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내문은 소군연이 자신을 걱정해서 병원에 찾아온 줄 알았다.그런데 소군연이 예선을 찾으러 자신에게 오다니,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영내문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예선에게도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건가?옆에 있던 경찰들은 소군연이 흥분해서 영내문에게 묻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선생님, 친구가 실종된 겁니까? 이렇게 급하게 온 이유가 선생님 친구의 행방과 영내문 씨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까?”경찰이 이렇게 묻는 것을 보고 영내문은 갑자기 불안해졌다.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었다.“경찰관 님, 전 억울해요. 지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구요.”영내문은 자신은 아무 죄가 없다고 항변하며 소군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군연 오빠, 예선이 안 보인다고 어떻게 나한테 그걸 따질 수가 있어요? 내가 조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예선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소군연, 너 정말 너무하네! 어찌 되었든 내문이는 네 약혼녀야. 경찰들 앞에서 그렇게 묻는다는 건 지금 내문이 보고 죽으라는 소리잖아, 알기나 알아?”영내문의 모친도 덩달아 소군연에게 쏘아붙였다.그러나 소군연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침착하게 말했다.“허튼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만약 예선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난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소군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영내문을 쏘아보았다.“말해. 도대체 예선이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혹여라도 사람을 시켜 그녀를 다치게 한 거라면 나한테 말해. 무슨 조건이든 다 들어줄 테니까 말해 보라구.”“...”영내문은 말문이 막혔다.기억을 잃은 소군연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예선을 찾겠다고 나온 것이다.믿을 수가 없었다.영내문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문득 자기 자신이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그렇게 많은 일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소군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그저 해
영내문의 모친은 곧바로 병실 문을 닫으며 영내문을 돌아보았다.영내문의 얼굴색이 이미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그녀는 어두운 눈빛으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이를 갈고 있었다.“내문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그 예선이...”“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영내문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군연 오빠랑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고작 몇 년 알고 지낸 예선이보다 못하단 얘기야? 게다가 군연 오빤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야. 예선이라는 여자가 누군지 잘 기억도 못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여자를 감싸고돈다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영내문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억울하고 분해서 팔짝 뛸 것 같았다.영내문의 모친은 옆에서 이런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딸이 너무 안쓰러웠다.“내문아, 화내지 마. 사실 네 조건에 신랑감이 꼭 군연이만 있는 건 아니야. 경도에는 부잣집 도련님이 널렸어.”“물론 내 조건에 선택의 여지는 많다는 거 잘 알아. 그렇지만 난 꼭 군연 오빠랑 결혼하고 싶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요만큼도 감정이 없을 수가 있어! 게다가 군연 오빠 집안은 경도 4대 귀족 중 하나잖아. 다른 부잣집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 안 그래?”영내문의 말에는 소군연에 대한 배신감과 불만이 가득했다.“난 절대 예선이 같은 천한 여자한테 지지 않을 거야.”영내문의 모친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내문아, 정말 사람을 시켜 예선을 납치하기라도 한 거야?”“내가 예선을 납치했다면 뭐하러 멀쩡한 남의 차를 들이받았겠어?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여자야. 이번에도 그 여자는 사고를 면했어. 이 천한 여자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그것 참 희한하네. 군연이 말을 들어보니 예선이 그 여자는 누군가에게 잡혀간 모양인데.”의아하게 여기기는 영내문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영내문은 갑자기 모친에게 물었다.“내 핸드폰? 내 핸드폰 어딨어?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예선의 귓가에 거친 남자의 투박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그녀는 목 뒤에 뻐근한 통증을 느끼자 손을 들어 만져 보려고 했지만 자신의 양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들었어 못 들었어! 지금 말하고 있는 거 안 들려!”남자는 귀찮다는 듯 매정한 목소리로 예선을 재촉했다.예선은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앞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정신을 잃기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차를 몰고 가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한 남자가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입과 코를 막고 뒤통수를 사정없이 일갈했다.그녀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정신이 어슴푸레하게 들자 예선은 주위를 살폈다.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예선이었지만 굽혀야 할 때를 제대로 아는 그녀이기도 했다.지금 그녀는 두 손이 묶여 있었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이럴 때는 일단 침착하게 행동하는 게 최선이다.남자는 예선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듯 쭈뼛쭈뼛거리자 어깨를 한껏 치켜세우며 의기양양해했다.그는 허름한 의자를 들고 와 예선의 앞에 놓고 느릿느릿 의자에 앉았다.“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솔직히 말할게. 누가 그러던데 당신 엄마 되게 갑부라며? 그럼 돈 좀 쓰셔야지. 돈이 그렇게 많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 불쌍히 여기고 용돈이나 좀 챙겨주면 얼마나 좋아. 많이 바라지도 않아. 한 2억이면 돼.”남자의 말을 듣고 예선은 돌아가는 상황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누가 이 사람에게 자신의 엄마가 갑부라고 했을까.뻔한 일이었다.그런데 상대가 갑부라는 걸 알면서도 이 남자는 2억을 불렀다.10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예선은 이 남자가 물정 모르는 바보인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돈을 받고 끝내고 싶은 심산인지 알 수 없었다.나중에 너무 형이 무거울까 봐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2억은 충분히 거액이었다.“당신 엄마한테
예선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다가 화면에 나타난 소만리의 이름을 보았다.소만리가 이 시간에 전화를 왜 했을까?예선이 뭔가 생각에 빠지자 남자가 갑자기 소만리의 전화를 받았다.소만리는 아직 예선이 납치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예선에게 언제 집으로 갈 건지 물으려고 전화를 했는데 뜻밖에 낯선 남자가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누구세요? 예선이는요? 예선이 어디 있어요?”전화를 받은 낯선 남자의 거칠고 무례한 말투를 듣자 소만리는 이 남자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당신은 예선이랑 무슨 관계야?”남자가 도도하게 물었다.“당신 먼저 대답해요. 당신은 누구세요? 왜 예선이 핸드폰 가지고 있는 거예요?”“예선이? 오호, 그렇게 친하게 이름을 부르는 걸 보니 분명 이 여자의 친구이거나 가까운 친척쯤 되는 모양이군. 이렇게 말해 두지. 지금 예선은 내 손아귀에 있어. 몸값으로 2억 어때? 이 여자 보고 싶으면 어서 돈이나 준비해.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이 여자 얼굴 볼 생각하지 마.”남자의 말을 들은 소만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선이 납치된 건가?“내가 무슨 근거로 당신 말을 믿죠?”소만리는 남자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남자도 이에 질세라 얼른 소만리의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영상 전화를 걸었고 카메라를 예선에게 돌렸다.소만리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폐품 더미 옆에 갇힌 예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요동쳤다.“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은 본 것 같은데. 당신 혹시 경도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 기모진 마누라 아냐? 아 맞다. 이름이 소만리, 소만리였어.”남자가 영상 속 소만리의 얼굴을 알아보았다.“하하. 소만리. 이 여자 돈 많은 친구를 두었군. 그럼 됐어. 엄마라는 작자가 돈을 안 주니 친구라도 돈을 줘야지. 안 그래?”남자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소만리, 친한 친구한테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2억 준비해.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해
기모진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우선 경찰에 먼저 신고하자.”“그렇지만 납치범이...”“소만리, 당신이 예선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우린 경찰의 능력을 믿어야 해. 경찰을 믿지 않더라도 날 믿어 봐. 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거야.”기모진이 소만리를 부드럽게 설득했다.소만리는 기모진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나 당신 믿어.”기모진은 따뜻하게 그녀를 위로하듯 그녀의 손을 잡았고 곧바로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경찰서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누군가가 신고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소군연이 이미 신고를 하러 경찰서를 왔다 간 것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바로 소군연에게 연락을 취했다.세 사람은 곧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비록 소군연이 기억을 잃긴 했지만 세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어색한 기운도 돌지 않았다.오히려 소군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기모진과 소만리에게 과감 없이 자세하게 털어놓았다.“예선이 납치된 일은 아마도 영내문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소군연 선배, 왜 그렇게 생각해요?”소만리는 소군연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소군연은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영내문은 아마도 예선을 죽이려 했던 것 같아요.”소만리와 기모진은 서로를 쳐다보며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소군연 선배, 선배 기억 돌아온 거예요?”“아니요.”소군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영내문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영내문은 일부러 사고를 냈어요. 오늘 우리 집 앞에서 예선이 운전한 차와 같은 색의 차를 보고 예선이 운전하는 차인 줄 알고 일부러 들이받은 거죠.”이 말을 듣는 순간 소만리는 뭔가 깨달았다.“예선이가 오늘 내 차를 몰고 나갔어요. 설마 영내문은 내 차와 같은 색인 그 차를 보고 예선이 그 차를 운전하는 줄 알고 들이박은 거예요?”“난 그렇게 생각해요.”소군
”엄마.”“엄마 여기 있어. 착하지, 우리 아들.”소만리는 막내아들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예선이 이모 오늘은 우리 집에 안 와요?”기란군도 궁금한지 소만리에게 예선의 안부를 물었다.소만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얼버무리다가 마침 현관에서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집으로 돌아온 기모진이었다.소만리는 막내아들을 안고 돌아섰다.“모진, 이제 왔어? 무슨 소식은 없어?”기모진은 소만리의 품에 안겨 있는 막내아들에게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아직 아무 소식 없어. 하지만 누가 예선을 납치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어.”“누군데?”“별다른 직업이 없는 양아치 같은 놈이야. 좀도둑인데 절도 건으로 입건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더군. 돈을 벌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만한 놈이었어.”기모진은 나름의 분석을 내어 놓았다.“그런데 그놈 계좌에 최근 몇 차례 입금된 정황이 포착되었어. 마침 영내문의 계좌에서 최근 인출된 금액과 같아. 즉 영내문이 이놈과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가능성이 큰 게 아니라 분명 영내문 짓일 거야. 확실해.”소만리는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어쨌든 영내문은 부잣집에서 외동딸로 자라 좋은 교육받고 자랐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할 수가 있어?”“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은 뼛속 깊이 그 인자가 새겨져 있어.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마음속에 있는 악을 숨길 수가 없는 거지.”“그런데 그렇게 되면 예선이 위험한 거 아니야?”“상대방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야. 돈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예선이한테 무슨 짓을 못할 거야.”“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 놈이 영내문의 지시에 따라 예선이를 납치했다면 영내문이 그에 합당한 돈을 주기만 하면 예선이한테 손을 댈 수도 있잖아.”이런 생각이 들자 소만리는 더욱 초조해졌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어깨를 감싸며 긴장된 그녀의 마음을 다정하게 달래주었다.“영내문의 뜻이 예선을
소만리가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보니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보였다.얼핏 봐도 껄렁껄렁해 보였다.그녀가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남자였다.그러던 중 갑자기 소만리의 머릿속에서 뭔가 번뜩했다.이 남자가 예선을 납치한 그 건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소만리의 눈빛이 반짝였다.어젯밤 기모진이 자신에게 보여준 CCTV영상이 떠올랐다.영상 속에 예선을 끌고 가는 그 남자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똑똑똑.”남자가 차창을 다시 두드렸다.소만리는 경계하며 차창을 조금씩 열었다.사람의 손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높이가 되자 그녀는 버튼에서 손을 뗐다.그녀는 태연한 척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소만리 맞죠?”남자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남자의 거친 목소리는 소만리를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어젯밤 몸값으로 2억을 요구하던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네, 제가 소만리인데 무슨 일이시죠?”“소만리, 당신이랑 한가하게 입씨름하고 싶지 않으니 얼른 차 문 열어.”남자는 거침없이 내뱉으며 손을 들어 거칠게 차창을 두드렸다.소만리는 남자의 거친 행동으로 보아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어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자가 뭔가를 들어 차창 유리에 대고 휘둘렀다.‘펑’하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망치로 차창을 내리친 것이다.“빨리 차 문 열어!”남자가 흉악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소만리는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거만하게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고 했다.“뭐하자는 거예요, 지금?”“당신의 친한 친구를 만나게 해 주려는 거잖아.”“...”“빨리 문 열어.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당신 친구 얼굴 못 볼 줄 알아.”남자는 위협적인 말투로 사납게 말했다.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만리는 이 남자가 정말 돈을
소만리는 감히 예선의 안위를 두고 모험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오가는 차량이 있었지만 행인은 별로 없었다.행인이 있더라도 그녀가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워 보였다.소만리는 남자의 뒤를 따라 길 반대편으로 갔고 그제야 어제 자신이 예선에게 빌려준 차가 그곳에 주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 남자는 이 차를 몰고 기란군의 학교 근처까지 그녀를 미행한 것이었다.그가 불과 하루 만에 자신의 동선을 알아낼 수 있었다니, 이건 분명 누군가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누군가 알려준 것이 틀림없었다.그리고 그 누군가는 영내문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있을 수 없었다.병원.영내문은 편안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사실 그녀의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약간의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부딪친 여자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그녀는 예비로 들고 다니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고 했다.그때 그녀의 모친이 긴장한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왔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긴장한 얼굴을 하고 그래?”영내문의 모친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졌고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죽었어, 내문아. 그 여자가 죽었어!”영내문의 표정이 굳어졌다.“뭐? 지금 뭐라고 했어? 누가 죽었다고?”“그 여자 말이야. 너한테 치인 그 여자. 방금 죽었대!”“...”영내문은 갑자기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당황한 나머지 버벅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이번 교통사고는 그냥 사고였어.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구. 죽으면 죽은 거지 나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보상금 좀 내면 되는 거 가지고. 설마 우리 집에서 그 정도도 못 내겠어?”영내문이 못내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영내문의 모친은 불안해서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듣자 하니까 그쪽 가족도 돈이 궁한 처지가 아니어서 널 고소하려고 한대!”“뭐? 날 고소해? 허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