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영은 소만리의 말에 크게 분노하며 화를 냈다. 그리고는 풋살구처럼 애교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모진아, 군군이는 우리의 사랑스런 아들인 걸? 난 목숨을 걸고 우리 군군이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군군이를 그냥 버려두고 다쳐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겠어?”이때 사화정이 기란군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소만리를 쳐다보며 말했다."천미랍씨.. 제가 듣기로는 묵비와 곧 결혼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날마다 내 딸의 약혼자에게 치근덕거리는 건가요? 부모님께서 이런 짓거리를 하면 뻔뻔한 것이라고. 몰염치한 일이라고 말씀 안 하던가요?"사화정의 냉소적인 말에 소만리는 담담하게 빙그레 웃었다."부인께서 잘 물어봐 주셨어요.. 제 부모님께서는 이런 걸 저에게 가르쳐 주신 적이 없어요.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잠시 부주의한 나머지 남의 집 아이를 잘못 데려다 키우셨거든요. 결과적으로 저는 부모님께 버린 받은 셈이네요."갑자기 소만리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모진은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피어난 우아하고 옅은 미소를 본 그의 마음은 영문을 모르게 무엇인가에 찔린 듯 아파왔다.사화정과 소만영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어쩜 이렇게 소만리 그 천한 것과 닮을 수 있지?’ 소만영은 조용히 고민했다.반면 사화정은 약간 넋을 잃었고,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만해도 가득했던 경멸스러운 웃음도 사라졌다.사화정과 소만영의 안색 변화를 눈치챈 소만리는 예쁘장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제 친부모님께서 그런 걸 가르쳐 주신 적은 없지만, 나중에 절 키워 주신 분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답니다. 그럼 이제는 제가 사모님께 여쭤볼 차례네요. 이렇게 교양 있으신 분이 가르치신 딸이, 어째서 이처럼 성품이 비열하고 됨됨이가 상스러운 거죠..? 게다가 가족애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해서 위험한 상황에서는 친아들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으려 하던
멀리 가지 않아 소만리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이렇게 물러선 것은 오히려 매우 성공적이었고, 확실히 지금의 기모진이 더욱 신경 쓰는 사람은 그녀였기 때문이다.기모진은 친절하게 소만리에게 차문을 열어주었다.소만리는 그의 차에 올라탔는데 백미러로 소만영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자 생각만해도 속이 시원했다.차가 출발하자 소만리는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납치 사건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들이 절 고소할 것 같은데요? 적반하장도 참.. 이런 억울함을 전 참을 수 없어요.""그렇게 되는 건 제가 허락하지 않죠."기모진이 약속했다.소만리는 흥미로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소만영씨를 위해서는 정말 심혈을 기울이시네요."기모진은 그 말을 듣고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뭔가를 부정하려 했지만 결국 말을 하지는 않았다.잠깐의 침묵 뒤 그는 뭔가가 떠오른 것 같았다."조금 전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뭐가 좋은 소식이죠?"소만리는 섬세한 눈썹을 치켜 올리며 활짝 웃었다."그게 말이죠..."그녀는 가을 물처럼 맑고 부드러운 눈으로 기모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오늘 저녁에 모진씨의 집에 가서 직접 만든 캔들라이트 디너.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은데요? 그때 제가 이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알려드리죠."기모진은 이 말을 듣고 잠시 넋을 잃어 눈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눈을 들어 소만리의 휘어진 눈썹과 웃는 얼굴을 마주한 그의 심장 박동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빨라졌다.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 마트에 들렀다. 두 사람은 마치 신혼부부 같았다. 그녀는 음식을 고르고 그는 옆에서 그녀를 위해 장바구니를 들었다.쇼핑을 마친 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 별장으로 돌아왔다.방금 산 재료들을 내려 놓은 후 기모진은 회사의 전화를 받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소만리에게 그의 방에 가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을 제안했다.소만리는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만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웃었다."천미랍.. 네가 미친 것 같은데..?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을 해?""네가 미친 거지. 난 미치지 않았어."소만리는 놀라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 지경까지 왔는데, 지금도 기모진이 널 원할 거라고 생각해?""흥! 무슨 소리야~ 꿈도 꾸지 마! 모진이가 나를 버리고서 너를 원할 것 같아?"소만영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건방지게 비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천미랍.. 내가 말해주는데, 내가 어찌 되든 모진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영원히 나야. 이건 누구도 대체불가라구!"소만영이 자신만만하게 날뛰는 모습을 본 소만리는 한쪽 입고리를 삐죽거리며 비웃었다.“대체불가?”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이 네 글자를 반복하며 웃음 지은 채, 비싼 와인을 집어 들어 앞에 놓인 와인 글라스에 반을 채웠다."너처럼 비열하고. 추잡하고. 악랄한. 이런 여자는 보기 드물지. 확실히 네 말대로 '대체불가'인 걸작 같달까..?"소만리는 여유롭고 태연하게 술잔을 들고 가볍게 흔들며 우아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이 천박한 년! 네가 감히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소만영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천미랍이 자신을 욕하고도 이렇게 여유롭게 술을 홀짝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이건 내가 특별히 모진씨와 함께하려고 준비한 저녁 식사인데.. 너도 같이 마시는 게 어때?!"그러자 소만영은 갑자기 세차게 손을 뻗어 소만리가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을 힘껏 밀어버렸다. 약간의 와인이 쏟아져 몇 방울이 소만리의 목련 흰색 드레스에 튀었다.소만리의 치마가 더럽혀진 것을 본 소만영은 고소하고 즐거운 듯이 웃었다."후후훗.. 천미랍. 내가 너에게 경고할게~ 소만리 그 천한 년이랑 똑같이 생긴 네 얼굴 때문에, 넌 반드시 그 기집애처럼 나에게 짓밟힐 운명이라구. 너는 그 천박한 것처럼 내 상대가 될 자격이 없어. 내 신발을 들어주는 하찮은 일
소만영의 화난 눈에서 갑자기 강렬한 살의가 느껴졌다. 마치 천미랍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그녀는 캐비닛에 있는 가위를 집어 들어 날카로운 끝을 천미랍에게로 향한 채 살벌하게 달려들었다.소만영은 분노로 가득 차 천미랍에게 피비린내 나는 교훈을 주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소만리는 회피하기는 커녕 두려워하지도 않았다.그녀는 태연하게 손을 내밀어 가위를 휘젓는 소만영을 잡을 타이밍을 얻었다.소만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른 손으로 천미랍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한눈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에 소만영을 제지하는 동시에 조금의 주저없이 소만영의 뺨을 세게 때렸다.“짝”뺨 맞는 소리와 함께 소만영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소만영의 뺨에 난 칼자국이 아물기도 전에, 조금 전 천미랍에 의해 와인으로 적셔졌고 지금은 손바닥으로 후려침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은 화끈거리며 쓰라린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아악!! 내 얼굴!"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화가 치밀어 올라 눈을 번쩍 들었다.그러나 뜻밖에도 고개를 든 소만영은 오만하고 냉혹한 눈빛과 마주했다. 소만영은 쥐처럼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왜? 너도 이제서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맛이 얼마나 쓰라린지 이제서야 느껴 본거야?"소만리는 가볍게 웃었다."너.. 천미랍! 날 놔줘!!”소만영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벗어나려 발버둥쳤다."천미랍. 잘 들어. 당장 나를 놓아주는 게 좋을 걸?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죽기보다 못한 삶이라?"소만리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만영을 놓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만영이 빼려고 하는 손목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그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소만영. 너야 말로 내 말을 똑똑히 들어야겠는데? 나는 네가 죽여버리고 짓밟도록 내버려둔 소만리가 아니야!""네가 소만리에게 한 일들에 대해 나는 이미
기모진이 그렇게 바로 자신을 밀어낼 줄이야. 그녀는 당황하여 눈이 휘둥그래졌다.그녀는 기모진이 천미랍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의 말투에 담긴 걱정과 관심은 분명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었는데!하지만, 지금은 그 관심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고 있는 그였다.그리고 소만영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천미랍이 지금 바닥에 앉아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린 듯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왜 바닥에 이렇게 앉아있는 거에요?"기모진은 빠르게 천미랍에게 다가가 웅크리고 앉았다. 그의 눈과 눈썹은 근심과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물들어 있었다.소만리는 가을물처럼 맑은 눈을 반짝이며 기모진의 뒤에 있는 소만영을 바라보았다."만약 제가 이 고귀한 소만영씨가 절 넘어뜨렸다고 말한다면, 저를 믿을 수 있으시겠어요?"그녀는 억울한 듯 기모진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소만영은 이 말을 듣고 주먹을 꽉 쥔 채 화를 내며 변명을 했다."천미랍! 너 대체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널 밀었어? 분명히 네가 나를 도발한거지! 내가 모진이를 위해 준비한 저녁상을 엎고 날 때렸잖아!!!!"그녀는 기모진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팔을 붙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모진아.. 절대 이 여자한테 속으면 안돼. 저 여자가 날 괴롭혔어. 나는 손가락 하나도 건들지 않았다구. 모진아, 설마 날 못 믿는 거 아니지?"소만영은 기모진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기모진은 소만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소만리를 일으켰다."쓰읍.."천미랍은 눈살을 찌푸렸다.기모진은 천미랍이 아침에 당했던 교통 사고로 찰과상을 입은 부위를 보았다."아파요?""조금요..""내가 치료해 줄게요."기모진은 말을 하다가 소만리의 어깨를 껴안고 부드럽게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소만영은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장면을 믿기 어려웠다. 그녀의 두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했다.기모진이 작은 구급상자를 가져와 천미랍의
‘소만영. 마침내 네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달았지? 네가 애당초 나에게 줬던 모욕과 모함들에 비하면 오늘 일은 아무 것도 아니야. 물론 너의 악행에 대한 보답은 이걸로는 부족하지만.’"내가 요즘 자꾸 당신을 다치게 하는 것 같아요."기모진의 낮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겠습니다."소만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가 마침 고개를 들고 있었다.두 사람의 눈빛이 무심코 만났다. 그는 바다처럼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것 같았다. 단번에 소만리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소만리는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면서 귀 밑에서 볼까지 천천히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반반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심장 박동이 더욱 빨라졌다. 원래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는 잔잔한 물결이 점점 흩어져 한순간에 고혹적으로 변했다.천미랍이 자신을 홀린 듯 바라보고 뺨은 부끄러운 듯 붉고 눈썹은 실처럼 아름다웠기에 기모진의 심장 박동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그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소만리를 쏙 빼닮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설렐 수 없을 기모진이었지만, 심장 박동의 변화는 그로 하여 착각과 황홀함을 느끼게 만들었다.정말 눈앞에 있는 그녀에게 미묘한 호감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요?"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소만리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고, 호흡과 심장박동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마치 데자뷰처럼 온 몸을 바싹 말려버릴 듯한 열감이 그녀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그녀는 그 순간 뭔가 떠올랐다."아까 소만영씨가 준비해 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어요. 당신을 붙잡기 위해 술에 약을 탄 것 같네요. 지금 굉장히 어지럽네요."소만리는 강한 의
기모진의 행동을 보니 분명 농담 같지는 않았다.그러나 소만리는 기모진과 다시는 그렇게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 번 사월산에서 밤을 보낸 그 날. 그녀는 그가 술에 취했기에 그를 속였을 뿐이다.그녀는 다시는 이 냉혈하고 무정한 남자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셈이었다.소만리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조금 전 마신 약에 취해 의식이 흐려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기모진의 가슴팍에 기대기 시작했다.그의 몸에서 나는 차가운 향기를 맡으며 그녀는 점점 흩어져가는 자신의 의식을 억제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기모진이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소만리는 마지막 의지로 그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기모진.. 날 놓아줘.."그녀는 입을 열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분명히 거절하고 있었지만 이 어조는 오히려 그를 반기는 것처럼 들렸다.기모진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여자를 보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어서 날 내려놔, 기모진, 당신...”소만리는 계속 웅얼거리다가 갑자기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기모진이 그녀를 욕조에 내려 놓았던 것이다."겁먹지 마.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진 않을 테니까."그의 온화한 목소리가 그녀의 뜨거운 마음에 한 줄기 시원한 샘물을 흘려 보냈다.그의 이 말은 의외였다."조금만 참아요. 괜찮을 거야."그의 위로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부드러움이었고 마치 진정제처럼 소만리의 걱정을 해소시켰다.그는 천미랍의 외투를 벗겼고, 나머지 옷들도 계속 벗기려던 찰나. 그녀가 기모진의 손을 꼭 쥐었다."혼자 할 수 있어요. 나가도 돼요."뜨거운 손바닥을 느끼며 기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네."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꽉 잡은 그의 손을 놓았다.기모진이 몸을 돌려 욕실 문을 닫은 것을 본 소만리는, 바로 찬물을 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
기모진이 이런 행동을 보이자 소만리는 매우 놀랐다.흐르는 찬물이 샤워기에서 끊임없이 떨어져 그의 옷도 빠르게 젖었다.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껴안고서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두었다.점점 시간이 지나고.. 기모진은 천미랍의 뒤에 앉아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그 익숙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만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더욱 세게 껴안고 말았다."만리야..."그는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만리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차츰 정신을 되찾아갔다. 차가운 물방울이 그녀의 말려 올라간 속눈썹으로 떨어졌고, 그 후 소리 없이 손등으로 떨어졌다.기모진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소만리는 그 소리를 분명히 잡아냈다.‘만리.. 참 다정한 호칭이야.. 기모진, 당신이 나를 이렇게 불러 주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하지만 나의 그 기대와 욕망은 이미 내 마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기에 더 이상 하나로 만들 순 없어.’......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소만리는 자신이 기모진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원래 입고 있던 옷이 이미 다른 옷으로 갈아 입혀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그녀는 헐렁한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운 안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살짝 드러난 왼쪽 가슴에 있는 붉은점을 보고 황급히 옷깃을 여몄다.어떻게 된 일이지?그녀는 어젯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또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이 옷을 만약 기모진이 갈아 입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녀의 가슴에 있는 점을 보았을 것이다."찰칵."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교차하는 이 순간. 방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은 기모진이 고상한 아우라를 풍기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에게서는 어젯밤 그녀와 함께 찬물에 몸을 적셨던 당황스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지금은 고귀하고 도도한 기씨 가문의 총재일 뿐이었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