 모현 모두 울분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그녀는 정말 사람도 아니야!”소만리는 말없이 기란군에게 조용히 마음 아파하며, 가슴속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주먹을 쥔 채, 침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자를 차갑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기 도련님의 총애를 받은 분은 정말 못하는게 없는 사람이네요, 그런데 군군에 대한 그녀의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닐 걸요?”그녀는 비꼬는 말투로 그때의 광경을 이야기 했다.“그때 그녀는 나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직접 과일칼을 들고 군군의 얼굴에 칼을 베었어요. 그 아이의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지만, 그녀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제 손에 칼을 쑤셔 넣었어요.”“흥미롭게도 당신 기 도련님과 온 가족이 소만영의 거짓말을 믿고 저를 때리고 욕을 했죠. 그날의 일은 평생 잊지 않겠어요.”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사화정과 모현도 끝없이 자책에 빠졌다.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나중에 그들도 그녀를 욕하기도 했었다.소만리는 눈빛이 엄숙한 기모진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기모진은 군군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군군, 엄마는 너를 영원히 보호하고 사랑할 것을 약속해.”“진짜예요?”기란군은 맑은 큰 눈에 기쁨이 반짝였다.소만리는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럼 우리 약속하자.”“응!” 기란군이 웃으며 귀여운
“정말이야.”기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믿어.”그는 말투는 낮고 부드러웠고, 소만리는 멍한 표정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넋을 잃고 기모진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불만스럽게 기모진의 두 손을 밀어냈다.“지금 당신이 하는 말을 명심하고 내가 당신을 더 미워하게 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단호하게 돌아섰다.기모진은 그 자리에서 소만리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추억은 소만리가 그를 흠모하는 눈빛들과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이고 창백한 추억이 될 것이었다.그날 밤, 소만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그 해에 제왕절개로 출산한 빼앗긴 아기가 몹시 보고 싶었다.그녀는 그 아이의 눈매를 상상했다. 어떤 모습일까? 분명히 귀엽겠지?기모진을 증오하면서도, 기모진의 외모는 흠잡을 곳이 없고, 모양도 그럴 듯해 아이에게 유전되는 유전자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소만리는 기모진이 그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그때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까?그렇다면 당시 무덤에서 그가 그녀 앞에 뿌린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그 당시 그의 냉혈하고 잔혹했던 모습이 눈에 선해, 어찌 보면 연기 같지도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 일까?당황하던 소만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다음 날.그녀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기묵비의 낮은 목소리는 이른 아침의 나른함을 띤 채, 그녀에게 아침 안부를 물었다.그는 소만리를 초대하여 기씨 그룹의 이사화를 열겠다고 말했다.소만리는 대답을 하고 출발하기 전에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다시 메세지를 보내 기모진이 아이를 데리고 그녀를 만나러 오라고 일깨워 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만리는 기씨 그룹에 도착했지만, 정문에 많은 기자들이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많은 인파속
“휴…….”기모진의 말이 끝나자, 현장에서는 깜짝 놀라며 쉴 새 없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지난 모 씨 그룹의 기자간담회에서 소만리야 말로 모씨 집안의 진짜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기모진이 지금 하는 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경도 제일의 대가 황태자인 기모진의 총애를 받아온 것이 소만영이라는 것도 누가 알았겠는가?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왜 소만리로 바뀌었을까? 소만리는 분명히 그가 싫어하는 여자였다.“기 도련님, 당신은 사실 당신이 항상 좋아했던 사람은 당신의 전처 소만리지, 소만영이 아니라는 뜻 입니까?”분위기가 한참 경직 되어있던 끝에 마침 어떤 여기자가 질문했다.“말씀하신 것 중에 반만 맞아요.”기모진이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나는 전처가 없었고 평생 단 한사람의 아내만 있어요.”기자들은 어리둥절해했다.“그런데 기 도련님, 3년전에 이미 소만리와 이혼하셨는데……”“저희 사이에 갈등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제 결혼 증명서 상의 합법적인 아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기자들이 기모진의 대답에 당황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소만리의 평온하고 담담했던 얼굴도 순식간에 조금 바뀌었다.기모진의 깊은 눈동자 속의 자신감을 보았을 때, 소만리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내가 아직도 그의 합법적인 아내라고?그때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는데 어떻게 그의 합법적인 아내가 될 수 있을까?묘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아까 그 여기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기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잘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소만리가 3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마…..”“당신이 잘못 아셨어요.”기모진은 여기자의 말을 가로막았다.“저의 아내는 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뭐라고!모두들 다시
“기 도련님 말씀이 너무 감동적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소만리가 아닙니다.”그녀는 이를 부인하며 비꼬는듯 웃었다.“하지만 제가 정말 소만리라고 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뿐더러, 어떠한 기회도 당신에게 주지 않을 거예요.”기모진의 눈에 비치는 희망의 빛이 조금씩 산산조각이 났고 그의 마음도 무너졌다.사실 그녀의 대답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거절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인터넷 생중계 영상을 본 기묵비는 제일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그는 황급히 인파를 헤치고, 소만리 곁으로 달려갔다. 온화하고 점잖은 그의 얼굴에 노한 빛이 가득했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는 소만리의 손을 잡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기모진을 노려보았다.“기모진, 미랍에게 당신의 거짓된 죄책감과 사랑을 강요하지 마. 그녀는 당신이 싫어 했던 전 부인 소만리가 아니라, 기묵비의 약혼녀 천미랍이야.”기묵비의 말에는 경고의 뜻이 담겨있었다.소만리도 역시 기묵비의 얼굴에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난 분노와 공격성을 처음 보았다.“숙부와 조카 관계를 위해서 이번에는 논쟁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자중해.”기묵비가 말을 마치고 소만리를 데리고 돌아섰다.소만리는 기모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따라 걸음을 내디뎠지만, 그녀가 한발짝 내딛는 순간, 다른 한 손 갑자기 낯익은 손바닥에 꽉 움켜졌다.그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기묵비도 따라 멈춰 섰고, 뒤돌아보니 기모진이 소만리의 손을 잡아당기자 기묵비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미랍을 놓아줘.”기모진은 기묵비를 무시하고 곧장 소만리에게 갔다.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기모진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그가 소만리의 귓가에 무슨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은 모두 소만리의 눈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이어서 구경꾼들과 기묵비는 기모진의 입에서
기모진은 과감히 시동을 걸었다.그 말을 들은 소만리의 얼어붙은 얼굴에 점차 기대감의 미소가 떠올랐다.전면의 백미러를 통해 기모진은 소만리가 두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한없는 설렘과 한 가닥의 긴장감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기모진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내 그녀의 이런 미소를 다시 보았다.붐비는 길을 한참을 달린 끝에 차는 마침내 소만리가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수상쩍은 듯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았다.설마 그 아이가 사월산 쪽에 줄곧 살고 있는 걸까?그럼 누가 우리 아이를 돌봐줄까?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마침내 차가 천천히 멈추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이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서둘러 차에서 내려 달려나갔다.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은 사월산의 해변이었다.추운 겨울 음력 12월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이런 계절에는 해변에 놀러 오는 사람도 전혀 없고, 인근 마을 주민들도 발길이 뜸했다.소만리는 텅 빈 주위를 둘러보더니 기모진 앞으로 몸을 휙 돌려 달려갔다.“기모진, 내 아이는요!”그녀가 절박하게 물었다.“당신 나를 여기에 왜 데려왔어요? 나는 내 아이를 만나야 해요!”“오늘 중으로 꼭 아이를 보여 줄게.”“오늘 중? 기모진, 당신 도대체 왜 이래요? 또 나를 놀리는 거예요?”기모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내렸다.“나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어.”“무슨 뜻이에요?” 소만리는 참을성이 없어 보였다.“당신은 나를 용서할 수 없고,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당신과 하루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그의 말에 소만리는 아연실색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기모진, 당신이 한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나도 알아.”남자는 속삭였고, 깊은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