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의 심장은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고 덩달아 긴장까지 되었다.소리를 들어보니 자신을 납치한 인간들이 문 앞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곧 바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그녀는 두 손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버려진 의자 옆으로 기어갔다. 그 때 바깥에서 자물쇠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바깥에서 자물쇠를 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손에 돌 하나를 집어 들고는 의자 위로 발을 디뎠다."아오씨! 이 문은 네가 좀 전에 열었었잖아! 대체 열쇠를 어떻게 하다가 잃어버린 거야? 빨리 찾아오라고!" 문밖에서 갑자기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소만리는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고 이건 바로 좋은 기회였다.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살짝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돌을 집어 들어 힘껏 내리쳤다.“쨍그랑!!!”유리는 곧바로 깨지며 맑은 파열음을 냈다. 별안간 문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초가 흐른 뒤에서야 화가 나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제길! 여기 안에 있는 기집애가 도망가진 않겠죠?"“뭐?! 도망갔다고요?”화가 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람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했다. “문 좀 걷어차봐요! 당신 둘은 바로 밖으로 나가서 어디로 도망갔는지 샅샅이 뒤지고요. 그 기집애가 도망쳐봤자 얼마 가지 못했을 거라고요!"말소리와 함께 캄캄한 방의 문은 세차게 부딪혀 열렸다. 소만영과 두 사내들이 방 안으로 뛰어왔다.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밧줄들이 눈에 들어왔다."천미라아압!!!" 소만영은 치를 떨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삐죽 빼죽 깨진 유리창 사이로 천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아니 진짜 도망쳤잖아! 당신들 빨리 그 기집애를 잡아와요! 만약 못 잡아오면 돈이고 뭐고 그냥 매장될 줄 알아!”"가자! 빨리 쫓아가!" 건달들은 곧바로 소만리를 뒤쫓았다.그 사이 소만영은 떨어진 밧줄에 발길질을 해대며 악에 받쳐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그때 마침 그의 휴대전화로 익명의 문자가 왔다.[서쪽 교외 종이공장. 천미랍은 거기에 있다. 빨리 그녀를 구하러 가라.]기모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자가 온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그는 많은 생각과 의심을 할 틈도 없이 바로 핸들을 돌려 문자에 적힌 주소로 달려갔다.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소만리는 어쩔 수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야 했다.그녀가 갇혀 있던 곳 주변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소만영이 여전히 건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건달들이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로 돌아왔다.그들은 소만리가 깨진 유리창 너머로 도망가지 않았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소만리가 던진 돌멩이는 그들의 주의를 돌리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이 쓸모 없는 밥통들아!” 소만영은 화가 나서 몇 명의 남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한바탕 욕을 쏟아 부었다. 그 후 그녀가 돌아가려고 하자 뺨에 칼자국이 난 두목이 그녀를 가로막았다.“사람은 도망갔지만서도, 우리 아그들이 그쪽을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녔잖는가? 그라믄 돈은 좀 줘야제~”소만영은 그 말을 듣고서 비웃으며 팔짱을 꼈다. 마치 의기양양한 마님 같았다. “잡아오라는 사람은 잡아오지도 못하면서 지금 돈을 달라고? 니네 목숨이 붙어있기를 바란다 내가. 이 쓸모 없는 것들아!" 그녀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며 돌아섰으나, 두 걸음을 채 옮기지도 못하고 두 사내에게 붙잡혔다. 화가 난 소만영은 고개를 돌려 욕을 퍼부으려다 뺨을 세게 맞았다. 뺨에 칼자국이 난 두목이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소만영의 기를 꺾어버렸다.“너…너 뭐 하는 거야?! 빨리 놔줘!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말이야…….”“좀 닥치소. 이 멍청한 아가씨야~ 우리는 그짜기 누군지 관심도 없고, 그냥 돈만 주면 된다니까네!” 두목은 또 다시 소만영의 뺨을 한 대 때렸다.소만영은 너무 아파서 참지
두 명의 건달들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휴대전화의 후레쉬를 켜려고 하자 갑자기 사람 그림자가 뒤편의 벽면으로 스쳐 지나갔다.두 사람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소만리는 손에 들고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는 뒤돌아 뛰쳐나갔다.건달들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의자를 막았다. “아이씨! 저 년 저거 진짜 여기 있었네!”“쫓아!!!”소만리는 더 이상 숨어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정면 돌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그녀는 건달들이 들어오는 틈을 타 시야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도망갔다.하지만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들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인지. 그녀는 나오자마자 헐벗은 소만영과 옷이 흐트러진 건달 둘을 마주쳤다.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메스꺼움을 느꼈다.“천미랍?!” 소만영은 도망쳐 나온 소만리를 보자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너.. 너! 계속 거기 숨어 있었던 거야?!” "쯧. 아따 요년 참말로 똑똑하고마잉. 우리를 그냥 똥개 훈련을 시켜버리는구마."두목은 흥미로운 듯 소만리를 쳐다보았다.소만리는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멀지 않은 곳의 낡은 대문을 바라보며 빠르게 도망쳤다.“당장 저 기집애를 잡아오란 말이야!” 소만영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소만영은 자신이 천미랍에게 놀아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천미랍의 속임수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추한 불량배와 몸을 섞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몸을 섞고 나서 저것들에게 돈까지 줘야 한다니!등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소만리는 가까이에 있는 대문을 보고 단숨에 달려갔다.그러나 그녀의 두 발이 대문을 벗어나려는 순간, 그녀의 팔을 누군가 거칠게 당기는 것을 느꼈다. “어딜 또 도망가려고?!” “이거 놔!” 소만리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눈을 치켜 뜨고 노려보았다.“하! 놓
“소만영.. 너 진짜… 뻔뻔하다.”“후후훗~ 니가 지금 나한테 부탁해도 시원찮을 판에.. 니가 나한테 살려달라고 한다면 뭐 한 번 봐줄 수 있겠지만, 계속 고집만 부리면.. 죽는 수밖에 없지 뭐~!”소만영은 독한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았고 거즈가 덮인 얼굴에 사납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소만리는 아직 마음 속 깊이 남아있는 원한을 갚지도 못했기에, 결코 다시는 자신의 몸에 소만영이 낼 상처를 덧씌우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눈앞에 바싹 다가온 네 명의 건달들을 바라보며 소만리는 천천히 두 주먹을 쥐었다.‘설령 죽음을 택하더라도, 결코 나를 이런 쓰레기들의 손에 넘어가게 두지 않겠어!’그녀는 벽 주변에 놓인 나무 막대를 보고는 순식간에 달려가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오호! 요 아가씨 성질머리가 참 화끈하고마이, 좋아 좋아!" 두목은 별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소만리가 잡고 있는 막대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즈기 예쁘장한 언니, 우리 아그들 말 좀 들어보자고. 몸으로 고생하지 말고잉?”소만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두목을 보았다. 그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니 걱정이나 해야 할 것 같은데!”"킬킬킬킬...!"이 말을 들은 두목이 미친 듯이 웃으며 소만리가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옆에서 대기하던 부하 세 명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소만리는 바로 이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이힐을 신은 발로 두목의 아랫도리를 거세게 걷어차버렸다."으..으억!"두목은 곧바로 느껴지는 고통으로 소리를 질러 대며 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아오 젠장! 저년 저거 좀 눕혀봐라 야들아. 그냥 아주 죽여브리게!"“예 형님!”부하들은 두목의 명령을 따랐고, 결국 소만리는 다시 예상 외의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건달 중 하나가 마취제가 든 스프레이를 들어 소만리의 얼굴에다 뿌렸다.소만리는 방심한 나머지 마취제를 한 두 모금 들이마셔버렸다. 익숙한 화학 냄
소만리는 약물 때문에 머리가 멍했지만, 희미하게 누군가가 귓가에 그녀를 만리라고 부르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녀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보기 위해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은 점점 무겁기만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꼭 안고서 놓지 않는 이 남자에게 무의식적으로 가까워졌다.생각해보면 그녀는 지금까지 이처럼 보호받는 듯한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요 몇 년 동안 불합리한 화를 겪으면서 누군가 그녀를 도와주기를 갈망할 때 사람들은 오히려 그 틈을 타 그녀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녀는 갈망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서 점차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이끌려 돌아오는 느낌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이제서야 깨달았다..기모진은 자신의 팔에 안긴 사람이 자신에게 가까이 붙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손은 천천히 그의 목에 올라가 부드럽게 그를 껴안았다.그 때 기모진은 다시 이성을 찾은 것 같았다. 그는 품속에 안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이 지난 날 잃은 소만리가 아니라는 것이 비로소 기억나는 듯했다."천미랍씨 괜찮아요?" 그녀가 소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이 얼굴을 보면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소만리는 눈썹을 찌푸리며 "아..어지러워..."라고 말했다."즉시 병원으로 데려다 줄게요!" 기모진은 곧바로 그녀를 끌어안고 차로 향했다."모진아!"갑자기 공장 건물 안에서 소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기모진은 멈춰 서서 어리둥절하며 뒤를 돌아보자 소만영이 보였다. 그녀는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땅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쓰러뜨린 건달 무리를 가리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진아 저들이 힘으로 나를 더럽혔어~ 날 위해 복수해줘 모진아! 나 정말 너무너무 아파… 난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쓰읍…”기모진의 미간에는 주름이 생기고, 검은 두 눈썹이 잔
기모진이 그녀를 만졌던 손가락을 거두려 할 때 문득 예선과 소군연이 딱 잘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바로 만리라고요.""세상에 저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는 건, 믿을 수가 없어 절대."그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거지? 뭔가 특징이라도 포착 한 건가? 특징..이라..?기모진은 다시 소만리의 왼쪽 가슴에 있던 점을 떠올렸다.천미랍이 기란군을 위해 밤을 샜던 그 날,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몸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를 마주쳤을 때 매우 긴장한 듯 가슴을 움츠렸던 것이다.설마.. 사실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볼까 두려워했던 건가?기모진의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소만리를 바라보던 그의 마디 굵은 손가락은 과감하게 그녀의 환자복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한 개, 두 개, 세 번째 단추가 풀리는 순간.."찰칵."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소만리의 환자복을 벗기던 기모진의 손도 함께 멈췄다."모진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병실로 들어온 기묵비는 기모진의 손이 소만리의 옷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서, 다가가 소만리의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기모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고, 깊고 맑은 얼음 같은 그의 눈동자는 기묵비의 시선을 살폈다."애초에 대체 무슨 수로 내 아내를 외국으로 내보낸 겁니까?""모진아, 무슨 소리야? 아직도 미랍이를 만리라고 의심하는 거야?”기모진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묵비는 희미하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모진아. 사람이 죽고 나면 다시 살아날 수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나도 죽은 사람을 살릴 만한 대단한 능력은 없다. 만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정말 괴로웠지. 그렇지만 아마 그녀에겐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어?"기모진의 눈빛은 무거워지며 냉소를 지었다.“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난 거다?”“아니야? 내 생각에 만리는 자신의 사랑과 열정
기모진은 갑자기 ‘모진 오빠’라고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소만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썹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벚꽃 같은 분홍빛의 입술은 살짝 꿈틀댔다."대체 왜……."갑자기 소만리의 입에서 세 글자가 흘러나왔고 그녀의 눈썹은 더욱 찌푸려졌다.왜?지금 ‘대체 왜’라고 한 건가? 기모진은 불안하게 잠들어 있는 천미랍을 보고는, 더 정확하게 듣고자 그녀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왜, 날 안 믿는 거에요…….""팡!"기모진이 소만리의 귀에 얼굴을 대자 갑자기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결과적으로 그는 소만리가 중얼대는 말을 다 듣지 못했다. 기모진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화정이 화를 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기모진, 지금 내 딸이 너 때문에 병상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 여자를 보고 있어?! 아주 사랑이 넘쳐 흐르는구나! 그리고 뻔뻔하게 지금 저 계집애한테 키스까지 하다니! 너는 만영이가 있는 이 곳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구나?!"키스를 했다고?기모진은 무표정하게 사화정을 바라보았다. 아마 방금 몸을 숙여 천미랍에게 다가가던 그의 몸짓이 사화정의 눈에 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분노에 가득 찬 사화정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가늘고 섹시한 입술이 유유하게 단어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키스했습니다만…. 그게 어떻다는 거지요?"사화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모진아,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만영이는 너를 위해…….""저와 만영이는 이미 파혼했습니다.”기모진은 얼음처럼 차갑게 말을 내뱉었고, 그의 가느다란 눈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도대체 제가 몇 번을 강조해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실 건가요?""너……."사화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기모진, 넌 어쩜 이렇게 몰인정 하지? 만영이가 일편단심으로 널
잠들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자 머릿속의 그림이 마침내 선명해졌다. 갑자기 나타나 제 때 그녀를 살린 것은 바로 기모진이었다.그는 그 때 매우 긴장한 채로 그녀를 껴안고 진정시켜주었다. 그에게서 느낀 안정감으로 인해 그녀는 그에게 밀착했다…….”소만리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 리듬은 이전에 느껴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설마 내가 어떻게 그 인간 때문에 설렌다고? 난 그가 싫다고!’그가 직접 나를 조금씩 나락으로 밀어 넣었을 때, 내 사랑은 이미 죽어버린 마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물에 빠져본 사람은 다시는 바다를 사랑할 수 없다.하지만, 날 숨막히게 했던 그 고통들은 꼭 되갚아 주겠어.사화정이 소만영의 병실 입구로 막 돌아왔을 때, 마침 기모진도 병실 앞에 도착했다.그가 온 것을 보고 사화정은 자신의 말에 기모진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결국 만영이가 걱정되긴 했나 보지?”사화정의 말투는 차가웠다."모진아, 우리 만영이 정말 가엾어.. 네 놈들에게 번갈아 당했다니……. 그 놈들이 우리 만영이를 망쳐놓았어… 모진이 네가 꼭 옆에 있어주고 잘 다독여 줘.애처로운 얼굴로 눈물을 훔치는 전예의 모습은 더없이 슬퍼 보였다.기모진은 미간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전예를 보았다.전예는 시치미를 뚝 떼고 눈물을 흘리다가, 갑자기 기모진의 눈빛을 보자 놀라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병실에서 계속 만영이를 돌보고 계신 거 아닙니까? 만영이가 어째서 서곽에 있는 폐지 공장에 나타난 겁니까?”"내…내가 물을 받으러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니까 만영이가 없어진 거야!”전예는 변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만영이는 다리가 부러졌지 않습니까? 갑자기 걸어 나갔다는 말씀입니까?""그…그게 만영이를 누군가 납치해서 데려간 거야! 내 생각엔 분명 그 천미랍인가 뭐신가 하는 계집애가 만영이를 잡아오라고 한 게 틀림없어!"기모진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