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진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우선 경찰에 먼저 신고하자.”“그렇지만 납치범이...”“소만리, 당신이 예선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우린 경찰의 능력을 믿어야 해. 경찰을 믿지 않더라도 날 믿어 봐. 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거야.”기모진이 소만리를 부드럽게 설득했다.소만리는 기모진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나 당신 믿어.”기모진은 따뜻하게 그녀를 위로하듯 그녀의 손을 잡았고 곧바로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경찰서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누군가가 신고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소군연이 이미 신고를 하러 경찰서를 왔다 간 것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바로 소군연에게 연락을 취했다.세 사람은 곧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비록 소군연이 기억을 잃긴 했지만 세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어색한 기운도 돌지 않았다.오히려 소군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기모진과 소만리에게 과감 없이 자세하게 털어놓았다.“예선이 납치된 일은 아마도 영내문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소군연 선배, 왜 그렇게 생각해요?”소만리는 소군연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소군연은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영내문은 아마도 예선을 죽이려 했던 것 같아요.”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를 쳐다보며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소군연 선배, 선배 기억 돌아온 거예요?”“아니요.”소군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영내문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영내문은 일부러 사고를 냈어요. 오늘 우리 집 앞에서 예선이 운전한 차와 같은 색의 차를 보고 예선이 운전하는 차인 줄 알고 일부러 들이받은 거죠.”이 말을 듣는 순간 소만리는 뭔가 깨달았다.“예선이가 오늘 내 차를 몰고 나갔어요. 설마 영내문은 내 차와 같은 색인 그 차를 보고 예선이 그 차를 운전하는 줄 알고 들이박은 거예요?”“난 그렇게 생각해요.”소군
”엄마.”“엄마 여기 있어. 착하지, 우리 아들.”소만리는 막내아들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예선이 이모 오늘은 우리 집에 안 와요?”기란군도 궁금한지 소만리에게 예선의 안부를 물었다.소만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얼버무리다가 마침 현관에서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집으로 돌아온 기모진이었다.소만리는 막내아들을 안고 돌아섰다.“모진, 이제 왔어? 무슨 소식은 없어?”기모진은 소만리의 품에 안겨 있는 막내아들에게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아직 아무 소식 없어. 하지만 누가 예선을 납치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어.”“누군데?”“별다른 직업이 없는 양아치 같은 놈이야. 좀도둑인데 절도 건으로 입건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더군. 돈을 벌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만한 놈이었어.”기모진은 나름의 분석을 내어 놓았다.“그런데 그놈 계좌에 최근 몇 차례 입금된 정황이 포착되었어. 마침 영내문의 계좌에서 최근 인출된 금액과 같아. 즉 영내문이 이놈과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가능성이 큰 게 아니라 분명 영내문 짓일 거야. 확실해.”소만리는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어쨌든 영내문은 부잣집에서 외동딸로 자라 좋은 교육받고 자랐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할 수가 있어?”“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은 뼛속 깊이 그 인자가 새겨져 있어.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마음속에 있는 악을 숨길 수가 없는 거지.”“그런데 그렇게 되면 예선이 위험한 거 아니야?”“상대방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야. 돈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예선이한테 무슨 짓을 못할 거야.”“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 놈이 영내문의 지시에 따라 예선이를 납치했다면 영내문이 그에 합당한 돈을 주기만 하면 예선이한테 손을 댈 수도 있잖아.”이런 생각이 들자 소만리는 더욱 초조해졌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어깨를 감싸며 긴장된 그녀의 마음을 다정하게 달래주었다.“영내문의 뜻이 예선을
소만리가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보니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보였다.얼핏 봐도 껄렁껄렁해 보였다.그녀가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남자였다.그러던 중 갑자기 소만리의 머릿속에서 뭔가 번뜩했다.이 남자가 예선을 납치한 그 건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소만리의 눈빛이 반짝였다.어젯밤 기모진이 자신에게 보여준 CCTV영상이 떠올랐다.영상 속에 예선을 끌고 가는 그 남자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똑똑똑.”남자가 차창을 다시 두드렸다.소만리는 경계하며 차창을 조금씩 열었다.사람의 손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높이가 되자 그녀는 버튼에서 손을 뗐다.그녀는 태연한 척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소만리 맞죠?”남자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남자의 거친 목소리는 소만리를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어젯밤 몸값으로 2억을 요구하던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네, 제가 소만리인데 무슨 일이시죠?”“소만리, 당신이랑 한가하게 입씨름하고 싶지 않으니 얼른 차 문 열어.”남자는 거침없이 내뱉으며 손을 들어 거칠게 차창을 두드렸다.소만리는 남자의 거친 행동으로 보아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어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자가 뭔가를 들어 차창 유리에 대고 휘둘렀다.‘펑’하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망치로 차창을 내리친 것이다.“빨리 차 문 열어!”남자가 흉악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소만리는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거만하게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고 했다.“뭐하자는 거예요, 지금?”“당신의 친한 친구를 만나게 해 주려는 거잖아.”“...”“빨리 문 열어.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당신 친구 얼굴 못 볼 줄 알아.”남자는 위협적인 말투로 사납게 말했다.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만리는 이 남자가 정말 돈을
소만리는 감히 예선의 안위를 두고 모험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오가는 차량이 있었지만 행인은 별로 없었다.행인이 있더라도 그녀가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워 보였다.소만리는 남자의 뒤를 따라 길 반대편으로 갔고 그제야 어제 자신이 예선에게 빌려준 차가 그곳에 주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 남자는 이 차를 몰고 기란군의 학교 근처까지 그녀를 미행한 것이었다.그가 불과 하루 만에 자신의 동선을 알아낼 수 있었다니, 이건 분명 누군가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누군가 알려준 것이 틀림없었다.그리고 그 누군가는 영내문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있을 수 없었다.병원.영내문은 편안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사실 그녀의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약간의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부딪친 여자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그녀는 예비로 들고 다니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고 했다.그때 그녀의 모친이 긴장한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왔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긴장한 얼굴을 하고 그래?”영내문의 모친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졌고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죽었어, 내문아. 그 여자가 죽었어!”영내문의 표정이 굳어졌다.“뭐? 지금 뭐라고 했어? 누가 죽었다고?”“그 여자 말이야. 너한테 치인 그 여자. 방금 죽었대!”“...”영내문은 갑자기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당황한 나머지 버벅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이번 교통사고는 그냥 사고였어.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구. 죽으면 죽은 거지 나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보상금 좀 내면 되는 거 가지고. 설마 우리 집에서 그 정도도 못 내겠어?”영내문이 못내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영내문의 모친은 불안해서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듣자 하니까 그쪽 가족도 돈이 궁한 처지가 아니어서 널 고소하려고 한대!”“뭐? 날 고소해? 허
예선은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고 힘겹게 소만리의 어깨를 툭 쳤다.“소만리, 이 남자는 날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넌 어서 빨리 가!”“여기 온 이상 아무도 나갈 수 없어. 나갈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남자의 사악한 목소리가 소만리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소만리는 손을 들어 예선의 얼굴에 묻은 얼룩을 부드럽게 닦아 주며 일어섰다.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이런 짓을 한 이유는 돈 때문이잖아요. 그럼 나랑 거래를 하는 게 어때요?”남자는 비꼬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만리를 쳐다보았다.“소만리, 당신은 지금 내 인질이야. 몸값을 갈취하는 데 가장 관건은 인질의 가치야. 그런데 왜 당신은 나한테 조건을 말하는 거야?”“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건 바라는 게 돈이기 때문이잖아요. 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내 친구를 데리고 무사히 여기나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나와 내 친구를 풀어준다면 난 더 높은 가격을 치를 마음이 있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남자는 원래 소만리가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소만리의 모습을 보고 약간 동요하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해서 이 남자같이 제대로 사회생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서 그만한 돈을 만져 보겠는가.그러니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이면 누구든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소만리, 지금 그 말 진심이야?”“내가 내 목숨 가지고 장난할 것 같아요?”소만리가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남자는 소만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다시 생각해 보니 소만리 같은 대단한 집안에서 돈은 숫자일 뿐이다.숫자 하나 때문에 사람의 목숨까지 잃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남자의 시선은 갑자기 탐욕스럽게 타올랐다.“그럼 얼마나 줄 수 있는데?”“상대방이 당신에게 우리 목숨 값으로 주는 돈의 딱 두 배 줄게요. 하지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시켰는지 알려준다면 당신이 원하는
”소만리, 당신의 고운 살갗이 엉망이 되는 걸 원하진 않겠지? 그렇다면 순순히 협조해.”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소만리까지 묶어두겠다는 뜻이었다.“소만리, 저 남자 말 듣지 마. 저런 남자는 신용 따위 공기보다 더 가볍게 생각할 거니까.”예선은 소만리까지 이 일에 연루될까 봐 걱정되었다.소만리는 예선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선아, 나까지 왔으니 우리 둘이 함께 나가야지. 걱정하지 마.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직면한 문제들을 돈이 다 해결해 줄 거라 믿어.”소만리는 단호하게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역시 기모진의 여인답게 담력이 아주 빵빵하시구만.”남자는 감탄하듯 내뱉고는 소만리의 손에 밧줄을 묶었다.다 묶고 나자 마침 그때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소만리와 예선의 몸에 단단히 묶여 있는 밧줄을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안심이 되는지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예선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소만리, 어떻게 된 거야? 왜 너까지 잡혀온 거냐구?”“거의 네가 잡혀온 방법과 같다고 볼 수 있지.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려서 미처 대응을 할 수가 없었어.”소만리는 예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자신이 어쩔 수 없이 자기 발로 남자의 차를 타고 왔다는 걸 예선이 알면 분명 미안해하고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아이 참.”예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나와 영내문 사이의 원한이 너한테까지 불똥이 튈 줄은 몰랐어.”“너랑은 상관없어. 영내문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지.”소만리는 문밖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분명 영내문과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소만리의 예상대로 영내문은 경찰과 차에 치여 죽은 여자의 가족들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남자가 소만리까지 잡아서 예선과 함께 버려진 공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답답했던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다.영내문은 일이 이렇게 된 김에 소
영내문의 발걸음이 멈칫했다.화가 나서 병실에 들이닥친 남자는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요?”영내문이 시큰둥하게 물었다.남자는 영내문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얼굴을 돌렸다.영내문의 도도한 얼굴에 매서운 남자의 시선이 떨어졌다.남자의 눈빛에 움찔 놀란 영내문이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했을 때 남자는 그녀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힘차게 손을 내리쳤다.“퍽!”“앗!”영내문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들어 뺨을 감싸쥐었고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누, 누구세요? 무슨 이유로 날 때려요! 간호사! 간호사! 어떻게 감히 VIP 병동에 아무나 출입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예요? 간호사!”영내문이 병실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내문아? 왜? 왜? 무슨 일이야?”영내문의 모친이 돌아와 급히 영내문의 곁으로 달려와 사나운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당신, 당신 누구야? 왜 내 딸 병실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영내문의 모친 말에 남자는 격앙되었다.“당신이 영내문의 엄마였군! 그럼 당신도 한 대 맞아!”그러자 남자는 영내문의 모친을 때리려고 손을 높이 들었다.영내문의 모친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영내문을 끌고 뒤로 물러갔다.하지만 남자는 티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칼을 들고 영내문과 영내문의 모친을 향해 쫓아갔다.“앗! 사람 살려요! 빨리 좀 와 줘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사람 살려요!”영내문의 모친이 소리를 질렀다.남자가 칼을 휘두르려 하자 누군가가 문을 밀고 뛰어 들어왔다.사람들이 들어와 그 남자를 제압했다.영내문의 모친과 영내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들을 쫓아온 남자를 보았다.영내문은 화가 치밀어 올라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나와 난동을 부리는 거냐구!”영내문은 자신의 얼얼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남자를
영내문은 욱신거리는 뺨을 만지며 이를 갈았다.“예선, 이건 다 당신이 날 건드렸기 때문이야. 죽었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었어! 당신 때문에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수모를 겪고 있다구! 절대 가만 안 둬!”기 씨 그룹.기모진은 며칠 동안 쉼 없이 계속 예선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단서는커녕 갑자기 소만리마저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그는 계속해서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도통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기모진은 걱정이 되었고 결국 위치를 추적해 소만리의 위치를 찾았는데 뜻밖에도 소만리의 차가 기란군 학교 근처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그러나 문은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고 운전석에는 소만리의 핸드폰과 평소 착용하던 액세서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사실 소만리의 차로 오는 길에 기모진은 소만리가 곤경에 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상황을 확인하자 침착했던 기모진의 심장 박동이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기모진은 얼른 블랙박스를 켰고 소만리의 차가 이곳에 주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분명한 것은 이 남자의 목소리가 예선을 납치한 그 납치범의 목소리와 같았다는 것이다.기모진은 소만리도 이 남자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그였다.납치범은 뜻밖에도 예선을 납치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소만리를 납치해 간 것이다.대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기모진은 안절부절못하며 납치범의 전화를 기다렸다.그러나 납치범에게서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경찰은 기모진이 제공한 단서를 바탕으로 추적하기 시작했고 추가 인력도 파견했다.한편 기모진은 직접 영내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서 병동 근처에서 몰래 영내문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비록 지금 영내문은 그저 수상한 정도로만 보이지만 기모진은 확실할 수 있었다.영내문은 이 사건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기모진의 예상대로 영내문은 이때도 화장실에서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